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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작가 디노 바타글리아가 에드거 앨런 포의 단편집 중 <어셔가의 몰락> <악마에게 머리를 걸지 마라>를 비롯한 8편을 그래픽 노블로 각색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문학작품을 그래픽 노블화하는 작업을 여럿 진행했는데, 표지를 보고 미리 실망하지 말라고 당부하고 싶은 책. 포 특유의 음습한 이야기를 환상적인 느낌이 드는 작화로 재해석한 솜씨가 좋다.
[도서] 에드거 앨런 포의 이야기를 작화로 재해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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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전쟁이 한창이던 1968년 2월12일. 퐁니, 퐁넛에 진입한 한국군 해병대원들이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놨다. 6살 베트남 소년의 입에 총을 쏘아 죽였고, 사람들이 숨어 있는 동굴 안에 수류탄을 투척해 몰살시켰으며, 젊은 여성의 젖가슴을 칼로 도려냈다. 한 젖먹이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모른 채 죽은 엄마의 품 안에서 새근새근 잠들어 있었다. 베트콩의 위협은 없었다. 마을에는 노인과 여성 그리고 어린이뿐이었다.
평화로운 이곳에서 왜 한국군은 그토록 총질을 해댔던 걸까. 무엇이 그들에게 만행을 저지르게 한 걸까. <1968년 2월 12일>은 아무도 기억하고 있지 않는, 그날 그곳에 있었던 상흔을 따라가는 책이다.
이 책은 퐁니, 퐁넛 사건 피해자들의 증언을 꼼꼼하게 담아내고, 분노를 전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 사건 전후로 벌어진 현대사의 주요 장면들이 여러 방향으로 가지를 뻗어나가는 걸 보여준다. 퐁니, 퐁넛 사건 한달 전에 벌어진 북한 무장 공비의 1•21
[도서] 그날을 기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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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뉴욕, 유류 회사를 운영하는 아벨(오스카 아이삭)은 사업을 확장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전 재산을 쏟아붓고 대출까지 받아 땅을 사려 하지만 문제가 발생한다. 최근 잇달아 기름을 훔쳐가는 무장 강도 때문에 회사의 신용이 떨어진 것이다. 여기에 검찰까지 회사의 회계 문제를 조사하기 시작하자 아벨은 진퇴양난에 처한다. 그는 과연 자신의 사업을 지킬 수 있을까, 이를 위해 필요한 150만달러의 자금을 무사히 마련할 수 있을까.
<마진 콜: 24시간, 조작된 진실>과 <올 이즈 로스트>에 이은 J. C. 챈더의 세 번째 장편 <모스트 바이어런트>는 파국을 묘사하는 감독 특유의 솜씨가 십분 드러난 작품이다. 전작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 곤경에 빠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렸던 J. C. 챈더는 이번 작품에서도 같은 테마를 집요하게 파고든다. 특히 주목할 것은 주인공의 목을 서서히 죄는 느리고 묵직한 리듬이다. 어떤 사건에 따른 결과를 즉시 보여주는 것
느린 리듬으로 다가오는 파국 <모스트 바이어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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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학 연구생 프래니(앤 해서웨이)는 모로코에 머물던 중 동생 헨리(벤 로젠필드)의 사고 소식을 듣는다. 통기타를 메고 거리에서 노래를 부르던 아마추어 뮤지션 헨리는 혼수상태에 빠져 사경을 헤매고 있다. 고향으로 돌아온 프래니는 헨리가 남긴 흔적을 더듬다 동생이 싱어 제임스 포레스터(조니 플린)의 광팬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프래니는 때마침 내한한 제임스의 공연장으로 찾아가 그에게 동생의 데모 CD를 전달하며 동생의 존재를 알린다. 이후 제임스가 병실에 직접 찾아와 헨리를 위해 노래를 불러준다. 이를 계기로 프래니와 제임스는 사적인 만남을 시작한다.
음악을 매개로 두 사람이 만나 사랑에 빠진다는 설정은 음악 멜로물의 공식과도 같다. <송 원>이 차별화되는 지점은 혼수상태에 빠진 동생이라는 매개체를 하나 더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유목민의 생활상을 연구하기 위한 프래니의 여정은 헨리의 사고 이후 동생의 과거를 더듬는 여정으로 대체된다. 그 과정에서 만난 제임스는 5년째
음악으로 들여다본 관계의 속성 <송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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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미닉(반 디젤)과 멤버들은 범죄조직 소탕 후 일상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평화도 잠시, 전작에서 처리한 범죄조직의 리더 오웬 쇼의 형 데카드 쇼(제이슨 스타뎀)가 동생의 복수를 위해 멤버들을 차례로 공격한다. 특수부대 출신 용병 데카드 쇼의 난입에 맞서 정부요원 페티(커트 러셀)가 도미닉을 돕는다. 페티는 납치당한 해커 램지(내털리 에마뉘엘)의 구출을 의뢰하고 도미닉은 멤버들을 다시 모아 반격을 시작한다.
거대하고 시끄럽고 가차 없다. <분노의 질주> 시리즈는 유독 국내에서 평가절하됐다. 무려 7편까지 개봉한 이 시리즈는 지금까지 전세계적으로 23억8천만달러의 흥행 수익을 거둔 괴물이다. “경찰서도 털었고 탱크랑 붙고 전투기까지 떨어뜨렸지만 이건 무리다”라는 개그 담당 멤버 로만 피어스(타이레스 깁슨)의 투정처럼 속편이 나올 때마다 더 큰, 더 놀라운, 더 짜릿한 볼거리를 제공해왔다. 시리즈가 거듭됨에도 활력을 잃지 않는 비결은 확장이 아니라 거꾸로 단순함에 있다. &
슈퍼카들의 무한질주 <분노의 질주: 더 세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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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모든 것의 에너지원으로 쓰이는 마을 윈드랜드. 평화롭던 어느 날, 까마귀 마녀는 소중한 바람을 만들어내는 마법의 바람개비를 훔쳐 마을을 망치기로 마음먹는다. 늘 바람개비를 지켜온 거북이 할아버지가 마녀 일당에 납치당하고, 바람개비가 멈추자 마을은 금방 황폐해진다. 윈드레인저 6인방은 바람개비를 되찾으려고 하지만, 오히려 그걸 훔쳤다는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고 만다.
<윈드랜드>는 이탈리아의 애니메이션 시리즈 <펫 팔스>의 두 번째 극장판이다. 우리에게는 꽤 낯선 이름이지만, 현지에서는 공영방송 <Rai 2>를 통해 10년간 156개의 에피소드를 방영했을 정도로 상당한 인기를 구가한 작품이다. 그래서일까? 강아지, 고양이, 토끼, 병아리, 오리, 개구리로 이루어진 주인공들을 전면에 내세우는 영화는 그들 각자를 보여주는 데 시간을 할애하지 않고 초반을 스윽 지나간다. 결국 여섯주인공 중 누구에게도 관심을 갖지 못한 채 그저 흘러가는 이야기를
아이들을 위한 애니메이션 <윈드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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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공포영화에서 희생양이곤 했던 미모의 금발 소녀가 <팔로우>에선 주인공이다. 제이(마이카 먼로)는 남자친구 휴(제이크 웨어리)와 데이트한 뒤 관계를 가진다. 휴는 관계 후 돌변하여 이제 무언가가 제이를 따라다닐 거라고 경고한다. 제이의 친구들은 헛소리로 여기지만, 제이는 남들에겐 보이지 않는 존재가 자신을 따라다님을 느낀다. 휴는 이것이 섹스로 전이되는 저주이며, 다른 사람과 섹스를 해서 넘겨야 한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제이는 그녀를 짝사랑해온 폴(키어 길크리스)을 비롯한 친구들의 보호를 받으며 자신을 따라오는 존재들을 피해 다닌다.
<팔로우>는 정중동의 미학을 지닌 공포영화다. 깜짝 놀라게 하거나 유혈이 낭자한 잔인한 장면 따윈 없다. 주인공을 위협하는 불특정한 실체인 ‘그것’들은 점잖다. 절대 뛰지는 않고 걷기만 하는 양반이기에, 숨가쁜 추격 같은 것도 없다. 카메라는 롱테이크로 360도 회전하며 주인공의 주변을 찬찬히 훑고, 등장인물이 알아채기 전
정중동의 미학을 지닌 공포영화 <팔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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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와이번스에서 5년간 재임하며 3번의 우승을 안겼지만 2011년 불미스럽게 퇴출당한 김성근 감독은 그해 말 독립야구단 고양 원더스의 사령탑을 맡는다. 신인 드래프트에서 지목받지 못했거나 팀에서 방출된 선수들이 모인 팀은 기대보다 훨씬 낮은 기량으로 연패를 면치 못한다. 하지만 김성근 감독 특유의 혹독하지만 사려 깊은 훈련을 거듭하며 점차 승률을 올려가고, 소속 선수들이 속속 프로팀에 입단하는 성과까지 만들어낸다.
국내 첫 번째 독립야구단 고양 원더스는 “열정에게 기회를”을 모토 삼아 야심차게 창단했지만 3년을 채 채우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 <파울볼>은 고양 원더스의 그리 길지 않은 역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담은 다큐멘터리다. 한국 최초라는 의미만큼이나 큰 상징이었던 김성근 감독과 그를 따르는 원더스 선수들의 모습으로 채워졌다. 한때 메이저리그까지 진출했던 최향남, 다승왕에 오르며 프로팀 코치로도 활동했지만 다시 선수의 자리로 돌아온 김수경, 잠시 팀을 떠났다가 복귀
슬픔을 비집고 떠오르는 평범한 깨달음 <파울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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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 Finding Vivian Maier
감독 존 말루프, 찰리 시스켈 / 출연 존 말루프, 비비안 마이어 / 수입•배급 영화사 오드 / 개봉 4월30일
사진을 찍은 사람은 누구인가.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의 이야기는 감독 존 말루프가 한 경매에서 우연히 손에 넣게 된 필름으로부터 시작된다. 필름을 인화해본 존 말루프는 사진의 비범함을 알아채고 찍은 이의 신원을 추적해나간다. 약간의 단서가 더 발견된다. 15만장가량의 인화된 사진들, 현상을 기다리던 수천통의 필름들, 그리고 사진의 주인공이 병적으로 모아둔 잡동사니. 사진의 주인, 비비안 마이어는 1927년 뉴욕에서 태어나 2009년에 사망했고 40여년 동안 시카고에서 베이비시터로 일했다. 비비안 마이어는 유별나고 대담하며 어마어마한 수집벽을 지닌, 비밀이 많은 사람이었다. 꽤나 괴팍한 성격의 소유자였을 것으로 짐작되지만 그녀가 남긴 사진엔 인간애가 넘쳐흐른다. 사진에 대한 열정과
[Coming Soon] 사진을 찍은 사람은 누구인가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 Finding Vivian Mai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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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인간관계다. 인간관계는 모든 행불행의 원인. 영원한 제도인 가족이 ‘평생 원수’인 경우가 최악일 테고 직장 상사, 동료, 연인, 지나가다 부딪친 사람까지. 갈등을 피할 수 없다. 내 입장에서 너무나 억울할 때 상대방에 대한 고민이 시작된다. 도대체 왜 저럴까? 미친 걸까? 아픈 걸까? 나쁜 걸까?
인간의 본질은 없다는 말은 하나마나한 얘기. 내가 경험한 그 순간이 상대의 본질이다. 나열하기 민망한 다양한 저질 행동이 일상인 사람들, ‘사회 지도층’의 탐욕과 갑질, 일부 ‘진보 인사’의 인간성 바닥에 직면할 때가 있다. 나쁜 사람이 아니라 미친 사람이라고 치부하면 마음 편하다.
그런데 미친 사람이 아픈 사람이라면 다시 골치가 아파진다. 정신적 질병(mental disease)은 기분, 감정, 인식에 장애가 생기는 병이다. 정신 질환자는 위험하고 예측 불가능하며 폭력적이라는 편견이 강하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암이나 당뇨병의 증상이 다 다르듯 정신적 질병도 마찬가지다
[정희진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아픈 사람, 미친 사람, 나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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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팔한 10대나 자기관리가 철저한 20대가 아니고서야 ‘먹는 것이 곧 자신을 만든’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깨닫게 되는 날이 부지불식간에 찾아온다. 평범한 일주일 중에 하루였던 어제 먹은 것을 떠올려본다. 아침은 마트에서 1+1로 구입해온 두유로, 점심엔 자장면에 서비스 군만두 두개를 먹었다. 저녁은 회식이었다. 맥주를 마셨는데, 밥이 될 만한 안주랍시고 빨간 떡볶이와 돈가스를 먹었던 기억이 전부다.
그렇다면 내가 하고 들은 말이나, 하루 동안 했던 생각은, 행동은 어땠을까. 유기농적이고, 순수하고, 널리 세상을 이롭게 하는, 소위 ‘착한’ 것들이었을까? 우리가 사는 세상은 더 악해지고 교묘해졌는데, 우리는 그들이 사는 세상에서는 언제나 착한 것을 찾는다. 그만큼 하루하루 나이를 쌓아가는 일이 괴롭다는 방증이기도 할 테다. 네모난 TV 화면 속에서만큼은 지지부진하고 속 터지는 나의 이야기를 들여다보지 않기를, 착한 마음으로 바랄 테니 말이다.
KBS2 수목드라마, <착하지
[김호상의 TVIEW] 라벨을 떼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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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만 35살의 오스카 아이삭은 지금 활동하는 남자배우 중 가장 내실 있는 필모그래피를 쌓고 있는 중이다. 물론 시작부터 그런 건 아니었다. 일찌감치 <체 1부: 아르헨티나>(감독 스티븐 소더버그), <바디 오브 라이즈>와 <로빈 후드>(감독 리들리 스콧), <본 레거시>(감독 토니 길로이) 등에 비중 있는 조연으로 출연하기는 했지만 아쉽게도 배우로서의 존재감이 크게 드러나지는 않았다. 하지만 2013년에 출연한 <인사이드 르윈>(감독 코언 형제)부터 사정은 변했다. 여린 듯 까칠해 보이는, 그래서 응원을 하고 싶다가도 어느 순간 다시 거리를 두게 만드는 독특한 뉘앙스의 연기에 오스카 아이삭의 이름은 자연스레 알려지기 시작했고, 그 후 그는 마치 오랫동안 계획을 세워온 사람처럼 드라마를 앞장서 이끌어가는 흥미로운 캐릭터들을 잇따라 선보였다.
먼저 <인사이드 르윈> 이후 에밀 졸라의 원작을 영화화한 <테레즈 라
[오스카 아이삭] <모스트 바이어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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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2015 <소셜포비아>
2014 <미드나잇 썬>
롤모델은 해피 아이콘 스폰지밥, 5시면 꼬박꼬박 기상하는 아침형 인간, 술자리 대신 축구와 등산을 즐기는 스포츠맨, 밤마다 손으로 일기를 쓰는 습관까지. 류준열은 여러 가지로 예상을 뛰어넘는다. <소셜포비아>에서 류준열은 “인기를 되살리기 위해 더욱 자극적인 소재를 찾아다니는” 하이에나 같은 남자, BJ 양게를 연기했다.
그 인상이 퍽 현실적이고 자연스러워 류준열도 BJ 양게의 연장선에 있는 사람이 아닐까 슬쩍 짐작해봤다. 그의 가방에 매달려 활짝 웃고 있는 스폰지밥 완구를 발견하기 전까지.
단편 <미드나잇 썬>(2014)을 본 형슬우 조감독이 현피(온라인 싸움을 현실세계까지 연결하는 행위) 멤버 중 한 사람으로 류준열에게 오디션을 제의했고 시나리오를 읽은 류준열은 BJ 양게 역까지 함께 준비해갔다. “소품으로 마우스를 챙겨가 BJ 양게가 중계하는 모습도 같이 보여드렸는데 그걸
[who are you] 류준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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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봄이 시작된다는 3월20일, 때아닌 폭설로 뉴요커들이 기나긴 겨울에 이어 또다시 고역을 치르고 있을 때에도 장르 팬들의 지알로(슬래셔 장르에 큰 영향을 미친 이탈리아 스타일의 호러영화)에 대한 사랑은 빛났다. 맨해튼 앤솔러지 필름 아카이브 극장이 눈보라를 뚫고 온 호러영화 팬들로 가득 찼던 것이다. 지알로영화제가 3년 만에 ‘더 킬러 머스트 킬 어게인!: 지알로 피버, 파트2’라는 제목으로 뉴욕을 찾았다. ‘말라스트라나 필름 시리즈’(이하 MFS)는 3월20일부터 29일까지 이 영화제를 통해 11편의 지알로영화를 소개한다. MFS는 지난 2012년 ‘지알로 피버!’와 2014년 ‘이탈리아 커넥션’으로 컬트 팬들의 호응을 이끌어냈던 바 있다.
모두 35mm필름으로 상영되는 이번 영화제에서는 개막작으로 선정된 다리오 아르젠토 감독의 <섀도>(1982)와 <페노미나>(1985) 등을 비롯해 마리오 바바의 <블러드 베이>(1971), 움베르토 렌
[뉴욕] 더 킬러 머스트 킬 어게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