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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의 영화감독 자파르 파나히가 택시 운전사가 돼 돌아왔다. 올해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된 신작 <택시>에서 그는 직접 택시를 몰며 손님들을 맞는다. 이란 정부가 그의 영화 제작 활동을 철저히 금지하고 있는 상태이지만 그는 기어코 영화를 만들어냈다. <택시>는 택시에 오른 승객들과 택시에서 바라본 테헤란의 사람들을 통해 현재 이란에서 영화를 만든다는 것의 의미와 한계, 이란 사회의 모순에 대해 말한다. 결코 쉽지 않았을 <택시>의 제작 과정을 짐작해보며 영화에 관한 짧은 글을 전한다. 독자들이 정치적 탄압 속에서도 때론 유쾌하게 때론 묵직하게 영화를 향해 달려나가는 자파르 파나히의 택시에 함께 올라 그가 전하려는 진솔한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길 바란다.
이란의 영화감독 자파르 파나히, 그는 여전히 건재했다. 올해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택시>(2015)로 황금곰상을 수상하며 그는 전세계 영화인들에게 이 사실을 확인시켜줬다. 시치미
자파르 파나히는 건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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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영 메시아> The Young Messiah
감독 사이러스 노라스테 / 출연 애덤 그리브스 닐, 숀 빈, 데이비드 브래들리
출생의 비밀을 알지 못하는 7살의 예수(애덤 그리브스 닐)는 가족과 함께 로마군을 피해 나사렛으로 돌아간다. 그는 고된 여정 중에 가족의 사랑과 하나님의 은총을 받아 자신의 숙명을 깨닫게 된다. <뱀파이어와의 인터뷰>(1994)의 원작 소설과 각본을 쓴 앤 라이스의 소설 <크라이스트 더 로드: 아웃 오브 이집트>를 바탕에 둔 영화다. <더 스토닝>(2008)의 감독 사이러스 노라스테가 연출과 각본을 겸했다.
[WHAT'S UP] 앤 라이스의 소설 영화화 <더 영 메시아> The Young Messi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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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곡이 오늘도 쏟아진다. 각종 국내 음악차트 상위권을 점령한, 아이돌 그룹과 젊은 래퍼들의 호령 속에 의식적으로 ‘챙겨서’ 음악을 듣는 습관은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지금껏 들어왔고 그래서 친숙하며 어느 정도 검증된 음악에 자연스럽게 손이 가고는 한다. 음악을 듣는 상황들이- 원고를 쓰거나, 컴퓨터 앞에 앉아 있거나, 운동하거나- 점점 한정되기 때문인지, 그저 마음 움직이는 것이 게을러져서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여전히 좋은 밴드를, 음악을, 연주를 마주하면 벅찬 기분을 느낀다. 친구들과 종종 “이제 새로운 음악이 나오지 않아도 될 것 같지 않아?”라고 이야기하면서도, 자신들이 믿는 바를 그대로 연주하고 가사로 멜로디로 만들어 노래하는 ‘젊음’에 자극받고 흥분한다. 오늘 소개할 라이프 앤 타임(Life And Time)의 정규 1집 음반, 《랜드》(LAND)를 들었을 때 딱 그런 기분이었다. 첫곡 <급류>(Rapids)부터 바로 이어지는 기타 연주는 혼자 있어도 몸을
[마감인간의 music] 새 음악을 듣는 두근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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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이 만화] <더 셰프> 국정 레시피
[정훈이 만화] <더 셰프> 국정 레시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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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에 대해선 소나무에게 배우고, 대나무에 대해선 대나무에게 배우라.” 마쓰오 바쇼의 시학이다. “대상과 그대 자신이 분리되어 있다면, 그때 그대의 시는 진정한 시가 아니라 단지 주관적인 위조품에 지나지 않는다.” 류시화 시인이 번역한 <바쇼 하이쿠 선집: 보이는 것 모두 꽃 생각하는 것 모두 달>은 마쓰오 바쇼의 하이쿠 1100편 중 350편을 창작한 연대순으로 골라 실으며 해설을 덧붙였다. 1행으로 된 원문이 함께 실려 있는데, 한국어로 번역된 시는 운을 구분하기 위해 3행으로 쓰였다. 책 말미에는 바쇼가 40대에 떠났던 다섯 차례의 여행 지도가 실렸고, 류시화가 쓴 장문(60쪽이 넘는다)의 해설이 추가되었다. 5.7.5자로 된 정형시인 하이쿠. 총 17자밖에 되지 않지만 그 안에 바쇼의 일상, 여행, 삶에 대한 생각과 그가 당시 겪었던 계절의 분위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하이쿠만으로도 충분히 그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지만, <바쇼 하이쿠 선집…>은 해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17자에 담긴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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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은 억압적인 세계의 뒤틀린 구조와 그러한 구조에 예속된 개인을 초현실주의적인 우화로 풍자해왔다. 그런 란티모스가 사랑을 다룬다고 했을 때 기대와 의심이 동시에 들었다. 영화의 알고리즘에 따라 1g의 감정도 오차 없이 느끼도록 설계된 란티모스의 인물들은 사랑의 파토스와 같은 날것의 감정과 가장 거리가 먼 유형처럼 보이기 때문이다(<송곳니>에서 중요한 장면은 모두 노란 형광펜으로 하이라이트를 그어놓은 것처럼 연출되어 오히려 감흥이 없었다는 평(스콧 파운더스)은 이와 일정 부분 맥이 닿아 있는 지적일 것이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란티모스는 멜로드라마를 비틀어 지독한 사랑의 우화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한다.
<더 랍스터>에서 연인-부부 관계는 철저하게 시스템을 통해 통제된다. 세개로 구획된 공간(호텔, 도시, 숲)은 곧 시스템의 질서를 의미한다. 호텔에서 짝을 찾는 데 성공하면 도시로 갈 수 있고 실패하면 동물로 변하게 되며 짝 찾기를 거
[박소미의 영화비평] 사랑이라니 맙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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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서울힙합영화제 상영작 <프리스타일: 아트 오브 라임>(Freestyle: The Art of Rhyme)은 케빈 피츠제럴드의 2000년 작품이다. 힙합문화의 한 부분이자 랩의 발화방식 중 하나인 ‘프리스타일랩’을 다룬 다큐멘터리 필름이다. 이 영화는 프리스타일랩의 구술적 전통을 흑인 사회의 관습에서 찾는 한편 ‘재즈 솔로’와 프리스타일랩의 유사성을 소개하기도 한다. 또한 당대의 대표적인 프리스타일 래퍼들이 등장해 자신의 철학을 들려주고 있으며, 생생한 길거리 프리스타일랩의 현장도 다수 담겨 있다. 프리스타일랩이 ‘순발력’과 ‘창의력’을 동반한 고도의 예술 행위라는 사실을 증명해주는 작품이다.
-‘프리스타일랩’(즉흥랩)이라는 힙합 요소에 대해 다큐를 찍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사랑. 이 말로 모든 게 표현된다. 내 인종과 내 동네에 대한 사랑. 나는 MTV나 유튜브에서 볼 수 없었던 음악의 진실된 면을 보여주고 싶었다. 예전 고전들이 어떻게 음악을 만들어냈는
[people] 언더그라운드에 대한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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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신인감독이 또 있을까. 제4회 스웨덴영화제 개막작 <스톡홀름 스토리>(2013)를 연출한 카린 팔리엔 감독은 영화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일을 시작해 의상감독, 세트 디자이너, 캐스팅 디렉터, 시나리오작가, 조감독까지 거친 일당백의 영화인이다. 스웨덴에서 태어나 영화 프로듀서였던 어머니를 따라 13살 때 영국 케임브리지로 이주한 뒤 앵글리아 러스킨 대학에서 예술을 전공했고, 이후 스톡홀름 드라마 인스티튜트에서 영화, 연극분장, 특수효과를 공부했다. 15년간 영화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일했고, 48살 때 <스톡홀름 스토리>로 장편 데뷔했다. <스톡홀름 스토리>는 어떤 결핍을 가진 다섯명의 주인공이 교묘하게 교차하는 이야기다. 최근엔 스웨덴 공영방송국 <SVT>의 TV시리즈 <보너스패밀리>의 10개 에피소드 중에서 3편을 연출했다.
-다섯 주인공은 서로 교차점을 찾고 있다. 그들의 모습은 지금의 스톡홀름에서 보편적으로 볼 수 있는
[people] 서로 가까이 있어도 외로운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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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사제들>은 장재현 감독의 단편 <12번째 보조사제>를 발전시킨 이야기다. <12번째 보조사제>는 2014년 제15회 전주국제영화제 한국단편경쟁부문 감독상, 제13회 미쟝센단편영화제 절대악몽부문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하며 구마(驅魔) 의식이라는 낯선 소재를 흥미롭게 풀어냈다는 평을 받았다. 두명의 신부가 부마자의 몸속 악령을 퇴치하는 이야기인 <검은 사제들> 역시 밀도 높게 스릴과 공포를 쌓아나간다. 강동원과 김윤석이라는 두 배우의 이름과 연기에 먼저 눈이 가지만 영화 자체가 선사하는 쾌감 역시 만만치 않다. 탄탄하고 과감한 연출력을 선보인 장재현 감독은 올해의 신인감독으로 손꼽기에 손색없어 보인다. 한국 상업영화의 장르와 소재의 지평을 넓혀줄 영화 <검은 사제들>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장재현 감독에게 들었다.
-단편 <12번째 보조사제>가 지난해 여러 영화제에서 수상했고 그 뒤 1년여 만에 장편으로 완성했다. 놀
[people] 버디 무비의 플롯으로 두 신부의 관계를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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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목소리: 알렉산더 소쿠로프 회고전’이 11월6일(금)부터 15일(일)까지 10일간 종로 서울극장 내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린다. 소쿠로프는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후계자로서 러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감독이자 세계적인 시네아스트이다. 그는 극영화감독이자 다큐멘터리스트이기도 한데, 그의 극영화는 묘하게 다큐멘터리적이고 반대로 다큐멘터리는 묘하게 극영화적인 것이 특징이다. 그의 첫 번째 장편 극영화인 <인간의 고독한 목소리>부터 2011년 베니스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작인 <파우스트>까지 소설을 각색해 만든 두편의 작품을 꼭짓점으로, 총 13편의 작품이 상영된다. 소쿠로프 감독의 영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러시아의 문화를 이해하는 것이 필수이다. 그는 러시아의 역사, 문화, 정치를 인식한 작품을 만드는 감독이기 때문이다. 이번 회고전에는 영화연구자뿐만 아니라 러시아 학계 인사들을 초청한 강연 프로그램도 마련된다. 또한 소쿠로프 감독이 직접 내한해 시네토크(14일
[영화제] 예술을 통해 죽음을 항해하는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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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희(한지은)는 아버지의 죽음과 이혼으로 실의에 빠진 배우다. 계속되는 슬럼프에 지친 그녀는 꿈만 같은 남자 M(최리호)을 만나면서 새로운 힘을 얻는다. M에 대한 사랑이 점점 깊어지면서 진희는 오랫동안 돌아보지 않았던 자신을 깨닫게 되고 전에 알지 못했던 행복을 경험한다. 하지만 어느 날 M이 다른 여자와 다정히 있는 모습을 보고는 참기 어려운 질투를 느끼면서 다시 방황하기 시작한다.
<나도 때론 포르노그라피의 주인공이고 싶다>는 1999년 성에 대한 솔직한 내용으로 화제를 모았던 서갑숙의 동명 에세이를 토대로 했다. 영화는 하얀 천에 비치는 여자의 몸과 그녀를 만지는 남자의 손, 그리고 그 천 사이를 헤매는 여자가 나오는 꿈으로 시작한다. 이 오프닝은 섹스에 대한 판타지를 그럴싸하게 꾸며놓은 클리셰적인 이미지인 한편, 영화 내내 희뿌옇게 진행되는 서사를 예고하는 것처럼 보인다. M은 진희의 꿈속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문득문득 등장하고, 진희는 그 꿈과 환상에 투신한
현실과 판타지를 오가는 사랑 <나도 때론 포르노그라피의 주인공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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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이어진 요괴 왕국을 무너트리고자 또 다른 요괴들이 공격해오고, 왕비와 가신들은 황급히 인간세계로 몸을 피한다. 요괴 왕비는 인간으로 위장한 가신들과 영년촌의 촌장 송천음(정백연)의 집을 방문하고, 그곳에 온 서소남(바이바이허)과 나강(강무)은 그들을 잡으려고 한다. 그 틈에 왕비는 자신이 잉태한 왕자를 송천음의 몸에 맡기고 죽음을 맞는다. 서소남과 송천음은 우여곡절 끝에 태어난 왕자 우바를 팔아넘기지만, 그를 잊지 못한 두 사람은 다시 우바를 찾으러 떠난다.
전체 관람가 눈높이에 맞춘 듯한 <몬스터 헌트>는 흔히 떠올릴 ‘대중영화’의 거의 모든 설정을 곳곳에 담고 있다. 중국의 고전 <산해경>과 <요재지이>를 통해 신화와 판타지를 동시에 끌어안아, 영화의 중심을 차지하는 요괴가 마음껏 활보할 수 있는 세계를 구축했다. 오프닝의 추격 신부터 마지막 식당에서 펼쳐지는 클라이맥스까지 액션은 끊임없이 등장하고, 간간이 요괴들의 재롱으로 이뤄진 뮤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요괴 캐릭터들 <몬스터 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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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영(한은정)은 일과 사랑 모두에 외면받은 여자다. 알코올중독에 빠진 남편의 폭력은 점점 심해지고, 대학에서도 가정 문제를 이유로 승진에서 제외한다. 고등학생 딸 유진(공예지)은 부모의 보살핌을 기대할 수 없는 처지다. 자영 부부가 크게 싸운 날 밤, 쓰러져 있는 자영을 보고 엄마가 죽었다고 오해한 유진은 아빠를 음독 살해한다. 자영의 고군분투로 유진은 무죄를 선고받지만 사건은 모녀에게 트라우마를 남긴다. 3년 후, 자영과 재수생이 된 유진. 이들 모녀 곁에 동하(조동혁)가 나타난다. 자영은 그와 결혼하며 안정된 삶을 꿈꾼다. 자영이 직장에서의 커리어를 쌓는 데 여념이 없는 사이, 동하와 유진은 외로움을 공유하며 점차 금기된 사랑에 빠져든다.
영화의 각본과 연출을 맡은 김인식 감독은 동성애를 한국영화의 주요 소재로 삼고(<로드무비>(2002)), 경계성 인격장애를 가진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등장시키는(<얼굴없는 미녀>(2004)) 등 파격적인 시도를 거듭해왔다
한 남자를 둘러싼 모녀의 사랑 <세상 끝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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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팍한 노인 강만(최종원)은 성격 탓에 반겨주는 이도 없이 술과 낡은 자전거를 벗 삼아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앞에 집 나간 아들이 사고로 죽었다는 소식과 함께 손자 풍도(박민상)가 나타난다. 강만은 거둬줄 수 없다며 풍도를 거부하지만, 당돌하고 뻔뻔한 풍도는 보육원에 가지 않기 위해 강만을 조르고 강짜를 부려가며 그의 곁에 남는다. 강만은 풍도의 넉살과 싹싹함에 점차 마음을 열어가고, 란제리 판매상 복만, 다방 레지 미자 등 마을 사람들과도 가까워진다. 즐거운 나날도 잠시, 강만은 병에 걸려 시한부 인생을 통보받고, 마을 사람들과 풍도는 마지막까지 그와 행복한 시간을 만들어간다.
시한부 할아버지와 손자가 애틋한 정을 나누는 휴먼 드라마다. 전형적인 서사의 얼개를 갖춘 참으로 ‘착한’ 영화인데, 문제는 착하기만 하다는 것이다. 올드한 톤과 전형적 캐릭터들 그리고 과장되고 작위적인 연기는 마치 오래된 TV 단막극을 보는 듯하다. ‘화이트아웃’이나 ‘와이프’ 등 근래엔 잘
시한부 할아버지와 손자의 휴먼 드라마 <늙은 자전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