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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대안언론 <뉴스타파>에서 영상 하나를 공개했다. 그것은 고발 다큐멘터리도, 데일리 뉴스도 아니었다. 바로 ‘힙합 뮤직비디오’였다. 실상은 이렇다. <뉴스타파>가 힙합 그룹 가리온의 멤버인 MC메타에게 한 가지를 제안했다. Mnet의 힙합 경연 프로그램 <쇼미더머니>로 인한 여러 논란에 대해 랩으로 ‘설파’해주기를 부탁한 것이다. MC메타는 이에 응했고, 여성 래퍼 최삼과 함께 <쇼미더힙합>이라는 음악/영상을 만들어 세상에 내놓았다.
<쇼미더힙합>에서 볼 수 있는 MC메타의 가사는 꽤 날카롭다. 자질구레한 수식어를 사용하지 않고도 핵심이 드러나게 가사를 썼다. 덕분에 메시지가 명료하게 머릿속에 들어오는 한편 랩의 리듬과 플로가 선사하는 재미 역시 잃지 않았다. “쇼미더머니, 쇼미더머니, 쇼미더머니가 부풀린 머리/ 흔들며 걷지, 가분수 머리, 어슬렁거리며 한껏 돈벌이/ 허슬링 허슬링 늘어난 벌이, 오해와 곡해가 거슬리더니
[마감인간의 music] 힙합은 없는데 힙합이 팔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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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부키초 러브호텔> さよなら歌舞伎町
감독 히로키 류이치 / 각본 아라이 하루히코, 나가이 후토시 / 촬영 나베시마 아쓰히로 / 음악 야스이 신 / 출연 소메타니 쇼타, 마에다 아쓰코, 이은우, 미나미 가호, 마쓰시게 유타카 / 수입•배급 스마일이엔티 / 제작연도 2014년 / 상영시간 135분 / 등급 청소년 관람불가 / 제공 케이블TV VOD
21세기 일본의 <천변풍경>이 여기에 있다. <가부키초 러브호텔>은 제목 그대로 가부키초의 한 러브호텔을 중심으로 하루 동안 일어난 일을 다룬 옴니버스영화다. 환락가로 유명한 가부키초에 밑바닥 인생들이 모여든다. 영화는 그들을 단순히 ‘밑바닥’으로 치부하는 대신 한명 한명의 사연에 귀기울인다. 타카하시(소메타니 쇼타)는 한때 오다이바의 특급호텔에서 일했지만 지금은 러브호텔의 점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러브호텔에는 일하는 사람부터 잠시 찾아오는 손님까지 다양한 인간 군상이 오간다. 한국인 유학생 혜나(이은우
[케이블 TV VOD] 최초 개봉작 <가부키초 러브호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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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이 만화] <협녀, 칼의 기억>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정훈이 만화] <협녀, 칼의 기억>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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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테랑>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그 많던 구로공단 여공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위로공단>의 출발점이었다는 이 의문의 답은 “아무 데도 가지 않았다”이다. 그녀들은 여전히 반도체 생산라인에서, 캄보디아의 하청 봉제공장에서, 마트와 콜센터, 항공기 안에서 불안정한 고용과 감정 착취, 신체의 자유를 침해당하는 성차별을 견디고 있다. 수평 트래킹이 훑어가는 끝없는 미싱 대열에서 우리가 떠올리는 것은 생산의 활력이나 보람이 아니라 시시포스의 노역이다. <위로공단>이 믿는 정의는 김진숙씨의 말로 요약된다. 복잡할 거 없다. 하루 22시간 일해도 월세를 치를 수 없다면, 노동자 본인이 하루 수십벌 만드는 옷을 한달치 가처분소득으로도 살 수 없다면, 그 세계는 잘못된 세계다.
08/04
빠르다. 달린다. 몰아친다. <베테랑>의 감상에 자주 보이는 단어들이다. 정작 류승완 감독은 <베테랑>이 유머와 액션으로 점철된 스피디한 영화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마당놀이 배태랑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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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자정을 넘긴 시간, 변두리 멀티플렉스의 아주 작은 관에서 <러브 앤 머시>를 보았다. 두 시간 동안 나는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하지만 나의 망각과는 상관없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한명의 뮤지션의 내면을 진지하게 들여다보는 잔잔한 기쁨과 슬픔의 시간을 가졌다.
대서양을 처음 비행한 사람이 린드버그인 것은 초등학생도 알지만 두 번째로 비행한 사람에 대해선 인간의 역사는 냉담하다. 시장과 역사는 언제나 첫 번째 사람에게 필요 이상의 권력을 부과한다. 우리 모두가 아는 <삼국지>에서 제갈량에게 희롱당하고 분을 못 이겨 죽는 오나라의 영웅 주유의 탄식이 아니더라도(물론 2인자도 못되는 거개의 사람들에게는 그런 불평도 사치스러운 것이겠지만) 2인자의 지위만큼 안타까운 경우도 없을 것이다. 비치 보이스는, 아무리 이 밴드의 광팬이라고 하더라도 부인할 수 없는, 대중음악사상 가장 많은 군웅들이 할거한 1960년대 서구 록음악계의 어쩔 수 없는 2인자다. 바로 비틀스
[강헌의 영화비평] 2인자의 위대한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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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21명(김대명, 도지한, 배성우, 박신혜, 이범수, 박서준, 김상호, 천우희, 우에노 주리, 이재준, 김민재, 이현우, 조달환, 이진욱, 홍다미, 서강준, 김희원, 이동욱, 고아성, 김주혁, 유연석)의 배우들이 한 작품 안에서 한 인물을 연기하는 게 상상이 되는가. <뷰티 인사이드>를 보면 그런 일이 실제로 벌어진다. 우진은 매일 얼굴이 바뀐다. 그의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은 엄마(문숙)와 친구 상백(이동휘)뿐이다. 이런 그가 우연히 이수(한효주)를 보고 사랑에 빠지고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기로 한다. 이 보통 아닌 설정을 현실적으로 풀어낸 사람은 오랫동안 광고와 뮤직비디오를 연출해온 백감독이다(본명은 백종열.-편집자). 그는 “내가 제작자나 투자자라면 영화 연출 경험이 일천한 내게 투자할 수 있었을까. 그들의 용기에 감사하다. 모든 사람들의 도움 덕에 지금까지 잘 이끌어온 것 같다”고 첫 영화 연출 소감을 말했다.
-제작사 용필름 임승용 대표로부터 처음 연출 제안
[people] 21명의 우진이 모두 중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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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뮤지컬의 이종교합! 충무로뮤지컬영화제 프리페스티벌(CHIMFF 2015)이 8월21일부터 24일까지 4일 동안 서울 충무아트홀을 비롯해 메가박스 동대문점 DDP(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다. 공연과 상영이 결합된 라이브 더빙쇼로 진행되는 <이국정원>을 개막작으로, 오픈 즉시 매진 사례를 낳은 90주년 기념 명작 <오페라의 유령> 라이브 공연, 리딩 공연 ‘<만추>를 읽다’ 등이 특별 상영된다. 이 밖에도 총 8개 섹션, 12편의 장편영화 상영과 라이브 더빙쇼 공연 등이 마련되어 있다. 올해는 창작 뮤지컬 축제인 4회 서울뮤지컬페스티벌(8월17~24일)의 일환으로 소개되지만 내년부터 공식 개최될 예정. 지난 2011년 4회로 갑자기 막을 내린 충무로국제영화제에 이은 충무로의 또 다른 시도라는 점에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충무로국제영화제에 이어 이번 영화제 예술감독으로 참여하고 있는 김홍준 감독을 만났다.
-올해는 본격
[people] 전세계 어디에도 뮤지컬영화제는 없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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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라는 문장과 함께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유작 <인간실격>의 영향력 때문일까. 많은 이들에게 다자이 오사무는 패배의 아이콘이다. 그가 5번의 자살기도 끝에 죽음에 ‘성공’했다는 일화가 그가 쓴 작품들만큼이나 유명하다는 것 역시 그런 평가에 일조한 게 사실일 터. 하지만 근래 들어 불안과 절망으로 대표되는 그의 작품은 시대를 향한 솔직한 목소리이자 다이쇼오-쇼와의 격변기와 전쟁을 버텨낸 작가의 “강한 작품”이라고 평가받고 있는 추세다.
‘창비세계문학’ 44번째 시리즈 <사양>은 다자이 오사무 작품 가운데 페미니즘적 시선이 두드러지는 10개의 소설을 선별해 구성했다. 그의 삶은 가부장적인 집안에서 태어나 어머니의 보살핌을 받지 못했던 유년 시절의 영향으로 모성에 대한 애착이 묻어 있다. 이는 여성편력은 물론, 그의 소설에서 엿보이는 여성의 시선을 향하는 말이기도 하다. 1937년 <등룡>부터 1948년 <향응 부인&g
씨네21 추천 도서 <사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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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인대학교 낯가림학과 졸업하기’라니. 제목만 본다면 언뜻 그럴싸한 이름으로 둔갑한 처세 관련 자기계발서처럼 보인다. 하지만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간다. 일본의 유명 코미디언 와카바야시 마사야스가 쓴 에세이 <사회인대학교 낯가림학과 졸업하기>(이하 <사회인대학교>)는 성공한 연예인으로서 살아가는 방법을 조목조목 일러주는 책이 아니다. 차라리 출세 수년차에도 여전히 방황하는 코미디언의 기행(奇行) 고백록에 가깝다.
와카바야시 마사야스는 가스가 도시아키와 함께 콤비 ‘오도리’로 2008년 만담 선수권 대회 ‘M-1 그랑프리’에 참가해 준우승을 거머쥐며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하루 스케줄이 10개에 육박해 2009년, 2010년 연속으로 방송 출연 횟수 1위를 기록할 만한 성공이었다. <사회인대학교>는 2010년 8월부터 와카바야시 마사야스가 잡지 <다빈치>에 기고한 글을 모았다. 욕실 없는 쪽방에 살던 무명 시절을 회고하며 첫장을 여는 저
씨네21 추천 도서 <사회인대학교 낯가림학과 졸업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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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 스릴러 ‘해리 홀레’ 연작을 통해 거장의 반열에 오른 요 네스뵈는 <헤드헌터>(2008) 이후 6년 만에 네 번째 독립 작품 <아들>을 발표함으로써 자신의 세계를 더욱 공고히 했다는 갈채를 받았다. 이는 작가가 성공한 시리즈의 명성에서도 자유로워졌다는 것과 더불어, 소설 속에서 끈질기게 조명해온 고향 오슬로를 향한 시선이 완전히 무르익었다는 칭찬이기도 했다.
612페이지. 요 네스뵈의 지난 책과 마찬가지로 <아들> 역시 벽돌 같은 두툼한 장정을 자랑한다. 이렇다 할 배경 설명 없이 시작하는 책은 바로 주인공 소니를 비춘다. 심지어 횡설수설 이야기를 늘어놓는 다른 사내가 페이지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소니에 대한 단서를 하나둘 던지면서 그를 향한 시선을 금방 붙든다. <아들>은 수많은 캐릭터가 등장하며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지만, 두꺼운 페이지가 빠르게 넘어가는 와중에도 결국 소니에 대한 장력을 놓치는 법이 없다
씨네21 추천 도서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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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기와 두께 모두 다른 소설 둘과 에세이 하나는 현재 여기를 살아내려는 의지를 서로 다른 방식으로 드러낸다. 경제 저널리스트와 뮤지션에서 돌연 소설가가 된 요 네스뵈의 <아들>, 20대 무명 코미디언에서 순식간에 대스타가 된 와카바야시 마사야스의 <사회인대학교 낯가림학과 졸업하기>, 가장 혼란스러운 일본을 가장 격렬한 심정으로 바라본 다자이 오사무의 <사양>. 나이도, 살아온 시공간도 다른 세 남자가 써내려간 생에 대한 결심. 8월 <씨네21>의 북엔즈에서 만나보자.
사실, 노르웨이의 스릴러 <아들>은 살아가려는 힘과는 거리가 멀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평생을 저주했던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감옥을 나온 소니가 거대하고 악랄한 범죄 조직에 일당백으로 맞서는 모습은, 제 발로 죽음을 찾아가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저 불꽃을 향해 몸을 던져야 비로소 자신으로 사는 불나방처럼, 소니는 거칠 것 없이 복수의 대상에게 성큼성큼 다
지금 여기, 자기 뜻대로 살아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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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치구출 전문가 디컨(장 클로드 반담)은 피에 젖은 채 필리핀의 한 호텔 욕조 안에서 눈을 뜬다. 몸에 남겨진 수술 자국을 보며 자신이 신장을 뺏겼다는 것을 알게 된 디컨. 아픈 조카에게 신장이식을 하기 위해 필리핀에 온 디컨은 동생 조지(존 랄스턴)와 친구 컹(아키 알레옹)과 함께 빼앗긴 신장을 찾기 위해 장기밀매조직을 찾아나선다.
장 클로드 반담이 액션배우로서 전성기를 되찾고자 했으나, 꿈에 그쳤다. 영화가 만들어진 연도를 다시 확인해봐야 할 정도로 올드한 건 둘째치고 한국의 아침드라마 같은 작위적인 신파까지 추가되어 영문 모를 스릴러가 됐다. 자신의 신장을 찾아 조카에게 주려 한 것에 대한 출생의 비밀이 밝혀지고, 동생과는 애증관계였다는 등의 가족사는 신파적이고, 빠른 호흡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은 짜놓은 것처럼 맞아떨어진다. 요즘 영화에서는 보기 힘든 과도한 우연성에 의존하는 것이다.
이야기는 납치구출 전문가라 살인에 능하다는 모호한 직업을 지닌 형과 걸핏하면 하느
장 끌로드 반담의 액션영화 <파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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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여름, 독일 나치 치하의 폴란드 바르샤바. 어머니와 남동생과 살고 있는 스테판(요제프 파블로프스키)은 나치의 모욕을 견디며 공장에서 일하고 있다. 위험한 일에 나서지 말라는 어머니의 만류에 갈등하다 결국 바르샤바 봉기 작전에 자원한 스테판. 정예군인이 아닌 이들은 훈련을 통해 나치에 반격할 진영을 꾸려나간다. 스테판은 알라(소피아 비츨라츠)와 사랑에 빠지고, 청춘 남녀들은 낭만적인 분위기 속에서 자유를 갈망하며 들뜬다. 하지만 8월1일 폴란드 저항군의 반격이 시작되자 나치는 무자비하게 저항군을 진압하고, 스테판을 비롯한 폴란드 젊은이들은 처참한 실제 전시 상황 속으로 내몰린다.
1944년 일어난 바르샤바 봉기를 소재로 한 전쟁영화다. 정식 훈련을 받지 않은 젊은 남녀로 구성된 저항군들은 자유로운 복장으로 자유를 부르짖지만 실제 상황에 맞닥뜨리자 덧없는 꽃처럼 지고 만다. 작품의 낭만적인 톤 앤드 매너와 몽환적인 무드, 로맨티시즘은 전쟁의 비극성을 외려 낯설고 이질적인
1944년 일어난 바르샤바 봉기를 소재로 한 전쟁영화 <바르샤바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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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의 미술품 위조가 레이(존 트래볼타)는 암을 선고받은 아들 윌(타이 셰리던)을 만나기 위해 범죄조직의 힘을 빌려 일찍 감옥에서 나온다. 그리고 그 대가로 모네의 <파라솔을 쓴 여인>을 훔쳐 위조품과 바꿔놓아야 하는 작전을 수행해야 한다. 아버지 조셉(크리토퍼 플러머)과 윌은 오랜만에 집에 돌아온 레이를 낯설어하지만 곧 세 사람은 여느 가족처럼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가족 드라마와 케이퍼 무비를 효율적으로 접목시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가족의 정을 강조하는 영화의 잔잔한 무드와 케이퍼 무비 특유의 재빠른 리듬은 서로 섞이기 어렵기 때문이다. 둘을 접목한 듯한 이야기의 <더 포저>는 가족 드라마쪽에 방향을 둔 채 느긋하게 흘러간다. 영화의 색깔을 결정지을 법한 모네의 작품을 위조하는 과정은, 모네가 부인과 아들을 화폭에 담았다는 의미를 강조해, 레이의 부성애를 강조하는 기능으로 배치됐다. 하지만 영화의 속도감 있는 추격 신이 (그림을 훔치는 과정도
가족 드라마와 케이퍼 무비를 접목시킨 이야기 <더 포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