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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버린 노래를 다시 부를 순 없’(<앵콜요청금지>)다고 했다. ‘가야 할 곳을 모르고 있’(<잔인한 사월>)다고도 했다. 밴드 브로콜리 너마저의 윤덕원이 써내려간 가사들에는 체념 섞인 막막함이 흐른다. 그런 그가 다가오는 8월 솔로로 자신의 첫번째 정규 앨범을 발매한다. 지난 6월9일 선공개한 타이틀곡 <흐린 길>에서도 그는 여전히 ‘이 흐린 길에 어디쯤에 있는지’ 알 수 없다고 고백한다. 어느새 지나쳐버린, 이미 사라져버린 날들과 그때의 어떤 마음을 곱씹게 만드는 그의 노랫말이 이번에는 또 어떤 후일담들로 채워졌을까. 올해로 밴드 활동 10년차이지만, 그는 자신을 “신인가수”라고 소개하며 음악하는 사람으로 사는 길에 대해 차분히 이야기한다. “오버하지 않는 음악”을 내놓고 싶다는 그가 부르는 노래를 미리 만나봤다.
-브로콜리 너마저가 아닌 솔로로 활동을 준비 중이다.
=브로콜리 너마저 멤버 중 한명이 결혼하고 현재 출산을 앞두고 있다. 그러다
[trans x cross] 체념은 나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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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은 만들어진 이후에 한번도 같은 수의 대국이 이루어진 적이 없다.” 정우성의 이 말은 “단 한번도 <비트>의 민과 이어지는 캐릭터를 하려고 했던 적이 없었다”는 말과 같은 의미로 들린다. 또한 그 말은 정우성의 손이 왜 <신의 한 수>로 향하게 됐는지도 잘 알려준다. 착수부터 계가까지. 다음의 인터뷰는 <신의 한 수>와 그의 다른 여러 ‘수’들을 놓고 정우성과 벌인 한판의 대국이다.
착수(着手)와 행마(行馬)
착수 바둑판에 한 수씩 바둑돌을 두는 일.
행마 세력을 펴서 돌을 놓기 시작하는 단계.
“이제야 뭔가 준비가 됐다는 생각이 든다. 무언가를 해보고 싶다기보다 무엇이든 해보고 싶다.” 데뷔한 지 올해로 꼭 20년을 채우는 정우성에겐 지나온 시간의 감회보다 앞으로 나아갈 20년의 시간에 대한 설렘이 더 크다. “지금까진 ‘정우성’이라는 이미지를 드러낸 작품이 많았다. 앞으로 20년간은 내 안의 표정을 제대로 보여주는 시간이 될 거다.”
[정우성] 20년 내공이 담긴 승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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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뜻 상대의 외모가 매력적이어서 끌린다는 말
속뜻 자신이 궁지에 빠졌음을 고백하는 말
주석 페이스북을 하다보면 날씬하고 예쁘고 식탐이 있는 미녀들의 사진이 친구 추천으로 자주 뜬다. 내 친구 중에는 없는데, 어째서 친구의 친구들은 하나같이 먹을 걸 밝히는데도 저렇게 날씬하고 예쁠까? 그럴 때면 저절로 신음하듯 저 단어를 내뱉게 된다.
사전에서는 삼삼하다는 말이 ‘어떤 사람의 외모가 매력적이어서 마음에 끌리는 데가 있다’ 혹은 ‘어떤 모습이나 풍경이 눈에 보이는 것처럼 잊히지 않고 또렷하다’로 되어 있다. 매혹은 시선과 관련되어 있는 특징이다. 그런데 사실 ‘본다’는 것은 보는 사람에게 속한 능력이 아니라 보이는 사람에게 속한 능력이다. 내가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대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대상이 내 시선을 갈취해가는 것이다. 그이가 나를 끌고 간 게 아닌데도 나는 그이에게 끌린다. 누군가 그립다고 할 때 쓰는 말, ‘눈에 밟힌다’가 수동인 것도 이 때문이다. 내 눈이 그이를 떠
[권혁웅의 일상어 사전] 삼삼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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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물등급위원회(이하 영등위)에서 이메일이 하나 왔다. ‘영화 속 언어표현 개선’ 토론회에 초대한다는 이메일이었다. 순간 올 것이 왔다고 생각했다. 안 그래도 영등위는 제한상영가 남발과 납득 불가한 등급 분류로 검열기관이라는 오명을 벗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그런 영등위가 이젠 아예 오명을 팩트로 인정하듯, 대놓고 사전개입해서 언어를 순화하겠다고 한다. 하도 어이가 없어서 토론회에 가고 싶어졌다. 영등위가 얼마나 언어를 사랑하는지 보고 싶어서.
하지만 뻔하다. 토론회에 가지 않아도, 제목만 봐도 영등위의 목적은 뻔해 보인다. 영화 속 언어표현을 빌미로 등급 분류를 강화하겠다는 거다. 선정성과 폭력성은 이미 많이 걸고 넘어졌으니, 언어라는 새로운 트집거리를 잡아서 영화계를 옥죄려는 거다. 이로써 영등위는 등급 분류의 세 가지 기준 트로이카를 완성한 것이다. 선정성, 폭력성, 언어. 그리고 이 트로이카 완성의 첫 공표가 이번 토론회임이 틀림없다.
토론회에 갔다. 예상대로, 토론회
[곡사의 아수라장] 해악성 트로이카가 완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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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이 백혈병에 걸린 사실을 알고 그를 위로하기 위해 세 친구가 병원에 모였다. “몇달 못 산다”라는 친구에게 어떤 말로 위로를, 용기를 줘야 할까. 세 친구가 각자 감정을 잡고 있다.
“대성아, 대사 맞춰보자!” 거침없는 맏형 서준영(가운데)이 동생들을 불러모은다. 아픈 서원을 만나고 올라온 병원 옥상에서 세 사람이 먹먹해하며 서울 하늘을 바라본다.
“대성 좀더 들어가고, 추원이는 좀 빼자.” 김민수 촬영감독이 옥상 난간에 기대선 세 인물의 동선을 계속 확인한다. 인물이 겹쳐 보이지 않게 하려나 보다 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 “<스피드>는 주인공들이 계속 개입해 들어가는 영화다. 대성과 구림이 대립하면 추원이 끼어들어 중재하는 식이라 동선이 중요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어제 2시간밖에 못 잤다는, 링거 투혼 중이라는 이상우(오른쪽) 감독은 한시도 대본을 손에서 놓지 않는다. 그는 촬영 중간중간 배우들에게 “이 대사를 좀더 맛깔나게 살려달라
[씨네스코프] 이상우 감독 <스피드> 촬영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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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캡티브> Captives
감독 아톰 에고이얀 / 출연 라이언 레이놀즈, 스콧 스피드먼, 로사리오 도슨, 케빈 두런드
카산드라가 감쪽같이 사라진 지 8년째. 어느 날 카산드라의 가족과 경찰 앞으로 그녀가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미스터리한 암시들이 전해진다. 과연 카산드라는 살아 있는 걸까. <클로이>의 아톰 에고이얀 감독의 연출작으로 올해 칸영화제 경쟁부문 진출작이다. 8월 덴마크 개봉예정.
[WHAT'S UP] <캡티브> Captiv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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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이 만화]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역사의 현장
[정훈이 만화]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역사의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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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씨네21> 영화평론상에 당선돼 글을 쓰기 시작한 이지현 영화평론가가 다큐멘터리를 완성했다. <프랑스인 김명실>은 그녀가 프랑스 캉에서 유학 시절 만난 프랑스인 화가 친구 ‘쎄실’, 즉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곧 프랑스로 입양된 김명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지현 감독은 노랑머리 부모를 둔 까만 머리 소녀의 사연을 구구절절 들려주는 대신 쎄실의 평범한 날들을 조심스레 기록한다. 2009년부터 2014년까지 5년 동안 이 영화를 붙들고 있었던 이지현 평론가에게, 이지현 ‘감독’으로 만나고 싶다고 전화를 걸었다.
-감독이란 호칭이 그리도 어색한가.
=단편을 찍긴 했지만 그땐 스스로 감독이란 자각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캉에서 영화 공부하던 당시 쎄실을 만났다. 첫 만남 당시 쎄실은 온전히 ‘프랑스인’으로 다가왔나.
=2004년 겨울 즈음 캉의 시네마테크에서 일하던 쎄실의 남자친구를 알게 됐다. 당시 캉 지역에 한국인 유학생이 나 혼자였을 거다.
[flash on] 평론보다 연출이 더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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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친구에게서 문자메시지가 왔다. 극장에서 방금 스파이크 존즈 감독의 <그녀>(Her)를 보고 나왔는데, ‘바디무비’ 꼭지에 쓰면 좋을 영화라는 것이었다(이런 식의 제보 및 추천은 언제나 환영합니다). 나는 이미 <그녀>를 보았고, 나 역시 어떤 방식으로든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쓰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원고에 쓸 만한 내용을 조금이라도 더 우려낼 생각으로 ‘그래? 난 별로던데… 뭐가 재미있어?’라는, 천진난만한 표정이 눈에 보이는 듯한 (상대방은 이미 내 표정이 천진난만함과는 거리가 멀다는 걸 알고 있지만) 답장을 보냈더니 아니나 다를까 곧장 새로운 문자메시지가 도착했다. ‘목소리도 몸이라는 거지. 신음을 내뱉는다고 할 때 한자로 몸 신을 쓰나? 생각할 게 많아서 좋더라’라는 내용이었다. 문자를 계속 주고받으면서 내용을 좀더 뽑아내면 좋았겠지만 (그래서 이 지면을 주고받은 문자메시지로 가득 채우면 참 좋았겠지만) 더이상의 이야기는
[김중혁의 바디무비] 끝까지 자기중심적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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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스 양말에 얌전한 단화를 신은 또래 여자애들 틈에서, 씩씩한 와즈다(와드 모하메드)는 목 높은 컨버스 운동화를 고집한다. ‘올 블랙’만 강요하는 엄한 교사에게 신발의 별무늬를 지적받자 소녀는 집에 돌아와 매직으로 별의 테두리 안쪽을 칠한다. 영화 <와즈다>가 이슬람 사회의 여성 억압에 의문을 던지는 화법도 이 일화처럼, 부드럽지만 꿋꿋하다. 와즈다의 척 테일러스 컨버스화가 왠지 눈에 익어 DVD를 뒤져보았다. 오래전 시드니 루멧 감독의 <허공에의 질주>에서 리버 피닉스도 같은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5/30
내가 제이슨 본 시리즈를 유보 없이 좋아하게 된 장면은 2편 <본 슈프리머시> 후반에 있다. 모스크바로 날아가 사선을 넘나드는 격투를 치른 제이슨 본(맷 데이먼)은 부상당한 몸을 끌고 한 가정집에 숨어들어 주인이 귀가하길 기다린다. 그녀는 오래전 제이슨이 비밀요원 생활 중에 암살하고 오명을 씌운 부부의 딸이다. 한때 기억을 상실했던 제이슨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기사와 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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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중반, 아랍 영화계에 새로운 분위기가 감돌았다. 각종 부동산 그룹과 미디어 그룹이 할리우드와의 교류에 뛰어들고 오일머니를 등에 업은 두바이국제영화제와 아부다비국제영화제가 나란히 출범하면서, 아랍 영화산업의 잠재력을 이끌어내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졌던 것이다. 이런 흐름 속에 성장해온 동시대 아랍영화의 활력을 확인하고 싶다면 2014아랍영화제를 찾아봄직하다. 서울 아트하우스 모모에서는 6월19일부터, 부산 영화의 전당에서는 6월20일부터 일주일간 열린다.
주제 면에서는 여전히 여성의 자유에 관한 화두가 가장 두드러져 보인다. 지난해 두바이국제영화제 최우수 아랍영화상을 수상한 모하메드 칸 감독의 <팩토리 걸>은 이집트의 재봉공장에서 일하는 21살의 히얌이 새로 부임한 감독관 살라를 좋아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소동을 다룬다. 여성의 순결에 관해 억압적인 문화와 계급 차 문제가 엉켜 있는 가운데 신파를 피해가는 당당한 결말이 돋보인다. 상황은 <모나리자
[영화제] 오일머니의 파워를 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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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영화를 보는 장소나 환경이 영화에 대한 기억을 지배하기도 한다. 익히 알고 있던 영화를 낯선 장소에서 만날 때, 그것의 새로운 면모가 보이기도 하고 낯선 장소가 영화의 낯선 느낌을 오히려 넉넉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도 만든다. 영화를 보는 장소의 중요성을 알고 있는 이들에게 무주산골영화제가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겠다. 제2회 무주산골영화제가 6월26일(목)부터 30일(월)까지 5일간 전북 무주군 무주읍 등나무운동장, 무주예체문화관 등지에서 열린다. 개막작인 <이국정원>을 시작으로 다양한 시공간을 아우르는 17개국 51편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가장 관심을 모으는 것은 경쟁부문인 창섹션이다. 1회 영화제에서 <수련>에 최고상인 뉴비전상을 안겼던 눈 밝은 영화제가 올해는 어떤 영화들을 발견 혹은 재발견하게 될까. 본선에 오른 작품은 총 9편이다. 이미 개봉했거나 개봉을 준비 중인 작품 사이로 <리뎀션 송>이 눈에 띈다. 이번 영화제에서 최초로 공
[영화제] 캠핑가서 <이국정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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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언 vs 세월호, 문창극 vs 월드컵. 화제와 이슈 사이에서 기웃거리다보면 하루가 짧은 대한민국이다. 며칠 전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유병언 부자 수배 전단지가 붙었다. 왜 잡아야 하나요? 발견하면 신고 안 하고 직접 잡아도 되나요? 등등 친절한 Q&A까지 곁들여 있다. 이것이 검거에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마케팅 효과로는 충분해 보였다. 그에게 걸린 현상금은 공직선거법이나 정치자금법 위반에나 해당하는 무려 5억원이다. 아들까지 합치면 6억원이다. 만약 내게 6억원이 생긴다면, 이라는 기대심리 이면으로 ‘세월호=유병언’ 공식이 확립된다. 강남에서 아파트 하나 못 살 돈이지만 서민들의 포커스를 흐리기엔 더없이 큰돈이다. 부질없는 것을 알면서도 수배 전단을 볼 때마다 상상한다. 만약 내게 6억원이란 돈이 뚝 떨어진다면, 더구나 세금 한푼 내지 않아도 되는 알짜배기 돈이라면… 가만있자, 일단 아내에게는 비밀로 해야겠지?
기생집 자유이용권?
몇달 전 드라마를 준비하던
[천성일의 은밀한 트리트먼트] 호사를 누리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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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티앙 디오르의 조수로 일하던 이브 생로랑(피에르 니네이)은 디오르의 사망 이후, 후계자로 지목되며 1950년대 패션계의 별로 떠오른다. 의상을 디자인하는 것 이외에 모든 것에 서툰 이브지만, 그에게는 ‘솔메이트’ 피에르(기욤 갈리엔)가 있다. 디오르 하우스를 떠난 이브는 피에르의 도움으로 자신의 이름을 내건 독자 브랜드를 런칭하고, 새로운 컬렉션을 발표해나가기 시작한다. 그러나 세계적인 디자이너로 성장해나갈수록 이브의 창작에 대한 고통과 외로움은 더해만 가고, 그를 지켜보는 피에르의 마음도 무너져만 간다.
생전에 이브 생로랑은 ‘우아하다’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았다고 전해지지만, 이 영화는 무척이나 우아하다. 영화를 가득 채운 이브 생로랑의 컬렉션들과 그가 남긴 스케치들, 재즈뮤지션 이브라힘 말루프의 다채로운 음악들은 패션에 대해 관심이 없는 관객에게도 호사스런 즐거움을 선사한다. 한편 다큐멘터리 <이브 생 로랑의 라무르>도 떠오른다. 같은 대상을 다루었다는 단순한
1950년대 패션계의 별 <이브 생 로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