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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감독이 다르면 영화도 다르다. 같은 무협 블록버스터라도 서극(<칠검> <적인걸>)과 진가신(<명장>)이 만들면 이인항(<삼국지: 용의 부활>)과 진가상(<화피>)의 영화와 다르듯 맥조휘, 장문강의 <삼국지: 명장 관우>도 그러하다. <무간도> 시리즈를 함께 쓰고 <절은풍운>으로 흥행감독 반열에 오른 그들 역시 서극과 진가신의 뒤에 놓일 이름들이다. 관우의 일대기 중 가장 지엽적인 시기를 다루면서도 그들 특유의 색깔을 입혀놓았다.
하비성 전투 뒤 조조(장원)의 휘하에 들어가게 된 관우(견자단)는 타고난 성품으로 조조의 군에서조차 존경의 대상이 된다. 그러다 주군 유비의 생사 소식을 확인하고 떠나려 하자, 조조는 적토마를 선물하며 자신의 휘하에 두려 한다. 하지만 관우의 결심은 변하지 않고, 결국 하후돈의 장수 진기를 비롯해 조조의 신임을 얻는 장군들이 버티는 5개의 관문을 통과하려 한다.
여타의 '삼국지' 영화 중에서 가장 개성이 넘치다 <삼국지: 명장 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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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패니메이션의 세계에서는 이름만 들어도 무작정 신뢰하게 되는 제작사들이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이끄는 스튜디오 지브리, 건담의 선라이즈, 안노 히데아키의 가이낙스, 디지털 애니메이션 부문의 선두 곤조 스튜디오, 그리고 오시이 마모루가 이끄는 프로덕션 I.G다. 뭐가 하나 빠진 것 같다고? 맞다. 매드하우스가 빠졌다. <쥬베이 인풍첩>(1993), <메모리즈 에피소드2 최취병기>(1996), <퍼펙트 블루>(1998), <파프리카>(2006), <썸머워즈>(2009) 등 매드하우스의 극장용 애니메이션은 가히 작가주의적이라 할 만한 예술성과 대중적인 장르 취향을 기막히게 버무리는 솜씨로 유명하다. 특히 고(故) 곤 사토시, 호소다 마모루라는 두 대안적 재패니메이션의 거장은 매드하우스와 손잡고 작품 세계를 확장해왔다.
<레드라인>은 매드하우스가 지난 2010년에 내놓은 SF-레이싱-로맨스다. 무대는 반중력 엔진을 이용한
스크린에 다이너마이트를 던지다 <레드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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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시작되면 암전된 화면에 자막이 뜬다. “1980년 5월18일 전두환과 신군부 세력은 정권 찬탈을 위해 계엄령을 선포하고 최정예 부대인 공수부대를 광주에 파견했다. 계엄군의 만행에 분노한 80만 광주시민들은 총을 들고 저항했고 아름다운 자치 공동체를 만들어갔다. 10일간의 항쟁은 모든 광주시민에게 아픈 기억과 상처를 남겼다. 억울한 누명이 벗겨지기까지는 너무도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30년의 세월이 흘렀다. 5·18에 관한 기록은 정교해졌지만 기록에서 제외된 사람들은 자신의 기억을 가슴에 묻고 살아가고 있다.”
<오월愛>는 그때 그 시간의 주역이었으나 지금은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찾아가서 만난 다음 그들의 말을 경청한다. 죽음을 각오하고 저항했던 젊거나 어렸던 청년과 여고생들, 그들을 잃은 부모들, 목회자 혹은 군인. 그들은 30년의 나이를 먹었고 지금은 중국집을 운영하고 화원을 가꾸고 날품팔이를 한다. 다양한 일을 하며 다양하게 살아간다. 영화는
지금을 살아가는 그들에 대한 존중심이 느껴지는 <오월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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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적하(고천락)는 퇴마사가 되기 위한 수행을 결심하고 흑산촌으로 떠난다. 그곳의 난약사에서 오래된 요괴들과 사투를 벌이던 중 천년 묵은 나무 요괴(혜영홍)의 영향으로 영혼이 자유롭지 못한 섭소천(유역비)을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된다. 수년 뒤, 흑산촌의 물이 마르기 시작하고 관리인 영채신(여소군)은 흑산촌의 상류로 물을 찾아 떠나고 그곳에서 섭소천을 만난다.
오우삼의 <영웅본색>과 송해성의 <무적자>의 관계가 그런 것처럼 엽위신의 <천녀유혼>이 정소동의 <천녀유혼>과 승부한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바꿔 말해 새로이 만들어지는 <천녀유혼>에서 장국영과 왕조현의 향수를 기대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팬들에게 상처로 남을 수 있다. 막말로 ‘장사 한두번 하나?’
엽위신의 <천녀유혼>은 기존 작품의 ‘프리퀄’처럼 접근하며 영리하게 원작과의 정면승부를 피했다. 연적하의 비중이 늘고 유역비에게 한 남자가 아닌 두 남자와의 관
고천락과 유역비라는 존재 그 자체 <천녀유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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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앙생(히로 하야마)은 수려한 용모에 따뜻한 마음씨까지 겸비한 청년이다. 철옥향(남연)은 예쁘고 매력적인 아가씨다. 둘은 첫눈에 사랑에 빠지고 결혼을 한다. 잎이 피고 숲이 우거지고 낙엽이 지며 눈이 오고 그렇게 사계가 지나는 동안 두 사람은 연일 섹스에 매진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남편 미앙생은 천하에 없는 조루. 그는 늘 시작하자마자 끝난다. 절망한 미앙생은 성애의 황제라고 할 만한 자를 찾아가 그에게서 기술을 배우고 그의 하수인이 되기로 한다. 하지만 기술을 익혀도 원래 지닌 성기의 크기가 작아서 소용없다는 걸 알게 된 그는 동물의 성기와 자신의 성기를 바꾸기까지 한다. 결국 그는 섹스의 왕으로 새로 태어나는데 그런 그에게도 시련이 곧 닥친다.
<옥보단 3D>는 홍콩과 대만에서 크게 흥행했고 화제가 됐다. 원래 옥보단은 <소녀경> <금병매> 등과 함께 전해 내려온 중국의 고전서다. 국내에는 1990년대에 선보인 일련의 에로 시리즈물 영화로 기
이야기는 산만, 웃음과 흥분도 실패 <옥보단3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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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종교를 주제로 삼은 다큐멘터리가 트렌드다. 2009년 <소명>에 이어 지난해 <위대한 침묵> <회복> <용서> <할> <울지마 톤즈> 등이 극장 개봉했고, 올해에도 <바보야>가 관객과 만났다. “평생 무소유를 실천하며 무소유로 살다가 무소유로 입적(入寂)한” 법정 스님의 일화를 통해 <법정 스님의 의자> 또한 진정 대중을 위하는 불교는 무엇인가, 그가 말한 무소유의 삶이란 어떤 건가를 되묻는 종교영화다.
<법정 스님의 의자>는 법정 스님이 생전 하신 말씀과 행동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나열한다. “평생 그를 괴롭힌 건 책에 대한 갈증”이라는 주변 사람들의 말에선 법정 스님의 책에 대한 애정을 엿볼 수 있다. 불교의 대중화를 위한 노력도 빼놓을 수 없다. “해인사의 팔만대장경을 (보통 사람들이) 읽지 못하니 마치 빨래판과 같다”는 동료 스님의 말을 들은 법정 스님은 대장경을 한글로
"나는 큰스님이 아니라 그냥 '법정 스님'이다" <법정 스님의 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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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서울액션스쿨’이 있다면 타이에는 ‘파이팅 클럽’이 있다. 토니 자를 발굴하고 키워낸 <옹박> 시리즈의 무술감독 파나 리티크라이는 타이에도 액션 스턴트 전문 학교가 있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파이팅 클럽’을 만들었다고 한다. <넉아웃>은 파나 리티크라이가 메가폰을 잡고 그가 양성한 파이팅 클럽 출신 액션배우들이 대거 출연한 액션영화다. 그러나 <옹박> 시리즈를 떠올리면 곤란하다. <옹박> 시리즈가 선하게 훈련받은 무예 고수의 모험담이라는 기본적인 서사 구조를 갖춘 영화였다면 <넉아웃>은 액션배우들을 폐쇄 공간에 모아놓고 승자가 나올 때까지 질펀한 승부를 가리는 무술 시합 같은 느낌의 영화이기 때문이다.
<넉아웃>의 주인공은 ‘파이팅 클럽’의 멤버들이다. 할리우드 진출의 기회를 준다는 스턴트 오디션에서 우승한 멤버들은 자축 파티를 연 다음날, 낯선 공간에서 잠을 깬다. 난데없이 자동차가 들이닥치고 도끼를 든 살인
보호장치 없이 뛰어내리는 아찔한 진짜 액션 <넉아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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쫓고 달리고 구르고 잡는다. 한국영화 속 형사들은 늘 짝패를 이뤄 발로 뛰어왔다. <투캅스> 이후로 무려 18년이 흘렀지만 무식하게 발로 뛰든 첨단수사기법으로 머리를 굴리든 그것만은 변함이 없다. 형사가 범인을 잡는 것에는 이유가 필요치 않았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속 우 형사(박중훈)의 말처럼 “판단은 판사가 하고 변명은 변호사가 하고 용서는 목사가 하고 형사는 무조건 잡는 거”였을 따름이다. 하지만 <체포왕>의 형사들은 드디어 그렇게 미치도록 범인을 잡고 싶었던 까닭을 밝힌다.
무한경쟁시대의 밥그릇 싸움은 공권력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범인 검거에 일일이 등급과 점수를 매기고 실적 위주로 사람을 평가하는 분위기 아래에서 구역이 다른 형사는 동료가 아닌 적이다. 다 된 밥상에 숟가락만 얹어 낚아채는 것으로 악명 높은 마포서 팀장 황재성(박중훈)은 검거 실적 1위를 자랑하는 반칙의 달인이다. 그는 순경 출신이라는 콤플렉스를 품은 채 승진하기 위
비겁함과 부도덕에서 엿보이는 '보통 사람들'의 자화상 <체포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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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토스카나 지방. 미술 관련 서적을 쓴 영국인 작가 제임스 밀러(윌리엄 쉬멜)가 출판 기념 강연회를 열고 있다. 그의 책과 강연의 주제는 요약컨대 세상의 원본에 집착하지 말고 좋은 복제를 받아들이자 정도가 될 것 같다. 하지만 그의 강연 내용을 우린 더 자세히 알 수 없다. 대신 그때 어린 아들을 대동한 중년의 여인(줄리엣 비노쉬) 한명이 강연회장에 등장한다. 그녀는 보채는 아들을 어쩌지 못해 일찍 자리를 뜨면서 작가에게 쪽지를 남긴다. 이윽고 작가가 여인을 찾아오고 둘은 작가가 기차를 타야 하는 시간인 9시 전까지 여기저기를 함께 둘러보기로 한다. 여인과 작가는 원본과 복제(모사)에 관하여, 그런 관계로 비춰볼 수 있는 세상의 크고 작은 일들에 관하여, 혹은 예술에 관하여 토론에 가까운 대화를 나눈다. 그러던 중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 여자의 남편의 이야기가 대화 중 흘러나오자 여자는 작가를 마치 자신의 남편인 양 상정하고 말하고 그러자 작가는 그런 여자의 행동에 정말 남
인물들과 연계된 '보는 것과 듣는 것'에 집중하자 <사랑을 카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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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뚜껑을 열기 전’엔 흥행을 짐작하기 힘들다고 한다. 강형철 감독의 영화는 흥행은 차후문제고, 정확히 상업영화의 카테고리 안에 있음에도 보기 전엔 도무지 형태를 가늠할 수가 없다. <과속스캔들>이 그랬다. 그 영화에 대한 경이는 800만 스코어가 아니었다. 도대체 과속 연애한 아빠와 딸, 그리고 자식 삼대의 이야기에 흥미의 지점이 있기나 한 걸까? 예상은 빗나갔다. 이른바 웰메이드 코믹영화를 지칭해야 한다면 어김없이 그의 영화를 떠올리는 게 맞게 됐다. 전작이 선사한 기대감 때문에 <써니>에 대한 걱정이 줄었냐고? 그럴 리가. 이번엔 무려, 한 강남아주머니의 중학 시절 회상기란다. 여전히 답은 요원해 보였다.
<써니>는 남편과 딸의 뒷바라지로 보낸 세월이 조금은 헛헛해진 사모님이 우연히 암투병 중인 중학 시절의 친구를 만났고, 그 친구로 인해 어린 시절의 단짝들을 소환한다는 내용이다. 이런 구상이라면 전형적인 캐릭터들의 나열이 될 게 불보듯
필터를 통과한 듯 바랜 과거속의 웃음과 눈물, 감동 <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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뤼미에르 형제의 시네마토그래프 탄생 이후 영화는 줄곧 마술적 환영을 자아내는 도구였다. 몇분이 채 안되는 짧은 영상에 담긴 움직임의 마술은 사람들의 경탄을 자아내기 충분한, 당대 최신 기술의 집합체였던 것이다. 100년의 세월이 흘러 오늘날 영화 기술은 드디어 <허블 3D>에 도착했다. 아이맥스 3D 카메라가 스크린 위에 쏟아붓는 우주는 지금 이 시점 영화가 재현할 수 있는 환영의 최대치를 보여준다.
2009년 우주망원경 ‘허블’의 마지막 수리와 업그레이드 작업을 위해 우주왕복선 ‘아틀란티스 STS-125’는 광활한 우주를 향해 출발한다. 허블망원경이 촬영한 놀라운 우주의 이미지를 스크린에 완벽하게 구현하고 싶었던 아이맥스사의 공동창업자 토니 마이어스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2002년 이미 <우주 정거장 3D>를 제작하며 아름다운 우주의 모습을 영상에 담아낸 바 있던 그는 미국항공우주국(NASA)과 함께 이 꿈의 프로젝트의 실현을 위한 준비에 돌입한다.
안철수 교수의 나레이션을 통한 환상적인 우주의 심연 <허블 3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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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들이 1920년대의 호황기만큼 자주 언급하는 시기가 30년대 대공황이다. 그 시절을 오직 경제 침체와 굶주림의 시기로 기억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어렵기 때문에 이웃을 모른 체하지 않았던 온정의 시절로 추억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워터 포 엘리펀트>는 그 ‘온정’으로부터 출발하는 영화다. 코넬대 졸업을 앞둔 전도유망한 수의학도 제이콥(로버트 패틴슨)은 부모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하루아침에 집안의 빚을 떠안은 빈털터리가 된다. 무작정 집을 나와 길을 걷다가 우연히 곁을 지나던 기차에 올라타는데, 운좋게도 그 기차는 동물을 가득 싣고 이 도시 저 도시로 유랑하는 ‘벤지니 서커스단’의 소유다. 서커스 단원들은 인심 좋게도 이런 불황의 시대에는 젊은이가 일자리를 구하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며(그 태도 참 부럽다) 제이콥을 기차에 머무르게 해준다. 제이콥은 서커스에 출연하는 동물들을 돌보며 말과 함께 묘기를 선보이는 단장 부인 말레나(리즈 위더스푼)와 가까워진다. 서커스단
관객의 눈을 붙잡아둘 흡입력이 아쉽다 <워터 포 엘리펀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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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얼굴을 한 기관차가 말까지 귀엽게 한다. 이들은 애니메이션 <토마스와 친구들>에 등장하는 주인공 토마스와 그의 친구들인데, 전세계 어린이들은 거의 다아는 유명인사다. 1945년 출간된 윌버트 오드리의 동화책 <The Three Railway Engines>를 원작으로 하는 이 작품은 소도어섬이라는 가상의 공간에서 살아가는 기관차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1984년 TV시리즈가 영국에서 첫 방영됐고, 한국에서는 현재 EBS에서 매주 월요일에서 금요일 아침에 <꼬마기관차 토마스와 친구들>이라는 제목으로 방영되고 있다. 이번에 개봉하는 버전은 세 번째 극장판이다. 새 구조본부 건물 공사가 한창인 소도어섬. 꼬마 기관차 토마스는 공사에 필요한 조비 나무를 혼자 나르겠다는 ‘디젤’을 위기에서 구해낸다. 그 공로로 ‘뚱보 사장’에게 육지 여행을 선물로 받은 토마스는 스스로가 “항상 현명한 판단을 하는 기관차”라는 착각을 하기 시작한다. 여행 당일, 토마스는 바
토마스의 개성있는 친구들과 함께하는 교훈적 메시지 <극장판 토마스와 친구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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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스 코드>는 양자역학 타임머신에 대한 영화다. 양자역학을 이해할 필요까지는 없다. 그저 이 영화가 평행우주론에 입각한 시간여행을 다룬다는 것만 알면 된다. 영화 속 ‘소스 코드’는 미군이 발명한 시공간 이동 프로그램으로, 사망자가 마지막으로 두뇌 속에 지니고 있는 8분간의 기억을 대리 체험할 수 있다. 주인공인 콜터 대위(제이크 질렌홀)는 소스 코드를 이용해 통근열차 테러로 사망한 남자의 마지막 8분으로 돌아가 폭탄과 범인을 찾아야 한다. 문제가 하나 있다. 콜터 대위는 스크린에 비치는 굿윈(베라 파미가)의 명령을 따라야 하지만 소스 코드가 뭔지도 제대로 이해 못하는 상태다. 군부는 상황 설명을 요구하는 그를 강제적으로 기차 테러의 마지막 8분 속에 반복해서 보낸다.
<소스 코드>의 이야기가 그리 독창적인 건 아니다. 설정은 토니 스콧의 <데자뷰>와 비슷하고, 과거로 반복해서 돌아가는 건 시간여행 코미디 <사랑의 블랙홀>을 쏙 빼닮았
장르적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던컨존스'의 집중력 <소스 코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