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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의 봄이 오는 길목. 노영석 감독은 준비하던 시나리오를 마무리하기 위해 지방의 외진 휴양림 펜션에 잠시 들어가기로 한다. 그러다 휴양림 인근 시내버스 정류장에서 덜컥 한 사내를 만난다. 교도소에서 나온 지 며칠 안 됐다고 자신을 소개하는 동네 토박이. 그는 지나친 친밀함을 드러내는 동시에 그걸 거절하면 언제 돌변할지 모를 거라는 위협적인 인상도 함께 전한다. 감독은 그날 밤 술이라도 한잔하자며 그가 숙소로 불쑥 찾아오면 어쩌나 걱정이 앞선다. 하지만 한편으론 짜릿한 창작에의 자극을 받은 나머지 공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다. 원래 쓰려던 시나리오는 뒷전으로 미룬 채 그 남자의 정체를 상상하며 한편의 시놉시스를 쓰고 있다. 외지에서 만난 감당할 수 없이 친절하고 또한 위협적인 한 남자. 그가 노영석 감독의 두 번째 장편 <조난자들>을 추진시켰다.
-이 영화의 동기가 된 그 남자와의 만남을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준다면.
=휴양림이 있는 마을 정류장에서부터 나를 자꾸
[노영석] 참 친절한데 불편하고 수상쩍은 사람… 의심은 내 경험에서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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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주인공과 소설가를 일치시켜 상상하는 일은 열렬한 독자의 즐거운 망상이자 대개 끝이 비극적인 드라마다. 소설가의 프로필 사진은 그가 쓴 이야기보다 더 큰 허구의 산물이기 마련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큰 성공을 거둔 스릴러 소설 <스노우맨>을 쓴 노르웨이의 소설가 요 네스뵈와 그가 창조한 시리즈의 주인공 해리 홀레에 대해서라면 다시 한번 희망을 걸어봐도 좋다. 경찰 해리 홀레는 이야기가 거듭될수록 부상을 입으며 비극의 핵심이 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섹시한 캐릭터이다. 그리고 작가 요 네스뵈는 축구 선수, 경제학자, 저널리스트, 록밴드 멤버이자 싱어송라이터, 소설가라는 직업을 거쳤고 유튜브에서 그의 밴드 디 데레(di derre, ‘그 녀석들’이라는 노르웨이어)의 열광적인 공연 실황을 만날 수 있다. 록스타-소설가인 셈이다. 또한 프로필 사진과 실물이 크게 다르지 않다, 주인공 해리보다 키는 좀 작지만.
-여러 도시를 여행하고, 그 경험을 작품에 반영하기를 즐기는 것
[trans x cross] 추운 나라에서 온 ‘록스타-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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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에 갔던 김고은이 씩씩거리며 스튜디오에 들어왔다. “아니, 문을 잠그는 게 어딨는지 몰라 안 잠갔는데 갑자기 어떤 남자가 들어오는 거예요. 놀라서 꺅 하고 소리를 질렀지 뭐예요.” 자신이 얼마나 놀랐는지 손짓, 발짓 모두 동원해 설명하는 김고은은 여배우라기보다 동네마다 한명씩 있는, 유별난 여동생에 가까워 보였다. <몬스터>에서 그가 연기한 복순처럼 말이다. “제 몸짓이 복순이 닮았다고요? 이게 다 복순이 때문인가봐요. 흐흐. 그러잖아도 복순이를 연기하고 나서 주변 사람들에게 정신줄 놓았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촬영장에서 이상한 춤을 추니까 스탭 언니들이 여배우가 그러면 안 된다고 그러고. 현장에서는 제가 아니었거든요.”
그가 한동안 몰입해 있었던 복순은 배가 고프면 밥을 먹어야 하고, 졸리면 잠을 자야 하는, 본능에 충실한 캐릭터다(동생의 복수를 하러 가다가도 배고프다고 칭얼댄다). 시장에서 장사하지 말라고 무력을 행사하는 용역 업체 직원을 상대로 “아저씨,
[김고은] 이상한 본능의 앨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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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말하자면 내추럴 본. 난 오히려 태수에게 인간다운 면모가 많다고 느꼈다. 하루에도 수십번 변하는 게 사람 감정이지 않나. 그냥 태수라는 인간에겐 살인도 가능한 일이었을 뿐이다.” <몬스터>를 본 관객이 새로이 알게 될 점이라면 이민기도 웃지 않는 연기가 가능했다는 것이다. <몬스터>에서 이민기는 황인호 감독이 “절대악”이라고 표현한 캐릭터 태수를 연기한다. 실제 모습이 어떻든 스크린 속의 그는 대개 철없고 쉽게 흥분하지만 마음 씀씀이만은 기특해서 미워하기 힘든 인물이었다. 그래서인지 시간이 흘렀어도 나이 들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고 언제든 남동생 혹은 연하 남자친구 역할이 기막히게 잘 어울렸다. 그의 큰 눈도 마냥 강아지 같아 보였을 뿐이다. <몬스터>에서 피 칠갑한 채로 난리를 부리기 전까지는 말이다.
<몬스터>에서 이민기는 그에게 한번도 기대한 적 없었던 또는 기대할 수 없었던 역할로 거듭났다. 일말의 죄책감도 없이 어린아이의
[이민기] 내 눈에 비친 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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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같은 남자와 이 남자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괴물이 된 여자가 맞붙는다. <몬스터>(감독 황인호)의 태수(이민기)와 복순(김고은)이 그들이다. 복순의 유일한 낙은 하나뿐인 가족인 여동생을 뒷바라지하는 것. 어느 날, 소중한 동생이 영문도 모른 채 살인마 태수로부터 죽임을 당한다. 폭력과 피와 거리가 먼 삶을 살아가던 복순은 난생처음 식칼을 허리춤에 차고 동생의 복수를 결심한다. 쫓고 쫓기는 영화 속 관계와 달리 스튜디오에 들어온 이민기와 김고은의 모습은 남매 같았다. 사진기자가 포즈를 요구할 때마다 두 사람은 서로의 자세를 도와주며 챙겼다. 다음 장부터 이민기와 김고은의 무시무시한 스릴러영화 도전기가 펼쳐진다.
[몬스터] 복수는 나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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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6월9일 영국 <ITV>에서 <브리튼스 갓 탤런트>(&t;BGT<)라는 이름의 전 국민 오디션 프로그램이 첫방송됐다. 재주꾼과 괴짜들 사이에서 평범하고 소심해 보이는 한 휴대폰 판매원이 오페라를 준비했다고 했을 때 사람들은 아무도 몇초 뒤에 일어날 일을 예상하지 못했다. 그가 첫 음절을 시작했을 때 사람들은 귀를 기울였고, 그가 높은 음에 도달했을 때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이후 그는 우승을 거머쥐었고, 평범한 사람들의 희망, 기적의 사나이 폴 포츠가 됐다. 그는 그 뒤 석장의 앨범을 발표했으며, 7년이 지난 지금도 전세계를 돌며 오페라 가수로서 활동 중이다. <원챈스>는 폴 포츠의 첫 앨범의 이름이자 그의 자서전 제목이며, 그의 삶을 모델로 한 영화 제목이다. 영화 <원챈스>의 개봉에 맞춰 11번째로 한국을 방문한 폴 포츠를 만났다.
-오디션 우승 뒤 전세계 투어 중이다.
=<BGT>에서 우승한 2007년에는
[flash on] 동전 던지기로 바뀐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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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장, 체육관, 문화센터 등 다양한 문화시설로 구성된 마포아트센터는 매주 화요일 오후 3시에 독립/예술영화를 튼다. 상영 프로그램 이름도 아예 ‘화요일 오후 3시’다. 관람료는 3천원. 무료 상영이 아닌데도 평균 객석점유율이 50%에 달한다. 마포구에 공동체 상영 바람이 불고 있다는 말이 과장이 아니다. 마포아트센터는 올해 1월부터 시작해 2월 마지막주까지 총 4편의 독립/예술영화(<안녕?! 오케스트라> <길 위에서> <위 캔 두 댓!> <노라노>)를 상영했다. 3월 첫쨋주엔 <늑대아이>를 상영 중이다. ‘화요일 오후 3시’의 운영자인 마포문화재단 백효진 주임은 지난 10년 동안 연극, 뮤지컬, 콘서트 제작에 참여한 공연기획자. 뒤늦게 독립, 예술영화 상영에 나선 이유를 물었다.
-마포문화재단이 공동체 상영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
=지난해 11월, 한국영상위원회가 독립/예술영화의 상영 기회를 늘리고 관객의 저변을 확
[flash on] 화요일엔 무조건 독립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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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드려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 하지만 올해 8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아메리칸 허슬>은 ‘충격의 무관’으로 남았다. 흑인감독으로서는 최초로 작품상을 받은 <노예 12년>의 반대편에서, 최다 10개 부문 후보에 올랐지만 정작 한개의 트로피도 가져가지 못한 것. 이같은 결과가 아카데미 위원회의 ‘허슬’(사기)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아메리칸 허슬>은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 배우들의 매력이 반짝반짝 빛나는 영화다. 그 안에서 충격의 무관은 따로 있다. 크리스천 베일은 같은 감독 데이비드 O. 러셀의 <파이터>(2010)로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제니퍼 로렌스도 역시 같은 감독의 <실버라이닝 플레이북>(2012)으로 무려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에이미 애덤스는 <아메리칸 허슬>로 올해 골든글로브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브래들리 쿠퍼야말로 진정 운이 없었다. 그럼에도 이제 곧 그의 시대가 열리리라 짐작하는 것은 그리
[브래들리 쿠퍼] 종잡을 수 없는 미남배우의 행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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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
영화
2014 <논스톱>
2013 <노예 12년>
드라마
2009~2012 <슈가>
제86회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조연상 수상. 이보다 더 화려한 데뷔가 있을까. 케냐 출신의 루피타 니옹고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칼라 퍼플>에서 우피 골드버그와 오프라 윈프리를 보고 영화배우가 되기로 결심했다”.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연극영화과를 다니며 연기수업을 받았으나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제작부 스탭으로 일하며 간간이 단편영화에 출연할 뿐이었다. 그녀의 스타성은 케냐에서 먼저 드러났다. 인종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 <In My Genes> 감독으로 주목받기 시작했고, 처음으로 출연한 TV드라마 <슈가>를 통해 단번에 케냐의 최고 스타가 되었다. 그녀는 모든 관심과 주목을 뒤로한 채 “내 꿈은 영화에 출연하는 것이었다. 이 꿈을 이루지 못하면 분명 후회하게 될 것”이라며 다시 미국 유학길에 올라 예일대학
[who are you] 루피타 니옹고 Lupita Nyon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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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ography
미술 <무서운 이야기2>(2013) <만신>(2013) <Mr. 아이돌>(2011) <돌이킬 수 없는>(2010) <그녀에게>(2009) <계몽영화>(2009) <여행자>(2009) <나는 행복합니다>(2008) <판타스틱 자살 소동>(2007) <좋지 아니한가>(2007) <삼거리 극장>(2006)
“그런데 전 감독이 아니라 미술감독인데요.” 백경인 미술감독은 첫 전화 통화에서 자신을 ‘미술감독’이라고 정확히 고쳐 불렀다. 그 이유가 ‘미술’에 대한 자부심 때문이었다는 건 그를 만나고 나서야 알았다. 시각디자인을 전공했던 백경인 미술감독은 처음에는 “광고나 뮤직비디오 감독이 되고 싶어” 영화과에 들어갔다. 거기서 만난 박동훈 감독의 제안으로 처음 미술 작업에 참여했다. “처음에는 배경이나 그려주고, 밥이나 얻어먹자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나
[STAFF 37.5] 진실과 거짓말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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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깡패 같은 애인>은 소박하고 성실한 영화였다. 백수와 깡패의 색다른 연애 이야기는 취업 경쟁에 내몰린 청춘들의 얼굴을 비추며 적지 않은 공감을 이끌어냈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감독의 차기작을 기대하게끔 만들었다. 탄탄한 짜임새는 물론이고 적은 예산 안에서 시도된 참신한 장면들이 즐거움과 함께 하나의 가능성으로 남았다. 방송작가 출신으로 이창동 감독의 <오아시스> 조감독을 거쳐 <내 깡패 같은 애인>으로 데뷔한 김광식 감독이 이번에는 화려한 장르영화 <찌라시: 위험한 소문>(이하 <찌라시>)을 들고 찾아왔다. 증권가의 사설 정보지, 속칭 ‘찌라시’의 세계에 발을 담근 한 매니저의 이야기를 통해 한국 사회의 정치/경제/문화적 고리를 꿰뚫는 솜씨는 여전하다. 충무로의 기대주에서 우량주로 거듭난 김광식 감독을 만나 그 비결을 들어봤다.
-첫주 성적이 나쁘지 않다.
=개봉 전 예매율은 4위였다. 엄청 불안했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
[김광식] 웃음과 디테일, 영화의 완성도를 높이는 밑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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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도 함부로 안 버리던 바른 친구예요.” <돼지의 왕> <사이비>의 연상호 감독이 말하는 만화가 최규석이다. 둘은 대학 시절부터 친구로 지냈고 만화가 최규석은 연상호 감독의 애니메이션 원화를 그렸다. 연상호 감독이 시나리오를 쓰면 제일 먼저 보여주는 사람도 최규석이다. 올바른 사람. “그런 사람이었던” 최규석이 자신과 비슷한 성격의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작품을 네이버 웹툰에 연재한다. 제목은 <송곳>. ‘떼인 임금 받아드립니다’라는 명함을 지닌 노동상담소 소장 구고신과 비정규직 노동자를 위하며 양심에 따라 행동하는 푸르미 마트 야채청과 과장 이수인이 주인공이다. 노동문제를 다룬 <송곳>은 이제 고작 10회 연재했을뿐인데 제목처럼 독자들의 양심을 송곳처럼 뚫고 있다.
-웹툰 연재는 처음이다. 반응이 어떤가.
=순위가 점점 떨어지고 있다. (웃음)
-순위가 떨어지는 이유가 ‘일베’의 공격 때문이라는 댓글도 봤다.
=그건 아닌 것
[trans x cross] 사서 고생하는 인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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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열차> 요나의 여진이 채 가시기도 전에 고아성은 방향의 키를 틀었다. 현실과 한참 떨어진 열차 칸을 벗어나 지극히 일상적인 시공간으로의 급선회. <우아한 거짓말>에서 그녀는 여고생 만지가 돼 돌아왔다. 거대했던 전작의 뒤라 조금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택한 작품이었을까 싶지만 이번에도 만만찮아 보인다. 어떤 면에선 전작들에 비해 좀더 감정의 음영이 짙어졌다고 해야 맞다. 매사에 무관심하고 시크한 만지가 살갑던 동생 천지(김향기)의 갑작스런 자살과 마주해야 하는 것부터가 그렇다. “만지에겐 캐릭터보다 상황이 더 중요했어요. 상실감에서 시작해서 죽음을 부정하다가 나중에는 천지가 왜 그런 결정을 했는지를 알아가는 그 상황에 중점을 뒀죠.” 이때 만지에게는 상실감 이상의 복잡한 감정이 흐른다. 그건 가족으로서 천지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미안함과는 다른 유의 것이다. 동생이 죽음을 결심할 때까지 무관심했던 방관자로서, 직간접적으로 천지를 따돌린 아이들과 자신이 별반 다를
[고아성] 묵직하고 깊은 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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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하다. 식상하지만 달리 적합한 단어를 찾을 길이 없다. 배우 김희애는 고지식한 시골처녀에서 화려한 팜므파탈까지 천변만화의 다채로운 연기를 펼쳐왔지만 어떤 역할을 맡을 때도 ‘김희애’라는 심지를 잃지 않는다. 주변을 불편하게 만드는 긴장감과는 사뭇 다르다. 오랜 시간 층층이 몸에 밴 꼿꼿함이랄까. 성긴 언어의 그물로는 그저 ‘우아함’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그 분위기는 긴 시간 동안 배우로 쌓아올린 마음의 결기다. “작품에 임할 때 마음을 다하지 않은 적 없는” 진심, “작품을 고를 때 과한 욕심을 부리지 않는” 여유, “주어진 여건하에서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결과를 기다리는” 태도는 ‘김희애스러운’ 공기로 그녀 주변을 맴돌고 있다.
“예전에 함께 일했던 사람들은 이제는 전부 팀장급이 되거나 다른 일을 하는지 대부분 찾아볼 수 없다”라는 그녀의 말처럼 영화판은 빠르게 변해간다. 하지만 세월이 모든 걸 바꾼다 해도 변치 않는 것들도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영화계에서
[김희애] ‘김희애’라는 우아한 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