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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웅 시인의 책 두권이 나란히 나왔다. 사물감성사전 <생각하는 연필>과 몸감성사전 <미주알고주알>이 그 책들이다.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그가 살뜰하게 골라낸 단어들로 우리 주변의 사물을, 우리 자신의 몸을 풀이한다. <씨네21>에 연재 중인 소설가 김중혁의 ‘바디무비’ 역시 몸 이야기를 풀어내는데, ‘바디무비’가 영화 속의 이야기와 지나온 삶의 맥락 속에서 몸의 사연을 듣고자 하는 노력이라면 <미주알고주알>은 연상퀴즈의 답을 숙고 끝에 하나씩 얻어내는 듯하다. 권혁웅의 유머감각은 여기서도 아주 은근한데, 어째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에로틱한 소재 혹은야한 이야기가 연상될 때 읽는 맛이 좋다. 과부촌 간판 보신 분? “대개는 과부촌의 ‘부’자 대신에, 부채를 그려넣었다. 부채는 검열을 피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욕망의 환유를 지시하기도 한다. 드러내면서 숨기기.” 그런데 책 제목이 왜 ‘미주알고주알’일까. ‘미주알고주알’도
[도서] 소소하고 은밀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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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아는 게 없다고, 그래서 아이들이 가는 길을 어른이 마땅히 지도해주어야 한다고 많이들 생각하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그 또래 때의 나 자신을 떠올려보면 어른들의 순진한 착각은 우스울 정도다. 자녀의 어떤 거짓이든 적발할 수 있다는 자신만만함을 지녔던 부모를 둔 친구들의 ‘사생활’. 아이들만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들. 야마다 에이미의 <풍장의 교실>은 초등학교 5학년, 이제 막 새 학교에 전학해 선생님의 예쁨을 받고 그것을 이유로 여자애들의 질투를 사 따돌림을 당하는 소녀 모토미야 안이 주인공이다. 인내의 한계를 넘어버린 소녀는, 이제 그만두기로 한다. 유서를 위한 준비메모를 완성하고, 목을 맬 줄을 찾으러 부엌에 갔는데, 옆방에서 엄마와 고등학생인 언니의 대화가 들린다. 남자친구가 섹스를 잘 못한다고 투덜거리던 언니는 ‘나’, 그러니까 동생이 따돌림을 당하는 것 같다며 자신의 따돌림당하던 과거를 떠올린다. 그리고 두 사람은 ‘나’를 위해 슈크림을 만들어주기로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아이들은 알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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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브리, 재즈를 만나다
<이웃집 토토로> <하울의 움직이는 성>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등 스튜디오 지브리의 아름다운 명곡을 새롭게 해석하며 인기를 얻고 있는 일본의 피아노트리오 ‘가즈미 다테이시 트리오’의 네 번째 내한공연이 12월17일(수) 오후 8시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 18일(목) 오후 8시 용인 큰어울마당(여성회관) 등에서 21일(일)까지 열린다.
한번도 접해보지 못한 스타일의 소설을 꿈꾸며
<사기꾼의 심장은 천천히 뛴다>는 첫 번째 챕터 ‘어떻게 북회귀선을 통과한 태양의 고도가 기이한 이야기의 채록과 전파에 도움이 되었는가?’ 등 기상천외한 플롯과 독특한 감성으로 가득 차 있다. <당신과 꼭 결혼하고 싶습니다> <모살기>에 이은, 환상문학 웹진 <거울>의 대표작가 곽재식의 세 번째 출간작이자 첫 번째 장편소설.
다방에 오시면 시를 읽어드립니다
다방에서 커피를 시켜놓고 시집을 읽던
[culture highway] 지브리, 재즈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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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숙학교라는 한 공간에 모인 10대가 서로를 향해 품게 되는 적대감, 폭력성을 그린다. 1959년에 쓰인 이 소설은, 놀스가 필립스 엑시터 아카데미를 다니던 무렵의 경험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윌리엄 포크너상, 로젠탈상을 받았으며, 원제인 ‘Separate Peace’는 원래 군사 용어로 동맹국에서 벗어난 한 국가가 적대국과 단독으로 맺는 강화, 즉 ‘단독강화’를 뜻한다. 폐쇄된 한 공간에서 자신의 존재를 각자의 방식으로 증명해나가려는 아이들은 어떤 상황에 놓이게 될까
[도서] 자신의 존재에 대한 각자의 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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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희경, 편혜영, 김중혁, 백가흠, 정이현, 정용준, 손보미, 총 일곱명의 작가가 참여해 각각 ‘들다’, ‘쓰다’, ‘신다’, ‘입다’라는 주제 가운데 하나를 택해 소설을 썼다. 소설은 개인의 서사를 다루는 장르이므로, <The Closet Novel> 속 일곱편의 소설들은 패션의 일상 속 속성에 주목한다. 우리가 들고, 쓰고, 신고, 입는 것들로써 결핍과 상실을, 삶의 사소한 비밀들과 희미한 추억들을 이야기한다. 더불어 옷장이라는 물건이 갖고 있는 무언가를 숨겨두는 공간으로서의 상징적 의미도 재치 있게 변주된다.
[도서] 일곱 작가의 삶의 사소한 비밀들과 희미한 추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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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르긴 하지만 한해 결산을 한다면, 2014년은 기록적으로 비행기를 많이 탄 해로 기억될 것 같다. 11월 마지막주까지 총 32번, 16번의 왕복 비행기를 타고 어딘가로 다녀왔다. 한해 내내 일하거나 어디에 가 있거나 했다. 비행기표가 필요 없는 여행지들까지 셈에 넣어보면, 4주 연속으로 집에서 잠을 잔 적은 단 한번도 없는 한해였다.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나는 만 1년째 가족이 없는 생활을 하고 있다. 그와 동시에 늙어감에 가속이 붙었음을 알았다. 무언가가 사라져가고 있음을 알았고, 일단 나는 즐기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밤샘 마감 직후에 공항에 가기가 힘들어졌고, 피곤한 상태에서 비행기를 타면 중이염 때문에 이명이 심해졌다. 제프 다이어의 표현을 빌리면 이렇다. “이제 더이상 여행이 주는 롤러코스터 같은 감정의 기복을 느낄 수 없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밀려드는 감정의 물결, 바닥을 치는 낙담, 한없이 이어지는 지루함과 불편함의 연속도 이제 없을 것 같았다. 누군가 이야기를 나눌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그저, 나이듦의 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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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6살 이후 가보지 못한 그곳
금남의 공간, 신비의 세계 여탕이 공개됐다. <여탕 보고서>는 네이버에 마일로 작가가 연재하는 웹툰으로 여탕의 신비를 낱낱이 밝힌다. 여성에게는 공감과 웃음을, 남성에게는 충격과 공포를 선사하는 유쾌한 개그만화다. 혹, 여탕이라고 음흉한 기대를 하는 남성 독자에게 일러둔다. 등장인물이 모두 알몸이지만 하나도 야하지 않다.
15mm 미니 피겨부터 3m 블록버스터 레고까지
지난봄에 심슨 피겨를 구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던 레고 팬이라면 주목. 제2회 레고 창작품 전시회 <브릭코리아 컨벤션>이 12월6일부터 14일까지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에서 열린다. 국내 레고 커뮤니티 회원들의 창작품을 무료로 관람할 수 있으며 직접 레고를 만들어볼 수 있는 코너도 마련되어 있다. 전시회에 가면 <명량>의 이순신과 <어벤져스>의 헐크도 찾아보자!
깊이 잠든 변증법을 어떻게 깨울 것인가
최악의 세계에 살고 있다는 무
[culture highway] 내 나이 6살 이후 가보지 못한 그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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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반 고흐와 그의 동생 테오에 대한 만화책 두권이 나란히 출간되었다. 호즈미의 <안녕, 소르시에>와 바바라 스톡의 <반 고흐>. 표지에서부터 느껴지는 확연히 다른 그림체만큼이나 다른 전개다. 일단 공통점부터. 반 고흐에 대한 신화는 그가 생활고와 싸우고 다른 화가들과 다투고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시간을 보내며 자신의 사후에 인정받고 유명해질 그림들을 그려냈다는 가정을 한다. 호즈미와 바바라 스톡은 그가 홀로 마지막 시간들을 견딘 것은 아니라고, 그의 가장 오래된 친구이자 후원자이자 지지자가 그 시간을 함께 버텨주었다고 가정한다. 바로 그의 동생 테오다. 화랑에서 일하던 테오는 형이 인정받을 수 있도록, 그림 그리기를 멈추지 않도록 그를 격려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반 고흐>는 반 고흐의 그림을 연상시키는 강렬한 색채의 향연이다. 태양이 샛노랗게 달아오르고 밤의 별빛은 영롱히 빛나는, 이발소 벽화에서나 화장실 문 앞에서나 상투적으로 등장하곤 하지
[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형제는 위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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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이란 어디에서 출발하여 지금 어디에 와 있고, 그 변화를 이끄는 힘은 무엇으로부터 시작되었는지, 오늘날 박물관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는지를 들려준다. 박물관의 역할 변화, 그리고 전세계적으로 박물관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도. 프랑스 파리1대학 팡테옹-소르본에서 미술사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저명한 역사학자로도 활동하고 있는 저자 도미니크 풀로는 18세기 박물관의 기원부터 21세기 오늘날, 그리고 이후까지의 박물관에 대한 이야기를 엮었다.
[도서] 박물관의 기원부터 오늘날, 그 이후까지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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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스의 산>의 기타무라 가오루가 “엘러리 퀸을 향한 경의가 확연하게 느껴진다는 점에서 실로 반가운 작품”이라고 평한 이상, 본격 미스터리 팬이라면 읽지 않을 수 없는 작품. 학교에서 한 학생이, 무대에서, 칼에 찔려 죽은 채 발견된다. 그리고 발견 당시까지 현장은 밀실이었다. 일본의 학원 미스터리물을 연상시키는 첫 장면부터, 귀여운 캐릭터들이 사건을 추리해가는 과정까지 술술 읽힌다. 아마도 몇년 내로 일본 드라마로 만나게 되지 않을까 싶다.
[도서] 본격 미스터리 팬을 위한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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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 자신의 경험에서부터 소설쓰기를 짚고 되짚는 과정을 담았다. “스무살의 내가 역전 근방에서 매일 몇편씩, 때로는 몇 십편씩의 시를 노트에 쓸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를 비롯한 동네 가게 주인들의 세계 속에서 성장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획기적으로 나아지지도, 그렇다고 갑자기 나빠지지도 않는 세계 속에서, 어떤 희망이나 두려움도 없이, 마치 그 일을 하려고 태어난 사람처럼 일하는 사람들의 세계 속에서.” 독특한 사전을 보면 바로 구입한다든가 그렇게 건진 단어들을 소설에 썼다는 식의 노하우도 전수한다.
[도서] 소설쓰기를 짚고 되짚는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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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의 순간>은 박찬욱, 봉준호, 류승완, 변영주, 임순례 등 한국 영화감독 17인의 데뷔기를 인터뷰해 묶은 책이다. 읽다보면, 8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의 한국영화계가 하나의 흐름으로 꿰인다. 자기 영화가 아니라 주어진 시나리오로 데뷔를 한 것이 지금도 썩 내키지 않는다는 말(<동갑내기 과외하기> 김경형), 영화와 확실히 닮아 있는 거칠었던 학창 시절에 대한 입담(<똥파리> 양익준), 임권택 연출부-조감독 시절에 대한 회고담(<번지점프를 하다> 김대승), 김기덕 연출부-조감독 시절에 대한 증언(<김복남 살인 사건의 전말> 장철수), 지금 보면 믿기지는 않지만 온통 공모전에서 떨어진 사연(<범죄의 재구성> 최동훈 감독) 등이 그득하다. 그러니까 이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공했다는 무용담이다. 자기 재능을 믿고 자신만만한 사연은 없다. 대체로 우연히 영화 언저리 혹은 관련자와 친분이 생겼고, 하다보니 관심이 깊어졌
[도서] 회상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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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가을 최고의 음감회
오래 기다린 보람이 있다. 유희열의 1인 프로젝트 토이의 7집 정규앨범 ≪Da Capo≫가 발매됐다. <좋은 사람>의 2014년 버전으로 성시경이 부른 타이틀곡 <세 사람>부터 <K팝스타> 출신의 신예 권진아가 참여한 <그녀가 말했다>까지, 다양한 음색을 지닌 보컬들이 토이라는 이름 아래 모여 치열한 대결을 벌이는 느낌이다. 마지막 트랙까지 버릴 곡 하나 없는, 그야말로 귀가 꽉 차오르는 느낌의 신보.
세계적 밴드 5개팀 공연을 매일 보는 행복
현대카드가 내년 1월12일부터 17일까지 세계적인 밴드 5개팀을 초청해 잠실종합운동장에서 연속으로 공연하는 <5 나이츠>를 개최한다. 1월12일에는 어벤지드 세븐폴드가, 13일에는 바스틸이 공연한다. 14일에는 스타세일러가 바통을 이어받는다. 하루를 쉰 뒤 16일에는 영국 일렉트로닉 밴드 루디멘털의 공연이, 마지막 날인 17일에는 아우스게일 공연이 진행된다. 5
[culture highway] 올가을 최고의 음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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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에 대해 누구보다 맛깔나는 글을 쓰는 박찬일 셰프가 ‘백년식당’을 꿈꾸는 한국형 노포들을 모아 소개한다. 해장국의 참맛을 이어가고 있는 ‘청진옥’에서 ‘스탠딩 갈비 바’의 원조 ‘연남서서갈비’까지, 세대를 이어 운영하는 한국의 식당들을 만날 수 있다. 식당 주인장들의 기억을 끄집어내고 우리 음식문화와 관련된 여러 문헌들을 찾아내 ‘그 집’만의 특별함을 기록했다. 1년여의 취재 시간 동안 어렵게 찾아내고 담아낸 18곳의 노포는 고단했던 현대사의 뒤안길까지 한눈에 읽힌다.
[도서] 세대를 이어 운영하는 한국의 식당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