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남자가 오슬로의 호텔에 방을 잡는다. <팬텀>은 그 남자의 외모를 본 사람들의 반응을 통해 그에 대한 ‘힌트’를 준다. 얼굴 한쪽에 길게 난 상처, 주소지로 적는 홍콩 청킹맨션 같은 단서들이 이어지고, 호텔 직원은 숙박부의 이름을 보고는 “당신이 그 해리 홀레입니까?”라며 전설의 주인공을 맞는다. <팬텀>은 요 네스뵈의 ‘해리 홀레 시리즈’ 아홉 번째 소설이다. 총 11권이 출간된 이 시리즈의 주인공 해리 홀레는 경찰보다는 마약중독자나 마약거래상에 가까워 보인다. 시리즈를 따라온 사람이라면 그가 오슬로로 ‘돌아왔다’는 데서 그의 과거를 떠올릴 수 있을 테고, 이제 처음 만나는 독자라면 “나의 직업은 살인”이라고 말하는 이 남자를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지 혼란을 느낄지도. <팬텀>은 오슬로의 마약 범죄를 다룬다. 마약의 반입과 반출에는 민항기 파일럿이 동원된다. 오슬로시의 마약유통 거점이 완전히 바뀌어버려 경찰도 누가 배후의 큰손인지 파악하지 못하는
씨네21 추천도서 <팬텀>
-
아마도 이번 생애 내내 이마를 비추고 발목을 물들이는 것은 사람에 대한 그리움일 것이다. 그것은 기억이고, 향수다. 나애는 9살 무렵에 병원집 뒷마당에서 함께 놀았던 상, 도이를, 잠든 나애의 머리맡에서 이마를 짚어주며 전래동화를 자장가처럼 읊조리던 종려 할매를 생각한다. 물론 헤어진 이후로 어른이 된 지금까지 한순간도 잊지 않고 계속 생각하며 산 것은 아니다. “사람이 줄곧 그것을 생각할 수는 없다. 이따금 생각한 것이다. 늘 잊고 살다가 문득문득 생각한 것이다. 평생 그럴 것.”(36쪽)이므로. 지금은 희도와의 다른 생활이 있고, 주변은 다른 사람들로 채워졌다. 그래도 나애는 알고 있다. 우물 속처럼 따뜻하지만 어둡고, 그래도 빛이 있었던 그 시절의 시간들이 지금을 있게 했다는 걸. 그게 몇살이었든 사람은 위로받고 상처받고 충만했던 기억을 온몸에 저장하며 살아간다.
<해변빌라> 이후 3년 만에 나온 전경린 장편소설 <이마를 비추는, 발목을 물들이는>의 이
씨네21 추천도서 <이마를 비추는, 발목을 물들이는>
-
뒤를 돌아보기보다는 다가오는 미래를 바라보고, 앞으로 이뤄나가야 할 것들을 생각하는 나날이다. 아, 내 경우에는 아니지만 다른 분들은 그러신 것 같다는 말이다. 1월이면 으레 ‘올해의 계획’ 같은 것을 야심차게들 세우니 말이다. 고백하자면 나는 새해 계획 안 세운 지가 10년이 넘었다. 어차피 안 지킬 거니까 계획 자체를 안 세운다. 나이를 강제배식받아 좋은 점은 사람이 자기 주제를 잘 알게 된다는 것이다. 1월에 밝은 미래를 기대하며 스스로와의 약속을 하지 않으면 얻을 수 있는 이득이 있다. 자신을 덜 싫어할 수 있다. 그리고 인생에서 좋은 일들은 의외로 계획 밖의 우연들 속에서 비롯된다. 그러니 계획을 지키는 것에 실패한 사람이라면 재도전보다는 우연을 관리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을 추천한다. 고질병인 의지박약으로 이번에도 어차피 제3대 국정과제(공부, 다이어트, 돈 모으기)를 배반할 텐데, 그럼 2, 3월에 자신이 얼마나 싫어지겠나. 그러니 1월에도 질척거리며 지난 12월 연말 모
씨네21 추천도서 - <씨네21>이 추천하는 1월의 책
-
최근 프로그램들은 모두 부제가 일상화되어 있다. 이번에 다룰 프로그램의 부제는 다음과 같다. ‘마이웨이 사부와의 동거동락 인생과외.’
SBS의 새 리얼리티 예능 프로그램이자, 예능 블루칩 이승기의 제대 후 첫 예능 복귀작인 <집사부일체>가 시작되었다. 육성재, 양세형, 이승기 그리고 예능 첫 나들이인 배우 이상윤이 함께 버스에 오른다. 각자의 승차지점에서 올라타고, 앞으로 펼쳐질 일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어김없이 예능 초보인 이상윤을 속이고, 동거동락할 사부의 집으로 향한다. 첫사부는 들국화의 전인권. 자신이 태어난 집에서 63년째 살고, 공연 중에는 누룽지와 스팸만 먹는 사부와 네 제자들이 얽혀 인생을 배운다. 또 어김없이 취침과 관련된 에피소드도 끼워넣어진다.
에피소드 첫 번째의 절반 이상이 이승기의 복귀에 관련해 소비된다. 어눌한 전인권의 언뜻 쉽게 이해되지 않는 언행과 네 제자의 부적응은 꽤 오랜 시간을 지루하게 만든다. 하지만 프로그램에 몰입하기까지는 다
[TVIEW] <집사부일체>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
-
<올 더 머니> All the Money in the World
감독 리들리 스콧 / 출연 미셸 윌리엄스, 크리스토퍼 플러머, 마크 월버그, 찰리 플러머 / 수입·배급 판씨네마 / 개봉 2월 1일
리들리 스콧 감독이 전대미문의 유괴사건에 손을 댔다. 존 피어슨의 원작 <페인풀리 리치>(Painfully Rich)를 바탕으로 한 <올 더 머니>는 1973년 7월 로마에서 일어났던 ‘게티 3세 유괴 실화’를 소재로 한다. 세계 최고의 거부로 기네스북에 등재되기까지 한 석유재벌 진 폴 게티. 유괴범들이 손자의 몸값으로 1700만달러(186억원)를 요구하는 사건에 휘말린다. 손자의 머리카락과 귀 일부를 받아든 절체절명의 순간, 하지만 냉혹한 부호 게티는 “유괴범에게 줄 돈은 단 한푼도 없다”라며 협상을 전면 거부한다. 게티는 왜 몸값을 지불하려 하지 않는가! 이 질문에서 셰익스피어적인 요소를 발견했다는 리들리 스콧 감독은 “돈이 사람의 인생을 어떻게
[Coming Soon] <올 더 머니>, 전대미문의 유괴사건
-
<비밥바룰라>의 덕기는 오래전 가족과 친구들을 떠나 힘겹게 살아가는 인물이다. 노인들을 상대로 약을 파는 사기꾼들에게 붙들려 이도저도 못하는 신세에 처해 있던 덕기를 찾아낸 건 영환(박인환). 영환의 도움으로 소꿉친구들과 재회하고 가족들까지 만나게 된 덕기는 서서히 웃음을 찾아간다. 1969년 KBS 공채로 데뷔해 <전우> <용의 눈물> <명성황후> 등 드라마에 주로 얼굴을 비춘 윤덕용은 오랜만의 영화, 오랜만의 주연 기회에 그저 감사하다는 말로 행복을 표했다.
-근래엔 작품 활동이 뜸했다.
=젊을 땐 일이 많았는데 나이 먹으니까 방송국 사람들도 세대교체가 되고 그러면서 관계도 많이 끊어졌다. 그래서 많이 쉬었는데, 3년 전쯤 기독교영화 <신이 보낸 사람>(2014)에 출연했다. 그때 <비밥바룰라>의 제작자인 정유동 대표와 인연이 닿아 이번에도 함께하게 됐다.
-덕기가 아닌 나머지 세 캐릭터 중에 탐나는 역할은
<비밥바룰라> 윤덕용 - 열심히 즐겁게, 라는 재미
-
‘웃음’의 계보를 따지자면, 특히 그 웃음이 삶에서 묻어나오는 페이소스에 무게를 둔다면 대한민국에서 배우 임현식을 빼놓고 말할 수 없다. 임현식은 병들고 늙어가는 친구들 곁에서 항상 어린 시절 가졌던 젊은 마음을 일깨워주는 유쾌한 친구 ‘현식’을 연기한다. ‘비밥바룰라~’를 읊으며, ‘여자들에게 인기 많다’고 뻐기지만, 첫사랑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지는 모습. 극에 활기를 불어넣는 배우 임현식을 만났다.
-처음엔 출연을 고사했는데, 이런 영화가 자주 나오는 게 아니고 흔치 않은 기회라는 따님의 말에 설득당했다고.
=노인들이 활약하는 시니어영화가 만들어지는 일이 흔치 않다. 매번 작품을 선택할 때 딸들이 의견을 많이 주는데, 우리 딸들은 모처럼 만들어지는 영화니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 거 같다. 그런데 지난해까지만 하더라도, 나는 내가 노인이 아니라고, 늙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웃음) 노인으로서 내 인생 준비가 덜 되어 있는데, 노인 역할을 맡으니 좀 거북했던 거지. 그런데 나도
<비밥바룰라> 임현식 - 웃음의 달인
-
여든의 나이에도 배우 신구의 필모그래피는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일년에 두세편씩 꾸준히 드라마와 영화와 연극을 오가고 있다. tvN 예능 프로그램 <윤식당>의 아르바이트생 역할은 물론, 매체와 장르를 자유롭게 오가는 유연함은 최근 들어 특히 눈에 띈다. <비밥바룰라>에서도 신구는 유연하게 캐릭터의 이쪽과 저쪽을 오간다. 친구들에겐 무뚝뚝하나 치매에 걸린 아내에겐 한없이 로맨틱한 순호가 이번 영화에서 그가 연기한 캐릭터다.
-예능 프로그램 <꽃보다 할배>,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 그리고 영화 <비밥바룰라>까지 노년의 어른들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에 연이어 출연했다.
=노인들의 이야기, 그건 바로 우리 세대의 이야기다. <비밥바룰라>는 우리의 이야기를 어렵지 않게 풀어낸 작품이다. 우리 세대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 가족들의 이야기, 이웃과의 이야기가 담담하게 잘 그려져 있었다. 재미있고 따뜻한 영화라서 출연
<비밥바룰라> 신구 - 동료들과 일하는 재미
-
박인환은 <비밥바룰라>의 행동대장 영환을 연기한다. 말수가 적고 내성적이지만, 그는 친구들을 소환해 뭐든 해보자고 종용한다. 함께 살 집을 사서 수리를 하는 것도, 오래전 연락이 끊긴 선배를 찾아나선 것도 그의 결단에서 비롯된다. 올해로 연기생활 52년 공력을 가진 대한민국 대표 배우. 그는 세대 개념 없이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함께 즐길 수 있는 가족영화가 지금보다 많이 만들어지기를 꿈꾼다. 주연으로 나서는 게 영 쑥스럽다면서도, 그 책임감에 있어서만큼은 확고하다.
-<비밥바룰라>에 가장 먼저 캐스팅됐고, 시나리오에 의견도 많이 반영한 걸로 알고 있다.
=이 작품은 노인 문제, 우리의 이야기라 쉽게 다가오더라. 작가와 만나 술 마시면서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노인 문제를 아프게, 슬프게만 표현하지 말고 지혜롭게 보여주자. 이런저런 내 경험담을 반영했다.
-늘 ‘선생님’으로 호칭되는 현장과 달리 이번엔 신구, 임현식, 윤덕용 등 동년배 배우들과 호흡을
<비밥바룰라> 박인환 - 경험을 나누는 지혜로운 방법
-
박인환, 신구, 임현식, 윤덕용. 연기내공 도합 207년의 배우들이 한 영화로 뭉쳤다. 이른바 시니어 영화를 표방한 <비밥바룰라>는 평균 나이 70이 넘은 할배들이 사는 이야기다. 암 선고를 받은 영환(박인환)이 선두에 서, 선배와 친구들을 한명씩 종용해 생의 마지막을 아름답게, 즐겁게 지낼 것을 계획한다. 자식들과 살던 집을 나와 평소 말로만 외치던 함께 모여 살 집을 구해서 리뉴얼한 것도 그가 가진 계획 중 하나다. 치매 부인을 돌보는 순호(신구), 첫사랑과 오매불망 함께하고 싶은 현식(임현식), 그리고 노인을 이용해 약을 파는 패거리에게 덜미를 잡힌 덕기(윤덕용) 모두 큰 고민을 안고 있지만,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는 어린 시절 함께 놀던 마음 그대로다. “아직 노인이라 생각을 못해서” 처음에 작품을 고사했다는 임현식의 말처럼 네 배우 모두 아직 마음은 청춘이다. 그들은 액션, 스릴러가 주가 되는 블록버스터 대작들 속에서, 작고 소박한 휴먼 코미디 <비밥바룰라&
<비밥바룰라> 박인환·신구·임현식·윤덕용 - 우리들이 사는 세상
-
<몰리스 게임> Molly’s Game
감독 에런 소킨 / 출연 제시카 채스테인, 이드리스 엘바, 케빈 코스트너, 마이클 세라
에런 소킨의 감독 데뷔작. 할리우드 톱스타, 스포츠 선수, 거물 사업가들과 러시아 마피아들이 참여했던 지하 포커 세계를 이끈 실존 인물, 몰리 블룸(제시카 채스테인)의 회고록을 바탕으로 한 영화다. 지난해 말 북미 개봉한 <몰리스 게임>은 “남자들의 세계에서 여자로 살아남는다는 것의 어려움이라는, 시의적절한 테마를 가졌다”(<롤링 스톤>)는 호평을 받았다.
[해외 박스오피스] 영국 2018.1.5~7
-
-은퇴를 번복했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단편 <애벌레 보로>가 공개된다.
도쿄 지브리미술관에서 3월 21일부터 상영된다. <애벌레 보로>는 미야자키 하야오가 <바람이 분다>(2013) 이후 은퇴를 발표했다가 지난해 이를 철회한 후 만든 첫 작품이다. 러닝타임은 14분20초. 미야자키 하야오는 2020년 도쿄올림픽 전에 <애벌레 보로>의 장편 버전을 완성하겠다고 밝혔다.
-엘렌 페이지가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동성 연인과의 결혼을 공개했다.
배우자는 안무가 에마 포트너. 2014년 커밍아웃 이후 엘렌 페이지는 애인과 공개 연애를 해왔다. 에마 포트너와는 지난해 6월부터 연인 관계로 발전했다. 동성 결혼을 합법화한 캐나다 국적을 가진 두 사람은 법적 부부로 인정받게 된다.
-맷 리브스 감독이 넷플릭스와 장편 영화 계약을 체결했다.
이번 다년 계약으로 맷 리브스의 제작사 6th & Idaho에서 제작하거나 연출하는 작품의 첫 스
엘렌 페이지, 동성 연인과의 결혼 공개 外
-
[정훈이 만화] <다운사이징> 레저랜드에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자!
[정훈이 만화] <다운사이징> 레저랜드에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자!
-
어떤 경험이 당신이라는 인간을 만들었을까. 소설가 캐서린 앤 포터를 만든 경험 중 하나는 그가 29살이던 1918년 미국과 유럽 전역을 휩쓴 스페인 독감에 걸려 죽다 살아난 일이었다. 단편 <창백한 말, 창백한 기수> <웨더롤 할머니가 버림받다>가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쓰인 소설들이다. <창백한 말, 창백한 기수>의 제목은 성경의 요한묵시록 6장8절에서 따온 표현이다. “그러고 보니 푸르스름한 말 한필이 있고 그 위에 탄 사람은 죽음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뒤에는 지옥이 따르고 있었습니다.” 이 시기의 캐서린 앤 포터는 <로키 마운틴 뉴스>에 취직해 기자로 일하다 스페인 독감에 걸렸다. 소설의 여자주인공 미란다처럼. 이 작품을 표제작으로 한 소설집은 1939년에 출간되었으니(1932년 집필 착수), 죽음의 위협으로부터 꽤 멀리 항해한 뒤 그 경험을 반추하며 썼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이 소설은 시작하자마자 정신없다,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캐서린 앤 포터>, 명불허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