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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영화의 발굴과 제작지원을 목표로 한 부산국제영화제(이하 BIFF)의 야심이 제대로 들어맞았다. 방글라데시의 영화감독 모스타파 사르와르 파루키의 발견은 단연 돋보이는 성취다. 2009년 BIFF에선 그의 <제3의 인생>이 소개됐고, 아시아영화펀드 지원으로 완성된 <텔레비전>은 지난해 BIFF 폐막작으로 선정된 뒤 각종 해외 영화제로부터 기분 좋은 관심을 받고 있다. 방글라데시 영화계의 새로운 가능성으로 주목받고 있는 파루키 감독이 <텔레비전>의 개봉으로 다시 한국을 찾았다. 그에게 방글라데시영화라는 신세계에 대해 전해 들었다.
-<텔레비전>은 2003년 투레쿠에 마수드 감독의 <클레이 버드> 이후 방글라데시영화로는 두 번째 해외 개봉작이다.
=대단히 기쁘다. 두 번째 해외 개봉까지 굉장히 긴 시간이 걸렸다. 그간 방글라데시의 젊은 영화감독들은 아시아영화의 영향을 많이 받아왔지만 끊임없이 우리의 이야기를 우리의 방식으로 해보
[flash on] 잘 만든 픽션은 다큐처럼 다가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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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 근처에 나온 건 정말 오랜만이거든요.” 인터뷰 장소에 들어온 김유미는 한시도 가만히 있질 못했다. 카페 벽에 걸려 있는 액자 속 그림을 살펴보기도 하고, ‘셀카’를 찍어 자신의 SNS에 올리기도 했다. 오랜만의 외출만이 그녀의 마음을 들뜨게 한 건 아니다. 출연작 <붉은 가족>과 <블랙 가스펠>이 11월6일과 14일, 한주 간격으로 연달아 개봉했다는 사실도 그녀를 자극했을 것이다. 두 작품은 김유미가 <리턴>(2007) 이후 6년 만에 출연한 영화다. “기분이 어떻냐고요? 씨앗을 뿌렸다가 한꺼번에 추수하는 기분? 여배우들이 작품이 없어 많이 힘들어하고 있잖아요. 그런데 제가 참여한 영화 두 편이 동시에 개봉하는 건 행운인 것 같아요.”
딱딱한 여자. <붉은 가족>에서 김유미가 연기한 백승혜는 위장 가족 간첩 ‘진달래’의 조장이다. 시아버지 조명식(손병호), 남편 김재홍(정우), 딸 오민지(박소영) 등 가짜 가족을 통솔해 북에서 내
[김유미] 설렘을 입고 외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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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2001)는 2000년대 초반 한국 영화계의 최대 흥행작 중 한편이었다. 이 영화는 각종 유행어를 낳았고 향수를 자아냈다. 동수(장동건)와 준석(유오성)이라는 두 주인공도 자주 회자되었다. <주유소 습격사건>(1999) 등으로 자신의 입지를 다졌던 유오성은 <친구>를 계기로 일약 스타가 됐다. 하지만 그 뒤로 유오성은 오랜 시간 정체해야만 했다. 적어도 영화배우로서는 뚜렷한 대표작 없이 10여년을 보냈다. 그렇게 먼 길을 돌아 <친구2>에 다시 출연한 지금, 그는 다시 준석이 되어 있다. 그의 소회가 궁금했다.
-이 시리즈는 “<친구2>로 끝나야 한다”고 단호하게 의사를 밝힌 바 있다.
=<친구3>에 관한 계획을 묻기에 그렇게 답한 것일 뿐 다른 뜻은 없었다. <친구>라는 귀중한 원석이 있기에 여기까지 온 게 사실이지만, <친구2>를 지나고, 나중에 또 어떻게 구현될지 그건 모르는 일이
[유오성] ‘어른’이 된 준석이 돌아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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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음, 누드, 자연, 환상, 자유…. 라이언 맥긴리의 사진에는 그런 것들이 어김없이 담겨 있다. 2003년, 25살 나이에 휘트니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연 최연소 작가로 유명세를 얻은 그는 청춘의 속살을 가장 적나라하고도 아름답게 담아내는 작가로 꼽힌다. 그는 취미로 파티에서 함께 놀던 친구들을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찍어대다가 사진의 길에 들어섰다고 한다. 10년 사이 모델이나 배우를 더 많이 찍게 되고, 연출에 익숙해지고, 필름이나 디지털카메라를 쓰게 됐지만, 마법과도 같은 생동감을 품은 그의 누드 사진들은 여전하다. 대림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라이언 맥긴리-청춘, 그 찬란한 기록>전을 기념해 서울을 찾은 그가 가장 자주 쓴 단어도 ‘마법’이다. 그가 말한, 마법으로서의 사진술에 관해 여기 옮겨 적는다.
-모델이나 피사체를 선택할 때 어떤 점을 중요하게 생각하나.
=예술가들을 가장 선호한다. 내 작품세계를 잘 이해하고, 누드 촬영에도 관대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사람의
[trans x cross] 자유로운 영혼의 마법 같은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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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진한 줄만 알았던 칠봉이의 역습이 시작됐다. 나정 앞에선 말간 얼굴로 웃기만 하던 칠봉이가 술기운을 빌려 나정에게 입을 맞추는 그때부터, 상황은 역전됐다. 저돌적인 그 입맞춤의 주인공이 유연석이었기에 더 속이 시원했는지도 모른다. 유연석이 <응사>에서 맡은 역할은 93년 봉황대기 고교야구대회서 일곱 경기 연속 완봉승을 거두며 MVP로 뽑혀 ‘휘문고 칠봉이’라는 별명을 얻게 된 ‘준’이다. 준의 이름은 아직 다 밝혀지지 않았다.
<건축학개론>의 강남 선배 재욱, <늑대소년>의 얄미운 지태,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의 잔혹한 수행원 지원을 거치며 ‘국민 나쁜놈’ 이미지를 완성한 유연석이 착한 얼굴로 돌아왔다. 악역을 연기할 때 더 빛이 나고, 화제가 되었던 것이 아쉬웠던 걸까. “왜 하필 비호감 캐릭터를 했던 영화만 대박이 터졌는지 모르겠다”며 아이같이 투덜거리는 모습이 덩치에 안 맞게 귀엽기까지 하다. “칠봉이가 실제 모습과 많이 비
[유연석] 칠봉이의 역습은 이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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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겉과 속이 다른 배우라니! 오해는 말자. 11년차 배우 고아라를 향한 순수한 감탄사일 뿐이다. 인형 같은 외모만큼이나 응당 그 속내마저 도도하고 새침할 줄 알았다. 그런데 이 무슨 난데없는 썰렁개그며, 아저씨 같은 추임새인지. <응사>의 나정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은 털털한 모습이다.
마산에서 상경한 신촌하숙 딸내미 나정은 연세대 농구부 “‘이상민 오빠야’의 극렬 빠순이”다. 강의실 출석보다 체육관 출석에 더 열심인 나정은 어느 순간부터 “머릴 쓰다듬던 (쓰레기) 오빠의 손, 오빠의 숨소리, 오빠의 냄새가 낯설어진다”. 똑같은 ‘순이’지만 <응칠>의 성시원(정은지)과는 여기에서 캐릭터가 확실히 갈린다. 어른이 되기 전까지 사랑을 몰랐던 시원과 달리, 갓 어른의 세계로 접어든 나정은 사랑을 할 줄 아는 것이다. “작가님이 ‘빠순이는 사랑과 순이질을 동시에 할 수 없다’고 말씀하시더라. 순이질은 사랑보다 더하다고 하셨다. 나정이는 이제 쓰레기의
[고아라] 모든 걸 내려놓고 ‘비커밍 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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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그때였다. 허릿병이 도진 나정에게 과자봉지를 툭 던져두고 나가던 그 시점. 정우가 보이기 시작했다. 지저분하고 바보 같아 ‘쓰레기’라고 불리던 오빠는 알고보니 천재과 레지던트였고 나정의 친오빠도 아니었다. 이 경상도 남자는 막말 속에 따뜻한 애정까지 장착한 고품격 멜로남이었다. <응사>가 시작된 이래 매 화 ‘정우의 멜로 폭탄’이 터지는 중이다. 나쁜 남자로 점철된 ‘실장님’ 들이 주도권을 잡고 있던 멜로드라마계에서 쓰레기는 흥미로운 별종이고, 매력적인 이단이다. ‘그 드라마 봤어?’가 ‘정우 봤어?’로 회자되고, 일찌감치 메인 CF 출연까지 대거 예약했으니, 그야말로 정우의 나날이다.
“닮긴 했는데 난 쓰레기보다 더 따뜻한 남자다. (웃음) 쓰레기는 나보다 열살 정도 어리니까 철부지인 면을 보탰다. 진지함과 코믹함의 적정선을 찾는 게 관건이었다.” 정우에게 쓰레기는 회심의 도전은 아니었다. 장르는 다르지만 액션영화 <바람>의 ‘짱구’를 쏙 빼닮은 데다,
[정우] 쓰레기보다 더 따뜻한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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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한 게임의 시간. 벌칙을 받은 칠봉이(유연석)가 나정(고아라)에게 키스를 했다. 이미 곯아떨어진 하숙생들을 패닝하던 카메라가 멈춘 곳은, 키스하는 그들을 의미심장하게 바라보는 쓰레기(정우)의 표정이다. <응답하라 1994>(이하 <응사>)가 6화에서 미래 다섯 신랑의 구도를 좁혀, 삼각멜로의 본색을 드러냈다. 먼지 쌓인 결혼식 비디오테이프처럼 굳이 꺼내보지 않았던 1994년의 기억들에 대한 시청자들의 안절부절, 노심초사는 앞으로 더욱 끓어오를 것이다.
삼각관계로 한데 묶인 정우, 고아라, 유연석, 세 배우는 사진 촬영 내내 장난을 멈추지 않았다. “이 모습이 현장 분위기 그대로”라는 정우의 말처럼, 셋은 스스럼없는 사이임을 줄기차게 과시했다. 물론 그들의 애정을 증폭시킨 진짜 원동력은 <응사>에 대한 뜨거운 반응이었을 것이다. “감독님이 대본을 아예 주지 않아”서 도무지 이 사랑의 끝이 어떨지 역시 짐작하지 못한다고 입을 모으는 세 배우들은 19
[응답하라 1994] 그들이 응답하는 삼각멜로의 본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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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차르트 타운>(2008), <애니멀 타운>(2009), <댄스 타운>(2010) 등 이른바 ‘<타운> 3부작’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낸 전규환 감독은 가장 왕성한 창작욕을 과시하고 있는, 한국 영화계의 진정한 독립영화감독 중 하나다. 이후 <불륜의 시대>(2011)를 지나 <무게>(2012)로 지난해 베니스국제영화제 ‘베니스 데이’ 부문에 초청돼 ‘퀴어사자상’을 수상했다. <무게>는 시체안치실에서 시체를 닦아 관에 담는 일을 하는 ‘꼽추’ 정씨(조재현)와 성기를 잘라내고 여자가 되고 싶어 하는 그의 배다른 동생 동배(박지아) 등 태생적인 ‘무게’를 떠안은 채 자신을 숨기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또한 지속적인 장르 실험을 해오고 있는 그에게 <무게>는 ‘판타지 멜로’다. 물론 그는 이후 몇번의 실험을 더 끝냈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된 <마이 보이>(2013)와 유준상 주
[flash on] 비울수록 많이 보이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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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파이브>에서 은아(김선아)는 연쇄살인마 재욱(온주완)과 싸운다. 그 악마 같은 살인마에게 처참히 짓밟힌 채 눈앞에서 사랑하는 남편과 딸이 살해되는 과정을 목격한 은아는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복수를 완성하고 싶어 한다. 눈빛과 표정, 그 모두는 우리가 익히 알아온 김선아의 그것이 아니다. <걸스카우트>(2008)와 <투혼>(2011) 이후 모처럼의 영화 출연이기도 하거니와, TV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2005) 등 한때 로맨틱 코미디 장르의 여왕이었던 김선아로서는 그야말로 일대 변신이다. 영화 속에서 그저 평범한 아줌마였던 은아가 끔찍한 사건을 겪으며 변해가는 모습 또한 그렇다. 원작이기도 한 인기 웹툰 <더 파이브>의 은아와 싱크로율 100%를 이룬다는 목표에 도전했던 김선아와 만났다. 웹툰의 질감과는 전혀 다른 실제 영화현장의 촉감이 여전히 생생하다는 그녀는, 아직도 영화에서 벗어나지 못한 느낌이었다. 지금껏 연기했던
[김선아] 로코 여왕의 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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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
영화
2013 <등풍래> <아상화니호호적> <살계>
2011 <진링의 13소녀>
장이모는 신인 배우 발굴에 일가견이 있는 감독이다. 대표적으로 공리와 장쯔이가 있다. <진링의 13소녀>에서 여주인공을 맡게 될 배우는 장 감독이 제시한 세 가지 조건에 부합해야 했다. “연기 경력이 없어야 할 것. 난징 사투리와 영어를 자연스럽게 구사할 것. 난징 최고의 기방에서 가장 돋보이는 기녀인 만큼 외모와 행동에서 기품이 느껴져야 할 것.” 난징 출신으로 대학에서 아나운서 양성을 위한 언어전파학을 전공하며 방송진행자로서의 꿈을 키워가던 니니는 이 모든 조건을 만족시키기에 충분한 자질이 있었다. 장 감독 아래서 약 2년간의 준비 기간을 거친 그녀는 이지적이면서 동시에 도발적인 매력의 기녀 ‘유모’를 완벽하게 표현해냈다.
니니는 이 영화로 대중의 관심과 평단의 호응을 동시에 얻어내며 단번에 스타로 떠올랐다. 그녀 자신도 “
[who are you] 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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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ography
영화 <소녀>(2013)
드라마 <프로포즈 대작전>(2012)
영화 <블라인드>(2011)
영화 <전설의 고향>(2007)
영화 <울어도 좋습니까?>(2006, 미개봉)
최진성 감독의 <소녀>는 겨울영화다. 눈 덮인 시골 마을은 겨울 한복판에 푹 잠겨 있고 소년은 꽁꽁 언 호수 위에서 스케이트를 타는 소녀를 마주한다. 단순히 계절의 배경이 겨울이기 때문에 겨울영화라는 건 아니다. 얼어붙은 시골 마을에서 살아가는 소년소녀의 마음마저 한겨울 고드름처럼 날카롭고 단단하다. 이 시린 겨울을, 소년소녀의 얼어붙은 마음까지 화면 위에 온전히 담아내는 것이 손원호 촬영감독의 몫이었다. “아쉬운 점, 어려운 점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상황이 좋지 않으면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해 화면을 만들어내는 것이 촬영감독의 몫이다”라고 말하는 그에게서 새삼 촬영의 기본이 무엇인지 배운다.
그는 기본에 충실하다. <
[STAFF 37.5] 감정을 조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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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성 감독은 신인 감독이 아니다. 13여년 전 한국의 우익 꼴통들에게 ‘뻑큐’를 날렸고(<뻑큐멘터리-박통진리교>(2001)), 월드컵 4강 진출에 광분하는 4700만 붉은 악마를 혼자서 ‘왕따’시켰다(<그들만의 월드컵 ver. 2.0>(2002)). 그리고 노무현 정권의 이라크 전쟁 파병을 앞서서 풍자하기도 했다(<제국-누구를 위하여 총을 울리나>(2003)). 최근에는 여러 밴드들과 함께 4대강 공사 현장을 찾아가 펼친 작은 공연을 카메라에 담았고(<저수지의 개들>(2011)), 제주 강정 마을에 해군 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퍼포먼스에 참여하기도 했다(<Jam Docu 강정>(2011)). 이 밖에도 뮤지컬영화(<히치하이킹>(2004)), 옴니버스 퀴어영화(<동백꽃>의 <김추자>), 시네마디지털서울에서 버터플라이상을 수상한 실험영화(<이상, 한가역반응>(2011), 32명의 SM 아티스
[최진성] 하드보일드한 세상에서 나를 돌아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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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배두나가 연기한 영화 속 캐릭터들은 발이 땅에 닿아 있는 인물이 아니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공기인형>(2009)에서 맡은 노조미는 인형이었고, 할리우드 진출작이었던 <클라우드 아틀라스>(2012)의 손미-451은 복제인간이었다. 한국영화 복귀작이었던 <코리아>(2012)의 리분희는 실존 인물이었지만 정보를 얻기가 쉽지 않았다.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현실적인 인물에 대한 배두나의 갈증은 커졌다. 차기작으로 <도희야>를 선택한 것도 “그런 갈증을 해소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정주리 감독의 <도희야>는 경찰대 출신의 여경 영남(배두나)이 어떤 사건을 겪고 지방의 한 바닷가 마을의 파출소 소장으로 좌천되면서 시작된다. 어쩔 수 없이 새로운 환경에 부딪히게 된 영남은 그곳에서 여중생 도희(김새론)를 만난다. 의붓아버지(송새벽), 할머니와 함께 살아가는 도희는 폭력이 일상인 위험한 삶에 고스란히 노출되
[배두나] On the Grou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