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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소설에 혀를 담그고 있으면 나를 취하게 만들고 뼈를 덥혀준다. 그런데 자신이 소설을 쓴다는 것은, 마치 성가시기 짝이 없는 자위 행위 같은 것 아닐까 나는 생각했었다. 그러니 나는 문학청년들에 대해 엄청난 편견을 지녀왔던 것이다.” 이 바로 앞대목에서는 이런 문장도 나온다. “인간은 도약하지 못할 때 쓰는 것이리라.”
이야기꾼이 되기, 거짓말을 만들기, 환상 속에 살기, 꿈을 현실로 만들기. 구라하시 유미코의 <성소녀>는 이야기를 둘러싼 남녀의 괴이쩍은 체험담이다. 미키라는 젊은 여자가 교통사고를 내고 기억을 잃어버리는데, 그녀의 어머니는 그 사고로 인해 사망. 기억을 잃은 그녀가 약혼자인 ‘나’에게 건넨 글에는 ‘파파’라고 부르던 엄마의 옛 연인과 애인으로 꽤 오랜 시간을 보냈음을 낱낱이 고백하는 내용이 있다. 그런가 하면 ‘나’쪽도 별로 도덕적으로 깨끗한 인간은 아닌데, 친구들과 어울려 여학생을 집단강간한 일이 있다. <성소녀>는 ‘파파’라는 남자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진짜 외설은 가까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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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거서 크리스티의 직계로 인정받는 캐나다 작가 루이즈 페니의 작품으로, <냉혹한 이야기>와 이어 읽으면 좋다. 스리 파인스라는 고즈넉한 마을에서 이상적인 공동체를 이루며 사는 사람들의 평화로운 일상이 깨지기 시작한다. 아름다운 환경을 바탕으로 선한 듯 선하지 않고 악한 듯 악하지 않은, 결국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저자는 사람들의 이중성을 다루고 싶었다고 말한다. 가장 끔찍한 효과를 주기 위해 범죄는 평화로운 곳에서 일어나야 했다는 것이다.
[도서] 평화로운 곳에서 일어난 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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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박이 2013년 11월부터 2014년 8월까지 창비 문학블로그 ‘창문’에 연재한 만화 모음으로, 선거철이면 화살처럼 쏟아지는 “경상도, 도대체 왜 그러냐?”라는 질문에 대한 경상도 토박이 김수박 작가의 대답이다. 유머감각으로 버무려낸 작가의 1980년대 유년 시절, 먹고살기에 바빴던 경상도의 풍경을 감상하다보면 오랜 반목의 뿌리를 더듬어낼 수 있다. 작가는 지역감정을 부인하지도 과장하지도 않는다. 다만 개인의 역사를 통해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만큼을 독자에게 전달하려 할 뿐이다.
[도서] “경상도, 도대체 왜 그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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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파트리크 모디아노의 청년 시절을 그린 자전적 소설. 파트리크 모디아노는 이 작품에서 15년, 혹은 20년, 아니 그 이상이거나 그 이하이거나에 상관없이 ‘시간이 멸해버린 나보다 더 많은 나를’ 찾아 나서고 있다. 비록 이제는 사라져버렸지만 화자와 등장인물들의 추억 속에 생생히 남아 있는 발베르 학교를 배경으로 지나간 세월을 이야기한다.
[도서] 작가의 청년 시절을 그린 자전적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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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끝별 시인의 말에 따르면 “돈이 자본주의의 꽃이라면, 시는 인간 정신 혹은 인간 언어의 꽃이다”. <경향신문>에 연재했던 글을 묶은 <돈 詩>는 같이 피는 법이 별로 많지 않아 보이는 두 꽃을 나란히 꽂아두고 완상하는 글모음이다. 문정희 시인의 <성공시대>는 이렇게 흐른다. “어떻게 하지? 나 그만 부자가 되고 말았네/ 대형냉장고에 가득한 음식/ 옷장에 걸린 수십 벌의 상표들/사방에 행복은 흔하기도 하지. (후략)” 약간의 돈으로 맛볼 수 있는 행복의 감정. 시인은 성공하고 말았다 웃으며 덧붙인다. “이제 시만 폐업하면 불행 끝.” 뭐든 손닿는 데 있는 세상에서 돈이 되지 않는 어떤 것을 사랑하여 겪는 어려움. 시뿐 아니라 글을 쓰는 많은 사람들이 공유할 문제이겠으나 천양희 시인은 시가 저축이라며 운을 뗀다. “시를 쓰니 세상에 빚 갚는 것이고/ 의지할 시를 자식처럼 키우니 저축 아닌가.”
고은 시인의 <재회>라는 시는 돈의 근본적 성
[도서] 돈도 쓰고 시도 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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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동 준비는 어반 자카파
참으로 따뜻한 위로. 어반 자카파의 4집 선공개곡 <위로>를 들은 첫 느낌이다. 1년에 한장씩 꼬박꼬박 정규앨범을 내왔던 어반 자카파가 이번에도 1년 만에 4집을 발표했다. 11월7일 발매된 이번 앨범엔 <위로> <미운 나> 등 총 9곡이 담겼다. 미니멀한 사운드는 어반 자카파만의 감성을 더 도드라지게 만든다. 11월22일 인천을 시작으로 전국 콘서트도 연다. 이들의 음악에 위로받으며 이번 겨울을 나도 좋을 것 같다.
린다 매카트니의 시선이 포착한 팝의 거장들
서촌에 린다 매카트니가 왔다! 11월6일부터 대림미술관에서 린다 매카트니의 사진전 <생애 가장 따뜻한 날들의 기록>을 만날 수 있다. 폴 매카트니의 첫 번째 부인이었던 린다는 비틀스, 지미 헨드릭스, 롤링 스톤스 등 당대 최고의 아이콘을 카메라에 담았던 사진작가다. 매카트니 가족의 일상을 담은 사진들과 세기의 뮤지션들을 촬영한 다큐멘터리 등이 전시된다.
[culture highway] 월동 준비는 어반 자카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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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경찰물이라고 하면, 가장 쉽게 예로 들 수 있는 것은 드라마와 영화로 만들어진 <춤추는 대수사선>이지 싶다. 대체로 캐리어와 논캐리어의 대립을 그리는 경우가 많은데, 캐리어는 한국식으로 설명하면 고시를 합격한 소수의 엘리트를, 논캐리어는 일선에서 뛰는 경찰을 말한다. 정치적으로 행동하는 캐리어와 당장의 사건 해결을 위해 애쓰는 논캐리어의 대립이 거대한 사건과 맞물리는 식의 이야기는 그 변주도 많아서 요코야마 히데오는 14년 전 미제로 끝난 살인사건을 해결하는 경찰들의 이야기를 <64>라는 작품으로 풀어냈다. 어쨌거나 그런 면에서 <교장>의 특이한 점은 경찰물이지만 사건의 현장이 아니라 경찰학교의 교장이 무대라는 데 있다. 주인공들은 바로 그곳의 학생들과 백발의 교관 가자마. 그러므로 당연히 학원물의 성격을 띠게 된다. 학생들은 낙오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이곳에서는 낙오가 드문 일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경찰이 된다는 일의 묵직함이, 에피소드마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경찰학교, 여기가 바로 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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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수도원 네곳의 이야기인 동시에 모든 종교의 수도 공동체에 해당할 만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고립된 장소에 집단을 이루어 사는 생활 때문에 제기된 숱한 오해와 편견에 대해서 퍼머는 용감하게 묻고 또 답을 듣는다. 세속의 사랑, 즉 욕정에 대해, 또 동성애에 대해서도 바로 질문을 던진다. “대개 수도자들이란 고된 노동과 끊임없이 밀어닥치는 영적 의무들 때문에 몸은 몸대로 마음은 마음대로 팍팍한 사람들이라 유혹의 속삭임 따위는 들을 새도 없이 몇 개월씩을 보낸다”는 예상 못한 답을 듣기도 한다.
[도서] 수도원에서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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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본행 야간열차>를 쓴 파스칼 메르시어의 본명이 페터 비에리이고, 그는 독일에서 활동 중인 철학자다. 그가 이번에는 삶의 형태로서 다양한 존엄성을 종합적이고 포괄적으로 제시하려는 시도로 <삶의 격>을 썼다. 서양 고전문학과 영화, 그 등장인물간 가상의 대화 및 논쟁을 예시로 들면서 줄거리나 배경을 자세히 설명해준다. 연인 또는 배우자와의 관계를 포함한 모든 인간관계, 직장생활 등 공적인 삶과 상처받기 쉬운 자아의 내적인 삶 그리고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이야기한다.
[도서] 죽음에 이르는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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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렌 굴드, 피아노 솔로>로 페미나상을 받은 미셸 슈나이더가 쓴 슈만과 그의 음악. 그의 삶과 음악이 왜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도 우리를 울리는지 들려준다. 슈만을 연주할 때 우리는 쇼팽이나 브람스의 경우와는 대조적으로 거의 기쁨을 느낄 수 없다. 마치 그런 고통 속으로 들어가게 될까봐, 그로부터 나올 수 없을까봐 두려움을 느끼는 것 같다. 이런 음악은 상처 입은 살갗, 일상의 균열, 완만한 고통의 점령, 돌연 민낯을 드러낸 삶이나 다름없다.”
[도서] 지금도 우리를 울리는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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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강력한 지배는 사람들에게 여행과 독서를 금지하거나 접근하기 어렵게 하는 것이다. <정희진처럼 읽기>의 프롤로그에 쓰인 말이다. 이제 현대사회는 여행을 돈만 있으면 구매 가능한 물성을 지닌 것으로 바꾸었고, 독서에 대해서라면… 우습게도 금지할 필요 없이 다른 놀이기구들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여성학자 정희진은 <정희진처럼 읽기>에서 도통 한권 떼기도 어려울 책들을 줄줄이 소개한다. 그나마 소설이 많이 소개된 1장과 5장이 나은가 싶기도 하지만 천만의 말씀. 영화 <밀양>의 원작인 이청준의 <벌레 이야기>에 대한 글에서는 이런 문장이 있다. “영화의 내용은 약간 다른데 제목처럼(secret sunshine) 다소 밝다.” 영화 <밀양>이 밝다니, 그럼 <벌레 이야기>를 읽으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외치고 싶은 사람이 적지 않으리라. 하지만 그런 불평은 책에 대한 정희진의 글(마치 말을 듣는 것처럼 읽히는)을
[도서] 통증의 궤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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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시 돼지 Swings 뽀에버~
“대한민국 Top5 오로지 나뿐… 이젠 힙합뿐만이 아닌 가요계도 바꿀게.” 스윙스 3집 ≪Vintage Swings≫의 첫 번째 수록곡 <섹시돼지뽀에버>의 가사 일부다. 대한민국 Top5 래퍼로 스윙스를 인정하든 그렇지 않든, 스윙스가 최근 1~2년 사이 힙합 신에서 가장 핫한 이름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가 3년 만에 정규앨범을 냈다. 괴물래퍼로서의 파워는 좀 아껴둔 듯하지만 빈티지 사운드로 재해석해 내놓은 곡들은 은근히 중독성 있다.
우아한 그루브 담은 보사노바
셀소 폰세카 & 호날도 바스토스의 ≪폴라로이드≫. 싱어송라이터 셀소 폰세카와 작사가 호날도 바스토스의 베스트 앨범이다. 현대 보사노바의 고전으로 일컬어지는 이들 명콤비가 1990년대 발표한 3부작 앨범들에서 선곡했기에 믿고 들을 수 있다. 비록 포르투갈어는 알아듣지 못하지만, 물 흘러가듯 부드러운 셀소 폰세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으면 온몸이 말랑말랑해지는 기분
[culture highway] 섹시 돼지 Swings 뽀에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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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픽하이 8집 ≪신발장≫
에픽하이가 2년 만에 새 앨범 ≪신발장≫으로 돌아왔다. 하루의 여정이 시작되고 힘겨운 일상이 비로소 마무리되는 신발장에서 모티브를 얻은 12곡이 빼곡히 담겼다. 조원선이 피처링한 타이틀곡 <헤픈엔딩>은 쓸쓸하고, 또 다른 타이틀곡 <스포일러>는 선선한 듯 묘하게 슬프다. 태양, 박재범, 윤하를 비롯한 개성 강한 뮤지션들이 참여해 곡마다 완성도를 높였다. 그래, 역시 초겨울에는 에픽하이다.
한정판, 그 참을 수 없는 유혹!
MMORPG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10주년을 기념해 확장팩 <드레노어의 전쟁군주> 한정 소장판이 출시된다. 이번 소장판은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90일 이용권, 클라이언트 DVD, 개발 현장 뒷이야기를 담은 DVD 및 블루레이 세트, 사운드트랙, <드레노어의 전쟁군주> 원화집, 블랙핸드 마우스 패드, 탈것 등 추가 게임 콘텐츠 등으로 구성된다. 상세 판매 계획 및
[culture highway] 에픽하이 8집 ≪신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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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일룸>은 할리우드의 에이전시 시스템을 개발, 발전시킨 주역들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세대별 스타(마릴린 먼로에서부터 브래드 피트까지, 1937년부터 1999년까지)와 당시 상황을 자세히 엿볼 수 있는 책이다. 에이전시에서 가장 말단 직원들이 일을 시작하는 곳인 메일룸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다룬다. 저자 데이비드 렌신은 에이전트들의 이야기를 200여명과의 인터뷰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주디 갈랜드가 극장 뒤 드레스룸에서 TV를 보는 모습으로 등장하는 순간이라든지 마릴린 먼로가 데뷔할 즈음 매니저와 모종의 관계였으리라는 암시라든지 하는 이야기들이 실려 있다.
[도서] 엔터테인먼트 세계의 숨은 주역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