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추석에는 역대급 ‘한국영화 대첩’이 벌어진다. 각 투자·배급사의 추석 라인업을 대표하는, 9월 19일 개봉하는 <협상> <명당> <안시성>이 연달아 언론 시사를 열며 그동안 감춰두었던 패를 꺼내 보였다. 시사가 열리는 극장마다 로비는 영화 관계자와 기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이들 작품보다 한주 앞서 9월 12일 개봉한 <물괴>까지, 올 추석 극장가에서 만날 수 있는 주요 한국영화 네편이 모두 언론에 공개됐다. 추석 연휴 직후인 9월 26일 개봉하는 조원희 감독의 <원더풀 고스트> 또한 관객과의 만남을 준비하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할 것으로 예상되는 2018년 추석 연휴 극장가의 향방을 짐작해보기에 이보다 더 적기가 있을까. <씨네21>은 다섯편의 주요 추석영화 중 네편의 감독을 만났다. <안시성>의 김광식 감독, <협상>의 이종석 감독, <원더풀 고스트>의 조원희 감독,
추석, 한국영화 뭐 볼까? ① ~ ④
-
*<살아남은 아이>와 <죄 많은 소녀>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잉글랜드 도싯의 체실 비치는 해안 어디께냐에 따라 자갈의 마모 정도가 달라 캄캄한 밤에 닿아도 어부들이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있다는 곳이다. 그러나 막 체실 비치에 도착한 1962년의 신혼부부 플로렌스(시얼샤 로넌)과 에드워드(빌리 하울)는 경우가 다르다. 둘은 삶의 희망찬 출발점에 서 있다고 믿지만 하루도 못 돼 의심에 사로 잡힌다. 순진하고 자존심 강한 젊은이들은 한번의 어긋남에 너무 멀리 내다보고 성급한 결론을 낸다. 앞으로도 당신이 원하는 걸 나는 못 채워줄 거고 그러면 대화가 줄 거야. 우린 불행해질 테고 내가 그 원흉이 되겠지? 영화를 함축한 한숏에서, 플로렌스는 해변에 부려진 조각배에 올라 마치 떠날 준비를 마친 것처럼 보인다. 분노한 에드워드는 소금기둥이 된 양 우두커니 서 있다. 도미닉 쿡 감독은 영화 내내 두 인물의 거리와 배치 구도에 정성을 들였다. 이 장면에서 프레임 밖으로 나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애도자들
-
슬럼프에 빠진 코미디 작가가 있다. 그는 지난 1년간 상품성도 없고 그렇다고 작품성이 있는 것도 아닌 소설만 드문드문 발표했다. 그나마 소속된 코미디 월간지라도 있다는 것이 유일한 생명줄인데 어느 날 편집장으로부터 최후통찹을 받는다. “다가오는 10주년 특집호에 한줄이라도 글이 채택되지 않으면 재계약은 없다”고. 더이상 뭉개고 있을 수 없어 남은 일주일 동안 필사적으로 글을 쓰려 하지만 스스로 ‘비장의 카드’로 생각했던 원고를 잃어버리고 만다. 마지막으로 머무른 카페를 뒤져보고 지구대를 찾아 수사도 의뢰하지만 원고는 찾을 수가 없고 결국 인터넷 검색을 통해 원고를 찾아보려 하지만 잡히는 단서라고는 ‘블로그’뿐. 그가 카페에 원고를 가지고 있던 시간에 카페에 머물렀던 여성의 블로그를 단서랍시고 뒤지기 시작한 그는 자신의 현실세계와 블로그 주인장이 기가 막힌 인연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블로그와 현실, 꿈과 현실이 중첩되며 주인공의 일주일간 행적을 따라가는 <러블로그
씨네21 추천도서 <러블로그>
-
2016년 단편 <패리스 힐튼을 찾습니다>로 문학동네신인상을 수상하며 데뷔한 박상영 작가의 첫 번째 소설집. 타인을 비평하는 일이 쉽고도 재미있기 때문에, 가끔은 거울을 보고 있는 중이라는 사실을 잊곤 한다.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라는 제목의 이 소설집에 실린 단편소설들은 서로 느슨하게 연결을 맺고 있는데, 영화를 포함한 영상과 아이돌 연습생, SNS가 그것들을 연결짓는다. 내가 보고 있는 것과 나 자신의 거리가 지나칠 정도로 가깝게 느껴지기 때문에 “우리는 세상의 작은 점조차 되지 못했다!”는 깨달음이 모든 사람에게 거대하게 다가오는 시대다. 그 세대의 풍경화.
10월 4일로 다가온 부산국제영화제 개막과는 무관하지만, 박상영의 데뷔작 <패리스 힐튼을 찾습니다>와 <부산국제영화제>는 순서대로 읽으면 재미있다. <패리스 힐튼을 찾습니다>에서 패리스는 개 이름이다. 인스타그램 프로필에 ‘모델이자 영화감독,
씨네21 추천도서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
-
-
넷플릭스가 한국에 상륙하면서 새로운 이야기의 가능성도 가져온 모양이다. 콜럼비아의 마약 조직 ‘메데인 카르텔’과 그 수장인 파블로 에스코바르의 이야기로 시작해 다른 카르텔의 이야기로 뻗어나가는 <나르코스>를 아는 사람이라면 <슬픈 열대>가 마치 스핀오프처럼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주인공은 전직 북한 특수요원 권순이다. 현재 콜럼비아에 머물고 있는데, 마약왕 파블로 에스코바르의 조직 ‘메데인 카르텔’의 용병이자 살인병기로 살고 있다. 국가에서 내리는 명령에 익숙한 그녀에게 새로운 조직의 룰에 적응하는 일은 어려울 것도 없다. 하지만 침몰하는 배에서 소녀들을 구하지 못한 트라우마를 안고 있다. 순이는 작전 수행 중 카르텔간에 벌어진 전쟁의 희생양이 된 소녀 리타를 발견해 데려온다. 거의 죽을 위기에 처한 리타는 순이를 쉽게 따르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콜럼비아 대한민국 대사관 외무관이라는 정덕진이 그녀에게 접근한다. 주기적으로 어떻게 지내는지만 확인하면 된다는
씨네21 추천도서 <슬픈 열대>
-
산사를 여행하는 유홍준의 길은 산사 밖 진입로에서부터 시작한다. 1995년 광주비엔날레에 참여한 외국인 커미셔너들에게 한국 문화의 저력을 보여주고 싶어 순천 선암사를 함께 찾은 유홍준은 선암사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진입로를 따라 30분을 걸어 올라간다. “우리나라 산사 건축은 진입로로부터 시작된다. 산사의 진입로는 그 자체가 건축적, 조정적 의미를 지닌 산사의 얼굴”이라고 믿는 그는 친구 캐서린으로부터 산사 진입로에 대한 품평을 듣고 감탄한다. “길이 아름답고 인간적인 크기입니다. 특히 계곡을 따라 돌아가도록 멋있게 디자인되어 있네요.” 한국 산사의 진입로가 인간적인 크기이며 인공이 가해지지 않았음에도 디자인 개념이 들어가 있다는 생각을 외국인의 시선으로 확인한 저자가 얼마나 뿌듯해했는지는 책에도 잘 드러나 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산사 순례>(이하 <산사 순례>)는 지난 6월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이 세계유산목록에 등재된 것을 기념으로 출간되었다.
씨네21 추천도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산사 순례>
-
작가는 말이 아닌 글로 하고 싶은 말을 이미 했기에, 소설이 끝난 후 작가와 시작하는 인터뷰는 무용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제때 던져진 정확한 질문과 답이 이어지는 인터뷰는 앞선 텍스트의 해석을 풍성하게 만든다. 문지문학상 작품집 <소설 보다>는 소설 뒤에 소설가와 인터뷰이의 대담을 붙여놓았다. 김봉곤 소설을 읽은 후 “소설을 읽고 ‘기분’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기분은 감정과 달리 휘발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김봉곤 작가에게 기분이란 어떤 것인가요, 그것은 감정과 어떻게 다른가요”라는 질문이 던져지고 이에 “오, 정말이지 저와 같은 기분관을 가지고 계시군요!”라고 작가는 신이 나 답한다. 느낌표에 대담 당시의 화목한 ‘기분’까지 묻어난다. 조남주 작가에게 <82년생 김지영> 출간 후 이어졌던 논쟁(이를테면 아이돌이 이 소설을 읽었다는 것만으로 남성 팬에게 비난을 받은)에 대한 질문 역시 독자가 궁금해했던 영역이라 흥미롭게 읽힌다. 마침 영화 <8
씨네21 추천도서 <소설 보다: 봄-여름 2018>
-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소설 <좀도둑 가족>을 내면서 “영화를 먼저 보고 소설을 읽고 다시 영화를 보는 순서를 추천한다”고 했다. 소설을 읽다보면 그러한 순서를 작가가 추천한 이유를 납득하게 된다. 소설은 영화와 거의 같은 순서로 이야기를 진행한다. 영화에서 미묘하게 표현되었던 인물의 표정이나 대사를 소설에서는 훨씬 더 직접적으로 설명해준다. 예를 들어 둘 중 누가 회사를 관둘 것인지 다투던 동료에게 린의 존재로 협박을 당한 노부요가 일 대신 린을 선택하는 장면에서 관객은 노부요의 마음을 자세히 알 수 없다. 단지 ‘엄마’가 된 노부요에게 유리가 무척 중요해졌다는 것만 미루어 짐작할 뿐이다. 반면 소설 속 노부요는 지키고 싶은 것이 생긴 자신을 엄마라고 정확히 자각한다. 그리고 해고된 후 ‘나만 바라보고 있는 가족’들의 얼굴을 떠올린다. 동네의 작은 상점에서 물건을 훔치던 쇼타가 “동생에게는 시키지 마라”라는 주인의 말을 들었을 때의 마음 역시 소설은 자세히 묘사한다. ‘할아
씨네21 추천도서 <좀도둑 가족>
-
연결되어 있던 사람들과 연락을 끊은 후, 외로울 줄 알았는데 해방감이 더 컸다. “대부분의 사람과 연락을 끊었고 (중략) 듣기 싫은 소리를 듣기 싫어했고, 껄끄러워지고 싶지 않았고, 화내고 싶지 않았기에 나는 내가 없어지는 쪽을 택했다. 내가 선명해지는 동시에 내가 사라지는 기분은 아주 근사했다.”(김봉곤, <시절과 기분> 중) 아, 무슨 기분인지 너무나 잘 알 것 같다. 고향을 떠나 이전의 자신과 관련 없는 일을 하며 새로운 사람들과 관계하기 시작한 주인공은 과거의 사람들에게 내가 ‘사라짐’으로써 한층 자신이 선명해짐을 느낀다. 때로 나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진짜의 나를 흐릿하게 만든다. 9월의 <씨네21> 북엔즈 서가에는 이처럼 마음과 기분, 그날의 분위기를 문장으로 낚아올린 책들이 모였다. 앞서 소개한 김봉곤의 <시절과 기분>이 수록된 소설집은 문학과지성사의 <소설 보다: 봄-여름 2018>이다. 문고본의 얇은 분량으로 봄과 여름을 닮
씨네21 추천도서 - <씨네21>이 추천하는 9월의 책
-
베니스국제영화제의 상징, 황금사자상은 <로마>를 연출한 멕시코 감독 알폰소 쿠아론에게 돌아갔다. 지난 9월 8일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제75회 베니스국제영화제 폐막식이 열렸다. 황금사자상 수상자로 호명된 알폰소 쿠아론은 영화의 제작진과 자신의 영화를 투자·제작해준 넷플릭스의 최고 콘텐츠 책임자 테드 서랜도스에게 감사를 전했다. 1970년대 초 멕시코시티를 배경으로 하는 흑백영화 <로마>는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자전적 경험이 담겨 있는 작품으로, 베니스에서 첫 공개된 뒤 전세계 평단의 찬사를 받고 있다. 이 작품은 유럽의 3대 메이저 국제영화제 중 처음으로 미국 인터넷 스트리밍 기업 넷플릭스에 최고상을 안겨준 극영화라는 역사적 기록을 남겼다. 이 밖에 프랑스 감독 자크 오디아르가 신작 <시스터스 브러더스>로 은사자상을, 그리스 감독 요르고스 란티모스가 <더 페이버릿>으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했으며, 볼비컵 남우주연상은 <엣 이터니티스 게이
넷플릭스에 최초로 국제영화제 최고상을 안겨준 영화 <로마>
-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해준 작품.” <안시성>이 필모그래피에서 차지하는 의미를 묻자, 배성우는 이렇게 답했다. 영화 개봉은 잠시 동안이지만, 오랫동안 함께할 동료를 얻는 건 그처럼 많은 영화에 출연한 배우에게도 흔치 않은 기회라는 말과 함께. 당의 20만 대군에 맞서 안시성을 지켜내는 사람들의 투쟁을 다룬 영화 <안시성>은 팀플레이가 무엇보다 중요한 영화였다. 성주 양만춘(조인성)의 부관 추수지를 연기하는 배성우와 안시성을 지키는 기마대장 파소로 분한 엄태구는 ‘팀 안시성’의 밑그림을 완성하는 중요한 퍼즐이다. 그런 그들이 혹독하지만 끈끈했던 <안시성>의 추억을 말한다.
-<안시성>은 전투 장면이 주가 되는 사극 액션영화다. 최근의 한국영화에서 보기 드문 설정인데.
=배성우_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다. 안시성 전투라고 하면 우리 민족의 역사 가운데서도 가장 호쾌했던 승리의 전투잖나. 드라마보다 전투에 몰입하는 사극이라는 점이 흥미롭
<안시성> 배성우·엄태구 - 쉼 없이 말 달리다
-
사물(남주혁)은 ‘고구려의 반역자’로 지칭되는 양만춘(조인성)을 고구려 왕 연개소문(유오성)의 명령으로 처단하러 간다. 그런데 가까이서 본 양만춘에게 무사로, 또 인간으로 매혹된다. 양만춘은 사물의 의도를 알고도 그를 옆에 둔다. 둘의 이 규정할 수 없는 관계는 큰 전투의 흐름 속, <안시성>의 드라마를 만들어주는 절대적인 열쇠다. 김광식 감독은 “사물에게서 어린 양만춘의 모습이 비치도록, 서로가 서로를 투영하도록, 그래서 조인성을 연상하게 하는 남주혁을 캐스팅했다”고 말했다.
-<쌍화점>(2008)에서 고려 말 호위무사 홍림으로 나왔으니, 사극은 10년만의 출연이다.
=조인성_ 사극이 부담스럽다기보다는 규모가 부담스러웠다. 양만춘과 조인성의 매칭에 대한 물음표와 편견 속에서 시작했고, 나 역시 ‘내가 맞을까’, ‘해야 하나’ 하는 고민이 컸다. 그걸 보고 한재림 감독(전작 <더 킹>(2016) 연출)이 “해야 할 때가 됐다” 하시더라. (웃음
<안시성> 조인성·남주혁 - 전쟁 같던 촬영의 추억
-
안시성 전투는 지금으로부터 1400여년 전, 동아시아 역사에서 가장 기록할 만한 승리의 역사다. 성의 입지를 활용한 지략과 전술로 6배에 달하는 당의 군대에 맞서 승리로 이끌었으며,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을 방불케 하는 전투였다. 당시 당 태종이 이끄는 대군에 맞서 싸운 안시성 성주가 양만춘(조인성)이었다. 88일간 펼쳐진 치열한 전투를 2018년의 스크린에 재현하기까지 지난겨울 7개월간의 촬영과 총 제작비 220억원의 제작비가 투입된 블록버스터다. 스크린에서 조명되지 않았던 고구려 전투를 경험하게 만드는 스펙터클한 촬영과 미술의 완성도가 135분이라는 러닝타임을 잊게 만든다. 특히 안시성의 재현과 네 차례에 걸친 전투 신 구현으로 드러난, 사람의 목숨이 나뒹구는 전쟁터 한가운데서도 ‘싸움’이 아닌 ‘평화’를 지키려 했던 성주의 철학은 오늘날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안시성>의 ‘전쟁 같은’ 촬영에 뛰어든 조인성, 남주혁, 배성우, 엄태구 배우를 만났다. 전장의 한가운데서,
<안시성> 조인성·남주혁·배성우·엄태구 - 고구려 액션 히어로
-
8월 29일부터 9월 8일까지 열린 베니스국제영화제의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은 <로마>를 연출한 알폰소 쿠아론 감독에게 돌아갔다. 올해 베니스국제영화제는 톱스타와 유명 감독들의 신작이 대거 공개된 프로그램 구성으로 평론가들과 대중의 환호를 받았다. 또 하나의 대형 영화제가 그 바통을 이어받아 영화광들의 시선을 독차지했으니, 바로 9월 6일부터 9월 16일까지 개최된 토론토국제영화제다.
토론토국제영화제는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만큼이나 주요한 행사로 손꼽힌다. <노예 12년>, <룸>, <라라랜드>, <쓰리 빌보드> 등 토론토국제영화제에서 관객상을 수상한 작품들을 눈여겨보면 이 영화제와 아카데미 시상식의 연관성이 얼마나 짙은지 알 수 있다.
올해 토론토국제영화제에선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로마>뿐만 아니라, 베니스국제영화제를 뜨겁게 달궜던 데이미언 셔젤 감독의 <퍼스트맨>, 브래들리 쿠퍼의 연출 데뷔작 <
지금 가장 핫한 영화들, 놓쳐선 안 될 2018 토론토국제영화제 화제작 14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