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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작 <워터 릴리스>(2007), <톰보이>(2011), <걸후드>(2014)까지 셀린 시아마는 동시대의 소녀들, 젊은 여성들의 정체성과 관계맺음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여왔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그런 감독이 자신의 첫 시대극을 만들면서 18세기 여성들의 삶을 오늘날과 공명하도록 매우 선명한 비전을 갖고 꿰어낸 작품이다. 1980년생, 프랑스의 감독이자 각본가로 활동해온 셀린 시아마는 간결한 화면 구성과 전개를 추구하는 미니멀리즘적 성향을 보여왔다. <톰보이>로 자신을 남자로 생각하는 10살 여자아이의 첫사랑과 성장기를 그려내면서 제61회 베를린국제영화제 테디상을 수상했고,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으로 지난해 칸영화제에서 각본상을 수상했다. 영화제 기간 중 가장 훌륭한 평가를 받은 작품 중 하나였기에 각본상을 수상한 것이 다소 아쉬운 결과라는 평가도 받았다. 작품의 완성도는 물론 시기적인 면에서 셀린 시아마의 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셀린 시아마 감독 – 떠오르는 감독의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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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이 1월 16일 개봉한다. 지난해 타계한 프랑스 누벨바그의 거장 아녜스 바르다가 자신이 주목하는 여성감독으로 콕 집어 언급한 적 있는 셀린 시아마의 네 번째 장편영화를 국내 극장에서 마음껏 감상할 수 있는 기회다. 제72회 칸국제영화제(이하 칸영화제)에서 각본상과 퀴어종려상을 수상한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18세기 말의 어느 작은 섬에서 결혼을 앞둔 귀족 여성과 그녀의 초상화를 그리는 화가의 짧은 사랑을 그린다. 얼핏 프랑스 고전주의회화의 침착한 초상화를 떠올리게 하는 절제미가 돋보이는 영화지만 이는 흠을 찾아보기 힘든 이 영화의 만족스러운 겉면 중 하나일 뿐이다. 고요 속의 폭풍을 닮은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절제를 통해 폭발하고 역동하는 방식을 잘 아는 연출가로부터 진면목을 드러낸다. 사랑과 예술에 관한, 그리고 당대와 현대를 잇는 여성의 삶에 관한 영화의 전언은 그렇게 완성되었다. 여성감독이 연출한 우리시대의 ‘완벽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과 셀린 시아마 감독 - 끝까지 전부 불타오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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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소년 만화, 미국이 히어로 장르 코믹스라면 한국은 이제 웹툰이 최고의 영상화 소재로 거듭났다. 이미 수많은 웹툰들이 영화화, 드라마화돼 관객들을 만났다. 도합 약 260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신과함께> 시리즈도 주호민 작가의 웹툰을 원작으로 했으며, 현재 상영 중인 <해치지않아>도 <은밀하게 위대하게>로 이미 한차례 영화화 경험이 있는 HUN 작가의 웹툰을 영화화한 것이다. 이외에도 국내의 웹툰 원작 드라마, 영화는 무려 60여 편 가까이 된다. 심지어 몇몇은 ‘이게 웹툰 원작이었어?’하는 놀라움을 자아내기도 한다.
이에 못지않게 지금도 충무로는 여러 웹툰들의 영상화를 기획 중이다. 그러나 막대한 자본이 들어가는 영상화가 쉬운 길은 아닐 터. 하일권 작가의 <목욕의 신>, 단우 작가의 <스토커> 등 끝내 제작이 미뤄지며 사실상 무산의 길로 들어선 사례들도 있다. 부디 현재 예정된 작품들은 무사히 제작에 착수해 극장가
무사히 제작되기를... 다가올 웹툰 원작 영화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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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지를 태우고 있다.” 지난해 블랙코미디영화 <카센타>와 옴니버스 <오늘, 우리>로 극장을 찾았던 배우 조은지가 올해는 감독으로 출사표를 낸다. 지난해 6월부터 약 3개월간 한여름을 통과하며 촬영을 마친 <입술은 안돼요>(가제)는 작품 활동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유명 작가 현(류승룡)의 일상을 따라가며 전처 미애(오나라), 아들 성경(성유빈), 출판사 대표 순모(김희원) 등과 벌이는 뜻밖의 갈등과 연대를 담는다. 작정하고 웃기려는 코미디는 아니지만, 상황과 인물이 충돌하며 생기는 은근한 웃음과 훈훈함으로 무장한 감각적인 드라마다. 인터뷰차 만난 조은지 감독은 김포의 어느 한 호텔에서 편집 기간 내내 머물고 있다고 했다. “최대한 집중하고 싶었다”는 그는 “솔직히 모든 프로세스를 처음 경험해보니 걱정도, 긴장도 많이 된다”고 심정을 드러냈다. 배우 조은지에서 감독 조은지를 꿈꾼 결정적 계기는 직접 메가폰을 잡은 단편영화 <2박 3일>(201
[한국영화 빅프로젝트⑨] <입술은 안돼요>(가제) 조은지 감독 - 앙상블과 말맛이 만드는 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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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메이커: 선거판의 여우>(이하 <킹메이커>)는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이하 <불한당>)으로 한국영화 팬덤의 역사를 새로 쓴 변성현 감독과 조형래 촬영감독, 한아름 미술감독 등 주요 스탭들, 무엇보다 주연배우 설경구가 다시 뭉쳐 만든 작품이다. 배우뿐만이 아니라 변성현 감독 앞으로도 ‘불한당원’들의 간식차나 커피차가 들어갈 만큼 든든한 응원을 받으며 진행된 작품이지만, 그 면면을 들여다보면 <킹메이커>는 <불한당>과 여러 면에서 결을 달리한다. 1960~70년대 한국 정치계를 배경으로 치열한 선거에 뛰어든 이들을 조망한다는 소재도 다르지만, 감독의 말을 빌리자면 ‘세련된 클래식’처럼 보이고자 노력한 작품이다.
-<불한당> 이전부터 <킹메이커>의 시나리오를 썼다고.
=자기 전에 팟캐스트 방송을 즐겨 듣는데 엄창록이라는 인물이 ‘선거판의 여우’였다는 이야기가 나오더라. 이 사람이 정확히
[한국영화 빅프로젝트⑧] <킹메이커: 선거판의 여우> 변성현 감독 - 실제 인물과 닮지 않은, 하지만 진짜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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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산어보>에는 요란한 사건도 자극적인 상황도 없다. 그저 깊고 아름다운 관계가 있을 뿐이다. ‘벗을 깊이 알면 내가 깊어진다’는 한줄 문구에 도달하는 과정을 그린 이 영화는 정약전과 그의 제자 창대의 관계를 그린 속 깊은 드라마다. “솔직히 긴박한 상황과 자극, 스펙터클에 매달리는 최근 상업영화의 흐름에 역행하는 영화인데 비슷한 영화가 넘쳐나는 상황에서 이런 호흡의 영화도 한편 있어야 하지 않나.” 이준익 감독의 말처럼 이 영화가 도달하는 지점은 소중하고 그래서 더 아름다워진다.
-정약전이 쓴 책 <자산어보>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있나.
=조선 후기 최고의 천재로 불리는 정약용에 비해 그의 형인 정약전은 상대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다. 정약용이 유배생활 중에 수백권의 저서를 남길 동안 정약전은 <송정사의>와 <표해시말>, <자산어보> 딱 세 권의 책밖에 남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본래 더 많은 책을 쓴 사람이 기록에 더
[한국영화 빅프로젝트⑦] <자산어보> 이준익 감독 - 나이를 초월한 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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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행>(2016)은 더이상 새로울 게 없어 보이는 좀비물에서 여전히 보여줄게 남아 있다는 걸 증명한 영화다. 연상호 감독의 진가는 이렇게 익숙한 듯 보이는 것에서 새로운 요소를 발견하고 그걸 다시 재미있게 풀어낼 줄 아는 태도에 있다. 다소 아쉬운 결과를 남긴 <염력>(2017) 이후 연상호의 세계는 한층 넓어지고 견고해지는 중이다. 그는 한 가지에 몰두해서 나만의 세계를 쌓아올리는 대신 플랫폼에 맞춰서 다양한 소통 방식을 모색한다. “살아남기 위해서 여러 문을 두드리면서 배우는 중”이라고 말을 아끼는 그의 모습은 훨씬 자유롭고 홀가분해 보였다. 비 온 뒤 땅이 굳어지는 것처럼 연상호는 한층 단단해져서 돌아왔다.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반향을 일으킨 <부산행>에 이은 이야기인 만큼 <반도>에 대한 기대는 남다를 수밖에 없다.
=<부산행> 이후 다양한 버전의 시나리오들이 있었다. 프리퀄, 시퀄, 스핀오프 등 다양한 각도
[한국영화 빅프로젝트⑥] <반도> 연상호 감독 - 좀비물, 여전히 보여줄 게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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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제균 감독은 한 시간 정도 진행된 인터뷰 중 ‘진정성’이라는 단어를 15번 언급했다. 쉽게 덧붙인 표현은 아니다. <댄싱퀸>(2012) 때 함께한 정성화가 공연에 초대해 접하게 된 뮤지컬 <영웅>을 다섯번 봤고, 다섯번 모두 눈물을 흘렸다는 윤제균 감독은 “이 영화를 왜 만들었는지 관객이 진심을 알아봐주지 않을까 하는 믿음”으로 촬영에 임했다. “<국제시장>이 아버지의 이야기였다면, <영웅>에는 어머니와의 이야기가 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영웅> 작업을 하고 있기 때문에 진심을 다해 만들고 있다.” 뮤지컬을 처음 봤을 때는 안중근 의사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눈물이 났지만, 나중에는 안중근과 조마리아 여사(나문희)의 절절한 드라마에 눈물이 났다는 그는 “<영웅>은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와닿는 지점이 달라질 작품”이라고 부연했다.
-뮤지컬 <영웅>을 영화화하겠다고 결심한 이유가 무언가.
=처음엔
[한국영화 빅프로젝트⑤] <영웅> 윤제균 감독 - 할리우드 못지않은 라이브로 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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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를 찍어도 이상하게 날이 서 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화과로 출강했던 인사이트필름의 신혜연 대표는 당시 학생이었던 정지연 감독의 단편들을 보고 이렇게 생각했다. 그가 졸업작품을 위해 썼던 <앵커>의 초안을 읽고 리뷰를 하는 과정에서 신 대표는 상업 장르영화로의 가능성을 봤다. <앵커>는 서울독립영화제 특별상을 수상하고 베를린국제영화제에도 상영됐던 단편 <봄에 피어나다>(2008)를 연출한 정지연 감독의 첫 장편영화다. 디벨롭 과정에서 주인공이 앵커라는 설정이 추가된 것은 “뉴스에서 빈틈없는 모습을 보여주는 여성의 내면에 뭔가 파고들 거리가 있지 않을까”라는 정지연 감독의 발상 때문이다. 사회에서 여자 아나운서를 바라보는 시선도 영화에 반영돼 있다. “단정하고 지적이고 예쁘고…. 그렇게들 바라보는 여자 앵커의 이면을 다루면 재밌겠더라. 또한 남자들은 기자를 하다 앵커가 되는데 여자들은 아나운서를 하다가 앵커가 되지 않나. 그렇게 여자 기자와 앵
[한국영화 빅프로젝트④] <앵커> 정지연 감독 - 여자 기자와 앵커 분리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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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민, 이정재, 박정민이 ‘킬러’와 ‘추격’을 앞세운 범죄 액션 드라마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가제)에서 만났다. 데뷔작 <오피스>(2014)에서 직장 생활의 애환을 호러 장르 문법으로 풀어냈던 홍원찬 감독이 연출을 맡은 두 번째 연출작으로, 현재 방콕에서 극비리에 촬영 중이다. 사전에 시나리오조차 공개하지 않은 탓에 방콕에 있는 홍원찬 감독에게 무작정 전화를 걸어 스무고개 놀이하듯 질문을 던졌다. “이야기는 심플하지만 현재로서는 공개할 수 있는 내용이 많지 않다”며 곤란해하는 그는 이 영화의 스토리라인을 “두명의 청부살인업자와 한명의 조력자가 서로 쫓고 쫓기는 상황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로 요약한다. 영화의 주요 배경이 되는 장소는 한국과 방콕이며 아직 공개할 수 없는 또 다른 나라까지 포함해 3개국에서 촬영 중이다. 2019년 9월 23일에 크랭크인해서 한국을 포함한 2개국 촬영을 마치고 타이로 건너가 <씨네21>과 전화 인터뷰를 한 1월 6일
[한국영화 빅프로젝트③]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가제) 홍원찬 감독 - 밤의 도시에서 펼쳐지는 추격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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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알이 빗발치는 내전통에서 남과 북이 손을 맞잡은 채 사막을 질주하는 광경은 상상만 해도 흥미진진하다. 남한도, 북한도 아닌 제3국, 그것도 낯선 아프리카 대륙에서 그들이 사선을 넘나들며 동고동락한 사연은 마치 소설 속 한 장면 같지만 실화다. 지난 1990년 12월 30일, 아프리카 소말리아 수도인 모가디슈 시내에서 반군이 쏘아올린 한발의 대포는 소말리아를 순식간에 내전으로 내몰았다. 누구의 안전도 보장할 수 없는 생지옥에서 강신성 주소말리아 한국 대사와 김용수 주소말리아 북한 대사, 둘을 포함한 남북대사관 직원들은 12일 동안 동거하며 위기를 헤쳐나갔다.
류승완 감독의 열한 번째 장편영화 <모가디슈>는 대한민국 외교사에서 가장 극적인 순간을 다룬 실화에서 출발하는 작품이다. 류 감독이 이 사건에 관심을 가지고 시나리오를 직접 쓴 계기는 단순하다. “누구나 그렇듯이 극적인 상황에 처한 사람들에게 빨려들어갔다. 시나리오를 쓰는 과정에서 남과 북이 함께 탈출하는 과정에
[한국영화 빅프로젝트②] <모가디슈> 류승완 감독 - 촬영을 거듭할수록 진화 중인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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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가장 큰 위험요소는 핵이 아니라 불안정한 정치체제다.”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난다면 패권국가 미국과 신흥강국 중국의 전쟁이 될 가능성이 크고, 그럴 경우 한반도는 가장 첨예한 전선이 될 것이다.” 양우석 감독은 마치 북한 문제 전문가처럼 한반도의 상황을 술술 이야기했다. 양우석 감독이 <변호인>(2013) 이후 만든 <강철비>(2017)는 냉철한 현실 인식과 영화적 상상력을 잘 아우른 작품이었고, <강철비>의 속편으로 알려진 <정상회담>(가제)은 <강철비>와 현실 인식과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상호보완적 속편”으로 현재 후반작업 중이다. 웹툰 <스틸레인> <강철비: 스틸레인2> <정상회담: 스틸레인3>(현재 연재 중)로 이어지는 ‘스틸레인 유니버스’ 속에 존재하는 작품이며, 이번엔 북의 쿠데타로 남북미 정상이 잠수함에 납치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정우성이 남한 대통령, 곽도원이 쿠
[한국영화 빅프로젝트①] <정상회담>(가제) 양우석 감독 - 남북미 회담, 영화에서라도 실컷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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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자년(庚子年)이 밝았다. 쥐의 해답게 올해 한국 영화산업은 꼭두 새해부터 부지런히 신작 준비에 여념이 없다. 일단 류승완(<모가디슈>), 윤제균(<영웅>), 이준익(<자산어보>), 연상호(<반도>), 양우석(<정상회담>(가제)) 감독 등 스타 감독들의 복귀가 눈에 띈다. 탈출·실화(<모가디슈>), 뮤지컬(<영웅>), 사극(<자산어보>), 좀비·포스트 아포칼립스(<반도>), 분단물(<정상회담>) 등 장르가 다양하게 포진해 있다. 데뷔작으로 인정받은 젊은 감독들도 두 번째 영화를 들고 돌아왔다. <오피스>를 연출했던 홍원찬 감독은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가제)를,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으로 많은 관객의 사랑을 받은 변성현 감독은 <킹메이커: 선거판의 여우>를 내놓는다. 최근 극장가에서 성과를 내고 있는 여성 서사 또한 눈에
[스페셜] 2020년 주목할 만한 한국영화 빅프로젝트9 ①~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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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즈의 마법사: 요술구두와 말하는 책>은 악당 어핀(석승훈)으로부터 위기에 빠진 에메랄드시티를 구하기 위한 도로시(김소희), 팀(허성재)과 친구들의 모험담을 담은 애니메이션이다. 팀은 도로시의 방에서 빛나고 있던 유리구두를 만지다 에메랄드시티로 순간이동하게 된다. 팀이 완전히 사라지기 직전 이 장면을 목격한 도로시 또한 강아지 토토와 함께 그를 따라나선다. 에메랄드시티에 도착한 팀은 유리구두를 신은 사람의 소원만 들어주는 말하는 책을 갖게 되고, 그곳에 있는 이들에게 환호를 받는다. 하지만 이도 잠시, 일련의 사건으로 유리구두와 말하는 책 모두를 잃고 이곳저곳을 헤매는 신세가 된다. 중반부를 넘어가면서 정체를 드러내는 말하는 책은 어핀과 모종의 거래를 하고, 이야기는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도로시와 팀은 재회해 에메랄드시티를 구할 수 있을까. 탄생 120주년을 맞은 전세계가 사랑한 명작 <오즈의 마법사>가 또 한편의 영화로 제작되어 관객을 찾는다. <오즈
<오즈의 마법사: 요술구두와 말하는 책> 캐릭터간의 협동과 우정이 돋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