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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사랑한 필름광 엿보기데이비드 로빈슨의 <채플린- 거장의 생애와 예술>광기가 천재의 천부능력에 대한 일종의 대가라면, 신은 찰리 채플린을 어여삐 여긴 게 틀림없다. 채플린에게 선사한 수많은 재능에 비해 절대자가 그에게서 요구한 것은 ‘고작’ 엄청난 창작욕과 지독한 완벽주의, 그리고 쉴 틈 없는 변덕의 소유자로 살아가는 것뿐이었다. 그 ‘재능의 대가’는 끝없는 재촬영, 자신과 스탭들에 대한 집착, 수많은 시행착오로 나타났지만.여기 하나의 사례가 있다. 1918년 초 채플린은 훗날 루이 델뤽이 “영화 사상 최초의 종합예술작품”이라 일컫는 <개의 생애>의 촬영을 시작했다. 이 영화는 자신이 소유한 스튜디오에서 처음 만들어지는 영화였기에 채플린의 의욕은 대단했다. 그런데 촬영을 시작한 지 몇주가 지나자 그는 갑자기 이야기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다. 주말을 지낸 뒤 월요일 스튜디오에 나온 채플린은 돌연 이제부터 <위글과 아글>이라는 듣도 보도 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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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과 그의 수호천사들<감독의 길>구로사와 아키라의 감독 데뷔 시나리오는 번번이 검열관들에 의해 매장되었다. 그는 이제 단지 술마실 돈을 벌기 위해 자신의 생각과 맞지 않는 시나리오를 써서 팔아치우는 자포자기의 삶을 연장하고 있었다. <스가타 산시로>라는 제목의 소설을 신문에서 발견하게 된 그 어느 날 전까지. 구로사와는 본능적으로 이 소설이 영화의 훌륭한 소재임을 느낀다. “이 책의 영화화 판권을 구입하십시오. 훌륭한 영화가 될 겁니다.” 도호 영화사의 기획담당 총책임자 모리타 노부요시를 찾아간 구로사와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확신했다. “좋아. 어디 한번 읽어볼까.” “아직 안 나왔어요. 저도 아직 못 읽었습니다. 괜찮을 겁니다. 이 책이 좋은 영화가 될 것을 장담합니다.” “좋아. 하지만 자네도 아직 읽지 않은 책을 자네가 좋게 말한다고 당장 나가 판권을 사올 수는 없지 않은가. 책이 나오면 자네가 읽어보고 정말 좋다면 그때 다시 오게. 그러면 내가 판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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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과의 타협은 없다<나의 인생 나의 영화 장 르누아르>“영화란 것은 존재하지 않아.” 1925년의 한때, 장 르누아르는 매일 아침 되뇌었다. 영화를 잊기 위해! 1924년 그가 의욕적으로 만든 데뷔작 <물의 소녀>가 극장을 한곳도 잡지 못하는 수모를 당했기 때문이다. 대단한 야심은 없었지만 이 영화가 그 정도로 형편없다고 생각지 않았던 르누아르는 좌절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에겐 예술가 이외의 자질, 특히 장사꾼의 능력은 없었다. 호구지책으로 마련한 그림가게를 제대로 운영하지 못했을 정도다. 그의 아버지는 유명한 오귀스트 르누아르였는데도! 그는 결단을 내려야 했다. 먹고살기 위한 일을 할 것인가, 예술가의 길을 걸을 것인가. 이 갈등의 순간, 운명은 예술편이었다. 친구의 권유로 우연히 찾은 한 극장에서 그는 <물의 소녀> 중 일부가 피아노 연주와 함께 상영되는 광경을 봤다. 관객은 거대한 박수소리로 이 영화에 절대적인 지지를 보냈다. “안 돼, 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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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메의 모차르트, 혹은 사람의 아들<만화가의 길>분명히 세상에는 천재가 있다. 살리에리가 아무리 노력을 해도 따라잡을 수 없는 모차르트가 있다. 데즈카 오사무보다 뛰어난 만화를 그린 만화가는 시라토 산페이나 쓰게 요시하루 등등 많이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은 분명 데즈카의 작품들을 능가한다. 하지만 작품의 방대함과 그것이 만들어낸 세계 전체를 들여다보면, 데즈카에 필적할 인간은 없다. 세계를 창조한 신이라면 모를까. 그렇다. 데즈카 오사무는 일본 만화의 신이다. 단순한 치사가 아니다. 데즈카 오사무가 죽었을 때 ‘데즈카 선생은 외계인이다. 어딘가 우주 저편에서 지구로 와서 사명을 다하고 돌아간 것’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데즈카 오사무는 전후 일본 만화의 부흥을 이끈 주역이며 세상의 모든 것을 만화로 만들어냈다. 최고 걸작으로 꼽히는 <불새>를 비롯하여 SF <메트로폴리스>와 <우주소년 아톰>, 의학물 <블랙 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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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 뒤의 질투의 카오스<잉마르 베르이만의 창작노트>“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확신은 바로 이 시기(<제7의 봉인>) 동안에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나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스스로의 ‘성스러움’을 지니고 있다고 믿는다. 그것은 지상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다.” “해명될 수 없는 어떤 ‘사악함’- 심술궂고 위협적인 사악함- 이 존재하며, 인간이야말로 그 사악함을 지닌 유일한 동물이라는 것이 오늘날까지 내가 간직하고 있는 철학이다.”(<열정>) 충돌하는 두개의 진술.구원을 염원하는 감독의 내면에도 때때로 그 성스러움과는 상관없는 치사한 악마가 살아 있었다. 잉마르 베리만은 “미친 듯이” 사랑에 빠졌던 적이 있다. 그는 직업적인 관심을 내세워 사랑하는 여인으로부터 이전에 겪었던 여러 가지 성적 체험들을 털어놓도록 꼬드겼다. 꼬드긴 대가로 그는 수많은 경험담을 들어야만 했고, 그러면서 그 얘기를 듣고 있는 동안의 끓어오르는 질투심을 도저히 참을 길이 없었다. 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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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불안을 안다<히치콕과의 대화>20세기를 벌벌 떨게 한 연쇄살인자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은 엄청난 겁쟁이였다. 다섯살의 어느 날 앨프리드는 너무 늦게 귀가했다. 아버지는 막내의 손에 쪽지를 들려 동네 경찰서로 보냈다. 메모를 읽은 서장은 다짜고짜 꼬마를 유치장에 가뒀다. 끔찍한 공포의 5분이 흐른 뒤, 경찰과 감옥은 소년에게 평생 원수로 각인됐다. 히치콕 영화 속에서 번번이 도움이 되지 못하고 거치적거리는 무수한 경찰들은 복수의 제물이라고 볼 수 있다. 훗날 <싸이코>에서 별 활약도 없는 보안관의 장면이 군더더기 아니냐는 질문에 히치콕은 “경찰서에 도움을 청하면 어떻게 되는지 완벽히 보여줬다”고 흡족해했다.예수회 학교의 몽둥이는 앨프리드의 죄와 벌 노이로제를 악화시켰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그는 벽에 등을 붙이고 뿌루퉁한 아랫입술을 내밀고 남들 노는 모습을 구경만 하는 냉소적 관찰자였다. 약삭빠른 자기 PR의 귀재로 알려진 전성기에도 히치콕은 마음 깊은 곳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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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의 본능, 광란의 열정<올리버 스톤> 1, 2위대한 정신이 광기와 동류인 것은 거의 분명하다. 그들을 구분하는 것은 얇은 칸막이에 지나지 않는다. - 존 드라이든(1631∼1700)올리버 스톤을 처음 만났던 영화는 <플래툰>이다. 인간 내부의 선과 악이란 관점에서 베트남전을 그린 <플래툰>을 보고는, 미국인의 자기변명이라고 생각했다. <JFK>와 <올리버 스톤의 킬러>를 본 뒤에도 그런 생각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촬영과 편집은 언제나 최고였고, 자유자재로 배우들을 다루는 솜씨도 탁월했지만 너무나 선명한 메시지가 거슬렸다. 올리버 스톤은 늘 큰 목소리로 뭔가를 설명하려 들었다. 그 강압적인 태도가 싫었다. 그런데 <올리버 스톤>(컬처라인 펴냄)을 읽고, <U-턴>을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올리버 스톤은 논쟁적인 감독이다. <코난>과 <스카페이스>의 시나리오를 썼을 때는 ‘파시스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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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급영화 제왕의 A급 고백<나는 어떻게 할리우드에서 백편의 영화를 만들고 한푼도 잃지 않았는가>로저 코먼 지음·김경식 옮김 | 열린책들 펴냄 | 2000년 1월로저 코먼이 그리스에서 <아틀라스>(1960)라는 영화를 찍을 때의 일이다. 그는 대규모 전투신을 찍기 위해 그리스군 500명을 동원받기로 했다. 그러나 촬영장에 나타난 인원은 고작 50명이었다. 누군가가 실수로 ‘0’을 빠트린 것이었다. 원래 시나리오에는 대규모 군대로 되어 있었지만 로저 코먼은 촬영에 들어가기 전 재빨리 대사를 수정했다. “이 적은 병력을 가지고 어떻게 저 거대한 성을 공략하시렵니까? ” 프락시메스의 답 역시 바뀌었다. “소수정예의 헌신적이고 잘 훈련된 병사들은 아무리 많은 오합지졸이라도 물리칠 수 있다는 것이 나의 교전신조요.” 자랑스럽게 이 일화를 이야기하던 로저 코먼은 말한다. “이것이 바로 나의 영화제작 신조입니다.”뉴월드영화사, 콩코드-뉴 호라이즌 등을 경영하며 “300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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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리즘-본 대로, 판타지-느낀 대로<펠리니>전후에 페데리코 펠리니는 동료들과 함께 미국인을 상대로 초상화를 그려주는 상점인 ‘퍼니 페이스 숍’(Funny Face Shop)을 열었다. 어느 날 이 상점에 로베르토 로셀리니라는 영화감독이 모습을 드러냈다. 당시 로셀리니는 파시스트에 살해당한 신부의 일대기를 그린 단편영화를 만들 생각을 갖고 있었고 이 영화에 알도 파브리치라는 배우를 쓰고 싶어했다. 마침 펠리니가 파브리치와 알고 지내던 사이였기에 로셀리니는 자기 영화에 이 배우를 출연하게 있게 설득해줄 수 없겠느냐고 펠리니에게 부탁하러왔던 것이었다. 이게 계기가 되어 펠리니는 나중에 네오리얼리즘의 걸작으로 남을 로셀리니의 영화 <무방비 도시>(1945)와 <전화의 저편>(1946)에 조감독과 시나리오 작가로서 참여하게 된다.펠리니와 로셀리니의 만남은, 펠리니의 작품 세계에 대해 어느 정도 들어본 사람이라면 사실 의외의 일로 다가올 만한 것이다. 펠리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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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이 있는 거리, 성당이 있는 풍경<비열한 거리>1986년 자신의 영화 <라운드 미드나잇>의 주요 배역에 마틴 스코시즈를 출연시켜야겠다고 결심한 베르트랑 타베르니에는 스코시즈를 찾아가 이렇게 말했다. “마티, 자네는 반드시 이 영화에 출연해야 해. 그 클럽의 주인은 자네와 똑같거든. 좋은 사람이면서도 엄청나게 잔인한 인간이란 말일세.” 타베르니에는 스코시즈의 이중성을 잘 알고 있었다. 폭력에의 심취와 영적 구원을 향한 열망이라는 이중성 말이다. 그리고 그 불화하는 이중성이야말로 스코시즈 영화의 가장 깊은 속살, 혹은 유년기의 정신적 낙인 같은 것이기도 하다.총소리가 일상적 소음이었던 뉴욕의 리틀 이탈리아에서 자란 스코시즈는 “동네에서 가장 힘센 존재는 거리의 터프 가이들과 성당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그래도 성당의 힘이 더 마음에 끌렸던 모양이다. “조직에 속한 이들은 신부에게 깊은 존경심을 보였는데… 무서운 사내들이 신부들에게 꼼짝하지 못한다는 것은 나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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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디렉터스 북?김기영, 오시마 나기사 등 그밖의 감독들의 초상<하녀들 봉기하다: 영화감독 김기영> | 이효인 지음 | 하늘아래 펴냄김기영은 한국 영화계의 UFO 같은 존재였다. 이 사실은 <하녀> <육식동물> <이어도> 등 그의 영화뿐 아니라, 김기영 그 자신에서 드러난다. 저자인 이효인은 인터뷰를 위해 김기영을 1993년 혜화동 자택에서 만난다. 그곳에서 그는 기이한 풍경을 목도하고 마는데, 그건 김기영과 부인이 꽁치 통조림을 하나씩 들고 묵은 떡과 밑반찬이 차려진 상 위에서 만찬을 갖는 모습이었다. 물론 이는 이효인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영화가 “대부분이 돈 때문에 한 겁니다”라고 태연하게 말했던 김기영의 허영없는 모습을 드러내는 작은 일화일 뿐인지도 모른다. 김기영에 대한 본격적인 평전이나 연구서라 말할 수는 없지만, 이 책에는 그와 관련된 생동감 있는 이야기들이 적혀 있다.<오시마 나기사의 세계> 사토 다다오 외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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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영과 이해준은 ‘별난’ 형제다. 피를 나눈 적 없으니 얼굴도, 성격도 딴판이다. 그렇담, 이들을 맺어준 삼신 할매는 누굴까. 대학시절, 전업 작가를 꿈꾸며 도원결의 했지만 다들 권하는 배양 코스 대신 서로에게 자양분을 나눠가며 시나리오 작업에 매달린 지 10년. 제작사들을 돌아다니며 문전걸식하던, 영화가 낳은 이란성 쌍동이 형제는 이제 충무로에서 주목받는 젊은 시나리오 작가가 됐다. 이름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얼굴을 텄다는 이들 형제가, 함께 시나리오 작가가 되기까지, 털어놓은 진실 혹은 대담. - 편집자(해)영 이름이 비슷해서 형제냐고 그러죠.(해)준 사귄다는 말도 있어.영 워낙 붙어다니니까. 기분은 별로지만 그 정도는 참아야지.준 근데 ‘형제인데 서로 사귄다’는 소문은 또 뭐야. 그건 너무 가혹해.이해영과 이해준. 스물아홉 동갑내기다. 1년 전부터 분당에 조그만 아파트를 얻어 함께 살고 있다. 비슷한 이름에다 동거인이라는 사실 때문에 형제 혹은 남매, 심지어 연인이라는
<품행제로>의 `별난 형제` 작가 이해영,이해준 이야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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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넘게 ‘언더’에서 활동하면서 뼈저리게 느낀 것은 “작가되기 쉽지만 또한 ‘작가’되기 어렵다”는 현실. 제작사 타이틀을 내건 신생 영화사들까지 영화사는 수백여개, 하지만 정작 1년에 선보이는 영화는 고작 50여편에 불과한 상황에서 “100고까지 쓴다고 해도 제작비에 전혀 차질을 주지 않는” 작가 지망생이야말로 소모품 그 자체였다. 일선에서 떨었던 이들은 일단 충무로에서 후퇴를 선언한다. 해영은 영화제작사 이스트필름 기획실에 입사했고, 해준은 한때 운영했던 안암동의 한 커피숍으로 돌아간다. 대신 해준의 일터를 아지트 삼아 밤새 아이템 회의를 하다 2∼3시간 눈붙이고 나서 해뜨면 각자의 일터로 떠나는 주경야독의 시기였다. 도중 <퇴마록>의 각색을 맡기 위해 마케팅 기획서까지 포함한 시나리오를 첨부했지만, 제작사로부터 아무런 이유도 듣지 못하고 3분 만에 거절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그러기를 1년여. 이들은 <반칙왕>의 프로듀서였던 이미연 감독의 소개로 봄 영화
<품행제로>의 `별난 형제` 작가 이해영,이해준 이야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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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해 영1973년 서울 출생.유년시절, 음악에 빠져 살았음(지금도 시나리오 작업할 때 볼륨 ’이빠이’ 틀어놓음. 직접적인 영감을 받는 것은 아니지만, 대사가 씹히거나 그럴 때는 장르와 연관 있는 음악을 취사 선택함. 혹 지방에서 작업할 땐 어떤 CD를 가져갈 것인지 매번 고민)틈나면 청계천에서 구한 B급 난도질 영화를 보며, 인간은 과연 몇등분 될수 있는가도 연구했음(아직까지 해답을 구하진 못함).그 놈의 시간이 그래도 남으면 공부도 좀 했음.하지만, 자식들만큼은 너른 분야에서 고루 활동하기를 바라는 아버지를 둔 탓에 고등학교 때 이과를 선택해야 했고, 수와 관련된 학문과 체질적으로 궁합이 맞지 않은 탓에, 아쉽게도 책을 손에서 놓을 수밖에 없었음.대학입시 때 2교시 수학시험을 시작으로 백지 제출함.엄한 아버지한테 일방적으로 깨지면서 소극적 저항에 대해 조금 후회했음.서울예대 광고창작과에 입학한 뒤 평범한 삶을 꾸리려 했으나 과 선배였던 개그맨 남희석으로부터 “눈빛이 음흉하기 짝
<품행제로>의 `별난 형제` 작가 이해영,이해준 이야기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