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탄생 100주년을 대한민국처럼 뜨겁게 기념한 나라는 없었다. 영화를 예술로, 영상문화를 대중문화의 심장으로 바라보기 시작한 사회적 분위기를 타고 탄생한 새로운 영화잡지들은, 그들을 낳은 흐름에 가속도를 보탰다. 영화잡지 시장은 5월 창간된 <씨네21>과 <키노>, 12월에 첫호를 낸 <프리미어>로 인해 재편됐다. <씨네21>은 <한겨레>의 저널리즘적 감각으로 영화광 문화를 폐쇄회로에서 끌어냈고 <키노>는 비타협적인 작가주의 비평의 관점을 견지했으며 <프리미어>는 국내 유일의 라이선스 영화잡지로서 사진과 할리우드에서 직송된 기사를 장점으로 내세웠다. 새로운 잡지들은 10대에 편중된 영화잡지 독자층을 30대 너머로 확장했고 감독과 제작자를 대중문화의 스타로 만들었다. 영화는 강의 리포트에서 일상대화까지 대학가 문화의 중심에 파고들었다. 영화예술에 대한 갈증은 창작과 배급 부문에서도 답을 찾았다. 국립영상원이 3월 개원했고 11월에는 백두대간과 동숭아트센터가 예술영화전용관을 개관했다. 유선방송 개국과 네티즌 인구 10만명을 돌파한 인터넷으로 열린 새로운 미디어 환경도 깊고 다양한 영화문화의 토대를 닦았다.
1995년의 영화
할머니들의 낮고 깊은 목소리_<낮은 목소리>
기생관광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던 변영주 감독이 일본인을 접대하는 그 여성의 어머니가 일본군 위안부였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이 <낮은 목소리>의 시작이었다. 오가와 신스케의 낡은 카메라를 무상으로 대여해 할머니들과 1년 반을 동고동락하며 탄생한 <낮은 목소리>는 기록영화로서는 국내 최초로 개봉관에 입성해 1만5천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낮은 목소리>는 뉴욕여성영화협회가 선정한 ‘세계 여성영화 25편’에 포함됐으며 <낮은 목소리2>(1997), <숨결-낮은 목소리3>(1999)로 여정을 이어갔다.
전태일의 혁명은 불타올랐다_<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평단의 흥분을 불러일으킨 영화가 많지 않은 한해였으나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은 국민모금으로 성사된 제작비 조성부터, 리얼리즘적 시선과 탐미적 스타일을 결합한 박광수 감독의 미학적 성취, 젊은 관객의 호응에 힘입은 흥행 성공(전국관객 50만명)에 이르기까지 1995년 한국 영화계에 작은 혁명의 불꽃을 피웠다. <씨네21> 독자들은 연말 최고의 영화, 감독 투표에서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에 61.8%, 박광수 감독에 64%라는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압도적 지지를 보냈다.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은 이듬해 베를린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했다.
TREND
영화산업 지각변동
삼성영상사업단과 대우의 진출로 충무로가 재편되고 일신창투를 비롯한 금융기관도 영화투자에 발을 들여놓은 가운데 시네마서비스가 태풍의 눈으로 떠올랐다. 또한 신철, 유인택, 이춘연, 강우석, 안동규 등 제작자 1세대에 차승재, 심재명이 가세해 기획과 제작을 겸하는 한국적 프로듀서 역할을 정착시켰다.
왕가위 붐
20만 관객을 동원한 <중경삼림>을 비롯해 <동사서독> <타락천사>등 왕가위 감독 영화 세편이 하반기에 한꺼번에 수입 개봉되면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에 비견되는 유행을 일으켰다. 반면 국내 극장가에서 홍콩영화의 하락세는 확연해, 왕가위 작품을 제외하면 <옥보단>이 유일하게 흥행에 성공했다.
케이블 시대 개막
케이블TV가 3월1일 54개 지역에서 방송을 시작하며 자리를 잡았다. 대우와 삼성, 대기업의 자존심을 건 DCN과 캐치원이 영화 애호 시청자들을 놓고 경쟁을 벌였고 <유지나 vs 이용관> 같은 새로운 형식의 영화 프로그램도 인기를 끌었다.
감독들, 배우 겸업 러시
할리우드에서 멜 깁슨이 <브레이브 하트>를 만든 1995년, 충무로에서는 <맨?>의 여균동, <학생부군신위>의 박철수, <러브스토리>의 배창호 감독이 모두 자신의 영화에서 연기를 겸업했다. 작품과 인물 성격을 정확히 이해한다는 장점도 있었지만, 중견 연기자 기근과 저예산영화의 제작비 절약이 더 절박한 이유였을 것이다.
새로운 영화진흥법 제정
1962년 제3공화국 초에 제정된 영화법을 대체하는 새로운 영화진흥법이 제정됐다. 그러나 개정법안에 단편, 소형영화 심의 강화 조항이 포함했다는 이유로 영화계의 반발을 샀고 그 과정에서 영화인들 사이에 불화의 골이 패기도 했다.
1995년 흥행 5걸
(당해 개봉작, 서울 기준)
1. <다이하드3> 97만9666
2. <레옹> 60만6875
3. <브레이브 하트> 50만798
4. <프렌치 키스> 39만8027
5. <쎄븐> 39만4034
NUMBER
63 한국영화 제작편수(편)
20.9 한국영화 관객점유율(%)
4 배우 안성기 한해 동안 출연작 수(편)
492 공륜의 심의에 걸린 작품(수)
7648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제작비 모금 참가자(명)
CHARACTER
너무 순진한 킬러_<레옹>의 레옹
배우 장 르노의 성에서 철자를 바꾸어 이름을 지었다는 청부살인업자 레옹은 1995년 서울 거리에 작고 동그란 선글라스와 잔디처럼 바짝 깎은 머리, 편물 모자를 유행시켰다. 사생활에서는 갓난애처럼 순진하지만 일(살인)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프로페셔널이라는 그의 초현실적 성격이, 전문 분야를 갖되 유희하는 인간으로 남고 싶어하는 90년대 젊은이들의 무의식에 호소한 까닭인지도 모른다. ‘킬러’로 끝난다는 이유로 레옹을 끌어들인 살충제 CF도 등장했다.
말,말,말
“영화사 이름도 관객에게 서비스한다는 의미로 ‘시네마서비스’라 지었다.”(강우석 감독)
“연기는 작품의 질이 받쳐줘야 평가되는 법인데, 감독상을 주기에는 좀 처졌나보지.” (임권택 감독, 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만 빈번히 받았다는 기자의 말에)
“어떤 감독이 열정을 갖고 나를 확실히 변신시켜줄 수 있다면… 그게 내 꿈이다.”(최진실)
“Long and winding road."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허진호 조감독의 소감)
“드라마적인 요소는 TV에 넘겨주어야 할 시대가 아닌가 싶은데, 아직도 우리 영화는 드라마의 족쇄에 묶여 있다.”(이명세 감독)
“참석자들이 제목에 대해 갸우뚱하면서 원제인 ‘낯선 여름’이 더 낫다고 한마디씩 했다.”(<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제작발표회 장에서)
“비판과 저항만이 독립영화의 전부였을 때는 이미 지났다. (중략) 제작비가 적으면 적은 만큼 더 많이 발로 뛰고 공을 들여 작품을 만드는 자세와 노력이 이젠 정말 필요할 때다.”(김동원 감독)
“죽을 때까지 연기를 할 텐데 벌써부터 가장 마음에 들었던 역 운운할 수는 없죠.” (내한한 장국영)
PEOPLE
불패신화의 시작_한석규
1995년은 ‘한석규 불패신화’의 원년이었다. 반듯함과 비루함의 두 얼굴을 지닌 이 진중하고 용의주도한 배우는 드라마 <서울의 달>이 가져다준 정점을 딛고 1995년 한국영화 흥행 챔피언 <닥터 봉>으로 화려한 스크린 신고식을 치렀다. 중량급 신인배우였던 한석규는 <씨네21>과의 본격적인 첫 인터뷰에서 “관객은 배우가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연기에 접근하는가를 서서히 알게 될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이후 <은행나무 침대> <초록물고기> <접속> <넘버.3> <8월의 크리스마스> <쉬리>로 이어진 그의 선택은 놀라운 적중률을 자랑했고 그의 캐스팅은 어떤 운수대통 점괘보다 제작사를 안심시켰다.
TV의 미다스 스크린으로 가다_김종학
“이제는 영화다!” <여명의 눈동자> <모래시계>를 통해 TV 최고의 기린아로 위치를 굳힌 김종학 PD와 송지나 작가의 영화계 진출은, 영화가 대중문화의 총아로 떠오른 시대의 징표였다. 드림웍스에 출자하는 한편 제작비 투자로 영화수업료를 치르던 여타 대기업과 달리, 단번에 승부수를 던지고자 한 제일제당과 손잡고 오늘날 CJ그룹 영화사업의 모태인 제이콤을 설립한 김종학 PD의 일성은 “실패할 이유가 전혀 없다”였다. 이후 제이콤 깃발 아래서 <인샬라> <바리케이드>를 제작했으나 송지나 작가와 손잡고 직접 영화를 연출하는 기회는 얻지 못했다.
월력
3월 케이블TV 개국
4월 씨티극장, <씨네21> 조사에서 가장 시설 좋은 극장으로 선정 제일제당, 드림웍스 SKG에 3억달러 자본 참여 및 제이콤 공동설립
5월 고현정 결혼으로 연기 중단 대한극장 매표 비리 수사 일단락 에미르 쿠스투리차 <언더그라운드> 황금종려상 수상 <패션쇼> 전면누드신에 떠다닌 빨간색 하트로 화제
6월 ‘간 큰 남편’ 시리즈 유행 삼풍백화점 붕괴
7월 <다이 하드3>를 신호탄으로 극장 입장료 5천원선 흔들 디즈니와 <ABC> 합병
8월 제1회 서울국제만화페스티벌(SICAF) 비전향 장기수 김선명씨 석방 배우 임성민 타계 이정현, <꽃잎> 주연으로 발탁
9월 명필름 창립 <검으나 땅에 희나 백성> 베니스영화제 비경쟁 부문 진출 중견 영화감독 11명 ‘명품 TV’ CF 촬영
10월 영화진흥공사 홍릉 이전, 후반작업시설 가동 <낮은 목소리> 야마가타영화제 오가와 신스케상 수상 이승연 <피아노맨> 최고 개런티 1억5천만원으로 스크린 진출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개같은 날의 오후> 페미니즘영화에 대한 관심 제고
11월 동숭씨네마텍 예술영화전용관 개관 사상 최초의 CG 3D장편애니메이션 <토이 스토리> 탄생 공륜, 본심 완료 전에 시사회 가진 <쇼걸> 수입사 극동스크린 고발 추상미 <꽃잎>으로 영화 데뷔 루이 말, 질 들뢰즈 타계
12월 삼성영상사업단 사업계획 발표 새 영화진흥법 국회 본회의 통과 할리우드 스타들이 공동출자한 레스토랑 ‘플래닛 할리우드’ 서울지점 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