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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성년>에는 별 대사 없이도 관객이 크게 웃기 시작하는 장면이 있는데(4월 1일 언론배급시사회 현장에서도 어김없이 그랬다.-편집자), 바로 미희(김소진)가 입원한 병원에서 마주치는 염혜란과 정이랑이 연기하는 모녀의 존재 자체다. 예상치 못한 닮은꼴 배우를 붙여놓은 김윤석 감독의 아이디어와 오지랖 넓은 캐릭터를 불편하지 않게 소화하는 배우들의 노련한 연기에 웃으면서 감탄하게 된다. 이중 <SNL 코리아>에서 주로 얼굴을 알린 정이랑의 호연은 그동안 그가 해온 코미디 연기가 만만치 않은 것이었음을 상기시킨다. 원체 부끄러움이 많은 성격이라 개그맨으로 활동하던 당시에도 “무대 위와 아래의 모습이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알려져 있었다”는 그는 앞으로 보여줄 얼굴이 훨씬 많은, 베테랑 신인배우다.
-염혜란 배우와 닮았다는 이유로 김윤석 감독이 직접 찾았다고 들었다.
=평상시에 염혜란 선배님 닮았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데, 역시 (김윤석) 선배님 눈썰미가 대단하다.
<미성년> 정이랑 - 반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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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9일 아녜스 바르다 작고 후 프랑스 현지에서는 각 언론의 추모 기사와 지난 인터뷰 기사가 계속 쏟아져 나오는 중이다. 그 내용을 파리 현지에서 김나희 평론가가 일인칭 시점으로 재구성했다.-편집자)
“바르다는 갔지만 아녜스는 우리와 함께 여전히 이곳에 있을 겁니다. 지혜롭고 생생한 데다 다정하고 영적이며 크게 소리내어 웃고, 재미있으며 종잡을 수 없는 그녀의 작품처럼요.”
3월 29일, 누벨바그의 대모 아녜스 바르다의 타계 소식이 전해졌다. 전 칸국제영화제 위원장 질 자코브가 트위터에 추모의 메시지를 올렸다. “아녜스 바르다의 영화들은 프랑스의 정신이 담긴 국가적 보물입니다.” 프랑스의 거의 모든 매체가 앞다투어 바르다를 오마주하는 기사를 쏟아냈다. 1928년생인 바르다는 에너지 넘치는 모습으로 전세계 영화제에 참석해왔다. 2019년 1월, 파리 시네마테크에서 열린 전작전과 마스터클래스는 물론 2월 열린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도 <아녜스가 말하는 바르다의 마지막 영화
영화 바깥에서 아녜스 바르다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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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녜스 바르다 감독이 88살에 만들고 89살에 내놓은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이 나왔을 때, 전세계 관객이 그녀의 영화가 여전히 아름답고 혁명적이라는 사실에 감탄했다. 그리고 이 영화가 유작이 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의 말을 속삭였다. 하지만 바르다는 영화 바깥에서도 프레임 부수기를 즐기는 아티스트였다. 신작 <아녜스가 말하는 바르다의 마지막 영화>(2019)로 올해 2월에 열린 제69회 베를린국제영화제를 찾았고, 명예황금카메라상을 직접 수상했다. 그녀는 은빛과 자줏빛으로 물들인 특유의 투톤 헤어를 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장미꽃이 그려진 실크 가운을 입은 채 연단에 올랐다. 전보다 쇠약한 인상이었지만 자기 자신을 연기하는 듯한 유쾌한 ‘퍼포머’의 태도는 여전했다. 그리고 지난 3월 29일(현지시각), 겨울과 함께 바르다는 홀연히 떠났다. 향년 90살. 암 합병증으로 파리의 자택에서 가족과 친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별세했다. 타계하기 한달 전쯤에 카타르의 DFI(
아녜스 바르다는 여전히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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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성은 사회에 적응하는 개인의 능력이나 대인관계의 원만한 정도를 나타내는 말이다. 좁게는 사교성을 의미하기도 하는 이 사회성은 타인과의 관계를 원활하게끔 하는 심적, 물리적 에너지 자체라 때로는 배터리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내가 지닌 사회성 배터리는 소용량이다. 대체로 12시간 정도밖에 되지 않아 집처럼 혼자 있는 공간에서 휴식하며 수시로 배터리를 충전해야 한다. 혼자만의 공간이 없다면 카페에 들러 콘센트를 찾기도 한다. 이 배터리에 태양광 전지 패널이 달린 사람들이 있다. 밖으로 나가서 사람들을 만나면, 아니 그렇게 해야만 충전이 되는 사람. 우리 사회에선 특히 이런 외향적인 사회성 배터리를 지닌 사람들을 반긴다. 에너지효율등급이 높은 상품이 시장에서 사람들에게 선호되는 것처럼.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업무 중 사회성 배터리가 방전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긴 시간 사용이 필요한 날이거나, 처음 보는 사람을 만날 때나 나와 다른 성향의 사람들을 많이 만나야 하는 날에는
“죄송하지만 오늘 준비된 사회성이 모두 소진되었습니다. 다음에 다시 찾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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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스>의 결정적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전작 <겟 아웃>의 프롤로그에서 납치의 배경음악으로 <도망가 토끼야, 도망가>(Run Rabbit Run)를 사용한 조던 필은 <어스>에 무수한 살아 있는 토끼와 토끼 인형, 토끼 프린트를 등장시켜 본인의 토끼 공포증을 널리 알렸다. <어스>의 모든 요소가 그렇듯 영화 속 토끼의 의미는 하나가 아니다. 토끼는 인간 복제 음모 초기에 실험으로 희생된 동물이며 프로젝트가 실패한 이후 지하에 방치된 복제인간들의 은유이자 유일한 식량이다. 어린 애들레이드(매디슨 커리)가 미지의 지하세계와 조우하는 경험은, 토끼의 인도로 출발하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거울 나라의 앨리스>의 여정에 빗댈 만하다.<도니 다코>(2001)와 <월레스 & 그로밋: 거대토끼의 저주>(2005)를 잇는 스크린의 불길한 토끼다.
04/05
조던 필을 단박에 중요한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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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스>에 대한 질문에서 시작해보려 한다. 첫 번째, 왜 레드는 거미에 비유되는가? 두 번째, 도플갱어가 나오는 통로는 왜 놀이공원의 내부에 있는가? 세 번째, 레드의 끝없는 무용은 무엇을 표현하는가? 이 질문들에 따라서 <어스>를 보는 관점은 세개 혹은 그 이상으로 나뉠 수 있을 것이다.
왜 레드는 거미에 비유되는가
왜 레드는 거미에 비유되는가? 어린 애들레이드가 들어간 놀이공원 거울 방에서 거미에 대한 단서를 찾을 수 있다. 거울 방 내부에서는 거미 여인이 등장하는 신화가 흘러나온다. 거미 여인이 등장하는 이 신화는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삶을 다룬 레슬리 마몬 실코의 장편소설 <의식>에도 등장한다. 거미 여인 치치나코가 대상을 상상함으로써 대상을 현존하게 만든다는 아메리카 원주민의 신화다. 거미 여인은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신이며, 그렇기에 거미 여인은 아메리카 원주민에 대한 상징이며, 거미에 비유되는 레드 또한 원주민에 대한 상징이라 볼 수 있
<어스>를 다시 보게 하는 세 가지 질문을 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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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2일(현지시간)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스타워즈> 셀러브레이션 라이브에서 <스타워즈 에피소드 9>(이하 <스타워즈 9>)의 티저 영상이 공개됐다. 예고편과 함께 공개된 부제는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The Rise of Skywalker), ‘스카이워커의 비상’으로 정해졌다.
<스타워즈>의 아홉 번째 에피소드인 이 영화는 레이(데이지 리들리)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스타워즈>의 속편 3부작 중 최종편에 해당한다. 죽은 루크 스카이워커(마크 해밀)의 내레이션이 실린 티저 예고편은 ‘THE SAGA COMES TO AN END’(영웅전설의 끝이 온다)라는 문구를 삽입해 스카이워커 사가의 종료를 알리며 시리즈 42년 역사의 전환점을 암시하고 있다.
<스타워즈 9>은 루크 스카이워커, 레이를 포함해 포(오스카 아이작), 핀(존 보예가) 등의 주인공이 최후의 결전을 벌인다. 특히 오리지널 <스타워즈>
<스타워즈 에피소드 9> 티저 예고편에서 부제가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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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탈린이 갑작스레 사망한다. 정확한 사유를 따져 물을 수 없을 만큼 복합적이지만 실은 어이없는 우연의 일치가 얽혀 벌어진 일이었다. 그의 죽음을 둘러싸고 권력집단인 위원회가 소집되는데 모두가 스탈린의 죽음 이후 자신에게 벌어질 일을 대비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 과정이 쉽지 않다. 왜냐하면 스탈린이 자신의 장기 집권을 위해 반대파를 숙청하는 과정에서 웬만한 실력자들은 모두 몰아냈기 때문이다. 어떤 전문가도 없는 상황에서 차기 권력을 누리고 싶어 하는 정치가와 군인, 경찰 지도자들이 모여 소련의 침몰을 막으려 고군분투한다. <스탈린이 죽었다!>는 1953년 3월, 스탈린의 죽음을 둘러싸고 혼란스러웠던 당시 소련의 정치적 공황 상태를 풍자와 유머를 곁들여 조소한다. 무능력한 권력가들의 어이없는 실수와 결정 때문에 한 국가의 정책이나 인민의 안위가 좌지우지되는 상황이 배우들의 호연에 힘입어 웃긴 한편 슬픈 감정을 자아낸다. 이 영화는 올 초 러시아 문화부로부터 상영 금지 조치를
<스탈린이 죽었다!> 권력을 향한 치열한 암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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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피나투보 화산지대의 작은 마을. 숲이 파괴돼 터전을 잃은 원주민들은 열악한 환경에 노출된 채 건강을 위협받고 있다. 이들 사이를 돌아다니는 의료 선교팀에 환자들이 자주 찾는 이름이 있다. 바로 ‘닥터박’. 1996년부터 이 지역을 정기적으로 방문한 외과의사이자 선교사인 박누가 선생을 부르는 말이다. 그가 얼마 전 암으로 유명을 달리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오랜 기간 그와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거나 슬픔의 눈물을 흘린다.
“아픈 데 없어요?” 박누가 선교사는 차를 타고 돌아다니면서 길 위에 방치된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묻는다. 그로서는 ‘안녕하세요’보다 훨씬 간편한 인사법이다. 1989년에 봉사활동에 참여한 것을 계기로 꾸준히 필리핀 곳곳을 누비며 의료 활동을 펼쳐온 박누가 스토리는 종교적 색채와 관계없이 한 사람의 티 없는 소명과 끈기에 감복하게 만든다. 기독교적 메시지가 강하게 녹아 있지만, 영화의 감정을 이끄는 동력은 매사 의연하고 소탈한 그의 인
<아픈 만큼 사랑한다> “아픈 데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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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도가 아니라 인지도가 3%였다.”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선에 출마하기 이전, 당시 새천년민주당의 국민경선을 치러야 하는 상황을 이야기하던 한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회원이 한 말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를 맞이해 제작된 영화 <노무현과 바보들>은 정치인 노무현이 쌓아올린 행적보다는 그를 둘러싸고 인지도 없는 변호사 출신의 한 국회의원을 대통령 후보로 내세워 당선까지 하도록 후원한 ‘바보들’의 행적에 주목한다. 인터넷이 대중화되면서 생겨난 당시 인터넷 카페 커뮤니티 활동부터 온라인 아이디로만 기억되던 사람들이 노무현 대통령 만들기 프로젝트를 위해 하나둘 모여든다. 영화는 서로 얼굴도 모르고 직업도 제각각이었던 사람들이 전국에서 모여들어 경선과 대선을 차례로 준비하는 과정을 기록 영상으로 보여주고, 현재 노사모 회원들에게 지난 20여년의 소회를 묻는다. 노무현 대통령의 마지막 육성 중 과거 본인 스스로를, 연결되어 있는 산맥이 없는 “
<노무현과 바보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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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2075년, 태양이 적색거성으로 변함에 따라 태양계 전체에 급격히 이상현상이 일어난다. 지구에는 빙하기가 찾아오고 살아남은 인류는 지하에 숨어들어 생존한다. 곧 태양이 폭발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인류는 지구 한쪽 면에 에너지 추진체를 달아 태양계를 탈출하는 ‘유랑지구 프로젝트’를 계획한다. 어려움을 뚫고 외우주로 출발한 지구는 17년의 항해 끝에 목성의 궤도를 지나는 도중 목성의 중력권으로 끌려들어가 충돌의 위기를 맞고, 이를 타개하기 위해 최정예팀이 출동한다. 한편 우주정거장에서 지구를 인도하던 류페이창(오경)은 유랑지구 계획에 숨겨진 이면을 감지하고 지구를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SF소설계의 권위 있는 상인 휴고상을 수상한 중국의 SF 작가 류츠신이 쓴 동명의 단편소설을 원작으로 한 <유랑지구>는 중국의 우주굴기를 드러낸 야심작이다. <아마겟돈>(1998) 등 우주재난영화와 크게 다르지 않은 익숙한 전개에 할리우드영화와 견주어도 손색없는 CG, 특
<유랑지구> 태양계를 탈출하는 ‘유랑지구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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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시작된 뷰티플 마인드 오케스트라는 장애인, 비장애인 친구들이 서로의 차이와 소리에 귀 기울이며 함께 연주하고 있다. 카메라는 악기 포지션별로 인물을 차례로 조명하며 가장 일상적인 예술인 음악이 어떻게 관계를 진화시키고 이 네트워크를 성장시키는지 보여준다. 클래식기타를 치는 심환은 상대에 따라 자신의 애칭을 달리하는데 이것이 그만의 개성이자 매력이다. 시각장애와 지체장애를 안고 있는 허지연은 자기 키보다 큰 더블베이스를 켜는데, 월등한 기억력으로 빠른 습득력을 자랑한다. 희귀망막질환을 가진 최연소 단원 김건호는 어려서부터 큰 대회에서 입상할 만큼 피아노에 특출한 재능이 있다. 서울예고 졸업 후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에 입학한 첼로 영재 김민주, 작곡에 재능이 있지만 청각장애를 가진 탓에 절대음감을 요구하는 한국 입시와 맞지 않는 고민을 가진 이한의 이야기 등도 소개된다. 오케스트라 활동은 이들에게 개인적 도약과 치유의 과정이기도 하지만, 다름에서 비롯된 개인 고유의 가치를
<뷰티플 마인드> 서로의 차이와 소리에 귀 기울이며 함께 연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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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전라도 외딴섬에 사는 기강(손호준)은 좁아터진 마을이 답답하기만 하다. 친구들과 함께 농작물을 훔치다 체포된 기강이 의리를 지킨답시고 죄를 혼자 뒤집어쓰자 동네 어른들은 “크게 될 놈”이라고 추켜세운다. 젊은 혈기에 허세만 부리는 아들이 사고를 치면 수습은 어머니 순옥(김해숙)의 몫이다. 홀로 식당을 운영하며 남매를 키운 순옥은 무뚝뚝해 보여도 자식 사랑만큼은 지극하다. 하지만 철없는 자식들이 어머니의 진심을 알 리 없다. 성공을 좇아 섬을 떠난 기강은 서울에서 범죄 세계에 발을 들이고 살인사건에 연루되어 사형을 선고받는다. 사형수가 되어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공포로 기강이 자포자기하는 사이 순옥은 아픈 몸을 이끌고 아들이 수감된 교도소를 찾는다.
자식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푸는 어머니가 주인공인 영화는 신파로 흐르기 쉽다. 기획 당시 제목이 <엄니>였던 <크게 될 놈>은 어머니의 사랑이라는 익숙한 서사에 기교를 더하지 않았다. 대신 배우의 연
<크게 될 놈> 세상에서 가장 멀고도 가까운 엄니와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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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8월 17일 23시59분. 병원에 실려온 은조(이청아)는 함께 병원으로 이송된 남자 호민(홍종현)의 사망 선고를 듣는다. 은조가 흐릿하게 정신이 들자마자 시간은 하루 전 과거로 돌아간다. 이날 은조는 인터넷으로 만난 사람들과 함께 자살하기 위해 길을 떠난 참이다. 앞서 은조는 어린 딸을 잃었다. 딸을 죽인 건 치매 노인. 그 노인의 아들이 호민이다. 딸을 잃고 슬픔에 빠져 죽음을 택했던 은조는 자신이 거꾸로 가는 시간여행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딸을 되살릴 방법을 강구하기 시작한다. 딸을 살려야 한다는 일념으로 지나온 시간을 반복해서 살아가는 은조는 결국 자신이 아이를 임신한 당시까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고 이 시간여행을 멈추기 위한 열쇠를 호민이 쥐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눈떠보니 어제’라는 설정은 과거로 돌아가 미래를 바꾸는 이야기로 귀결된다. <다시, 봄>에서 은조도 잃어버린 딸을 살리기 위해 필사적이다. 이 영화가 조금 더 특
<다시, 봄> 시간은 하루 전 과거로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