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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메가폰을 잡으면서, <해리 포터> 시리즈가 다소 어두운 세계관을 갖게 됐다는 평이다. 이번 작품도 그렇고.
=그 부분에는 동의할 수 없다. 영화가 완성되고 나서 어린아이들에게도 보여준 적이 있는데 몇 장면을 빼고는 모두 즐겁게 봤다.
몇 장면이라면 무엇인가.
=도비가 죽는 장면에서 아이들이 심하게 동요했다. 한참 울음을 그치지 않더라.
-책의 어떤 분위기를 이번 영화에 담고 싶었나.
=올해로 10년째를 맞는 우리 영화의 장점 중 하나는 영화 속 배우 역시 책 속 캐릭터와 함께 성장했다는 점일 것이다. 십대 사춘기 소년 소녀가 된 이들이 어둠과 위험이 존재하는 현실 세계로 나와 우정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기를 바랐다. 서로를 의심하고 질투하느라 어린아이 같은 천진난만한 순수함을 잃게 되는 찰나. 바로 그 순간을 담고 싶었다.
-호그와트가 아닌 머글들이 사는 현실 세계가 영화의 주요 배경이다. 호그와트를 떠나면 더이상 볼거리가 없어지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
[데이비드 예이츠] 사춘기가 된 그들이 순수함을 잃는 찰나를 담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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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K. 롤링의 7번째이자 마지막 시리즈를 영화한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1>(이하 <죽음의 성물1>)은 덤블도어 교장의 죽음 이후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으로, 전편에 이어 대니얼 래드클리프와 에마 왓슨, 루퍼트 그린트 등이 출연한다. 영화는 죽음을 먹는 자들에게 마법부가 점령당하면서, 호그와트가 큰 위험에 빠졌음을 알리며 시작한다. 마법부와 호그와트까지 볼드모트의 손에 넘어가면서 그의 힘은 점점 강력해진다. 해리와 헤르미온느, 론 3인방은 볼드모트를 죽이고 호그와트를 돌려받기 위해서는 덤블도어 교장이 끝내 해내지 못한 호크룩스를 찾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고, 이때부터 영화는 마법이 지배하는 호그와트가 아닌 머글들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이들의 험난한 여정을 좇는다.
영화가 개봉되기 10여일 전인, 11월10일 런던 본드 스트리트에 위치한 클라리지스 호텔에서 열린 프레스 정킷에 참여한 어떤 이는 “호그와트를 떠난 <해리 포터> 시리즈는 더이상 볼
10년, 해리 포터의 마법은 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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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11일부터 14일까지 뉴욕대학교 영화과는 한국영화에 대한 토론, 한국영화 상영(<옥희의 영화> <검은 땅의 소녀와> <휴일>), 그리고 한국 음식으로 가득했다. “한국영화-미디어와 초국가성”이라는 제목으로 뉴욕대학교, 한국 교류재단, 코리아 소사이어티, 뉴욕 한국문화원, 한국영상자료원이 후원한 학술행사가 열렸다. 미국 예일대학교 더들리 앤드루, 한국예술종합학교 김소영 교수 등 영미권 학자, 평론가, 산업 관계자 30여명이 초청됐다. 이번 행사에서 논의된 것은 <맨발의 청춘>과 <올드보이> 등 불법·합법적으로 일본의 원작 텍스트를 끌어들인 한국영화의 문화적 번역(얼 잭슨 주니어, 한국예술종합대학), <괴물>의 사운드를 담당한 라이브톤 최태영 등이 돌비 컨설턴트로서 한국상업영화의 독특한 사운드디자인에 미친 영향(줄리안 스트링거, 노팅엄 대학), 그리고 2000년대 이뤄진 범아시아 합작영화 붐과 70년대 한국·
한국영화를 봤네, 한국 사랑 돋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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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비틀스가 등장하는 스무개의 장면이 있다. 비틀스가 직접 출연한 영화, 비틀스를 소재로 한 영화, 그리고 비틀스를 언급하고 패러디한 영화들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비틀스를 얘기하고 추억했다. 비틀스의 첫 번째 장편영화 <하드 데이즈 나이트>부터 나카무라 요시히로의 <골든 슬럼버>에 이르기까지 비틀스의 인상적인 순간들을 총망라했다. 당신이 기억하는 또 다른 비틀스의 장면은 언제인가.
불멸의 음악
<아이 엠 샘>(2001)
지적장애로 7살의 지능을 지닌 샘(숀 팬)은 자신의 딸 이름을 비틀스의 노래에서 따와 루시(다코타 패닝)라 짓고, 갓난아이인 루시에게 비틀스의 배지를 달아준다. 숀이 친구들과 루시의 신발을 사러 가는 장면에선 비틀스의 << Abbey Road>> 앨범 재킷을 흉내내기도 한다. 남들이 지적장애를 탓할 진 몰라도 비틀스에 관해서만큼은 그 누구보다 전문가다. <아이 엠 샘> O.S.T가 순전히 비틀스의
그토록 뜨거웠던 그때 그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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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64살이 되면’(‘When I’m sixty four’) 오노 요코와 함께 무엇을 하고 있을 것 같나?”라는 질문에, 그 유명한 <롤링 스톤>과의 인터뷰에서 존 레넌은 이렇게 대답했다. “아일랜드 해안가에 사는 멋진 노부부이거나 뭐 그 비슷한 사람들이 되어서 우리의 광기를 스크랩해놓은 책을 보고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모두가 알고 있듯이, 그는 64살을 맞이하지 못했다. 존 레넌은 1980년 12월8일 뉴욕의 아파트 앞에서 자신의 팬인 마크 채프먼의 총에 맞아 사망했다. 그가 사망한 지 30년, 탄생으론 70년이 되는 올해, 우리는 음악계뿐만 아니라 문화계 전반에서 그의 ‘광기’를 스크랩하려는 움직임들을 보게 된다. 어쨌든, 그의 예언은 실현된 것이다.
20세기를 정리하던 세기말 시점에, 록 잡지 <스핀>은 예수와 비틀스를 비교하는 17개의 항목을 제시한 적이 있다. 물론 이것은 존 레넌이 “비틀스가 예수보다 유명하다”라고 발언해 전세계적
한 이상주의자의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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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꾸는 꿈은 그냥 꿈에 불과하다. 하지만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 - 오노 요코
비틀스는 생명체다. 이방인들은 비틀스라는 이 외계를 받아들이고 궁극적인 수수께끼를 하나씩 갖고 살아간다. 그들은 어디서 비롯되었는가? 그들은 나에게 왜 이런 우연성을 제공해주고 자신들의 고유한 점유율을 나누어 주었는가? 그들은 이방인인가? 그들은 자연인인가? 비틀스는 우리에게 맹목적이라기보다는 완벽한 무력감을 가능하게 한다. 비틀스는 오노 요코의 어느 날 작품 스케치의 한 구절처럼 ‘하늘을 관찰하기 위한 하나의 그림’이었다가, 어느 서정적인 날 ‘불조심 강조의 달’에 어울릴 법한 맹랑한 포스터였다가, 갈레아노의 <거울 너머의 역사>에나 등장할 법한 인물들의 요염함을 가졌다. 비틀스는 자신들의 여정을 기억하도록 음악 속에 ‘숨겨진 차원’을 마련해 두었고 우리는 그 속에서 우리 자신의 눈을 찾기 위해 수많은 음들을 떠돈다.
그들의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우리의 어느 한때가 시절을
당신의 악몽이 들릴까봐 늘 두려운 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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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레넌 탄생 70주년, 사망 30주기 되는 올해, 존 레넌과 비틀스를 기념하기 위한 음반·도서 발매와 추모 공연이 줄줄이 이어지고 있다. 누군가는 비틀스가 지구상에서 가장 잔인한 그룹이라고 말한다. 새로운 컬렉션 음반과 책이 나올 때마다 지갑을 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몇달을 허리띠 졸라매고 살지언정 쉽게 포기할 수 없는 새 책과 도서들이 올해 우수수 쏟아져나왔다.
우선 존 레넌 <<Signature>> 박스 세트가 지난 10월 발매됐다. 음악의 질적 수준은 높이고, 음악의 정수는 그대로 살렸다. <<Signature>> 박스 세트는 존 레넌이 생전에 내놓은 8장의 스튜디오 앨범과 미수록곡, 미발표 음원을 수록한 보너스 디스크를 포함한 총 11장의 CD로 구성됐다. 팬들을 만족시키는 건 의외로 리미티드 존 레넌 아트 프린트와 오노 요코, 숀 레넌, 줄리안 레넌이 쓴 에세이가 실린 65페이지의 두툼한 소책자다. 4가지 테마
헬로, 굿바이… 그들의 모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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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스는 여러 국면으로 나누어 바라볼 수 있다. 리버풀에서 막 로큰롤과 맞닥뜨리던 질풍노도의 시기, 함부르크로 떠나 클럽에서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하던 시기, 꿈에 그리던 미국시장을 정복하며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기, 존 레넌과 오노 요코의 만남 등 멤버들의 개별적인 활동이 도드라지던 시기, 그리고 인도에서의 명상수업과 겹치며 해체에 이르기까지의 시기다. <존 레논 비긴즈: 노웨어 보이>(이하 <노웨어 보이>)는 바로 그 첫 번째 시기에 집중하고 있으며 그 중심에는 존 레넌이 있다. <노웨어 보이>는 멤버들이 하나둘 모여들어 밴드를 꾸리게 되는 초기 비틀스의 이모저모를 살피는 전기영화이면서 오노 요코와의 만남만큼이나 존 레넌 개인에게 큰 영향을 끼쳤던 어머니의 죽음을 겪는 존 레넌 개인의 성장영화이기도 하다. 어머니를 잃고, 엘비스 프레슬리를 알게 되고, 폴 매카트니를 만나면서 그렇게 존 레넌은 세상과 음악에 눈을 뜨게 됐다.
십대의 존 레넌을 보
비틀스, 전설은 이렇게 탄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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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레넌은 올해로 탄생 70돌, 사망 30년을 맞았다. <존 레논 비긴즈: 노웨어 보이>는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던 존 레넌의 청년기, 그리고 ‘쿼리멘 밴드’로 시작해 이제 막 비틀스가 형성되던 시기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그리고 최근 존 레넌 탄생 70주년 기념 박스 세트와 비틀스의 <<레드/블루>> 앨범이 새로이 발매되고 팬들이 기다려온 <비틀스 앤솔로지>가 드디어 출간되는 등 비틀스를 추억하는 연말 분위기가 훈훈하다. 시인 김경주가 비틀스에 대해 가슴 깊숙이 개인적 기억을 더듬고, 대중음악평론가 이대화가 존 레넌의 존재와 그 의미에 대해 회고한다. 끝으로 비틀스가 출연하고 다뤄지고 또 인용되고 패러디된 수많은 영화들에서 딱 20개의 인상적인 순간을 펼쳤다. 그렇게 비틀스가 다시 우리 앞으로 한 걸음 더 걸어왔다.
All you need is the BEAT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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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통질문
1. 지난 조희문 위원장 체제 영진위의 가장 본질적인 문제점은?
2. 2011년 영화발전기금 운용계획안이 현재 국회 예산 심의 중이다. 이것이 그대로 진행되었을 때 가장 우려되는 대목은?
3. 영진위 정상화 방안에 대해, 새로운 영진위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조광희 (영화사 봄 대표)
1. 영진위 위원장은 영화가 산업적으로, 문화적으로 잘되도록 지원해야 한다. 그러나 조희문을 비롯한 이 정부의 인사들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가 아닌 ‘(영진위 위원장) 자리에 가는 것’에 방점을 찍는 듯하다. 위원장이 조직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일을 대할 때도 자기 위주로 생각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건지도 모른다.
2. 영화산업이 잘 기능하기 위해 영화를 진흥하는 게 영진위가 해야 할 일이다. 영화라는 매체는 예술적인 측면을 버릴 수 없다. 영화가 예술적인 긴장감을 가질 때 동시대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 현재 한국시장은 예술영화가 버티기가 어려운 구조다. 그
이념 논쟁은 집어치우고,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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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영화진흥위원회의 독립영화 및 예술영화 제작지원금이 전액 삭감된다고 한다. 1998년 제도가 만들어진 이후 13년 만이다. 독립영화 제작지원은 김대중 정부가 아니라, 김영삼 정부의 영화진흥공사 시절 처음 생겼다. 좌파들이 좌파를 지원하기 위해 만든 게 아니란 말이다. 처음 300만원씩 20편의 필름 단편영화에 균등 지원하던 방식에서 시대의 변화에 따라 디지털영화와 장편영화, 다큐멘터리까지 지원 범위를 넓혀왔고, 매년 40여편의 작품들이 작게는 100만원에서 많게는 2천만원까지 지원받았다. 한국영화로는 처음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해 수상한 송일곤 감독의 <소풍>을 비롯한 많은 작품들이 독립영화 제작지원의 수혜를 받았다. 어린 시절 단편영화를 만들던 영화인들은 이 제도를 통해 자신의 꿈을 실현시켰다. 양익준 감독의 <똥파리> 역시 영진위의 독립영화 제작지원이 없었다면 만들어지지 않았거나 더 늦게 나왔을 것이다. 직접지원이 문제라고? 이 제도는 영화를 만든
미래의 영광을 포기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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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 예산안의 가장 큰 이슈는 지원방식의 변화이다. 영화의 기획과 제작을 지원하기 위해 있었던 사전공모형식 직접지원사업 부분(기획개발지원/마스터영화지원/예술영화지원/독립영화지원)을 스탭인건비 지원을 내용으로 하는 간접지원으로 전환하겠다는 것이 주 골자다.
이게 무슨 얘기냐고? 기획개발비든, 독립영화, 예술영화, 저예산상업영화든 구분없이 투자는 알아서 받으라는 것이다. 개발비든 제작비든 알아서 재원을 마련해서 제작만 들어가면 일정 정도 스탭들의 인건비를 지원해주겠다는 것이다. 이런 방식을 취함으로써 직접지원에서 불거지는 심사문제나 작품 미완성 문제, 지원금 유용 문제를 다 해결하고 스탭인건비 문제까지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화부)의 생각인 듯하다. 문화부의 현실적인 고민이 무엇인지는 알겠으나 정말 이것밖에 해결방안이 없었나라는 의구심과 함께, 쉽게 동의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케이블과 공중파로 떠나는 작가, 감독, 제작
소통만 있다면 어떤 변화도 두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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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진흥위원회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영진위의 현재 분위기가 “영화계로부터 잃어버린 신뢰를 찾는 것이 최우선 목표”로 보인다고 전했다. 이 이상 영화계와 불필요한 갈등 관계를 가질 시 큰일이라는 위기의식이 팽배했다는 것. 그러나 영진위에서 작성하여 현재 국회에서 심의 중인 2011년 영화발전기금 예산안을 살펴보면, 2011년 역시 그리 녹록한 미래일 수 없을 것 같다. 예산안이 미칠 현실적인 파장에 대한 영화인들의 우려, 조희문 전 위원장을 떠나보낸 영진위의 심기일전을 요구하는 기대를 한자리에 모았다.
잃어버린 3년. 지난 2008년부터 2010년까지 한국영화계는 유례없는 진통을 겪어야 했다. 가장 큰 이유는 한국영화 정책의 큰 틀을 잡아나가고 집행하는 기관인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가 강한섭, 조희문 두 위원장을 거치며 방향성과 영화계의 신뢰 모두를 잃었기 때문이다. 결국 두 사람이 차례로 불명예스럽게 위원장직을 그만두었다. 모두가 한숨 돌렸다. 그러나 문제는 언제나 그
심기일전心機一轉 영화진흥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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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집 류승범의 20대를 대변하는 하나의 단어다. 20대의 류승범은 “좋고 싫은 것, 옳고 그른 게 명확한” 사람이었다. 그 고집은 <품행제로> 촬영 당시 조근식 감독과의 마찰로 이어지기도 했다. 캐릭터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류승범은 스탭이 “저렇게 덤비는데 가만 놔둬도 되냐”고 말릴 정도로 치열하게 감독에게 캐릭터를 되물으며 중필이란 인물에 접근했다. 고집은 몰입을 낳았고, 몰입은 결과적으로 긍정적이었다. 당시 <품행제로>의 각본을 맡았던 이해영 감독은 현장에서 처음 ‘중필이’를 본 순간을 이렇게 회상한다. “시나리오에는 원래 중필이에 대한 두 가지 결이 있었다. 봉태규와 함께 있을 때 나오는 껄렁함과 공효진, 임은경과 연기할 때 나오는 쭈뼛쭈뼛함. 그 두 가지 결을 배우가 잘 살릴 수 있을까 고민했는데 군산 촬영현장에서 승범이를 보는 순간 깜짝 놀랐다. 시나리오가 배우 때문에 생명력을 얻는다는 걸 그때 처음 경험했다. 그건 계산하고 하는 연기가 아니라
6가지 키워드로 류승범 파헤쳐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