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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동물원의 초기 음반을 듣고 싶어서 애플뮤직을 찾아보니 1993년 공연 실황을 편집하여 1994년에 발매한 라이브 앨범 《In Concert》가 있었다.
김광석이 참여한 1집과 2집 이후 5집을 발표한 1993년까지도 동물원은 전업 음악가를 지향하지 않았다. 뜻밖에 큰 인기를 얻은 밴드는 각자 생업을 쪼갠 일정에 맞춰 공연도 드물게 했다. 《In Concert》는 지금까지 나온 동물원의 처음이자 마지막 라이브 음반이다.
동물원 1집은 1988년에 나왔다. 그들이 처음 모인 카페 이름이 그 유명한 김승옥의 단편소설에서 딴 ‘무진기행’이며, 산울림의 살아 있는 전설 김창완이 이 ‘취미’ 밴드 탄생에 지대한 조력자였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결국 사용하지 않은 ‘이대생을 위한 발라드’라는 밴드 이름을 지은 것도 그였다.
《In Concert》에는 학생에서 사회인으로 성장하는 밴드 구성원의 고민과 생각이 12곡 속에 꽉 들어차 있다. <시청 앞 지하철역에서>
[마감인간의 music] 동물원 《In Concert》, 라이브로 들으니 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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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이하 <셰이프 오브 워터>)의 한국어 부제는 ‘사랑의 모양’이다. 사랑에 모양이 있을까? 사랑하는 대상과 내가 하나가 되려고 하는 절절한 움직임이 아마 사랑의 모양일 것이다. 하지만 그 모양이 무엇인지 말하기는 쉽지 않다. “내가 얼마나 당신을 그리워하는지 당신은 결코 모를 거예요”라는, 이 영화 속 노래가 전하듯, 사랑의 모양은 알 수가 없다.
어쩌면 이 영화에 등장하는 사랑의 모양은 원제인 ‘물의 모양’일지도 모른다. 물은 어떤 곳에 들어차느냐에 따라 달라지고, 들어가는 곳의 모양이 곧 물의 모양이 된다. 이것이 이 영화의 핵심이다. 물은 모양이 없으며, 또한 모든 것의 모양이기도 하다. 주인공인 엘라이자에게 물은 그녀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도구다. 물에 잠긴 아파트에서 잠을 자고 있는 엘라이자를 보여주는 첫 장면은 그녀의 꿈이자 그녀의 미래이기도 하다. 아침에 일어나 욕조 속에서 자위를 하는 그
물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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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일디코 에네디 / 출연 게자 모르산이, 알렉상드라 보르벨리 / 제작연도 2017년
사실 이 영화는 말하자면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어떤 것을 이상하게도 ‘그립게’ 만드는 경험 같은 것이었다. 2015년에 선댄스영화제에 VR영화가 다수 상영된다는 기사를 보고는 무작정 미국으로 향했다. 두번이나 경유하는 가장 싼 비행기를 타고 갔다. 그곳에서 새로운 서사 도구로써 VR의 가능성을 바라보는 시선들을 만났고, VR영화의 언어를 찾고 싶은 호기심을 안고 돌아와 직접 찍어보기 시작했다. 그 후 VR이 과연 영화의 미래가 될 수 있는 것인지, 어떤 예술형식 혹은 엔터테인먼트가 될 수 있을지 모색하는 것이 직업적 일상이 되었다. 영화가 사각형 창문과 같은 프레임을 통해 객석에 앉은 관객에게 가상을 재현하는 것과 달리 VR은 보통 HMD로 관객의 시각장을 모두 차지하여 가상 공간 안에 들어와 있는 듯한 몰입감과 상호작용을 제공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렇게 전례없이 가상에 깊숙이 참여하는 체험
최민혁의 <우리는 같은 꿈을 꾼다> 가장 우아한 가상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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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텀 스레드>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윌럼 더포가 연기한 <플로리다 프로젝트>의 모텔 매니저 바비는, 얼떨결에 호밀밭의 파수꾼이 된 남자다. 관광 모텔의 시설을 관리하고 정비하는 것이 본디 업무 내용이었지만, 불황의 여파로 매직캐슬 모텔이 극빈층의 레지던스로 변하자, 그는 투숙객들에게 일종의 ‘생활주임’이 된다. 보호자들이 일당을 버는 동안 남겨진 아이들이 위험에 빠지지 않나 한눈으로 살피는 것도 일과다. 요컨대 바비는 가난한 매직캐슬의 마법사다. 동분서주하며 고단한 일과를 끝낸 바비가 땅거미를 바라보며 담배에 불을 붙이는 순간, 기적처럼 모텔의 외부등이 일제히 켜지고 조악한 건물은 아주 잠깐 진짜 마법의 성처럼 보인다.
02/21
1950년대가 배경인 폴 토머스 앤더슨 감독의 <팬텀 스레드>에는 두채의 집이 나온다. 하나는 집과 의상실을 겸하고 있는 런던의 디자인 하우스이고 다른 하나는 항구 마을의 별장으로 작업실을 포함한다. 두집의 주인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보이지 않는 위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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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밤도깨비>에 등장한 개그맨 송은이는 웃고 있었지만 왠지 비장해 보였다. 남성 리얼 버라이어티가 한국 예능을 휩쓴 지난 수년간, 즉 자신을 비롯한 여성 예능인들이 자리를 잃고 팟캐스트라는 세계를 개척할 수밖에 없었던 동안 승승장구했던 후배 이수근, 정형돈과 마주 앉은 그는 ‘남성팀’과 ‘여성팀’이 방송 분량을 기준으로 대결한다는 기획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송은이는 예능의 올라운드 플레이어다. 누군가가 소외되지 않도록 끊임없이 흐름을 살피고, 허공에 흩어질 뻔한 멘트도 리액션으로 살려내며, 다른 출연자의 캐릭터나 장점을 발굴해 아이템을 패스한다. ‘먹방’에서 활약 중인 김민경에게 갈비 맛있게 먹는 방법을 알려달라며 주목받을 기회를 준 것도, <무한도전>에서 안영미가 “셀럽파이브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임신밖에 없다”며 모두를 당황시켰을 때 침착하게 “여성가족부에서 좋아할 멘트죠”라고 정리한 것도 이 25년차 베테랑 예능인의 센스다. 그리고 평소 밤 10시
[TVIEW] <밤도깨비> 송은이 사단의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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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근현보다 김기덕을 잡아야 됩니다”라는 영화 관계자의 얘기에 한없이 씁쓸했다. 며칠 전 방영된 <PD수첩> 1145회 ‘영화감독 김기덕, 거장의 민낯’ 초반부에 인용됐던 얘기다. 그 관계자는 <씨네21>이 최초 보도했던 조근현 감독 사건과 비교하며 더 ‘악질’을 폭로해야 한다는 요지로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물론 우리가 최근 접하고 있는 수많은 가해자들 중 가해자A와 가해자B 사이에서 ‘A가 더 나쁜 새끼네!’라며, 그들 사이에서 엄연한 ‘죄질’의 레벨 차이가 있다고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죄질의 경중을 따지는 발상이야말로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사건의 ‘발생’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이 아니라 사후 ‘처벌’로 눈 돌리게 만들어, 결국 피해자를 가해자의 들러리로 만드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된다. 성폭력 피해자에게 ‘왜 제대로 반항하지 않았나’라고 따져 묻는 것과 별다를 바 없는 발상이다. 성추행의 가장 중요한 성립 근거가 피해자의 성적 수치심인 것처럼, 죄질
[주성철 편집장] 미투(#MeToo) 특집에 부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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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들이 육로를 통해 이탈리아에 들어갈 때는 크게 두 방향이 이용된다. 먼저 영국의 마이클 윈터보텀이 <트립 투 이탈리아>(2015)에서 보여준 서쪽인데, 토리노에서 시작하여 제노바, 토스카나 지역, 로마 그리고 나폴리와 카프리에 이르는 여정이다. 이탈리아 서쪽을 북에서 남으로 종단하는 것인데, 이 여정은 영국 또는 프랑스쪽에서 들어오는 사람들이 애용하는 방법이다.
다른 하나는 괴테가 <이탈리아 기행>에서 보여준 동쪽인데, 알프스 아래의 티롤 지역, 베네치아, 가르다(Garda) 호수, 로마, 나폴리 그리고 시칠리아에 이르는 여정이다. 이탈리아의 동쪽을 북에서 남으로 종단하는 것으로, 독일쪽에서 들어오는 사람들이 애용하고 있다. 지금도 동이든 서든 거의 빠지지 않는 도시는 피렌체, 로마, 나폴리이고, 여정에 따라 북부 지역에선 서쪽의 토리노와 제노바, 동쪽의 베네치아, 그리고 가운데의 밀라노가 강조되는 식이다. 이들 도시들이 이탈리아 기행의 가장 인기 있는
[트립 투 이탈리아] 이탈리아 전국 투어와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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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신스 팝 듀오 솔로몬 그레이의 조 윌슨은 어느 날 어머니가 뇌종양에 걸려 3개월밖에 살지 못한다는 비보를 접한다. 안 그래도 종종 현관문을 열어놓고 기억을 못하던 어머니는 극심한 두통 끝에 응급실로 실려간 뒤 시한부 삶을 선고받았다.
조 윌슨은 어머니의 여생을 함께하기 위해 세상과 잠시 떨어지기로 결심한다. 런던 집을 떠나 옥스퍼드로 가서 어머니와 소소한 일상을 즐기며 3개월 뒤의 이별을 준비했다. 어머니는 스위스의 안락사 기구 ‘디그니타스’를 통한 존엄사를 택했고 결연하고 행복하게 생을 마쳤다.
두 사람의 이별 이야기는 윌슨이 영국 <데일리 메일>에 장문의 회고록을 기고하며 세상에 알려졌다. 그는 새 앨범 《Human Music》이 어머니에게 바치는 앨범이라고 했다. 또한 진단이 내려진 날부터 스마트폰에 허밍으로 멜로디와 가사를 녹음하기 시작했는데, “이상하게도 곡이 잘 써진 시기”였다고 말했다.
<Closed Door>는 존엄사와 디그니타스에
[마감인간의 music] 솔로몬 그레이 , 이별에 부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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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달은 어쩌면 지금껏 살아오며 가장 많은 고백들과 마주한 시간이었다. 하루하루가 참담하고 비통한 시간이었다. 오늘은 또 어떤 충격적인 이야기들이, 믿고 싶지 않은 진실들이 터져나올까, 또 얼마나 깊이 분노하고 절망하게 될까, 매일 아침 심장이 쿵쾅거렸다. 서지현 창원지방검찰청 통영지청 검사는 TV에 나와 떨리는 목소리로 8년 전 동석자까지 있는 자리에서 겪은 안태근 전 검사장의 성추행 사건을 진술했고, 최영미 시인은 한 계간지에 <괴물>이란 시를 발표하며 수십년간 문단 권력을 휘두르면서 상습적으로 성추행을 일삼아온 고은 시인을 고발했다. 그리고 극단 미인의 김수희 대표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10여년 전 지방 공연 도중 겪은 이윤택 연출가에 의한 성추행 사건을 털어놓았다. 영화계에서 쏟아진 고백들은 또 어떠한가. 관계자도 아닌 내가 깊은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해 매일 악몽을 꿨을 정도니 그간 고통 속에 살아온 피해자들의 심경을 어찌 다 헤아릴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
그 용기를 기억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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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월터 머치 / 출연 페어루자 보크, 니콜 윌리엄스, 진 마시 / 제작연도 1985년
물론 내가 사랑하고 아끼는 영화들은 수없이 많다. 그러나 칼럼의 제목에 맞는 영화를 떠올리다보니 역시 결론은 하나다. 내 인생의 10년가량, 그러니까 6살 때부터 10대 후반으로 접어들 때까지 거의 매일 밤 머릿속에 떠오르며 나를 벌벌 떨게 한 영화. 이 정도면 가히 인생 영화라 칭할 만하다.
내 나이 만 6살. 나는 영국에서 이 영화를 관람했다(확인해보니 당시 영국에서 전체 관람가인 U등급으로 개봉했다. 다시 생각해도 믿을 수 없는 사실이다!). 디즈니가 제작한 이 작품은 <오즈의 마법사>의 속편으로, 제목 그대로 도로시가 오즈에 다시 가서 겪는 모험을 그린다. 그러나 이야기나 인물은 중요치 않다. 방점은 이미지, 이미지, 그리고 이미지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충격적인 공포에 시달렸다. 끔찍할 정도로 무서웠으며 옆자리의 엄마는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고, 눈앞에서 펼쳐지
손원평의 <돌아온 오즈> 어린이 관람 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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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계올림픽이 가져다준 또 다른 즐거움은, 여성의 다양한 아름다움을 TV로 접하는 경험이었다. 안경 너머 예리한 눈, 튼튼한 팔뚝, 안전모에 눌린 머리칼, 포효와 눈물. 강하고 빠르고 정확한 그들은, 평소 우리가 미디어로 접하는 여성상이 얼마나 대동소이했는지 깨우쳐줬다. 다큐멘터리 <피의 연대기>에서 김보람 감독은 여성의 생리를 새롭게 바라보면서 찾아온 미의식 변화를 털어놓는다. 결점이 많다고 여겨온 자신의 몸, 거리에서 마주치는 여자들의 신체가 드러내는 각양각색의 개성이 어느 날 귀엽고 매력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고. 김승희 감독이 연출한 애니메이션도 <피의 연대기>의 ‘심미안’을 완성한다. 움직이는 그림 속 여성들의 홀가분한 나체는 현실적 무게와 부피를 전한다. 그들은 남의 눈을 의식한 포즈를 취하지 않으며, 종종 자연스럽게 몸을 굽혀 본인의 성기를 들여다본다.
02/15
히어로 영화로서는 무겁고 복잡한 이야기를 짊어진 <블랙팬서>는 친숙한 외형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흐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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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사 간판앵커로 7년간 <뉴스나인>을 이끌어왔으나 이제 그만 앵커석에서 내려오라는 압박을 받는 고혜란(김남주)은 ‘성공의 경계’에서 등을 떠밀린다. 선명한 말과 달리 이해할 수 없는 행동으로 의혹을 남기는 아내 혜란 곁에서 지쳐가던 강태욱(지진희)은 ‘진심의 경계’에서 혜란을 바라본다. 과거 자신을 버렸던 혜란을 위협하는 프로골퍼 이재영(고준)은 돌이킬 수 없는 ‘일탈의 경계’에서 욕망에 휩쓸리고, 궂은일을 도맡아가며 골퍼로 키워낸 남편 재영과 친구 혜란의 관계를 알게 된 서은주(전혜진)는 더는 의미 없어진 ‘선의 경계’에서 되갚음을 계획한다. 저마다의 시야를 흐리는 안개는 경계의 온도 차로 피어오른다.
JTBC <미스티>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인물은 역시 안개주의보 따윈 아랑곳하지 않고 돌파하는 주인공 고혜란이다. 여성이 일터와 가정에서 겪는 갈등을 다룬 드라마는 많았다. 이때 여성 캐릭터에게 주어지는 고민은 대개 자신의 자리와 역할에 관한 것들이었다.
[TVIEW] <미스티> 더 높이 더 야심차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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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영화라는 형식을 선택해야만 창작자의 비전을 온전히 보여줄 수 있는 작품들이 있다. 이를테면 히치콕의 <싸이코>를 떠올려볼 만하다. 누군가가 당신에게 <싸이코>의 연극 버전을 연출해달라 부탁했다고 가정해보자. 이걸 무대에 올려서 어떤 방식으로 연출하고 연기하더라도 노먼 베이츠가 마리온을 살해하는 전설적인 샤워 부스 장면을 <싸이코>처럼 보여주는 건 불가능하다. 이 장면을 보고 당대의 관객은 충격을 받았다. 엄청난 살해 장면을 목격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본 것은 일흔여덟 가지 각도에서 촬영된 쉰두개의 쪼개진 컷들이 이어 붙어져 만들어진 몽타주 이미지였다. 쉰두개의 컷들 가운데 실제 노먼 베이츠의 칼이 마리온을 찌르는 신체 훼손 장면은 단 한장도 없었다. 볼 때마다 느끼지만, 이걸 예술이라고 부르지 않는다면 대체 어디에 예술이라는 이름을 붙여야 할지 모르겠다.
반면 굳이 영화라는 형식을 선택하지 않았더라도 구현이 가능한,
[허지웅의 경사기도권] 마이클 섀넌에게 매료된 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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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코널리의 형사 ‘해리 보슈’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인 <블랙 에코>에서, 해리 보슈는 베트남전 참전 당시 겪었던 끔찍한 악몽에 시달리며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과 함께 베트남에서 ‘땅굴쥐’(Tunnel Rats) 부대에 복무했던 전우의 시체와 맞닥뜨린다. 베트콩이 파놓은 수많은 땅굴에 들어가 탐색과 폭탄 설치 등 토벌작전을 맡았던 군인들을 그렇게 불렀는데, 땅굴에서 함정에 빠지거나 덫에 걸리거나 죽창에 찔리는 일이 흔할 정도로 그 임무는 위험천만이었다. 당시 베트콩들의 은신처로 매우 중요했던 그 땅굴들은 하나같이 입구가 작았는데, 그러다보니 작은 체구를 가진 사람들이 뽑힐 수밖에 없었기에 수많은 히스패닉 군인들이 땅굴쥐 부대원으로 활약했다.
베트남전 당시 히스패닉 군인들에 대한 얘기를 꺼낸 이유는, 스필버그의 <더 포스트> 거의 마지막 법원 장면 때문이다. 법원에 간 <워싱턴 포스트>의 사주 캐서린 그레이엄(메릴 스트립)은 한 정부
[주성철 편집장] <더 포스트>, 대가 스필버그의 페미니즘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