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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현목의 <오발탄>
개봉 1961년 4월 13일 / 출연 김진규, 최무룡, 서애자, 문정숙, 김혜정, 윤일봉
영화는 시대마다 운명을 달리한다. 밤하늘의 별처럼 헤아리기 힘든 걸작 중에서도 등대처럼 항상 그 자리에 버티고 서서 길잡이가 되어주는 영화가 있다. 유현목 감독의 <오발탄>은 한국 리얼리즘 영화의 시금석으로 거론되는 대표적인 영화 중 하나다. 이범선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오발탄>은 한국전쟁 전후 한국 사회의 그림자를 조망하고 시대의 부조리를 관통한다. ‘한국영화사 최고의 리얼리즘 영화’나 ‘해방 후 한국영화 최고 걸작’이라는 수식어가 난무하지만 사실 이같은 표현만으로 이 영화의 진면목을 짐작하기엔 오히려 모자란 감이 있다. 대표적인 리얼리즘 영화라 하지만 <오발탄>의 연출 스타일은 다분히 표현주의적 경향을 띤다. 상징적인 몽타주, 사운드와 이미지의 충돌 등 과감한 연출을 시도한 유현목 감독은 당대 유명 스타들, 고뇌하는 지
[한국영화를 빛낸 영화 30편③] <오발탄> <칠수와 만수> <반칙왕> <지구를 지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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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기영의 <하녀>
개봉 1960년 11월 3일 / 출연 김진규, 주증녀, 이은심, 엄앵란, 고선애, 안성기
근대와 전근대의 유산이 기이하게 공존했던 한국 사회의 시대상을 이층 양옥집 풍경 안에 그로테스크하게 압축해놓은 걸작. 동식(김진규)은 방직공장 음악부의 잘생긴 음악 선생이자 가정에 충실한 중산층 가장이다. 음악부 활동을 하는 여공 경희(엄앵란)는 피아노 개인 레슨을 받으러 동식의 집을 드나들고, 새로 지은 이층집의 살림을 봐줄 사람이 필요했던 동식은 경희에게 하녀(이은심)를 소개받는다. 아내(주증녀)와 아이들이 집을 비운 사이 하녀는 동식을 유혹하고, 곧 하녀의 임신 사실이 드러난다. 이 일이 외부에 알려져 직장을 잃을까 두려운 동식과 아내는 하녀에게 낙태를 요구한다. 신분 상승에 대한 욕망, 동식에 대한 집착, 가족들에 대한 복수로 하녀는 이 가족을 망가뜨리려 한다. <하녀>는 과감한 캐릭터와 서사, 대범하고 파격적인 이미지로 넘실대는 영화다.
[한국영화를 빛낸 영화 30편②] <하녀> <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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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상옥의 <로맨스 빠빠>
개봉 1960년 1월 28일 / 출연 김승호, 주증녀, 최은희, 김진규, 남궁원, 도금봉, 신성일, 엄앵란, 김석훈
신상옥 감독이 연출한 <로맨스 빠빠>는 김희창의 인기 라디오 드라마를 영화로 만든 가족 드라마다. 보험 회사에서 일하는 그(김승호)는 넉넉지 않은 살림살이에도 웃음을 잃지 않아 2남2녀의 자식들에게 ‘로맨스 빠빠’라 불린다. 장녀 음전(최은희)은 기상관측사인 우택(김진규)과 결혼한다. 장남 어진(남궁원)은 영화감독이 되기 위해 부모 몰래 시나리오를 쓰고 촬영현장에서 일한다. 셋째 바른(신성일)은 자신에게도 인격이 있다고 당당하게 주장하는 고3 학생이며, 막내 이쁜이(엄앵란)는 남학생들에게 러브레터를 받는 인기 많은 여고생이다. 하루도 웃음꽃이 피지 않는 날이 없는 가운데, 보험 회사에서 감원 바람이 불면서 그는 해직된다. 그는 자신의 실직 사실을 가족들에게 숨기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가족은 그를 격려할 방법을
[한국영화를 빛낸 영화 30편①] <로맨스 빠빠>, <고래사냥>,<인정사정 볼 것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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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 창간 24주년, 그리고 한국영화 탄생 100주년을 맞아 역대 한국영화 중 30편의 영화를 엄선했다. 서로 경쟁하는 ‘베스트’의 개념이라기보다는 각 시기를 아우르는 서로 다른 30명 감독들의 영화로 추렸다. 1960년대 한국영화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세 감독인 신상옥의 <로맨스 빠빠>(1960), 김기영의 <하녀>(1960), 유현목의 <오발탄>(1961)을 시작으로 이두용의 <최후의 증인>(1980)과 임권택의 <만다라>(1981), 이장호의 <별들의 고향>(1974)과 배창호의 <고래사냥>(1984), 박광수의 <칠수와 만수>(1988)와 장선우의 <경마장 가는길>(1991), 박찬욱의 <올드보이>(2003)와 봉준호의 <살인의 추억>(2003), 이창동의 <시>(2010)와 홍상수의 <북촌방향>(2011), 나홍진의 &l
[스페셜] 한국영화를 빛낸 영화 30편과 그 감독들 이야기 ① ~ 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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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필성 감독의 <썩지 않게 아주 오래>
STORY_ 갑자기 연락이 두절됐다 나타난 은(이지은). 정우(박해수)는 그런 은이 의심스럽다. 정우의 추궁이 부당하다고 느끼는 은은 둘의 관계에 문제제기를 한다. “오빠한테 여자란 뭐야?” 사실 은은 사람이 아닌 마녀다. 자신을 소유하려는 정우의 욕심에, 은은 더 큰 것을 요구하게 된다. 은이 지배하는 ‘하얀방’의 정체 속, 연인의 관계 규정이라는 문제가 확연하게 드러난다.
“괜히 일을 벌여가지고….” 임필성 감독이 자책하는 이유가 곧 눈으로 확인되는 현장이다. 경기도 포천, 전문 수중촬영부터 후반작업에 진행될 CG까지 더하면, ‘다른 영화의 2배쯤’ 품이 들어보인다. <페르소나>의 네편 중 임필성 감독의 <썩지 않게 아주 오래>는 블록버스터급이다. <남극일기>(2005), <헨젤과 그레텔>(2007), <마담 뺑덕>(2014) 등을 통해 ‘스케일’을 보여준 임필성 감독인
[단독] <페르소나> 현장기③ - 임필성 감독의 <썩지 않게 아주 오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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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관 감독의 <밤을 걷다>
STORY_ 소곤소곤 이야기가 들리는 고궁 산책로, 밤거리를 걷는 연인 지은(이지은)과 K(정준원). 평범한 연인의 산책 같아 보이지만 이들의 대화는 어딘가 수상쩍다. “장례식에도 오지 않았으면서…”라는 지은의 핀잔에 “제멋대로 죽어버려놓고…”라고 응수하는 K. K의 꿈속에 나타난 죽은 연인 지은과의 대화. 꿈에서 깨면 사라질 시공간에서 연인이 안타까운 둘만의 밤을 걷는다.
“저녁 8시 종묘공원, 빨간 점 찍은 곳으로 오세요.” 첨부한 지도에는 제작진으로부터 온 김종관 감독의 <밤을 걷다> 촬영 현장이 표시되어 있다. 고궁 앞 산책로, 하늘을 올려다보니 잿빛 하늘에 구름이 잔뜩 낀 미스터리한 날씨다. 이미 죽어버린 여자 지은의 걸음을 표현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날이 있을까.
<밤을 걷다>의 연인은 특별하다. 외로웠던 지은은 얼마 전 죽어버렸고, 연인 K의 꿈속에 나타나 자신들의 지나온 시간을 되돌아본다. 흑백 화면
[단독] <페르소나>현장기② - 김종관 감독의 <밤을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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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 안데르손과 리브 울만의 얼굴이 반반씩 겹쳐지는 잉마르 베리만의 <페르소나>(1966) 속 한 장면을 떠올려본다. 존재의 혼란을 겪으며 자아를 찾아가는 인물을 그린 상징적 영화와 같은 이름을 나눠 갖는 옴니버스영화 <페르소나>에서 한명의 배우(이지은)는 네명의 감독에게 각각의 ‘자아’로 조명된다. 배우의 다양한 모습을 조명하는 동시에 배우의 색을 정의하는 색다른 시도다. 대상은 ‘가수 아이유’이자 영화로는 막 데뷔하는 ‘연기자 이지은’이다. 지난봄 이 기획을 듣자마자, 직접 그 현장의 공기 속에 조명된 배우의 모습과 생각을 담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감독 각자의 색깔이 반영된 영화의 내용과 장르는 감독의 일방적인 창작이 아닌, 배우 이지은과의 의견 교류를 통해 도출된 결과물이다. 일반적인 영화의 제작방식과 사뭇 다른 시도다. 윤종신이 ‘미스틱스토리’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형식의 영화 만들기를 기획했고, 기린제작사가 공동 제작했다. 스트리밍으로 진행되는 넷플릭스
[단독] <페르소나>현장기① - 네명의 감독과 한명의 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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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먼지는 잠시 잊자. 봄바람과 함께 찾아온 한편의 청춘영화가 있다. <나의 소녀시대>(2015)로 전국 40만 관객을 동원하며 대만 청춘 멜로영화의 저력을 보여줬던 배우 왕대륙과 프랭키 첸 감독이 다시 뭉쳐 만든 영화 <장난스런 키스>다. 우선 제목이 눈에 익은 이유가 있다. 일본과 대만, 한국에서 여러 차례 드라마로 만들어진 동명 만화가 원작이다. 대만에서만 이미 두 차례 드라마화된 작품을 다시 영화화한 이유는 아마도 닳고 닳은 이야기 속에 숨겨진 특별한 재미 때문이리라. 하늘 아래 더이상 새로울 것 없다는 학창 시절 첫사랑 사수 스토리는 보고 또 봐도 왜 지루하지 않은 걸까. 대만 청춘 스타로 떠오른 왕대륙, 그리고 주성치 감독이 <미인어>(2016)로 발굴한 신예 임윤의 통통 튀는 매력이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줄지 모른다. 그때 그 시절의 연애가 그러했듯, 뻔하지만 그래서 더욱 재미있는 러브 스토리와 두 배우의 무한 매력을 미리 짚어봤다.
<장난스런 키스>가 보여주는 첫사랑의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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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감독조합(이하 DGK)이 먼저 움직였다. 2016년 영화계_내_성폭력 해시태그 운동 이후 업계 전반에서 성희롱·성폭력에 대한 문제의식이 공유되면서, DGK는 2017년 초 성폭력방지위원회를 신설해 성폭력 문제 방지 및 해결 방안 마련에 나섰다. 그 결과물 중 하나가 지난 2월 27일 DGK 총회 때 발표된 중·지·신(중지(Stop)·지지(Support)·신고(Report)) 행동 강령이다. “모든 영화인은 성희롱, 성추행을 포함한 성폭력 혹은 원치 않은 성적 관심이 없는 환경에서 일할 권리가 있다”는 내용을 공식 문서화한 것으로, ‘성적 괴롭힘’의 범주를 보다 넓게 규정하고 감독조합은 영화계의 다른 주체들과 협력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총회 당시 조합원들 앞에서 행동 강령을 발표한 성폭력방지위원회의 박현진, 이윤정 감독 그리고 DGK 부대표 모지은 감독을 만났다. 중·지·신 행동 강령이 의미하는 바를 꼼꼼하게 짚은 이 대담은 영화계에 남은 중요한
박현진, 이윤정, 모지은 감독이 ‘한국영화감독조합 중·지·신’ 행동 강령에 대해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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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스타브 몰레르 감독의 <더 길티>는 제34회 선댄스영화제를 시작으로 뮌헨국제영화제, 로테르담국제영화제 등 전세계 유수의 영화제에 잇달아 초청받고 수상하며 화제를 모은 영화다. 긴급구조전화센터에서 일하는 남자에게 걸려온 한통의 구조 요청 전화만으로 88분을 지탱하는 독특한 소재의 영화 <더 길티>는 기초적인 요소로 영화가 어디까지 보여줄 수 있는지 실험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미 할리우드에서 제이크 질렌홀 주연 및 제작으로 리메이크를 결정했을 만큼 흥미로운 영화. 하지만 이건 그간 전혀 보지 못한 파격적인 문법이 아니다. 아니, 차라리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오래된 미래에 가깝다. <더 길티>는 어떻게 흥미로운 영화가 되었나. 소리만으로도 관객의 호기심을 붙들어두는 기술, 이 모든 걸 조화롭게 관리하는 연출의 힘, 구스타브 몰레르 감독이 상영시간 내내 긴장을 유지하는 비결에 대해 찬찬히 풀어보았다.
전화기 너머에서 들리는 노이즈가 화면을 메운
이미지를 절제하고 사운드를 극대화한 <더 길티>가 긴장감을 유지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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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캡틴 마블>이 전세계 흥행 수익 8억달러 돌파를 앞두고 있다. 국내 관객수는 480만명(3월 21일 기준). 개봉 전부터 국내외에서 많은 이슈를 몰고 왔지만 흥행 전선에는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못한 듯하다. 한국뿐만 아니라 북미의 반응이나 흥행 추이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분위기는 한달 뒤 개봉할 <어벤져스: 엔드게임>까지 이어질 것 같다. <캡틴 마블>과 그 뒤를 잇는 <어벤져스: 엔드게임>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페이즈 3기를 마무리하는 최종장 기능을 하는 영화들이다. <블랙팬서>와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가 와칸다라는 무대를 바탕으로 히어로의 탄생과 빌런들과의 전쟁을 어떻게 엮어냈는지를 환기시켜보면 되겠다. 그런 점에서 <캡틴 마블>이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지난 10년의 역사를 정리함과 동시에 어벤져스 이후 새로운 히어로의 세대교체를 예고하는 영화라는 점에는 누구도 이견이 없다. 혹여 <캡틴
페미니스트, <캡틴 마블>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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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작으로 많은 상을 받은 감독이 감수해야 하는 운명이 있는데, 바로 두 번째 작품이 그간의 호평에 걸맞은지 검증하려는 무리와 싸워야 한다는 것이다. 인종차별 문제를 독창적인 호러 문법으로 풀어낸 <겟 아웃>(2017)은 아카데미 시상식 각본상을 포함해 전세계 각종 영화 시상식에서 147개의 상을 휩쓸었고, 배우 겸 감독 조던 필은 할리우드의 가장 유망한 신인으로 떠올랐다. 차기작으로 좀더 큰 프로젝트를 선택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그는 <블랙클랜스맨>(2018)의 연출을 선배 스파이크 리에게 양보했고 어느 슈퍼히어로영화 연출을 제안받았으나 고사했다. 그리고 조던 필이 2년만에 다시 블룸하우스 프로덕션과 협업한 호러물로 돌아왔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어스>는 <겟 아웃>의 성취를 복제하지 않으면서 소포모어 징크스를 보란 듯이 깨는 수작이다. 감독의 시야는 더 넓어졌고, 전작의 쟁점까지 포괄하는 논의를 품는다.
1986년 미국 샌타
[블랙시네마 ④] 조던 필 감독의 <어스>, <겟 아웃>에서 달라진 것과 달라지지 않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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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변화에 맞춰 블랙시네마도 전진한다. 1980년대부터 2019년까지 블랙시네마를 대표할 만한 영화 20편을 소개한다. ‘검은 것은 아름답다’고 소리 높여 외치던 시대에서 굳이 말하지 않아도 이미 모두가 즐겨 보고 있는 시대로, 꾸준히 영역을 확장 중인 블랙시네마의 다양한 면면을 확인해보자.
<컬러 퍼플> The Color Purple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 출연 우피 골드버그, 대니 글로버, 마거릿 에이버리, 아돌프 캐서, 오프라 윈프리 / 제작연도 1985년
“1980년대까지 내 영화들은 대부분 현실도피적이었습니다. (중략) 그러나 그때 나는 <컬러 퍼플>을 연출했습니다. 이 한편의 영화에는 깊은 고통과 더욱 깊은 진실들이 가득합니다. (중략) 영화를 만드는 동안 나는 이것이 내게 주어진 임무일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2016년 하버드대학교 졸업식에서 스티븐 스필버그는 인간성의 중요성을 역설하며 자신의 경험을 펼쳐놓았다. 미국 작가
[블랙시네마 ③] 1980년대부터 2019년까지, 블랙시네마를 대표하는 영화 20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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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에도 조던 필의 <어스>를 필두로 블랙시네마의 르네상스를 이어갈 다양한 흑인영화가 관객을 기다리고 있다. 국내 개봉을 촉구하며 2019년 이후 공개될 다양한 블랙무비 라인업을 소개한다. 가장 기대되는 영화는 마이클 B. 조던의 신작 <저스트 머시>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작품은 1992년을 배경으로 백인 소녀를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펄프회사 노동자 월터 맥밀런의 재판 과정을 다룬다. 모든 증거가 맥밀런을 지목하는 상황에서 법정은 그에게 사형선고를 내린다. 인권변호사 브라이언 스티븐슨은 이 사건에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는 생각에 맥밀런의 변호를 맡고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된다. 흑인들이 자신들을 둘러싼 편견으로 어떤 부당한 상황에 직면하는지를 다룰 예정인 <저스트 머시>는 2013년의 문제작 <오스카 그랜트의 어떤 하루>를 다시금 생각하게 되는 영화다. 마이클 B. 조던이 브라이언 스티븐슨을, 제이미 폭스가 월터 맥밀런을 연기한다
[블랙시네마 ②] 개봉 예정 기대작 총정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