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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어사이드 스쿼드>에서 소개된 것처럼, 할리 퀸(마고 로비)은 조커의 연인으로 잘 알려진 DC 코믹스의 캐릭터다. 분열적 상태와 자유분방한 태도를 반영한 헤어·메이크업이 우선 눈길을 끌지만, 할리 퀸은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훨씬 흥미로운 이야기를 품고 있는 캐릭터다. 불우한 어린 시절을 거쳐 정신과 박사가 된 할린 퀸젤은 아캄 수용소에서 만난 조커와 사랑에 빠져 할리 퀸이 된다.
<버즈 오브 프레이(할리 퀸의 황홀한 해방)>(이하 <버즈 오브 프레이>)는 조커와 헤어진 할리 퀸이 조커의 후광에서 벗어나는 이야기이자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는 이야기다. 조커와의 이별이 고담시에 알려지자 고담시의 범죄왕 로만(이완 맥그리거)을 비롯한 갱들은 할리 퀸에게 복수를 다짐한다. 한편 로만은 자신의 자금줄이 되어줄 다이아몬드를 잃어버리는데, 할리퀸은 다이아몬드를 찾아줄 테니 자신의 목숨을 살려달라며 거래를 한다. 다이아몬드를 훔친 10대 소매치기 소녀 카산드라
<버즈 오브 프레이(할리 퀸의 황홀한 해방)> 할리 퀸이 조커의 후광에서 벗어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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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구력이 3선이라 요령이 몸에 뱄다. 3선 국회의원 주상숙(라미란)은 국민 앞에선 서민의 일꾼을 자처하고, 청렴결백의 이미지를 내세운다. 가톨릭 신자를 만나면 성호를 긋고, 불교인을 만나면 재빨리 손목에 염주를 찬다. 하지만 거짓말이 습관인 그의 속내는, 서민이 자신의 일꾼이라는 것이다. 이중생활을 불사하는 것도 표를 얻기 위한 전략이다. 주상숙과 그의 가족은 서민 아파트와 고급 빌라에 두집 살림을 차려 시민들에게 보여주기식 정치를 한다. 평소에는 명품 옷과 구두를 착용하다가 선거유세를 하러 나갈 때는 저렴한 신발로 갈아신는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주상숙이 거짓말을 할 수 없게 되면서 그의 선거 사무실은 발칵 뒤집어지고, 유세 전략에 비상등이 켜진다.
<정직한 후보>는 주상숙이 거짓말을 앞세워 이미지 정치를 하는 전반부와 주상숙의 입에서 거짓말이 나오지 않으면서 소동이 벌어지는 후반부로 구성된 코미디영화다. 전반부는 겉과 속이 다른 정치인의 위선을 꼬집으며 풍자
<정직한 후보> 어느 날 갑자기 주상숙이 거짓말을 할 수 없게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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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대전이 끝날 무렵의 독일 마을, 10살 소년 조조(로만 그리핀 데이비스)는 엄마 로지(스칼렛 요한슨)와 단둘이 살고 있다. 전쟁으로 아버지를 잃었지만 조조는 아직도 그가 이탈리아 전장에서 싸우고
있다고 믿는다. 아버지를 대신해서 아이의 곁에 머무는 인물은 다름 아닌 ‘히틀러’(타이카 와이티티)다. 감독인 타이카 와이티티가 직접 연기하는 상상 속의 친구에게 조조는 맹목적 믿음을 보인다. 나치즘을 배경으로 한 엉뚱한 코미디 <조조 래빗>은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을 비롯해 여우조연상, 각색상, 편집상, 미술상, 의상상 등 6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전쟁이란 혼란한 상황을 배경으로 영화는 나치에 감응된 어린이의 첫사랑을 대담하고 기발하게 그린다. 온 가족을 위한 영화란 점에서 기존의 아동영화와 비슷한 색채를 지녔지만 타이카 와이티티 감독의 이번 새 작업은 몇 가지 독특한 변주의 지점들을 가지고 있다.
‘호랑이’란 뜻의 이름을 가진 타이카 와이티티 감독은 영화 제작국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 ④] <조조 래빗> 작품상·여우조연상·각색상 등 6개 부문 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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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한창이던 1917년 4월 6일, 서부전선의 영국군 병사 스코필드(조지 매케이)와 블레이크(딘 찰스 채프먼)는 중대한 임무를 부여받는다. 독일군의 함정에 빠진 데본셔 연대의 매켄지 중령(베네딕트 컴버배치)에게 공격 중지 명령을 전달하게 된 것이다. 통신망이 전부 끊긴 상태에서 1600명의 동료들을 구하기 위해 스코필드와 블레이크는 전쟁터를 가로지르기 시작한다. 두 병사의 목숨을 건 질주를 그린 영화 <1917>은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과감독상 등 10개 부문 후보에 오르며 화제가 되었다. <1917>을 네 가지 키워드로 살펴봤다.
샘 멘데스
<1917>은 데뷔작 <아메리칸 뷰티>로 할리우드를 휩쓴 감독 샘 멘데스의 8번째 장편영화다. 미국 중산층의 겉과 속을 비극적이면서도 냉소적으로 포착한 <아메리칸 뷰티>부터, 대공황 시기 마피아의 부정(父情)을 그린 <로드 투 퍼디션>과 걸프전의 비하인드를 풍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 ③] <1917> 작품상·감독상·각본상 등 10개 부문 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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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시스 하>(2012), <미스트리스 아메리카>(2015)의 공동 각본가이자 배우로 활동해온 그레타 거윅은 자전적 영화 <레이디 버드>(2017)로 감독으로서의 재능까지 뽐낸다. 꿈을 좇아 돌진하는 소녀들, 고집불통이지만 사랑스러운 여성들을 창조하고 연기해온 그레타 거윅은 두 번째 영화로 <작은 아씨들>을 선보인다. <작은 아씨들>에도 어김없이 야망과 현실 사이, 가난과 성공 사이에서 열심히 뜀박질하는 여성들이 등장한다. 루이자 메이 올컷의 19세기 소설 <작은 아씨들>을 그저 메그, 조, 베스, 에이미 네 소녀의 성장기이자 가족드라마로 생각하기 쉽지만, 소설은 결혼 이외의 출구를 찾고 싶은 여성 작가 조의 온건한 투쟁기이기도 하다. 그레타 거윅의 손을 거쳐 각색된 이야기는 더욱 세련된 화법으로 자매애와 사랑, 결혼과 성공을 이야기한다. 영화는 “고난이 많았기에 즐거운 이야기를 쓴다”는 루이자 메이 올컷의 말을 서두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 ②] <작은 아씨들> 그레타 거윅 감독, “엔딩에 대해 고민하는 과정이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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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이 2월 9일(현지시각) LA 돌비극장에서 열린다.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편집상, 미술상, 국제영화상까지 6개 부문 후보에 오른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은 단연 올해 아카데미 최고의 화제작이다. 오스카 회원들이 아시아 감독이 만든 외국어영화에 어떤 지지를 보냈을지 쉽게 예측하긴 힘들다. 그럼에도 다양성의 포용이 중요한 가치가 되어야 함을 올해도 후보작의 면면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작품상 후보에 오른 9편의 영화 중 여성감독의 영화는 그레타 거윅의 <작은 아씨들>이 유일하고, 감독상 후보에 오른 5명은 모두 남성이며, 남녀 주조연배우상 후보에 오른 20명 중 흑인은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해리엇>의 신시아 에리보가 유일하다. 이러한 사실은 오스카의 여전한 보수성을 말해준다.
어쨌든 <씨네21>은 아카데미 시즌마다 자리를 깔아도 좋을 높은 적중률로 아카데미의 선택을 예측했다. 올해는 <기생충>이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 <기생충>은 몇개의 오스카를? ① ~ 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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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 역사에 길이 남을 쾌거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2020년 제92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고상인 작품상을 비롯, 감독상, 각본상, 국제영화상까지 수상하며 4관왕을 달성했다. 이로써 <기생충>은 아카데미 각본상, 작품상을 동시에 수상한 ‘최초의 아시아 영화’가 됐다.
이미 <기생충>은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 한국영화 최초로 주요 6개 부문 후보에 선정된 이후, 아카데미 전초전이라 불렸던 77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한국영화 최초 외국어영화상, 73회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각본상과 외국어영화상, 그리고 미국 배우조합상 시상식에서 앙상블상 등 주요 부문에 연이어 수상하면서 한국영화의 위상을 전세계에 알렸다.
가장 먼저 각본상 수상자로 호명되자 봉준호 감독과 한진원 작가가 나란히 무대에 올랐다. 봉준호 감독은 “시나리오를 쓴다는 게 사실 고독한 작업이다. 내가 국가를 대표한 건 아니지만 한국에서는 첫 오스카 트로피라 너무나 감
<기생충> 아카데미 주요 4개 부문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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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인의 잔치, 오스카 시상식. 지난 1월 14일 발표된 후보군 가운데 6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된 <기생충>의 선전으로 국내 관객들의 이목이 한층 집중된 상황이다. 마틴 스코세이지의 <아이리시맨>, 토드 필립스의 <조커>, 노아 바움백의 <결혼 이야기> 등 화제 속의 작품들이 <기생충>과 겨룰 일만 남았다. 한편, 총 24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된 작품들 중 아직 국내 관객들과 만나지 못한 낯선 영화들이 있다. 그중 앞으로 만나볼 수 있는 작품들을 모아 정리했다.
*2020년 2월 4일자에 쓰여진 기사입니다.
[개봉작]
조조 래빗
2020. 02. 05 개봉
두 편의 아카데미 영화가 극장을 방문했다. 타이카 와이티티 감독의 <조조 래빗>은 지난해 제44회 토론토국제영화제에서 최고상인 관객상을 거머쥐며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제2차 세계대전 말을 배경으로 한 영화는, 우울한 시대상을 비틀어 독일 소년단원을 주인
2020 아카데미 주요 작품들의 개봉 일정 한눈에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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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외국어영화상 현 국제영화상. 오스카 시상식을 앞둔 <기생충>의 가장 유력한 수상이 점쳐지는 부문이다. 영화제 측이 봉준호의 뼈 때리는 "로컬 영화제" 발언을 얼마나 의식했는지 모를 일이지만 <기생충>은 국제영화상을 비롯한 총 6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는 쾌거를 달성했다. 해외 유수의 영화제에서 수상 소식이 끊이지 않고 있는 <기생충>의 국제영화상 수상은 거의 확실시되고 있는 양상이다. 하지만 그날이 오기 전까진 누구도 알 수 없는 법. 어떤 영화들이 <기생충>과 경합을 벌이는지 후보에 오른 4편의 영화를 살펴보자.
문신을 한 신부님 / 폴란드
폴란드 영화 <문신을 한 신부님>은 사제가 된 죄수의 이야기를 한다. 절도, 마약, 과실치사 등의 죄목으로 소년원을 간 다니엘이 가석방되고, 신부 토마시의 도움으로 목공소에 일자리를 얻는다. 하지만 목공소로 향하던 중 소년원에서 몰래 훔친 사제복 때문에 얼결에 신부 행세를 하게 된
<기생충>과 경합할 아카데미 국제영화상의 후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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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군부독재가 막을 내리던 시간이 시월의 마지막을 향하던 때였음을 새삼 깨닫는다. 나무들은 누런 색깔로 변했다. 세상도 온통 늦가을의 황색- 생명력이 없는 메마른 색깔의 옷을 입고 있었다. 네명의 남자들이 활동하는 곳은 아예 지하의 공간처럼 보인다. 창이 없어 빛이 스쳐 지나간 흔적 정도만 느껴지고, 꽉 틀어막히고 억압된 공기는 바람의 흐름마저 통제한 듯하다. 아마도 거기는 무덤 아래이거나 거대한 관 내부의 방일 것이다. 푸석한 얼굴에 소리를 지르는 박통(이성민), 김규평(이병헌), 박용각(곽도원), 곽상천(이희준)은 자기들이 이미 죽었음을 알지 못한다. 중심에 선 박통은 <노스페라투>(1922)의 주인공을 빼닮았다. 주변의 피를 뽑아먹고 사는 존재이니 올록이라 해도 이상하지 않다. <남산의 부장들>은 유령들이 드글대는 영화다(그런데, 유령의 피를 뽑아먹는 게 가능한 일일까?). 그게 <남산의 부장들>의 인상이다.
현실을 누아르로 만든 네 남자
[남산의 부장들] 자멸한 범죄자의 리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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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의 부장들>의 장르적 성취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 사건 자체보다는 그것이 파생시킨 인물의 정서로 극의 분위기를 만들고 관객으로 하여금 거리를 두고 이를 지켜보게 하는 것, 그것이 장 피에르 멜빌(과 알랭 들롱)로 대변되는 프렌치 누아르의 매력이다. <남산의 부장들> 역시 마찬가지다. <달콤한 인생>(2004)에서 자신이 프렌치 누아르에 얼마나 적합한 배우인지 이미 증명한 바 있는 이병헌의 연기를 전면에 내세운 뒤, 김규평(이병헌)의 심리적 변화에 따라 때로는 차갑게 때로는 뜨겁게 영화의 분위기를 조절하는 <남산의 부장들>은 장르영화로 충분히 매력적이다. 문제는 <남산의 부장들>이 단순한 장르영화가 아니라 역사적 인물과 사건을 장르 속으로 흡수한 영화라는 점이다.
장르, 역사와 허구의 봉합
우리는 동일한 사건을 전혀 다른 방향에서 접근한 또 다른 영화 한 편을 알고 있다. <그때 그사람들>(2005). 10
[남산의 부장들] 탈역사 시대의 장르영화를 즐기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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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의 부장들>이 논쟁적인 화두를 던지는 영화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는 필연적으로 논쟁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좁게는 사실의 왜곡에 관한 문제부터 넓게는 재현의 윤리까지, ‘무엇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에 대한 질문은 결국 영화언어의 본질에 다다르기 때문이다. 한국 현대사의 갈림길에 놓였던 사건을 바탕으로 한 이 영화를 두고 안시환, 이용철 평론가가 서로 상반된 의견을 보내왔다. 이것은 답이 아니라 또 다른 질문이다. 두편의 글은 <남산의 부장들>을 볼지 말지에 대한 판단을 제시하는 대신 어떤 방식으로 텍스트를 탐험해나가면 좋을지, 모험의 가능성을 제안한다. 이야기와 메시지에 매달려온 딱딱한 인식에 균열을 내는 이 글들을 통해 영화를 향한 각자의 길을 발견해나가길 바란다.
<남산의 부장들>을 바라보는 두 개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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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국제영화제(이하 베를린영화제)가 고희를 맞는다. 두명의 신임 집행위원장은 지난 1월 29일 제70회 베를린영화제 라인업 발표 기자회견을 열었다. 조직 운영을 맡은 마리에트 리센벡과 프로그래밍을 담당한 카를로 카트리안이 새로 단장한 올해 베를린영화제의 윤곽을 소개했다. 큰 틀은 변하진 않았다. 다만 칸국제영화제의 ‘주목할 만한 시선’에 준하는 ‘인카운터스’(Encounters) 섹션이 새로 생겼다. 대신 경쟁부문에 소개되지만 경쟁작은 아닌 ‘경쟁 외 작품’이 없어지고, 음식과 관련된 영화를 선보이는 ‘미각’ 섹션도 사라졌다. 기자회견 분위기도 예년과 달리 사무적으로 진행됐다. 카트리안은 영화 축제는 감독, 영화 프로그래머, 평론가, 전문가, 관객간의 토론 장소가 되어야 한다며 “영화관은 관객에게 세계를 알아가고 다른 눈으로 볼 수 있는 끝없는 가능성을 제공하는 장소”라고 했다. 올해 영화제 주제는 매년 베를린영화제의 관심사였던 ‘지속 가능성’이라고 밝혔다. 경쟁작에 오른 작품은
[베를린] 베를린국제영화제 라인업 발표, 홍상수 감독의 <도망친 여자> 경쟁부문 후보 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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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스티븐 달드리 / 출연 니콜 키드먼, 줄리언 무어, 메릴 스트립 / 제작연도 2002년
미국으로 어학연수를 갔을 때, 마트에서 개봉한 지 몇해가 지난 영화의 DVD를 10달러도 안되는 가격에 판매하고 있었다. 영화를 좋아하니까 영어 공부를 핑계로 가끔 DVD를 한장씩 사모으곤 했다. <디 아워스>도 그렇게 보게 된 영화 중 하나였다. DVD에는 한글 자막이 당연히 없었는데, 영화를 다 보고 난 후 이 영화를 완전히 이해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건 정말 마법 같은 일이었다. 왜냐하면 당시 내 영어 실력은 형편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도 그렇다.
어른이 되었다는 기쁨으로 스무살을 정신없이 보내고 스물한살이 되었을 때 갑자기 우울해졌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어느 순간 내 나이가 너무 많게 느껴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어이가 없어서 돌아가서 한 소리 해주고 싶지만 그때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스물셋이 되었을 때는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서 부모님에게 마
[내 인생의 영화] 한가람 감독의 <디 아워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