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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누아르의 영광이 돌아오는가?
진가신의 <첨밀밀>은 홍콩영화 특유의 호들갑스러움을 등졌었다. 디아스포라(이산)의 상흔이 개인에게 착지한 묵직한 로맨스였고, 영화는 성공했다. 왕가위의 <해피투게더>나 <화양영화>, 더 거슬러 <중경삼림>도 허공에 뜬 냉소나 절망은 아니었다. 이 진지한 낭만주의는 자신에게 열광하는 대중을 목격했으나 쇠락하는 홍콩영화를 구원하지는 못했다. 그런데 <무간도>라는 한편의 영화에서 드디어 탈출구를 찾은 것마냥 홍콩이 들썩거렸다. 누아르라는 장르의 힘 때문이었다. 마침내 홍콩 누아르의 영광이 되돌아오는 게 아니냐는 기대감 같은. 정작 ‘홍콩 누아르’라는 이름을 붙여준 한국에선 침착했다. 홍콩 누아르의 재림이라기보다 아련한 향수를 세게 자극해준 일종의 돌연변이쯤으로 받아들였다. <무간도2 혼돈의 시대>(12월5일 개봉)는 우리에게 좀더 분명한 태도를 요구하는 것 같다. 홍콩 누아르에 어떤 진
원조 갱스터와 필름누아르를 교배한 <무간도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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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와 캐릭터를 살렸다
<무간도> 1편과 2편의 각본은 흐트러짐이 거의 없다. 그런데 각본에다 감독까지 맡은 맥조휘(Alan Mak)에 대해 국내에 알려진 건 거의 없다. 공동으로 연출한 유위강은 1985년 촬영감독으로 데뷔한 뒤 연출과 촬영을 병행하며(<무간도> 1편은 크리스토퍼 도일이, 2편은 유위강이 촬영했다), 홍콩영화의 영광과 수난을 함께하고 있다. 그의 최근작은 <풍운> <중화영웅> <동경용호투> <소살리토> 등인데, 이 필모그래피만으론 <무간도> 시리즈를 상상하기 어렵다. 그래서 맥조휘 감독이 더욱 궁금해진다. <War Named Desire, A> 등을 연출한 그는 <홍콩 시티 엔터테인먼트>가 선정한 10명의 촉망받는 감독 중 한명으로 꼽히기도 했는데, 지금은 그 이상의 평가를 받고 있을 게 틀림없다.
-어떻게 영화일을 시작했고, 어떻게 자신의 재능을 키워왔나.
원조 갱스터와 필름누아르를 교배한 <무간도2> [2] - 맥조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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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판에서 벌인 질펀한 굿 한 마당
이른바 이윤택을, 전투적인 표현을 빌려 문화게릴라, 온화하게는 전방위예술가라고 부른다. 그만큼 문화계의 이곳저곳을 발판으로 살아왔다는 말이다. 그가 자신이 연출한 연극 <오구>를 영화로 만들었다. 네살 적 영화애로 시작하여, 연극 <오구>의 이야기를 거쳐, 다시 영화 <오구>에 이르기까지 1인칭 ‘나’로서 이윤택이 들려주는 ‘인문학적 상상력과 영화메커니즘의 만남’에 대한 고백록이 여기 적혀 있다.
영화와의 조우
내가 영화를 처음 본 것은 네살쯤이었던 것 같다. 아버지 등에 업혀 동네 인근 초량극장에 갔는데, 거기서 처음 본 영화가 존 웨인 주연의 <서부 삼형제>였다. 두형이 시내에 나간 사이 목장에 도둑들이 들이닥쳤고, 소발굽에 밟혀 죽는 막내동생의 모습이 너무 처참해서 나는 소리내어 울었던 것 같다. 극장 안은 너무 추웠고, 아버지가 사준 카스테라가 상했는지 극장 안에서 생똥을 쌌다.
하여
영화 <오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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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택 감독 영화에는 누구도 투자하지 않는다
나이 오십에 들어서야 첫발을 내디디는 나의 감독 입문은 예상대로 순탄치 않았다. 내가 쓴 시나리오는 메이저급 투자사에 설득력을 주지 못했다. 시나리오와 촬영 콘티까지 제출했는데 돌아오는 대답은 다시 시나리오 작업을 시작해보자는 것이 아닌가. 아니 일년이 넘게 시나리오를 뜯어고치고 촬영 콘티까지 제출했는데 왜 다시 시나리오 작업을 해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누가 시나리오 작업을 한다는 것인가. 시나리오에 문제가 있다면 촬영을 진행시켜나가면서 감독과 촬영 스탭에 의해 자연스럽게 수정되는 것이지 않은가. 누가 책상머리에 앉아서 시나리오를 칼질한단 말인가. 이런 나의 생각이 돈키호테가 되는 세상이 온 것이다. 촬영감독이면서도 프로듀서를 겸했던 최두영 감독은 투자사를 찾아다니다 지친 발걸음으로 종로 여관방에 들어와 울분을 터뜨렸다. “대한민국의 그 어떤 투자사도 이윤택 감독의 영화에 투자하지 않습니다!” 그 순간 여관방에 둘러앉
영화 <오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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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지된 욕망, 과잉의 미학
박찬욱 감독의 5번째 장편영화 <올드보이>가 11월21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시사는 단 한번뿐이었고, 영화의 내용은 비밀에 붙여지고 있다. <올드보이>가 감추고 싶어하는 것에 대한 우회적인 코멘트와 박찬욱 감독이 직접 보내온 가상의 ‘셀프 인터뷰’를 묶어 그 궁금증을 대신한다.
기억나는 대로 대사를 적어본다. 오대수와 이우진의 문답. “넌 도대체 누구냐?” “에이, 질문이 틀렸어요. 왜냐고 물어야죠.” “왜 날 가둔 거냐?” “아니죠, 이우진은 왜 오대수를 가뒀을까, 가 아니라 이우진은 왜 오대수를 풀어줬을까, 이렇게 물어야죠.” 이것이 <올드보이>의 미스터리를 푸는 방법론이다. 평범한 샐러리맨 오대수가 어느 날 갑자기 영문도 모른 채 8평짜리 사설감금소에 갇힌 이유가 드러나면서 영화는 첫 번째 비밀의 문턱을 넘는다. 그리고는 15년이 지난 뒤 이유없이 오대수를 풀어준 이우진의 그 행동이 두 번째 더 큰 비밀의 문턱으로
매력적으로 뻔뻔한 <올드보이>와 박찬욱 감독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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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짐승만두 못한 감독이어도 살 권리는 있는 거 아닌가요, 네?!”
씨네 | 우선, <올드보이>를 만들어놓고 제일 뿌듯해 하시는 부분은?
박 | 두 시간 안쪽으로 끊었다는 겁니다. 앞으로 봉준호, 이재용, 강우석, 이런 감독님들 만나면 이렇게 얘기해주려구요. “어유- 어떻게 두 시간 넘는 영화를 만들어요, 그래? 나 같으면 힘들어서 못하겠네….”
씨네 | 그럼 <올드보이>는 정확한 러닝타임이…?
박 | 한 시간 오십구분 삼십팔초.
씨네 | (한숨 한번 쉬고)… 또 하나의 복수극이라… 물리지도 않나요?
박 | 왜- 여기서 실명을 밝힐 수는 없음을 이해하시고- ‘연애박사’ 허모 감독한테는 그렇게 안 물으면서 나만 갖구 그러나요?
씨네 | 그래도… 비슷한 영화 또 만들기가 그렇게도 싫다더니 이 어인 일인지요.
박 | 글쎄, 허진호도 자기가 비슷한 영화를 또 만들었다고는 생각 안 할걸요?
씨네 | 그렇다면 <복수는 나의 것>과 &l
매력적으로 뻔뻔한 <올드보이>와 박찬욱 감독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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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 | 배우가 눈이 가늘면 뭐가 좋은데요?
박 | 뭐에 좋다는 게 아니라, 그냥 나하고 닮았기 때문에 맘에 든다 이거지… 지태씨는 무용과 요가로 단련된 그 긴 몸을 우아하게 움직이죠. 극중 이우진이라는 자가 지닌 기품이 거기서 나와요. 하지만 어떤 땐 조금 야비한 면을 내비치기도 하죠. 재산과 교양에 의해 감춰진 악마가 잠깐씩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들… 성장을 멈춰버린 애어른, 어떤 의사도 진단해내지 못할 만큼 잘 위장된 정신이상의 징후… 유지태는 이런 성격을 완벽하게 표현해냈던 겁니다, 그 긴 몸과 그 가느다란 눈으로….
씨네 | 강혜정양의 매력은 뭐죠?
박 | 그야 물론 살짝 걷어 올라간 윗입술이죠. 감독들이 대개, 남자고 여자고 함께 일할 배우 얼굴을 유심히 관찰하잖아요. 어떻게 찍어줄까 하고. 그래서 현장에서 그걸 써먹게 되는데, 이번엔 유지태가 혜정양을 보는 시점 쇼트가 그런 경우였어요. 비스듬히 뒤에서 바라본 그녀의 얼굴 클로즈업이죠. 그때 그 살짝 걷어 올라간 윗입
매력적으로 뻔뻔한 <올드보이>와 박찬욱 감독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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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드인 USA의 義峽을 보다
<킬 빌>이 상영되는 극장 안, 뒤에서 누군가 끊임없이 껄껄 웃는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웃음 소리인데? 거 참 많이 거슬리네…. 그는 거의 모든 장면을 껄껄거리며 보다가 마지막 결투장면에 가서는 “야, 이 영화 정말 웃긴다”라며 극장 안의 사람들이 다 듣게 말한다.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물론 내 친구였다. 그는 홍콩 무협영화라고는 한편도 안 본 친구였는데, 영화가 끝나고 나와 마주치자 첫 마디가 “이 영화 정말 웃긴다”였다. “뭐가 그렇게 웃긴데?” 하려다가 나의 감언이설에 속아 귀한 시간을 쪼개 영화를 보러온 또 다른 친구가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을 보고 마음이 쓰인다. 물론 그의 표정 역시 잘 봤다는 그런 종류의 것은 아니었다. 동료들과 친구들이 모여들고 우르르 몰려 커피를 마시러 갔다. 내가 눈치를 보며 자신없는 목소리로 “짝퉁이 짱깨 영화 봤으니까 이과두주에 탕수육 먹어야 하는 거 아냐?” 했지만 모두들 못 들은 척한다. 자리를
타란티노의 귀환 [3] - <킬 빌> 감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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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창한 이야기꾼 혹은 거짓말쟁이
타란티노의 ‘영화는 모두 다 혼돈인 채로 존재한다. 지금까지 봐온 영화가 아무런 부끄러움도 없이 들어가 있다. 그의 영화제작 자체가 영화에 대한 트리뷰트 행위다’ . 쿠엔틴 타란티노가 만들어낸 세계가 현실과 부딪치면, 그 세계는 순식간에 증발해버린다. 타란티노가 <올리버 스톤의 킬러>가 자신의 작품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그것이다. “내가 쓴 것은, 약간 비현실적인 세계를 방랑하는 오락영화다. 하지만 올리버 스톤은 사회적인 문제의식을 전면에 내세운 작품으로 만들었다. 영상만으로 본다면 굉장히 테크닉이 좋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와 이야기한 뒤, 그가 하고 싶어하는 것과 나의 시나리오 사이에는 공통점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영화 속에서 모든 것을 설명하고 싶어한다. 내 경우는, 설명하지 않은 채 그냥 놔둔다. 그는 테마를 보여주고, 주장하고, 영상으로 보여준다. 관객이 영화관을 나올 때, 무언가 문제의식을 느끼지 않으면 속이 풀리
타란티노의 귀환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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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키 브라운> 이후 6년 만에 돌아온 쿠엔틴 타란티노의 <킬 빌>은 전작들과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더욱 더 순수한 영화광의 자세로 돌아갔다고나 할까. 아니면 그냥 제멋대로 한바탕 난장을 벌였다고나 할까. 홍콩의 무협영화, 일본의 사무라이 영화와 야쿠자영화, 스파게티 웨스턴 등의 장면과 스타일을 그대로 가져와 짜깁기한 <킬 빌>은 무척 자극적이면서도 한없이 가벼운 영화다. 팔다리가 잘려나가고, 피가 분수처럼 솟구치는 폭력의 향연 속에서도 희한하게 웃음이 터져나온다. 일부에게는 순수한 오락이며 유희이지만, 누구에게는 지나치게 가벼운 제스처에 불과한 영화 <킬 빌>은 타란티노의 전작들처럼 논쟁적이다. 하지만 한편의 영화를 두편으로 나누었고, 이제 전반부만을 본 상태에서 <킬 빌>을 판단하기는 이르다. 우선 <킬 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 타란티노가 좋아했던 그 ‘싸구려영화’들의 흔적과 지난 6년의 과정을 훑어보았다. 그리고
타란티노의 귀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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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보다는 폭력을
영화 <스타십 트루퍼스>- 소설 <스타십 트루퍼스>
로버트 A. 하인라인은 폐결핵 진단을 받고 젊은 나이에 제대한 해군장교였다. 그는 6년 뒤 제2차 세계대전에도 지원했지만, 같은 이유 때문에 다시 한번 거절당했다. 밀리터리SF라는 장르를 확립한 <스타십 트루퍼스>는 군인으로 살고 싶어했던 하인라인이 한을 푸는 것처럼 치밀하게 써낸 소설이다. 군대와 우주, 한몸처럼 행동하는 집단과 미지의 공간. 하인라인은 소년들이라면 마음 설레지 않을 수 없는 두 가지 소재를 선택해서 우직한 성장담으로 세상에 내놓았다.
폴 버호벤이 영화로 만들었을 때 비판을 불렀던 것처럼, <스타십 트루퍼스>는 파시즘에 가까운 미래세계를 배경으로 삼는다. 이곳에선 군인으로서 복무 기한을 마치지 않으면 시민권을 얻을 수 없다. 눈에 띄는 차별을 받는 건 아니지만,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누릴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조니 리코는
그 영화가 소설이였다고? 영화를 낳은 원작소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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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부터 <태양은 가득히>까지, 영화를 낳은 원작소설 10選
이건 정말 해묵은 이야기다. 영화와 문학이 피를 섞은 것은 영화가 줄거리를 갖게 된 무렵부터니까 말하나 마나다. 두 장르가 엮이는 방법도 시대와 더불어 가지를 쳤다. 각색은 기본. 잉마르 베리만, 크리스토퍼 햄튼, 장 콕토, 데이비드 마멧 같은 ‘투잡스’도 많았고, 비슷한 시기 탄생한 모더니즘 문학과 영화는 시간과 이미지를 편집하는 법을 서로에게 배웠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영화가 세를 불린 뒤로는 새로 나온 영화의 사진으로 표지를 갈아치운 고전의 개정판이나, 시나리오의 행간을 메워 이야기를 얽은 ‘영화소설’까지 서점 한 코너를 번듯이 차지하게 됐다. 그렇지만 “영화는 영화이고 문학은 문학이다”라고 잘라 말하는 냉정한 관전평이 여전히 우세하다. 만약 정말 위대한 문학이라면 언어라는 매체에 꼭 들어맞는 내용을 지녔다는 뜻이니 숙명적으로 좋은 영화로 냉큼 변신할 수 없다는 명쾌한 논리도 있다.
그 영화가 소설이였다고? 영화를 낳은 원작소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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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이문식(37)은 ‘김밥족’을 경멸했다. 스케줄이 너무 빡빡해요, 차량으로 이동하며 김밥으로 끼니를 때워요, 징징대는 스타들을 대할 때마다 그는 “부귀영화를 얼마나 보겠다고 저러느냐”며 혀를 찼다. 그런데 요즘엔 그 말이 목구멍 안으로 쏙 들어갔다. 꼬들꼬들한 밥에, 뜨듯한 국물을 대한 지 그 또한 오래됐기 때문이다. <공공의 적>(2002)에서 ‘강동서 강력반 강 형사’를 몰라보고 “자신의 직업은 양아치”라고 깝치다가 강철중에게 죽어라 엊어맞는 산수 역으로 얼굴을 알린 지 1년. 이후 올해 개봉한 출연작만 <역전에 산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 <나비> <오! 브라더스> <황산벌> 등 5편이다. <다모>와 <죽도록 사랑해> 등 드라마 2편도 겸한데다, 뒤이어 <범죄의 재구성>과 <어깨동무> 촬영차 전국을 누비는 탓에 좋든 싫든 그도 ‘김밥족’의 일원이 됐다. 잡혀 있던
`거시기` 이문식의 산전수전 스토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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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전수전 3 | 카메라 앞에 서기
이 무렵 알음알음 지인들의 소개로 영화촬영장에 얼굴을 내밀기도 했다. “카메라가 어딨는지도 모르고 뛰라면 뛰고, 서라면 서야 했던” 시절이었다. 그는 아는 후배의 소개로 단역으로 출연했다 수모를 당한 <러브스토리>(1996)와 <초록물고기>(1997)를 잊지 못한다. “비디오점 주인이었는데, 배창호 감독님은 보폭이나 손높이까지 자신이 원하는 그림이 안 나오면 다시 가야 해요.” 연극을 했다면서 그것 하나 단박에 못해낸다고 타박을 먹었던 걸 생각하면, 지금도 식은땀이 흐른다.
구박이라면 이창동 감독 또한 뒤지지 않았다. 심혜진에게 수작 걸다 한석규의 제지로 뜻을 이루지 못한 양아치 중 한명으로 나왔던 그는 상대가 상대인지라 집단 구타하는 장면에서 멈칫거리다 감독으로부터 “니네 뭐하다 온 새끼들이냐?”는 불호령을 들어야 했다. 참다 못한 이 감독은 직접 시범을 보이기까지 했고, 상대배우인 한석규가 “우리 한번에 갑시다. 괜찮
`거시기` 이문식의 산전수전 스토리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