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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신년호다. 2017년 만나게 될 한국영화와 그 인터뷰들로 가득 채운다. 2017년도 만만찮다. 봉준호 감독의 <옥자>, 류승완 감독의 <군함
도>, 김용화 감독의 <신과 함께>를 비롯해 총 26편을 모았다. <변호인>(2013) 이후 돌아온 양우석 감독은 자신이 직접 스토리를 쓴 웹툰 <스틸 레인>을 영화화하기에 전작보다 자신의 ‘본색’을 드러낼 것 같고, 단편 <런던 유학생 리처드>(2010)부터 주목했던 이용승 감독이 <10분>(2013)을 지나 명필름에서 만들게 될 <7호실>이 어떤 모습일지도 궁금하고, 언제나 액션 장면에 관한 한 뭔가를 보여줬던 정병길 감독의 <악녀>도 기대되고, 개봉 당시 거의 <씨네21> 홀로 주목했던 것 같은 <모비딕>(2011)의 박인제 감독의 신작 <특별시민>도 궁금하다. 그런데 이처럼 한호에 다 모으다보니 아쉽게도
[에디토리얼_주성철 편집장] 2017년 한국영화, 역시 풍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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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오 그람시는 척추장애인이다. 어릴 때 등에 혹이 하나 있었는데, 집이 너무 가난하여 제대로 치료받지 못했다. 모친은 혹에 요오드를 바르며 밤새 마사지도 해봤고, 또 시골 의사의 조언에 따라 소년을 천장에 매달기도 했다. 하지만 혹은 더 커졌다. 그람시는 평생 질병과 그에 따른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어릴 때부터 굶는 일은 다반사였고, 이에 따른 영양실조로 몸은 점점 쇠약해져 갔다. 남들처럼 잘 뛰어놀지도 못했고, 결국 키도 150cm 정도에 머물렀다. 소년은 내성적이고 우울한 성격으로 변했다. 그람시는 혼자 책을 읽었다. 특히 토리노에서 군복무 중이던 큰형이 보내준 사회주의 계열의 잡지, 팸플릿 등은 그람시에겐 복음이었다. 사르데냐 섬의 시골에서 자란 그람시는 ‘붉은 도시’ 토리노로 가고 싶었다. 방법은 한 가지밖에 없었다. 장학금을 받는 것이다. 의사는 심한 공부는 건강을 더욱 해칠 것이라고 경고했지만, 그람시는 시험 준비에 독하게 매달렸다. 가난 때문에 하루에 겨우 한끼
[한창호의 트립 투 이탈리아] 토리노, 북부 산업의 중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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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콜리너마저(Broccoli You Too)의 음악을 들은 게 벌써 10년 남짓 되었다. 지금 내 30대의 노래를 고르라고 한다면 브로콜리너마저가 되지 않을까. 11월18일 발매한 <단호한 출근>은 여러모로 지난 2010년 발매한 정규 2집 《졸업》의 첫 트랙, <열두시 반>을 떠올리게 한다.
<단호한 출근>에 앞서 지난 6월 발매한 《천천히》와 그들이 공개한 주석을 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브로콜리너마저의 노래 중에는 유독 ‘돌아가는 길’에 관한 가사가 많습니다. 대부분 유쾌하지 못한 상황들과 감정들을 담고 있지만, 그만큼 그 순간에 느껴지는 무언가가 참 많고도 무겁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혼자 드는 복잡다단한 감정들을 덕원(보컬)의 담백한 목소리로 담담하게 내뱉은 것처럼 <단호한 출근>은 그 모든 생각의 밤을 넘어선 이 시대 아침 출근길의 젊은이들을 묘사한다. ‘단호하게 마음을 먹고 출발할 시간/ 아
[마감인간의 music] ‘어쩐지 내 얘기 같다’ - 브로콜리너마저, <단호한 출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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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자리에서 다이어트가 화제에 올라 몇 킬로그램을 빼야 하느니 마느니 시끄럽기에, 내가 대뜸 ‘숫자의 노예가 되면 안 된다’고 뜬구름 잡자 모인 이들은 모두 키득댔다. 그날 ‘숫자의 노예’라는 말은 내가 미는 유행어였는데, 광화문에 사람이 얼마나 모인 게 뭣이 중헌디, 결과가 보여야 의미가 있지, 몇명 모였는지에 얽매이면 안 된다, 숫자의 노예가 되면 안 된다, 라며 남발하자 모두 슬그머니 다른 화제로 옮겨갔다. 이제야 고백하자면 난 농담이 아니었다. 사상 초유의 인파가 모였지만 평화집회라. 무슨 축제도 아니고. 내 나라 망해가서 내가 할 말 하겠다는데 왜 ‘평화’가 전제조건이 돼야 하는가? 마치 남녀관계에서 망나니짓하는 상대에게 할 말 못하고 참고 참다가 마지막 순간마저 분위기를 망치기 싫어 눈도 못 쳐다보고 ‘그건 정말 고쳐줬으면 좋겠어’라고 속삭이는 팔푼이와 뭐가 다른가. 그러니 ‘버려진 쓰레기도 없고 이렇게 착하네~’라는 언론보도가 어른이 아이에게 하는 칭찬처럼 들려 속이 쓰릴
[노덕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촛불은 무엇을 해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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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을 다녀왔다. 나고 자란 곳이다. 비릿한 바다 냄새는 언제나 가슴 한쪽을 아리게 한다. 운 좋게 영화의전당에서 열린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30주기 특별전을 볼 기회를 얻었다. <희생> 상영 후 강연이 예정되어 있는 황현산 선생님을 모시고 해운대 미포에서 맛있는 저녁을 먹었고 정신없이 취했다. 나는 장산 밑자락에 신설된 해운대중학교를 다녔다. 담장도 없는 허허벌판 운동장에 서면 바다가 발아래 펼쳐져 있었다. 맑을 때는 쓰시마도 보인다고 했다. 그래서 취했던가.
<희생>은 첫 관람이었다. 너무 좋았다. 숙취가 불러온 각성 상태 때문이었을까. 영화는 더디게 흘러갔지만, 화면은 이상한 생기와 활력으로 나를 일깨웠다. 서로 조금씩 비껴서 있는 인물들의 진지함은 발밑을 잃은 허둥댐의 표현 같았고, 그 불안과 공포는 그래서 더 슬프고 우스꽝스럽기까지 했다. 꿈, 기억 혹은 무의식의 자리는 우리의 삶이 그러한 것처럼 설명되지 않는 상태로 거기 있었다. 황현산 선생님의
[내 인생의 영화] 정홍수의 <노스텔지아> 어떤 영화는 반드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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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그날 이후 재난영화는 한국인에게 슬픈 꿈 비슷한 것이 되었다. <부산행> <터널>에 이어 <판도라>다. 우리는 극장의 어둠 속에서 눈물을 닦으며 재난을 당한 이웃을 구하고 또 구했다. 그러나 불이 켜지면 이웃들은 여전히 죽어 있었고 우리는 실패한 채였다. <부산행>과 <판도라>에는 앞다투어 질주하는 인파의 이미지가 있다. 내가 남을 밟고 달리거나 딛고 올라가지 않으면, 선을 지키면 죽을 거라는 공포가 위기상황을 지배한다. <판도라>의 연주(김주현)가 중앙분리대를 부수고 넘어갈 때 관객은 겨우 안도한다. 영화에서, 이유가 무능이건 부패건 정부는 시민을 구하지 못하고 최우선은 생명이 아니라 돈과 책임회피다. 이제는 기본값이 돼버린 ‘자력구제’의 서사 가운데에서도 <판도라>는 1차 피해자들이 다시 구조자로 불려나간다는 점에서 끝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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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씽: 사라진 여자>(이하 <미씽>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꿈의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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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싸움이 잠시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 더 큰 싸움의 시작을 의미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를 지치게 만들고, 분노하게 만들고, 광장으로 나아가게 만든 그것이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몇년 전 유행하던 힐링과는 다른 의미로 지금 우리에겐 위로가 필요하다. 옆을 보면 손 잡아주는 사람이 있고, 뒤를 돌아보면 같이 눈을 맞춰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은 우리의 삶에 힘을 준다.
이 지면에 올렸던 JTBC의 <말하는 대로>가 도심 곳곳의 이른바 ‘스피커스 코너’로 머리를 따뜻하게 만들었다면, 연남동에 새로 개업한 tvN의
<인생술집>은 인생의 이야기들로 감성을 건드릴 준비를 하고 있다. (그다지 새롭진 않지만 능숙한) 신동엽, 김준현, 탁재훈이 호스트로 게스트들을 기다린다. 이들은 실제로 술을 마시며 서로에게 기대고, 서로의 이야기를 섞어낸다. 첫 번째 게스트는 배우 조진웅. 초면인 이들이 어색함을 깨나가는 시간을 방송이 담아내는 건 다소 답답
[김호상의 TVIEW] <인생술집> 위로가 필요한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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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라고.
가장 괴로웠던 순간에는 늘 그렇게 생각했었던 것 같다. 만약에 그때 내가 그 말을 하지 않았다면. 만약에 그때 훼방꾼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만약에 그때 거기 가지 않았다면. 만약에 내가 술을 마시고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면. 만약에 그때 니가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 않았다면. 만약에 내가 조금 더 강한 사람이었다면. 만약에 니가 조금 더 우리를 믿었다면. 만약에 처음부터 완전히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만약에 인연이 끝났던 그 마지막이라도 다시 되풀이할 수 있다면. 만약에. 만약에. 그렇게 만약에, 가 쌓여 뭔가 단단히 움켜쥘 수 있는 닻과 같은 것이 되어준다면, 그래서 내가 지금 이 꼴사납고 남부끄러운 감정의 파고에 휩쓸리지 않을 수 있다면.
그러나 인생은 대개 꼴사납고 남부끄러운 일의 연속이다. 우리는 이별에 특정한 계기가 있었던 것이라 생각하고 그것을 되돌리지 못해 있는 힘껏 자책을 하지만 사실 대부분의 경우 헤어지는 건 ‘그냥’ 헤어지는 거다. 만약에
[허지웅의 경사기도권] 관객을 무너뜨리는 <라라랜드>의 엔딩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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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송년호다. 한해의 베스트영화를 꼽으며 결산하는 시간이다. <씨네21>의 기자와 평론가들이 선정한 2016년 1위 영화는 바로 <아가씨>(한국)와 <자객 섭은낭>(외국)이다. 2011년 <북촌방향>을 시작으로 2012년 <다른나라에서>, 2013년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 2014년 <자유의 언덕>, 그리고 2015년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까지 무려 5년 연속 1위를 차지했던 홍상수 감독의 영화가 5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개봉하지 않았던 해를 빼면 그의 영화는 언제나 1위 아니면 2위였다. 김동원 감독의 <송환>이 1위, 김기덕 감독의 <빈 집>이 2위를 차지했던 2004년은 예외였지만, 그래도 당시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는 5위에 자리했었다. 그런데 올해는 예상보다 더한 결과다.
2005년 <극장전>을 시작으로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주로
[에디토리얼_주성철 편집장] 연말 한국영화 베스트, 15년 만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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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선실세의 국정 농단과 증발한 VIP의 7시간과 늘 반복되는 정경유착의 짓거리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점입가경으로 전개되기 시작한 사태의 초반부, 농담인 듯 진담처럼 들었던 얘기는 기획 개발 중이던 한국형 정치·권력 스릴러 프로젝트들이 전부 잠깐 멈췄다는 거였다. 현실이 픽션보다 황당하여 창작자들이 당황했기 때문이겠지. 우리가 그간 시나리오에 너무 공을 들이고 있던 것은 아닐까? ‘꼭두각시 대통령 뒤에 무당 일족이 있었고, 비리의 증거가 될 단서는 그들이 보란 듯이 버려놓고 간 태블릿PC에 들어 있었다.’ 작가가 이렇게 시나리오를 쓰면 회사에서는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세요? 하고 퇴짜를 놓을 B급, C급 플롯. 그런데 그게 현실이었네?
아무리 공들여 짠 스토리라도 눈 높은 관객이 보고 피식 웃어버리면 망하는 업계, 현실이 준 것은 경외감이 아니라 모욕감. 울화통 터진 민심이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거의 매일 나오는 요즘 들려오는 소문은, 아예 이번 사태를 영화화한다는 것. 모든
[박수민의 오독의 라이브러리] 앨런 J. 파큘라의 <대통령의 음모>와 올리버 스톤의 <닉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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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독 캐럴이 좋은 뮤지션들이 있다. 토니 베넷이 그렇고 마이클 부블레가 그렇다. 펜타토닉스도 그중 하나다. 평소 앨범도 좋지만 캐럴은 특히 좋다. 인터넷에선 ‘캐럴 장인’으로 불리기도 한다.
올해 발표된 《A Pentatonix Christmas》도 수준급이다. 아카펠라 그룹 특유의 겹겹이 쌓인 보컬 하모니가 따뜻하고 아름답다. 악기 소리를 재현하는 개인기는 언제 들어도 신기하고, 경쾌한 곡부터 애틋한 곡까지 두루 잘 소화했다. 완성도는 차트로도 증명됐다. 빌보드 앨범 차트 2위에 올랐다. 캐럴 앨범임을 감안하면 대단한 성적이다.
어떤 이들은 캐럴은 깨끗하고 청아하게 불러야 한다며 단아한 고전미를 강조하기도 한다. 하지만 펜타토닉스는 그렇지 않다. 다소 ‘워우워’거리는 한이 있어도 보컬 기량을 최대한 발휘했다. 차진 비트를 강조하거나 저음역을 도드라지게 키워 댄스 성향을 띠기도 한다. 가곡이나 동요 같은 정화의 기운, 토니 베넷처럼 편하게 부르는 캐럴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맞
[마감인간의 music] 캐럴 장인 - 펜타토닉스, 《A Pentatonix Christm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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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머리를 했다고 한다. 고 육영수 여사의 머리 모양을 본뜨기 위해 핀을 찔러가며 한땀한땀 장인의 솜씨로 머리를 올렸다고 한다. 그 시간 진도 앞바다에서는 304명의 목숨을 실은 세월호가 무참하게 가라앉고 있었는데, 태연히 머리 손질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것도 민방위 복장에 맞춰 올림머리를 일부러 부스스하게. 전원 구조 뉴스가 오보였고, 국가적 비상사태가 발생했다는 걸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한 나라의 대통령이 차분히 앉아 머리를 빗질하는 이 그로테스크한 풍경. 대체 어떻게 설명이 가능한가.
이 소식을 전해 들은 고 최진혁군의 어머니는 “너 미쳤구나”라며 울었다고 한다. “그 머리 다 쥐어뜯어버리고 싶다”며 목을 놓고 울었다고 한다. 이 나라 국민이라면 누군들 그 머리 쥐어뜯고 싶지 않겠는가. 자그마치 304개의 소중한 우주가 물속에 수장되던 참극의 순간이었다.
그런데도 ‘여성의 사생활’ 운운하며 뻔뻔하게 자신을 변호하고 있다. 어떻게 그 순간이 사적인 시간인가. 근무시간
[이송희일의 디스토피아로부터] 대통령의 우선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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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처음 비디오플레이어(VCR)가 생긴 초등학생 무렵. 드디어 친구집이 아닌 우리집에서도 <후레쉬맨>을 실컷 볼 수 있을 거란 생각에 들떴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비디오테이프를 마음껏 대여하기엔 용돈이 부족해서 사실상 VCR은 장식품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VCR 구입 당시 사은품으로 받아 늘 함께 장식되어 있던 재미없어 보이는 외국영화 테이프가 하나 있었으니 그게 바로 <은행털이와 아빠와 나>(1986)라는 제목의 프랑스 코미디영화였다.
꿩 대신 닭의 심정으로 심심할 때마다 시큰둥하게 한두번 플레이하기 시작했는데, 이 영화… 보다보니 몇번씩 돌려볼 정도로 이상한 재미가 있었다. 프랑스어의 묘한 매력처럼 영화에 빠져든 첫 번째 경험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어느새 수많은 추억 속 비디오영화들처럼 이 영화도 내게서 자연스레 잊혀져갔다.
이후 삐로롱, 20년 뒤. 영화감독이 되고 나서 ‘내 인생의 영화’를 꼽아달라는 질문을 가끔씩 받을 때마다 딱히
[내 인생의 영화] 백승화의 <은행털이와 아빠와 나> 드디어 찾았다 인생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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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캡틴 판타스틱>은 제목 탓에 ‘또 한편의 슈퍼히어로영화인가’ 했다가 한번 속고, 다 보고 나면 궁극적으로는 슈퍼히어로 이야기가 맞다고 깨닫게 되는 영화다. 벤(비고 모르텐슨)은 오리건주 산속에서 자본주의 사회가 제공하는 모든 편의를 차단하고, 6남매를 지적으로 물리적으로 자급자족할 수 있는 인간으로 양육하고자 한다. 이 가족의 대화에서는 섹스와 죽음을 포함해 금기시되는 토픽이 없다. 현실에서 슈퍼히어로는 세계를 구하는 초인이 아니라 세계를 거스르며 믿는 방식대로 원하는 곳에서 살아가는 비순응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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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한 동물사전>의 마법사 뉴트 스캐맨더로 분한 에디 레드메인은, <사랑에 대한 모든 것> <대니쉬 걸>의 ‘변신술’에 이어, 이번에도 치밀하게 디자인한 연기를 보여준다. 혹자는 인물의 감정보다 배우의 기예를 감상하도록 주의를 끄는 레드메인의 연기를 2급으로 간주하지만, 나는 이 배우의 성실한 캐릭터 해석과 구현을 구경하는 일이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이웃의 히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