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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어린이들에게는 호환, 마마, 전쟁 등이 무서운 재앙이었으나, 현대 어린이들은 무분별한 불량 불법 비디오를 시청함으로써 비행 청소년이 되는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게 될’거라던 경고를 철저히 무시한 지금 20세기 말의 옛날 어린이로서, 이 예언은 거의 적중해 지금의 나 자신이라는 무서운 결과를 초래했다. 비행 청소년이 되는 건 어떻게 넘겼는데, 결과적으로 비틀린 성인이 되었다. 영상매체와 영화 예술과 온갖 장르 문화에 매혹당한 나머지 애호가로 만족하지 못하고 무려 작가가 되겠다는 참으로 그릇된 선택을 하고 말았다. 그 탓에 매일 낮밤을 책상 앞에서 진도가 지독하게 안 나가는 글쓰기의 어려움과 고통에 비명을 지르다 데드라인 직전에야 뜬금없이 생각하는 것이다. 내 삶의 이 모든 총체적 재앙은 어디서 비롯되었나? 근원지가 어디인가? 미래의 나를 날마다 죽이게 될 그날의 계획은 언제 추진되었나?
중학생 때부터 금요일만 되면 하굣길에 비디오 가게에 들르는 것이 정해진 일과였다. 고등학교
조지 A. 로메로 <시체들의 새벽>과 톰 새비니 <살아 있는 시체들의 밤> 리메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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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퍼 놀란의 서사는 늘 빈약했다. <메멘토>(2000)는 결말에 도달한 뒤 거꾸로 돌려보면 매우 단선적인 이야기였고 <배트맨 비긴즈>(2005)는 전형적인 영웅 서사의 길을 따랐다. 아버지가 이루지 못한 것을 이어받아 투쟁을 지속하는 <다크 나이트 라이즈>(2012)는 <배트맨 비긴즈>로 회귀한 반복에 불과하다.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 인과로 거대한 미로를 구축했던 <인셉션>(2010)을 선형적으로 재배치한 뒤 조망하면 단선적으로 움직이는 황량한 인물들을 마주할 수 있다. 부녀간의 애틋함을 우주적 규모로 풀어낸 <인터스텔라>(2014)는 또 어떤가. 놀란의 캐릭터들은 관객을 고민에 빠트리지 않는다. 대개 단순하지만 강력한 동기를 지닌 채 목적을 수행하는 데 열중한다. <덩케르크>도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사건에 극적인 드라마는 없다. 덩케르크 해변에 남겨진 앳된 군인들이 도
크리스토퍼 놀란은 <덩케르크>의 형식을 통해 무엇을 추구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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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단장 죽이기>를 읽었다. 나는 출간되기 전에 이 책을 읽었는데, 이유는 글 쓸 일이 있기 때문이었다. 포털사이트에 내 이름과 함께 <기사단장 죽이기>를 치면 그 글을 볼 수 있는데 꽤 읽을 만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각설하고, <기사단장 죽이기>에는 클래식, 팝, 록, 재즈 등 수 많은 음악이 등장한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자기 음악 지식을 자랑하려고 이 소설을 썼나 싶을 정도다. 그중에서도 소개하고 싶은 음악은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앨범 《The River》다. 통상 이 음반은 브루스 스프링스틴 3대 걸작(나머지 둘은 《Born to Run》(1975)과 《Born in the U.S.A.》(1984)) 중 하나로 꼽힌다. CD로는 2장, LP로는 4장으로 구성된 대작이다. 소설에서 《The River》는 주인공인 ‘나’가 굳이 LP로 구입하는 장면에서 등장한다. 그가 LP를 고집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A면 마지막 곡 <Independence
[마감인간의 music] 브루스 스프링스틴 《The River》(1980), 하루키의 플레이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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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월 18일. 군사정권에 항거하던 시민들을 ‘폭도’로 규정하고 죽음에 이르게 한, 피의 ‘그날’. 새 정권 출범 이후 문재인 대통령이 진상 규명에 대한 의지를 밝혔지만, ‘광주’ 희생자와 유가족의 상처, 명예회복 문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장훈 감독의 <택시운전사>는 그간 광주를 다룬 영화와 소설에 이어, 보다 대중적 화법으로 그날의 진상 규명에 다가가고자 하는 영화다. 광주의 사건을 전세계에 보도한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의 영상과 실화를 바탕으로, 10만원을 벌기 위해 독일 기자 피터(토마스 크레치만)를 태우고 아무것도 모른 채 참상의 현장 광주로 간 택시운전사 만섭(송강호)의 1박2일을 그린다. 만섭의 초록색 택시 브리사는 한국 현대사의 비극의 순간을 적나라하게 통과한다.
데뷔작 <영화는 영화다>(2008)의 호평 이후, 분단국가 대한민국의 현재를 포착한 <의형제>(2009), 끝나지 않은 6·25전쟁의 마지막 전투를 그린 &
<택시운전사> 장훈 감독, "만섭의 시선이 지금 우리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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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와 경기콘텐츠진흥원은 롯데시네마, 고양영상미디어센터, 파주 헤이리시네마와 함께 다양성영화 전용관인 ‘G-시네마’를 운영하고 있다. 관람객은 3개의 롯데시네마(부천, 안양일번가, 고양라페스타) 상영관과 고양영상미디어센터, 파주 헤이리시네마에서 다양성영화를 감상할 수 있다. 무더운 8월, 시원한 다양성영화 전용관에서 개봉될 G-시네마 작품들을 소개한다.
G-시네마 365일 개봉관_ 롯데시네마 3개관(부천, 안양일번가, 라페스타)
G-시네마 동시 개봉관_ 고양영상미디어센터, 파주 헤이리시네마
상영시간_ 1일2회 오전 10시~오후 1시 중 1회, 오후 6시~밤 9시 중 1회
8월 1, 2주 개봉작_ <불온한 당신> <여자들>
<불온한 당신>
감독 이영 / 출연 이묵, 논, 텐, 이영 / 2015년
다큐멘터리 감독인 나는 “당신은 세상에서 없어져야 한다”고 비난하는 이들을 만났다. 혐오의 시대에 성소수자들은 손쉬운 타깃이 되었다. 주변화된 삶을
[경기도 다양성영화 G-시네마] 경기도 다양성영화관, G-시네마 8월 개봉작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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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치 래츠> BEACH RATS
감독 엘리자 히트먼 / 출연 해리스 디킨슨, 케이트 호지
10대 소년 프랭키는 자아에 대한 고민으로 혼란스럽다. 또래 소년과 여자친구, 온라인에서 만난 중년 남자와의 관계 속에서 프랭키는 자신의 정체성을 질문한다. 브루클린 해안의 낭만적인 풍경을 배경으로 사춘기의 욕망을 진지하게 관찰하는 작품이다. 제33회 선댄스영화제에서 미국 극영화 부문 감독상을 수상했다. 8월 25일 북미 개봉예정.
[WHAT'S UP] <비치 래츠>, 사춘기의 욕망을 진지하게 관찰하는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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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트위터를 개설했다. 숫제 조희문 전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 위원장 탓이다. MB 정부 들어 문화계가 만신창이가 되어가던 중 영화계에도 그 쓰나미가 당도했다. 특히 독립영화계가 입은 내상은 깊고 선연해 지금까지도 아물지 않고 있다. 그때 만든 게 트위터였다. 망가진 영진위와 조희문 전 위원장이 독립영화계를 어떻게 폐허로 만들고 있는지 한 사람에게라도 더 알리기 위해서.
그러던 어느 날, <씨네21>에서 전화가 왔다. 지면에도 글을 써달라는 내용이었다. 내 우울한 글이 ‘디스토피아로부터’ 코너에 어울릴 것 같다나. 청탁에 응했던 첫 번째 이유는 물론 쥐꼬리만 한 원고료라도 챙기면 생활에 보탬이 될지 않을까 하는, 알량한 재주나마 써먹어야겠다는 생각 때문이었을 테고, 두 번째는 MB 정부가 망치고 있는 삶의 풍경을 하나라도 더 독자들과 공유해야겠다 싶은 절박함 때문이었으리라.
그런 절박함을 부여잡고 쓰기 시작한 지 벌써 5년이 됐다. 그사이 이명박 정부는
지난 5년간의 ‘디스토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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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데이미언 셔젤이 될 수 있을까. <이모 더 뮤지컬>은 록 음악의 한 갈래인 ‘이모’(EMO)에 빠진 한 고등학생이 새 학교로 전학을 가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얼핏 전형적인 하이틴물처럼 보이지만 이 영화는 쉽게 설명되지 않는 에너지를 품고 있다. 자신의 단편을 장편으로 확장한 <이모 더 뮤지컬>로 2017년 베를린국제영화제 영제너레이션 부문에 초청받은 닐 트리펫 감독의 참신한 첫 행보는 어딘지 데이미언 셔젤을 연상시킨다. 제2회 충무로뮤지컬영화제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한 닐 트리펫 감독을 만났다.
-첫 장편영화로 베를린에 이어 한국까지 방문했다.
=<이모 더 뮤지컬>의 단편영화를 베를린국제영화제에 출품했었다. 영제너레이션 부문에서 특별 언급된 덕분에 호주 영화진흥기구에서 제작을 지원받아 장편영화 프로젝트를 실현할 수 있었다. 운 좋게 장편 <이모 더 뮤지컬>도 베를린국제영화제에 초청받았고 그 덕분에 충무로뮤지컬영화제로
충무로뮤지컬영화제 게스트② <이모 더 뮤지컬> 닐 트리펫 감독 - 이모 음악과 하이틴 성장물의 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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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필름아카이브의 데이비드 펜들턴 프로그래머가 제2회 충무로뮤지컬영화제를 찾았다. 영화제 기간에 그는 뮤지컬 연출가이자 안무가이며 영화감독인 밥 포시에 관한 포럼을 진행했다. 밥 포시는 뮤지컬 <파자마 게임>(1954)의 안무를 연출하고, <피핀>(1972)으로 토니상을 수상했고 <카바레>(1972), <레니>(1974), <올 댓 재즈>(1979) 등을 연출하여 뮤지컬영화의 지평을 넓혔다. 뮤지컬영화제의 가능성에 대한 데이비드 펜들턴의 생각도 전한다.
-밥 포시의 예술 세계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뭔가.
=밥 포시는 유명세만큼 진지하게 평가받지 못했다. 독특한 제스처로 신체 움직임을 보여주는 밥 포시 안무의 스타일 못지않게 내용적인 면을 강조하고 싶다. <올 댓 재즈> 때부터 그의 영화 속 안무를 주목해왔다. 나는 그가 안무로 현대사회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의 안무로 발현된 현대사회에 대해
충무로뮤지컬영화제 게스트① 데이비드 펜들턴 프로그래머 - 밥 포시의 안무에서 현대사회를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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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디 맥베스>의 원작은 19세기 러시아 소설 니콜라이 레스코프의 <러시아의 맥베스 부인>이다. 소설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의 오페라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으로 만들어져 유명해졌다. 영국의 신예 감독 윌리엄 올드로이드는 데뷔작 <레이디 맥베스>를 통해 독보적인 여성 캐릭터 캐서린을 스크린으로 멋지게 불러냈다. <레이디 맥베스>는 부유한 집안에 팔려가다시피 시집가 자유를 박탈당한 캐서린이 자신의 욕망에 따라 살인을 저지르고 그것을 은폐하는 이야기다. 결말에 관해 올드로이드 감독은 “캐서린이 승리하기를 원했다”고 했는데, 한 여성의 비극적 승리담은 묘한 쾌감과 씁쓸한 여운을 동시에 남긴다. 올드로이드 감독과의 서면 인터뷰를 전한다.
-러시아 작가 니콜라이 레스코프의 <러시아의 맥베스 부인>을 영화화했다.
=소설의 주인공인 카테리나에게 끌렸다. 19세기 문학에서 여주인공은 대개 수동적인 데 반해 니콜라이 레스코프
<레이디 맥베스> 윌리엄 올드로이드 감독 - 그녀가 비호감이라고? 그런들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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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홍콩의 중국 반환을 앞둔 홍콩인들의 불안은 <메이드 인 홍콩>(1997) 등의 영화를 통해 분출되었다. 홍콩특별행정구가 설립된 지 20년이 지난 지금 홍콩인들은 중국에 안착하여 뿌리를 내렸을까. 홍콩의 중국 반환 20주년을 기념해 7월 26일(수)부터 8월 8일(화)까지 열리는 한국영상자료원의 특별전 <영화와 공간: 홍콩>은 크리에이트 홍콩(Create Hong Kong), 홍콩국제영화제협회와 공동으로 주최하는 ‘창조적 비전: 홍콩 영화 1997-2017’ 섹션과 한국영상자료원의 시네마테크 KOFA에서만 특별히 상영하는 ‘KOFA 특별 상영’ 섹션으로 나뉘어 총 17편으로 풍성하게 꾸려졌다. 개막작으로 선정된 웡춘 감독의 <매드 월드>는 부평초처럼 떠도는 바로 지금 홍콩인들의 피폐한 심리를 담아낸다. 과거의 상처로 조울증에 빠진 남자(여문락)가 자신을 버린 아버지(증지위)와 동거하는 이야기는 오늘날 홍콩의 초상으로 읽을 수밖에 없다. <
<매드 월드> 웡춘 감독, 플로렌스 챈 작가 - 바로 지금, 홍콩의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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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월 광주의 참상을 기록한 ‘푸른 눈의 목격자’ 위르겐 힌츠페터. 장훈 감독은 힌츠페터를 바탕으로 만든 독일 기자 ‘피터’ 역할을 맡을 배우로 토마스 크레치만을 제일 먼저 떠올렸다. 로만 폴란스키의 <피아니스트>(2002)에서 피아니스트 스필만의 연주를 듣고 그를 살려주는 독일 장교 호젠펠트는 참혹한 전장에서도 지지 않은 인간애를 상징했다. <택시운전사>에서 배우 송강호와 호흡을 맞춘 그가 영화 개봉을 앞두고 한국을 찾았다. 작품 속 각인된 제복의 이미지 대신 편안한 티셔츠와 청바지 차림. 그는 격의 없는 대화 사이로 작품을 대하는 자신의 방법론을 전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인스타그램을 찾아봤더니 <택시운전사>의 배우들과 촬영장 뒤의 모습을 열심히 찍더라.
=인스타그램은 4개월 전쯤 시작했는데, 새로운 장난감을 손에 넣은 것처럼 재밌다. 사진들은 라이카 카메라로 찍은 거다. 촬영 때 장훈 감독을 비롯해 배우들 사진을 많이 찍었다.
<택시운전사> 토마스 크레치만 - 독일인이 아닌 세계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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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밤의 서늘한 오케스트라
<프랑켄슈타인의 신부>(1935)는 독일의 작곡가 프란츠 왁스만의 음악이 빠질 수 없는 영화다.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영화의 테마곡을 감상하는 콘서트 ‘썸머 나이트 오케스트라 <프랑켄슈타인의 신부>’가 8월 11일, 12일 양일간 밤 10시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다. 한국의 차세대 지휘자로 주목받는 크리스토퍼 리가 지휘를,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가 연주를 맡는다. 전석 3만원의 착한 가격은 덤. 롯데콘서트홀 홈페이지, 하나티켓, 예스24 등에서 예매 가능하다.
여성 디바의 목소리로 역사를 묻다
대중문화를 통해 1960∼70년대 아시아 국가들의 격변기를 읽어내는 전시 <아시아 디바; 진심을 그대에게>가 열린다. 냉전 이데올로기와 전쟁, 군사독재와 산업화라는 경로를 공유해온 아시아 국가들의 역사를 반추하는 자리다. 특히 남성 위주의 군부문화에서 소외된 여성과 타자의 목소리에 주목한 점이 인상적이다. 한국의 김추자 등 아시아
[culture highway] 한여름 밤의 서늘한 오케스트라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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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평범한 노동자였다. 기타를 만들던 노동자였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기타의 세계에선 명품으로 통하는 고급 브랜드 기타를 OEM으로 만들던 노동자, 기타 만드는 일로 잔뼈가 굵은 그이가 어느 날 기타의 선율에 홀딱 빠져 기타리스트의 길을 걷게 되었다는 영화 같은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 하지만 그에게 날아온 건 해고 통지였다.
음악을 사랑하노라 떠들던 박영호 사장은 창문을 만들면 노동자들이 딴생각을 한다며 톱밥과 페인트 냄새 가득한 공장에 창문을 내지 않았고, 돈을 아끼려 청소업체를 부르는 대신 노동자들을 굴뚝으로 올려 보내곤 했다. 고로 김경봉은 기타 만들던 손으로 굴뚝 청소까지 하는 ‘어쩌다 보니 만능 노동자’였던 것이다. 일회용 분진 마스크 하나로 일주일을 버텼고, 제때 지급되지 않는 목장갑을 빨아 쓰는 건 예사였다. 자본금 200만원으로 시작한 콜트콜텍이 세계 기타 시장의 30%를 차지하는 굴지의 기업이 되면서, 박영호에겐 1천억원이 넘는 돈이 굴러왔다. 반면 노동자에
[노순택의 사진의 털] 기타리스트 김경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