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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질병처럼 영화의 바이러스에 전염됐다.” 마하마트 살레 하룬 감독과의 대화에서 받은 의외의 놀라움은 그가 갖은 역경 속에서 오히려 낭만의 언어를 키워온 점이었다. 마하마트 살레 하룬 감독은 세계 최빈국이라는 고단한 수식어와 함께 지난해에는 트럼프 미 대통령의 입국 금지 조치로 몸살을 앓은 아프리카 차드공화국 출신 감독이다.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특별상을 받은 <다라트>(2006), 칸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을 받은 <절규하는 남자>(2010) 등 세계 영화계 내의 인지도 면에서 볼 때 여전히 차드의 ‘유일한’ 영화감독으로 불리기도 한다. 올해 디아스포라영화제에 초청된 신작 <프랑스에서의 한 철>은 아프리카 대륙을 떠나 프랑스 파리를 무대로 삼은 그의 첫 번째 작품. 종교 분쟁을 피해 두 자녀를 데리고 프랑스로 건너온 압바스와 그의 연인 캐롤의 이야기를 담았다. 그는 이미 두번 전주국제영화제를 찾은 적 있는 이력을 두고 “다음 생에는 한국인으
<프랑스에서의 한 철> 마하마트 살레 하룬 감독, “차드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 국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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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연으로 맺어진 가족만 가족이라 부를 수 있을까. 14살 소년 준호(이효제)에게 갑자기 닥친 혼란스러운 가족의 정의. 엄마가 사고로 의식을 잃은 후 남겨진 준호와 동생 성호(임태풍). 그리고 갑자기 관계를 맺게 된 성호의 친부(허준석)까지. 갈 곳을 잃은 준호의 성장의 시간을 지켜보는 영화 <홈>은 우리가 생각하는 가족의 정의를 다시 한번 되새겨보게 만드는 드라마다. 어린 준호가 겪는 마음의 비애, 꾹꾹 눌러담은 마음을 따라가는 섬세한 연출에 마음이 가는 드라마다. <우리들>(2016), <용순>(2017)을 통해 성장영화의 다양한 결을 선보인 제작사 아토ATO의 작품으로, 자전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시나리오를 써내려간 김종우 감독의 첫 장편 데뷔작이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비전 부문에 초청된 후 채 1년이 안 돼 개봉까지 오게 됐다. 데뷔작 개봉을 앞둔 심정이 궁금하다.
=개봉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좋고 아직 실감이 안 난다.
<홈> 김종우 감독, “이런 가족도 가족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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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에 이런 캐릭터는 처음이었다. <독전>의 마약중독자 보령은 근육질의 몸을 자랑하며 아시아 최대 마약조직을 이끄는 거물 진하림(김주혁)과 거의 대등한 파트너 관계를 보여준다. 한류 스타 이민호의 열성 팬으로, 그가 연애를 하고 있다는 것을 왜 말해주지 않았냐고 크게 화를 내는 예상치 못한 대사도 던진다. 보령을 연기한 배우 진서연은 왜 미처 그의 재능을 알아보지 못했는지 의구심이 들 만큼 압도적인 장악력을 보여준다. 2007년 연극 <클로저>로 데뷔해 드라마와 영화에 종종 얼굴을 비춘 그는 얼굴은 익숙하지만 이름은 잘 떠오르지 않는 배우였기 때문이다. “영화 시작 전과 종영 후 무대인사 관객 반응이 너무 달라 깜짝 놀란다”는 그를 만났다.
-평소에 친하게 지내던 동료 배우의 권유로 <독전>의 오디션을 보게 됐다고.
=시나리오를 보고 “야, 이걸 보고 왜 내 생각이 난 거야?”라고 했다. (웃음) 평소에 남을 의식하며 행동하거나 눈치를 보는
<독전> 진서연 - 압도적인 존재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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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희, <씨네21> 독자라면 낯선 이름이 아닐 것이다. 변호사이자 영화 제작자(영화사 봄 대표 시절 홍상수 감독의 <밤과낮>, 이윤기 감독의 <멋진 하루> 등 여러 영화를 제작했다)이기도 한 그는 지난해 봄, 2년째 써오던 <씨네21> 칼럼 ‘디스토피아로부터’를 돌연 중단했다. ‘장미전쟁’(조기대선)을 앞두고 안철수 대선후보의 비서실장으로 캠프에 합류하는 바람에 더이상 글을 쓸 수 없게 된 것이다. 법조계와 충무로에서 초식남으로 통하는 그가 어째서 맹수들이 바글거리는 선거판에, 그것도 두번씩(안철수 대선캠프에서 18, 19대 대선을 연달아 치렀다)이나 뛰어들었을까. “당시 이명박, 박근혜 정권이 연장되는 것만은 막고 싶었다. 두번의 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 주변에는 민주당을 포함해 그를 돕는 사람들이 많았던 반면, 안철수 의원 주변에는 그를 돕는 정치인이 적었던 까닭에 정치인은 아니지만 내가 도울 수 있을 거라고 판단했다.”
그런 그가
[소설 쓰는 영화인②] 조광희 변호사 - 다시 시작하기 위해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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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주(<82년생 김지영>), 히가시노 게이고(<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한강(<흰>), 무라카미 하루키(<버스데이 걸>), 김영탁(<곰탕>). 지난 4월 소설부문 베스트셀러 순위인데, 내로라하는 작가들 사이에서 김영탁이라는 이름이 유독 튀었다. 영화 <헬로우 고스트>(2010), <슬로우 비디오>(2014)를 연출했던 영화감독인 그가 내놓은 첫 소설이 베스트셀러에 오른 건 흔한 일은 아니었고 신기하기까지 했다. <곰탕>은 갑자기 툭 튀어나와 출간 두달 만에 파죽지세로 6쇄를 찍었고, 3만부나 팔렸다. 책 출간 전에 연재됐던 카카오페이지에선 5월 말 현재 50만9천뷰를 기록하고 있다. 이전 최고 기록이 약 10만뷰라고 하니 인기가 실감된다. 이 소설은 가까운 미래에 살고 있는 주인공 우환이 부산의 유명한 곰탕집에서 곰탕 만드는 법을 배우기 위해 과거로 돌아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직접 쓴 시
[소설 쓰는 영화인①] 김영탁 감독 - 현재를 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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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쓰는 건 결심이 필요한 일이다. 각기 다른 사연을 가지고 첫 소설을 쓴 영화인들이 있다. 한명은 소설 <리셋>과 산문집 <그래봐야 인생, 그래도 인생>을 연달아 낸 조광희 변호사고, 또 한명은 소설 <곰탕>을 쓴 김영탁 감독이다. 장르와 소재가 제각기 달라도 <리셋>도, <곰탕>도 조광희 변호사와 김영탁 감독을 쏙 빼닮았다. 다음장부터 소설을 쓰게 된 두 남자의 사연을 전한다.
소설 쓰는 영화인들, 김영탁 감독과 조광희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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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개의 오스카, 2개의 에미상, 8개의 그래미 어워드, 6개의 골든글로브, 5개의 영국 아카데미 어워드(BAFTA)…. <오션스8>에 출연하는 주연배우들의 휘황찬란한 ‘스펙’을 합치면 이런 결과가 나온다. 그야말로 올스타 대열전이다. 샌드라 불럭의 ‘데비 오션’부터 앤 해서웨이의 ‘다프네 클루거’까지, 관객의 눈을 호사롭게 할 <오션스8>의 여덟 캐릭터를 소개한다.
데비 오션(샌드라 불럭)
이전 세편의 ‘오션스’ 영화에 주인공으로 등장했던 대니 오션(조지 클루니)의 여동생. <오션스8>의 주인공으로, 1억5천만달러 상당의 카르티에 다이아몬드 목걸이 ‘투생’을 훔치려 한다. 그것도 미국 패션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멧 갈라 행사에서. 데비 오션을 연기하는 샌드라 불럭은 “지휘의 대가”라는 말로 데비를 설명한다. 그녀는 범죄의 판을 키우고, 대담하게 계획을 설계하며, 조력자가 될 이들의 재능을 알아보고 최고의 팀을 구성할 줄 아는 인물이다. 그런데 데비
<오션스8> 혹은 ‘팀 데비 오션’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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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들의 하이스트 무비가 온다. 샌드라 불럭, 케이트 블란쳇, 앤 해서웨이 등 8명의 스타배우들로 무장한 <오션스8>가 6월 13일 국내 개봉한다. 이 작품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영화의 역사 속으로 사라진 듯 보였던 <오션스> 시리즈의 스핀오프작이다. 이전 3부작의 연출을 맡은 스티븐 소더버그가 제작자로 물러나고, 감독 게리 로스를 비롯해 새로운 제작진이 합류한 <오션스8>는 어떤 매력을 가진 작품일까. 무엇보다도 시리즈 사상 처음으로 극의 중심부를 차지한 여성배우들의 활약이 기대된다. 지금까지 알려진 정보를을 토대로 <오션스8>에 관한 보고서를 작성해보았다. 돌아온 하이스트 무비가 당신의 마음까지 강탈할 수 있을지 주목해보시라.
팀 ‘오션’과의 이별 그리고 재회
“더이상의 <오션스> 시리즈는 없다.” 지난 2006년, 스티븐 소더버그는 <오션스13>이 시리즈의 마지막 영화가 될 거라고 선언했다. 그건 예고된 이
<오션스> 3부작의 스핀오프 <오션스8>는 어떻게 시작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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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작가는 노트북 PC에 지원서 양식을 띄워놓고 한숨을 쉬었다. 상반기 예술인 창작준비금 지원 사업. 운영주체인 한국예술인복지재단에서 정한 예술활동증명 기준을 충족하며, 소득과 재산이 일정 기준 이하인 저소득 예술인에게 조건에 부합하는 순서대로 일시금을 지급하는 복지 사업이다. 김 작가처럼 가난한 문화예술인을 위한 좋은 제도다. 하지만 지원금을 받기 위해서는 충분히 가난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번거로운 서류 준비 절차가 기다리고 있다. 그것이 김 작가의 한숨의 이유. 그는 잠시 노트북 덮개를 닫고 TV를 켰다. “<언러키 인 라이프>, 마지막 회를 시작합니다!” 사회자가 외치자 TV 화면에 그야말로 불운했던 출연자들의 사연이 빠르게 편집돼 소개됐다. 온갖 공개 오디션 프로그램이 난립한 가운데 모 방송사는 급기야 가장 운 나쁜 사람을 뽑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사회 속 불운한 이를 구제하고 위로한다는 제법 그럴싸한 방송 예고편이 나가자 각지에서 속칭 운발 안 좋은 이들이
언러키 인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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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닝>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직장 동료들은 앙투안(드니 메노세)이 성실하고 괜찮은 남자라고 평한다. 그러나 전처 미리암(레아 드루케)과 두 자녀의 의견은 다르다. 가정법원에 “그 사람을 만나기 싫다”는 11살 막내 줄리앙(토마 지오리아)의 편지가 제출되자, 앙투안과 변호인은 아내가 세뇌한 탓이라 주장한다. 아직 관객은 누가 진실을 말하는지 판단할 수 없다. 그러나 소년이 스크린에 나타나는 순간 답은 자명해진다. 아빠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엿듣는 줄리앙의 얼굴은 굳다 못해 바스라질 지경이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의 긴장은, 소년이 아빠를 겁낼 뿐 아니라 그로부터 엄마를 보호하고 싶어 하기 때문에 더 치솟는다. 아빠와 둘만 있는 차 안은 세상 어디보다 줄리앙에게 위험한 장소다. 안전벨트 경보음의 반복이 그 사실을 불길하게 환기시킨다.
05/20
이창동 감독의 영화는 내게 숨이 턱턱 차오르는 여름이다. 극중 배경이 전부 여름이란 의미는 아니다. <초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전망 없는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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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판도라의 상자 앞에서 돌아선 적이 없다. 그 속에 추하고 악한 것이 있지는 않을까 미리 걱정하거나 판단하는 태도는 아무래도 가짜 같다고, 이창동은 여겨왔다. 상자에 무엇이 들었는지는 정말이지 그도 모른다.
이를테면 작가 지망생 종수(유아인)가 쓴 탄원서가 그렇다. 폭행치상 및 공무방해로 법정에 선 아버지의 선처를 위해 “(피고는) 정다운 이웃이었습니다”라고 썼다. 그렇지 않다는 걸 잘 아는 마을 이장은 탄원서에 서명을 얹으며 말한다. “글 잘 쓰네.” 열어보지 않아도 내용물을 알 수 있는 상자처럼 결론이 정해져 있는 문장을 매끈하게 썼다는 얘기다. 아버지를 미화해서라기보다 결론을 정해놓았다는 점에서 이 탄원서는 가짜다(일단 결론이 정해지면 목표를 향해 맹렬히 달려가는 스타일의 저널리스트- 이건 긍정적인 의미다- 가 종수 아버지로 분했다). 종수가 하고 싶은 건 고유성을 지닌 예술인데 말이다. 메타영화로 볼 때 <버닝>은 <박하사탕>(1999)의 형식 실
<버닝>, 관계와 실존에 대한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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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파이와 블루투스의 기초가 되는 아이디어를 처음 고안한 과학자. 이 정도 업적이라면 교과서에서 중요하게 다뤄질 법도 하지만 역사는 이 발명가에게 주목하지 않았다. 대신 백설공주와 캣우먼에 영감을 준 미모의 할리우드 여배우로 그를 기억했다. <밤쉘>은 “나는 원래 외모가 아닌 두뇌에 관심이 많다”며 1990년 당시 <포브스> 기자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던 헤디 라마의 육성 인터뷰를 토대로 그의 인생을 되짚는 다큐멘터리다. 영화를 보고 나면 더 궁금해지는 그의 삶을 정리했다.
편견의 시작
1914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난 헤디 라마는 어렸을 때부터 발레와 피아노, 다양한 언어를 배웠지만 학교 공부에 큰 뜻을 두지는 않았다. 대신 영화와 영화배우에 관심을 보이며 관련 잡지를 모으고, 연기 경험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영화사에 직접 찾아가 자신을 캐스팅해 달라고 설득하던 당찬 소녀였다. 연기를 좀더 제대로 배우기 위해 독일 베를린으로 건너간 후 찍게 된 &
<밤쉘>의 헤디 라마, 천재 과학자와 아름다운 배우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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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 하워드 감독의 <한 솔로: 스타워즈 스토리>는 1977년부터 이어져온 조지 루카스 감독의 <스타워즈> 시리즈 중 <스타워즈 에피소드3: 시스의 복수>(2005)와 <스타워즈 에피소드4: 새로운 희망>(1977) 사이의 시간대를 다룬 영화다. 평화의 공화국과 제다이들이 다스 베이더와 제국군의 손에 무너지고 이어 길고 긴 암흑기가 찾아온다. 우주 곳곳에서 범죄조직이 창궐하는 가운데 우주 최고의 파일럿을 꿈꾸던 한 솔로가 모험을 시작하게 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이번 영화는 시리즈의 방대한 세계관 안에서 인물과 배경, 사건 등 온갖 설정이 이전 시리즈와 촘촘히 엮여 있어 여기 소개하는 별들의 전쟁에 얽힌 역사를 알고 보면 영화를 더욱 풍부하게 즐길 수 있다. 이 글은 기존 시리즈는 물론 이번 영화의 스포일러를 일부 포함하고 있다.
밀레니엄 팔콘은 화물선이다
사악한 프록시마 레이디가 지배하는 코렐리안 행성은 한(앨든 이렌리치)의 출생지다.
<한 솔로: 스타워즈 스토리>에 관한 소소한 정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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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의 결말에 대한 언급이 있습니다.
이창동 감독은 다소 피곤해 보였다. 칸국제영화제(이하 칸영화제)에 참석한 뒤 파리에 잠깐 들러 피에르 르시앙(영화 프로듀서이자 칸영화제 자문위원)의 장례식에 갔다가 입국하자마자 무수히 많은 인터뷰와 관객과의 대화를 치르고 있는 살인적인 일정 때문만은 아닌 듯했다. 상찬 일색인 칸이나 영화 속 다양한 메타포처럼 반응이 가지각색인 이곳이나 그에게 쉽게 내릴 수 없는, 새로운 고민거리를 던져준 것으로 보였다. 분명한 건 그가 영화를 만들기 전에 ‘지금 시대에서 왜 이 이야기를 해야 하는가’라는 이야기꾼으로서 근원적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고,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이 <버닝>을 만들게 된 동력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것은 <버닝>을 감독의 전작과 다른 지점에 옮겨놓았다. 영화를 보면서 적어도 이창동 감독의 이 영화에선 시제(時制)가 중요하지 않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그 명제대로라면 ‘지금 시대에서 왜 이 이야기를 해야
<버닝> 이창동 감독, "지금 우리는 벤의 세계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