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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한 가족이 있다. 겉으로는 아무 일 없는 듯 평온하다. 엄마는 씩씩하게 살자고 애써 다짐하고 딸은 그런 엄마에게 호들갑 떨지 말라고 짜증을 낸다. 딸을 잃은 어머니와 동생을 잃은 언니가 공유하는 것은 그 무엇으로도 메울 수 없는 상실감이다. <우아한 거짓말>의 김희애와 고아성은 그렇게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가족이 되어 관객을 울릴 준비를 마쳤다. 20년 만에 영화에 복귀한 김희애는 그간의 공백이 거짓말인 것처럼 완숙한 연기로 스크린에 녹아들었다. 고아성 역시 대선배 앞에서도 전혀 주눅 들지 않은 채 존재감을 드러냈다. 그간 브라운관을 통해 폭발적인 감정연기를 선보인 김희애는 감정을 절제하며 한 걸음 내려왔고, 특유의 자연스러움으로 대중의 이목을 사로잡았던 고아성은 이례적으로 감정을 폭발시키며 한 걸음 올라갔다. 서로가 서로의 버팀목이 되어 조금씩 닮아가는 두 여배우에게 물었다. 어떻게 가족이 되나요. 어떻게 배우가 되나요.
[우아한 거짓말] 조용한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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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의 서비스 1본부는 영화, 뮤직, 동영상, 책, 지식백과, 네이버 캐스트, 어학사전, 웹툰 등 주요 문화 콘텐츠를 서비스하는 핵심 사업부다. 최근 들어 서비스 1본부의 주도 아래 영화 서비스가 대폭 늘어났다. 500편의 고전작품에 대한 기본 개요와 주제, 역사적 배경 등을 총망라해 소개하는 ‘테마로 보는 세계영화작품사전 500’과 한국독립영화협회와 함께 독립영화를 무료로 스트리밍하는 ‘온라인 인디극장’ 등이 신설됐다. 서비스 1본부를 총괄하고 있는 한성숙 본부장에게 영화 서비스 확장에 관한 변을 들어보았다.
-‘테마로 보는 세계영화작품사전 500’은 어떤 취지에서 시작한 서비스인가.
=네이버에는 영화 서비스가 이미 서비스되고 있는데 사전 작업을 왜 하냐는 의견이 많았다. 상영 중인 영화에 대해서라면 정보가 쏟아지고 있으니 맞는 말일 수 있다. 하지만 예전 영화는 검색이 안 되는 아쉬움이 있었다. 사용자가 영화별 자료를 찾을 때도 위키피디아나 IMDb 같은 외국 자료를 해석하
[flash on] 변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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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난자들>은 ‘고립’의 영화다. 눈 쌓인 강원도 산골 마을의 아름다운 풍광이 순식간에 무시무시한 오싹함으로 바뀌면서 여행자는 순식간에 곤경에 처한다. <조난자들>에서 상진이 겪어내야 할 공포는 유타주의 협곡에서 팔을 잃었던 <127시간>의 아론이나 우주공간에서 미아가 될 뻔한 <그래비티>의 라이언의 그것들과는 별개다. 공포는 ‘자연’이 아니라 ‘사람’이 일으킨다. <조난자들>이 안겨주는 긴장과 스릴의 핵심에 배우 오태경이 있다. 오태경이 연기하는 마을 토박이 학수는 서울서 여행을 온 시나리오작가 상진(전석호)이 마을에서 만난 기피 대상이다. 상진처럼 관객 역시 학수에게서 곧장 이물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막 교도소를 출감했다며 상진에게 대화를 청하는 학수는 원신연 감독의 <구타유발자들> 속 폭력의 화신들과 한패 같아 보인다. 낡은 가죽 점퍼에 해진 청바지, 짧게 깎은 머리와 듬성듬성 자란 수염 보다 상진을 향해 ‘아저
[오태경] 낭떠러지 끝에 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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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ography
작화감독, 레이아웃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2014)
원화, 캐릭터 디자인 <돼지의 왕>(2011)
원화, 레이아웃 <마법천자문: 대마왕의 부활을 막아라>(2010) <무림일검의 사생활>(2007) <천년여우 여우비>(2006)
원화감독 <사랑은 단백질>(2008)
“작화감독으로서 어떤 일을 했느냐”라는 질문에 김창수 감독은 곤란해했다. ‘지금이 아니면 안돼’와 같은 소규모 제작사에서 서로의 업무를 명확히 가르는 것은, 관객이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각각의 스탭들의 몫을 가르는 것만큼 어렵다. “물론 최초의 구상과 아이디어는 장형윤 감독의 머리에서 나왔지만, 작업과정에서 스탭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감독의 스타일상 내 입김이 들어간 부분이 어디까지인지 짚어서 말하기는 어렵다”고 김창수 감독은 말한다.
그 대신 김 감독이 건넨 “애니메이터는 연기자다”라는 말은 작화감독을 포함한 범애니메
[STAFF 37.5] “애니메이터는 연기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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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의외로 아무런 압박이 없었다고 했다. 지금은 압박을 참을 수 없다고 호소하는 중이다. 삼성반도체에 근무하다 백혈병에 걸려 사망한 고 황유미씨의 사연을 다룬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은 제작 과정에서부터 화제였다. 투자사들이 꺼린 탓에 크라우드 펀딩으로 종잣돈을 마련했고, 뜻있는 개인 기부자들의 힘이 모여 결국 세상의 빛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정작 영화가 완성된 지금 영화를 볼 곳이 없어 관객과 만나지 못한다고 아우성이다. <잔혹한 출근>(2006)으로 데뷔한 김태윤 감독은 이후 오랜 시나리오작가 생활 끝에 충무로 제작 시스템에 한계를 느끼고 차기작으로 <또 하나의 약속>의 제작을 선택했다. <또 하나의 약속>의 제작, 각본, 감독을 도맡은 그가 상영, 배급에서 다시금 한계를 맞이한 지금 사태를 바라보는 심경은 어떨까.
-이제 개봉 3주차에 접어든다. 어떻게 지냈나.
=찍을 때만큼 바빴다. 인터뷰도 하고 무대 인사도 다니고 마음고
[김태윤] 죽지 않고 계속 살아나는 이 영화를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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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다기리즘’(オダギリズム)이라는 말이 있었다. 오다기리 조가 <가면 라이더 쿠우가>(2000)를 할 때 홈페이지에 썼던 글들을 모은 문집의 제목이다. 오다기리 조의 분위기를 닮은 문화 현상을 뜻하는 단어로 봐도 무방하다. 이 단어가 2001년부터 사용됐으니 오다기리 조는 이미 하나의 브랜드가 된 지 오래다. 만약 ‘오다기리 조’라는 단어가 사전에 실려 있다면 풀이는 이러하지 않을까.
오다기리 조(オダギリジョ- | 小田切譲 | Odagiri Joe) [형용사] 1. 대체할 수 없는 2. 어떤 것도 정해지지 않은 3. 긴장하는 일 없이 편안한
오다기리 조의 본격적인 데뷔는 2000년이다. ‘오다기리 조’라는 형용사가 실제로 존재했다면 그 형용사가 생겨난 지도 벌써 14년이 지난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 언어도 변한다.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뜻이 더해진다. 누구로도 대체할 수 없는 배우 오다기리 조도 조금씩 변해간다. 아니다. 전과는 또 다른 모습이, 다른 의미가 그에게
[오다기리 조] 이런 남자 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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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3회째를 맞은 마리끌레르영화제는 공식 명칭만 세번 바뀌는 곡절을 겪었다. 소규모 영화제라 출발이 순조롭지 않은가 싶어 일단 지켜보는데 준비된 작품들이 하나같이 예사롭지 않다. 개/폐막작으로 선정된 <아메리칸 허슬> <노예 12년>을 비롯해 지난해부터 영화계가 주목하고 있는 34편의 국내외 극영화와 다큐멘터리가 총집합했다. 기우뚱거리는 소형선에 뷔페식 만찬을 차려낸 사람은 지난해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집행위원장직을 사임하고 곧장 마리끌레르영화제로 돌아온 오동진 집행위원장이다. 그는 영화제 비수기라는 2월을 틈타 강남 한복판인 청담동에 “화톳불 앞에 옹기종기 모여 노는 분위기를 만들고 싶다”고 한다. 어딘가 이질적인 것들의 모음 같다는 인상이다. 그것부터 물어봤다.
-2012년 제천국제음악영화제(이하 JIMFF)와 패션지 <마리끌레르>가 함께한 ‘마리끌레르필름페스티벌+제천국제음악영화제’가 시작이었다.
=당시 제천시는 큰 예산을 들이는데 영화제가 일
[flash on] 예술적이되 ‘더’ 대중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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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미 애덤스는 세살짜리 딸을 둔 올해 마흔한살의 엄마로서 평소 일상을 물어보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담담하게 말한 적이 있다. “알다시피 제가 VIP는 아니잖아요?” 실제로 그녀는 1999년 <드롭 데드 고저스>(감독 마이클 패트릭 잔)에서 작은 역할을 맡으며 영화에 데뷔한 뒤(참고로 이 작품의 주연은 커스틴 던스트였다) 한순간도 쉬지 않고 활발한 작품 활동을 펼쳤지만 할리우드 파파라치가 따라붙는 화려한 스타의 삶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는 물론 화려함을 즐기지 않는 그녀의 성격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녀가 맡아온 캐릭터들의 일관된 특징 때문에 굳어진 그녀의 이미지와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를테면 에이미 애덤스가 처음으로 비중 있는 역할을 맡은 작품인 필 모리슨 감독의 <준벅>(2005)에서 그녀는 사랑을 갈구하는 해맑은 임신부를 맡았다. 애슐리란 이름의 이 여성은 물론 매력적이었고 에이미 애덤스의 연기도 더할 나위 없이 훌륭했지만(이 영화로 그녀는 선댄스영
[에이미 애덤스] 과시하지 않고 응시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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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
영화
2015 <일곱번째 아들>
2014 <드래곤 길들이기2>
2014 <폼페이: 최후의 날>
2012 <사일런트 힐: 레버레이션>
드라마
2011∼14 <왕좌의 게임> 시즌1∼4
키트 해링턴은 <왕좌의 게임>을 통해 우리에게 존재감을 알렸다. 제작진이 무명배우나 다름없었던 그에게 ‘존 스노’라는 큰 배역을 허락한 이유는 그가 오디션을 보기 위해 준비해온 세심한 캐릭터 연구에 있었다. “원작을 몇번이나 반복해서 봤는지 모르겠다. 다른 배역에는 관심도 없었다. 철저하게 ‘존 스노’의 관점에서 캐릭터 연구를 했다.” ‘서자’ 출신의 존 스노와 달리 그는 윌리엄 1세의 후손으로 귀족 집안에서 태어났다. 극작가인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자연스럽게 연극을 접했고, 런던의 로열 센트럴 스쿨 오브 스피치 앤드 드라마(Royal Central School of Speech & Drama)에 입학해 연기를
[who are you] 키트 해링턴 Kit Haring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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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ography
영화
<폼페이: 최후의 날>(2014), <노예 12년>(2013), <아메리칸 허슬>(2013), <인사이드 르윈>(2013), <폴리스 스토리 2014>(2013), <엔더스 게임>(2013), <시절인연>(2013), <돈존>(2013), <리딕>(2013), <다이애나>(2013), <섀도우 헌터스: 뼈의 도시>(2013), <나우 유 씨 미: 마술사기단>(2013), <웜바디스>(2013)
드라마
<왕좌의 게임 시즌1~3>(2011∼13), <레볼루션>(2012), <뉴스룸>(2012), <더 퍼시픽>(2010), <밴드 오브 브라더스>(2001), <NCIS 시즌9>(2011), <NCIS 시즌1~8>(2003~10), <24 시
[STAFF 37.5] 오역은 휴먼에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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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능의 법칙>은 40대 세 여자의 이야기이며 엄정화, 문소리, 조민수가 주인공이다. 신혜(엄정화)는 자기 분야에서 인정받은 방송국 부장이고 미연(문소리)은 좀 부유해 보이는 전업주부이고 해영(조민수)은 다 큰 딸 하나를 두고 사는 예쁘고 아담한 빵집의 주인이다. 그간 한국영화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40대 여주인공들의 출현이라는 면모가 특이한 데다 상당수 관점과 이야기도 그들의 다양한 일상사에서 나오고 있다는 게 특징이다. 다만 그걸 연출하는 감독이 남자다. 그런데 자타가 다 그럴 만하다고 공인하는 분위기다. 그러자 문득 40대 여자들의 이야기를 연출하는, 혹은 그걸 연출하는 데 적임자로 알려진 이 50대 남자의 생각은 어떠한지 궁금해졌다.
-얼마 전 <관능의 법칙> 제작사 명필름의 심재명 대표를 인터뷰했다. 감독님이 들으면 약간 거북해할 만한 질문도 하나 있었다.
=뭔지 안다. 내가 이 영화의 감독으로 “너무 정답 아니냐?”라고 하지 않았던가.
-맞다.
[권칠인] 재미를 계속 찾다보면 세계관도 확장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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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보러 오셨어요?” “아뇨. 술 마시러 왔어요.” 2월8일, 연극 <동백 아저씨>가 공연되는 대학로 선돌극장 입구에서 배우 윤제문과 나눈 짧은 대화다. 박근형의 제자인 이은준 연출가는 그가 “애연가이며, 휴머니스트이며, 평범한데 특이하다”라고 했다. 동료 연극인들이 입을 모아 좋아한다 말하고, 존경한다 얘기하는 박근형. 그는 극단 골목길의 대표이자, <쥐> <청춘예찬> <선데이 서울> <경숙이 경숙 아버지> 등의 극을 쓰고 무대에 올린 연극연출가다. 그가 2월1일부터 23일까지 선돌극장에서 연극 <동백 아저씨>를 선보인다. 이은준 연출가의 번안극 <소설처럼>과 함께 이어 공연되는, 60분 남짓의 짧은 창작극이다. 2월14일부터 15일까지 충무아트홀에선 앙상블 시나위의 <두 여자의 노래>도 연출한다. 바쁘게 대학로와 충무아트홀을 오가며 작품 준비 중인 박근형 연출가를 만났다.
-토요일(2월8
[trans x cross] 사람을 따뜻하게 만드는 것, 어려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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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 그대로, <아메리칸 허슬>은 크리스천 베일의 불룩하게 솟아오른 배에서 시작한다. 이는 베일이 이 영화에서 얼마나 망가졌는지 보라는 감독의 노골적인 메시지다. <배트맨> 시리즈에서 건장한 슈퍼히어로의 몸을 보여준 그가 갑자기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육중한 몸으로 등장한 것이다. 그런데 베일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저게 진짜 배가 맞나, 관객이 아직도 의심하고 있을 때 베일은 태연하게 자신의 대머리에 부분 가발을 얹고, 남은 머리카락을 풀로 정성스럽게 고정한다. 그는 지금 매우 심각하지만 관객은 웃을 수밖에 없다. 그 상황 자체도 웃기지만 크리스천 베일이 이런 모습으로 이런 연기를 하는 것이 몰입을 방해할 정도의 파격인 것이다(이는 크리스천 베일이 데이비드 O. 러셀과 처음으로 함께 작업했던 <파이터>에서 66kg의 몸으로 휘청거리며 등장했을 때를 떠올리게 한다).
최근 개봉한 영화 중 가장 인상적인 오프닝으로 꼽을 만한 이 장면에서 크리스천 베
[크리스천 베일] 어려운 길을 가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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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에 걸려 계속해서 코를 훌쩍이는 여배우. 컨디션 난조를 보인 인터뷰 당일, 여배우는 의상 선택에도 신중함을 보였고 메이크업에도 배로 신경을 쏟았다. ‘관능적이고 도발적인 의상’을 주문했으나 그녀는 좀더 몸에 편한 옷을 택했다. 그리고 파운데이션은 잘 먹었는지 립스틱의 짙기는 적당한지 거울 속을 꼼꼼히 살폈다. 여배우에게 화장발, 카메라발은 중요하니까. 화장이 잘 먹지 않은 날 대개의 여자들은 외출이 두려운 법이니까. 입에 발린 얘기를 싫어하고 솔직한 화법을 즐기는 문소리는 털털함으로 이 바닥을 평정한 지 오래다. 그럼에도 카메라 앞에선 완벽하고픈, 아니 완벽을 기하는 여배우다. 프로페셔널의 아주 좋은 예랄까.
<관능의 법칙>의 미연은 자신이 프로페셔널한 주부라고 생각하는 여자다. 자식 다 키워 유학 보내놓고 남편(이성민)과 다시 뜨거운 사랑(!)을 나누는 40대 주부 미연은 제 삶이 완벽하다고 믿는다. 남편이 비아그라를 복용하며 ‘의무방어전’을 치른다는 것을 알기
[문소리] 프로페셔널의 관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