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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의 삶을 다룬 넷플릭스 드라마 <더 크라운>에서 클레어 포이는 어느 날 갑자기 자신보다 국가를 우선해야 하는 운명에 처한 젊은 여왕을 연기한다. 얼굴 근육이 마비될 때까지 미소를 짓고, 가족의 마음을 깨뜨리며 지켜야 하는 왕관의 무게는 가혹하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여왕의 숙명보다 더 인상적인 건 자신에게 주어진 거대한 삶의 과제를 묵묵히 받아들이며 때로는 과감하게 돌파하는 한 여성의 초상이다. 고요함 속의 강인함을 선보이는 클레어 포이의 연기가 <더 크라운>의 핵심이었다는 점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제74회 골든글로브와 제70회 에미상 여우주연상을 안겨준 <더 크라운> 이외에도 클레어 포이는 유독 감당하기 어려운 운명에 휘말리는 인물들을 자주 연기해왔다. 전신이 마비되는 병에 걸린 남편을 돌보는 아내로 분한 영화 <달링>이나 헨리 8세의 두 번째 왕비 앤 불린을 연기한 드라마 <울프 홀> 등을 얘기할 수
<퍼스트맨> 클레어 포이 - 고요함 속의 강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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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영화인 만큼 스포일러가 많습니다. 하지만 전기영화이기 때문에 읽고 영화를 보는 게 더 이해가 빠를 수도 있습니다. 선택은 여러분의 몫입니다.
영국의 전설적인 록 밴드 퀸의 일대기를 조명한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가 10월 31일 국내 개봉한다. 이 작품은 파워풀한 가창력과 화려한 쇼맨십으로 유명했던 리드 보컬 프레디 머큐리(래미 맬렉)를 중심으로 밴드의 성공과 갈등, 록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공연 중 하나로 손꼽히는 1985년 <라이브 에이드>에서의 공연 등을 다룬다는 점에서 일찌감치 화제가 됐다. 퀸이라는 이름의 위대한 밴드가 쌓아올린 신화를,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는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오랫동안 퀸의 팬이었던 배순탁 음악평론가가 영화에 대한 애정 어린 글을 보내왔다.
세어본 적은 없지만 100번은 넘었다고 확언할 수 있다. 다름 아닌 내가 고등학교 시절 퀸의 1985년 <라이브 에이드> 참여 실황과 1986년 <라
<보헤미안 랩소디> 록 밴드 퀸의 일대기를 조명한 영화, 위대한 밴드의 신화를 일깨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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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의 시간들>에서 라야 감독이 바라본 둔촌주공아파트는 따뜻하고 포근하다. 라야 감독은 집을 찾아가 찍는 프로젝트인 ‘가정방문’, 뮤지션 이랑의 곡 <신의 놀이>의 뮤직비디오, 다큐멘터리 <불확실한 학교>(2016), 책 <산책론> 등 다양한 작업을 통해 여러 공간을 카메라에 담아왔다. 그 공간은 둔촌주공아파트처럼 라야 감독의 애정으로 가득하다. 그는 “겁이 많아 이 인터뷰가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거(웃음)”라고 말했다. 그가 작업한 영상, 사진들이 더욱 궁금하다면 그의 홈페이지(http://lightonthewall.com)를 방문하면 된다.
-이 영화는 독립출판물 <안녕, 둔촌주공아파트>를 기획한 이인규씨를 만나면서 시작된 것으로 알고 있다.
=독립출판물 서점이자 출판사인 유어마인드에서 2년 동안 일했다. <안녕, 둔촌주공아파트>를 판매해 이 프로젝트를 잘 알았다. 낯선 장소에 가서 카메라에 담는 영상 프로젝
<집의 시간들> 라야 감독, “처음부터 공간을 주인공으로 카메라에 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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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아파트 하면 주로 투자나 투기 대상으로 인식된다. 매일 뉴스에 나오는 아파트 소식 대부분이 집값 문제나 부동산 정책과 관련된 얘기가 많은 것도 그래서다. 하지만 10월 25일 개봉한 다큐멘터리 <집의 시간들>은 아파트를, 집값 문제나 부동산에 관련한 욕망으로 다루는 작품이 아니다. 오히려 옷, 음식과 함께 사람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주’(住)거지로서 집이 가진 의미를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첫 장편다큐멘터리를 연출한 신인 라야 감독을 만나 영화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아파트 키드가 아니다. 단독주택에서 나고 자랐다. 대학을 진학하기 위해 상경한 뒤로는 성냥갑 같은 원룸들을 전전했다. 결혼하고 나서는 마을 사람들과 함께 지은 공공주택에서 줄곧 살아왔다. 아파트 근처에 가보지 못한 내게 아파트는 주거지로서 어떤 공간인지 한번도 실감해본 적 없다. 오히려 ‘억억’ 하는 집값 탓에 살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아파트는 그림의 떡에 더 가까웠다. 그
재개발 위한 철거 앞둔 둔촌주공아파트 사람들 담은 라야 감독의 <집의 시간들>을 보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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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카펜터의 전설적인 호러영화 <할로윈>(1978) 이후 나온 9편의 속편은 거의 대부분 좋지 못한 평가를 받았다. 호러영화 명가 블룸하우스 프로덕션(이하 블룸하우스)이 <할로윈>을 리부트한다는 소식이 들렸을 때도 그 전례 때문에 우려가 없지 않았다. 하지만 2018년판 <할로윈>은 현재 로튼 토마토 지수 80%대를 기록하고, 북미 개봉 첫주 박스오피스에서 주말 7700만달러의 수익을 올리며 역대 10월 개봉작 오프닝 성적 2위 기록을 세웠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참석차 한국을 찾은 제이슨 블룸 블룸하우스 대표는 “우리에게는 아주 구체적인 영화제작 시스템과 접근 방식이 있는데, 이를 통해 좋은 <할로윈>을 만들 수 있다는 도전정신이 있었다”고 전한다. 입국 직후부터 한국 관계자들에게 “배우처럼 멋있는데, 소탈하고 유머러스하기까지 하다”며, 호감을 얻고 있는 그와의 만남을 전한다.
-존 카펜터와 1978년 <할로윈>의 주연이었던
<할로윈> 제이슨 블룸 블룸하우스 프로덕션 대표, ”미국에서는 TV시장이 영화시장보다 훨씬 건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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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 좀 할게요. <할로윈>이 여성 주연 호러영화 역대 최고, 55살 이상 여성 주연 영화 역대 최고, 10월 개봉작 역대 2위, 프랜차이즈 역대 최고 오프닝 기록을 세웠어. #womengetthingsdone(여자들이 해냈다).” 데이비드 고든 그린 감독의 <할로윈> 주말 스코어가 약 7700만달러로 추정된다는 소식이 알려진 10월 21일(현지시각 기준), 오랜만에 시리즈에 복귀한 로리 스트로드 역의 제이미 리 커티스가 트위터에 남긴 글이다. 그가 <할로윈>의 성공을 여성의 쾌거로 연결시킨 맥락은 1970년대 이후 슬래셔 장르의 역사를 돌아볼 때 명료해진다.
호러 장르에서의 여성의 ‘전통적’ 역할
웨스 크레이븐의 <왼편 마지막 집>(1972), 토브 후퍼의 <텍사스 전기톱 학살>(1974)을 거쳐 1978년 탄생한 존 카펜터의 <할로윈>은 장르 공식을 정리한 걸작이었다. 술과 섹스를 즐기는 10대, 복면을 쓴
40년 만에 도착한 <할로윈>의 진정한 속편, 데이비드 고든 그린 감독의 <할로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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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전설이 돌아왔다. 블룸하우스 프로덕션의 야심작 <할로윈>은 40여년간 나온 10편의 속편 중 처음으로 평단과 대중을 고루 만족시키며 존 카펜터의 <할로윈>(1978)의 진정한 적자가 됐다. 원작의 생존자 로리(제이미 리 커티스)와 그의 딸 캐런(주디 그리어), 손녀 앨리슨(앤디 마티책)이 힘을 합쳐 마이클 마이어스(닉 캐슬)에 맞서는 2018년판 <할로윈>은 여성 주도의 서사가 주목받는 할리우드의 흐름에서 탄생한 영리한 기획이다. 특히 여성 혐오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미국 슬래셔 무비의 굴곡 많은 역사에서 2018년판 <할로윈>과 그의 성공이 의미하는 바를 짚어보았다. 여기에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참석차 한국을 방문했던 블룸하우스 프로덕션 제이슨 블룸 대표와의 인터뷰도 덧붙인다.
전설의 레전드 2018년의 <할로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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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으로서의 페미니즘은 비판적 실천 학문이라는 계보 속에 있다. 그런데 페미니스트의 비판은 종종 파시즘적 광기를 동반한 비합리적 감정의 분출로 간주되거나(‘페미 파쇼’), 성차별 반대라는 목표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잔인해질 수 있는 나치(‘페미 나치’)로 묘사된다. 파시스트든 나치든 모두 지독한 국가주의자들인데, “여성에게는 조국이 없다”고 외쳐왔던 페미니스트들이 들으면 어리둥절할 일이다. 페미니즘은 지금까지 보편으로 간주되어온 지식의 권위를 묻고 또 물으며, 권력의 작동 과정을 심문하고 그 자신이 권력이 되는 것을 경계해 왔고, 그렇기 때문에 ‘비판적 태도를 견지한 실천’은 페미니스트로서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비판이란 무엇인가. 1978년 5월, 푸코는 ‘비판이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의 강연에서 비판이란 곧 ‘알고자 하는 용기’라고 정의했다. 앎이란 무엇인가. 여기에서 앎을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진리라고 한다면, 무엇이 지식이고 무엇이 권력인지를 단순히 서술하는
알고자 하는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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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트맨>은 우주탐사 영화로서는 드물게 폐소공포의 감각을 부른다. 1960년대의 달 탐사선 내부는 극히 협소하고, 닐 암스트롱(라이언 고슬링) 가족이 거주하는 공동체는 외부 미국 사회로부터 단절된 캡슐처럼 느껴진다. 무엇보다 데이미언 셔젤 감독은 좁은 숏을 자주 쓴다. 이 영화의 많은 클로즈업에는 배우의 얼굴과 함께 다른 요소가 포함돼 있다. <퍼스트맨>에서 가장 중요한 이미지는 닐 암스트롱의 얼굴- 특히 눈- 과 거기에 비친 반영들이다. 바이저 위에 떨어진 태양빛과 지평선의 반영, 우주의 암흑과 마침내 착륙한 달의 광야까지. 이 영화의 풍경은 닐 암스트롱이라는 고독한 개인의 얼굴과 자주 포개진다. 셔젤 감독은 아폴로 11호가 찍은 영상을 LED 패널에 구현해 라이언 고슬링이 실제로 바라보며 연기하도록 했다.
10/09
<스타 이즈 본>은 운이 상승하는 한 사람과 하강하는 한 사람의 궤적이 교차하는 러브 스토리다. 두개의 선은 한점에서 마주친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나는 달을, 달은 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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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솔로: 스타워즈 스토리>의 흥행 실패가 <스타워즈> 유니버스에 큰 타격을 입힌 걸까. 10월 26일(현지시각), <버라이어티>는 “루카스 필름이 더 이상 <보바 펫> 프로젝트를 개발하지 않는다”고 보도했다. 디즈니와 루카스 필름측은 아직 공식 입장을 발표하지 않은 상태다.
보바 펫은 <스타워즈 에피소드 5-제국의 역습>(1980)과 <스타워즈 에피소드 6-제다이의 귀환>(1983)에 등장한 현상금 사냥꾼이다. 눈에 띄는 코스튬과 특색 있는 전사(前事)를 지녀 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로건>을 연출한 제임스 맨골드가 감독으로 내정되어있던 보바 펫의 솔로 영화는 ‘스타워즈 앤솔로지 시리즈’ 작품으로 2020년 개봉 예정이었다. 지금까지 스타워즈 앤솔로지 시리즈로 개봉한 영화는 두 편. 2016년 개봉한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는 10억 달러 이상의 월드 와이드 흥행 수익을 기록하
<스타워즈> ‘보바 펫’ 스핀오프 영화 제작 중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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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조금씩 잊혀지고 있는 톱스타 잭슨(브래들리 쿠퍼)이 가수의 재능을 가진 앨리(레이디 가가)를 발견한다. 작은 라이브바에서 그들은 서로를 보자마자 사랑에 빠지게 된다. 영화에서 이 순간은 짤막하고 강렬하게 그려진다. 잭슨과 앨리의 시선이 교차되는 리버스숏을 보면서, 관객은 영화가 평범한 클래식 멜로드라마의 한계를 뛰어넘게 될 것이라고 직감할 수 있다. 별다른 설명 없이도, 화려한 공간과 익숙한 샹송 <La Vie en Rose>의 등장만으로 이러한 교감은 선명해진다. <스타 이즈 본>은 1937년 만들어진 원작의 주인공 관계도를 그대로 사용하는 영화다. 시작부터 전개와 결말에 이르기까지, 첫 영화의 오리지널 스크립트는 구성 그대로 활용된다. 다만 인물을 배우 아닌 가수로 설정했기에, 1976년 만들어진 프랭크 피어슨 감독의 영화와 분위기는 더 비슷하다. 기본적으로 음악영화의 포맷을 잘 살려서 완성됐고, 남자주인공 잭슨의 시점을 이전보다 깊이 파고든다는 점에
진부할 수 있었던 할리우드의 러브 스토리 <스타 이즈 본>이 관객을 매혹하는 몇 가지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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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입은 가족의 형태는 복구될 수 있을까. <친애하는 우리 아이>는 가능하다고 굳게 믿는 영화다. 이혼한 타나카(아사노 다다노부)는 전처 유카(데라지마 시노부)와의 사이에서 낳은 딸 사오리(가마타 라이주)를 종종 만나고 있다. 그런데 지금의 아내 나나에(다나카 레나)가 낳은 딸 카오루(미나미 사라)는 그 사실을 굉장히 불쾌해하며 “당신은 나의 진짜 아빠가 아니니까, 나도 내 아빠를 만나게 해달라”고 화를 낸다. 타나카와 나나에는 모두 한번 결혼에 실패한 사이이며 각자 낳은 아이들도 있지만 아이들의 행복이 곧 자신들의 새로운 결혼생활 유지의 전제임을 잘 알고 있다. 어른들은 사오리와 카오루처럼 자신들의 선택 때문에 상처입은 아이들을 어떻게 보듬고 새로운 가족의 형태를 유지시킬 수 있을지 가슴 깊이 고민하기 시작한다. <해피 해피 브레드>(2012), <미나미 양장점의 비밀>(2015) 등을 연출한 미시마 유키코 감독은 재혼한 남편 타나카의 시선을 통해서
<친애하는 우리 아이> 상처입은 가족의 형태는 복구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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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치기>는 더이상 대화의 도리가 없으면 새로운 장소로 옮겨 만남을 지속하는 한국적인 음주 문화가 적나라한 매력을 발하는 영화다. 영화감독 가영(정가영)은 시나리오 취재를 이유로 아는 오빠 진혁(박종환)을 불러낸다. 은근슬쩍 진혁의 목소리를 칭찬하며 호감을 드러낸 가영은 그의 사생활은 물론 성생활까지 서슴없이 파고들기 시작한다. 체면치레를 할 든든한 핑계도 있는 데다가 적당한 취기까지 있으니 오랜만에 호사를 누릴 법도 하다. 하지만 솔로인 줄 알았던 진혁에게 연인이 있다는 사실, 그의 선배 영찬(형슬우)이 나타나 상황을 복잡하게 만든다는 사실이 가영을 혼란스럽게 한다.
한자리에서 뭉근히 이어지는 음주 실내극 <밤치기>는 그 기획보다 세부가 더 매력적인 작품이다. 실내 포차와 룸 카페, 노래방 등의 닫힌 공간에서 나른하게 체류 중인 20, 30대의 대화는 재능 있는 배우들에 힘입어 소탈한 제스처와 생활적인 언어들로 활력이 넘친다. 실은 여기가 어딘지, 무얼하고
<밤치기> 한자리에서 뭉근히 이어지는 음주 실내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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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로 부모를 잃은 어린 루이스(오언 바카로)는 한번도 본 적 없는 삼촌 조나단(잭 블랙)을 찾아간다. 루이스는 괴짜 같은 조나단과 수상한 그의 집이 낯설지만, 조나단과 티격태격하며 지내는 오랜 친구이자 이웃사촌 플로렌스(케이트 블란쳇)의 따뜻함으로 인해 조금은 마음을 놓는다. 그런데 조나단은 밤마다 도끼로 집을 부수고, 이 광경을 본 루이스는 조나단을 도끼 살인마로 오해한다. 결국 조나단은 자신과 플로렌스가 마법사이며, 그의 집에 마법이 깃들어 있다는 사실과 이 집 어딘가에 숨겨진, 세상을 멸망시킬 수 있는 마법시계를 찾아야 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루이스는 조나단에게 마법을 배우며 함께 마법시계를 찾지만, 조나단이 절대 열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 캐비닛을 연다.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2016)보다 스케일은 작지만, 공포영화 <호스텔>(2005)을 연출한 일라이 로스 감독은 마치 <그렘린>(1984)처럼 귀엽고 소름끼치는 소품들을
<벽 속에 숨은 마법시계> 모든 것이 살아 움직이는 미스터리한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