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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봉준호는 영화적 동지이자 존경하는 감독이고, 사적으로는 친한 후배다.” 봉준호 감독에 대한 송강호의 가슴 뭉클한 정의다. <살인의 추억>(2003), <괴물>(2006)에 이어 <설국열차>에 탑승한 그는 빙하기만큼이나 길었던 4년의 프리 프로덕션 기간을 쭉 지켜본 파트너다. “<살인의 추억> 때부터 그랬는데, 봉준호 감독과 나는 말을 그렇게 많이 안 한다. 왜 내가 여기 나와야 하고, 왜 나는 다른 배우들처럼 영어가 아닌 한국어를 써야 하고, 이런 데 대해서 서로 말이 없다. 물어보기도 귀찮고, 봉준호도 ‘뭐 그런 걸 물어봐, 알아서 하지’ 이런 시스템으로 서로 일해왔다. 봉준호는 내가 어떻게 하나 볼 뿐이고, 나는 또 그렇게 내 마음대로 해도 되니까. (웃음)” <설국열차>에 따라붙는 거창한 수식보다 그는 봉준호 감독과의 세 번째 작업에 의미를 더 부여한다.
<설국열차>에서 송강호는 키플레이어다. 바로 영
[송강호] 긴장과 이완으로 무장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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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열차>에서 춥고 배고픈 사람들이 바글대는 빈민굴 같은 맨 뒤쪽 꼬리칸, 그곳의 젊은 지도자 커티스(크리스 에반스)는 긴 세월 준비해온 폭동을 일으킨다. 기차의 심장인 엔진을 장악하고 절대권력자 윌포드를 굴복시켜 마침내 기차 전체를 해방시키기 위해서다. 하지만 열차칸의 문을 하나하나 열 때마다 예기치 못한 상황들이 그를 기다린다. 플래시백도 없이 오직 직진만 거듭하는 이 게임과도 같은 영화에서 크리스 에반스는 뒤돌아보지 않는 불굴의 주인공이다. 이에 대해 그는 ‘모두가 자기 하나만을 쳐다보고 있다는 숙명’이 중요하다고 했다. “권력에 대한 욕구와 모두를 돌보고자 하는 자애로운 마음, 그리고 과거로부터 비롯된 죄책감과 수치심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복합적인 인물이지만 약한 모습을 절대 내비칠 수 없는 고단한 리더의 운명”이 바로 그가 얘기하는 커티스의 핵심이다.
이쯤에서 그가 연기한 수많은 슈퍼히어로 캐릭터들이 스쳐 지나간다. 먼저 <설국열차>에서 ‘불’이
[크리스 에반스] 나는 직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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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열차> 제작진을 취재하러 모인 수많은 매체를 수용하기 위해 제작사가 한층을 통째로 인터뷰 룸으로 세내다시피한 호텔 복도를 성큼성큼 가로지르다가 틸다 스윈튼이 킥 웃었다. “꼭 공항 보딩 게이트 같지 않아요? 저 문으로 들어가면 부산, 이 문으로 가면 서울로 날아가는 거예요.” 인터뷰 전날 입국한 틸다 스윈튼은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설국열차>의 최종 편집본부터 시사했다. “크리스의 손에서도 커티스는 이미 흥미로운 인물이었지만 완성본을 보고나서야 <설국열차>가 리더십이라는 주제에 대해 얼마나 깊고 현대적이며 정치적인 탐구인지 알았어요.”
질서가 곧 생존이라고 또박또박 역설하는 <설국열차>의 메이슨 총리를 객석에서 바라보며, 나는 진보적 예술가로서 견해를 숨긴 적 없는 현실의 틸다 스윈튼이 메이슨의 논지를 말끝마다 반박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실없이 웃었다. 당신과 정반대인 여자를 연기하는 재미가 무엇이었냐고 묻자 그녀는 “누가 여자래요?
[틸다 스윈튼] 누가 여자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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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열차>의 탑승자들이 다시 모였다. 영화 속 절대권력자 윌포드(에드 해리스) 위의 진짜 권력자 봉준호 감독까지, 17년째 끝없이 같은 궤도를 달리던 설국열차에서 내려온 그들이 편한 표정으로 만났다. 꼬리칸의 리더이자 봉기의 주인공이었던 크리스 에반스는 수염을 깎고 모자를 벗어 마치 청춘영화의 주인공처럼 카메라 앞에 섰고, 굵은 뿔테 안경과 무채색의 코트를 벗어던진 틸다 스윈튼은 우리에게 익숙한 그 창백한 매력을 뽐냈으며, 송강호 역시 오랜 파트너 봉준호 감독과 함께 그들을 안내했다. 봉 감독을 향한 그들의 애정은 변함없었다. “배우를 다루는 데는 타고난 감독”이라는 게 그들의 공통된 얘기였다. 봉 감독 또한 그들의 장점을 하나둘 열거하며 맞받아쳤다. 특별한 사전 협의 없이 공교롭게도 서로 비슷한 의상 컨셉으로 모이게 되자, “우리는 <맨 인 블랙>!”이라는 틸다 스윈튼의 얘기처럼 내내 화기애애한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설국열차] TEAM 봉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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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직으로 물러난 방송계의 유명 앵커 윤영화(하정우)가 테러범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생방송의 이슈로 삼아 자신의 위상을 복구하려다가 도리어 그 테러사건의 중심으로 휩쓸리고 만다. 주인공은 정해진 장소를 벗어날 수 없으며 영화 속 시간은 거의 실시간에 맞춰 앞으로 달려간다. <더 테러 라이브>의 내용과 형식이다. 생전 처음 보는 건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이 영화에 장점이 있다면, 그건 적당한 기획 아이디어만으로는 돌파되지 않았을 지점들을 돌파해내는 창작자의 특별한 뚝심과 고집에 있다. 게다가 그걸 해낸 이가 이제 막 상업영화에 발을 뗀 경우라면, 그 사람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더 테러 라이브>의 각본과 연출을 맡은 김병우 감독을 만난 이유다.
-뉴스 속보들을 보면서 <더 테러 라이브>를 떠올렸다고 밝힌 바 있다. 아이디어 구축 과정을 좀더 구체적으로 말해준다면.
=그 일화는 사실 일부분이라고 말해야 할 거다. 크게 본다면, 이 영화를 어떻게 만
[김병우] 끝까지 속도감 넘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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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후앙 카를로스 메디나 감독은 통각상실증 환자들을 영화의 도구로 사용해 인간 내면의 잔혹성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영화는 과감한 교차편집으로 과거와 현재의 서사를 잇는다. 스페인 내전 발발 직전의 한 마을, 베르카노(토마스 레마르퀴스)를 비롯해 통각상실증 증세를 보이는 아이들은 외딴 병원에 실험체로 수감된다. 병원에 갇힌 채로 자란 베르카노는 정상적인 사회화 과정을 거치지 못해 인간의 모습을 한 짐승으로 성장한다. 한편, 현재 시점에서 외과의사 다비드(알렉스 브렌데뮬)는 희귀병에 걸려 부모의 골수를 기증받아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자신이 입양아라는 것을 알게 된 그는 진짜 부모를 찾아나서고, 자신의 출생과 관련한 끔찍한 과거와 만나게 된다.
-내전에 관한 일종의 죄의식이 영화 곳곳에서 엿보인다.
=스페인의 철학자 미겔 데 우나무노는 스페인 사회의 한 단면을 카인과 아벨에 빗댄 적이 있다. 영화에 “카인이 아벨을 죽인 이유가 사실은 피를 정화하기 위해서였다”는 대사를 넣은 것
[flash on] “편집의 아이디어는 <대부2>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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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물리학 학사와 운영분석학 석사까지 마치고 월스트리트에서 일하던 이가 어느 날 갑자기 영화를 찍는다고 하면 다들 의아해할 것이다. 야론 질버먼 감독은 첫 다큐멘터리영화 <워터마크>(2004)전까지 영화와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하지만 그는 이 작품을 통해 각종 영화제에서 인정받았고, 이어 두 번째 영화이자 극영화 데뷔작인 <마지막 4중주>를 통해 믿을 수 있는 배우들과 함께 완벽한 앙상블을 완성해냈다. 친구의 다큐멘터리 영화사업 계획을 세워주며 뒤늦게 영화계에 발을 들였지만 이제는 주목받는 감독으로 급부상한 그에게 영화, 음악, 인생을 적절히 조율해나가는 비결이 무엇인지 물어봤다.
-클래식, 그중에서도 실내악을 무척 좋아한다고 들었다. 개인적인 취향과 체험이 <마지막 4중주>의 제작에 반영되었나.
=이 작품은 베토벤 스스로 가장 좋아하는 곡이라 밝힌 베토벤 현악 4중주 14번에 대한 오마주이자 베토벤의 후기 현악 4중주 작
[flash on] 삶에는 조율이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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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스 비욘드 더 파인즈>의 스포일러가 첫 단락에 있습니다.
데릭 시엔프랜스 감독의 <플레이스 비욘드 더 파인즈>는 3부작을 앉은자리에서 한번에 보여주는 영화다. 정연한 3막 구조와 작위적이기까지 한 운명의 작동이 고대 비극을 방불케 한다. 부자 관계, 죄와 벌, 남자들의 멜로를 예민한 연출과 대범한 이야기로 그려낸 이 영화는 감독의 전작 <블루 발렌타인>과 <대부>의 만남이라고 부를 만하다. 1부의 주인공은 떠돌이 오토바이 스턴트맨 루크(라이언 고슬링), 2부의 주인공은 생면부지의 루크와 마주친 순간 계획하지 않은 길로 인생 경로가 휘어진 경찰 에이버리(브래들리 쿠퍼)다. 기구한 인연의 두 사내에겐 동갑내기 젖먹이 아들이 있다. 불운한 루크가 연인에게 남긴 마지막 부탁은 “아이에게 사랑한다고 전해줘”가 아니라 “나에 대해 아이에게 말하지 마”다. 루크의 어린 아들을 본 이후 죄책감을 심장에 얹은 에이버리는 아들에게 흔쾌히 사랑을
[데인 드한] 지켜보고 싶은 창백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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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ography
<터보>(2013), <개구쟁이 스머프2>(2013), <슈퍼배드2>(2013), <가디언즈>(2012), <몬스터 호텔>(2012), <뽀로로 극장판: 슈퍼썰매 대모험>(2012), <랭고>(2011), <아더 크리스마스>(2011), <개구쟁이 스머프>(2010), <메가마인드>(2010), <슈퍼배드>(2010), <하늘에서 음식이 내린다면>(2009), <쿵푸 팬더>(2008).
최근 개봉한 한 영화에서 베테랑 형사가 이런 말을 한다. “아르고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눈이 100개 달린 거인. 눈깔이 100개나 있으니 절대 놓치는 게 없지.” 저 말을 잠시 빌려오면 <개구쟁이 스머프2>의 박선영 더빙감독은 눈 대신 귀가 100개 달린 거인을 꿈꾼다. “방송국마다 성우들의 목소리를 열람할 수 있도록 만
[STAFF 37.5] 목소리가 귀에 착 달라붙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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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
2014 <나이트 오브 컵스> <스쿼럴 투 더 너츠> 외
2013 <더 룩 오브 러브> <필스> 외
2012 <마지막 4중주> <팀 버클리에게 바침> 외
2011 <제인 에어> <프라이트 나이트>
2010 <센츄리온>
2009 <크랙> <솔리터리 맨>
2007 <28주후>
2005 <브이 포 벤데타>
<마지막 4중주>에서 이모겐 푸츠는 당당해서 유혹적이다. 그녀가 연기한 알렉산드라는 가족보다 음악이 우선인 엄마를 원망하면서 한때 엄마의 남자였던 선생님과 사랑에 빠진다. 결국 모녀가 서로의 상처를 후벼 파고 마는 순간 그녀는 30년 선배 캐서린 키너를 상대로도 여유를 잃지 않는다. “연기의 예측 불가능한 면을 좋아한다”는 그녀는 “캐서린 같은 배우와 일하는 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고 서로를 믿고 귀를 열고 자
[who are you] 이모겐 푸츠 Imogen Poo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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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범과의 사투? 배우 하정우에게 테러범에게 협박받는 앵커 윤영화의 연기는 바로 자신과의 사투였다. 한달간의 촬영 기간 중에 그는 다섯대의 카메라에 노출된 채 공간을 장악하고 이야기를 끌어나가야 했다. <더 테러 라이브>는 오롯이 하정우의 페이스로 주도해야 하는 새로운 형식의 영화다. 물론 앵커를 떠올릴 때 좀더 단정한 배우가 연상될 수도 있을 거다. 그렇다. 하정우가 아니어도 가능했다. 그런데 하정우 말고 지금 충무로 배우들 중 이 가정의 상황에 이 정도로 설득력을 부여할 수 있는 배우를 찾기란 불가능하다. <더 테러 라이브>는 배우 하정우의 지금 위치를 점검하고 증명하는 바로미터다.
매 작품 나올 때마다 하정우에게 선택의 이유를 물었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한결같았다. “시나리오가 재밌었다.” <더 테러 라이브>도 다르지 않았다. 연초 영화 촬영을 앞두고 만난 하정우는 대본을 손에 들고 대뜸 “영화가 재밌다”고 말했다. 툭 던지듯 내뱉는 말이었지만
[하정우] 새로운 게임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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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이런 인터뷰를 할 만한 사람인가요?” 박주민 변호사는 인터뷰 내내 멋쩍어했다.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한 그가 안락한 삶을 택하고 받아들였다면 그와의 만남은 아마도 이뤄지지 않았을 것이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하 민변)에 들어가 약자들의 권익 보호를 위해 줄기차게 변론을 펼쳤던 그는 2006년 영상물등급위원회(이하 영등위)로부터 제한상영가 등급 판정을 받은 <천국의 전쟁>의 변호를 맡으면서 영화계와 연을 맺었다. 한번 맺은 인연은 지금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최근에는 제한상영가 등급 판정을 받은 김선 감독의 <자가당착: 시대정신과 현실참여>의 등급결정 취소 소송 1차 공판에서 승소했는데, 5년 넘게 표현의 자유에 관한 영화계 안팎의 투쟁에 그가 적극적으로 참여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 싶다. 여균동 감독이 진행하는 라디오 시사프로그램 <여균동의 오늘> 출연 때문에 인터뷰 시간은 길지 않았지만, 그는 허겁지겁 던져댄 질문
[박주민] 표현의 자유 없이 민주사회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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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목욕탕 설계사 루시우스가 경험하는 현대 일본으로의 코믹 시간여행. <테르마이 로마이>의 황당한 시간여행을 가능하게 해주는 건 전적으로 아베 히로시의 몫이다. 189cm의 큰 키, 이국적인 마스크의 아베 히로시는 ‘평안족’(얼굴이 평평하다 하여)이라 불리는 일본인들 사이에 뚝 떨어진, 고대로마인 ‘루시우스’ 역을 감쪽같이 연기해낸다. 로마인 복장과 말투를 구사하는 루시우스는 저 혼자 더없이 진지하고 그래서 코믹하다. 이런 시도는 연기자가 된 뒤 초창기 모델의 정형화된 이미지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해온 아베 히로시에게는 낯선 선택이 아니다. <걸어도 걸어도>나 <고잉 마이 홈> 속에서 싱거운 가장을 연기하는 기술과도 달라 보이지 않는다. 크게 과장하지 않는 대신 그는 놓인 상황 안에서 최대한 그럴 법한 이미지를 연출해낼 줄 아는 배우다. <테르마이 로마이>는 일본 박스오피스에서 3주 연속 1위를 차지하며 벌써 속편 촬영을 마친 상태다. 아
[flash on] 진지해서 더 웃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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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하는 분들께 건네는 내 식의 감사인사다.” 김려령 작가는 인터뷰를 잘 하지 않는다. 동화부터 청소년 소설까지 어린 독자들을 위한 소설을 주로 써온 김려령 작가가 성인을 위한 소설 <너를 봤어>를 펴내고 <씨네21>의 인터뷰를 받아들인 이유는 그랬다. “<완득이>라는 콘텐츠를 이렇게 자연스럽게 골목골목까지 파고들게 한 흡수력을 책이 갖기 위해서는 200만부는 넘게 팔려야 했을 텐데…. 영화인들에게 일종의 빚을 졌다는 느낌이 있었다.” 그녀가 쓴 또 한권의 청소년 소설 <우아한 거짓말>도 곧 이한 감독에 의해 영화화될 예정이다. <너를 봤어>를 계기로 전체 관람가 영화뿐 아니라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의 김려령표 영화를 머지않아 만나게 될지도 모르겠다.
-처음 ‘성인을 위한’ 책(<너를 봤어>)을 썼다고 새삼 주목하는 분위기가 불편한 면도 있을 것 같다. 작가로서는 일관된 작업일 텐데.
=청소년 작가라는 틀에 대해 어
[trans x cross] 소설은 생(生)의 언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