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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빈틈을 살뜰히 메워주는 사람. <정말 먼 곳>의 문경은 아빠의 농장 일을 돕고, 치매 환자인 할머니와 진우(강길우)의 딸 설을 지극히 돌보는 인물이다. 거리낌 없이 모두를 대하면서도 좀체 자기 속을 내보이지 않는 문경은, 힘든 기색 대신 사람 좋은 웃음을 짓는다. 기도영 배우는 좋아하는 진우에게조차 말을 아끼는 문경의 마음을 다정한 행동과 눈빛에 녹여냈다. 조용하고 차근하게 답하는 기도영 배우를 보며 “실제 문경의 성격은 나와 비슷하다”는 그의 말이 이해됐다. <메소드> <우리 지금 만나> <버티고>를 거쳐 <정말 먼 곳>에 도착한 그는, 이번 작품이 연기에 대한 애정을 일깨운 또 다른 ‘시작’이라 말한다.
-아버지인 기주봉 배우가 문경 역에 기도영 배우를 제안했다고.
=중만(기주봉)의 딸 문경의 배역이 아직 정해지지 않은 때였다. 아빠가 “내 딸이 연기를 하는데 미팅해보지 않겠냐”고 굉장히 조심스럽게 말씀하셨다더라
'정말 먼 곳' 기도영 - 또 다른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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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영(이상희)은 “다 바로잡으려 온” 여자다. 그는 딸 설(김시하)을 쌍둥이 형제 진우(강길우)에게 맡겨놓고 연락을 끊었다 다시 찾아와 설의 엄마가 되겠다고 선언한다. 자식에게 평범한 삶을 누리게 해주고 싶다고, 살아보니 그 평범함이 참 중요한 것 같다고 말하며 평범치 않은 길을 걷는 가족을 나무란다.
그러나 은영은 준비가 안돼 있다. 아이와 뛰노는 들판의 양들에게 다가서지도, 아이에게 능숙히 음식을 먹여주지도 못한다. 요의를 참지 못한 아이가 새벽잠을 깨우는 상황도 낯설기만 하다. 그럼에도 은영은 설이가 자신을 필요로 할 때만큼은 그 곁에 있어주고자 몸을 일으킨다. 영화가 끝나기까지 딱 한뼘의 성장을 해내는 인물을 표현하기 위해, 배우 이상희는 이야기 너머에 있을 인물의 삶을 생각했다. 은영이 은영만의 엄마다움으로 딸에게 다가갈 수 있기를 바라면서.
-영화 시작 30분 만에 <정말 먼 곳>에 나타난다. 짙은 감색 트렌치코트를 입고 선글라스를 낀 채 등장해 마치 탐
[인터뷰] '정말 먼 곳' 이상희 - 옆에 선다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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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게 웃는 해사한 청년. 배우 홍경의 첫인상은 곧바로 <정말 먼 곳>의 현민을 떠오르게 한다. 홍경이 연기한 현민은 진우(강길우)의 오랜 연인으로, 그를 따라 강원도 화천으로 이주한 인물이다. 현민은 성당에서 시를 가르치며 마을 주민들과 허물없이 어울린다. 하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정돈된 웃음 아래로 감정을 꾹꾹 눌러담은 현민의 이면이 드러난다.
배우 홍경은 ‘현민은 이 또한 이해할 사람’이라는 박근영 감독의 조언을 바탕으로, 차별적인 시선에도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현민의 감정을 가만히 헤아렸다. 지난해 <결백>에서 자폐 장애를 가진 정수 역으로 관객과 마주했던 홍경은 시인 현민으로 분한 채 다시 스크린 앞에 섰다. 현민이 차분히 시를 읊듯, 홍경은 신중하게 말을 고르며 인터뷰를 이어갔다.
-<정말 먼 곳>에 합류하게 된 과정이 궁금하다.
=독립영화를 하고 싶어서 2018년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열린 ‘배우 프로젝트-60초 독백 페스티벌’에 참여
[인터뷰] '정말 먼 곳' 홍경 - 고정 관념을 깨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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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이에게서 문득 편안함을 느낄 때처럼, 배우 강길우는 아직 낯선 이름이지만 이상하리만치 미덥고 묵직하다. 박근영 감독의 데뷔작 <한강에게>(2018)로 본격적인 장편영화 활동에 시동을 건 그는, <파도를 걷는 소년>(2019), <마음 울적한 날엔>(2020)을 거쳐 올해 <정말 먼 곳>에서 그동안 집약한 내공을 펼쳐 보인다. 미술학도에서 연기로 전향해 오랫동안 연극 무대에서 연기의 태도를 다진 뒤, <명태> <시체들의 아침> <마이 리틀 텔레비전> 등의 단편영화에서 꾸준히 활약한 강길우는 자신만의 궤적을 흔들림 없이 지켜온 배우다.
<정말 먼 곳>에서 그가 연기한 진우는 연인 현민(홍경)과의 사랑을 곁눈질하는 사람들로부터 고통받고, 동생 은영(이상희)에게 오랫 동안 함께한 딸(김시하)을 내주어야 할 처지에 있다. 말 없는 동물처럼 묵묵히 자기 삶의 무게를 진 남자에게서 비극을 읽어내기란 쉬
[인터뷰] '정말 먼 곳' 강길우 - 편안함의 내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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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먼 곳’에는 구원이 있을까? 모종의 상처를 안고 서울을 떠난 남자 진우(강길우)는 강원도 화천에 터를 잡고 딸 설(김시하)을 보살핀다. 마음씨 좋은 목장 주인인 중만(기주봉) 가족과 안락한 새 울타리를 이룬 그의 삶은, 얼마 못 가 도시에서 찾아온 연인 현민(홍경)과 쌍둥이 동생 은영(이상희)의 출현으로 시련에 처한다. 먼 곳이 가까운 곳이 되자 상처는 허무하리만치 금세 반복된다.
혼수상태의 연인을 뒤로하고 일상을 살아내는 한 여자의 조용한 비탄을 성찰했던 데뷔작 <한강에게>(2018)에 이어, 박근영 감독은 <정말 먼 곳>에서 안식을 방해받는 연인들의 슬픔 속을 유유히 산책한다. 강원도의 눈부신 가을 풍광에 매혹되었다가 아득히 안개 낀 숲속에서 정신을 차릴 때까지 걸음은 계속된다.
묵묵히 제 몫의 일상에 육체와 마음을 헌신하는 남자 진우, 그의 차분한 파트너이자 시골 중년들에게 활기를 돋우는 젊은 시인 선생님 현민, 이방인에게 주어진 기다림의 시
[인터뷰] '정말 먼 곳'의 세 배우 강길우·홍경·이상희 - 풍경에 잠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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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두 사람이 걷던 이 길을 이 밤에 나 혼자서 걸어가는데.” 가수 배호의 노래 <비 내리는 밤길>이 들려오며 영화가 시작된다. 노래에 귀를 기울이면 <밤빛>의 두 주인공의 모습이 어렴풋이 그려진다. 극중 희태(송재룡)는 한번도 본 적 없던 아들 민상(지대한)과 함께 산속에서 생활하게 된다. 짧은 대화만 오갈 뿐이지만 잠든 아들의 머리칼을 쓸어 넘기고 아픈 아버지에게 감기약을 건네는 아들의 손길엔 쓸쓸한 그리움이 묻어난다.
<밤빛>은 죽음을 앞둔 희태가 민상과 함께한 2박3일을 담담히 그리고 있다. 칼아츠에서 영화를 공부한 김무영 감독의 장편 데뷔작으로, 겨울산과 여름산의 모습을 부자 관계와 엮어 대조적으로 표현한 점이 인상적이다. <밤빛>은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 제44회 서울독립영화제에 초청돼 일찍이 관객과 만났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오늘 <밤빛>의 개봉과 함께, 김무영 감독과 희태와 민상 부자의 동행에 관해 이
'밤빛' 김무영 감독 - 반복되는 삶에도 변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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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윤경은 강해졌다. <소셜포비아>의 ‘관종 악플러’ 레나로 데뷔해 특유의 불안하고 날 선 기운으로 주목받았지만, <고백>에서는 어느덧 다부진 경찰이 되어 주변 여성들에게 손을 뻗는다. 국민 1인당 1천원씩 모금해 1억원을 마련하라는 유괴범의 등장에 대중이 동요할 무렵에도 그가 연기한 지원은 차분하고 명민하게 사건의 진위를 의심한다. 유괴 사건에 얽힌 사회복지사 오순(박하선)과 학대 피해아동인 10살 소녀 보라(감소현)의 특별한 관계도 곧잘 알아본 지원은 이윽고 뚝심 있는 해결사가 되어 관객이 영화속에서나마 시름을 덜게 만든다.
<고백>에서의 활약이 있기까지, 스크린에서는 <울보> <타클라마칸> <박화영>이, 안방에서는 드라마 <최고의 이혼> <슬기로운 의사생활>이 있었다. 찬찬히 크레딧에 이름을 보탠 끝에 대중의 기호 속 하윤경이라는 이름을 새긴 그는 올해 더욱 견고해진 마음가짐으로 30대를 맞
'고백' 하윤경 - 건강한 마음에 깃든 명민한 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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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여성들의 자립과 동행, 연대를 그린 영화다. 배우 김향기가 보호종료아동이자 베이비시터로 일하는 아영을, 류현경이 아영에게 아이를 맡기고 일 나가는 싱글맘 영채를 연기한다. 영화는 일보 후퇴하더라도 이보 전진하는 아영의 꿋꿋한 삶의 태도를 따라간다. 카메라도 내내 인물들을 따라 움직인다. 아영과 영채, 두 사람의 일렁이는 마음과 엇박자 걸음을 묵묵히 따라간다. 김보라 촬영감독에게 <아이>는 움직임이 중요한 영화였다. 일부를 제외하고 영화의 거의 모든 장면을 핸드헬드로 찍었다. “시나리오를 읽을 때부터 계속 움직여야 하는 영화라는 걸 알았다.”
김현탁 감독과 촬영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며 언급한 영화 중엔 자크 오디아르의 <러스트 앤 본>이 있었다. “한 호흡으로” 쭉 공간과 인물을 촬영하는 방식에서 레퍼런스가 된 작품이다. 이외에도 김보라 촬영감독은 어떤 느낌의 핸드헬드가 좋을지 고민하며 <내일을 위한 시간>이 인물의 감정과 표정
'아이' 김보라 촬영감독 - 영화에 필요한 올바른 시선을 고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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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사람 사는 모습은 어디든 다 고만고만하다. 덕분에 우리는 다른 이의 사연에서도 자신의 그림자를 발견하고,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다. 한편 각각의 사연은 직접 겪은 당사자나 해당 공동체가 아니면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고유한 속성이 있다. 문화적 경험이란 공간과 함께 자라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삶의 터전을 옮긴 이민자들의 경우는 어떨까. <미나리>는 아메리칸드림을 좇아 미국으로 건너간 한국 이민 1세대의 모습을 그린다. 이들이 낯선 땅에 정착해 뿌리내리기까지 겪었던 수많은 사연의 깊이를 생생하게 재현해내는 이 영화는 정이삭 감독의 자전적인 기억을 바탕으로 했다. 단순히 에피소드를 풀어내는 것을 넘어 개인적인 기억에서 보편적인 체험을 찾아내고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로 다듬어내는 솜씨가 놀랍기 그지없다.
그리하여 <미나리>는 1970년대 이민자의 기억에서 머무는 대신 지금 현재 미국 땅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민족의 역사를 되짚어
'미나리' 정이삭 감독 - <미나리>는 보편적인 모든 인간들을 위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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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람이처럼 일단 몸으로 부딪혔다. (웃음)” <더블패티>의 O.S.T <밤한울>을 부른 순간을 회상하며 신승호 배우가 미소 지었다. 망설임 없이 밀어붙이는 뚝심이 극중 우람과 똑 닮았다. 드라마 <열여덟의 순간> <좋아하면 울리는> <에이틴> 시리즈 등으로 얼굴을 알린 신승호는 <더블패티>에서 씨름 유망주인 우람을 연기한다. 우람은 믿고 따르던 선배를 잃고 방황하다 앵커 지망생 현지(배주현)와 가까워진 뒤 다시 마음을 잡고 씨름 훈련에 전력을 다하는 인물이다. 신승호는 10년 넘게 축구 선수로 활동한 경험을 토대로 우람에게 공감하고, 직접 흙을 밟고 상대 선수와 겨뤄가며 우람을 이해했다. 그가 “본능적으로 몸을 쓰고 연기하는 배우”임을 알아본 백승환 감독은 “이 배우가 아니면 안되겠다”는 마음으로 신승호에게 <더블패티>의 시나리오를 전달했다.
-전작에선 주로 거칠게 구는 일진을 연기했는데, <더블패
'더블패티' 신승호 - 뒤집기의 기술, 연기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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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시체들의 조선’이 펼쳐진다. 3월 22일 밤 10시에 방영 예정인 SBS 월화 드라마 <조선구마사: 괴력난신의 시대>(이하 <조선구마사>)는 조선에 생시(살아 있는 시체)들이 나타난다는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크리처 장르물이다. 하지만 단순한 좀비물은 아니다. 시간적 배경은 두 차례 왕자의 난으로 왕위에 오른 태종(감우성)의 시대다. <조선구마사>는 또한 심령물로서 서역에서 온 악령이 생시들을 홀리고 자유자재로 조종한다는 설정까지 더했다. 조선 최고의 자리에 올랐지만 여러모로 마음 편할 리 없는 태종과 후에 세종으로 성장할 운명적 인물 충녕대군(장동윤), 아버지에게 인정받길 원하지만 마음처럼 되지 않는 양녕대군(박성훈) 사이에 생시들이 들이닥치면서 몰입감은 한껏 고양된다.
드라마 <녹두꽃>과 <육룡이 나르샤>를 연출한 신경수 감독이 <조선구마사>의 연출을, 드라마 <철인왕후>와 영화 <천군
'조선구마사' 첫 공개… 배우 감우성, 장동윤, 박성훈과 신경수 감독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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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전야>가 코로나19의 여파로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설 연휴 극장가를 찾았다. 크리스마스부터 새해까지 일주일 남짓한 시간을 통과하며 사랑을 확인하는 네 커플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6년을 만난 연인과 결별하고 서울에서 가장 먼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떠난 진아(이연희)와 그곳의 와인 배달원 재헌(유연석), 전남편의 위협에 시달리는 재활 트레이너 효영(유인나)과 신변보호차 효영 곁을 맴도는 형사 지호(김강우), 장애가 있는 스노보드 선수 래환(유태오)과 든든한 연인인 원예사 오월(최수영), 결혼식을 준비 중인 여행사 대표 용찬(이동휘)과 중국인 신부 야오린(천두링), 마음씨 좋은 용찬의 누나 용미(염혜란)까지, 9명의 각기 다른 초상들이 저마다 싱숭생숭한 마음으로 새해를 기다린다.
<결혼전야>(2013)에 이어 ‘전야’ 시리즈를 확장하며 자신만의 계보를 탐색 중인 홍지영 감독은, 네 번째 영화 <새해전야>를 준비하며 <키친>(2009) 이
'새해전야' 홍지영 감독, 인물에게 최적화된 공간을 찾는 일이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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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아영(김향기)과 영채(류현경), 두 여성의 자립과 동행을 따스한 시선으로 그린 영화다. 보호종료아동이자 아동학과 졸업반인 아영과 젖도 덜 마른 상태에서 일 나가야 하는 싱글맘 영채. 그리고 영채가 일하는 술집의 사장 미자(염혜란)까지, 누군가에겐 당연한 것들이 누군가에겐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체화하며 꿋꿋하게 살아온 여성들이 주인공이다. 육아, 복지, 가족에 관한 큰 논의를 품고 있지만 무엇보다 마음을 건드리는 ‘사람’의 이야기가 담겼다는 점에 <아이>의 성취가 있다. 첫 영화 <아이>를 만든 김현탁 감독을 만나, 그가 이 영화에 얼마나 진심을 담으려 했는지 들었다.
-설을 앞둔 2월 10일 영화가 개봉했다. 설 연휴는 어떤 마음으로 보냈나.
=개봉 전까지도 후반작업하느라 설 연휴라는 생각도 못했다. 영화를 완성하자마자 덜컥 사람들에게 선보인 기분이다. 영화와 계속 밀착해 지냈고 거리두기하며 볼 수 있는 시간이 없었다. 아직은 영화를
'아이' 김현탁 감독 - 쉽지 않은 상황이라 해도 인물을 멈춰 세우기 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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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희 감독은 <늑대소년>의 철수처럼 여전히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이다. 10년 전 처음 봤을 때와 똑같다.” <승리호> 온라인 프레스 컨퍼런스에서 배우 송중기가 조성희 감독에 대해 한 말은 그의 10여년간 필모그래피를 관통하는 핵심이기도 하다. 어떤 사람들은 <남매의 집> <짐승의 끝>처럼 계보나 좌표를 가늠하기조차 어려운 독창적 디스토피아를 그렸던 그가 <늑대소년> 같은 멜로영화를 만들 줄 몰랐다고 말했다. 그런데 <탐정 홍길동: 사라진 마을>(이하 <탐정 홍길동>) 이후 확실히 그의 고유 인자는 재정의됐다.
조성희 감독의 마음속엔 변하지 않는 소년이 있다. <남매의 집>에서 괴한들로부터 여동생 순이를 지키지 못했던 오빠 철수는, 아직 세상과 소통하는 법은 모르지만 한 사람만을 바라보는 순정을 간직한 ‘늑대소년’의 이름으로 반복되고, 이곳의 순이(박보영)는 말랑한 순정 만화 속 소녀가 된다.
'승리호' 조성희 감독 - <승리호>는 ‘좋은 사람’이 무엇인지 찾아가는 여행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