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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빈은 <시체가 돌아왔다>의 감상 포인트를 한마디로 정리했다. “영화에 등장하는 ‘관’을 잘 따라가면 됩니다.” 우선호 감독의 <시체가 돌아왔다>는 각기 다른 목적으로 시체를 차지하기 위해 덤비는 인물들의 좌충우돌 소동극이다. 이성적이고 소심한 현철(이범수)과 반항기 가득한 행동파 소녀 동화(김옥빈)도 시체 때문에 뭉친다. 캐릭터만큼이나 실제로도 접점이 없어 보이는 두 배우가 한 작품에서 만났다. 뚝심있고 소신있게 배우로서의 길을 걸어온 이범수와 들쭉날쭉 예상을 뛰어넘으며 개성있는 행보를 보여준 김옥빈의 만남이라니. 당사자들조차 자신들이 함께 맞붙었을 때 불꽃이 어디로 어떻게 튈지 궁금해하는 눈치였다. <시체가 돌아왔다>를 앞에 두고 이범수, 김옥빈을 만났다.
[이범수, 김옥빈] 뚝심과 개성의 천생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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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윤현 감독은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었다. 누구나 쓰는 스마트폰이지만 <접속> <썸> 등의 작품을 통해 동시대의 신문물에 대한 관심을 드러내온 그에게는 범상치 않은 대상일지 모른다. <황진이>에 이어 두 번째로 만든 사극인 <가비>에 대한 그의 생각도 같은 선상에 놓여 있을 것이다. <접속>의 PC통신, <썸>의 핸드폰과 디지털카메라처럼 <황진이>의 황진이가 그 시대의 새로운 인물이었다면, <가비>가 묘사하는 조선 최초의 커피도 당대의 신문물이었을 것이다. 그가 구한말의 역사 속에서 찾아낸 동시대의 모습은 무엇이었는지 물었다.
-<황진이>를 끝내고 바로 <가비>를 준비했다. 준비기간이 꽤 길었다.
=나도 이렇게 오래 걸릴 줄 몰랐다. CJ와 개발을 시작한 게 2007년 겨울이었다. 1년에서 1년 반 정도 하면 되겠지 했는데, 3년이 지나도 시나리오를 쓰고 있더라.
-어
[장윤현] “우리는 고종의 비전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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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계의 블루칩이 이제 스크린까지 점령했다.
=대학에서 연극을 전공했지만 영화도 무척 하고 싶었다. 사실은 영화를 하고 싶어서 연기를 시작했는데 뮤지컬에 빠져버렸다. 뮤지컬에서 연극으로, 다시 드라마로, 이제 영화까지 하게 됐지만 어느 장소에서 연기를 하든 ‘배우는 배우다’란 생각을 하며 작품에 임하고 있다. 처음 연극을 할 때도 “뮤지컬 배우 조정석이 연극한대” 하면서 관심을 가져주었다. 근데 난 딱히 연극이 다른 분야라고 생각하지 않고 그저 나의 다음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많은 분들이 이제 무대에는 안 서는 거냐고 걱정하는데 난 무대를 놓고 싶지 않다.
-<건축학개론>의 납뜩이로 분해 제대로 감초 역할을 해냈다. 첫사랑의 풋풋함과 아련함이 물씬 풍기는 <건축학개론>에서 웃음을 담당하고 있는데, 조연이어도 부담감이 있었겠다.
=이용주 감독님을 굳게 믿었다. 새내기의 마음으로 감독님 디렉팅 열심히 따르고 제훈이와 얘기도 나누고 하면서 신을 만들어갔다. 그
[who are you] 조정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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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건축가도 있다. 마을에 목욕탕이 필요하다는 주민들의 말에 아예 마을회관을 목욕탕으로 만들어버린 사람. 시공 자리에 서 있던 나무를 보호하려고 그 나무를 감싼 건물을 만드는 사람.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봉하마을 사저와 ‘기적의 도서관’ 설계로 유명한 고 정기용 건축가다. 그는 “건축은 근사한 형태로 만드는 직업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을 섬세하게 조직하는 일”이라고 믿었다. 말로써 사람들과 소통하고, 자연을 담아 건물을 지어올렸던 그는 한국 건축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말과 흙의 건축가였다. 그는 지금 세상에 없지만, <고양이를 부탁해> <태풍태양>으로 ‘공간의 영화’를 만들어왔던 정재은 감독이 그의 마지막 나날들을 동행하며 기록한 <말하는 건축가>를 만들었다. 정기용 건축가와의 만남은 장편영화 프로젝트에서 벗어나 다큐멘터리에서 활력을 찾길 원했던 정재은 감독에게도 큰 전환점이 됐다.
-3월11일이 정기용 건축가 사망 1주기다. <
[정재은] “이 영화를 통해 소통하는 법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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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차>의 종근은 요상한 캐릭터다. 전직 형사 종근에게 주어진 임무는 사촌동생 문호(이선균)를 도와 선영(김민희)의 정체를 밝히는 것인데, 문호에게 바통을 넘겨주고 빠져도 될 시점에서도 자꾸 등장한다. 눈여겨봐야 할 점은 특별한 설정 없이도, 별다른 대사 없이도, 종근의 심리 변화가 단계별로 고스란히 관객에게 전해진다는 거다. 이건 캐릭터의 힘이기도 하지만, 종근을 뒤집어쓴 배우 조성하의 공이기도 하다. 평범한 듯 보이는 마스크는 한때 조성하에게 약점이었지만, 지금 조성하에겐 무엇이든 그려넣을 수 있는 캔버스 같다. 감정을 내면에서 뿜어올리되, 바깥으로 한꺼번에 분사하지 않고 계산해서 터트릴 줄 아는, 컨트롤 감각을 지닌 조성하가 <황해>의 버스회사 사장 태원 이후 <화차>의 종근으로 돌아왔다.
-눈이 충혈된 것 같다.
=(매니저를 보며) 안약 넣자. (웃음) 충혈이 잦은 편이다. 드라마(<한반도>) 촬영 때문에 잠을 못 자서 더 그런
[조성하] 놀 수 있는 판이 있어 행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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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이하 <하이킥3>) 17회 일명 ‘광견병 에피소드’. 눈꼬리를 축 늘어뜨리고, 이웃집 굶주린 개를 안타깝게 지켜보던 노량진 지나고등학교 박하선 선생은 끝내 측은지심을 이기지 못해 사료를 사들고 월담한다. 제법 스포츠맨스러운 동작이 허리를 졸라맨 빨간 코트에 뾰족구두 차림과 부조화하다. “왜 이렇게 짖어, 이 좋은 날…” 하며 다소곳이 개를 달래던 이 여자, 흥분한 개에게 한입 물려 보건소에서 광견병 가능성을 경고받자 대뜸 입매가 찌그러진다. 그날 밤 옆집 윤 선생(윤지석)은 포장마차에서 꽥꽥 소리를 지르고 있는 그녀를 만난다. “비련의 여주인공이면 병이라도 그럴듯하든지! 광견병이 뭐예요, 광견병이!”
박하선은 지켜보고 있자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겠는 배우다. 현재 20대 여자 연기자 가운데 이만큼 표정이 풍부한 이가 있나 싶다. 울컥하면 윗입술이 사정없이 말려 올라가고 환하게 웃을 때는 꿀단지를 앞에 둔 새끼곰마냥 혀까지 나온다.
[박하선] 그녀의 표정에 홀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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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미혼에 서른다섯살인데 <홈 스위트 홈>에서 기러기 아빠로 나온다.
=<풍산개>의 전재홍 감독님 소개로 문시현 감독님과 만나게 됐다. 그런데 막상 내용을 들어보니 내가 맡기엔 어려운 역할 같더라. 한편으론 가정을 지키고 싶으면서 다른 한편으론 남자로서 자존심을 구기기 싫은 태수의 심정을 내가 잘 표현할 수 있을지 걱정도 됐고. 그래서 아는 선배님들을 소개해드릴까 했는데 직접 맡아줬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믿어주는 마음이 감사해서 당연히 맡아야겠다고 생각했다.
-700만원으로 10회차 만에 만든 초저예산영화다 보니 힘든 점도 많았을 것 같다.
=항상 시간에 쫓겼다. 경찰서 장면도 한나절 안에 못 끝내면 보충촬영이 불가능했고, 감독님이 양산에 계신 친척 분께 빌린 아파트에서 찍어야 하는 분량도 이틀 안에 무조건 끝내야 했다. 자연히 다른 배우들과 호흡을 맞출 시간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모자란 부분이 많았을 텐데도 감독님께서 워낙 결단력있게 진행해서 무사히
[who are you] 김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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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상자료원은 2008년 상암동 신청사 개관 이래 알찬 성장을 계속해오고 있다. 전임 조선희 원장 시절인 2007년 9월 국내 최초로 양주남의 <미몽>(1936) 등 7편의 영화가 동시에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뒤, 국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국 극영화인 안종화의 <청춘의 십자로>(1934)가 문화재청의 심의 및 실사를 거쳐 지난 2월 등록문화재(제488호)로 지정됐다. 그리고 시네마테크KOFA 관객 수는 지난 4년간 지속적으로 증가했는데 2009년 9월 이병훈 자료원장이 취임한 이듬해인 2010년에는 거의 3배 가까운 관객 증가율을 보였다. 한편, 지난 2월17일에는 올해의 주요 사업계획을 발표하며 영상자료원의 숙원사업 중 하나였던 제2보존센터 건립을 발표했다. 지난 몇년간 이어져온 이런 의미있는 성장 뒤에는 많은 이들이 이병훈 원장의 묵묵한 추진력이 큰 바탕이 됐다고들 얘기한다. 공식임기 3년의 중간평가를 겸하여 자료원장으로서 2년여의 시간을 보낸 그를 만났
[이병훈] “영화도 문화재라는 인식을 확산시켜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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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디오에 나타난 김소연은 마치 신인배우로 돌아간 모습이었다. “<체인지> 이후 처음 와봐요”라고 말하는 목소리에서 여유보다 설렘이 느껴졌다. <체인지>라면 벌써 15년 전이다. 번개 맞아 남녀 고교생의 몸이 뒤바뀌는, 드라마 <시크릿 가든>의 원류 격인 그 영화를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사이 서극의 <칠검>에 고려시대 여인으로 출연한 적도 있지만 제대로 된 연기를 보여주긴 힘들었다. 비중도 적었거니와 2주 동안 자신이 등장하는 부분의 번역본만 받아 소화해야 했던 역할이라 숲이 아닌 나무만 볼 수밖에 없었던 작업이었다.
열네살에 아역배우로 데뷔해 서른셋의 성숙한 여배우로 자리잡기까지 그녀의 안마당은 드라마였다. <순풍 산부인과>(1998)에서 오지명의 셋째 딸로 나와 나름 똑똑한 의사지만 엉뚱한 매력을 발산했던 것을 시작으로 <이브의 모든 것>(2000년)에서는 차가운 인상을 백분 활용해 최고가 아니면
[김소연] TV에서 스크린으로, 연기를 덜어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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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디오에 들어서자마자 커피를 찾는다. 자리에 앉아선 제일 먼저 담배를 꺼내 문다. 얘기할 땐 상대를 뚫어져라 쳐다본다. 직설화법을 즐겨 쓴다. 머쓱한 얘기를 할 땐 숨겨둔 주름을 만면에 쓰윽 드리운다. “제가 인상이 세서 무섭죠?” 슈트가 잘 어울린다는 말에 돌아온 대답이 이렇다.
주진모는 자신을 둘러싼 주변 상황을 잘 관찰하는 사람이다. 레이더에 어떤 징후가 감지되면 즉각 반응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자신의 태도를 결정한다. 일차적으론 방어기제가 동원되고, 이거다 싶으면 모험심과 책임감으로 내달린다. <가비>의 일리치가 되기로 결심할 때도 그랬다. 주진모는 <가비>를 통해 “진짜 큰 공부를 했다”. 장윤현 감독에게서 일리치라는 “활어와도 같은 캐릭터”를 받아든 그는 주방을 총책임지는 요리사가 된 심정으로 비늘부터 손수 다듬기 시작했다. “시나리오의 48%는 내가 썼다”는 말은, 펜을 들고 책을 쓰지 않았다뿐이지 사실이었다. 일리치는 러시아에서 커피와 금괴
[주진모] 자존심보다 귀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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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윤현 감독의 <가비>는 일본의 고종암살 작전 즉 ‘가비 작전’을 둘러싼 음모와 암투를 그린다. 주진모와 김소연은 각각 비운의 스파이 일리치와 따냐를 연기한다. 주진모는 <가비>를 통해 텅 빈 숲에 빼곡히 나무를 채우는 법을 배웠고, 김소연은 버림으로써 더 많은 것을 얻는 스크린 연기에 대해 공부했다. 그런데 소파에 앉아 있는 법부터 배우로서 다져온 경력까지 달라도 너무 다른 두 배우에게서 공통점을 발견했으니 그건 ‘맡겨만 주면 정말 잘할 수 있는데’의 자세였다. 한정된 이미지 때문에 다양한 시나리오가 들어오지 않는다고 털어놓은 두 배우는 간절하게 새 출발을 원하고 있었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까지 주진모, 김소연이라는 배우의 빙산의 일각만 보고 있었던 게 아닐까.
[김소연, 주진모] 배우는 프로페셔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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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력과 김민희의 상관관계는 늘 결속력이 약했다. 스타일 아이콘으로 확립된 스타성이 항상 김민희를 규정하는 일차적 재료가 되었다. 그녀를 수식할 때 연기는 ‘잘 맞는 옷’이 아니라, 미처 생각지 않았던 특별한 차림이었다. 데뷔 13년차, 그 진입장벽 너머의 김민희의 연기는 매 순간 아름다웠다. <화차>의 강선영은 그간의 배우 김민희가 쌓아온 능력을 모두 입증해낸다. 평범한 인간이 괴물이 되기까지의 여정. 베일을 벗기는 과정에서 김민희는 그 다양한 범주의 얼굴을, 모습을 빠뜨리지 않고 표현해낸다. 단언컨대 <화차>는 배우 김민희가 폭발한 지점이다. 그러니 이제 우린 김민희란 배우로 인해 한국영화가 무엇을 얻었는지에 관해 생각해볼 차례다.
-시사 반응이 뜨겁다. 같이 출연한 조성하씨가 관객 300만명이 넘으면 셔플댄스 추겠다는 공약을 했던데.
=그러게, 난 뭘 해야 할까. 옆에서 박수라도 쳐야겠다. (웃음)
-강선영은 배우라면 정말 욕심나는, 놓쳐선 안될
[김민희] 연기라는 잘 맞는 옷을 입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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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여덟, 열아홉>의 도미는 쾌활하고 애교도 많다. 실제 본인의 모습은 어떤가.
=그런 모습이 없는 건 아닌데 겉으로 보면 도미랑 많이 다르다. 내성적이고 낯도 많이 가린다. 도미의 모습이 나오려면 10년쯤 같이 지내야 한다.
-도미는 호야(유연석)를 좋아하지만 호야의 마음은 서야(백진희)에게 가 있다. 연기하면서 질투심이나 서운함을 느끼진 않았나.
=연석 오빠가 진희는 여동생처럼 대하고 난 남동생처럼 대했다. 나도 여동생처럼 아껴줬으면 좋겠는데 남동생처럼 너무 막 대하니까 ‘난 왜?’ 그런 마음은 들더라. (웃음) 그런데 그러면서 쉽게 친해진 것 같다.
-시트콤 <레인보우 로망스>로 데뷔했다.
=그전에 잡지 모델로 활동했다. 길거리 캐스팅을 계기로 잡지 <쎄씨>의 전속모델 콘테스트에 나갔고, 합격했다. 소속사 없이 혼자 일하다 보니 연예기획사에서 전화가 자주 걸려왔다. 연기에 뜻이 없어 거절했는데 어느 말주변이 좋은 여자 대표님을 만나 홀려
[who are you] 엄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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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와 연애의 감정에 관한 다양한 곡절이 담긴 <러브픽션>을 보고 나면 누구나 이렇게 묻게 된다. 감독의 실제 연애 경험담은 얼마나 반영됐을까. “멜로영화나 로맨스영화를 찍은 감독들이라면 자신이 연애하며 느꼈던 좋았던 것과 나빴던 것 혹은 반성해야 할 것들까지 녹여넣으려고 하긴 할 것이다. 나도 그랬다. 하지만 <러브픽션>은 나의 실제 연애담과 그다지 상관이 없다.” 전계수 감독의 말이다. 듣고 보니 좀 이상하다. 시사 직후 기자회견장에서 했던 “이건 전적으로 나의 연애담이고 과거 여자친구들을 울린 반성의 의미에서 제작했다”는 말과는 상반되지 않은가. 전계수 감독은 그 표현이 오해의 소지가 크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고 한다. 속사정까지 자세히 밝히기는 어려워도 하여간에 그 말 때문에 요즘 많이 곤혹스럽다고도 했다. 이제라도 제대로 정정되기를 바라는 눈치다. 그러니 바꿔주자. <러브픽션>은 감독 전계수의 실제 연애담이 아니라 감독 전계수의 연애에 관한
[전계수] “연애도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