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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어느 가족>으로 여름 극장가를 찾았던 키키 키린이 9월 15일 세상을 떠났다. 향년 75세.
일본의 국민 배우로 칭송받는 그녀는 지난 2004년 유방암을 진단받은 후 14년간 암과 싸우며 연기 활동을 이어왔다. 특히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를 눈여겨본 관객들이라면 그녀의 얼굴을 잊을 수 없을 터. 18세에 1961년 극단 분가쿠좌에 입단하며 연기를 시작한 키키 키린은 1962년 드라마 <일곱 명의 손자>를 통해 카메라 앞에 서기 시작했고, 1974년 TBS 드라마 <데리우치 간타로 일가>에서 간타로(고바야시 아세)의 어머니를 연기하며 대중들에게 얼굴을 알렸다. 당시 노모 역할을 맡은 그녀의 나이는 33세. 아들 역을 맡았던 고바야시 아세보다 10살 어린 나이였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태풍이 지나가고>를 발표했던 지난 2016년 “영화의 몇몇 장면에서 키키 키린은 정말 내 어머니
최근 생을 마감한 키키 키린, 놓쳐선 안 될 그녀의 연기를 담은 영화 4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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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5일, 힙스터스러운 선글라스를 낀 피아니스트 크리스티안 지메르만의 얼굴이 프린트된 앨범이 세상에 나왔다. 사이먼 래틀 경이 이끄는 베를린 필과 함께한 탄생 100주년을 맞은 레너드 번스타인의 교향곡 2번 《The Age of Anxiety》 음반이다. 도이치 그라모폰 (흔히 말하는 노란 딱지)에서 출시된 음반을 구매하려다가, 크리스티안 지메르만의 인터뷰를 들었다. 초연에 함께했던 순간, 언젠가 반드시 꼭 녹음해달라고 부탁했다는 번스타인과의 약속을 지켜 기쁘다고 말하는 지메르만의 목소리에는 특별한 감정이 묻어 있었다. 우리 집에 불이 난다거나 자연재해가 일어난다면 가장 먼저 챙길 음반 중 하나는 번스타인/지메르만이 함께한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2번이다. 말러나 쇼스타코비치, 브루크너 같은 대편성 오케스트라의 실황을 주기적으로 듣지 않으면 금단증상에 시달리는데, 가을이 다가오고 바람이 서늘해지면 브람스가 절실하게 그리워진다. 이 음반은 거의 영적인 에너지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레너드 번스타인 탄생 100주년, 그의 영화적 자취를 더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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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 출연 샘 닐, 로라 던, 제프 골드블럼, 리처드 애튼버러, 새뮤얼 L. 잭슨 / 제작연도 1993년
초등학생 시절부터 만화를 그려오다가 이제는 어엿한 만화가가 된 나는 영화를 볼 때 관찰자적인 자세가 된다. 영화 속에 빠져들어 주인공과 함께 웃고 울며 감상에 젖는 일이 거의 없다는 얘기다. 어려서부터 영화 뒷얘기에 관심이 많아 각종 잡지와 메이킹 다큐멘터리를 보며 영화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 의해 창작되어진 것인지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던 터였다. 그래서 아주 감정적으로 격한 장면이나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장면이 나와도 배우들의 연기가 좋다든지 화면 구도가 참 아름답다든지 조명이 근사하다든지 따위를 생각하곤 하는 것이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부분은 특수효과다. 지금이야 거의 모두 컴퓨터로 만들어지니 큰 감흥이 없다만 컴퓨터 이전 시절의 영화에는 특수효과맨들의 인장이 영화 곳곳에 아주 깊이 박혀 있었다. 톰 새비니가 고안해낸 좀비 분장, 크리스 월러스의
조경규 만화가의 <쥬라기 공원> 이 영화의 모든 것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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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운터스. ‘재일 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 모임’, 일명 재특회와 혼신의 힘을 다해 싸웠던 일본의 반인종주의, 반소수자 혐오 시민운동의 이름이다. 카운터스는 저항 시위를 조직함으로써 혐오세력의 기세를 한풀 꺾고 혐오표현금지법 제정을 이뤄냈다. 최근 화제가 됐던 영화 <카운터스>(2017)는 그 투쟁 과정의 일부를 담은 작업이다.
이 다큐멘터리는 그러나 조기 종영됐다. 개봉 직후 주인공 다카하시의 성폭력 가해 사실이 국내에 폭로되면서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고, 이에 배급사가 신속하게 대응한 것이다. 피해 사실을 확인하고 피해자와 소통을 시도하면서 동시에 작품과 관련된 행사를 취소하고 조기 종영을 선택한 배급사의 대처는 모범적이라 할 만하다. 하지만 앞으로 공동체 상영이나 VOD 배급도 불가능할 것이라는 예측 앞에서는 머리가 복잡해진다. 작품을 둘러싸고 성/폭력 사건이 벌어졌을 때, 혹은 어떤 윤리적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 작품의 완전한 말소와 폐기가 우리가 선택할 수
‘<카운터스> 케이스’에 담긴 사회운동의 딜레마와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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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충무로에 혜성처럼 등장했다. 한해 제작된 120편의 한국영화 중에서 관객수 5만명을 넘긴 영화가 15편이 채 되지 않았던 암흑기에, 그의 데뷔작은 46만여명이나 불러모았다. 서울의 명보극장 한 군데에서만 말이다. 통기타 음악, 청바지, 생맥주 등 청년 문화 바람을 일으켰고, “경아, 오랜만에 누워보는군”이라는 대사가 유신 시대에 억눌렸던 대중의 감수성을 건드린 이 영화는 <별들의 고향>(1974)이다. 20살에 당대 최고의 스튜디오인 신필름에 입사해 10년 가까이 신상옥 감독의 연출부로 일하며 어깨너머로 영화 연출을 배운 게 전부인 이장호 감독이 만든 작품이다. 당시 그의 나이는 29살이었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가 선정한 한국영화 회고전의 주인공은 이장호 감독이다. 데뷔작 <별들의 고향>을 포함해 <바람 불어 좋은 날>(1980), <어둠의 자식들>(1981), <과부춤>(1983), <바보선언>(1983),
[부산국제영화제⑧]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 회고전 이장호 감독, <별들의 고향> <바람 불어 좋은 날>부터 최근작 <시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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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부산국제영화제는 필리핀영화 100주년을 축하하는 의미를 담아 특별전을 마련했다. 지난 2009년엔 한국과 필리핀 수교 60주년을 맞아 ‘필리핀 독립영화의 계보학’이란 특별전을 마련해 총 14편의 영화를 소개한 바 있다. 마누엘 콘데, 리노 브로카, 에디 로메로 등 필리핀을 대표하는 거장부터, 당시 필리핀 최초로 칸국제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하며 주목받기 시작한 브리얀테 멘도사와 라브 디아즈, 그리고 독특한 영화세계를 지닌 신예 작가로 소개된 라야 마틴의 영화들로 상영작을 구성해 필리핀 독립영화의 정신을 담아내려는 의도를 명확히 했었다.
‘국가(적)영화’라는 개념
10년 전의 특별전을 참고해, 이번 특별전을 준비하면서 집중적으로 논의하고 고민했던 지점은 필리핀영화 100년을 어떻게 조망할 것인가의 문제였는데, 필리핀영화 100주년을 준비하고 있는 특별위원회 소위원회와의 논의를 거쳐 ‘국가(적)영화’(National Cinema)라는 개념으로 100년을 관통해보자는 데 의견을
[부산국제영화제⑦] 필리핀영화 100주년 특별전 – 영화, 국가와 역사에 응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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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첫선을 보일 한국영화 가운데 올해 유독 눈에 띄는 특징은 10대 소녀가 주인공인 영화가 많다는 점이다. <벌새> <선희와 슬기> <영주> <영하의 바람> <보희와 녹양> <나는보리> <계절과 계절 사이> 등이 이런 계열에 속하는데 소녀들의 이야기라고 다 비슷한 것은 아니다. <벌새>는 사랑을 갈구하는 중학생 소녀를 그린 작품인데 1994년 성수대교 붕괴라는 실제 사건과 미묘한 방식으로 연결된다. 부모는 바쁘고 오빠는 폭력적이며 언니는 바깥으로 나도는 어느 가족의 막내인 소녀는 누군가의 보살핌을 갈구하지만 세상은 소녀의 소망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영화는 우리가 청소년기에 경험한 일들을 자연스레 상기시킨다. 반면 <선희와 슬기>의 소녀는 또래 집단에 끼고 싶은 여고생이다. 소녀는 친구들에게 잘 보이고 싶어 거짓말을 하는데 그것이 의도치 않은 결과를 낳는다. 친구의 자살
[부산국제영화제⑥] 부산의 한국영화 신작들, 10대 소녀의 삶에 주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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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의 갈비뼈> The Rib
장웨이 / 중국 / 2018년 / 85분 / 아시아영화의 창
한위는 남자로 태어났지만 여자로 살아가고 있다. 화장을 하고 빨간 드레스를 입은 채 트랜스 바에 가서 친구와 함께 춤추는 게 일상의 유일한 낙이다. 그는 성전환 수술을 받아 진짜 여자가 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수술은 부모의 동의가 필요하다. 그의 어머니는 일찍이 세상을 떠났고 아버지는 연락이 끊긴 지 오래다. 한위는 수술 허락을 받기 위해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아버지를 찾아간다.
성인이지만 자신의 몸을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현실은 갑갑하다. “좋은 여자 만나 자식을 낳아야 한다”고 믿는 아버지까지 설득해야 하니 첩첩산중이 따로 없다. 아들의 커밍아웃을 이해하는 대신 분노한 아버지로부터 기대할 만한 게 거의 없는 현실에서 한위의 마음만 새카맣게 타들어간다. 아버지는 그의 집에 들이닥쳐 그가 입는 여성 옷가지를 버리고, 그걸 본 친구는 한위에게 함께 사는 집에서 나가달라고 한
[부산국제영화제 추천작⑤] <아담의 갈비뼈> <아무것도 우리를 멈출 수 없다> <마음의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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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워바디> Our Body
한가람 / 한국 / 2018년 / 94분 / 한국영화의 오늘-비전
행정고시를 준비하느라 20대 시절을 책상 앞에서만 보낸 자영(최희서). 삼십 평생 공부 말고는 한 게 없는 자영은 문득 자신에게 남은 게 무기력한 몸과 마음뿐임을 깨닫는다. 남자친구마저 ‘인간답게 살아야 하지 않겠냐’며 무심히 이별을 통보한 어느 날, 자영은 달리기를 하는 또래 여자 현주(안지혜)를 보고 그녀의 건강한 몸에 끌린다. 현주를 따라 달리기 동호회에 들어간 자영은 변하기 시작한다. 무거웠던 몸은 가벼워지고, 삶의 의욕도 붙는다. 취업을 하기엔 나이가 많다며 섣불리 포기하고 스스로를 자조했던 모습은 이제 더이상 찾아볼 수 없다. 달리기를 통해 얻은 자신감은 건강하고 아름다운 몸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고, 그것은 다시 섹슈얼리티에 대한 자각으로 이어진다. <아워바디>는 안정적인 미래를 위해 앞만 보고 맹렬히 달려왔지만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좌절을 경험한 청
[부산국제영화제 추천작④] <아워바디> <인 마이 룸> <라스트 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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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렛미폴> Let Me Fall
발드빈 조포니아손 / 아이슬란드, 핀란드, 독일 / 2018년 / 136분 / 월드 시네마
영화의 첫 장면에는 범죄를 저지르는 청소년들이 등장한다. 그 가운데 순진한 표정을 한 10대 소녀 매그니아가 있다. 평범한 학생이었던 매그니아의 삶은 친구 스텔라를 만나면서 점차 나락으로 떨어진다. 늘어선 술병, 자욱한 담배 연기, 질주하는 파티가 감각적인 화면과 사운드로 재구성된다. 청춘의 방황을 그린 수많은 영화가 떠오르지만 <렛미폴>의 시도는 일탈을 그리는 여느 영화와 맥락을 달리한다. <렛미폴>은 돌이킬 수 없는 무너짐의 순간들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그 심연의 끝이 어디인지 집요하게 추적한다. 발드빈 조포니아손 감독은 실제 약물 중독 청소년의 가족들과 인터뷰를 해 이를 바탕으로 시나리오를 썼다. 고요한 아이슬란드의 수도 레이캬비크를 배경으로, 약물 중독에 처참히 망가지는 과정을 섬세하게 연기한 주연배우들의 연기가 관객
[부산국제영화제 추천작③] <렛미폴> <신들의 땅> <내 몸의 기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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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 Young-ju
차성덕 / 한국 / 2018년 / 100분 / 한국영화의 오늘-비전
영주(김향기)는 자기보다는 사고뭉치 동생 영인(탕준상)을 보살피며 사는 데 자부심을 느끼고 “이제 엄마 같은 것 필요 없다”고 당차게 말하는 18살 소녀 가장이다. 하지만 영인이 큰 사고를 쳐서 합의금을 내지 않으면 소년원에 갈 위기에 처하고 설상가상으로 대출 사기까지 당하면서 기댈 곳이 부재한 현실을 자각한다. 우연히 부모의 교통사고 관련 판결문을 읽다가 가해자의 집 주소를 발견한 영주는 무작정 그들을 찾아가고, 상문(유재명)과 향숙(김호정)의 두부 가게에서 자신의 정체를 숨긴 채 아르바이트를 시작한다. 하지만 동생의 합의금도 내주고 친딸처럼 대해주며 검정고시 준비까지 도와주는 부부의 친절함에 영주는 처음과 다른 마음을 갖게 된다.
일찍 돌아가신 친부모보다 그 부모를 죽게 만든 사람이 자신에게 더 필요한 존재라고 느끼게 된다는 감정선이 꽤 파격적이지만, <영주>
[부산국제영화제 추천작②] <영주> <여자의 비애> <소피아>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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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버나움> Capernaum
나딘 라바키 / 레바논, 영국 / 2018년 / 120분 / 아시아영화의 창
베이루트의 슬럼가에는 부모로부터 어떤 보살핌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넘쳐난다. 출생 신분증도 없는 아이들은 생존을 위해 무엇이든 해야 한다. 12살 소년 자인(자인 알 라피아)도 마찬가지다. 영화는 사람을 찌른 죄로 구속된 자인이 법정에서 자신의 부모를 고발하는 장면에서 출발한다. 자인의 증언을 통해 숨겨진 사연을 밝혀나가는 구성이지만 특별히 사건을 감추거나 추리를 유도하기 위한 구성은 아니다. 그보다 마땅히 보호받아야 할 존재들이 제도의 바깥에 방치된 채 고통받을 때 연민과 분노를 일으키기 위한 장치에 가깝다. 자인은 동생들을 보호하고자 하지만 부모는 돈을 받고 어린 여동생을 시집보내버린다. 격분한 자인은 가출하고 거리를 헤매다 불법이민여성의 도움을 받는다. 우여곡절 끝에 그녀의 젖먹이 아기를 돌보게 된 자인은 여성이 갑자기 사라진 뒤 아기를 끝까지 지키려 하
[부산국제영화제 추천작①] <가버나움> <애쉬: 감독판> <콜드 워>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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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BIFF)가 10월 4일부터 13일까지 열린다. 2014년 <다이빙벨> 상영 이후 위기의 연속이었던 부산국제영화제는 이용관 이사장과 전양준 집행위원장 체제를 꾸린 올해 영화제의 정상화와 재도약을 약속했다. 부산국제영화제 정상화의 원년이 될 것이란 다짐에 영화인들도 보이콧 철회로 화답한 상황. 올해 BIFF에 거는 기대는 클 수밖에 없다.
윤재호 감독이 연출하고 이나영이 주연한 개막작 <뷰티풀 데이즈>를 필두로 10일간의 영화 축제에 돌입하는 BIFF. 예매창 앞에서 어떤 영화를 고를까 고심할 관객을 위해 <씨네21>은 올해도 어김없이 추천작을 소개한다. 21편의 추천작과 더불어 올해 부산에서 상영되는 한국영화들을 한눈에 살필 수 있는 경향 소개, 필리핀영화 100주년 특별전 및 한국영화 회고전 소식도 전한다. 우리 다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만나요!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 부산 블레스유 ① ~ 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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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탄생>(2006), <만추>(2010)의 김태용 감독은 지난해 국악 공연 <꼭두>를 연출했다. 영화와 국악의 신선한 결합을 보여준 <꼭두>는 총 20회 공연 중 11회를 매진시키며 좋은 반응을 이끌어냈다. 그리고 올해 11월 국립국악원에서 <꼭두>가 재공연 된다. 그에 앞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꼭두>의 영화 버전인 <꼭두 이야기>가 상영된다. <꼭두>는 할머니의 꽃신을 몰래 팔아 강아지를 산 아이들이 할머니가 쓰러진 것을 알고 꽃신을 되찾으러 갔다가 저승길로 떨어져 꼭두들을 만나는 이야기다. 배우 김수안이 할머니의 꽃신을 찾아 나서는 누나 수민을, 조희봉이 네명의 꼭두 중 시중꼭두를 연기한다. 무성영화에 변사의 해설을 곁들인 <청춘의 십자로>, 판소리와 영화의 만남을 보여준 <필름판소리 춘향뎐>, <레게 이나 필름, 흥부> 까지, 최근 김태용 감독은 영화와
국악 공연 <꼭두>와 영화 <꼭두 이야기> 김태용 감독·조희봉 배우, “영화의 내러티브가 무대로, 무대의 감정이 영화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