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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급제해 사관이 된 이서(안재홍)는 임금을 가까이서 모실 생각에 들떠 궁에 입궐한다. 하지만 조선의 왕 예종(이선균)은 왕으로서의 체통과 위엄은 찾아볼 수 없는 인물이다. 신통한 기억력을 인정받아 사관의 임무에 더해 임금의 비밀 업무를 수행하는 도광 역할까지 추가하게 된 이서는 막무가내 왕에게서 5보 이상 떨어지면 안 되는 신세가 된다. 한편 한양에선 왕의 비밀 임무를 수행하던 부관이 대낮 저잣거리에서 불에 타 죽는 일이 벌어지고 귀신물고기가 출몰한다는 소문이 돈다. 또한 함길도 부사 남건희(김희원)를 비롯한 삼 정승은 조종이 쉽지 않은 예종이 아닌 그의 어린 조카를 허수아비 왕으로 세우기 위해 왕권 교체를 모의한다. 예종은 세간에 떠도는 소문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 잠행을 시도하고, 졸지에 극한 직업인이 된 이서는 왕의 잠행에 동원된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두 인물의 추리극이라는 설정은 <조선 명탐정> 시리즈를 떠올리게 한다. 코미디를 기반으로 한 시대극이자 활극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두 인물의 추리극 <임금님의 사건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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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조지 루카스 / 출연 마크 해밀, 해리슨 포드, 캐리 피셔 / 제작연도 1977년
어릴 적 TV에서 <스타워즈 에피소드4: 새로운 희망>이 방영되고 있었다. 루크 스카이워커(마크 해밀)가 오비완 케노비(알렉 기네스)를 만나 광선검을 받는 장면을 보는 순간 이 영화가 심상치 않다고 느꼈고, 집에 있던 VCR에 급하게 비디오테이프를 넣고 녹화를 했다.
당시 나에겐 시골 소년 루크가 모험을 떠나고, 동료들을 만나 공주를 구출하고, 거대한 악과 부닥치고, 서로 힘을 합쳐서 악을 물리치는 이야기가 좋았고, 난생처음 보는 X윙 우주선과 데스 스타 등이 등장하는 제대로 된 SF물을 접하는 것이 충격으로 다가왔다. 나와 동생은 비디오테이프가 너덜너덜해질때까지 반복 시청을 했는데, 동생은 영화의 후반부 대사를 죄다 외웠고, 난 이 영화의 특수효과에 몰입해 있었다.
10여년 후, 미국으로 건너가 할리우드 특수시각효과(VFX) 업계에서 테크니컬 디렉터로 일하기 시작했다. 내
[내 인생의 영화] 박재욱의 <스타워즈 에피소드4: 새로운 희망> 심장이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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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운더>의 가장 재미있는 대사와 이미지는, 맥도널드 형제가 패스트푸드 레스토랑의 개념을 발명하고 디자인한 과정을 회상하는 대목에서 나온다. 딕(닉 오퍼먼)과 맥맥도널드(존 캐럴 린치)는 공산품 조립라인처럼 분업화된 햄버거 조리 프로세스에 맞게 주방을 설계한다. 그리고 테니스 코트에 백묵으로 튀김기계, 그릴, 음료 스테이션 등의 배치도를 그리고 직원들을 투입해 실전 시뮬레이션을 한다. 인력 트레이닝은 물론 실제를 반영해 동선의 설계를 수정하는 이중목적의 리허설이다. 실화에 기초한 이 장면은 존 리 행콕 감독과 안무가 키키의 협력에 의해 일종의 ‘버거 발레’로 연출됐다. 성격은 판이하지만 쌍둥이처럼 합이 잘 맞는 두 형제는 농구 코치처럼 ‘선수’들을 지휘하고 관찰하며 초안을 수정해간다. ‘요식업계의 코언 형제’라는 표현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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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댄서>의 대상은, 고작 20살에 영국 왕립발레단 솔로이스트로 뽑힌 걸로도 모자라 조연에는 부적절한 카리스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우유 뺀 밀크셰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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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동건씨를 대통령으로 뽑아달라고 말해보세요.” “그가 후보자로 나오면 지지하시겠습니까?” 이준익 감독의 황당한 질문에 고소영이 이내 손사래를 친다. “아니요. 절대요. 절대 안 돼요. 남편으로, 아이 아빠로는 좋은 점이 많지만 한 나라의 대통령으로는 아니죠.” 단호한 거부 멘트와 함께, 스튜디오가 금세 웃음바다가 된다. “지지하는 후보가 탈락하면요?” “투표하지 마세요, 라고 한번 해보세요.” “설마 그날 투표 안 하시는 거 아니에요?” 멘트를 유도하는 이준익 감독이 카메라 앞에 선 이들을 향해 무리한 질문을 쉴 새 없이, 서슴없이 던진다. 그 가운데 “투표 독려해야지. 의무니까! 투표는 권리 이전에 의무니까”라고 힘주어 말하는 배우 이순재의 발언이 무게를 더한다. 선거 때마다 지지한 후보의 당선률이 저조했다는 류준열은 이번만큼은 꼭 “내가 뽑은 대통령”이 당선되길 바란다며, 투표 참여를 약속한다. 세상 믿음직한 류준열의 목소리로 “이 영상을 다섯명의 지인에게 공유해주세요”라고 말
[스페셜] ‘0509 장미대선 프로젝트’… 대선 투표 독려 영상 촬영현장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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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다르게 기입된다. 하지만 2014년 4월 16일 세월호가 침몰한 그 시각 이후, 개별의 기억에는 세월호라는 공동의 기억이 자리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최소한의 윤리라 말하겠다. 세월호 그 후, ‘기억한다’는 말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물음, 삶의 태도에 관한 질문이다. 3년이 흐른 2017년 4월 16일, 사진가 홍진훤과 소설가 김연수는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한 사람을 기억하네>라는 다소 길고 낯선 이름의 책 한권을 함께 묶어냈다. 2016년 봄, 홍진훤은 단원고 학생들이 세월호를 타고 도착했어야 마땅한 수학여행지인 제주도로 향한다. 학생들이 없는 그곳에서 그는 풍경을 찍으며 ‘어째서 있어야 할 것들이 없어졌느냐’고 물었다. 사진 연작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의 시작이었다. 소설가 김연수는 2014년 계간 <문학동네> 겨울호에 단편소설 <다만 한 사람을 기억하네>를 썼다. 소설은 일본에 있는 희진이
[스페셜] 우리가 세월호를 기억하는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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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비딕>에 이어 이번 작품도 권력을 둘러싼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뤘다.
=시나리오 쓸 때 소재나 주제를 정하고 시작하진 않는다. 특별히 권력이라는 주제에 천착하는 건 아니다. 주로 어떤 직업군에 대해서 다룰까로 고민하는 편인데, 단순하게 보면 <모비딕>은 기자에 관한 이야기였고 <특별시민>은 정치인들에 대한 영화다. 얼개만 비교하면 <모비딕>이 권력에 저항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였다면 <특별시민>은 권력자들에 대한 이야기다. 보통 감독들이 흥미를 가지는 대상이 정치인, 대기업 총수 등 권력자 아닌가. 개인적으로도 거대한 힘에 흥미가 있는 것 같다.
-아무래도 대선 전이라 현실을 반영한 정치영화로 주목받고 있는데.
=본격적인 정치 장르의 결을 가진 영화는 아니다. 선거 전에 개봉해서 선거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지만 사실은 권력욕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캐릭터 드라마다. 해군 내 이중간첩의 이야기를 다룬 케빈 코스
[스페셜] <특별시민> 박인제 감독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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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선거의 계절이다. 대선을 코앞에 둔 지금 서울시장 선거를 소재로 한 <특별시민>이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는건 당연한 반응일 것이다. 선거판이라는 소재, 최민식과 곽도원 등 대표배우, 이런 몇 가지 조합을 거치면 대략적으로 예상되는 그림이 있다. 하지만 <특별시민>은 정치영화의 전형적인 틀을 조금씩 비켜간다. 기대와 달라서 실망할 수도 있고, 뚝심 있는 전개에 만족을 표할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분명한 건 이 영화가 최근 찍어내듯 쏟아지는 기획영화와는 확실히 다른 면모를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특별시민>의 특별한 점이 무엇인지, 박인제 감독의 인터뷰와 함께 살펴봤다.
부패한 정치인, 음모가 난무하는 선거판, 승리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세력들, 오늘의 아군이 어제의 적이 되고 피아 구분이 무의미해지는 혼전. 어딘지 익숙한 그림이다. <특별시민>은 서울시장 선거를 중심으로 대한민국 정치쇼의 민낯을 선보인다. 이미 수차
[스페셜] <특별시민>의 특별한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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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는 영화만큼 저렴하게 문화생활을 즐길 만한 것이 없었다. 하지만 뉴욕에서 4인 가족 극장 나들이에 140달러가량(약 16만원)의 지출을 감안해야 한다면 믿겠는가? 공식적으로 2016년 미국 내 영화 입장권 평균 가격은 8달러65센트다. 그러나 이 가격은 말 그대로 ‘미 전국 평균가’이고, 뉴욕을 비롯한 대도시나 인근 위성도시의 경우, 이 가격은 조조할인이나 오후 6시 이전 상영작 할인 요금 수준이다. 관계자들에 따르면 근래 프리미엄 좌석과 3D영화가 늘어나면서 티켓 요금이 급상승하여, 극장마다 차이가 있긴 하지만 뉴욕시 중에서도 티켓 값이 가장 비싼 맨해튼에서 아이맥스 3D영화를 볼 경우 1인당 최고 26달러29센트가 든다고 한다. 여기에 팝콘과 음료수 콤보를 시킬 경우 13달러에서 21달러까지 추가비용이 소요되고, 레스토랑 음식을 반드시 주문해야 하는 프리미엄 좌석일 경우 1인당 50달러 이상의 추가요금이 또 든다.
26달러29센트라는 가격은 가족 단위 관람을 생각하면
[뉴욕] 치솟는 극장 나들이 비용에 주목받는 VOD 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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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과 <싱글라이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혼자들의 시대다. 1인 가구가 우리나라 전체 가구의 4분의 1을 넘은 지 오래고(2015년 1인 가구 비중 27.2%), 2045년에는 36%로 늘어난다는 게 최근 정부 추계다. 한발 앞서 나 홀로 시대가 전개되고 있는 일본은 1인 가구 비중이 이미 3분의 1을 넘겼다. 고독사는 날로 증가하고 있는데(2011년 대비 2015년 증가율 179%), 눈에 띄는 건 고독사하는 연령과 소득층 분포가 넓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서울시복지재단 조사에 따르면 무연고 사망자 중 69%가 60살 미만이고 무연고 의심 사망자가 가장 많은 지역은 강남구였다. 더이상 고독사가 저소득 독거노인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다. 김정연의 만화 <혼자를 기르는 법>에 나오는 한 독거 여성은 자신이 키우는 거북이를 가리키며 이렇게 말한다. “제가 죽으면 얘가 상주예요.”
연결이 개인을 가두는 현대의 고독
혼자들의 이야기가 잇따른
[송형국의 영화비평] 고독과 소외의 시대에 <어느날>이 보여주는 구원의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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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의 시대가 온다고 떠들썩하다. 흔히 말하는 ‘위기는 기회다’라는 슬로건 또한 넘쳐난다. 하지만 위기와 기회의 맞댄 얼굴을 보지도 못한 청년층에게 이건 명백한 사치다. 최근의 뉴스를 보자. 독일 아디다스사가 23년 만에 본국에서 공장을 가동했다고 한다. 사실 운동화는 대표적인 노동집약적 OEM 산업으로 베트남, 중국 등지의 공장에서 하청으로 생산되어온 지 오래다. 하지만 이젠 10명의 직원이 연간 50만 켤레의 운동화를 만들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MADE IN CHINA’가 ‘MADE IN GERMANY’로 바뀌었다. 이것이 바로 4차 산업혁명의 실체다.
‘밥벌이 연구소’를 표방한 JTBC의 <잡스>. 스티브 잡스를 차용한 동시에 ‘직업들’의 의미를 가진다. 박명수, 노홍철, (또)전현무가 3잡스로 공동 MC를 맡는다. AI로부터 직업을 빼앗길 위기에 직면한 우리 모두를 위한 직업 연구가 이들의 메인 잡이다. 야구 해설가이자 메이저리그 전문가인 송재우
[김호상의 TVIEW] <잡스> 제대로 직업 탐구를 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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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조저택 살인사건>
제작 영화사 다 / 감독 정식, 김휘 / 출연 고수, 김주혁, 문성근, 박성웅 / 배급 씨네그루(주)키다리이엔티 / 개봉 5월
<석조저택 살인사건>이라는 제목을 보니 밀실에서 관객과 제대로 두뇌 싸움을 벌일 것 같다. 혼돈에 빠진 해방 이후 경성, 전대미문의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사체는 온데간데없고, 잘려나간 손가락이 유일한 단서다. 정체불명의 운전사 최승만(고수)과 경성 최고의 재력가 남도진(김주혁), 어떤 관계인지 알 수 없는 두 남자가 서로를 속이려고 한다. 변호사 윤영환(문성근)과 검사 송태석(박성웅)은 이 살인사건을 둘러싸고 법정 공방을 벌인다. 미국의 서스펜스 소설가 빌 S. 밸린저의 대표작인 <이와 손톱>을 각색한 영화로, 원작 소설에 충실하다면 몇 가지 관전 포인트를 짐작해볼 수 있다. 법정에서 펼쳐지는 윤영환과 송태석의 말싸움은 ‘이로 물고, 손톱으로 할퀼’ 정도로 치열할 것이고, 살인사건의 범인과 동기를 좇
[Coming Soon] 혼돈에 빠진 해방 이후 경성, 전대미문의 살인사건 발생 <석조저택 살인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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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시민>의 박경은 이제껏 심은경이 연기한 캐릭터 중에서 실제 심은경의 모습과 가장 다른 인물이다. 변종구(최민식) 선거 캠프의 공보 담당자인 그녀는 자기주장이 강하고, 야심이 큰 데다 말보다는 행동이 앞선 여성이다. 코미디면 코미디(<써니>(2011), <수상한 그녀>(2013), <걷기왕>(2016)), 스릴러면 스릴러(<널 기다리며>(2015), <조작된 도시>(2017)) 등 장르영화에 최적화된 연기를 보여준 심은경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그녀에게 박경은 “자신의 연기를 되돌아보게 해줬고, 앞으로 연기하는 데 좋은 길잡이가 되어준 캐릭터”다.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 어땠나.
=실제보다 나이가 많은 캐릭터가 들어와 행운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부담스러웠다. 나한테 맞는 역할일까, 해낼 수 있는 인물일까. 고민이 많았지만 감독님께서 내가 기존의 모습과 다른 면모를 끄집어낼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신 것 같아 출
[커버스타] 특별한 변신 - <특별시민> 심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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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는 말이야. 똥물에서 진주 꺼내는 거야.” 각종 스캔들과 비리, 음모와 배신의 늪에서 발버둥치면서도 오로지 승리만을 위해 전력 질주하는 변종구(최민식) 캠프의 선거대책본부장 심혁수는 <특별시민>에서 가장 정치적인 인물 중 하나다. 누구보다 프로답게 보여야 할 인물에 곽도원이라는 선택지는 최적의 답안이었다. <아수라>의 김차인 검사와 <변호인>의 차동영 경감이 그렇듯, 특정 직업군으로 등장하는 인물에 강한 설득력과 놀라운 현실감을 부여하는 건 배우 곽도원의 주특기이며 <특별시민>에서도 그런 그의 장점은 유감없이 발휘된다.
-평소 정치에 관심이 있었던 편인가.
=전혀 없었다가 지난해 국정농단 사건을 접하면서 관심을 가지게 됐다. <특별시민>의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에도 가장 먼저 한 일이 포털 사이트에 ‘정치’라는 단어를 검색하는 것이었다. 권력을 모아서 쓰는 게 정치라더라. 그럼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그걸 어떻게 쓰고 있을
[커버스타] 그가 이끌어낸 답 - <특별시민> 곽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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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트 차림에 말끔한 커트 머리. 3선 도전 서울시장 변종구의 ‘규격’에 맞게 최민식은 체중을 감량하고, 현란한 화술과 마스크를 장착했다. 권력의 꼭대기에 오르기 위해 발톱을 숨긴 채 가족마저 이용하는 파렴치한. 권력에 도취한 채 질주하는 그의 이름은 ‘정치인’이다. 거대한 도시 서울의 심장을 흐리게 만드는 악인 변종구. 시시각각 변하는 그의 얼굴은 최민식의 연기 구력을 바탕으로, 영화가 아닌 현실의 기시감을 더해준다.
-이순신 장군(<명량>), 조선의 명포수 천만덕(<대호>)처럼 최근 맡은 배역이 우직하게 신념을 지키는 인물이었다면, <특별시민>의 변종구는 신념 따위는 저버릴 카멜레온 같은 인물이다.
=말에 집중했다. 정치를 하는 사람만큼 말에 의존하고, 말로 시작해서 말로 끝나는 사람이 있을까 싶다. 자기 표피를 변화시켜 방어하고 공격하는 <동물의 왕국>의 동물이 연상되는, 임기응변에 강한 사람. 현란한 언어의 연금술사랄까. 이 사
[커버스타] 캐릭터에 대한 욕심 - <특별시민> 최민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