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한국영화는 폭발적이다. 체감하는 한국영화의 시장점유율은 올해가 역대 최고처럼 보인다. 이런 결과가 나온 이유는 따로 짚어봐야겠지만 흥행성적 못지않게 좋은 신인 감독들이 여럿 등장했다는 점에 주목하자.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 선정은 그런 발견의 연속이었다. 아시아 신인감독을 대상으로 하는 경쟁부문인 뉴 커런츠 부문에 뽑힌 한국영화 3편 <소녀> <파스카> <10분>이 대표적이다. 최진성 감독의 <소녀>와 안선경 감독의 <파스카>는 대조적인 스타일로 연출된 러브스토리이고, 이용승 감독의 <10분>은 사회초년생이 겪는 부당한 사건을 그린 작품이다. 소재나 표현방법은 다 다르지만 3편 모두 진정한 발견의 기쁨을 주는 영화들이다.
장르영화의 문법을 수용한 비전 부문 상영작 <돼지의 왕> <지슬> 등 화제작을 낳았던 비전 부문 역시 주목할 재능을 선보이는 신인감독의 영화로 채워졌다. 특이한 것은 대부분 영화가 장르영화의 문법을 수용하면서 대중과의 교감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 크게 보면 미스터리 스릴러로 구분될만한 영화 <조난자들> <보호자> <안녕, 투이> <한공주>가 대표적이다. <조난자들>은 시골 마을의 외딴 산장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영문을 모르는 주인공이 위험에 처하는 이야기이며 <보호자>는 아이를 유괴당한 아버지가 다른 아이를 유괴해오면 당신의 아이를 돌려주겠다는 유괴범의 제안을 받고 갈등하는 이야기이다. <조난자들>처럼 시골 마을이 무대인 <안녕, 투이>는 결혼해서 한국에 온 베트남 여인이 남편의 사망원인을 찾아 동분서주하자 마을 사람들이 그녀를 불편해하고 꺼리는 이야기. <한공주>는 이전 학교에서 있던 사고로 전학을 간 여고생 한공주가 새로운 학교에 적응하려 하지만 과거의 사건 때문에 다시 불행에 발목이 잡히는 내용이다. 4편 모두 진지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미스터리 화법을 동원, 끝까지 관객의 흥미를 잡아두는 영화이다.
반면 <다이너마이트맨>은 저예산 액션영화로 주목할 작품. 조직에서 벗어나려다 심한 보복을 당한 형제가 복수를 하는 이야기인데 짧지만 효과적인 액션 장면과 길고 긴 철학적인 대화가 번갈아 나온다. <스톤>도 액션영화로 분류할 수 있는 작품인데 바둑을 두는 젊은이와 조폭 두목의 교감을 그린다. 조직생활을 해온 것을 후회하는 두목은 내기 바둑으로 시간을 보내는 젊은이에게 프로 기사가 될 것을 권하며 자신처럼 아마추어로 살지 말라고 말한다. <도니 브래스코> 같은 영화도 연상되는 작품. 대중적인 코미디인 <족구왕>은 장르영화 화법을 가장 적극적으로 사용한 영화일 것이다. 군대를 다녀온 뒤 대학에 복학한 주인공이 학교에 족구열풍을 불러일으키는 이야기인데 만화적인 설정과 캐릭터가 돋보인다. 야구치 시노부, 야마시타 노부히로 등 일본 청춘영화의 대표 감독들이 떠오르는 작품이다.
장르로 구분 짓기 힘든 3편의 영화는 여성감독의 영화 2편인 <셔틀콕>과 <신의 선물>, 그리고 서호빈 감독의 <못>이다. 이중 <신의 선물>은 김기덕 감독의 시나리오를 김기덕 연출부 출신 감독이 영화로 만든 경우이고 <셔틀콕>은 부모의 유산을 들고 사라진 이복 누나를 찾아 여행을 떠나는 소년을 그리고 있다. 한편 <못>은 고등학생 시절 있었던 불행한 사고가 세월이 흐른 뒤에도 우연한 계기로 다시 사람들의 발목을 붙잡는 이야기다.
홍상수, 김기덕 감독의 신작과 배우 박중훈, 하정우의 감독 데뷔작 비전 부문 영화들이 신인감독의 독립영화로 채워진 반면 파노라마 부문은 올해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영화들과 어떤 영화가 나왔을지 무척 궁금한 작품들로 채워졌다. 먼저 홍상수의 영화 2편,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과 <우리 선희>.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은 베를린영화제 경쟁부문에서, <우리 선희>는 로카르노영화제 경쟁부문에서 상영됐고 이중 <우리 선희>는 로카르노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했다. 김기덕 감독은 지난해 <피에타> 이후 올해 <뫼비우스>로 베니스영화제를 다시 찾았다. 영상물등급위원회로부터 두 차례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았던 <뫼비우스>는 베니스국제영화제 상영본에서 2분30초 정도 삭제된 버전으로, 이번 영화제에서 관객과 만난다. 파노라마 부문 선정작에는 김기덕 감독의 시나리오를 신연식 감독(<페어 러브> <러시안 소설>)이 연출해 완성한 <배우는 배우다>도 있다.
박중훈과 하정우, 두 배우의 연출 데뷔작도 화젯거리다. <투캅스>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박중훈은 첫 영화로 <톱스타>를 만들었다. 매니저였던 주인공이 배우가 되고 톱스타의 반열에 올랐다가 몰락하는 과정을 그린 작품.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가운데 <베를린>과 <더 테러 라이브>, 2편의 주연이기도 한 하정우의 감독 데뷔작은 <롤러코스터>라는 코미디 영화다. 한류스타를 태운 비행기가 폭풍을 만나 착륙에 실패하는 동안 비행기 안에서 벌어지는 웃기는 일들을 그린 작품.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대사와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시종 웃음을 자아낸다.
<돼지의 왕>으로 주목 받았던 연상호 감독의 두 번째 장편애니메이션 <사이비>도 관객의 흥미를 끄는 영화다. <돼지의 왕>과 마찬가지로 사회적 문제의식을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사실적 애니메이션. 류승완 감독의 <베를린>과 김성수 감독의 <무명인>은 장르영화로 주목할 만한 작품이고 이장호 감독의 <시선>과 장현수 감독의 <애비>는 중견감독의 신작으로 궁금증을 자아낸다. 이밖에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백혈병 환자가 생긴 실화를 영화로 옮긴 <또 하나의 가족>, <무게>로 베니스영화제 퀴어라이언상을 받은 전규환 감독의 신작 <마이보이>, 국가인권위원회가 박정범, 신아가, 이상철, 민용근 등 주목 받는 독립영화 감독들에게 의뢰해 만든 옴니버스영화 <어떤 시선> 등 총 14편이 파노라마 부문에서 관객과 만날 예정이다.
페막작 <만찬>, 심금을 울리는 가족멜로드라마 갈라 프리젠테이션 부문에서는 김지운 감독의 <더 엑스>와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가 선보인다. 이중 <더 엑스>는 극장의 전면뿐 아니라 양 측면까지 화면이 나오는 스크린X 시스템을 위해 만든 단편영화. 야외상영인 오픈시네마 부문엔 올해 한국 액션스릴러를 대표하는 2편인 <감시자들>과 <더 테러 라이브>가 상영되고, 임권택 회고전과 박철수 추모전도 영화제 기간 동안 진행된다. 끝으로 올해 폐막작 <만찬>도 놓치지 말길 부탁드린다. 한 가족에게 닥친 불행을 냉정히 바라보는 이 영화는 심금을 울리는 가족멜로드라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