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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해당한 사람의 소지품을 형사들이 살핀다. 세탁소 영수증, 회중시계, 다양한 동전으로 총 75센트가 있다. 희생자의 얼굴을 알아볼 수 없고, 지문 감식으로 신원을 확인하지도 못했기 때문에 형사들은 회중시계를 보며 나이가 많은 사람일지 모르겠다고 추론한다. 시계를 열어보자 이상한 점이 있다. “3시14분에 멈춰 있는데? 사고 시각이 아니잖아.”사건 현장에 불려나온 샘은 궁금해하던 것을 시체 주머니에 있던 노트에서 알아낸다. “안녕하신가, 친구여. 나는 도둑이자 살인자이자 납치범이라네”로 시작하는 일종의 기나긴 편지. 시체의 정체는 연쇄살인마였다.
<네 번째 원숭이>는 ‘네 마리 원숭이 킬러’(줄여서 4MK)라고 불리는 연쇄살인범의 편지와 그를 5년간 추적해온 시카고 경찰국의 4MK전담반 형사 샘 포터를 비롯한 수사진의 상황을 번갈아 보여준다. 연쇄살인마 4MK는 희생자의 귀, 눈, 혀를 적출해 가족에게 보내며 마지막에는 시체를 공공장소에 전시한다. 소설의 도입부에 등장한
씨네21 추천도서 <네 번째 원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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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공간으로부터, 시간으로부터 떠나온다는 것은 많은 경우 그곳에 속한 사람들로부터 멀어진다는 뜻이다. 그렇게 장소와 주변의 사람이 바뀌면 ‘나’라는 존재도 바뀐다. 나는 나로서 살아가니까, 가끔 스스로의 변화를 잘 모른다. 그러다 그 장소, 그 사람을 만나면서 시간을 되돌리는 경험을 할 때가 있다. 금희의 <천진 시절>은 그런 소설이다. 주인공 이름은 상아다. 상아라는 이름은 중국 신화에서 온 이름이다. 상아는 명사수 후예의 아내로, 혼자 불사약을 먹고 남편을 떠나 영생을 얻었다. <천진 시절> 속 상아는 운명적 사랑의 주인공이 아니고, 불사약 같은 것은 얻지도 못한다. 상아는 그저 집에서, 고향에서 벗어날 기회를 잡기 위해 자신에게 호감을 가진, 어려서부터 알고 지낸 무군을 따라나선다. 부모님은 상아를 그냥 남자와 떠나게 두지 못해 약혼을 시키고, 약혼자와 함께 타지인 천진에 도착하니 일자리를 소개해준 무군의 누나는 둘을 위해 침대 하나짜리 방을 얻어놓았다.
씨네21 추천도서 <천진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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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펼치면 여름 냄새가 난다. 솜털이 날리는 덥고 건조한 시골의 여름, 건초 더미, 차갑고 묵직한 야외 수영장, 햇볕에 탄 피부의 감촉. 주인공 캐머런은 수영선수로 활동하는 10대 청소년으로, 몬태나에서 친구와 애인을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하며 레즈비언 정체성을 찾아간다. <이방인>처럼, <사라지지 않는 여름> 또한 부모님의 죽음으로 시작한다. 친구 아이린과 캐머런이 가게에서 물건을 훔치고 인생 첫 키스를 나누며 짜릿한 순간을 보낸 그때, 부모님이 매해 찾아가던 퀘이커 호수에 갔다가 사고로 세상을 떠난 것이다. 캐머런은 부모님의 죽음을 전해 들으면서도 자신의 행동이 들키지 않겠다고 안심하고 그런 자신에게 깊은 죄책감을 느낀다. 이 죄책감은 매 순간 캐머런을 따라다닌다.
사랑과 우정, 이별과 불안과 슬픔이 떠돌며 하나의 밧줄로 얽힌 여름의 시간은, 사랑했던 친구의 배신 혹은 고발로 인해 끝난다. 이 단절을 보며 레드클리프 홀의 퀴어 고전소설 <고독의 우
씨네21 추천도서 <사라지지 않는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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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스페인 세비야 지방까지는 비행기로 스무 시간 남짓 걸린다. 하지만 여성이라면, 도시가 아닌 곳에서 태어났다면, 이렇게도 비슷할까 싶어 답답하고도 반가우리라. 카르멘 G. 데 라 쿠에바는 어려서부터 시골 마을 공동체가 여성에게 기대하는 역할에 거부감을 느꼈고 뚱뚱한 외모를 가지고 놀려대는 남자아이들에게 분노했으며 자유로운 곳으로 떠나야 한다고 절박하게 주문을 외웠다. 좁은 현실을 확장시켜준 존재는 <작은 아씨들>의 조 마치, <삐삐 롱스타킹> 시리즈의 삐삐 같은 여성 캐릭터들이다. 홀로 책에 빠져 지낼 땐 은둔하면서도 자유로웠던 에밀리 디킨슨을 생각하고, 시몬 드 보부아르의 <제2의 성>을 읽으며 저임금 노동과 가사노동 및 육아에 매인 주변 어른 여성들을 고찰했다.
장학금이라는 탈출버튼을 눌러 독일로 떠난 시절에는, 25살에 세계 일주를 해낸 여성 넬리 블라이를 생각하며 용기를 냈다. 갖가지 국적의 좌절한 학생들이 뛰어내려서 ‘자살자들의 기
씨네21 추천도서 <엄마, 나는 페미니스트가 되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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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서운 바람이 흙먼지를 뿌리며 슬레이트 지붕을 엎는 골목. 가난의 풍경을 짊어지고 미래로 가겠다고 다짐하는 여자. 인터넷에서도 소문난 단편 <도둑맞은 가난>은 부자가 제 이력서에 가난 체험까지 집어넣겠다며 한칸 방 살기를 했다는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다. 가족들이 가난에 진저리치다 죽어버린 가운데 홀로 살아남은 젊은 여성이, 가난한 사람들에게서 ‘여름 아침의 억센 푸성귀’처럼 힘차고 청정한 구석을 발견하고서 가난을 소명 삼아 살기로 다짐했는데, 누군가는 그 가난을 한번 겪고 말 경험으로 치부하니 의미를 빼앗겨버려 치욕을 느꼈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치욕 속에 분노하는 순간마저도 너무나 생생하게 활기를 뿜어내 매혹적이다. 미군기지에서 물건을 능숙하게 빼내 팔던 <공항에서 만난 사람>의 무대소 아줌마도 그렇다.
<복원되지 못한 것들을 위하여>는 단번에 읽어내릴 만큼 재미있지만 독자를 쥐고 흔드는 힘이 워낙 강해 책을 덮고 쉬고 싶기도 한 박완서 작가의 단
씨네21 추천도서 <복원되지 못한 것들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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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은 많고 시간은 부족하다. <씨네21>이 2월에 추천하는 책은 하나같이 재미있고 흥미진진하며 문제적이다. 과거에 알던 사람과 연락이 닿으며 한 시절의 기억을 통째로 소환하는 금희 작가의 소설 <천진 시절>이 보여주는 회고의 시간. 데뷔작 <작은 것들의 신>으로 부커상을 수상한 뒤 오랫동안 사회운동에 힘써온 아룬다티 로이의 오랜만의 신작 <지복의 성자>도 소개한다.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의 마크 웹 감독 연출로 드라마화가 결정된 J. D. 바커의 스릴러 소설 <네 번째 원숭이>. 시대가 흘러도 여전히 현재형으로 읽히는 작가 박완서 중단편집 <복원되지 못한 것들을 위하여>. 때로 유쾌하고 즐겁지만 여성의 삶을 날카롭게 포착하는 카르멘 G. 데 라 쿠에바의 에세이 <엄마, 나는 페미니스트가 되고 싶어>는 놓치기 아깝다. 에밀리 M. 댄포스의 <사라지지 않는 여름>은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씨네21 추천도서 - <씨네21>이 추천하는 2월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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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쇄살인범에게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남자 형사가 오열하는 이야기. 깊은 무기력에 빠져 있던 그들을 일으키기 위해서 또 다른 여성 피해자가 줄줄이 죽어나가는 드라마의 제목을 십수편은 댈 수 있다. 여성의 사체를 다양하게 전시하고 훼손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이야기인지 묻고 싶었고, 저항하지 못하는 상태의 여성 신체에 대한 도착증을 의심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리고 이쪽 장르도 반복을 거듭하면서 조금씩 변주되는 지점이 보인다.
OCN 드라마 <본 대로 말하라>는 약혼자를 잃은 천재 프로파일러 오현재 역의 장혁, 몸을 잘 쓰고 절권도를 구사하는 그를 전동 휠체어에 고정시켰다. 대신, 현장을 뛰는 것은 본 것을 사진처럼 저장해 기억하는 픽처링 능력을 지닌 시골 순경 차수영(최수영)이다. 앞서 오현재의 능력을 발견하고 성장시켰던 광역수사대 팀장 황하영(진서연)이 차수영을 알아보고 광수대로 차출했다. 극중 잔혹한 장면은 끊이지 않지만, 징벌의 의미로 전시되는 사체는 주로 남성이다.
<본 대로 말하라>, 범죄수사물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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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이 무성하다. 배우 박해수가 연기한 킬러 한은 네명의 친구들을 소리 없이 쫓으며 죽음의 사자 같은 초현실적 기운을 뿜는다. 심중을 알기 어려운, 연기 같고 암흑 같은 존재다. 배우에겐 해석과 표현의 여지가 무궁무진했을 캐릭터를 만나, 박해수는 여느 때보다 즐거운 고통으로 침잠했다. <마스터>(2016)를 기억하는 관객에겐 배우의 도약과 확장을 지켜보는 만족감을, 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을 기억하는 관객에겐 반전에 가까운 매력을 선사할 것이다. <사냥의 시간>을 “나 스스로에게 솔직해질 수 있었던 현장. 역할과 일대일로 맞짱 뜬 느낌”이라고 회고한 박해수에게 킬러 연기의 묘미를 들었다.
-윤성현 감독이 캐스팅 이유를 밝힌 적 있나.
=한창 연극 공연하던 시절에 인터뷰 도중 찍힌 사진이 있었는데 그 사진을 좋게 보신 것 같다. 2010~11년쯤 찍힌 사진이었는데, 머리를 바짝 깎은 모습이었다. 아마 그래서 눈매가 더 돋보였으려나. (웃음) &
<사냥의 시간> 박해수 - 야생동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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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탈하고 군더더기 없이 정확하다. 자신이 맡은 캐릭터를 설명하는 배우 박정민의 말들이 그랬다. 데뷔작 <파수꾼>에 이어 10년 만에 영화를 통해 윤성현 감독, 배우 이제훈과 조우한 박정민은 10대의 고등학생에서 이번엔 20대 인생 마지막 기회를 잡는 어쩐지 더 절박한 청춘이 되어버렸다. 그중에서도 박정민이 연기한 상수는 친구들 무리에서 조금은 외따로 솟아난, 외롭고 비밀스런 캐릭터다. “내 나름대로 찰흙을 빚어서 뭔가를 만들어내지만, 결국 현장에서 감독과 동료 배우들에 의해 새로운 결과물이 나온다. 그게 재밌다”는 박정민. 그에게서 한국영화의 젊은 인력들이 똘똘 뭉쳐 만들어낸 이번 신작을 향한 애정과 존경이 엿보였다.
-상수는 여러모로 영화적인 캐릭터다. 상대적으로 분량은 적게 느껴질 수 있지만, 준석(이제훈)의 꿈을 통해 묘사되는 부분 덕분에 상징적인 면도 있다.
=준석이 앞으로 달려나가다 말고 계속 뒤를 돌아보게 만드는 게 상수다. 나는 다른 캐릭터의 감정에 중
<사냥의 시간> 박정민 - 궤도를 벗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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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식은 전혀 계획이 없었다. <사냥의 시간> 제작보고회가 열리던 날, 그는 배우들과 윤성현 감독이 모두 블랙 계열의 옷을 입고 기자회견장 무대에 등장하자 당황했다. 혼자 주황색과 하늘색 옷을 믹스 매치해 의도치 않게 ‘주인공’이 되었고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장식했다. 지난해 <기생충> 제작보고회 때도 “<부산행>과 <옥자>와 비교해 더 큰 역할을 맡았다”는 말이 화제가 되어 ‘분량상 주인공’이 되기도했다. 공교롭게도 <사냥의 시간>에서 그가 맡은 기훈은 무리 중 가장 인기가 많고 사교성도 좋은 캐릭터다. “나와는 너무 다른 친구라서 연기하기 어려웠다”는, <사냥의 시간>과 함께했던 이야기를 들려줬다.
-신작 <경관의 피> 촬영으로 바쁜 와중에 아카데미 시상식과 베를린국제영화제 참석을 위해 스케줄 조정에 힘쓰고 있다는 기사가 쏟아지고 있다.
=<경관의 피> 촬영에 몰두하면서 틈날 때마다 오스
<사냥의 시간> 최우식 - 나의 버킷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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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홍이라는 연기자의 다른 챕터가 되었으면 한다.” 안재홍 배우를 마주하면 누구나 이웃집 형 ‘정봉이’(드라마 <응답하라 1988>)를 떠올릴 것이다. 인기를 모은 캐릭터이기도 했지만 순박한 일면이 우의 성격과 잘 맞아떨어져 더 오래도록 각인되었다. 하지만 <사냥의 시간>을 통해 안재홍 배우는 전에 없던 거칠고 강한 모습을 선보인다. “이전의 역할이 내 안에 있는 것들을 키워나간 방식이었다면 <사냥의 시간> 속 장호는 그야말로 캐릭터를 찾아나선 탐색에 가까웠다.” 영화에서 모든 배우가 각자의 캐릭터 자체로 보였기에 다른 역할이 욕심나지 않았다는 그에게 <사냥의 시간>에 대해 물었다.
-<사냥의 시간>에서 장호 역을 맡았다.
=장호는 세상에 친구밖에 없는 인물이다. 장호에게 친구들이란 곧 생의 의미나 다름없기 때문에 준석(이제훈)이 제안하는 계획이 위험하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앞장선다. 선택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그룹이
<사냥의 시간> 안재홍 - 새롭게, 다양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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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영화를 좋아한다면 이제훈과의 대화는 영화 보는 것만큼이나 즐거울 것이다. 그는 인터뷰로 만날 때마다 최근에 봤던 영화 이야기, 또는 최근에 갔던 영화 촬영지 이야기를 들려준다. 촬영을 마친 소감을 물으면, “너무 힘들어서 여행을 떠났다. 거리를 걷다가 우연히 들어간 극장이 고전영화를 필름으로 상영해주는 곳이더라. 그런데 그 영화가…”라는 식의 대화로 이어진다. 윤성현 감독의 데뷔작 <파수꾼>을 함께했던 “영화적 동지”로서 그에게 이번 영화는 가장 고되고 무척이나 즐거웠던 영화다. 이제훈에게 ‘윤성현의 시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시나리오를 읽고 든 첫인상은 어땠나.
=윤성현 감독과는 오래 알고 지내면서 <사냥의 시간> 전에 썼던 시나리오도 같이 이야기하곤 했다. 세밀한 디테일보다 직선적으로 달리는 단순함이 더 눈에 들어왔고, 왜 이런 시나리오를 썼는지, 어떻게 만들 것인지 궁금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지옥행 열차에 올라타게 될 줄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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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냥의 시간> 이제훈 - 영화가 너무 좋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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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현 감독의 9년 만의 신작, <사냥의 시간>이 2월 26일 개봉한다. 그간 개봉도 안 한 영화의 감독을, 심지어 아직 완성도 안 끝낸 그를 스튜디오로 불러내 추궁하듯 인터뷰한 게 몇번이던가. <사냥의 시간> 제작보고회가 있던 1월31일은 개봉일을 공식적으로 확정지은 날이었고, 이날 저녁 늦게야 하루 종일 스케줄을 소화한 배우들이 <씨네21> 표지 화보를 찍기 위해 스튜디오를 찾았다. 공개할 수 있는 선을 넘지 않고 이야기하자면, <사냥의 시간>은 막 출소한 준석(이제훈)이 친구들인 장호(안재홍)와 기훈(최우식)과 상수(박정민)와 함께 새 인생을 꿈꾸려다가 정체 모를 추격전에 휘말리는 이야기다. 배경은 경제 붕괴의 여파로 빈부격차가 극심해진 대한민국이며, 이들은 터전을 벗어나기 위한 유일한 통로로서 위험한 범죄를 계획한다. 공개된 스틸컷과 시놉시스로 유추해보건대, <터미네이터>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사이의 어
<사냥의 시간> 이제훈·안재홍·최우식·박정민·박해수 - 하얗게 불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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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이 만화] <남산의 부장들> 제가 왜 여기 끌려온거죠?
[정훈이 만화] <남산의 부장들> 제가 왜 여기 끌려온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