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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가장 흥분을 자아내는 국가다”
이메일로 날아온 해리의 유쾌한 답변
-이 세상은 ‘영화의 애인’을 자처하는 사람들로 포화상태인 것 같다. 당신은 영화를 향한 자신의 애정을 어떻게 설명하겠는가? 그리고 그 시작은 무엇이었나.
=뭐라 해야 할까. 나는 필름을 숨쉬고 영화를 마시며 활동사진을 꿈꾼다. 나는 영화를 석양이나 키스를 기다리는 입술처럼 사랑한다. 영화에 대한 애착은 텍사스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했던 부모님을 통해 시작됐다. 두분은 영화 포스터, 소도구, 기념품을 파는 텍사스주 오스틴의 상점에서 나를 양육했고 미국 전역의 영화제에 데리고 다녔다. 어린 나의 베이비시터는 자니 와이즈뮬러(첫 번째 <타잔>의 주연배우)였고 1930, 40, 50년대의 B급영화 스타들과도 각종 행사장에서 만났다. 부모님은 비디오가 탄생하기 이전 16mm 필름을 수집했고 비디오가 발명되자 우리는 모든 것을 녹화하고 사들였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나를 외국어영화와 무성영화 그리고 모
논란의 영화사이트 Ain’t It Cool News의 운영자 해리 놀즈 스토리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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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껄이고 싶은 대로 지껄이다
‘할리우드를 투견장으로 만든 장본인’이라는 평가가 내려진 것도 바로 이때부터였다. 할리우드의 제작, 배급사들과 비즈니스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 기존의 언론과는 완전히 차별화된, 그야말로 영화 마니아의 시각에서 만들어진 신작 영화평과 정보들이 AICN을 유명하게 만들면서 관련 당사자들간에 논쟁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영화에 대한 혹평을 넘어 재촬영설이 AICN을 통해 기사화된 뒤, 그에 대해 감독이 공식적으로 불쾌감을 표시하고 스튜디오가 소송설 가능성 등을 내비췄던 <배트맨 앤 로빈>은 아주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또 다른 예는 정작 제작사가 천문학적인 제작비와 늘어진 제작기간으로 흥행에 자신감을 가지지 못했던 <타이타닉>에 대해, AICN이 ‘최고의 작품’이라는 평을 내보낸 일이었다. 결국 두 경우 다 AICN의 평이 옳았음이 흥행결과로 증명되었고, AICN을 일약 할리우드의 가장 뜨거운 감자로 부상하기에 이른다.
재
논란의 영화사이트 Ain’t It Cool News의 운영자 해리 놀즈 스토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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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이라는 거대한 그물 모양의 신종 장난감은 다양한 분야에서 권력이동을 일으켰다. 영화도 예외가 아니어서 영화의 생산자와 소비자가 소통하고 힘을 겨루는 방식 역시 대변동을 겪었다. Ain’t It Cool News 사이트의 창립자이자 지휘자인 해리 놀즈(Harry Knowles)는 그러한 소용돌이 속에서도 우뚝하다.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영화로 잘 알려진 <슬랙커>들의 고향 텍사스주 출신의 해리 놀즈는, 병상 생활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영화에 관한 자유로운 수다 사이트를 구상했고, 신속하고 여과되지 않은 소문과 프리뷰를 서슴없이 게재해 기존 저널을 압도하는 ‘권력’으로 성장했다.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들이 밀월하기를 원하고, 미국 시장 진출을 원하는 비할리우드 영화인들이 지원을 청하는. 급기야 <엔터테인먼트 위클리>와 <프리미어>의 파워 100에까지 선정된 해리 놀즈는, 이제 주류 할리우드의 경계뿐 아니라, ‘과연 게릴라인가? 박쥐인가?’를
논란의 영화사이트 Ain’t It Cool News의 운영자 해리 놀즈 스토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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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20대예요
봉준호 | 다음 영화는 아직 못 정했죠?
임수정 | 예.
봉준호 | 에브리바디가 다 궁금해하는데, 어떡할 거야, 빨리 정해야지. 해도 바뀌는데 어떡할 거야. 먹고살아야지. (웃음) 고민이 많죠?
임수정 | 너무 고민이 많아요. 사람들의 기대치가 너무 높아진 것 같아요. 제가 어디선가 과대평가된 것 같다는 말도 가끔 했는데, 어떤 분위기에 휩쓸려서 내가 여기까지 온 것 같다는 생각이 가끔 들어요. 그 기대치에 부응할 만한 작품을 선별하고, 그 작품에 몰입해서 제대로 연기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드니까 작품을 고르기가 어렵더라고요. 부담감도 커지고….
봉준호 | 작품을 결정할 때, 장르, 시나리오, 캐릭터, 감독 등도 볼 텐데 그중에 굳이 우선순위를 나열한다면 어떻게 되나요?
임수정 | 일단은 캐릭터에 대한 연민이 있어야죠.
봉준호 | 연민? 넓은 의미에서의 연민? 동정하는 게 아니라?
임수정 | 그렇죠 연민. 거기에는 동정도 있을 수 있겠죠. 아, 이 캐릭
봉준호 감독, 2004년 최고의 기대주 임수정을 만나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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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딴사람 같아요.” 성숙한 여인의 모습으로 변신한 임수정에게 봉준호 감독이 인사말을 건넸다. 지난 연말 각종 시상식을 함께 누비며 서로 얼굴은 익혔으나 깊은 대화를 나눠보지 못한 배우에 대한 감독의 인터뷰는 그렇게 시작됐다. 2003년 <장화, 홍련>과 <…ing>에서 신인답지 않은 성숙한 연기를 펼쳐 충무로 최고의 기대주로 떠오른 임수정에게 봉준호 감독은 한 사람의 감독이자 팬으로서 시시콜콜한 질문까지 퍼부었다. 반면 임수정은 이날 인터뷰를 위해 <장화, 홍련>과 <…ing>를 ‘복습’할 정도로 세심한 준비를 했던 봉준호 감독의 질문에 거침없고 솔직하게, 그리고 똑 부러지게 답했다. 꼼꼼한 감독과 대범한 배우가 나눈 대화를 정리한다.
봉준호 | 수정씨를 보면서 늘 묘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얼굴은 나와 다른 세상의 사람처럼 생겼거든요. 그런데 <…ing> 같은 영화를 보면 말과 행동이나 이런 것은 일상적인 것을 너무
봉준호 감독, 2004년 최고의 기대주 임수정을 만나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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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늪에 빠지지 말라
아시아라는 지역 단위의 사고가 왜 필요할까? 일단 일본의 ‘대동아공영론’이나 대만의 ‘서진 이데올로기’와 ‘남진론’은 모두 제국주의와 민족주의가 만들어낸 ‘문화상상’이라는 점에서 아시아의 비판적 지성이 다루는 아시아적 상상과 배치된다는 점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오랜 시간 동아시아 담론에 집중해온 창비가 최근 펴낸 <동아시아의 비판적 지성> 시리즈에 등장하는 지식인들은 국민국가는 당분간 계속 존재할 것이지만 국민, 민족, 인종 같은 범주에 빠져 있어서는 식민주의가 구축해놓은 자기 정체성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고 본다. <인터-아시아 문화연구>의 주간인 천쾅싱은 90년대 후반 대만의 야당조차 동조했던 ‘남진론’이 “주변에서 중심으로 진입하고자 하는 피식민자의 욕망”이라고 단정한다. 천쾅싱은 라캉의 거울이론을 통해 이른바 ‘식민지 정신분석학’이라는 이론적 기초를 형성한다. 즉 피식민자는 식민자를 자기의 거울이미지로
아시아 영화 네트워크, 불꽃놀이를 시작하다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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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문화산업의 재편
최근 <인터-아시아 문화연구> 2003년 봄호에 아시아영화에 대한 특집을 기획, 편집하면서, 미국의 새로운 웹진 <트랜스-아시안 스크린즈>(Trans-Asian Screens)에 초청 편집자로 참여하면서, 공동 편집자인 아쉬쉬 라쟈디약샤 그리고 크리스 베리 교수와 함께 아시아영화의 쟁점이 무엇인가를 집중적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첫 번째 쟁점은 문화산업의 재편이다. 즉, 이제까지 영화산업에 대한 영화연구가 산업자본이라는 틀 속에서 이루어졌다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만이 아니라 아시아의 지역 블록버스터들을 다룰 수 있는 틀은 금융자본이며 이것은 문화산업을 3H, 즉 고비용, 고도의 기술, 고도 투기의 장으로 급속히 변화시키고 있다. 충무로 양식이 한국형 블록버스터로, 또는 황실주도의 영화제작이 타이형 블록버스터로 그리고 인도의 소자본 영화산업이 발리우드로 변하는 것이 그 예일 것이다. 그래서 <인터-아시아 문화연구>의 아시아영화
아시아 영화 네트워크, 불꽃놀이를 시작하다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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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에 대한 무지를 넘어서서 새롭게 대두하는 인터-아시아 연구
튀니지 작가인 압델바힙 메뎁은 “우리는 아라베스크, 전복 그리고 미로와 같은 구축물 그리고 문장과 언어를 끊임없이 탈중심화함으로써 우리를 방어할 것이다. 그래서 타자들이 카스바(북아프리카의 토착민 구역)의 협소한 거리에서처럼 길을 잃도록”이라는 탈식민적 글쓰기 방식을 제안한다. 아시아영화에 대한 글을 위의 인용으로 시작하는 것은 아시아영화라는 범주가 식민주의와 제국주의라는 역사 속에서 태동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탈식민주의 그리고 탈냉전이라는 비판적 틀 안에서 비로소 아시아영화는 자신의 말을 시작할 수 있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영화가 아시아에 유입될 당시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는 대부분 식민지나 반식민 상태였다. 조선 영화계의 나운규의 예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식민시기, 주권이 부재한 가운데 형성된 상상적 ‘내셔널 시네마’는 민족주의를 모태로 자라난다. 아시아영화는 식민주의와 민족주의라는 쌍생아의 후예인 셈이다.
아시아 영화 네트워크, 불꽃놀이를 시작하다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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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는 없다. 할리우드와 홍콩에 배우라
콜럼비아와 작품 계약을 맺은 영화사 봄의 오정완 대표는 “할리우드 메이저들의 전략은 그 나라의 영화제작 활성화가 미진할 때 미리 치고들어갔다가 점차 시장을 다 먹는 것”이라고 했다. 콜럼비아의 중국 전략이 딱 그렇다. 콜럼비아는 10년 전 베이징에 지사를 설립하고 홍콩과 양 날개 전술을 펼치며 가장 좋은 입지를 선점한 것으로 보인다.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중국이 2005년 시장을 전면개방하는 날이 디데이다. 장이모의 <집으로 가는 길>이나 리안의 <와호장룡>은 세계가 인정하는 중국 감독을 기용한 경우이지만 ‘중국 내수용’ 감독을 키우는 공격적 움직임도 보인다. 북방식 베이징 유머를 구사하는 펑샤오강 감독을 선택해 도널드 서덜런드를 출연시킨 <대가의 장례식>이나 허핑 감독에게 <천지영웅>을 만들게 한 경우가 그렇다. <영웅>을 만든 미라맥스도 베이징에 지사를 만들었고, 워너브러더스는
아시아 영화 네트워크, 불꽃놀이를 시작하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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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을 아시아 영상산업거점으로
아시아 네트워크의 구축은 결국 사람과 돈이 함께 섞이는 것이다. 영화제작으로 유입되는 외자 유치의 방식은 아주 다양해지고 있다. 아이픽쳐스는 최근 일본 엔터테인먼트 기업 어뮤즈와 50억원 규모의 공동펀드를 조성했다. 한국영화 제작과 한·일 합작에 대한 투자가 목적인데 작품 선정 단계부터 어뮤즈가 참여하며 한·일 동시 개봉을 원칙으로 한다. 최재원 아이픽쳐스 대표는 “한국영화의 제작자본이 제한적이다. 특히 극장 중심의 자본이 계속 만들어지고 있는 현실에서 외자 유입을 위한 파이프 라인을 만드는 데 1차적 목적을 뒀다”고 말했다. 할리우드 메이저영화는 대부분 컴플리션 본드(완성보증보험)를 통해 만들어진다(스크립과 캐스팅, 감독 등이 정해지면 제작사는 메이저 회사를 찾아간다. 메이저가 구입각서를 써주면 제작사는 컴플리션 본드에 가입하고, 은행은 구입각서와 완성보증보험을 근거로 제작비를 융자해준다). 아시아에선 홍콩 에드코사의 빌콩이 첸카이거의 <시
아시아 영화 네트워크, 불꽃놀이를 시작하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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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주목하는 아시아
2003년 부산영화제 PPP에서 부산상을 받은 구로사와 기요시의 <로프트>를 제작하는 미로비전은 무척 흥이 올라 있다. 이미 시나리오가 나왔고 2004년 봄 촬영에 들어가기 위해 국내, 일본, 유럽쪽으로 나눠 제작비를 조성 중이다. 또 <무간도> 시리즈를 공동연출한 홍콩 유위강의 신작 호러 <파크>의 세계배급 대행을 맡기로 했고, 중국과는 그 나라 감독을 내정해놓고 또 하나의 작품 제작을 진행 중이다. 애초 한국영화의 해외배급 대행으로 시작했던 작은 회사가 아시아 각국의 영화를 세계에 배급하고 합작을 통한 제작까지 그 폭을 넓히게 된 건 불과 2년 사이의 변화다. “한국영화만 전문으로 하는 게 장점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아시아권의 콘텐츠에 대한 허브 역할을 하는 게 전망이 좋다. 2년 전부터 이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아시아 각국이 우리에게 해외배급을 맡기는 건 요즘 잘 나가는 한국영화와 동반상승을 일으켜 세일즈에 보탬이
아시아 영화 네트워크, 불꽃놀이를 시작하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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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약은 부지불식간에 이뤄지고는 한다. 도처에서 조짐을 드러내는 아시아와 한국영화 사이의 질적 변화가 이런 사례가 아닐까. 좀더 솔직해진다면, 궁금증은 2003년 11월8일 예술의전당에서 시작됐다. ‘아시아스크린컬처 연구회’ 주관으로 열린 심포지엄의 주제는 ‘아시안 스크린 컬처 모빌 장르’였다. 국내외 학자들이 발표한 글들은 이런 것이었다. ‘아시아의 스타덤에 대한 몇 가지 질문’, ‘트랜스 아시아 미디어 연구를 위해서’, ‘모바일 혹은 유예된 내셔널 시네마: 국가/무국적/초국적’…. 왜 하필 아시아를 단위로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지 궁금해하자마자 그 의미를 애써 생각해보지 않았던 ‘사실’들이 밀려왔다. 왜 박광수 감독은 부산을 아시아 영화산업의 허브로 만들려고 하는지, 국내 최대의 매니지먼트 회사로 성장한 싸이더스HQ의 대표는 왜 밤낮 해외로 나돌아다니며 초국적 영화제작에 몰두하는지, <장화, 홍련>과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를 연속으로 흥행시킨 영화사 봄의 대
아시아 영화 네트워크, 불꽃놀이를 시작하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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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방적이고 유연하고 합리적인 키위들
피터 잭슨이 아무리 걸출한 인재라 해도, 불과 5년 사이 영화제작의 인프라를 홀로 만들어낼 수는 없었을 것이다. 여전히 의문이 남는 이 대목에서 뉴질랜드인들은 그들의 고유한 성향과 재능을 언급한다. 나머지 세상과 동떨어져 있는 남쪽의 작은 섬나라 뉴질랜드는 외부의 도움을 쉽게 받을 수 없는 곳. “창의적이고 사고가 유연하며 상황 대처능력이 뛰어나다”는 강점이 그런 고립과 결핍에서 비롯됐다는 설명이다. 해외 진출을 지향하는 적극적이고 개방적인 성향도 한몫했다. “미국인은 인구의 10% 정도만이 여권을 갖고 있다. 나라 밖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심이 없다는 뜻이다. 뉴질랜드인들은 해외 교류의 필요성을 절감해왔고, 기질적으로도 여행을 즐긴다. 이런 진취적 기상이 창조성의 근간을 이룬다. 펀딩부터 세일즈까지 자국영화의 인큐베이터 역할을 하는 뉴질랜드필름커미션의 대표 루스 할리의 분석이다. 할리우드에서 뉴질랜드로 역이주한 케이스로, 시각효과 등의 후반작
<반지의 제왕>으로 전환점 맞은 뉴질랜드 영화산업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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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감독 6인이 말하는 오즈 야스지로
감독들이 오즈 야스지로에 대해 말한다. 그러나 그것이 오로지 오즈에 대한 ‘헌사’로서 축소되지만은 않는다. 그들은 오즈를 이해하고 설명하기 위해 자신의 영화적 언어를 사용한다. 때문에 한명의 감독을 말하는 그 속에서 여섯 감독의 영화관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된다. 여기에는 두 가지 정도의 안내가 있다. 첫 번째, 요시다 요시시게는 심포지엄 발표 중 <만춘>의 부녀가 여관에서 머무르는 장면에는 근친상간의 코드가 있다고 지적한다(하스미 시게히코와 동일한 의견). 그 장면은 서로가 “성적 욕구를 느끼는 것”이며, “그들의 대사는 남녀 사이의 애정표현으로서의 그것”이라는 점이다. 이것이 뒤이어 마뇰 드 올리베이라와 허우샤오시엔의 적극적인 해석을 끌어들이는 계기가 된다. 두 번째, 일본의 중견 영화감독들에게서는 그들이 겪어온 ‘오즈 강박증’과 ‘탈출 욕망’의 경험사례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단순한 사물을 지그시 응
오즈 야스지로 탄생 100주년, 그 신화의 현장 도쿄를 가다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