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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훈 감독의 세번째 영화 <포도나무를 베어라>
<벌이 날다>로 데뷔한 민병훈 감독은 모스크바에서 영화를 공부하던 시절 영화감독 세르게이 파라자노프의 생가를 찾아 아르메니아로 떠난 적이 있다. 집만 한채 덩그러니 있는 파라자노프의 생가를 보고 아르메니아의 수도로 돌아오던 민병훈 감독은 도중에 트럭을 얻어 탔고, 운전사가 살고 있는 마을에서 하룻밤 숙소를 마련했다. 그날 밤 운전사의 가족이 찾아와 그가 아프다며 민병훈 감독에게 기도를 부탁했다. 민병훈 감독을 만난 남자는 아르메니아어와 러시아어를 섞어가며 너에게서 내 모습을 보았다, 고 말했다. “나는 신비주의자는 아니지만 이상한 두려움을 느꼈다. 20, 30년 뒤의 내 모습이 내 앞에 현존해 있다면, 그리고 그가 민병훈이 아닌 다른 사람이라면, 어떨까.” 그 기이한 경험이 수년이 지나 <포도나무를 베어라>의 씨앗이 되었다.
신학생 수현은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집으로 돌아오지만 어머니는
부산의 한국영화 7편 [6] - <포도나무를 베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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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석 감독의 두번째 청춘영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자신이 없어요 그런데.” 서투른 순수함으로 가득한 청춘은 냉혹한 세상의 벽에 부딪혀 신음한다. 장편 데뷔작 <마이 제너레이션>으로 카드빚의 늪에 빠진 청춘을 담담하게 직시했던 노동석 감독은 다시 한번 신열과도 같은 젊음의 시간을 스크린에 담아냈다. 낭만의 거품을 걷어낸 청춘의 방황은 여전하지만, 3천만원의 저예산으로 제작됐던 전작과 비교할 때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는 제작 규모가 커졌을 뿐 아니라 연출 또한 한결 안정되고 세련돼졌다. 감독 자신의 표현을 빌리자면, “맨 얼굴”과도 같았던 <마이 제너레이션>에 비해 <우리에게…>는 “화장을 한” 셈이다.
<우리에게…>는 대리운전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기수(김병석)와 그를 친형처럼 따르는 종대(유아인) 이야기다. 기수는 드러머를 꿈꾸지만 현실의 무게 탓에 엄두를 내지 못하고, 세상을 향
부산의 한국영화 7편 [5] -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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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혜 감독의 데뷔작 <여름이 가기 전에>
모진 사랑의 열병 때문에 상처를 입고서 ‘이제 이렇게 바보 같은 사랑은 하지 않을 거야’라고 다짐해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그 맹세란 너무도 쉽고 빨리, 다시금 눈먼 열정에 묻혀버리고 만다는 것을. <여름이 가기 전에>의 주인공 소연(김보경)도 그 부질없는 다짐의 시기를 보내는 중이다. 파리에서 유학 중인 그는 여름방학을 맞아 한국에 왔다가 순수한 남자 재현과 가벼운 만남을 갖고 있다. 하지만, 소연의 마음속에는 한때 파리에서 열렬히 사랑했다 헤어진 이혼남 외교관(이현우)이 여전히 버티고 있다. 소연은 부산에서 출장 중인 그를 만나기 위해 부득불 내려가기도 하고, “파리로 돌아가기 전 우리집에서 함께 지낼까”라는 그의 제안에 솔깃해 짐을 싸갖고 언니네 집을 나오기도 하지만, 남자의 미적지근한 반응 때문에 항상 기대와는 다른 결과를 맞이할 뿐이다. 정작 만나고 나면 그와의 관계가 건조하게 말라붙었다는 사실을 거듭 깨달
부산의 한국영화 7편 [4] - <여름이 가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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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기 감독의 세번째 영화 <아주 특별한 손님>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한 20대 초반의 착해 보이는 여자 보경(한효주)에게 무섭게 생기지는 않았지만 건장한 사내 두명이 다가온다. 그리고는 난데없이 취조에 가까운 질문공세가 이어진다. “고명은! 명은이 아냐? 에이 명은이 맞는데….” 자신은 명은이가 아니라고 말한 여자는 사내들의 집요한 착각에 당황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두려워하는 기색은 없다. 도시 한복판에서 갑자기 다른 이의 이름을 들고 온 남자들에게 동일인이 아니냐고 추궁당하는 것은 짜증나는 일이고, 당하는 사람이 여자일 경우 겁나는 일이다. 그런데도 결국 여자는 남자들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겁없이 차를 타고 동행까지 한다. 그녀는 어느 중년의 홀아비가 죽음을 선고받아 의식불명 상태에 놓여 있고, 그의 딸은 집을 나가 몇년째 소식이 없는데, 당신이 그 딸의 모습과 비슷하니 단 하루라도 죽음 앞에 처한 그에게 딸인 양 얼굴을 보여주면 안 되겠느냐는 말도 안 되는 부탁을
부산의 한국영화 7편 [3] - <아주 특별한 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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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식 감독의 첫번째 장편 영화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
기사와 승객. 두 남자가 탄 택시가 구불구불한 국도를 나른하게 미끄러져 나간다. 왜소한 손님의 이름은 김태한(박광정). 강원도 양양군 낙산읍에서 도장포를 경영한다. 잘생긴 서울 택시기사 박중식(정보석)은 대문만 나서면 곧장 애인 중 한명과 마주치는 바람둥이다. 전국에 분포한 중식의 숱한 연인 중에 태한의 아내도 있으니, 질투로 속이 곯은 남편은 어제 마침 ‘씨팔’이라는 두 글자를 붉은 낙관에 새겨 내리찍고 떨쳐 일어섰다. 서울까지 달려온 그는 중식의 멱살을 잡는 대신 낙산행 장거리 주행을 주문한다. 밀회를 부추겨 현장을 덮칠 궁리지만 어떤 놈인지 좀 볼까 싶기도 하다. 영화는 심리적인 자승자박 상태에 빠진 태한의 눈에 비친 국도변 풍경을 스케치한다. 두 남자의 낙산행은 슬슬 몽롱한 소풍이 된다.
긴 우회로를 거친 것은 이들만이 아니다.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가 첫 장편인 김태식(47) 감독은 스스로
부산의 한국영화 7편 [2] -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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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부산영화제에서 가장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영화는 윤종빈 감독의 졸업작품 <용서받지 못한 자>였다. 허문영 한국영화 프로그래머는 2006년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받았던 이 영화로 인해 “초저예산으로도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영화를 만드는 일이 가능하다”는 인식이 생겼다고 말했다. 신선하게만 느껴졌던 한국영화의 새로운 경향은 올해 더욱 거센 물줄기를 타고 되돌아왔다. 부산영화제는 ‘한국영화의 오늘’ 부문에 저예산과 독립영화만을 모은 섹션 ‘비전’을 신설했고, ‘새로운 물결’ 부문에 초청받은 한국영화 두편도 10억원 미만의 예산을 가진 저예산영화다. <역전의 명수>로 씁쓸한 데뷔전을 치렀던 박흥식 감독은 상업적인 성공에의 강박을 버리고 오랫동안 마음에 품었던 이야기 <경의선>으로 돌아왔고, 먼 길을 돌아 지천명을 앞둔 나이에 데뷔작을 만든 김태식 감독은 중년 사내의 황당하고도 쓸쓸한 여정을 희비극으로 엮어낸 <아내의 애인을
부산의 한국영화 7편 [1] - <경의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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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하게, 단순하게, 수다스럽게, 즐겁게
무심한 듯 흘러가는 일상에서 건져지는 온기는 누구에게나 특별하다. ‘선경이 노래한다. 경석이 구슬을 달아준 드레스를 입고 있다. 동작에 따라 구슬이 반짝반짝 빛난다. (중략) 옷이 계속해서 화려한 색깔로 변한다. 갑자기 선경이 선녀처럼 펼쳐져 하늘로 오른다. 와- 함성, 박수갈채. (중략) 하늘에 폭죽 터진다.’ <가족의 탄생>에서 선경(공효진)이 합창하던 중 공중부양하는 장면의 묘사는 시나리오를 들추면 이렇다. 김태용 감독과 함께 쓴 <가족의 탄생> 시나리오는 공기처럼 일상 주위를 흐르다가 식상할 수도 있는 진심을 이렇게 재치있게 표현한다. 그러나 세개의 이야기가 별도로 진행되다가 만나는 구조를 만드는 과정은 수많은 단계를 거쳐야 했다. “감독님이 나에게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냐고 물었다. 내 얘기는 채현(정유미)과 경식(봉태규)에게서 시작했다. 너희들 사랑이 새롭고 예뻐 보이지만 결국 너희 부모님도 그런 사랑을 했었
충무로 시나리오작가 8인 [8] - 성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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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한 2%를 채우는 마음으로
영화사에서 꺼려하는 시나리오작가들의 부류는 대개 이렇다. 먼저, 함흥차사형. 정해진 날에 시나리오를 토해내기로 하고서 감감무소식이다. 또 하나는 멋대로형. 작업 포인트에 합의해놓고서 정작 가져오는 결과물은 완전히 딴판이다. 시나리오작가는 킬러와 비슷하다. 목표를 앞에 두고 미적대거나 엉뚱한 사람에게 덤벼드는 킬러에게 의뢰가 쏟아질 리 없다. 이숙연이 충무로에서 인정받는 건 ‘감성이 뛰어난 멜로 전문 작가’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와 함께 작업한 한 영화인은 “말처럼 쉽지 않은 약속을 어김없이 지켜왔다는 점에서 신뢰가 가는 파트너”라고 전한다.
성실은 청취자와의 약속을 지켜야 하는 라디오 방송작가로서 15년 가까이 생활하면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방송 일을 하면서 자의든 타의든 뭔가 쓰는 게 당연한 일이 돼버렸다.” 그는 지금도 아침 6시30분이면 일어나 <유열의 음악앨범> 대본을 쓴다. 시나리오를 집중해서 쓸 수 있는 건 방송이 끝
충무로 시나리오작가 8인 [7] - 이숙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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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련된 벽돌공처럼 튼튼한 이야기를 쌓는다
강제규 감독과 함께 쓴 <태극기 휘날리며> 그리고 김성수 감독의 20페이지짜리 트리트먼트를 기초로 했던 <야수>의 시나리오는 무엇보다 뜨겁다. 전쟁으로 상처입는 뜨거운 형제애가 있고 사회의 부조리함 또는 악함과 싸우려는 뜨거운 정의가 있다. 이 두편을 쓴 한지훈 작가는 실제로 호수 표면처럼 잠잠한 사람이다. 그는 시나리오작가를 기능공에 비유했다. “기획영화가 많아지면서 그런 측면이 더 강화되는 것도 있지만, 제작사의 성향과 감독의 의도라는 게 있다. 그런 것에 최대한 맞추려고 하는 편이다. 작가 혼자 작업할 때조차 기능공의 마인드가 필요하다.” 그런 현실적인 태도 때문인지 그는 “스타일이 잘 맞는” 감독과 함께했던 <야수>에 대해서도 스스로 객관적인 판단을 내린다. “유강진(손병호)의 캐릭터가 다소 진부하지 않았나 싶다. 악의 화신으로만 그려졌던 것이 아쉽다. 피의자 사망사건으로 형사 장도영(권상우)과 검사
충무로 시나리오작가 8인 [6] - 한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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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저리 사람들을 희곡에, 시나리오에 담는다
조범구 감독의 장편영화 두편 <양아치어조>와 <뚝방전설>의 시나리오를 작업한 박수진 작가는 감독과 고등학교 동창이다. 한살 터울인 친형의 친구이기도 해서 중학교 때부터 알아왔고, 근 20년을 본 사이라 이제는 같이 술을 마셔도 2시간만 지나면 할 얘기가 없을 만큼 서로를 많이 안다. <뚝방전설>은 제작사 싸이더스FNH와 먼저 계약을 맺은 조범구 감독이 “남자 이야기를 해보자”는 권유를 받고 박수진 작가에게 각본을 맡긴 경우다. “감자탕에 소주 마시면서 이런저런 얘기하다가 우리 고등학교 때 얘기나 해볼까 해서 쓰게 됐다. 경희고등학교를 나왔는데 그때 있었던 노타치파, 물레방아파에다가 친구들 실명까지 다 끌어왔다.” 기억과 경험을 바탕으로 20일 만에 써내려간 <뚝방전설>의 시나리오는 비록 주인공의 실패를 담고 있어도 덧칠된 추억 덕에 따뜻하다. “양아치 청춘과 양아치 같은 사회에 대한 이야기”인 &
충무로 시나리오작가 8인 [5] - 박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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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은 접어두고, 끝없이 달리고 달린다
정서경 작가는 4년 전 예비 감독으로 <씨네21>과 인터뷰를 했다. 영상원 시나리오과 3학년 때 쓴 <전기공들>이 코닥 단편영화 제작지원 선정작으로 뽑혀서다. 필름 맛을 봤으니 지금쯤 충무로에서 감독 데뷔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할 터인데 전업 시나리오작가라니. 작가 출신 감독들이 속속 데뷔하는 걸 보면, 잠시 택한 우회로인가. “감독은 애초 생각이 없었다. 사실 학제가 바뀌어서 영화를 만들어야 졸업이 가능했다. 그래서 낸 건데 덜컥 됐다. 촬영 첫날 어떻게 슛을 부르는지, 언제 컷하는지도 몰라서 스탭들한테 눈총받았다. 한컷 찍고 20분 쉬다가 촬영감독한테 욕먹고, 화장실에 갔는데 목 매달고 싶더라. 정말이지 돈 주고 감독을 사고 싶었다.”
이후 메가폰을 다시 들지 못했지만, 그는 이제 꽤 유명한 시나리오작가다. <모두들, 괜찮아요?>로 충무로에 발디딘 뒤, <친절한 금자씨> <싸이보그지만 괜찮
충무로 시나리오작가 8인 [4] - 정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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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치고 또 고치면 설득 못할 관객 있으랴
<가을로>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이렇게 단아하면서 섬세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궁금했다. 낯선 곳에서 남녀가 우연히 계속 마주치게 된다는 미스터리 구조도 흥미롭지만 상처받은 낯선 연인의 이야기를 엮어가며 그 속으로 슬픔이 스며들게 하는 자연스러움이 놀라웠다. 20대 후반, 미지의 여성 작가? 그런데 이름은 씩씩한 ‘석’ 자가 들어가는데!
그는 이미 관록의 작가였다. 1999년 영화진흥공사 주최 상반기 시나리오 우수작에 뽑혔고 여러 작품에서 각색과 시나리오를 맡았다. 다만 오래전 준비했던 작품들이 뒤늦게 얼굴을 내밀고 있을 따름이다. 2000년에 작업한 <청풍명월>은 2003년에, 심지어 2001년에 쓰기 시작한 <가을로>는 이제야 관객을 만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2003년에 각색해 2004년에 개봉한 <효자동 이발사>, 지난해에 작업해 올 가을 개봉한 <우리들의 행복한
충무로 시나리오작가 8인 [3] - 장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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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자리서 얻은 아이디어도 메모해 꿰면 보배
<혈의 누>와 <짝패>를 쓴 이원재 작가(<위대한 유산> 등을 쓴 이원재 작가는 동명이인이며 여러 데이터베이스엔 두 작가의 필모그래피가 뒤죽박죽되어 있다)는 어렸을 적 꿈이 발명가, 만화가, 추리소설작가였다. <혈의 누>에서 묵직한 역사적 상상력을 스릴러 장르와 버무리고 <짝패>에서 부동산 조폭의 흥망을 재기있게 가로지르는 능력을 보면 꿈과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것 같다. 중학교 근처에 큰 비디오 가게가 없었다면 우리는 지금 작가 대신 발명가를 얻었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말이다. 중2 때부터 가장 재미있는 영화가 자신의 길임을 ‘의심하지 않고’ 여기까지 왔다. 어머니가 싫어해 연극영화과는 가지 못했다. 대신 영화의 본산인 프랑스, 남들도 영화 유학을 가는 프랑스에 가까운 공부를 하기로 했다. 불문과로 가서 친구 7명과 어울리며 단편영화도 만들고 ‘길거리에서’ 영화를 배웠다. 그러나
충무로 시나리오작가 8인 [2] - 이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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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시나리오에서 나쁜 영화가 나올 수는 있지만 나쁜 시나리오에서 좋은 영화는 나올 수 없다는 게 구로사와 아키라의 격언만은 아니다. 충무로에서는 매일 이 격언을 뼈저리게 각성하고 확인한다. 시나리오라는 영화의 설계도가 튼튼하지 않으면 공사는 부실해진다. 그만큼 시나리오작가는 영화라는 꿈 공장의 핵심 인력이며 꿈 공장의 지휘자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충무로는 감독이 직접 시나리오를 쓰거나, 아니면 소설과 만화 원작을 사서 각색하면서 시나리오작가가 쓴 오리지널 시나리오를 홀대하고 있다. 이미 전설이 되어버린 <차이나타운>의 로버트 타우니의 치밀함, 신화화되고 있는 찰리 카우프만의 천재성, 낮에는 타워 레코드 가게에서 일하고 밤에는 시나리오를 쓴 끝에 할리우드에 충격을 안긴 <쎄븐>의 앤드루 케빈 워커의 집요함 같은 얘기들이 충무로에선 잘 들리지 않는다. 걸출한 작가를 만드는 건 작가 본인이기도 하지만 환경이기도 하다.
언뜻 보면 감독들만이 빛나 보이는 충무
충무로 시나리오작가 8인 [1] - 최석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