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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린스 앤 프린세스Princes et Princesses 2000년, 감독 미셸 오슬로 KBS2 2월2일(일) 오전 7시30분실루엣애니메이션이라는 용어는 낯설다. 1920년대 독일에선 로테 라이니거(Lotte Reiniger)라는 애니메이터가 선풍적인 화제를 일으켰다. 동양적인 선과 그림자의 배합을 애니메이션에 응용한 로테 라이니거는 <아흐메드 왕자의 모험>이나 <닥터 두리틀> 등을 만들었다. 그림자만으로 만들어진 흑백의 이미지에서 전설과 동화의 세계를 창조해낸 것이다. <프린스 앤 프린세스> 역시 실루엣 애니메이션이다. 디지털 시대, 컴퓨터로 창조해낸 영상에 익숙해진 세대에게 이 애니메이션은 진부한 것으로 비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심각하게 시대착오적이라는 인상은 전혀 없다. 그것은 <프린스 앤 프린세스>가 ‘사랑’이라는 보편적 주제를 건드리고 있기 때문일 터다.<프린스 앤 프린세스>는 여섯편의 에피소드로 구성된다. 첫 번째
설연휴 만끽할 DVD,만화,TV 가이드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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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원 감독은 좀처럼 청을 거절하지 못하는 부류다. 후덕한 인상 그대로다. 그래서 여기저기서 무료 강의를 도맡곤 한다. 그런 그도 <송환>(가제)에 관한 이야기만큼은 아껴왔다. 인터뷰 제의를 한 것만 해도 지난해만 수차례. 모두 “다음에 하자”고 미루었다. 세 번째는 차마 거절하지 못해서인지 “만나서 이야기나 나누자”는 승낙까지 받아내는 데 성공했으나, 갑작스런 아버지의 병세 악화로 만남은 기약없이 미뤄졌다.
새해 들어 그가 다시 미완성 프로젝트를 완성하기 위해 편집 작업에 돌입했다는 소식이 전해져왔다. 독립영화계의 대소사를 맡아왔던 자리도 이미 후임자를 물색한 뒤 <송환>의 편집 작업에만 몰두할 것이라는 전언도 함께 들려왔다. 10년 동안 대상이라기보다 가족처럼 지냈던 비전향 장기수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송환>. 그동안 완성하지 못한 채 품고서 서성였던 이유는 무엇일까. 30여년 동안 가슴에 적갈색 수인표를 달고 0.5평에 몸과 정신을 의
김동원,장기수,그리고 <송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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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는 잘하시는지, 남쪽 새각은 하시는지
돌아보면, 송환이 이뤄지던 날의 촬영만큼 그가 힘들어 했던 적도 없었다. 다들 얼싸안고 눈물을 흘리던 판문점에서, 객관을 의식한 카메라를 들고 묵묵히 서 있어야 했던 날의 씁쓸한 기억은 지금도 선연하다. 계속되는 환송회 일정에 결국 탈진한 채 앰뷸런스에 실려 판문점을 넘어야 했던 조창손 선생의 모습을 보면서 그는 “카메라를 던져버리고 싶었다”고 털어놓는다. 어쨌든 선생들이 떠나고 난 뒤 “찍어놓은 화면들을 보면서 어떻게든 정리를 해야겠다”고 마음 정한 그는 포커스를 달리해야 했다. 이전처럼 체제의 폭력을 비판하거나 결기어린 선생들의 신념만을 전면에 내세울 순 없었다. 상황은 변했고, 카메라가 개입하는 지점도 달라져야 했다. 가장 가까이서 지켜봤던 조창손 선생을 중심으로 등장인물을 줄이고, 지난 10년 동안의 카메라와 대상의 관계가 변화하는 양상을 담기로 했다.
하지만 아산요양원에서의 대면, 봉천동에서의 생활, 후원회원들과의 북한산 피크
김동원,장기수,그리고 <송환>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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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여 꿈길에서 발자국을 남길 수 있었다면, 문 앞 돌길이 닳아 모래가 되었을 것을(若事夢魂行有跡 門前石路半成砂). 비전향 장기수 선생들의 꿈길을 따르기에 김동원 감독에게 10년은 부족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명절 때면 선생들의 얼굴이 어른거린다는 그로부터 <송환>에 담지 못한 이야기를 들었다.
-10년 동안 찍었으니 카메라 기종도 가지각색이겠다.
=맞다. 방송용 유메틱부터 VHS, 베타, 6mm까지 안 쓴 게 없다. 기종만 놓고보면 열댓 가지 될 거다. 편집 과정에서 화질 조정하는 데 애먹고 있다.
-첫 만남에서 두려움도 느꼈다고 했는데.
=내 나름대로 진보를 맛보기 시작했고, 또 많이 태를 벗었다고 생각했었던 때였는데. 남파 간첩이라는 말을 듣고 그런 기분이 들었다. 아직도 내 의식 속에 레드 콤플렉스가 남아 있구나 했다.
-조창손 선생에게 더 이끌린 이유가 있나.
=아무래도 집이 가까워서 뵐 기회가 더 많아서였을 것이다. 성격은 두분이 많이 달랐는데 김석형
김동원,장기수,그리고 <송환> [3] - 김동원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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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거장’이라는 엄숙한 칭호가 어울릴 법하지만 찰리 채플린을 거장이라 부르는 게 어색하듯 우디 앨런을 그렇게 부르는 것도 겸연쩍다. 아마 그의 익살에 배를 부여잡고 웃어본 사람은 누구나 비슷하리라. 현대 도시의 삶에 숨어 있는 희극성과 비극성을 발견하는 탁월한 작가지만 아마 우디 앨런을 좋아하게 된 첫째 이유는 그를 보면 진정, 확실히, 참을 수 없이 웃게 된다는 데 있을 것이다. <박봉곤 가출사건> 시나리오를 거쳐 <라이터를 켜라>로 데뷔한 장항준 감독과 전복적 웃음이 숨어 있는 그림을 그리는 만화가 이우일씨가 우디 앨런의 세계에 입문한 과정도 다르지 않다. 웃음을 생산하는 일이라는 점에서 비슷한 업종에 종사하고 있는 두 사람의 글과 그림은 그들이(그리고 우리가)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던 우디 앨런의 유머와 작가정신에 대해 바치는 헌사다. - 편집자(<불어라 봄바람>이라는 시나리오의 막바지 수정작업이 한창일 때 <씨네21>에서 원고
에브리원 세즈 ˝I Love Woody˝[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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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신사동 사거리에는 극장이 세개 정도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새로 생긴 그랑프리였고 건너편에는 브로드웨이라는 극장이 있었다. <브로드웨이를 쏴라>라는 커다란 극장 간판은 맞은편 브로드웨이극장에 마치 선전 포고를 하듯 향해 있었던 것이다. 당시 사귀던 여자친구와 그것을 보며 낄낄거렷던 기억이 아직도 난다. 그건 그렇고 극장에서 대하는 우디 앨런의 작품 <브로드웨이를 쏴라>는 나에게 코미디영화가 주는 풍자와 해학의 극치를 경험케 해주었다. 채즈 팔민테리의 안상적인 연기는 아쉽게도 출연하지 않은 우디 앨런의 빈자리를 완전히 메워주었고, 브로드웨이의 허와 실, 그리고 진정한 예술이 무엇인지, 진짜 예술가는 과연 누구인지를 영화는 쉴새없는 웃음 속에서 보여주고 있었다.잠깐 생각난 김에 옆길로 이야기를 돌려보면(원래 난 주위가 산만한 성격이라 매번 이런 식이다), 이번에 우디 앨런에 대해 글을 쓰면서 알게 된 것 중 가장 놀라운 사실은 그의 나이였다. 50대 후
에브리원 세즈 ˝I Love Woody˝[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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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리원 세즈 ˝I Love Woody˝[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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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그림 이우일 │일러스트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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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리원 세즈 ˝I Love Woody˝[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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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가기’ 누르면 후회할걸? 영화는 여기서 시작된다
새삼스럽게 묻자. 당신이 한편의 영화를 처음으로 ‘보는’ 것은 언제인가 개봉 광고 잡지 기사 극장 간판 틀렸다. 야박하게 말해서 그것들은 영화가 아니라 전시용 액자에 들어맞도록 가공하고 도려낸 복제물의 파편일 따름이다. 우리가 최초로 접하는 영화의 진짜 얼굴은, MGM의 사자가 으르렁거리고 이십세기폭스의 팡파르가 잦아든 다음 2∼3분 동안 영화와 제작진의 이름을 싣고 흐르는 ‘타이틀 시퀀스’ 즉 ‘오프닝 크레딧’이다.
우리가 게으른 자세로 비디오를 감상할 때면, 심드렁하게 ‘빨리 가기’ 버튼을 눌러 감아버리곤 하는 그 성가신 영화의 말머리는 미약하지만 중대한 프롤로그다. 오페라 전편의 테마 선율을 들릴락말락 품은 서곡이며, 관객이 장차 맞닥뜨릴 2시간의 허구가 어떤 것인지 예시하는 일종의 계약이자 경고이며, 영화관 바깥의 현실로부터 우리를 번쩍 들어올려 영화의 문턱까지 데려다놓는 엘리베이터다. 중세의 수술기구가 즐비한 살벌
타이틀 시퀀스의 세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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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부터 잡을 테면 잡아 봐!
애니메이션부터 3D까지, 영화주인공을 소개하는 타이틀 시퀀스 BEST
실험영화가 아닌 다음에야 영화를 보러간다는 것은 결국 어떤 사람을 사귀고 그의 파란만장한 사연에 귀기울이는 경험과 비슷한 것이 아니겠는가, 라고 생각하는 적지 않은 영화들이 3분 남짓한 타이틀 시퀀스를 ‘표지 인물’을 소개하는 영화의 커버스토리로 활용한다.
2D애니메이션과 3D애니메이션 촬영을 결합한 <캐치 미 이프 유 캔>의 재기만점의 타이틀은 가까운 모범사례. 버진 애틀랜틱 항공사의 기내 안전수칙 영화를 제작했던 런던 넥서스 프로덕션의 작품인 <캐치 미 이프 유 캔>의 오프닝 크레딧은 추적자로부터 딱 한 발짝 앞서 달아나는 남자를 따라간다. 파일럿 차림의 청년은 도망치는 도중 의사로, 다시 변호사로 옷을 갈아입는가 하면 풀장의 미녀들을 희롱하는 망중한도 즐긴다. 1960년대 클래식영화의 애니메이션 인트로를 연상시키는 이 2분40초짜리 복고적 애니메이
타이틀 시퀀스의 세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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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위선과 배반을 한눈에
영화제목에 담긴 뜻을 설명하는 타이틀 시퀀스
타이틀 디자이너 솔 바스는 “<싸이코>는 워낙 많은 뜻을 가진 단어이기 때문에 오프닝 타이틀이 제목의 의미를 분명하도록 만들어야 했다”고 말했다. 제목이 지나치게 풍성한 의미를 담고 있거나 심오하다면, 그리고 그 제목을 포기할 수 없다면, 단어를 깎고 다듬어서 관객에게 안기는 가이드 역할은 오프닝 타이틀이 해야 한다는 것이다. 스파이크 리와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와 주로 작업했던 랜디 볼스마이어는 <차이니스 박스>에서 바로 그런 역할을 떠맡았다. 당시로선 드물게 100% 컴퓨터그래픽으로 작업한 이 오프닝 타이틀은 홍콩의 그림엽서와 염주, 우표가 붙은 편지봉투 등 기억이 담긴 물건들을 차이니스 박스 속으로 차곡차곡 밀어넣는다. 식민지로 보낸 백년의 시간이 뒤섞여 오래된 나뭇결 안에 봉인되는 것이다. 볼스마이어는 “나와 웨인왕 감독은 끝나지 않는 나선과도 같은 차이니스 박스가 홍콩의 반환과
타이틀 시퀀스의 세계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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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근두근, 레드커튼이 올라간다
영화의 양식미를 엿볼 수 있는 ‘예술적인 정보’로서의 타이틀 시퀀스 BEST
좋은 전채 요리가 그렇듯, 좋은 타이틀 시퀀스는 그 자체로 향기로워야 하지만 향신료가 지나쳐서 메인 요리의 풍미를 해쳐도 불합격이다. 그래서 많은 감독들은 타이틀 시퀀스가 최선의 경우, ‘예술적인 정보’가 되기를 희망한다. 오프닝 크레딧의 톤과 무드가 다음에 이어질 영화를 가장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로 관객의 근육을 이완시키고 정서를 고양시켜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바즈 루어만 감독의 뮤지컬 <물랭루즈>는 영화의 양식미를 미리 맛보게 하는 유형의 타이틀 시퀀스 중 프리마돈나로 손색이 없다. MTV가 도저히 흉내낼 수 없는 수공업적 스펙터클의 파노라마를 세기말 파리의 카바레에서 거침없이 펼치는 <물랭루즈>의 타이틀 시퀀스는 프로시니엄 아치(연극무대 위쪽 테두리를 이루는 아치)에 늘어진 붉은 커튼을 걷으며 시작한다. 무대 앞에 조그맣게 보이는 지휘
타이틀 시퀀스의 세계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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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 발견! 그래도 우아하도다
글씨체의 디자인과 크기의 배열이 낳는 스펙터클한 타이틀 시퀀스 BEST
영화 제목과 대사, 제작진의 이름을 종이카드 위에 손으로 써서 집어넣었던 초기 영화에서도, 지극히 궁한 예산으로 살림을 꾸려야 하는 현대 독립영화에서도, 글자는 모든 프릴과 장식을 떼어낸 타이틀 시퀀스가 버릴 수 없는 마지막 기본사양이다. 그러나 오늘날 타이틀 시퀀스 디자인의 세계에서는 더이상 글자가 정보를, 비주얼이 스타일을 분담하지 않는다. 글씨체의 디자인과 폰트의 배열만으로도 엄연히 지향하는 스타일을 선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데이비드 핀처의 <패닉 룸>은 맨해튼의 거대한 빌딩 입면과 같은 앵글의 평면을 가정하고 공중의 가상 평면에 금속성의 글자들을 공중에 띄워 크레딧 하나하나가 권위있는 구조물처럼 보이게 하는 효과를 얻었다. 유리와 철골 구조의 건물에 크레딧을 박은 솔 바스의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 오프닝 시퀀스를 상기시키는 아이디어. 폴 버호
타이틀 시퀀스의 세계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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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조위가 왔다. <영웅>과 함께. 양조위는 20년 연기인생 동안 홍콩의 장르영화와 <비정성시> <화양연화> 등 걸작들을 오가며 영화사에 남을 배우로 우뚝 섰다. 할리우드를 경유하지 않고도, 또 특정 장르에 묶이지 않고도, 세계 영화인들의 별이 된 중국권 배우는 아마 그가 처음일 것이다. 이 남자는, 그래서 특별하다.
저기, 소리없는 한 자락 비애
매니저와 영화사 관계자들에 둘러싸인 양조위는 한눈에 뜨이는 사람이 아니었다. 165cm를 안 넘기는 작은 체구에 웬만한 여배우 못지않게 소담스런 어깨, 그리고 가무잡잡한 얼굴. 1997년 10월 <해피 투게더>의 상영에 맞춰 부산영화제를 방문한 양조위를 처음 대면했을 때, 그 왜소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근사한 미모라기보다는 아담하고 친근한 인상에, 사춘기 소년마냥 수줍은 눈인사를 건네던 모습이 너무 소박해서 오히려 기억에 남았다. 3년 뒤 <화양연화>로 다시 부산영화제에 왔
아름다운 배우, 양조위와 장만옥 [1] - 양조위 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