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네아스트라 칭송받는 지 감독(서상원)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자 실업자 신세가 된 영화 프로듀서 찬실(강말금)은 여배우 소피(윤승아)의 집을 쓸고 닦으며 돈을 번다. 그때 흘러나오는 뚱땅거리는 묘한 리듬. 예스럽고 엉뚱한데 귀엽다. 찬실을 닮았다. 정중엽 음악감독은 1979년에 생산된 코르그 드럼머신 리듬55(Korg KR 55)를 이용해서 찬실을 위한 리듬을 만들었다. 찬실이가 영이(배유람)와 다정하게 도시락을 먹는 장면에서도 드럼머신 리듬을 썼다. “오프닝에서 지 감독이 죽을 때 쇼팽의 <장송행진곡>이 나왔다. 그 뒤에는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미니멀한 음악을 써야겠다 싶었다. 드럼머신은 위트 있고 아날로그 질감이 느껴져서 찬실이와 어울리겠다고 생각했다.”
2018년 크리스마스를 사흘 앞둔 오후, 정중엽 음악감독은 김초희 감독을 만나 미래의 입봉작이 될 <찬실이는 복도 많지>의 시나리오를 건네받았다. 1시간 남짓 만났던 두 사람은 4시간 넘게 여러 음악 링크를
<찬실이는 복도 많지> 정중엽 음악감독 - 영화를 위한 리듬
-
<이장>은 <작은 아씨들>의 온기를 판타지로 만든다. 여성에게 많은 선택지를 주지 않는 사회에서, 아씨들은 자애로운 부모를 만나 서로를 보듬었다. 그러나 <이장>의 네 자매는 때로 가족 안에서 더한 폭력과 착취를 경험해야 했다. 아들에게 가는 징검다리로써 내가 존재하게 된 건 아닐까 의심하며 살았을 그들은 아버지를 이장하기 위해 모인 하루조차 장남을 데려오기 위해 반나절을 허비한다. “이 모든 게 큰아버지의 고집에서 시작된 것이다. 그에게 권위를 부여하는 체제는 사실 벌 한 마리에 의해 와르르 무너져버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정승오 감독은 이 쓰라린 가족에 대해 말하며 자주 고개를 숙이고 살며시 웃었다. 자신이 영화 속 남성들 같았던 시간이 계속 떠올랐단다. 가족이 그리워 가족 이야기를 시작했다는 그가 어쩌면 자매들의 로리가 되어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장>은 어머니 병문안을 가는 네 자매의 한나절을 그린 전작 단편 <새들이 돌아오는 시간&g
<이장> 정승오 감독 - 일상의 차별, 그 정체를 묻다
-
아버지의 이장을 위해 모인 네 자매가 막내이자 장남인 녀석을 끌고 오기 위해선 한 사람의 도움이 절실했다. 막내의 거처조차 모르는 누나들의 무차별 메시지 전송 끝에 연락이 닿은 단 한명, 녀석의 전 여자친구 윤화다. 송희준 배우가 연기한 <이장>의 윤화는 멀어진 가족을 한데 모은 후 유일한 이방인을 자처하며 그들의 여정에 동행한다. 비겁하게 도망친 애인에게 사과를 받고, 못다 한 이야기를 매듭짓기 위해서다. 그래서 그는 처음 보는 어른들 앞에서도 조곤조곤 할 말을 다 한다. 제 할 일을 해내기 위해 낯선 이들을 따라나선 윤화처럼, 새로운 캔버스를 찾던 신인 송희준이 스크린에 도착했다.
-미대를 다니던 중 모델이 되었고 단편영화를 찍었다. 원래 배우를 꿈꿨나.
=꿈을 정해놓고 모델이 하고 싶다, 배우가 하고 싶다, 생각한 적은 없다. 그림 그리는 작업이 그러하듯 나의 색을 꺼내놓을 수 있는 일을 계속하고 싶었는데, 우연히 모델 일을 시작했고 연기할 기회도 생겼다. 혼
<이장> 송희준 - 나의 색을 찾아서
-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윤희에게> <찬실이는 복도 많지> 배지 등 최근 인기를 끈 굿즈 뒤에는 오세범 딴짓의 세상 대표가 있었다. 2011년에 문을 연 1인 스튜디오 딴짓의 세상은 디자인, 독립출판을 아우르며 지금까지 50편이 넘는 영화의 굿즈를 제작했다. 오세범 대표는 마이크 밀스 감독의 <우리의 20세기>를 “개봉영화 굿즈 작업의 물꼬를 터준 영화”로 기억했다. 수입사인 그린나래미디어의 제안을 받아 주인공 도로시아(아네트 베닝)가 즐겨 피우는 고풍스런 ‘살렘’ 담뱃갑을 디자인했고, 그 안에 영화 스틸컷을 담은 포토카드를 넣었다. “티모시 샬라메 주연의 <핫 썸머 나이츠> 카드사진집, 4개월의 긴 준비 기간을 거쳤던 <서스페리아> 작업” 등도 각별했던 작업물들이다.
사람들은 왜 굿즈를 소비할까? 오 대표는 좋은 영화를 보고 나서 “그 영화 속에 계속 살고 있는 기분, 혹은 그러고 싶은 욕망”을 언급했다. 딴짓의
오세범 딴짓의 세상 대표 - ‘딴짓’의 재발견
-
-
자신이 장국영이라 우기는 이 남자는 그냥 걸어와도 될 걸 꼭 사뿐히 점프 한번을 한다. 내 마음을 다 아는 것처럼 이야기를 들어주다가도 외로움과 사랑을 구분하라 일침을 가한다. 멀리 우주에서도 응원하겠다며 홀연히 돌아서는 그를 언제라도 다시 만나고 싶다. <찬실이는 복도 많지>의 장국영(김영민)은 찬실(강말금)에게 그런 존재다. 일과 연애 모두 갈 곳을 잃은 찬실이 다시 손전등을 들기까지, 장국영은 묵묵히 그의 곁을 맴돈다. 장국영을 연기한 배우 김영민은 최근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의 ‘귀때기’로 주목받은 데 이어 드라마 <부부의 세계> 방영을 앞두고 있다. “언젠가 겪고 싶었던 일을 지금 겪고 있다”는 그는 자신이 찬실과 같았던 시절을 곱씹었다.
-<씨네21>과의 인터뷰가 무려 12년 만이다. 2008년 <경축! 우리사랑> 개봉과 함께 진행한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인데, 2020년 <찬실이는 복도 많지>로 다시 만
<찬실이는 복도 많지> 배우 김영민 - 장국영처럼 걷는 연습 많이 했죠
-
드라마 <매드맨>과 <핸드메이즈 테일>, 공포영화 <인비저블맨>으로 이어지는 엘리자베스 모스의 필모그래피는 그 자체로 하나의 메시지가 된다. 여기에 제인 캠피온이 제작·연출을 겸한 TV시리즈 <탑 오브 더 레이크>를 더할 수도 있겠다. 모스는 지난 10여년간 21세기를 살아가는 10대들에게 대중문화 속 페미니스트 아이콘으로 각인되기 충분한 캐릭터들을 연이어 연기해왔다. 여기서 이런 가정법의 질문도 가능해진다. <매드맨>과 <탑 오브 더 레이크>와 <핸드메이즈 테일>이 없었다면모스는 <인비저블맨>의 세실리아가 될 수 있었을까? 혹은 엘리자베스 모스가 아니었다면 <인비저블맨>은 지금과 같은 호평을 받을 수 있었을까?
<겟 아웃> <어스> 등을 성공시킨 블룸하우스의 공포영화 <인비저블맨>은 엘리자베스 모스가 구축한 이미지와 연기력에 크게 기댄 영화다. 영화
[액트리스] 저항과 투쟁의 얼굴- <인비저블맨> 엘리자베스 모스
-
문학상들이 새로운 재능을 알리는 시대에, 출판사 투고로 2018년 12월 출간된 문목하의 장편소설 <돌이킬 수 있는>은 읽은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고 사랑받았다. <돌이킬 수 있는>은 초대형 싱크홀이 산 하나를 통째로 삼켜버린 재난 이후 시간이 흘러, 가족 중 홀로 살아남아 성인이 된 윤서리가 경찰에서 수사관으로 일하다 부패경찰을 돕는 부서로 옮기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이후 암살작전에 투입되어 유령도시가 된 싱크홀의 도시에 잠입한 윤서리는 그곳에 공식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이 살고 있음을 알게 된다. <돌이킬 수 있는>은 마지막 페이지에 도달할 때까지 쉼 없이 이야기가 이어지고, 윤서리, 정여준을 비롯한 인물들을 이야기가 끝난 뒤에도 쉽게 잊기 어렵다. 2019년 11월 두 번째 장편소설 <유령해마>를 발표한 문목하 작가를 만났다.
-장편소설만 두권을 출간했다.
=단편이 어렵다. 좋은 단편들을 읽으니 보는 눈은 높아졌는데 쓰기는 어
<돌이킬 수 있는> <유령해마> 소설가 문목하, "매번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쓴다"
-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 국제교류전략팀(이하 국제팀)의 김경만 팀장은 영진위에서 덕업일치를 이루었다. 학기 중엔 취업 준비를 하고 방학 땐 단편영화를 찍으며 대학 생활을 하다, 영화계 취업도 영화 창작도 만만치 않음을 깨닫곤 한국예술종합학교 전문사 프로듀서 과정에 지원했는데 합격한다. 하지만 오리엔테이션 당일 대기업에서 합격 통보를 받고 배고픈 영화학도의 길과 배부른 직장인의 길 사이에서 고민하다 취업을 택한다. 영화를 보고 DVD를 구매하는 데 아낌없이 월급을 써버리던 생활을 한 지 1년 반쯤 지났을 무렵, 아버지로부터 “이제 그만 헤매고 영진위 입사 시험을 보라”는 얘기를 듣고 “공공기관은 재미가 1도 없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시험을 쳤는데 덜컥 붙었다. 경쟁률은 무려 700 대 1 정도. 2010년 영진위에 입사해선 정책연구팀, 국제팀, 홍보팀 등을 거쳐 2018년 8월 국제팀 팀장이 되었다.
국제팀의 주요 업무는 국제영화제와 필름마켓에 참석해 한국영화를 해외에 알리
김경만 영화진흥위원회 국제교류전략팀 팀장 - 한국영화의 파트너
-
<한겨레>가 네이버와 모바일 주제판을 함께 운영하기로 했을 때, 다양한 주제 선정안이 올라왔었다고 한다. 많은 안 중에 채택된 것은 바로 ‘영화’였다. 네이버 영화 주제판을 운영하기 위해 설립된 영화 콘텐츠 전문회사 씨네플레이는 그렇게 시작됐다. 지난 4년간 씨네플레이는 쉼 없이 성장했고 이제는 외연 확장에 눈을 돌리려 한다. 동영상 콘텐츠에 대한 관심과 영화계 플레이어들과의 접점을 넓히려는 시도, OTT(Over the Top) 서비스 및 영화제와의 협업이 특히 눈에 띈다. 심규한 편집장에게 씨네플레이 운영에 대한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씨네플레이는 어떤 회사인가.
=네이버 모바일 서비스에서 영화 주제판을 운영하는 회사다. 영화 주제판의 주요 콘텐츠를 제작하고, 네이버 내에서 활동하는 창작자와 매체사, 영화사 등의 콘텐츠를 찾아 편성하는 일을 하고 있다. 하루 세번 편성을 교체하고, 30∼40개 콘텐츠를 제작 또는 선정해 영화 주제판 설정자에게 제공한다.
심규한 씨네플레이 편집장 - 이제 외연을 확장할 때
-
슬픔의 파도가 밀려올 때 어떻게든 그 속을 씩씩하게 헤엄치는사람. <찬실이는 복도 많지>의 전직 영화 프로듀서 이찬실은 직업과 사람을 잃고 스스로 “망했다”고 정의할 수밖에 없는 위기에 빠져 있다. “가진 게 없을 때 눈이 더 밝아지는” 이 뭉클하고 지혜로운 수난기에서 단연 빛나는 배우는 첫 장편영화 주연작을 알린 찬실 역의 강말금. “평소엔 좀 골골대도 막상 큰일이 터지면 찬실이처럼 씩씩해지는 것 같다. 그래서 계속 삶을 황무지로 만들려나보다”라는 말에서 지금의 찬실을 만든 내공이 묻어나왔다.
-첫 주연작을 제안받았을 때 어떤 기분이었나.
=일생일대의 사건이었다. 비중상 주연이어도 남성감독이 모성에 대한 판타지를 갖고 그린 어머니 캐릭터는 삶의 주인공처럼 느껴지지 않는 것처럼, 오롯이 내 인생 내가 사는 여성을 연기하고싶었다. 특별히 시켜주는 사람이 없어서 그 당시에 동료들과 낭독 공연에 열을 올리기도 했는데, 마침 <찬실이는 복도 많지>를 만났다.
<찬실이는 복도 많지> 강말금 - 슬픔이여 안녕
-
베트남전쟁의 이면을 되짚는 다큐멘터리 <기억의 전쟁>은 하나의 전쟁이 낳은 두개의 위령제를 지켜본다. 한국의 ‘전몰장병 합동 위령제’와 베트남 하미마을의 ‘학살 위령제’가 그것이다. 이때 이명과 같은 음향이 전자의 공기를 전달하고, 차분히 흐르는 음률이 후자의 분위기를 상상케한다. 음악이 취한 태도가 카메라의 시선에 응답하는 순간이다. 소리를 대비시켜 영화를 한층 섬세히 감각하게 도운 <기억의 전쟁> 이민휘 음악감독이 정한 컨셉은 “나서지 않는 음악”이다. 그는 “다큐멘터리는 많은 경우 꺼내기 어려운 주제를 다루기에 극영화를 대할 때와 달리 임할 수밖에 없다”며 “이야기를 끌고 가기보다 뒤받쳐준다는 느낌으로” 음악을 만들었다고 한다. 특히 “화자의 말이 더 잘 들리도록” 하는 것에 집중했다. 그가 택한 방법은 “앰비언스가 주가 되도록” 사운드를 조성하는 것.“콩나물로 멜로디를 그리는 것에 익숙했는데, 음이 퍼지는 효과에 집중한 새로운 시도가 재밌었다.”
페달
<기억의 전쟁> 이민휘 음악감독 - 영화의 공기
-
북미 시상식 레이스 후반부에 등장한 <1917>이 <기생충>의 경쟁 상대로 거론되는 동안, 막강한 감독상 후보였던 샘 멘데스만큼이나 조용한 기쁨을 누린 배우가 있었다. 바로 <1917>을 통해 스타로 자리매김한 영국 배우 조지 매케이다. <1917>은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1917년 4월 6일, 아군에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적진을 뚫고 나가야 하는 두 병사 윌 스코필드(조지 매케이)와 톰 블레이크(딘 찰스 채프먼)를 따라가는 영화다. 통신망이 파괴된 상황에서 독일군의 함정을 감지한 장군이 두 전령 병사를 보내 매켄지 중령(베네딕트 컴버배치)에게 공격 중지를 지시하려는 상황. 젊은 군인들은 자신들의 임무가 1600명의 영국 병사를 살리는 길임을 끊임없이 상기하며 진흙탕을 헤쳐나간다.
총, 칼, 수류탄을 몸에 두르고 대지에서 두려움과 싸우는 동안, 두 병사는 이 명령이 유효한 것인지 의심하고, 시시각각 전쟁의 참혹한 폐해를 목도하며,
<1917> 조지 매케이 - 영화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
2013년 방영된 동명의 KBS 드라마가 원작인 <굿 닥터>는, 미국에서의 높은 인기 덕에 시즌3가 종영하기도 전 시즌4의 제작을 확정지었다. <굿 닥터>는 서번트 증후군을 가진 주인공 숀 머피(프레디 하이모어)가 외과의로 성장하는 과정을 그린 의학드라마다. <굿 닥터>가 <그레이 아나토미>의 뒤를 이어 <ABC>의 간판 드라마가 되기까지, 그 성공의 여정 속에는 이동훈 엔터미디어 콘텐츠 대표의 노력이 고스란히 녹아있었다. 미국 국적을 가지지 않은 토종 한국인으로서 드물게 주류 할리우드에서 성공한 이동훈 대표는 <굿 닥터> 시리즈를 통해 어떻게 미국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을까? <씨네21> 1245호에 실린 이동훈 대표의 인터뷰를 토대로 미국 드라마 <굿 닥터>의 흥행 이유를 살펴보았다.
1. 다른 미국 드라마들과 차별화된 서사를 다뤘다.
당시 미국에서는 <브레이킹 배드> <
인기 미국 드라마 <굿 닥터>의 제작자는 토종 한국인?
-
돌고 돌아 언젠가 만들 수밖에 없는 영화가 있다. 김지훈 프로듀서에게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은 그런 작품이다. 시나리오와의 첫 만남으로부터 1년 전, 제작사에서 자체적으로 소네 게이스케의 원작 소설을 영화화하고자 검토했으나 복잡한 플롯에 단념했던 그는 김용훈 감독이 쓴 각본을 읽고 “1초의 고민도 없이” 이 영화를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독특한 구조와 다양한 캐릭터를 업고 맛깔나게 펼쳐지는” 이야기의 매력은 살리되 한국적 정서에 맞게 인물을 다듬고, 평택이라는 항구도시를 주 무대로 삼은 각색이 마음을 사로잡은 것. 프로듀서로서 주력한 부분 역시 로케이션 헌팅이다. “건조한 분위기의 배경에서 도리어 인물의 색깔이 살길” 원한 김지훈 프로듀서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에서만큼은 평소 좋아하던 스탠리 큐브릭과 웨스 앤더슨의 비현실적 이미지가 아닌 실제적인 미장센을 추구하겠다”는 판단 아래 전국을 돌아다녔고 세트에도 공을 들였다. “예산 규모 때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김지훈 프로듀서 - 우리만의 평택 만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