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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이 스파이더맨의 특징은 무엇이었던가. 일단 기본적인 자격 조건은 유약남이다. 수줍고 여리고 감수성 뛰어난 청년. 하지만 영웅의 옷을 입었을 때는 누구보다 강인하고 당당해지는 그런 남자여야 한다. 앤드루 가필드가 당대의 가장 뜨거운 할리우드 시리즈 중 한편인 <스파이더맨4>의 차세대 피터 파커로 낙점된 걸 보면 그런 양면의 이미지를 호소력 있게 잘 전달했던 것 같다. 그간에 여러 역할을 거치며 주목을 요하는 신인 남자배우로 거듭 거론되었던 것도 아직 초보 신인에 불과한 그가 수많은 경쟁자를 물리치고 스파이더맨이 될 수 있었던 큰 요인이었을 것이다. 가능성은 일찍부터 검증됐고 많은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어렸을 때부터 체조와 수영으로 다져놓은 몸이라 그런지 균형감각이 있으면서도 그는 어딘가 우수에 젖은, 그리고 주변에서 조금 벗어나 있는 아웃사이더의 역할을 더할 나위 없이 잘해냈다.
2005년에 텔레비전 출연으로 얼굴을 알리더니 2007년에는 <버라이어티>
[할리우드 뉴페이스 10] 부드러움 뒤에 강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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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 모레츠는 <킥애스: 영웅의 탄생>을 보지 못했다. 2005년작인 <아미티빌 호러>도 아직 못 봤다. R등급인 이 영화들은 부모가 동석하면 17살 이하도 볼 수 있지만 그녀의 부모는 허락하지 않았다. 심지어 <렛미인>마저 R등급을 받았다. 하지만 크로 모레츠는 어린 나이를 서러워하는 아이가 아니다. 이 소녀는 12살 때부터 어른을 격려하고, 때로는 다그치고, 욕까지 서슴지 않는 모습으로 관객을 경악시켰다. <500일의 썸머>의 레이첼은 오빠에게 미리 경고했다. “좀 예쁘장한 여자가 오빠 같은 괴짜라고 해서 영혼의 반려자가 된다는 법은 없어.” <킥애스…>의 힛걸은 인터넷으로 중계 중이던 처형장을 습격한 뒤, 카메라 밖에 외쳤다. “쇼는 끝났어. 이 X새끼들아!” 아역배우들은 종종 어른 흉내를 통해 귀여움을 뽐내지만, 크로 모레츠는 자신의 카리스마로 장면 자체를 장악해버렸다.
맷 리브스 감독의 <렛미인>은 크로 모
[할리우드 뉴페이스 10] 거침없는 괴물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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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에서 스타들의 존재감은 패스트패션마냥 금세 지루해진다. 크리스틴 스튜어트, 로버트 패틴슨, 에마 왓슨, 샤이어 라버프, 린제이 로한 등 21세기를 맞이해 혜성처럼 나타났던 이름들도 이미 너무 많이 불렸거나 그 빛을 잃어가는 중이다. 하지만 슬퍼할 필요는 없다. 더 성장하거나 빠르게 잊혀지는 것이 할리우드 약육강식의 법칙이며, 사라지는 이들을 애도할 겨를도 없이 새로운 얼굴들이 관객의 즐거움이 되어주니까. 이에 <씨네21>은 새로운 10년의 첫장을 여는 할리우드의 뉴페이스 10명을 선정했다. <킥애스: 영웅의 탄생> <렛미인> 등에서 성인배우 못지않은 연기를 선보여 이미 자신의 입지를 단단히 굳힌 크로 모레츠부터 빅 프랜차이즈의 새로운 얼굴로 임명된 <스파이더맨4>의 에마 로버츠까지, 당신의 눈을 사로잡은, 혹은 사로잡을 따끈따끈한 새 이름들을 미리 예습하시라.
이 이름들을 기억해, 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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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고생 자혜는, 교복 페티시를 역으로 이용해서 주도적으로 돈을 버는 아이다. 더불어, 자신이 짝사랑하는 오뎅 장수 상두에게 ‘어리면 좋잖아요, 까지면 더 좋고’라는 직접적인 구애 멘트를 서슴지 않고 던질 줄도 아는 용맹한 캐릭터다.
되바라질 대로 되바라지고 저질스레 도발적인 이 캐릭터의 관건은, ‘결코 미워할 수 없는 보편성’을 담보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단순히 양아치 여고생으로 그려져서는 소통될 수가 없었고, 이미지만 있는 섹시 여고생으로 비쳐지는 것은 윤리적으로 위험천만이었다. 그 아슬아슬한 줄타기 속에서, 개인적인 체감 난이도가 가장 높았던 캐스팅이다.
그러던 어느 날. 캐스팅 고민으로 골머리를 앓다 지친 새벽. 무심코 DVD 플레이어에 밀어넣었던 영화 <반두비> 속 백진희라는 배우를 발견했던 순간이, 아직도 명증하게 기억이 난다. 실제로 머릿속에 ‘딱’ 소리가 났다. <천하장사 마돈나> 때, 당시 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배우 류덕환과 조우했던 순간을
[페스티발] 내가 좋아요~ 교복이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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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수는 동거남 장배의 배려없는 돌출행동으로 언제나 속 썩지만 아직은 그를 떠나거나 버리지 못하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지수는 자신을 위한 소심한 일탈의 상징적 선물로서 바이브레이터를 구입한다. 그러나 그것이 그다지 큰 위안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다. 설상가상, 맥락없이 더더욱 종잡을 수 없어진 장배의 기행 때문에 그녀는, 어디에서도 위안을 받을 수 없는 처지가 되어버리고 만다.
지수 캐릭터는, <페스티발> 드라마의 중심추를 정확히 붙잡아줘야 하는 역할이다. 유일하게 기행이나 특이성향 없이 ‘정상인’인 그녀는, 남성보다 여성에게 더 큰 공감대를 얻기를 바랐다. 그런 연유로, 여성에게 더 풍성한 판타지를 제공할 수 있는 여배우가 지수이기를 바랐다. 무심한 듯 차가운 이미지가 필요했고, 주체적인 여성상을 무리없이 그려내줄 똑 부러진 캐릭터가 필요했다.
고백하자면, 지수 캐릭터는 영화 <잘 알지도 못하면서>의 엄지원 캐릭터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고, 그 밑
[페스티발] 나는 그냥 정상이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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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내세울 것 없는 말년 말단 경찰관 장배. 남들보다 우월하다고 내세울 만한 거라곤 스스로 보기에 ‘인간적으로 너무 맛있는 것만 같은’ 자신의 성기밖에 없는 마초다. 그런 장배가 어느 날, 동거녀 지수의 바이브레이터 사용 광경을 목격하게 되고, 엄청난 실의에 빠진다. 그날부터 장배는 바이브레이터를 질투하며 더더욱 성기에 집착하는 기행을 일삼기 시작한다.
성기 콤플렉스로 고통받는 이 찌질한 마초 장배는, 평소 마초적인 모습을 볼 수 없었던 배우의 ‘의외의 도발’처럼 보이기를 막연히 바랐다. 타고난 마초라는 단순한 질감이 아닌, ‘본래는 안 그랬으나 꼬일 대로 꼬여 언제나 나쁜 타이밍에 엉뚱하게 터져버리는’ 인물. 결과적으로 우악스러운 행위들 너머의 다른 맥락을 또 한겹 가질 수 있는 배우를 원했다. 동시에 남성 관객에겐 자신의 모습을, 여성 관객에겐 자기 남자의 모습을 연상케 하는 보편성은 기본이었다. 이렇게 필수요소들을 열거하고, 나는 이것을 ‘신하균’이라고 읽었다.
언제나
[페스티발] 나의 거시기가 거시기만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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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20주년 기념 선물로 아내에게 줄 속옷을 사지만, 어떤 이유에선지 그걸 본인이 그냥 ‘입어버리는’ 국어 선생, 광록.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광록이라 쓰고 오달수라 읽는다’라는 농담으로 시작된 이 캐릭터는, 캐릭터 지문 첫 문장을 모니터에 올린 순간부터 촬영 마지막 오케이 순간까지 단 한번도 고민하거나 주저할 필요가 없었다. 커브 한번 없이 오로지 직진만 있었고, 정확히 그곳에 깃발을 꽂는 데에 성공한, 순도 높은 ‘초심 그대로의 캐릭터’다.
만약 당신이, 오달수라는 배우와 여성 속옷을 동시에 떠올렸는데 불편하거나 기괴한 그림이 그려졌다면? 나는 그것을 ‘암산의 한계’라고 당장 대답하겠다. 여성 속옷과 함께 카메라 앞에 선 오달수의 자태는, 폭발적으로 웃기기도 하지만, 동시에 아련하게 아름답기까지 하다. 심지어 특정 장면에서는 마치 요정과도 같이 신비롭고 영험하기까지 하다. 그것은 흡사 영화 <아바타>의 비주얼 쇼크와 비견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사진을 보라.
[페스티발] 레이스가 맨살에 닿아… 아아아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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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쿠의 한국식 표현, 오덕후. 십덕후는 그 오덕후에 2를 곱해야 할 만큼의 ‘고수 오덕후’를 일컫는 말이다. 뭔가 사연이 있는 듯한 오뎅 장수, 상두는 알고보면 인형을 사랑하는 남자다. 정작 본인에게는 반려돌과 함께하는 애정 넘치는 일상이지만, 남들 보기엔 그저 인형 십덕후일 뿐인. 오뎅 트럭 앞에서 종종 서성대는 여고생 자혜의 적극적인 구애를 받지만, 어쩐지 실제 인간과의 사랑엔 자신없는 그는 오직 인형에게만 헌신적인 사랑을 쏟아붓는다.
고백하자면, 시나리오 단계부터 상두는 내게 가장 물음표가 많았던 캐릭터였다. 상두가 자신의 인형을 진짜 사람이라고 믿는 식의, 정상 범주를 넘어선 수위는 아무래도 위험했다. 그렇다고 심한 트라우마에 매몰된 인물로만 그려지는 것도, 영화 전체의 톤 앤드 매너상 옳지 않았다. 적절히 가벼우면서도 적당히 진심어린 밸런스가 필요했다. 그러나 도무지 시나리오에서는 그 뉘앙스까지 자력으로 완벽히 해결할 수는 없었다. 상두 앞에 이토록 무력했던 내게, 수
[페스티발] 어떻게 인간을 사랑하나효, 인형을 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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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일러 잘 보기로 동네 소문난 철물점 주인, 기봉. 서글서글한 인상에 통상적으로 ‘철물점 기봉이 아저씨’로 통하는 그는, 실상은 철물점 차고에 성스러운 채찍과 수갑을 걸어놓고 해질녘 담벼락 아래 나팔꽃마냥 내성적으로, 언젠가 재림하실 마스터를 기다리는 SM 슬레이브였다.
타고난 SM 슬레이브인 이 의뭉스런 캐릭터는, 태생적으로 대사가 많은 인물이 아니었다. 게다가 극 중반 이후로 넘어가면 가죽 마스크를 쓰고 얼굴까지 가려지는 캐릭터였다.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도 코미디가 가능한 배우이기를 원했다. 특별한 슬랩스틱 없이도, 표정을 지우고, 눈빛을 감추고, 대사까지 사라져도 웃길 수 있는 배우라는, 난센스한 꿈을 꿨다. 그러나 역할이 소극적이었기 때문에 언감생심, 감히 누굴 바랄 수 있었겠냐만. 정말이지 경이롭게도, 성동일이라는, 바로 그 배우가 그 자리에 털썩 앉아주었다. 일명, ‘엄마야 깜놀 캐스팅’.
성동일이 선 굵은 코미디에서만 빛나는 배우라는 선입견은 단지 한번
[페스티발] 숨소리마저 복종할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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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어귀에서 한복집을 운영하며 평범하게 살던 순심은, 우연히 들어갔던 철물점 차고에서 거대한 채찍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본인에게 SM(정확히는 사디스트)적 성향이 내재되어 있었음을 자각하게 된다.
순심 캐릭터의 가장 큰 관건은, 엄마와 SM 마스터라는 양 극단의 성향을 모두 공평하게 표현하면서도 존재 자체의 무게감이 필수라는 것이었다. 한복집에서는 단아한 모습이기를 바랐고, 생활공간인 집에서는 여느 엄마들처럼 억척스럽기를 바랐고, SM 플레이가 주로 이뤄지는 SM 던전에서는 독한 마스터의 위용이 느껴지기를 바랐다. 상호 붙기가 만무해 보이는 이 지점들을 딱 하나로 모을 수 있는, 강력한 배우가 필요했다. 그리고 이 주관식 문항의 모범답안은 단연, 심혜진이었다.
십수년 그녀의 팬이기도 했지만, 막상 그녀와 함께하는 작업이란 팬심을 훨씬 공고히 만들어주는 경험이었다. 적절히 세월이 묻어나는 관록은 엄마로도, SM 마스터로도 충분한 생활상이었고 동시에 넘치는 카리스마였다. 그
[페스티발] 나에게 복종하고 싶어? 그럼 꿇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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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티발>은 평범한 사람들이 남몰래 속으로만 꾹꾹 눌러두었던, 일명 ‘변태 같은 성적 취향’들을 어떻게 당당히 드러내고 즐길 것인가, 에 관한 영화다.
명절 연휴. 셔터가 일제히 내려진 상점가를 지나고 있었다. 문득, 저 닫힌 셔터 중 어딘가에선 누군가의 은밀하고도 독특한 성적 판타지가 실제로 벌어지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이를테면 쌀집 아줌마, 전파사 아저씨가 서로 ‘철이 엄마, 영희 아빠’를 외치며 SM 플레이를 즐기고 있다거나 하는. 그걸 기이하거나 에로틱하지 않은, 음란하기는 하되 귀엽고 밝은 코미디로 풀어내보고 싶다는 욕구가 일었다. 그 단상은 곧 ‘우연한 기회에 수갑과 채찍을 발견한 뒤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하는 옆집 아줌마’의 이미지로 요약되었고, 거기에 내가 구사할 수 있는 가장 유쾌하고 상쾌한 수위의 저질 농담들을 덧붙여 내러티브를 만들었다.
영화의 기본 설정을 아이콘화하면, 이렇다: SM, 란제리 마니아, 인형 십덕후, 바이
[페스티발] 변태 덕후라고 쓰고 유쾌 상쾌라고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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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작된 용의자를 ‘배우’라고 부르는 것, 경찰 내에서의 전문용어나 ‘경찰대 라인’에 관한 얘기, 그리고 병맥주를 생맥주 따르듯 하는 강 국장(천호진)의 모습 등 치밀한 조사가 엿보인다.
=‘배우’라는 표현은 박훈정 작가의 각본에 있었던 말인데 그런 식으로 원래 있던 것과 내가 더한 것 등이 섞여 있다. 내가 더한 것에도 조사를 바탕으로 한 것과 창작한 게 있다. 가령 미행당하는 걸 알고는 ‘자석 붙었다’고 하는 것은 마치 그들끼리의 전문용어처럼 느껴지지만 그냥 내가 지어낸 말이다. 존 르 카레의 소설에서 정보부(the Circus) 같은 존재랄까. 국장이 병맥주를 치이익 부어 마시는 건 실제 형사들과 만나서 보고 배운 거다. 천호진 선배는 “그냥 부어 마시지 왜 그래?” 그러면서(웃음) 연습을 좀 했는데 ‘탁!’ 뚜껑을 따는 장면을 편집해서 가려고 했다. 왜냐하면 그거 기술적으로 제대로 하면 거품이 안 나거든. (웃음) 그런데 편집기사님이 그냥 저렇게 가는 게 재밌겠다고 해서 롱
[류승완] 액션 없이 찍으려니 사실 미치는 줄 알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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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과의 싸움. 류승완의 <부당거래>를 설명하기에 가장 적절한 표현일 듯싶다. 그의 서명과도 같은 액션신들은 완전히 배제된 것이나 다름없는 상태에서 그는 거의 다큐멘터리를 연출하듯 작정하고 덤벼든다. 우리가 흔히 류승완이라는 이름을 향해 기대하는 것, 장르나 액션이라는 축에 기대어 예상하는 것, 그리고 영화광 감독의 작품을 헤집기 위해 여타의 ‘한 핏줄 영화’들을 마구 떠올려보는 것 그 모두로부터 멀찌감치 달아나 있다. 그의 이전 영화들과 명쾌하게 이어지는 교집합이라면 류승범이라는 배우 정도랄까. <부당거래> 안에는 장현수의 <게임의 법칙>(1994)도 있고 봉준호의 <마더>(2009)도 있지만 아련하게 홍형숙의 <경계도시2>(2009)의 느낌도 배어난다. 말하자면 이 영화의 원본을 찾는다는 행위는 무모하다. 오히려 류승완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마주할 때 많은 것을 들여다볼 수 있다. <부당거래>가 이전 류승완의 영화와는
거침없이 직격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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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지나는 길이라고 해서 늘 경치가 똑같은 건 아니다. 그것만으로는 안되는 것일까.’
오시이 마모루의 <스카이 크롤러>(2008)는 완전한 평화가 이루어진 시대의 이야기다. 전쟁은 계약을 맺은 전투기업에 맡겨지고, 사람들은 게임 중계를 보듯 TV를 통해 전황을 지켜본다. 그들에게 전쟁의 공포 같은 것은 없다. 다만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죽어가고 있다는 현실감을 얻고, 죽어가는 이들을 동정하거나 지켜볼 뿐이다. 실제로 전투를 담당하는 이들은 킬드레라 불리는, 아이에서 성장이 멈추어버린 존재들이다. 전장에서 죽지 않는다면 영원히 살아가야 하는, 그러면서도 어른이 되지 않는 가련한 존재. 모리 히로시의 6부작 소설을 원작으로 한 <스카이 크롤러>는 그 킬드레의 비애와 의지를 그린 애니메이션이다.
1995년의 <공각기동대>에서 2004년의 <이노센스>에 이르기까지, 오시이 마모루의 관심은 실재를 인지할 수 없는 현실, 현실을 압도하는 가상
노장은 말한다, 그래도 살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