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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만 셋인 집에서 태어나 남중과 남고를 나오고 인문대인데도 정원 30명 중에 여자는 한명뿐인 과에(그러니까 남대…에) 입학한 지지리 복도 없는 선배는 여자 후배들에게 궁금한 것이 많았다. “여자들은 왜 손톱에 때가 안 껴?” 20년 동안 여자 손톱 한번 제대로 본 적 없는 가엾은 청춘입니다. “여자들은 정말 머리채 잡고 싸워?” 취향에 따라 그럴 수도 있겠지만 나는, “대걸레 잡는데요?” 파직, 20년을 품어온 소년의 환상이 산산이 부서졌다. “그래도 난 책상은 안 던졌어요, 기운이 달려서.” 파직, 파직, 파지직.
지금은 남녀공학이 대부분이어서 그럴 일이 별로 없겠지만 혈기 넘치는 여자애들만 수백명이 한데 모여 있다 보면 거칠 것 없는 난폭함이 솟아오르기 마련이다, 그리고 더러움도. 내 고향 전주에선 누가 비빔밥의 고향 아니랄까봐 수십명이 싸온 도시락을 한데 비벼 숟가락을 한개 꽂은 다음 수업 시간에 돌려가며 퍼먹는 것이 유행이었는데, 그러고도 모두 법정 전염병에 감염되지 않
[김정원의 도를 아십니까] 수습 기간만 15년, 허벅지에 바늘만 꽂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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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파이>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앗, 이것은 스웨덴판 <다찌마와 리: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인가? 아니면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 미학의 영화적 번안인가? 크라우드 펀딩으로 제작돼 이번 칸영화제 감독주간에서 상영된 단편 <쿵 퓨리>는 실없이 즐거운 30분을 보장한다. 1980년대 무술영화와 <리쎌 웨폰> 류의 경찰 액션물을 주물러 뭉친 이 코믹 활극의 영웅은, 코브라에 물려 쿵후의 최고수가 된 마이애미 경찰 쿵 퓨리. 그는 시간여행을 떠나 ‘쿵 퓌어러’(Kung Fuherer)를 자처하는 히틀러와 대결한다. <디스트릭트9> <위플래쉬>도 단편으로 투자자에게 가능성을 어필해 장편으로 완성됐음을 돌이켜보면 신인감독들의 새로운 데뷔 경로인가 싶다. 사진은 본인의 이두박근과 사랑에 빠진 북구의 신 토르. 바이킹 시대로 날아간 쿵 퓨리와 한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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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를 보며 올해 들어 극장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화니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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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트를 읽는 것은 단순히 시선을 행간에서 행간으로 옮기는 일이 아니다. 텍스트에 함축된 정보와 의미를 파악하고 범주화한 후 체화시켜 필요할 때 상기하여 실천하는 것이다. 독해는 결국 한 세계와의 소통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책뜯기 공부법>은 그 소통방법을 알려주는 책이다.
저자 자오저우는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인 알리바바 그룹에서 조직관리, 마케팅, 코칭 등을 담당했으며 현재는 경험을 바탕으로 한 자기계발서 집필에 매진 중인 인물이다. 그는 ‘책뜯기’라고 불리는 공부법을 창안했다. 책뜯기란 책 속의 내용을 떼어내 맛보고 씹고 삼키듯이 책 속의 지식을 자신의 생각으로 확장시키고, 결과적으로는 자신의 진짜 실력을 성장시키는 공부법이다. 그는 <책뜯기 공부법>을 발간하여 전국적으로 토론회를 열기도 했다. 이후 알리바바와 바이두 등의 중국 기업들 내에는 ‘책뜯기 모임’이 만들어졌는데, 바이두의 부회장 정쯔우는 책뜯기 공부법을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가장
씨네21 추천 도서 <책뜯기 공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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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옆에는 왜 이상한 사람이 많을까.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인터넷 게시판에서, 각종 상담소에서 자주 제기되는 의문이다. 수많은 관계망들 속에서 살아가는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게 주변인과의 관계는 자의식을 형성하고 살아감에 있어 중요한 이슈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에나 있는 이 이상한 사람들과의 관계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 것일까.
범죄소설가로 25만부가 넘는 판매고를 기록한 소설가 산드라 뤼프케스와 13년 동안 프로파일러로 활동한 범죄 심리학자 모니카 비트블룸이 공동집필한 <내 옆에는 왜 이상한 사람이 많을까?>는 방대한 자료 조사와 전문적인 심리학 이론을 바탕으로 한 ‘심리 자기계발서’이다. 그들은 이상한 사람을 유형별로 분류한다. 남의 업적을 가로채는 사람, 뭐든지 아는 체하는 사람, 화를 잘 내는 사람, 치근덕거리는 사람, 거짓말을 일삼는 사람, 남의 성공을 시기하는 사람, 까다로운 척하는 사람, 불평불만이 많은 사람, 그때그때 인격이 달라지는 사람
씨네21 추천 도서 <내 옆에는 왜 이상한 사람이 많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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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생긴 개자식>은 영화 <트와일라잇>(2008~11) 시리즈의 팬픽으로, 긴장감 넘치는 오피스 로맨스와 수위를 넘나드는 화끈한 묘사로 인터넷에서 3년간 연재되며 200만 팬덤을 확보한 바 있다. 팬픽이라는 점과 화끈한 수위라는 점에서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를 떠올리게 하지만, 사뭇 다른 점이 있다. 바로 여성이 성적 욕망의 주체로 전면에 나선다는 것. 서민적이고 평범하다 못해 열등감에 시달리는 여타의 신데렐라 여주인공들과 달리, 여기선 MBA 학위 취득을 앞둔 재원인 클로에 밀스가 주인공이다.
<잘생긴 개자식> 또한 할리퀸 로맨스들이 태생적으로 지닌 계급 차와 신분 상승의 관습에서 자유롭지는 못하다. 로맨스의 상대인 베넷 라이언은 시카고 최대 광고마케팅회사인 라이언 미디어의 이사로, 패밀리 비즈니스의 든든한 뒷배경과 빼어난 업무 능력, 완벽한 외모를 지닌 남자다. 그러나 그를 대하는 여주인공의 태도는 기존과는 사뭇 다르다. 클로에
씨네21 추천 도서 <잘생긴 개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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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숨에 읽힌다. 오쿠다 히데오의 신작 <나오미와 가나코>는 독자에게 숨 돌릴 시간을 주지 않는다. 속도감 있는 전개. <나오미와 가나코>를 설명하기에 가장 적합한 단어다. 쉬지 않고 페이지를 넘길 수 있는 이유는 저자 오쿠다 히데오가 스타일의 변신을 꾀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오쿠다 히데오는 유머러스한 풍자물과 진지한 사회물로 작품활동을 해왔다. <나오미와 가나코>는 두 경향을 통합하면서 결정적으로 서스펜스를 작품에 적극 도입한 결과물이다. 서스펜스는 스피드를 만드는 강력한 엔진이다.
<나오미와 가나코>는 백화점 외판부 직원 오다 나오미와 남편의 폭력에 노출된 주부 시라이 가나코라는 두 여성의 이야기다. 둘은 가나코의 남편이 행사한 폭력에 대항하여 일명 ‘클리어런스 플랜’(clearance plan)을 계획하고 실천해나간다. 클리어런스 플랜은 아버지의 가정폭력으로 인한 트라우마가 있는 나오미가 친구 가나코를 도와 그의 남편을 ‘제거’(살인
씨네21 추천 도서 <나오미와 가나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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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아가는 이 현실은 진짜이며, 받아들일 만한 것일까. <매트릭스>(1999)와 <트루먼쇼>(1998)가 그러했듯이, ‘현실을 회의하는 순간’의 드라마탁한 설정은 SF 장르의 고전적인 특권이다. 세상이 미친 것인지, 아니면 내가 미친 것인지 혼란스러운 순간에 대다수의 사람은 스스로에게서 문제를 찾고 현실에 순응하려 할 것이다. 지금 현실이 잘못된 것을 알고 진정한 세계와 자신을 찾기 위해 ‘빨간 약’을 선택하고, ‘굿모닝, 굿애프터눈, 굿나이트’ 인사를 남긴 채 안온한 현실이라는 세트 바깥으로 나갈 수 있는 용기. 지금, 그런 미덕이 다시 필요해지는 시점이다.
나이트 M. 샤말란 감독이 연출하고 맷 딜런이 주연한 미드 <웨이워드 파인즈>의 원작 소설 <파인즈>는 그런 용기를 시사한다. <파인즈>는 미연방수사국 비밀요원 에단 버크가 기억을 잃은 채로 깨어나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실종된 두 연방요원을 찾아 웨이워드 파인즈로
씨네21 추천 도서 <파인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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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웹툰으로 연재되어 폭발적 인기를 끈 <송곳>이 3권의 단행본으로 출간됐다. <습지생태보고서> <대한민국 원주민> 등을 연재한 최규석 작가의 장편작 <송곳>은 2007년부터 2008년까지 이어진 까르푸-이랜드 실화를 바탕으로 한국 노동운동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작품이다. 철저한 취재와 구성으로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하종강 주임교수가 “내 강의를 듣는 것보다 <송곳>을 보는 것이 더 많은 공부가 된다”고 평한 작품이기도 하다.
의미 있는 실화만으로 좋은 작품이라 할 순 없을 것이다. 주호민 작가는 “이런 소재로 이런 재미를 뽑아낼 수 있으리라곤 상상도 못했다”고 <송곳>을 평했다. <송곳>의 재미는 일차적으로 캐릭터의 승리다. 까르푸-이랜드 사태 당시의 김경욱 노조위원장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주인공 이수인은 준비된 투사가 아니다. 최규석 작가는 육군사관학교 출신인 김경욱 노조위원장의 이력을 살려
씨네21 추천 도서 <송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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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자기 앞에 몇명이나 있는지를 헤아리던 겁먹은 눈들이 옆이 아닌 앞을 보기 시작했다.’ 인기 웹툰에서 최근 단행본으로 출판된 <송곳>의 한 구절이다. <씨네21>은 지난 1005호에 우리 자신과의 친밀한 교감을 도울 수 있는 6권의 책을 소개한 바 있다. 그때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면 이제는 고개를 들어 앞을 보자. 세계 밖으로 한발 내딛기 위한 6권의 책을 소개한다.
<송곳>과 <파인즈>는 전혀 다른 성격이지만 ‘현실에 눈뜰 것’을 권한다는 점에서 궤를 같이하는 작품이다. <송곳>은 현대사회의 적나라한 폐부를 드러낸다. 한국 까르푸-이랜드 사태라는 실화를 바탕으로 철저한 취재를 통해 노동운동의 현주소를 짚어냈다. 그 주인공으로는 준비된 투사가 아닌 단순히 원칙을 지켜나가는 보통 사람 이수인을 내세우면서, 독자가 함께 노동운동을 시작하는 듯한 몰입감을 제공한다. 반대로, M. 나이트 샤말란 감
고개를 들어 앞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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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시카 채스테인은 할리우드의 숱한 별 중에서도 드물게, 홀로 완벽한 우주를 품고 있는 여배우다. 누군가의 딸이거나(<인터스텔라>(2014)) 어머니일 때도(<트리 오브 라이프>(2011)) 그녀는 관계 속에 주어진 역할이 아니라 온전히 자립하는 여성을 연기해냈다. 확신컨대 그것은 시나리오나 연출의 힘이 아니라 제시카 채스테인을 둘러싼 공기, 두눈에 깃든 꺾이지 않는 영혼의 색 때문이다. 지난해 9월 토론토국제영화제에서 최초 공개된 <미스 줄리>의 홍보를 위해 토론토를 찾은 제시카 채스테인을 만났다. 어린 시절 학교도 빠지고 공원에서 셰익스피어를 읽었다던 제시카 채스테인이 ‘북유럽의 셰익스피어’로 불리는 아우구스트 스트린드베리의 고전 <미스 줄리>에 이끌린 건, 어쩌면 필연이다.
-<미스 줄리>에 출연하기 위해 본인이 먼저 연락을 했다고 들었다.
=리브 울만 감독은 내 우상 중 한명이다. 리브 울만 감독이 <미스 줄리&
[flash on]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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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로 낙타가 때아닌 곤욕을 치른 한주였다. 올해로 4회를 맞이한 아랍영화제(6월4~10일, 아트하우스 모모)에 괜한 불똥이 튈까 걱정이 앞섰다. 극장에 가서 기우라는 걸 알았다. 상영작 거의가 매진이었다. “계단에 앉아서라도 보고 싶다는 관객이 꽤 많았어요.” 영화제 관계자의 귀띔이다. 영화제를 향한 호응은 사무국의 예상보다 훨씬 더 뜨거웠다. 요르단, 카타르, 아랍에미리트, 이집트 등 아랍권 10개국에서 만든 영화 10편을 극장에서 만날 흔치 않은 기회. 해마다 더해진 기대가 올해 보란 듯이 폭발했다. 개막작으로 선정된 아랍에미리트 작품 <아부다비에서 베이루트까지>는 두바이에 사는 세 친구가 의기투합해 죽은 친구의 기억을 찾아 아부다비(아랍에미리트의 수도)에서 베이루트(레바논의 수도)로 향하는 과정을 그린 로드무비다. 머릿속으로 그리던 낯선 중동 대신 고민의 지점도, 친구와 가족이 겪는 갈등도, 심지어 같은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우리와 다를
[flash on] 새로운 인프라가 구축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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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8년 지구 온난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으로 몇몇 나라들이 바다에 잠기기 시작한다. 때 맞춰 멘탈모델이 조종하는 막강한 안개함대가 등장해 전세계 해양, 공중 교통망을 장악하고 교역로를 끊어버리고 세계 경제는 붕괴된다. 몇년 후 제독의 아들이자 해군 생도 치하야 군조(오키쓰 가즈유키)는 나포된 안개함대 중 하나인 이-401의 멘탈모델 이오나(후치가미 마이)를 만나고, 그 순간 이-401은 다시 기동을 시작한다.
만화 <푸른 강철의 아르페지오>를 원작으로 한 TV애니메이션 <푸른 강철의 아르페지오-아르스 노바>의 첫 번째 극장판이다. TV 애니메이션 전반을 축약하고 새 에피소드들을 곁들였다. 수많은 함대가 등장해 전투가 많은 원작 만화에 비해 애니메이션은 함대의 수를 대폭 줄여 인물들의 감정에 집중한다. 하지만 극장판은 12화 분량의 내용을 100분 정도로 축약한 한계로 미묘한 감정선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했다는 인상이 짙다. 더군다나 마니아적인 요소가 많은 작
만화경을 보는 듯한 환상적인 이미지 <극장판 푸른 강철의 아르페지오-아르스 노바-D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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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음식으로 기억될 때가 있다. 함께 먹었던 음식이 사람에 대한 기억을 불러오고, 사람에 대한 기억이 다시 음식을 부른다. 이에 공감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심야식당의 손님이 될 자격이 있다. 밤 12시. 대부분이 하루를 마감하는 시간, 문을 여는 식당이 있다. 메뉴는 단출하지만, 재료가 있다면 손님이 원하는 메뉴도 만들어준다. 손님들은 주인장을 마스터라고 부른다. 마스터(고바야시 가오루)는 한쪽 눈에 칼로 베인 듯한 상처가 있음에도 선한 인상을 풍긴다. 손님들은 짝을 지어 오거나 혼자 오는데, 혼자 왔다 짝을 이뤄 나가는 경우도 있다. 시간이 시간인지라 사연 있는 사람들이 주로 온다. 한물간 스트립쇼 걸, 게이, 조폭 등등. 그들은 곧 단골이 되고, ‘늘 먹던 거로요’라고 주문을 한다. 어느 날 식당에서 손님이 두고 간 것으로 추정되는 유골함이 발견된다. 마스터는 유골함을 들고 근처 경찰서의 경관 코구레(오다기리 조)를 찾아간다.
아베 야로가 2007년부터 연재한 동명 만화가
사람과 삶의 이면을 품어주는 공간 <심야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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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에는 각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개성 가득한 ‘트라이브’들이 있다. 그중에는 ‘무사시노 사루’처럼 평화를 외치는 곳도 있고, ‘부쿠로 우롱즈’처럼 파렴치한 범죄를 저지르는 곳도 있다. 어느 날 부쿠로 우롱즈의 메라(스즈키 료헤이)는 무사시노 사루의 카이(영 다이스)에게 어떤 원한을 품고 그를 제거할 계획을 세운다. 그리고 때마침 정체를 숨긴 한 소녀(세이노 나나)가 도쿄에 왔다가 부쿠로 우롱즈 일당에게 납치당한다. 과연 앞으로 도쿄 트라이브에는 어떤 사건들이 벌어질까.
<도쿄 트라이브>는 이노우에 산타의 원작 만화를 바탕으로 소노 시온이 각본과 연출을 맡은 작품이다. 이 영화의 가장 큰 형식적 특징은 거의 모든 대사를 랩으로 들려준다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장면에 힙합 음악이 흐르는 것은 물론이며, 각 장면 사이에는 DJ가 등장해 랩으로 된 내레이션을 태연히 읊조리기도 한다. 또한 실제 래퍼로 활동 중인 영 다이스(Young Dais) 등이 출연해 ‘랩 뮤지컬’이
장난기 가득한 상상력과 장르를 비트는 유희 정신 <도쿄 트라이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