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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달러를 벌고 싶어서 집에 돌아가지 못한 어린 병사가 말한다. “50달러면 소가 한 마리인데… 어머니께 소 한 마리 사드리고 싶었습니다.” 카메라 한대, 딸아이를 데리고 창경궁에 가겠다는 소망, 소 한 마리를 살 수 있는 돈. <알포인트>는 그처럼 아주 작은 욕심을 가지고 있었던 젊은 군인들이 수십년 쌓인 원한에 먹히고 마는 서글픈 공포영화다. 가난하고 못 배운 그들은 자신들이 들어간 땅에 누가 피를 뿌렸는지도 모르지만, 그저 집에 가고 싶을 뿐이지만, 피를 먹고 자란 밀림은 죽은 영혼까지도 놓아주지 않을 것이다.
전쟁이 막바지에 이른 1972년 베트남, 여섯달 전에 실종된 병사들이 도움을 청하는 무전을 보낸다. 유일하게 살아남아 본대로 돌아온 병사는 자기 소대원들이 모두 죽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들이 마지막 흔적을 남긴 장소는 오래전 프랑스 점령군이 몰살당했던 로미오 포인트. 최태인 중위(감우성)와 여덟명의 소대원들은 알포인트라고도 불리는 그곳으로 들어가 일주일 기
죽은 영혼조차 놓아주지 않는 죽음의 전쟁, <알 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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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3국의 프로젝트 <쓰리>가 기대만큼 큰 반향이나 흥행성적을 올리지 못하고 물러간 지금, 후속 프로젝트인 <쓰리, 몬스터>가 도착했다. 전작이 ‘호러’라는 큰 틀에 대한 합의를 바탕으로 각국 감독들에게 자율권을 넘겨준 것이었다면, 이번에는 여기에 ‘귀신 없는 호러’라는 다소 좁혀진 공통과제가 대신 제출되었다. 룰은 같고, 참여 국가가 하나 바뀌었다. 그렇다면 이번엔 좀 달라질 수 있을까?적어도 국내에 관한 한, 이번에는 그 모든 키를 <올드보이>의 영광을 안은 박찬욱 감독이 쥐고 있다. 그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기억할 만한 인용구를 남겼는데 그것은 “등장인물들에게는 고통을, 투자자들에게는 기쁨을”이다. 이를 모를 리 없는 <쓰리, 몬스터>는 라인업에 누가 들어가고 빠지는가를 세심하게 단속한 흔적이 보인다.최근에 개봉한 <몬스터>에서 보듯, 한 인간이 괴물로 변하는 것은 그 조건이 사회의 구조적 압력이든 갑작스레 찾아온 충격이
우리 안에 웅크린 몬스터의 소환, <쓰리, 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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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름의 바다가 조용한 까닭은, 그 청년의 귀가 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시게루(마키 구로코)는 청소용역 회사에서 일한다. 쓰레기를 수거하던 어느 여름날 그는 부러지고 버려진 서핑보드에 마음을 뺏긴다. 어설프게 보드를 수리한 시게루는 그날부터 홀린 듯 해변으로 나가 무턱대고 서핑을 연습한다. 그는 느리지만 결코 멈추지 않는다. 똑같은 청각장애를 지닌 여자친구 다카코는 한결같이 그의 곁을 지킨다. 시게루의 열의는 그를 놀리던 동네 젊은이들까지 서핑을 기웃거리게 만들고 왕년에 훌륭한 선수였던 서핑숍 주인도 감복시킨다.
언뜻 약골 소년이 수련 끝에 경기에서 우승하고 사랑도 얻는 캘리포니아 청춘영화 줄거리와 비슷하게 들리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기타노 다케시의 세 번째 영화 <그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는 5년 뒤에 만들어진 <키즈 리턴>과 달리 미래를 내다보지 않는다. 시게루는 젊은 날의 경험을 발판삼아 장차 괜찮은 어른이 되어보겠다는 ‘아이
담담하고 정적인 서핑영화, <그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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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훗날, 네크로몬거라는 악의 종족이 있단다. 이들의 목적은 우주의 모든 행성을 돌아다니며 포교활동을 벌이는 것. 다스 베이더처럼, 그들의 종교를 받아들이지 않는 행성은 그야말로 잔혹하게 씨를 말려버렸다 한다. 그리고 헬리온이라는 행성이 있었다. 고도의 문명(그리고 페르시아 스타일의 패션감각)을 자랑하는 이 ‘빛의 행성’은 네크로몬거들의 침략을 받고 존립의 위기에 빠졌다. 예언에 따르자면, 당연히 구원자가 나타날 것이니라. 리딕이라는 이름을 가진 죄수(빈 디젤)는 전사 퓨리언족(族)의 마지막 생존자일지니. 과연 은하계의 운명은 이 단단한 근육질 남자의 두손에 달려 있는 것일까. <스타워즈>를 흉내내듯, 낮게 드리워진 마녀 에레온(주디 덴치)의 목소리로 시작하는 <리딕-헬리온 최후의 빛>은 오랜만에 보는 거대한 우주 활극(스페이스 오페라)의 세계다.
데이비드 토이 감독이 15살짜리 상상력으로 빚어낸 이 혼성 모방의 우주에서 리딕은 “우주는 언젠가는 끝이 나게 되
키치적 향취의 액션 활극, <리딕-헬리온 최후의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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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의 다이아몬드를 훔쳐 도주하던 석태(권오중)는 교통사고로 인해 평화로운 산골 시실리로 흘러든다. 그러나 곧 예기치 않은 사고로 질식사하고, 그의 콧구멍에서 다이아몬드를 발견한 마을 주민들은 석태를 벽에 묻는다. 한편, 양이(임창정)는 휴대폰 위치추적 서비스로 석태의 행방을 찾아 ‘동생들’을 이끌고 시실리에 온다. 이제 이 조용한 마을은 ‘석태’, 다른 말로 ‘다이아몬드’를 들키지 않으려는 마을 주민들과 석태를 기어코 찾고야 말겠다는 양이파의 격전지로 변한다. 영화는 마을 주민들과 양이파를 교차편집함으로써 공포와 유머, 긴장과 이완 사이를 우아하게 오간다. 화면분할 또한 욕망의 이상동몽, 또는 동상이몽을 통해 웃음을 유발하는 효과적인 장치로 등장한다.
그런데 이곳에 분노는커녕 한도 모르는 어리버리한 처녀귀신 송이(임은경)가 끼어들면서 이야기는 혼미해진다. 영화는 후반부, ‘시실리’로부터 다시 2km 떨어진 ‘천사의 집’으로 무대를 옮긴다(오프닝에서 언뜻 보여지는 표지판에는 ‘시실
스테레오 타입의 깜찍하고 능청스러운 전복, <시실리 2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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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G와 와이어를 거부하는’ 리얼 액션을 주창했던 모 영화에는 확실히 선견지명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적어도 한국영화계에 있어 <돌려차기>나 <바람의 파이터> 그리고 <역도산>으로 이어지는 라인업들을 들여다보면 일체의 다른 도구 없이 육체와 육체가 직접 맞부딪치는 액션, 그 짜릿한 날것의 느낌에 당분간 집중하고 있는 듯하다. 이 중에서도 극진공수도라는 실전무술을 창시했던 무도인 최배달의 삶을 다루고 있는 <바람의 파이터>는 몇분을 채 넘지 않는 가운데 ‘일격필살의 한방’으로 승부를 가려야 하는 특유의 대결 구조 속에서 최대한 리얼한 액션의 쾌감을 살리기 위해 고심한 흔적이 역력하다. 그러면서 동시에 온갖 수모와 차별을 겪으면서도 일본 무도계를 제패하고 한국인의 민족적 자부심을 잊지 않았던 최배달이라는, 드라마틱한 영웅의 인간적 면모 역시도 놓치고 싶어하지 않는다.
일단 영화는 익숙한 블록버스터의 외형적 특성에 매우 충실하다. 적절한 고뇌와
짜릿한 액션의 영웅 신화, <바람의 파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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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가 ‘목장 위의 집’(Home on the Range)인 디즈니 애니메이션 <카우 삼총사>는, 목장 위의 집을 지키고자 의기투합한 젖소 세 마리의 짧은 모험기다. ‘천국 목장’이라는 순박한 이름의 작은 목장에 젖소와 염소, 돼지와 새끼돼지들, 닭과 병아리 등 사랑스러운 가축들이 그들을 가족처럼 여기는 할머니 펄(캐롤 쿡)과 함께 말 그대로 낙원처럼 살고 있다. 그러나 은행빚 750달러 때문에 가축과 목장은 모조리 차압당할 위기에 놓인다. 이를 막기 위해 ‘천국 목장’에 온 지 얼마 안 된 씩씩한 젖소 매기(로잔느 바)를 비롯해 영국 출신을 뽐내는 우아한 젖소 캘러웨이(주디 덴치)와 노래를 사랑하는 낙천적인 음치 젖소 그레이스(제니퍼 틸리)는 정확히 750달러의 현상금이 걸린 전설의 소도둑 앨러미다 슬림(랜디 퀘이드)을 잡으러 나선다. 그들의 한켠엔, 현상금을 잡으러 다니는 남자 리코와 그에게 선택받고 싶어 갖은 애를 쓰는 꿈 많은 말 벅(쿠바 구딩 주니어)이 있다. &
괴짜 감성 젖소 세 마리의 모험기, <카우 삼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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끈적한 도시의 밤 풍경 사이로 카섹스를 하는 남녀가 있다. 그들은 가난하고 어수룩한 노총각 아사오(단간)의 상상 속에 있다. 아사오가 상상을 통해 여자 꾀는 데 차가 제일이라는 깨달음에 이른 순간, 제대로 된 제목이 뜬다. 모-두-하-고-있-습-니-까? 기타노 다케시의 다섯 번째 영화 <모두 하고 있습니까?>는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일견 잘못 놓여진 작품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코미디의 '비트'와 영화의 '기타노'를 철저히 분리해오던 다케시는 기타노 스타일의 집대성작인 <소나티네> 이후 일본의 사건과 노래, 영화들을 패러디한 블랙코미디를 만들었다. “일본 코미디계를 평정한 ‘다케시’로서 지금까지 만들어진 모든 코미디영화를 단번에 부숴버리는 영화를 만들겠다”는 거창한 의도로 시작된 이 영화는 결과적으로 쑥스러운 실패작이자, 기념비적인 컬트가 되었다.
영화는 섹스를 지상목표로 하여 고군분투를 벌이는 아사오의 행적을 뒤쫓는다. 그는 할아버지의 장기를 매매해서 우여곡절
다케시의 퉁명스럽고 능청스러운 블랙코미디, <모두 하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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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점거하러 집을 나서는 로마의 16살 고교생 실비오(실비오 무치노)가 뜯어말리는 아버지에게 따진다. “아버지도 싸웠잖아요?” 왕년의 운동권이 응수한다. “우리가 싸운 건 진짜 문제들이었다.” 잠시 뒤 아들은 스킨헤드족을 때리다가 아버지에게 들킨다. “아버지도 파시스트를 때렸잖아요?” “우리가 팬 건 진짜 파시스트였다.” 급기야 아들은 외친다. “그래요! 역사는 아버지들만 바꾼다 이거죠?” 어느 모로 보나 번듯한 적(敵)을 가졌던 68세대 부모를 질투하는 실비오와 친구들에게, 캠퍼스 점거는 운동회 같은 연례행사이자 혁명의 시뮬레이션이다. 그러나 기실 “획일화 사유화 결사 반대”라는 올해의 슬로건보다 밤잠을 설치게 하는 주제는, 거추장스런 동정을 어떻게 떼어버리고 근사한 연애를 하느냐다. 농성의 혼란을 틈타 실비오는 친구 마르티노의 여자 발렌티나(줄리아 카르미냐니)에게 키스하고 그 소문은 학교를 한 바퀴 돌아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이에 분노한 청춘은 배신당한 마르티노만이 아니었으니
천진한 로맨티시즘으로 가득찬 청춘예찬, <나에게 유일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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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에는 심지어 아이들과 놀아주는 과외 아르바이트가 있다 한다. 무작정 아이들을 내놓기엔 무서운 세상, 직접 어울릴 여력은 없는 한국 부모들의 이런 처방을 뭐라 할 순 없다. 하지만 부모가 쳐놓은 울타리를 훌쩍 뛰어넘어 세상을 휘젓고 싶은 아이들의 욕구가 잠재워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오존층 파괴로 대륙이 모조리 물에 잠겨버린 먼 미래. 망망대해 한가운데 외로이 솟구쳐 있는 촛대마을의 장난꾸러기 망치의 꿈도 요즘 아이들처럼 단 한번 세상을 ‘맛보는’ 것이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망치의 소원을 좀처럼 들어주지 않는다. 망치로선 잠자리와 자전거를 합쳐놓은 모양의 소형 비행기 날틀을 타고 아침 저녁으로 동네 한 바퀴 일주하며 반항하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그런 망치에게 기회가 온다. 제미우스국의 공주 포플러가 반란자인 뭉크의 부하들에게 쫓겨 촛대마을에 불시착하는 일이 벌어진 것. 포플러는 지원 요청을 위해 아크라국에 데려다달라고 간청하지만 인정 많기로 소문난 할아버지는 어찌된 일인지 매정
셀애니메이션으로 전하는 따뜻한 온기, <망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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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가 둘 사이에서 고민한다. 일반적인 영화라면, 그 둘은 매력적인 두 여자 혹은 두 사람일 것이다. 중의적인 제목이 주는 혼란을 장난스럽게 부각시킨 영화 <신부수업>은, 이제 그런 삼각관계는 지겹다고 말할 참이다. 영화의 주인공인 신학생 규식(권상우)은 ‘못 말리는 자매님’ 봉희(하지원)와 그가 절대로 배신하지 않을 것 같았던 하느님 사이에서 갈등한다. ‘사람’이 아닌 그 둘 사이의 선택이라면 새로운 로맨틱코미디를 기대할만하다.
모범신학생 규식과 ‘러시아 여신도의 포교’에 정신없는 신학생 선달(김인권), 두 사람의 안 어울리는 짝패에서 <신부수업>은 시작한다. 영화는 선달의 실수로 얼떨결에 영성강화훈련을 받게된 고지식한 규식이 원장신부의 천방지축 조카 봉희를 세례받게 만드는 미션을 부여받으면서 본격적인 갈등구도에 들어선다. 전반부의 목표가 이 갈등을 코믹하게 그리는 것이라면, 후반부는 봉희로부터 하느님을 대신할 만한 매력을 발견하는 규식의 고군분투를 절절
하느님과 여자, 그 사이에서 이뤄지는 길찾기, <신부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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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러 영화 팬들에게는 실망스러운 여름이다. 호러 장르에 대한 기본도 없는 영화들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럴수록 사람들은 안병기의 <분신사바>에 혹시나 하는 기대를 걸었다. 안병기는 장르에 대한 애정으로 한우물만 열심히 파온 감독이고, 전작 <가위>와 <폰>은 서툴지라도 가능성만은 열어두고 있었던 작품들이었다.
영화는 왕따를 당하던 전학생 유진(이세은)이 분신사바 주문으로 원혼을 불러내면서 시작한다. 그를 괴롭히던 학생들은 비닐봉지를 머리에 뒤집어쓴 채 불에 타서 죽어가는데, 시작 부분은 시각적으로 꽤나 강렬하고 프로덕션디자인에도 공들인 흔적이 역력하다. 그러나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영화의 리듬은 조금씩 늘어진다.
인물들은 설명하고 또 설명하느라 화면이 스스로 이야기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때문에 30년 전 벌어졌던 비극의 진실에 대한 궁금증과 두려움이 관객의 잘 전달되지 않는다. 전작들의 약점이었던 ‘설득력 있는 내러티브의 부재’를 극복해보고
고립된 마을의 집단적 공포, <분신사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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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불가능의 상처를 가지고 농락하면 용서받지 못한다. 20여년 전 방영된 TV형사물의 납량특집 <얼굴없는 미녀>가 남겼던 ‘교훈’이다. 정신과 의사에게 최면요법은 환자의 깊은 내면과 만나 고통의 근원을 식별하고 제거하려는 수술도구일 것이다. 그런데 의사는 그걸 욕정의 해소 수단으로 삼았다. 최면암시를 걸어두고 자신이 원하면 언제든 아름다운 환자를 오게 만들어 몸을 탐했다. 여느 때처럼 불시에 신호를 받은 환자는 육신의 주인에게 향하다 사고로 목숨을 잃는다. 환자는 혼의 몸이 되어, 원귀가 되어, 명령을 이행하려고 한다. 이제 의사는 자신이 만들어낸 원귀에게 쫓겨야 하는 끔찍스런 처지에 빠진다.
김인식 감독의 <얼굴없는 미녀>는 이런 사필귀정, 일벌백계의 호러 리메이크가 아니다. 환자 지수(김혜수)는 물론이고 의사 석원(김태우)에게 감당하지 못할 상처와 사연을 비슷하게 안겨주고 절대고독에 빠진 그들끼리 또 한번 물고 물어뜯게 만든다. 석원은 가해자이기에 앞서 슬
매혹적인 이미지들로 엮은 파괴적 사랑의 순간, <얼굴없는 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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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를 타고 황금빛 들녘을 누비는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풍경이 펼쳐진다고 해서 전부 스티븐 스필버그의 예전 영화들과 똑같이 진행되는 건 아니다. 아이들의 삶이 그토록 풍요로운 순진함과 행복으로만 충만한 것도 아니다. 아이들의 삶이라고 해서 언제나 용서받고 감싸지고 그들의 순수함이 보존되어야 하는 해피엔딩으로 끝날 수만은 없다. <지중해>와 <너바나>로 잘 알려진 가브리엘 살바토레의 신작 <아임 낫 스케어드>는 자신을 둘러싼 모든 아름다움의 견고함을 확신하고 있던 10살짜리 소년이 순수함을 상실하기까지, 그 직전의 풍경을 가슴 아프게 그려보인다. 순수로부터 타락으로의 여정, 성장한다는 것의 쓰라림 혹은 꿈과 환상이 현실로 드러났을 때의 충격과 경악.
1970년대 남부 이탈리아의 조그만 시골 마을, 귀여운 여동생과 아름다운 어머니, 터프한 트럭 운전사 아버지와 함께 사는 소년 미카엘은 어느 날 버려진 집의 지하 굴에 갇힌 이상한 존재를 발견한다. 눈도
순수로부터 타락으로의 여정, <아임 낫 스케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