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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옥 감독의 <질투는 나의 힘>(2002)에는 명대사가 넘친다. 박해일의 “그 남자랑 자지 마요, 나도 잘해요”가 가장 유명할 것이다. 소설가를 꿈꿨지만 출판인으로 살아가는 문성근은 이렇게 말했다. “예술가란 말야, 평생을 팔아먹을 수 있는 상처가 있어야 해. 근데 나는 너무 행복하거든. 그래서 포기했지.”
여성영화제에서 이 영화를 보니 상처의 영어 자막이 “wound”였다. 이 단어는 자상(刺傷), 베인 곳이 깊어서 뭔가 고여 있다는 느낌이다. 그 공간이 치료되지 않은 채 평생을 사는 것이다. 문학이 아니더라도, 모든 글쓰기는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생각을 쓰는 것이기 때문에 ‘말이 되는 생각’이 계속 샘솟아야 한다. 인간에게 그런 생각은 원한, 분노, 억울함, 한(恨) 등 ‘범(汎)상처 계열’밖에 없다. 그래서 어떤 창작자는 연애와 실연을 반복한다. 그만한 고통이 없으니까.
대학에서와는 반대로 인문학, 글쓰기 교실 열풍이다. 비싼 가격, 강사의 인지도, 장소의
[정희진의 디스토피아로부터] 만만한 듯 어려운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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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리에 활동하는 국정원 요원(MBC <7급 공무원>)이었고, 일제강점기 종로경찰서 형사이자 각시탈을 쓴 독립투사(KBS2 <각시탈>)였던 주원이 이번엔 종합병원 외과 레지던트라는 신분을 숨기고 돈을 벌기 위해 조폭들을 출장 수술하는 ‘용한 돌팔이’가 되었다. 환자 보호자에게 노골적으로 생색을 내고 사례비를 뜯어내는 속물인 동시에 병원에 방치된 무연고 환자의 생명을 유지시킬 현실적인 방안을 고민하는 의사. SBS 드라마 <용팔이>의 공식 홈페이지는 주원이 맡은 김태현에 대해 ‘자신도 모르는 휴머니스트’라고 소개한다. 물론 태현의 주위에는 그가 휴머니스트인 것을 알아보는 조력자들이 있다. 속물로 오해받고 사는 게 억울하지 않냐고 묻자 그는 너스레를 떨며 빙긋 웃는다. 속물인 쪽이 돈을 벌기 수월하니까 목적에 맞게 위악의 껍데기를 선택한 그는 필요 이상의 자기연민을 흘리지 않는다. 위악은 태도의 전략이고 그 전략을 통해 편의를 취했음을 잊어버리지 않는 영
[유선주의 TVIEW] 이런 휴머니스트 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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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2016)
<라우더 댄 밤즈>(2015)
<아메리칸 울트라>(2015)
<어둠 속에서>(2013)
<더블: 달콤한 악몽>(2013)
<나우 유 씨 미: 마술사기단>(2013)
<로마 위드 러브>(2012)
<털기 아니면 죽기: 제한시간 30분>(2011)
<소셜 네트워크>(2010)
<좀비랜드>(2009)
<어드벤처랜드>(2009)
<오징어와 고래>(2005)
<로저 닷저>(2002)
“넌 4번 타자감은 아니구나.” 제시 아이젠버그의 첫 주연작 <로저 닷저>에서, 사기꾼 로저 삼촌(캠벨 스콧)은 그에게 이렇게 말한다. <로저 닷저>는 뉴욕에 대학 면접을 보러온 고등학생 닉이 현란한 말발로 사람들을 등쳐먹고 살아가는 삼촌에게 휘둘려 뉴욕의 이곳저곳을 헤매며 총각 딱지를 떼기 위해
[제시 아이젠버그] 21세기 영화가 절실하게 원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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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2014 <미라클 벨리에>
“도망치는 게 아니에요. 날개를 편 것뿐. 부디 알아주세요. 비상하는 거예요. 술기운도, 담배 연기도 없이 날아가요. 날아올라요.” 소녀의 씩씩한 고백은 기어코 보는 이를 울리고야 만다. 영화 <미라클 벨리에>에서 파리의 합창학교 입학 오디션 중 폴라가 부르는 노랫말의 일부다. 가족의 품을 막 벗어나려는 폴라가 자신과 가족에게 전하는 응원이기도 하다.
루안 에머라가 연기한 폴라는 청각장애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코다(A Child of Deaf Adult, CODA, 청각장애인 부모를 둔 비장애인 자녀)다. 학교의 음악교사는 폴라가 가창에 천부적인 재능을 지니고 있음을 알고 폴라를 파리의 합창학교로 유학시키려 한다. 하지만 폴라는 가족 중 유일하게 음성언어를 쓸 줄 알기 때문에 가족과 세상을 자신이 연결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갖고 있다. 폴라는 꿈과 가족 사이에서 고민한다. 당연히 주인공 폴라를 연기할 배우는 뛰어난 가창력의 소
[who are you] 오직 노래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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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독 한인 영화감독 조성형(48)의 ‘고향 3부작’ 다큐멘터리가 완성됐다. 1부 <풀 메탈 빌리지>는 헤비메탈축제에 참가한 헤비메탈 팬들이 순박한 시골 사람들과 만나 벌이는 기이한 해프닝을 기록했고, 2부 <그리움의 종착역>은 독일인과 결혼한 재독 간호사가 노년에 남편과 함께 귀국해 남해 독일마을에 힘겹게 정착해 살아가는 모습을 그렸다. 그리고 마지막 3부 <사랑, 약혼, 이별>(Verliebt, Verlobt und Verloren)은 북한 유학생과 동독 여성이 만나 사랑을 나누고 아이까지 낳았지만, 헤어져 다시는 못 만나게 되면서 쌓인 한과 그 후일담을 담고 있다. 지난 6월 말 독일에서 개봉해 현재까지 상영 중인 이 다큐멘터리에는 2000년대 중반 이미 언론보도를 통해 잘 알려진 레나테 홍(47년간 북한 출신의 남편을 만나지 못한 그녀의 사연은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렸다)뿐만 아니라, 동독 유학생을 남자친구나 남편으로 두었던 다른 지역 동독 할머
[베를린] 냉전이 갈라놓은 북한 유학생과 동독 여성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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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1세기 넘게 서부극에서 보아왔던 세계는 존재하지 않았거나 존재했다고 해도 아주 잠시만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우리가 이런 장르를 통해 접했던 전설적인 인물들, 그러니까 와이어트 어프, 애니 오클리, 버펄로 빌, 빌리 더 키드와 같은 인물들 역시 서부극 팬들의 상상 속에 거주하는 캐릭터들과는 전혀 다를 것이다.
그렇다면 서부극의 원형을 복원하려는 시도는 어디를 목적지로 삼아야 하는가? 역사를 있는 그대로 복원하려는 시도는 허망하다. 그 순간부터 장르 자체를 포기해야 한다. 존 포드의 영화들을 기준점으로 삼으면 안전하겠지만 심지어 그의 영화도 시대에 따라 다르다. 수정주의 서부극, 스파게티 웨스턴 그리고 그 밖의 온갖 변종들은 오래전에 장르가 먹어버렸다. <백 투 더 퓨처3>의 마티 맥플라이가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갈 때 그가 모델로 삼았던 것이 존 웨인이 아니라 클린트 이스트우드였다는 것을 잊지 말자. 어차피 다 거짓말인데 더 오래된 거짓말이라고 나을 게
[듀나의 영화비평] 괴물을 일으켜 세우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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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른한 한여름 오후의 이발소 안. 콧수염 사내가 의자에 앉아 면도를 기다리고 대머리의 뚱뚱한 이발사가 면도칼을 가죽띠에 갈면서 주저리주저리 이야기를 한다. “옛날 만화들 얼마나 좋았어요? 박기정의 <오빠생각> <기러기> 아! 요샌 그런 만화가 없어요.” 이명세 감독의 영화 <개그맨>의 한 장면이다. 극장에서 영화를 보던 나는 어두컴컴한 만홧가게의 한구석에서 <오빠생각>을 읽으면서 눈물, 콧물을 줄줄 흘리던 초등학교 4학년 때를 생각하고 웃었다.
겨울방학이 되어 용두동으로 이사를 간 친할머니 집으로 놀러갔다. 밤늦게 사촌 형이 들어왔는데 그는 시멘트 포대로 둘둘 만 뭔가를 옆구리에 끼고는 다락방으로 올라갔다. 나는 사촌 형이 시멘트 포대로 숨겨가지고 온 그것이 뭔가 대단한 것임을 눈치챘다. 스무살이 넘었는데도 취직도 못하고 낮 동안에는 빈둥빈둥 당구장과 극장을 배회하다가 밤늦게 돌아오는 백수건달 사촌 형은 어린 나를 소 닭 보듯 하거나 귀
[오승욱의 만화가 열전] 그런 눈을 가진 만화 주인공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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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답은 가을방학으로 정해져 있다
2인조 밴드 ‘가을방학’의 3집 발매 기념 공연이 9월11일(금)과 12일(토) 이틀 동안 서울 올림픽공원 88호수 수변무대에서 오후 7시부터 열릴 예정이다. 2년 만에 발매되는 이들의 세 번째 정규 앨범을 처음 라이브로 들을 수 있는 기회다. 잊혀진 계절에 우체국 앞에서 편지를 부치던 시절은 지났다. 지금은 방학이 대세다.
반짝반짝 빛나는
김한나 작가의 여덟 번째 개인전 <기막히게 유창하게>가 9월15일까지 롯데갤러리 영등포점에서 열린다. 작가의 모습을 투영한 소녀 ‘한나’와 그녀의 친구 ‘토끼’의 일상적인 모습이 작업의 주요 모티브. 이번 전시에서는 회화 작품과 더불어 세라믹, 설치작품 등 19점의 신작이 소개될 예정이다. 서정적이고 달콤한 색감과 키덜트적인 느낌으로 구현된 소녀와 토끼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의 반짝거리는 찰나를 담고 있다.
당신의 지난 시간을 삽니다
<씨네21> 이화정 기자의 신간 <시간
[culture highway] 가을의 답은 가을방학으로 정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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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기프트> The Gift
감독 조엘 에저턴 / 출연 제이슨 베이트먼, 레베카 홀, 조엘 에저턴
사이먼(제이슨 베이트먼)은 새 직장을 얻은 뒤 아내 로빈(레베카 홀)과 LA 교외로 이사를 하고, 그곳에서 동창 골도(조엘 에저턴)를 만난다. 연기 활동을 하면서 <더 스퀘어>(2008), <펠로니>(2013) 등의 각본을 쓰기도 한 조엘 에저턴이 연출한 첫 영화로, 상업성과 작품성을 동시에 인정받으며 성공적인 감독 데뷔작이라는 평을 들었다.
[해외 박스오피스] 영국 201.8.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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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린 트레보로가 <스타워즈: 에피소드9>의 감독으로 지명됐다
=올해 12월18일 북미 개봉할 J. J. 에이브럼스의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 리안 존슨의 <스타워즈 에피소드8>에 이은 새 <스타워즈>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이다. 2019년 개봉예정.
-오오모리 다쓰시가 연출하는 <세토우즈미>에서 이케마쓰 소스케, 스다 마사키(사진)가 나란히 주연을 맡는다
=오사카의 두 고등학생이 주인공인 2인극 방식의 코미디로 가을부터 오사카 올 로케이션으로 촬영을 시작한다. 가즈야 고노모토의 동명 만화가 원작이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신작 <설리>에 톰 행크스, 로라 린니, 아론 에크하트가 캐스팅됐다
=비행 중 위급한 상황에서 기적적으로 비상 착륙한 조종사 체슬리 설리 슐렌버거의 실화를 영화화한다. 톰 행크스가 슐렌버거를, 로라 린니가 슐렌버거의 아내를, 아론 에크하트가 보조 조종사를 연기한다.
[댓글뉴스] 영화 <세토우즈미>에 이케마쓰 소스케, 스다 마사키 주연 캐스팅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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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감독 마크 웹이 크리스 에반스 주연의 <기프티드>와 마일스 텔러 주연의 <디 온리 리빙 보이 인 뉴욕>을 차례로 연출한다. 더불어 그가 제작에 참여한 TV드라마 <리미티드>의 파일럿도 오는 9월22일 선보일 예정이다. 한편 배우 내털리 도머는 에마 톰슨의 연예계 성차별에 대한 발언에 남자 역시 차별의 대상이고, 남녀 불문하고 외모를 잘 가꿔야 한다는 취지의 경솔한 반박을 더해 빈축을 샀다.
[UP & DOWN] 마크 웹, 크리스 에반스 주연 <기프티드> 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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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회 토론토국제영화제(이하 TIFF)의 라인업이 발표됐다. 칸, 베니스, 베를린국제영화제에 버금가는 규모를 자랑하는 TIFF는 ‘북미의 칸’이란 별칭답게 해가 갈수록 입지를 넓혀가고 있다. 비경쟁영화제인 TIFF가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던 건 전세계에서 다양하고 흥미로운 영화를 모아 소개하는 관객 중심의 영화제이기 때문이다. 올해는 40주년을 맞아 한층 내실을 다졌다. 총 13개 섹션 320여편의 상영작 중 126편에 달하는 월드 프리미어가 이를 증명한다.
올해 개막작은 장 마크 발레의 <데몰리션>이다. 제이크 질렌홀, 나오미 와츠 주연으로 내년 4월 북미 개봉예정이다. 폐막작은 저격수와 사랑에 빠진 여성의 이야기를 다룬 코미디 <미스터 라이트>다. 20편 중 14편이 월드 프리미어인 갈라 섹션에는 리들리 스콧의 <마션>, 스티븐 프리어스의 <더 프로그램> 등이 선보인다. 스페셜 프레젠테이션 섹션에서는 톰 하디 주연의 <레전드&
[해외뉴스] 관객 중심의 폭넓은 스펙트럼, ‘북미의 칸’답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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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최현용 한국영화산업전략센터 소장
거의 매년 불거져 나오는 문제 중에서 꽤나 큰 문제임에도 그다지 주목받지 못하는 사안이 있다. 한국에서 영화의 개봉일은? 목요일인가? 수요일인가? 영화인들은 대개 목요일에 개봉하는 것을 일반적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대작 영화 몇편 정도가 수요일에 개봉하는 것으로만 알고 있을 듯하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수요일에 개봉하는 영화들이 거의 절반에 이르고 있다는 사실은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다. 이에 더해 개봉 전일 대규모 유료시사라는 마케팅 행위 역시 수요일 개봉에 해당한다고 보여진다.
물론 영화 개봉일이 법으로 정해져 있지는 않다. 더욱이 시대에 따라 점차 토요일, 금요일, 목요일로 당겨져왔다. 그러니 수요일로 개봉일이 당겨지는 것이 일반적인 추세일 수도 있다. 굳이 문제 삼지 않아도 될 듯하다. 그러나 수요일 개봉의 구조가 극장체인과 대형배급사간의 담합에 가깝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극장은 기존 상영작 중 점유율이 떨어지는 작품을 하루라도 빨리
[한국영화 블랙박스] 수요일 개봉은 정당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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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회 대단한단편영화제가 9월10일부터 16일까지 홍대 KT&G 상상마당 시네마에서 열린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단편영화계의 새로운 얼굴들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자리다. 올해는 경쟁섹션에 총 544편이 출품됐고 이 가운데 <Colors in the Subway>를 포함한 25편의 영화가 본선에 진출했다. 실업, 비정규직, 자살, 학교폭력, 여성에 관한 사회적 편견 등 다양한 주제의 작품들이 고루 선정됐다. 영화제 기간 동안 본선 심사를 거쳐 폐막식 당일 수상자를 발표할 예정이다. 비경쟁 섹션도 주목할 만하다. 올해의 감독 특별전의 주인공은 <소셜 포비아>(2014)의 홍석재 감독이다. KT&G 상상마당 시네마의 김신형 프로그래머는 “대단한단편영화제는 항상 지금 이 시점에 우리가 주목해야 할 흥미로운 장편 데뷔작을 만든 감독 혹은 장편이 기대되는 감독과의 만남을 기획해왔다. 그런 맥락에서 올해 흥미로운 장편을 선보인 홍석재 감독을 선정하는 게
[인디나우] 제9회 대단한단편영화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