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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와 서울도 뉴욕을 깨끗이 하자는 캠페인에서 시작된 ‘I LOVE NEW YORK’이라는 카피처럼 ‘I LOVE TOKYO’와 ‘I LOVE SEOUL’이 세력을 떨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느새 도쿄에서 서울로, 서울에서 도쿄로 오갈 때마다 국경을 넘는다는 감각은 사라지고 평평한 감각만이 남게 되었습니다.” 강상중은 여기에, 그렇다고 도쿄와 서울이 개성없는 메트로폴리탄이 된 것은 아니라고 부연하면서, 스물한살이던 1971년에 한국을 방문한 일을 계기로 나가노 데쓰오라는 일본 이름을 버리고 강상중이라는 이름을 쓰기로 결심한 일을 들려준다. 하지만 제목이 <도쿄 산책자>인 이 책은, 도쿄라는 도시의 몇몇 상징적 공간들에 대한 그의 해석을 들려주는 식으로 흐른다. 여행자가 아니라 그 안에서 오랫동안 반쯤 이방인으로서, 정체성의 문제를 고민하며 살아온 사람으로서 느끼는 것들에 대해 들려주기에 도쿄에 관한 수많은 여행 에세이가 열어젖혀본 적 없는 묵직한 문을 열어주는 귀한 독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도시 읽기의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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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갈의 그림 중에는 공중에 떠 있는 남녀를 그린 그림이 꽤 있다. 특히 사랑에 빠진 이들의 고양된 마음이 붕 뜬 발을 통해 표현되곤 한다. 이연식은 샤갈이 결혼을 앞두고 그리기 시작한 <생일>에서 사랑에 빠진 남녀의 설레고 들뜬 마음을 포착한다. 하지만 낭만과 경악의 경계는 아주 옅다. 모로의 <춤추는 살로메>에서 살로메가 가리키는 쪽에 붕 떠 있는 세례 요한의 빛나는 목은 그저 오싹할 뿐이다. 많은 회화작품 속 관능과 환상을 에세이로 풀어낸 책.
[도서] 회화 속 관능과 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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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고상, 네뷸러상, 디트머상, 로커스상 등 SF소설에 주어지는 상을 휩쓴 레리 니븐의 책들이 소개된다. <플랫랜더>는 근미래 지구를 무대로 활약하는 형사 길을 주인공으로 한 중/단편집. 탐정이 주인공인 작품답게 근미래를 배경으로 한 미스터리 소설들인데, 사고로 한쪽 팔을 잃고 대신 염동력과 에스퍼라는 능력을 갖게 된 주인공이 DNA 복제부터 두뇌 이식, 냉동 회생과 관련된 사건들을 추적한다. 레리 니븐의 대표작 <링월드>도 출간될 예정이다.
[도서] 미래의 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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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더> <행복한 집구경> <셸터>를 쓴 목수이자 작가이자 출판인인 로이드 칸이 전세계 아주 작은 주택 250여채를 소개하는 책이다. 여기에는 일본의 캡슐 호텔이나 나무 위의 집 같은 공간부터 각양각색의 트레일러 하우스, 노새가 끄는 집 등 14평 이하의 초소형 주택이 등장한다. 단순히 작은 집이라기보다는 직접 만들고 자연과 함께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 유목민의 삶을 가능하게 하는 많은 이동형 주택이 등장해 특히 흥미롭다.
[도서] 작은 주택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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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이름이 말녀 혹은 말자라면, 그 집에는 딸이 많고 막내가 아들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그런 이름이 드물어졌다. 아들을 간절히 원하는 딸부잣집이 없어져서일까? 그렇지 않다. 태아 성감별을 통해 딸아이를 뱃속에서 가려내 죽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마라 비슨달의 <남성 과잉 사회>는 한국인에게는 전혀 새롭지 않을 초음파를 이용한 태아 성감별과 그로 인한 성비 불균형에 대한 책이다. 그렇다.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사이언스>의 베이징 주재 특파원으로 일하는 마라 비슨달은 이러한 식으로 성비 불균형을 보이는 나라들의 공통점을 분석했다. 고도성장을 겪은 국가 중 태아 성감별이 가능할 정도까지 의료체계가 자리를 잡은 곳으로, 낙태율이 높다(중국, 베트남, 한국 모두 해당). 무엇보다도 이런 나라들은 출산율이 최근 급속하게 떨어졌다. 도시에 살고 교육을 잘 받은 사회 계층에서 이런 경향이 두드러진다는 것도 특징이다. 그리고 부유층을 중산
[도서] 딸, 아들 구별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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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복도 많은 여자지. 두명의 샤룩 칸으로부터 동시에 구애를 받다니. 이 무슨 뚱딴지같은 얘기냐고? <그 남자의 사랑법>에서 샤룩 칸은 1인2역을 해낸다. 수리와 라지. 평생 여자 손 한번 못 잡아본 수리는 스승의 유언에 따라 엉겁결에 타니(아누쉬카 샤르마)와 결혼한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불의의 사고로 떠내보낸 타니의 마음에 수리가 들어오기는 쉽지 않다. 수리는 타니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주기 위해 용감한 라지로 변신한다. 타니는 수리와 라지 중 누구의 사랑을 선택할까. 실제 샤룩 칸은 수리와 라지 중 누구에 더 가까울까. 멀리 인도에서 샤룩 칸이 서면으로 그 대답을 보내왔다.
-보통 샤룩 칸 하면 화려하고 열정적인 모습이 떠오른다. 반면 이 영화 속 수리는 지극히 평범한 남자다.
=우리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수리의 영웅적인 내면을 보여주고 싶었다. 진정한 영웅은 울퉁불퉁한 ‘근육남’도, <GQ>나 <보그>에서 막 걸
[flash on] 우리에겐 평범한 영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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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독립영화를 챙겨본 관객에게는 익숙한 이름이다. 이종필.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출신인 그는 <불을 지펴라>(2007), <달세계여행>(2009), <앙상블>(2012)을 연출한 감독이자 <적의 사과>(2007), <백년해로외전>(2009)에 출연한 배우이기도 하다. 그리고 <아저씨>(2010)에서 태식(원빈)과 마약, 장기밀매 조직을 쫓는 경찰 무리 중 한명인 노 형사를 연기해 대중에 얼굴을 알리기도 했다. 다재다능한 그가 5월1일 개봉한 <전국노래자랑>의 메가폰을 잡고 상업영화 데뷔전을 치렀다. 영화 <전국노래자랑>은 가수가 되기 위해 <전국노래자랑>의 무대에 오르는 봉남(김인권)과 그를 말리는 아내 미애(류현경)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여러 인물들의 사연이 펼쳐지는 휴먼드라마다. 개봉일을 하루 앞둔 4월30일, 그를 만나 일단 상업영화 데뷔 소감부터 들었다.
-내일이 개봉이다
[flash on] 데뷔작에 불을 지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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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일이 연기한 <고령화가족>의 둘째아들 인모는 흥행에 참패한 영화감독이다. 설상가상으로 아내(이영진)로부터 이혼을 요구받았다. 더이상 물러설 데가 없다고 생각했는지 인모는 화장실에서 목을 매려고 하는데, 그에게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엄마(윤여정)였다. “닭죽 먹으러 오라”는 내용이었다. 그는 엄마가 내민 구원의 손길을 붙잡았다. <고령화가족>에서 박해일은 때로는 신경질적이면서, 또 때로는 무심하게 가족 속으로 비집고 들어가 가족의 맨 얼굴을 드러낸다. 70대 노인 분장을 하고 시인 이적요를 연기했던 <은교> 이후 제 나이를 다시 찾은 박해일을 만났다.
박해일이 영화 속 형제 관계에서 ‘둘째’를 연기한 건 <고령화가족>이 처음은 아니다. 봉준호 감독의 <괴물>(2007)에서도 그는 강두(송강호), 남일(박해일), 남주(배두나) 삼남매 중 둘째였다. <괴물>과 <고령화가족> 두 작품에서 그가 보여준 ‘둘
[박해일] 무심한 듯 복잡미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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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몬트리올의 한 초등학교, 교실에서 담임선생님이 목을 매단 채 죽어 있는 것을 한 학생이 발견한다. 후임 선생 찾기가 쉽지 않던 학교 교장에게 라자르(모하메드 펠라그)가 찾아오고 교장은 그를 채용한다. 라자르는 알제리에서 온 망명자로, 테러로 부인과 두 자녀를 잃고 캐나다로의 망명 신청을 진행 중이다. 사실 라자르의 부인이 교사로 일했을 뿐 식당 경영 등의 일을 한 라자르 자신은 아이들을 가르쳐본 적이 없다. 자신이 교육받았을 때와 전혀 다른 교육 환경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에 적응해나가던 라자르는 아이들의 마음속에 있는 상처들을 하나둘씩 발견한다.
영화의 기본적인 모티브는 상실이다. 선생님은 가족을 잃었고 아이들은 선생님을 잃었다. 루카치가 말하듯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다.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이 질문에 우리는 과연 대답할 수 있는가? 우리 인간은 이 질문에 수없이 대답해왔지만 어쩌면 한번도 제대로 대답해본 적이 없을는지도 모른다. 학교의 교장은 상처를 숨기고
상실, 상처, 그리고 눈물 <라자르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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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신매매단에 납치돼 고난을 겪은 뒤 풀려난다’는 골자는 비슷하지만 <에덴의 선택>에는 <테이큰>이나 <아저씨>에 등장하는 멋진 구원자가 없다. 납치된 현재(제이미 정)는 오로지 스스로의 힘으로 매춘굴에서 벗어나야 한다. 현재가 놓인 곳은 ‘현실’이기 때문이다. <에덴의 선택>은 한국계 미국인 김청이 실제로 겪은 이야기를 각색한 작품이다.
현재는 클럽에서 만난 남자에게 속아 인신매매를 당한다. 매춘굴로 끌려간 현재는 여성들을 관리하는 본(맷 오리어리)의 감시 속에서 매춘부 ‘에덴’으로 살아간다. 몇번의 탈출시도가 불발되고, 현재는 본에게 협조하는 척하며 그가 자신을 신뢰하도록 만든다. 생존을 위해 그녀는 잔혹한 선택을 반복하며 다시금 탈출의 기회를 노린다.
제이미 정의 섬세한 연기는 영화에 극적 부피감을 더한다. 그녀의 표정은 매춘굴에 떨어진 십대 소녀가 느끼는 두려움과 생존을 위해 드러내는 독기를 충실하게 담아낸다. 선정적인 장면이
매춘굴에 떨어진 십대 소녀 <에덴의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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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웨인 존슨이 직접 제작에 참여한 <스니치>는 감옥에 갇힌 아들을 구하기 위한 아버지의 노력을 그린 영화다. 성실한 건설업자인 매튜스(드웨인 존슨)의 아들은 그만 “멍청하고 순진한” 실수를 저지른다. 친구 대신 대량의 마약을 받아주다 현행범으로 체포되고 만 것이다. 마약에 엄격한 미국의 법 때문에 이 경우 보통 징역 10년의 형량을 받지만, 매튜스는 검찰에게 거물 마약범을 잡게 해줄 테니 아들을 풀어달라는 제안을 한다. 이 위험한 거래가 성사되자 매튜스는 정체를 숨긴 채 마약조직을 위해 일하기 시작하고, 모두가 예상할 수 있는 위험에 빠진다.
만약 드웨인 존슨의 이름과 트럭이 불타고 있는 포스터만 보고 <스니치>를 관람한다면 이 영화가 의외로 진지한 드라마의 노선을 따른다는 점에 놀랄지도 모른다. <분노의 질주> <지.아이.조2> 등 주로 장르적 과장이 곁들여진 블록버스터에서 화려한 액션을 선보였던 드웨인 존슨은 이 영화에서 거의 처음으
아버지의 헌신적인 사랑 <스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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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사이보그들의 전사를 과감하게 생략하며 시작한다. 세계 각국에서 연쇄 폭파 사건이 일어난다. 그러자 이 사건의 배후로 추정되는 ‘그’의 음모를 막기 위해 여러 나라에 흩어져 있던 사이보그들이 다시 뭉친다. 하지만 싸움이 계속될수록 선과 악의 구분은 애매해지고, 결국 사이보그들은 정의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에까지 이른다.
두 가지 키워드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하나는 물론 ‘사이보그 009’이고, 또 하나는 이 영화를 제작한 ‘프로덕션 I.G’이다. <사이보그 009>는 일본 만화계의 거장 이시노모리 쇼타로가 1964년에 처음 선보인 작품으로, 지금까지 만화와 TV애니메이션, 극장판 등 다양한 형식으로 만들어졌다. 4번째 극장판인 이번 2012년 버전의 <009 사이보그>는 전작들에 대한 과감한 재해석과 함께 3D로 움직이는 사이보그들의 모험을 선보인다.
또 하나의 키워드인 ‘프로덕션 I.G’는 <인랑> <공각기동대> 시리즈, &
우리가 지켜야 할 정의 <사이보그 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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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리코(사와지리 에리카)는 완벽한 얼굴과 몸매로 대중의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있는 스타다. 하지만 리리코는 태아와 타인의 피부, 근육들을 통해 불법 의료 행위를 하는 성형외과에서 전신성형을 통해 만들어진 미인이다. 부작용으로 인해 리리코는 재수술을 결정하고 검사 마코토는 수사망을 좁혀 들어간다. 그리고 기획사는 리리코를 대체할 수 있는 자연 미인 고즈에(미즈하라 기코)를 발굴하고 리리코는 자신의 자리를 빼앗길까봐 점점 더 불안에 떤다.
영화는 먼저 화려한 이미지와 원색의 색감으로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아름다움의 순간을 지속하려는 리리코와 대중의 욕망처럼 그 순간과 찰나의 이미지를 붙잡으려는 듯 영화는 시각적인 부분에 많은 공을 들인다. 그리고 사실적인 묘사나 일상의 공간보다는 만들어진 이미지와 환상 같은 부분에 더 치중한다. 검사의 사무실도 그렇고 검사가 내뱉는 말들도 일상적인 검사의 언어가 아니다. 아파트 입구에 켜져 있는 다양한 색깔의 조명들도 평범한 아파트의 조명이 아니
성형미인 리리코 <헬터 스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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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사랑 한번 못해보고 직장과 집만 오가던 ‘범생’ 수리(샤룩 칸)의 삶은 말괄량이 타니(아누쉬카 샤르마)의 등장으로 일대 지각 변동을 겪는다. 수리는 타니를 처음 본 순간 사랑을 예감했지만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그녀다. 그러나 타니는 예비신랑의 사고와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갑작스레 수리의 아내가 된다. 급작스런 결혼으로 이루어진 둘 사이의 공기는 어색하고 감정은 접점을 찾지 못한 채 겉돌기만 한다.
<그 남자의 사랑법>은 사랑의 온도도 경험도 전혀 다른 남녀의 다소 ‘이상한’ 러브 스토리다. 타니의 사랑을 얻어 그녀의 ‘히어로’가 되고 싶은 수리의 사랑 표현, 확인 방식은 엉뚱하게도 또 다른 남자로의 변신이기 때문이다. 평소 소심남인 자신과는 180도 다른 능글맞은 남자 라지로 변해 그녀의 댄스 파트너가 된다는 설정인데, 이런 변화가 불필요하게 타니의 감정을 시험에 들게 한다. 싫다는 타니에게 들이대는 수리 아니 라지는 노골적으로 ‘매력남’, ‘나쁜 남자’인 양
‘이상한’ 러브 스토리 <그 남자의 사랑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