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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남자가 권하는 시나리오-<살인의 추억>시나리오계의 만루홈런우연히 접한 시나리오 <살인의 추억>. 소문대로 그 시나리오는 ‘죽였다’.장점 하나하나 나열하자면 홍보대사로 오해 살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이 시나리오는 드라마를 기본적으로 제한하는 설정들이 있다. 관습적으로 터부시되는, 그래서 작가가 비겁하게 피하려 하는 소재들을 품고 있는 것이다. 정면승부가 가장 좋은 전술이라는 걸 모르는 건 아니지만 내공이 부족한 이가 섣불리 달려들었다간 본전도 못 찾기 일쑤다. <살인의 추억>은, 대단히 많은 장애들을 태생적으로 품고 있다. 시나리오의 배경은 한국의 상처뿐인 80년대. 게다가 스릴러의 배경이란 곳이, 경운기가 시도 때도 없이 탈탈대는 시골 촌구석. 연쇄살인을 소재로 하고 있으면서도 범인이 누군지 알 수 없다는 실제 미결 사건을 모티브로 한다. 실제 희생자와 가족들이 우리 이웃처럼 존재하고 있는 현실에서 사회적인 민감함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으며,
<품행제로>의 `별난 형제` 작가 이해영,이해준 이야기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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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잡는 노인네 같으니!허무와 광기의 아이콘 잭 니콜슨,그의 `영리한` 만년송가 <어바웃 슈미트>여기 초점이 풀린 멍한 눈으로 시계만 쳐다보는 남자가 있다. 시계바늘이 5시를 가리키면 그는 평생 직장이던 보험회사를 나가게 된다. 그의 이름은 워런 슈미트. 몇 가지 정보만 있으면 손쉽게 고객의 기대수명을 계산할 수 있는 오랜 경험의 소유자이며, 직장에 대한 자신의 애정을 한번도 의심한 적 없는 인물, 정년퇴임을 하고나서도 일류대 경영학 석사 출신 후임자가 자신에게 도와달라고 말하길 바라는 노인, 42년간 한 여인과 살면서 그녀가 없는 삶이 어떠하리라는 건 상상조차 안 해본 사내, 그가 지금부터 맞게 될 상황은 절체절명의 위기다. 하릴없는 삶에 채 무료해질 틈도 없이 슈미트의 집에서 무언가 무너지는듯 ‘쾅’ 하는 소리가 들린다. 아내가 뇌졸중으로 급사한 것이다. 갑자기, 그가 알던 세상이 작별을 고한다. 알 수 없는 저편으로 멀어져간다. 미처 철들기 전에 고아가 된 노인,
잭 니콜슨(Jack Nicholson)과 <어바웃 슈미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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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니콜슨은 제임스 딘이나 말론 브랜도가 50년대 보여준 청춘의 표상과 달랐다. 무엇보다 그는 청춘스타로 시작하지 않았다. <이지 라이더>에 출연할 때 이미 서른이 넘었던 그는 당시에도 앞머리가 상당히 벗겨져 있었고 이마와 눈가에 주름이 뚜렷했다. 어쩌면 니콜슨은 메이저 스튜디오가 앞다투어 모셔갈 빛나는 외모의 소유자가 아니었기에 70년대 급변하는 할리우드에서 대안적 얼굴로 떠오를 수 있었는지 모른다. 당시 할리우드는 스튜디오가 오랫동안 지켜오던 관습적 표현을 거부하고 기존의 가치관에 도전하는 중이었다. 그러자면 배우도 그냥 잘생긴 것으로 부족했다.<차이나타운><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반전운동과 히피, 마약과 성혁명의 시대는 반항과 냉소, 허무와 광기를 보여줄 배우를 찾고 있었다. 1974년작 <차이나타운>과 1975년작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는 그런 면에서 니콜슨의 진정한 출세작이다. <차이나타운>의 탐
잭 니콜슨(Jack Nicholson)과 <어바웃 슈미트>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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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 니콜슨 인터뷰“반항은, 나의 태도이자 철학”많은 평론가들이 당신이 슈미트를 연기하면서 어떻게 니콜슨 특유의 표식들을 지워버렸는지 감탄하고 있다.→ 그 점이 기분좋다. 촬영 첫날부터 내 임무는 ‘언-잭’(un-Jack)을 하는 것이었고, 배우로서 내가 평소 갖고 있던 매너리즘이나 어떤 습관을 떨쳐버리는 것이었다. 난 내 자신을 묻어버리고 새로운 영토에 발을 딛고자 노력했다. 왜냐하면 난 관객이 나의 전작에서 유추해서 쉽게 슈미트라는 인물에 대해 단정짓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연기한 어떤 인물 또는 내 자신과 극단적으로 다른 인물이기를 원했다.당신은 여전히 60년대 반혁명의 정신을 갖고 있는가.→ 그렇다. 한계는 없다는 사실이 나를 자극하는 힘이다. 난 다른 사람들이 정상이라고 말하는 것에 내 자신을 제한시키는 것은 절대 원하지 않았다. 그게 미친 놈처럼 행동하는 걸 뜻하는 건 아니다. 그건 이 세상에서 다른 사람이 뭐라 생각하든 신경쓰지 않고 자신만의 진실을 발견하는
잭 니콜슨(Jack Nicholson)과 <어바웃 슈미트>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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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 니콜슨의 명대사“당신은 날 좀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게 만들었소”워런 슈미트 “넌 지금 큰 실수를 하는 거다. 그놈(랜달)이랑 결혼하지 마라. 절대로 하지 마.”지니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워런 슈미트 “지난 밤에 꿈을 꿨단다. 아주 생생한 꿈이야. 니 엄마가 있었고 너도 있었고 니 숙모 에스텔도 있었지. 그리고 거기서, 그래, 그건 진짜 우주선은 아닌데, 그건 비행선이나 비행접시 같은 건데 말이지. 거기서 이상한 생물들이 와서 널 잡아가려고 하는 거야. 그리고 그게 그러니까, 그놈들이 전부 랜달처럼 생겼더라. 알겠니? 내가 뛰어올라서 널 구했단다.”-<어바웃 슈미트> 중에서 딸의 결혼을 막으려는 아버지 워런 슈미트.멜빈 유달 “훌륭한 칭찬이 하나 생각났소. 게다가 이건 거짓말이 아니오.”캐롤 “당신이 무슨 말을 할까 겁나요.”멜빈 유달 “비관적으로 생각하지 말아요. 당신 옷차림에 대한 게 아니니까. 어쨌든, 의사가 나 같은 종류의 환자 중 60∼70%는
잭 니콜슨(Jack Nicholson)과 <어바웃 슈미트>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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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이 있다면, 파괴는 없다전수일 감독이 또다시 영화를 만들고 있다. ‘또다시’라면, 이 낯선 감독에게도 전작은 있다는 뜻이다. 그는 단편 하나와 중편 두개를 모은 <내 안에 부는 바람>과 제작한 지 3년 만인 지난해에야 개봉한 장편 <새는 폐곡선을 그린다>를 거의 혼자 힘으로 완성했다. 물론 이 두 영화를 본 사람은 별로 없다. 그리고 이제는 <파괴>다. 김영하의 소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가 원작인 이 영화는 전작과는 격이 다른 제작비 때문에 여전히 혼자인 전수일을 거의 파괴의 경지로 몰아넣고 있다. 영화를 만드는 9년 동안 단 한순간도 마음놓을 새가 없었을 사람. 그래도 그는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삶의 터전인 부산에서, 온갖 걱정거리를 짊어지고, 영화를 만든다. 이 놀랍고도 신기한 고집의 소유자를 만나기 위해 언제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르는 <파괴>의 현장을 찾았다. - 편집자강원도 철원 노동당사를 찾은 지난 2
다시,싸움처럼 <파괴> 만드는 전수일 감독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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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웃는 모드철원과 부산 현장을 두번 찾아가서 찍은 꽤 많은 필름 중에 전수일이 웃고 있는 컷은 단 한컷도 없었다. 그의 표정은 무표정하거나 웃거나 딱 두 가지 경우만 확인할 수 있었는데, 후자는 무척 드물었던 것이다. 철원에서 전수일이 처음 웃은 순간은 촬영이 모두 끝나고 “인터뷰 꼭 해야 하나. 너무 불쌍해 보이기만 할 텐데…”라고 말했을 때였다. 지난해에도 그는 한결같은 말투로 비슷한 문장을 말했지만, 이번엔 표정이 달랐다. <새는…>을 호평한 프랑스 언론의 기사를 직접 번역한 문서들을 들고 나타났던 그는 가리는 것이 많았고, 정말 깐깐한 선생님처럼 보였다. 그를 앞에 두고선 결코 <새는…>의 난해함을 논할 수 없었다. 그러나 여전히 처절하게 영화를 만드는 와중에서도 전수일은 자신의 험난한 경험을 농담처럼 편하게 받아들이는 방법을 익힌 것 같았다.자살안내원 S를 연기하는 정보석과 행위예술가 마라를 연기하는 추상미는 모두 일일드라마 촬영에 몸이 묶여 있는 상
다시,싸움처럼 <파괴> 만드는 전수일 감독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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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국제영화제 2월15일 폐막, <이 세상에서> 황금곰상 수상베를린=글 최수임 sooeem@hani.co.kr·사진 손홍주 lightson@hani.co.kr“황금곰상 수상작은 마이클 윈터보텀의 <이 세상에서>로, 심사위원 대상 수상작은 스파이크 존즈의 <어댑테이션>으로 결정됐습니다.” 심사위원장 아톰 에고이얀과 집행위원장 디이터 코슬릭이 하얏트호텔 기자회견장에 서서 수상작 발표를 막 마칠 때쯤, 바로 인접한 포츠다머 슈트라세 대로에는 기자들의 박수소리보다 훨씬 큰 군중의 노래와 외침소리가 울려퍼지고 있었다. 2월15일, 전세계 주요도시에서 열린 반전 퍼레이드가 베를린에서는 바로 그때 영화제 주요 상영관 옆을 지나치고 있었던 것이다.“기름을 위해 피를 흘리지 말라”, “슈뢰더, 고마워요”, “아름다운 들판에 폭탄 쓰레기를 버리지 말라”, “이라크의 무장해제, 좋다. 하지만 미국은 왜 안 하나” 등 여러 가지 구호가 적힌 피켓을 든 50만명의 인파는
2월15일 폐막한 제53회 베를린국제영화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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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미 영웅 올리버 스톤를 환대하라이변과 화제1 - 카스트로 다룬 스톤의 다큐 <코만단테>에 열광올리버 스톤은 아무도 예상하지 않았던, 그러나 가장 뜨겁게 추앙된 영화제 최고의 스타 감독이었다. 이제까지의 카스트로를 ‘미국에 의해 만들어진 이미지’라고 까발리는 영화 <코만단테>를 후광처럼 등에 업은 그의 카리스마는 반미 분위기가 뜨거운 베를린에서 아주 순수하고 놀라운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코만단테>는 폐막을 하루 앞둔 2월14일, 일정에도 없던 특별 기자시사에서 인터내셔널 프리미어로 상영되었는데, 그러자마자 기자들은 걸출한 이 반미 미국 작가의 다큐 ‘에지테이션’에 흥분하고 말았다. 꽤 많은 외신기자들이 귀국한 뒤 썰렁해졌던 기자회견장은 일거에 다시 많은 카메라로 붐벼 스톤 감독에게 니콜 키드먼 못지않은 플래시 세례를 선사했고, “카스트로를 동정적으로 다루었는데 후세인은 어떻게 생각하냐?”는 어느 미국 기자의 공격적인 질문에 그가 “사담 후세인?
2월15일 폐막한 제53회 베를린국제영화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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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크 리, 상복 없었다이변과 화제2 - 최소한 감독상 예상했지만 수상 못한 <25시>스파이크 리의 <25시>가 상영되었을 때, 이 영화가 황금곰상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감독상은 받을 것이라는 추측이 퍼졌다. <25시>는 경쟁부문에서 가장 높은 객석 점유율(계단 점유율이 주로 비교의 대상이 되는데)을 기록했을 뿐만 아니라 가장 많은 박수를 받으며 엔딩 타이틀을 올린 영화들 중 하나였고, <타게스슈피겔>의 독일 기자들이 주는 별점에서도 1위를 달리는 ‘전도 유망’한 영화였다. 그러나 이 영화는 어떤 상도 받아내지 못하는 ‘이변’을 낳았다. 열렬했던 반응과 차가운 평가. 스파이크 리는 왜 베를린에서 천국과 지옥을 맛봐야 했을까.답은 두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스파이크 리가 옥을 다 갉아먹을 만큼 치명적인 티를 범했거나, 아니면 베를린이 너무 몸을 사리고 그를 오해했거나. ‘티’ 혹은 ‘오해의 대상’이 될 <25시>의 민감한 부분은
2월15일 폐막한 제53회 베를린국제영화제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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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영화 100편 상영, 물량공세 성공이변과 화제3 - 독일영화의 부흥?독일영화가 르네상스를 맞았다고, 감히 말해도 될 것 같다. 이번 베를린영화제에 독일영화는 전체 299편 상영작 중 무려 100편이라는 엄청난 비율을 차지했다. 경쟁부문에 3편이 포함된 것을 필두로 파노라마, 포럼, 단편영화, 킨더필름 등 부문마다 대략 ‘다섯 중 하나’는 독일영화였고, 여기에 신인들의 영화를 소개하는 ‘독일영화의 전망’ 섹션, ‘저먼 시네마’ 섹션에 프리드리히 빌헬름 무르나우 회고전까지. 독일영화만을 모아 상영하는 부문도 3개나 됐다.<늙은 원숭이의 불안><크누트가 잡혔다><데보트>이들 독일영화들은 상영시간대도 비교적 좋은 시간에 배치돼 영화 상영 시간표를 보며 볼 영화를 고르고 있자면 싫어도 볼 수밖에 없게 만들어놓았다(하지만 독일영화들은 빨리 매진돼 보기 힘든 영화이기도 했다). 영화제쪽에서는 친절하게도 영화제의 모든 독일영화들을 모아 소개한, 상당한 두께의 ‘
2월15일 폐막한 제53회 베를린국제영화제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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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경쟁작 맞아?베를린의 이변과 화제4 - <마담 브루에트>와 <예스 너스 노 너스>영화가 너무 ‘어처구니 없어서’ 화제가 되었던 영화 2편이 있었다. 아프리카 대륙 대표로 영화제 경쟁부문에 참가한 세네갈 무사 세네 압사 감독의 <마담 브루에트>와 네덜란드 최초의 뮤지컬영화라는 <예스 너스 노 너스>.<마담 브루에트>의 주연 여배우(왼쪽)와 무사 세네 압사 감독<예스 너스 노너스><예스 너스 노 너스>는 네덜란드의 이름 모를 작은 마을의 적십자 구호소를 배경으로 간호사들과 구호소에 머무는 엽기스러운 요양객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노래와 춤으로 엮어낸 영화. 간호사는 ‘어머니’처럼, 요양객들은 그녀의 ‘자식들’처럼 구도화되어 있으며, 사고연발인 요양객들을 간호사가 보살피고 다스린다는 이야기다.사사건건 꼬투리를 잡아 구호소를 철거시키려고 법원에 진정서를 내는 구호소의 옆집 남자에게 요양객 중 과학자가 개발한 ‘착해지
2월15일 폐막한 제53회 베를린국제영화제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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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 알고 싶었다"<이 세상에서>로 황금곰상 받은 마이클 윈터보텀 인터뷰마이클 윈터보텀은 종종 ‘우리’라는 주어를 사용했다. 그에게 영화는 혼자 만드는 무엇이 아니었다. 대여섯명의 스탭이 미니버스를 타고 움직이며 만들어낸, 파키스탄에서 런던에 이르는 길의 영화, <이 세상에서>는 특히나 그에게 ‘함께’한 그 무엇이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파키스탄으로 이미 실제로 ‘이주’를 한 ‘자말’(실제 이름과 극중 이름이 같다), 그리고 ‘에니얏’과 함께 육로로 런던까지 갔던 길. 거의 다큐에 가까운 픽션인 이 영화에서 윈터보텀은 아름다운 길이 아닌, 아이를 사람을 다치게 하고 죽이는 길을 고발한다. 그래도 그 길을 가야만 하게 아이의 등을 떠미는 현실을 고발한다.전작 <웰컴 투 사라예보>와 이 작품을 비교한다면.→ 근본적으로는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현재 세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를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웰컴 투 사라
2월15일 폐막한 제53회 베를린국제영화제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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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관심을 갖는 사물이 비슷하다"<어댑테이션>으로 심사위원 대상 받은 스파이크 존즈(감독), 찰리 카우프만(시나리오) 인터뷰야윈 몸과 금발머리에 잘 어울리는 예쁜 정장 차림을 하고 온 스파이크 존즈 감독, 그리고 니콜라스 케이지가 소화하기엔 훨씬 ‘터프’한 외모를 가진 시나리오 작가 찰리 카우프만, 여기에 니콜라스 케이지까지 가세한 <어댑테이션> 기자회견장은, 영화 <어댑테이션>만큼이나 재미있었다. 바로 자신이 쓴 이야기면서도 찰리 카우프만은 자신이 주인공 캐릭터인 이 영화의 작업이 “너무 복잡했다”며 연신 “모른다”는 말을 반복했는데, 그 모습은 영락없는 <어댑테이션>의 ‘찰리’였다. <어댑테이션>은 작가 찰리가 원작을 시나리오로 각색하는 과정을 다차원적으로 그린 복잡하고도 흥미로운 영화. 스파이크 존즈는, 수줍어하는 듯하면서도 곧잘 기자들을 향해 농담을 날리는 기지를 발휘했다. 영화 속 마약에 대한 질문에 가격을 대며 미
2월15일 폐막한 제53회 베를린국제영화제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