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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16일 막을 내린 제24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4관왕이 탄생했다. 코리안 판타스틱 장편 부문에서 작품상, 배우상(하준), 관객상, 배급지원상을 받은 <잔칫날>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음날, 몰랐던 아버지의 빚을 알게 된 무명 MC 경만(하준)은 거액의 행사 섭외를 거절하지 못하고 삼천포로 향한다. 남편을 잃은 후 웃음도 잃었다는 팔순의 어머니를 한번만 웃겨달라는 효자 일식(정인기)의 미션을 받아든 채 최선을 다해 재롱을 피운 경만은 뜻밖의 사건에 발이 묶인다. 오빠의 사정을 모른 채 홀로 장례식장을 지키는 경미(소주연)는 상주가 아니라서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하고 잔소리만 들을 뿐이다. 산 사람들의 부탁과 요구에 아버지를 제대로 떠나보내지 못하는 남매의 3일을 그린 <잔칫날>은 어쩌면 그동안 부천에서 경험한 진홍빛 장르 색에 비하면 얌전하게 보일 수도 있는 영화다. 하지만 김록경 감독은 “우리의 일상도 판타스틱하지 않냐”며 영화를 부천에 출품한
'잔칫날' 김록경 감독 - 슬픔이 필요한 이들이 슬퍼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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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이하 부천영화제)의 이모저모 중 이례적인 풍경은 비단 코로나19에 대처하는 변화뿐만이 아니었다. 부천영화제는 최신 중국 장르영화를 소개하는 기획전 ‘스마트시네마와 함께하는 중국영화특별전: 중국 장르영화의 부흥’을 극장과 앱에서 동시 공개하며 관객의 접근성 확장을 시도했다. <사랑하지 않는 자들의 최후> <무죄가족> 등 중국 스릴러, SF 장르의 현재가 한국 관객에게 이송된 통로는 바로 온라인 상영 플랫폼인 스마트시네마다. 중국 완다 그룹 영화사에서 독립해 2018년 스마트시네마를 론칭한 잭 가오 대표는 제작 및 배급 사업에 뛰어드는 일반적인 온라인 스트리밍 플랫폼과 달리 100% 상영 서비스에만 충실한 정체성을 내걸고 해외 진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스마트시네마를 열게 된 계기와 론칭 초기의 과정은.
=일반 관객뿐만 아니라 시청각 장애로 그동안 영화를 즐기기 어려웠던 분들에게도 영화 관람의 시계를 누리도록 하는 것이 목표 중
잭 가오 스마트시네마 대표 - OTT와는 다른, 극장과 상생하는 플랫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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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인용 병실의 금요일 밤이었다. 누군가 끄기를 잊은 TV에서 한 남자가 <She>의 도입부 네 마디를 노래하는 순간, 각자 노트북을 만지고 과일을 먹던 네 환자는 일제히 동작을 멈추고 서로 눈을 마주쳤다. 별로 친하지도 않은 사이였다. <팬텀싱어> 시즌3(이하 <팬텀싱어3>)를 통해 대중 앞에 나선 카운터테너 최성훈의 사운드는 그렇게 사뿐히 무감동의 벽을 뛰어넘어 폐부를 찌른다. 카운터테너는, 어원상 주선율을 끌고 가는 테너(tenor, ‘잡다’라는 의미가 있다)의 위나 아래에 배치되는 성부를 뜻한다. 카운터테너 가수들은, 가성대(假聲帶)를 기반으로 다양한 공명과 두성으로 여성 음역에 속하는 소리를 강하게 더 멀리까지 보낸다. 카운터테너의 소리는 단순히 남자가 내는 신기한 고음이 아니라 고유한 발성법과 성질의 소리다. 8개월의 TV 경연에서 최성훈이 만든 무대들은, 남성의 사운드는 어떠해야 한다는 관념은 물론 인간과 자연, 유기체와 기계의 경계를 초월
<팬텀싱어> 시즌3 우승 사중창단 라포엠의 카운터테너 최성훈 - 선을 넘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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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등병은 폐허에서도 매일같이 창고를 정리한다. 좀비 떼가 점령한 대한민국 서울 한복판에도 예외는 없다. <반도>의 631부대에서 성실히 루틴을 지키다가도 탈출 기회를 살피며 서 대위(구교환)를 따르는 김 이병(김규백)은 재난 상황에서 인간성을 잃어가는 이들이 있다면, 저자세를 유지한 채 그들을 감당해야 하는 이들도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자리가 마련해준 일말의 인간성을 붙들고, 부러진 다리로 절뚝이는 김 이병을 연기한 배우 김규백은 3년 전부터 단역으로서 필모그래피를 쌓아오다 <반도>로 처음 관객에게 각인되었다. “많은 작품에서 주로 군인 아니면 포로였다”던 그는 영화를 보고 자신을 알아봐주는 관객이 있다는 사실에 놀랍고 감사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며칠 전 인스타그램에 <반도> 촬영 마지막 날 연상호 감독과 찍은 사진을 올렸더라. 관객의 댓글에 하나하나 답글을 달았던데.
=관객이 나를 찾아보고, 댓글을 달아주는 게 신기하다. 들뜬 기
'반도' 김규백 - 과하지 않게 진중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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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주 감독의 단편 <성인식>이 올해 칸국제영화제(이하 칸영화제) 시네파운데이션 부문에 초청됐다. 칸영화제 시네파운데이션은 전세계 학생들이 제작한 단편영화를 선보이는 경쟁부문으로 올해는 17편이 칸의 선택을 받았다. <성인식>은 집과 학교에서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고 방황하는 스무살 대학생 현우(권순형)가 모텔에서 만난 직업여성(민효경)과 반복적 만남을 가지는 내용이다. 숭실대학교 영화예술전공 2학년인 김민주 감독이 학교 워크숍 수업에서 만든 첫 단편영화로, 감독은 “결핍의 원천을 마주하는 이야기”라고 영화를 설명했다. 신인의 어설픈 치기 대신 자연스러운 연출과 담담한 거리두기가 인상적인 작품이다.
-칸영화제 시네파운데이션 부문 초청을 축하한다.
=무척 기쁘고 아직도 꿈만 같다. 영화제에 직접 가면 실감이 난다고 하던데, 코로나19 때문에 칸에 가지 못해 아쉽다. 하지만 내가 만든 이야기를 알아봐준 사람이 있다는 것에서 자신감을 얻었다.
-칸영화제 이전에
'성인식' 김민주 감독 - 거칠지만 담담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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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대단한 시나리오는 처음이었다.” 시나리오를 펼쳐든 순간, 가호 배우는 영화 <블루 아워>가 가진 에너지를 단번에 알아챘다. 가호가 연기한 스나다는 현장의 마찰을 매끄럽게 풀어내는 베테랑 CF감독이다. 회식 자리에선 온 힘을 다해 즐길 줄 알고 귀갓길에 남편을 위한 빵을 고르는 세심함도 지녔지만 정작 자신의 속내는 조심스레 감춘다. 가호는 그런 스나다의 속내, 이를테면 가족에 대한 애증은 서늘한 눈빛으로, 남편에 대한 서운함은 주저하는 손짓으로 설핏 내보인다. 감춰둔 감정을 기요우라(심은경) 앞에선 술술 털어놓는 스나다처럼 가호는 촬영 내내 “심은경 배우가 무척 의지가 됐다”며 그에 대한 애틋함을 드러냈다. 2005년 영화계에 첫발을 들인 후 <블루 아워>로 올해 다카사키영화제에서 최우수여우주연상을 수상하기까지 가호는 수많은 인물로 분하며 대중 앞에 섰다. 국내 관객에게는 <바닷마을 다이어리>의 치카 역으로 익숙한 배우이지만, <블루 아워
'블루 아워' 가호 - 엇나감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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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은경에게 <신문기자> 이전에 <블루 아워>가 있었다. 홀로 일본에 도착한 지 약 1년의 시간이 흐른 2018년 여름, 배우 심은경은 일본인 감독과 일본인 배우, 일본인 스탭들과 호흡하면서 일본에서의 첫 작품 <블루 아워>를 촬영했다. 그가 연기한 기요우라는 바쁜 도시의 삶에 지친 CF감독 스나다(가호)와 여러모로 대비되는 인물이다. 일정한 일자리를 찾지 못하면서도 시종일관 밝고 경쾌한 에너지를 발산하며 누구와도 잘 어울린다. 아픈 할머니를 뵈러 고향에 오라는 어머니의 전화에 우물쭈물하는 스나다와 달리 기요우라는 당장 떠나자며 운전석에 앉아 출발해버린다. 이방인으로서 촬영 현장에 임하는 게 어렵지 않을까 싶었지만, 심은경은 3살 위의 또래 배우 가호와 “촬영 전부터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는 사이”였던 덕분에 스크린에서도 끈끈함이 느껴지는 연기를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지난 3월 6일 영화 <신문기자>로 일본 아카데미
'블루 아워' 심은경 - 즐거움이라는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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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색 차의 조수석에 느슨히 앉아 있는 스나다(가호)와 힘껏 소리지르며 액셀을 밟는 기요우라(심은경). 두 사람을 한 프레임에 담아낸 영화 포스터만 봐도 청량한 에너지가 톡톡 튀어오른다. 하코타 유코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영화 <블루 아워>는 지칠 대로 지친 스나다가 “떠나자!”는 기요우라의 말에 주저 없이 고향으로 향하는 여정을 그린다. 흔한 직장인인 스나다와 달리 기요우라는 금방 만화에서 튀어나온 캐릭터 같다. 정반대의 두 인물이 유려하게 섞이는 이유는 촬영 전부터 함께 시간을 쌓아온 심은경과 가호의 끈끈한 관계 덕일 것이다. 극중 스나다와 기요우라처럼 배우 가호는 심은경 배우 없는 현장은 “불안하고 허전했음”을, 심은경 배우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는 사이”였던 배우 가호가 큰 의지가 됐음을 전한다. 이러한 신뢰를 바탕으로 두 배우는 맡은 인물들의 상반된 에너지를 본래 자신의 것인 양 시원하게 표출해낸다. 배우 심은경과 가호의 협업만으로 큰 기대를
'블루 아워' 심은경·가호 - 함께라면 떠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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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열기를 식혀줄 푸른빛의 <아카이브 프리즘> 1호가 출간됐다. <아카이브 프리즘>은 폐간된 <영화천국>의 뒤를 잇는 한국영상자료원의 새 기관지다. 김광철·장병원·한선희 편집위원과 함께 필자로 참여한 정민화 정책기획팀 과장은 “필름 아카이브의 성격이 반영된 또 하나의 자료 보존 공간”이라 생각하며 <아카이브 프리즘>을 기획했다. <영화천국> 보다 판형도 키우고 페이지 수도 늘린 원이슈 매거진이다. ‘90년대 영화 전단’을 주제로 잡은 이유는 “한국영상자료원이 수집한 포스터, 전단, 콘티 등 비필름 자료들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이러한 시각 자료들을 다채롭게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정민화 과장은 프로파간다 출판사의 김광철 대표와 기획부터 출판까지 모든 과정을 함께했다. “전단으로 주제를 잡은 후 전시도록처럼 보이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대표님과 함께 작업하며 결과물이 잘 나오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정민화 과장과 김광철 대표는
<아카이브 프리즘> 정민화 한국영상자료원 정책기획팀 과장 - 종이 잡지라는 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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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외 게스트들이 한자리에 모여 열대야를 가볍게 날리는 부천의 한여름 밤 풍경을 더이상 볼 수 없게 됐다. 심야상영이 없어진 탓에 밤새 영화를 보고 첫차를 타고 집에 돌아가는 시네필들의 모습도 올해는 만날 수 없게 됐다. 하지만 위기는 곧 기회다. 7월 9일 개막한 제24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이하 부천영화제)가 온라인(왓챠)과 오프라인(CGV소풍)으로 일주일 동안 열린다. 코로나19가 장기화된 탓에 부천영화제 프로그래머들도 그 어느 때보다 라인업 확보가 쉽지 않았다. 영화제 개막 3일을 앞둔 지난 7월 6일, 아시아 지역을 담당하는 김영덕, 영어권과 산업 프로그램을 담당하는 남종석, 한국영화를 맡은 모은영 등 부천영화제 프로그래머 3인을 만나 올해 영화제를 어떻게 준비했는지 들었다. 아쉽게도 유럽 지역을 담당하는 박진형 프로그래머는 바쁜 일정 탓에 함께 자리하지 못해 추천작 리스트만 따로 받아 덧붙였다. 영화제는 7월 9일부터 16일까지 열린다.
-온오프라인을 병행하기로 결정
김영덕·남종석·모은영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프로그래머, "여성감독의 신작, SF 장르영화가 대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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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영이란 이름을 처음 기억하게 된 건 인스타그램에서 ‘쇼트커트가 잘 어울리는 여자’ 라는 설명과 함께 이미지가 널리 공유됐던 때였다. 사진으로 먼저 만난 그가 트위터에서 맥 딜리버리 아르바이트를 하다 여성이기에 겪은 무례한 일을 공유하고 “여배우는 여성 혐오적 표현”이라고 발언할 땐, 단단하고 소신 있는 신인배우의 탄생이 무척 반가웠다. 이후 이주영의 행보는 이미 많은 이들이 알고 있을 것이다. <춘몽>(2016), <꿈의 제인>(2016), <누에치던 방>(2016), <메기>(2018) 등을 거치며 차근차근 독립영화계에서 중요한 이름으로 떠오른 그는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의 성공으로 상업 영역까지 아우르는 라이징 스타가 됐다. MTF 트랜스젠더(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한사람) 마현은 전통적인 여성성에 얽매이지 않는 배우의 이미지와 시너지를 내며 자신만의 서사를 완성했고, 인스타그램 팔로워가 무려 175만명(6월4일 기준)에
'야구소녀' 이주영 - 정점을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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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년 만이다. <씨네21>과 다시 인터뷰를 하게 될 줄이야.” 서울시 교육감을 지냈고 현재 징검다리교육공동체에서 활동중인 곽노현 이사장은 올해 부산국제어린이청소년영화제(이하 BIKY) 초대 민간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방송대학 위성TV(OUN) 운영책임자로 <씨네21>과 인터뷰를 했던 그는 예전으로 돌아간 것 같다며 즐거워했다. 한결같이 어린이와 청소년의 교육을 생각하며 살아온 시간. 아이들과 눈높이를 맞춰 아이들의 입장에서 생각해온 곽노현 이사장은 여전히 소년 같은 눈망울과 생기 넘치는 목소리로 새로운 도전에 대한 열정을 드러냈다.
-BIKY의 초대 민간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그동안 부산시장이 맡아왔던 자리인데 올해부터 선출직 민간 이사장 체제로 전환됐다.
=어떤 일이든 사람과의 인연에서 시작된다. BIKY 집행위원장인 김상화 감독이 징검다리교육공동체에서 영화읽기 강연을 진행 중이다. 매달 BIKY에 출품됐던 영화를 틀어주면서 영화 나눔을 실천하는,
부산국제어린이청소년영화제 곽노현 이사장 - 다름 안에서 나를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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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0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올드 가드>는 샤를리즈 테론이 출연 이전에 제작부터 결심한 영화다. <몬스터> <아토믹 블론드> <툴리> <롱 샷> <밤쉘: 세상을 바꾼 폭탄선언>(이하 <밤쉘>) 등 제작자로서도 개성 있는 안목을 증명하고있는 그답게 불멸의 전사들을 다룬 그레그 러카의 유명 그래픽노블을 영화화한다는 소식에도 즉각 반응했다. 이후 출연을 결심하기까지 주효했던 것은 수백년 동안 영생하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활약해온 여성 전사 앤디(샤를리즈 테론)의 특출난 카리스마였다. 어떤 치명상에도 금세 회복하는 슈퍼히어로들의 리더를 연기한 샤를리즈 테론은, 이번 영화에서 온갖 전법과 무기에 능한 액션 스타의 진면모를 과시한다. 캐스팅 과정부터 후속작 계획에 이르기까지 자신감으로 넘쳤던 샤를리즈 테론과의 인터뷰를 전한다.
-<올드 가드>의 그래픽노블 속 어떤 요소들이 작품 선택에 결정
'올드 가드' 샤를리즈 테론, "능력 있고, 싸울 줄 알고, 유머가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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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성시(사회적 관점을 다룬 영화),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멜로드라마), 희극지왕(코미디), 절대악몽(공포, 판타지), 4만번의 구타(액션, 스릴러)라는 이름으로 장르를 나눠 프로그래밍하는 미쟝센단편영화제가 올해로 19회째를 맞았다. 이번에는 부문별 최우수작품상 수상작만 선정되고 대상 수상자는 나오지 않았지만, 두편의 영화를 출품해 여러 차례 단상에 오르며 관객에게 각인된 감독이 있다. 한국인 할머니와 일본인 손녀의 첫 만남을 담은 <아마 늦은 여름이었을거야>로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 부문 최우수작품상, 일하는 시간이 달라 마음도 엇갈리는 연인을 그린 비정성시 부문 <우리의 낮과 밤>으로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한 김소형 감독이다. <우리의 낮과 밤>은 김우겸 배우에게 연기상을 안기기도 했다. 이 작품에서 김우겸 배우와 짝을 이뤄 연기도 선보인 김소형 감독과 수상작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지난 7월 1일 막을 내린 제19회 미쟝센단편영화제에서
제19회 미쟝센단편영화제 수상자 김소형 감독 - 퍽퍽한 삶에도 희망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