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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려, 얼마 안 걸려.” 마 이사의 등장은 간결하다. 뒤로 족히 20명을 거느리곤 양 사장(박호산)에게 협박 전화를 하는 뒷모습. 이 익숙한 장면에 새로운 레이어를 얹는 건 배우 차승원의 존재감이다. “양 사장아, 이 개새끼야.” 어이없단 듯 웃으며 양 사장을 부른 뒤 이내 적대감으로 굳어버린 그의 얼굴은, 태구(엄태구)의 복수 이후 또 한차례 파란이 일 것임을 암시한다.
처음 배우 차승원이 <낙원의 밤> 출연 소식을 알렸을 때 많은 관객이 <독전>의 브라이언을 떠올렸다. 하나 차승원이 완성한 마 이사는 브라이언보다 거칠고, 동물적인 감각을 지닌 인물이다. 희끗한 수염이 그의 나이를 가늠케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도 좀체 놀라는 법이 없는 마 이사에게선 나이듦으로 뭉뚱그릴 수 없는 연륜이 드러난다. 맡은 배역에 자신을 적절히 녹여낼 줄 아는 차승원의 저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처음 마 이사에 대한 인상은 어땠나.
=뭘 보고 이 역할을 나에게 맡겼
'낙원의 밤' 배우 차승원 - 섬세한 연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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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여빈은 현재 대중이 가장 주목하는 배우다. 지난 2월부터 방영된 드라마 <빈센조>에서 에너지 넘치는 변호사 홍차영으로 새로운 면면을 드러낸 뒤, 4월 9일 공개된 <낙원의 밤>에서는 냉철한 인물 재연으로 분해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그가 연기한 재연은 총기 불법 브로커 쿠토(이기영)의 조카로, 제주도로 내려온 태구(엄태구)와 함께 지내는 인물이다. 태구가 “총을 잘 쏘던데”라고 하자 재연은 “죽이고 싶은 사람이 있어서”라고 답한다. 그처럼 재연은 슬픔으로 주저앉는 대신 서슬퍼런 총구를 겨누며 뜻한 바를 이루기 위해 질주한다.
재연이 “정통 누아르의 변곡점이 되어줄 것”을 직감한 전여빈은 온전히 재연이 되기도, 또 완전히 타자화시켜 바라보기도 하며 재연에게 입체감을 더했다. 끝없이 튀어오르는 차영과 한없이 가라앉은 재연 사이에서 배우 전여빈의 세계가 다시 한번 확장했음을 실감한다. 상반기에만 두 작품을 선보이며 바쁘게 달려가고 있는 전여빈과 마주 앉아 나눈
'낙원의 밤' 배우 전여빈 - 표현의 희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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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신지옥>(2009)으로 범상치 않은 신인감독의 등장을 알렸고, <건축학개론>(2012)으로 평단과 관객의 사랑을 동시에 받았던 이용주 감독이 9년 만에 세 번째 영화 <서복>을 만들었다. <서복>은 인류 최초의 복제인간이자 죽지 않는 존재인 서복(박보검)과 죽음을 앞둔 민기헌(공유)의 동행을 통해 인간의 욕망과 두려움을 이야기한다. 복제인간이라는 소재와 160억원이 넘는 제작비 때문에 SF블록버스터로 생각하기 쉽지만 <서복>은 사실 장르 규정이 무의미한 영화다. 이용주 감독 역시 영화가 SF로만 정의되는 것을 경계했다. <서복>을 통해 전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무엇이었는지 이용주 감독에게 물었다.
-<건축학개론>이 개봉한 지 9년이 지났다. 세 번째 영화를 내놓기까지 왜 이리 오랜 시간이 걸렸나.
=나도 모르겠다. 주변에서 이런 속도로 다음 영화 만들면 환갑이라던데. (웃음) 이젠 그러지 말아야지 다
'서복' 이용주 감독 - <서복>은 나의 또 다른 데뷔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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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자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한 최대한의 지원, 창작에 대한 존중과 자유의 보장이 있다.” 김선아 프로듀서는 넷플릭스와의 작업에 대해 한마디로 ‘합리적’이라고 정리했다. “처음 해본 프로젝트였던 만큼 하나부터 열까지 새로운 도전이었고 전세계의 각기 다른 상황들을 조율해야 하는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게다가 코로나19로 인해 상황은 더욱 악화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럼에도 김선아 프로듀서는 이번 작업만큼 즐겁고 보람된 경험도 드물었다고 말한다. “이 기회를 우리만의 기회로 스쳐 지나가도록 하지 말자고 결심했다. 세부적인 부분까지 꼼꼼히 보고 배워 다큐멘터리 업계 전반에 보탬이 될 수 있도록 이정표로 삼고자 하는 마음으로 임했다. 그만큼 가치 있는 작업이었다.”
영화계에는 흔히 과정이 힘들어야 영화가 좋다는 속설이 있지만 김선아 프로듀서는 단호하게 “과정이 즐겁지 않으면 결과물이 어떻든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결국 투자자가 얼마나 오픈된 마인드로 창작자와 협업하는가의 문제다.
'인도·미국·스페인·브라질' 진심이 만나는 경험을 공유하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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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감독들의 공통점이 있다. 최상의 팀을 꾸리되 팀을 자기가 원하는 형태로 통제하려 들진 않는 것이다. 좋은 멤버들을 자기의 기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위치에 데려다놓는 걸로 이미 충분하다. <님아> 시리즈가 순항할 수 있었던 건 각국의 사정과 배경을 자연스럽게 녹여내는 가운데 사람에 초점을 맞출 줄 아는 좋은 감독들을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님아> 시리즈의 총괄제작으로서 진모영 감독의 역할은 각국 감독들에게 최대한 연출의 자율권을 보장해주되 <님아>의 취지와 정신이 흔들리지 않도록 중심을 잡고 끊임없이 피드백을 해주는 일이었다.
가령 일본의 도다 히카루 감독의 경우 사회적인 이슈를 탐사하는 독립다큐멘터리를 주로 찍어왔고 자연스럽게 이와 관련된 인물을 관찰의 대상으로 꼽았다. 한센병을 앓으면서 차별과 편견의 대상이 되어온 하루헤이와 동반자 키누코의 사연은 그렇게 카메라에 담긴다. 동시에 이것은 사회적인 문제를 고발하는 다큐멘터리가 아
'일본: 키누코와 하루헤이', 믿음의 벨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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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의 EP로서 진모영 감독의 고민은 분명했다.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가 가지고 있던 색깔과 정신을 지키고 싶다는 것이었다. “강계열, 조병만 부부를 기준에 두고 ‘그들은 과연 어떠했는가’를 끊임없이 되돌아보는 시간이었다. 처음엔 몇 가지 외형적인 조건이 있었다. 초혼으로 만나 오랫동안 함께 세월을 보내온 부부여야 했다. 50, 60년은 거뜬히 함께한 이들을 우선적으로 찾았다.
두 번째로는 함께 지내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많은 커플이길 바랐다. 직장을 나가서 하루 종일 떨어져 있어야 한다면 담을 이야기가 없으니까. 마지막으로 표현을 많이 해줄 수 있는 분들을 찾았다. 마음이 어떻게 보여지는지도 중요하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처음엔 한복을 입고 서로에게 살가운 애정을 표시하는 강계열, 조병만 부부와 닮은꼴을 찾으려 애썼다.”
하지만 실제로 그에 딱 맞는 커플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연출을 맡은 감독들 입장에서는 각자 자신의 관심사에 가까운
'한국: 생자와 영삼', 커플들에게 보내는 사랑의 교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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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올드마린보이> 개봉을 앞두고 연락이 왔다. 봉준호 감독의 <옥자>를 개봉하던 시기였던 걸로 기억한다. 장편다큐멘터리를 만들자는 제안이 아닌가 내심 기대를 하며 나갔는데 더 크고 모험적인 프로젝트가 기다리고 있었다.” <님아>는 진모영 감독의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를 핵심으로 삼되 여러 나라의 서로 다른 부부들의 일상을 통해 사랑에 대한 질문을 하는, 6편의 다큐멘터리 시리즈다. 제안을 받은 진모영 감독은 ‘76년간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온 노부부의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오리지널 IP(Intellectual Property, 지식재산권)로 두고 귀한 사랑의 사례들을 모으기로 한다.
글로벌 프로젝트의 핵심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의 오리지널리티를 염두에 둘 것, 다른 하나는 그럼에도 동어반복을 하지 않고 새로운 이야기로 거듭날 것이었다. “넷플릭스와의 작업은 창작자에 대한 존
'님아'의 꽃이 여섯 나라에서 싹을 틔우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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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아: 여섯 나라에서 만난 노부부 이야기>(이하 <님아>)는 6개국에서 동시에 제작된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시리즈다.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2014)를 흥미롭게 본 넷플릭스는 2017년 9월 진모영 감독에게 세계 각국에서 또 다른 <님아>의 사연을 찾아보자고 제안했고, 시리즈의 총괄 제작을 맡은 그는 짧지 않은 제작기간을 거친 끝에 2021년 4월 13일 넷플릭스를 통해 작품을 공개했다.
미국, 스페인, 브라질, 일본, 인도, 한국 여섯 나라 노부부의 일상을 통해 국경을 초월하는 보편적인 사랑과 감동의 순간을 담은 이 작품은 OTT 시대 다큐멘터리의 새로운 모델로 제시될 것이다. 작품에 참여한 도다 히카루 감독은 “팬데믹의 여파로 원격으로 이어지는 일이 너무나 당연해졌지만, 넷플릭스와 같은 글로벌한 플랫폼을 통해 현지에 사는 제작자들이 지역적인 리얼리티를 전하는 시도는 그야말로 온라인이 갖는 경쟁력”이라는 소감을 전했다. 각국
'님아: 여섯 나라에서 만난 노부부 이야기' - 미국·스페인·브라질·일본·인도·한국, 여섯 나라 노부부의 사랑 다룬 넷플릭스 다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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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지금 이 순간. 너무 소중하다!”(안희연) 개봉을 앞두고 <어른들은 몰라요>의 시사회가 열린 날, <씨네21> 카메라 앞에서 이환 감독, 동료 배우 이유미와 포즈를 취하던 배우 안희연이 대뜸 탄성을 질렀다. 아이돌 그룹 EXID의 하니에서 배우로 전향한 직후, 소속사도 없이 혼자 지내던 시절에 만난 첫 작품이 <어른들은 몰라요>다. 그사이 웹드라마 <엑스엑스> <아직 낫서른> 등을 거치며 차곡차곡 배우 생활을 경험했지만, 처음 제대로 작업한 장편영화를 이제야 개봉하고 떠나보내는 일이 아직은 낯설고 어색하다. “<어른들은 몰라요>와 이별할 거라는 생각을 못하고 있었는데….” 곁에 앉은 이환 감독, 배우 이유미가 글썽이는 안희연을 따스하게 위로해준다.
<박화영>(2018) 이후 두 번째 장편영화 연출작이자 전작의 세계관을 보다 대중성 있게 확장한 작품인 <어른들은 몰라요>를 통해 이환 감독은
이환 감독, 배우 이유미·안희연의 '어른들은 몰라요' 포토 코멘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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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계속된다. 제22회 전주국제영화제가 힘찬 슬로건을 앞세워 4월 29일 열린다. 코로나19로 인해 장장 4개월 동안 심사 상영과 온라인 상영 그리고 장기상영회(극장) 세 가지 방식으로 진행됐던 지난해와 달리 올해는 예년처럼 열흘 동안 극장과 온라인에서 상영된다는 점이 가장 큰 변화다. 전세계 48개국 186편(해외영화 109편, 한국영화 77편)이 극장 상영되며 이중 141편이 OTT 플랫폼 웨이브에서 공개된다. 영화 예매는 온라인으로만 진행되고 현장 매표소는 운영되지 않는다.
극장 좌석은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에 따라 33%만 채울 계획이라 관객의 매표 경쟁이 치열할 것으로 예상된다. <씨네21>은 영화제 상영작을 미리 보고 추천작 14편과 스페셜 섹션(크레딧에 온라인으로 표기된 영화는 극장과 온라인 모두 상영한다.-편집자)을 소개한다.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영화제 기간 동안 온라인 데일리를 운영할 예정이니 올해도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
*본 기사는 <봄의
[Film Goes On] 봄의 전주에서 영화가 기다립니다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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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계속된다. 제22회 전주국제영화제가 힘찬 슬로건을 앞세워 4월 29일 열린다. 코로나19로 인해 장장 4개월 동안 심사 상영과 온라인 상영 그리고 장기상영회(극장) 세 가지 방식으로 진행됐던 지난해와 달리 올해는 예년처럼 열흘 동안 극장과 온라인에서 상영된다는 점이 가장 큰 변화다. 전세계 48개국 186편(해외영화 109편, 한국영화 77편)이 극장 상영되며 이중 141편이 OTT 플랫폼 웨이브에서 공개된다. 영화 예매는 온라인으로만 진행되고 현장 매표소는 운영되지 않는다.
극장 좌석은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에 따라 33%만 채울 계획이라 관객의 매표 경쟁이 치열할 것으로 예상된다. <씨네21>은 영화제 상영작을 미리 보고 추천작 14편과 스페셜 섹션(크레딧에 온라인으로 표기된 영화는 극장과 온라인 모두 상영한다.-편집자)을 소개한다.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영화제 기간 동안 온라인 데일리를 운영할 예정이니 올해도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
멋진 세계 Under
[Film Goes On] 봄의 전주에서 영화가 기다립니다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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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사건(이하 4·3)의 역사적 진실과 평화·인권의 소중함에 대한 이야기 등을 영화로 제작하여 4·3의 전국화·세계화에 기여하기 위해 처음으로 기획된 ‘4·3영화 시나리오 공모전’ 당선작이 결정됐다. 본 공모전은 제주4·3평화재단(이사장 양조훈)과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이사장 문대림, JDC)의 업무협약에 따라 제주4·3문화학술사업 지원으로 추진됐으며 4·3 대중화의 기폭제 효과를 낼 수 있을지 기대를 모으고 있다.
제주4·3평화재단은 지난 3월 11~12일 양일에 걸쳐 ‘4·3영화 시나리오 공모전’ 본심사위원회를 개최해 장편극영화 부문 당선작으로 (주)렛츠필름이 응모한 <내 이름은…>을 선정했다. 장편다큐멘터리 부문에서는 당선작이 나오지 않았다.
제주4·3평화재단은 지난해 11월 15일부터 올해 1월 15일까지 전 국민을 대상으로 장편극영화와 장편다큐멘터리 두 장르에 대해 시나리오 공모를 진행한 바 있다. 공모 결과 모두 72편(장편극
4·3영화 시나리오 공모전 장편극영화 당선작에 오라리사건 다룬 <내 이름은…>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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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배경은 인류가 우주 행성을 식민지로 지배하고 있는 서기 2524년. ‘피의 장군’이라 불리는 제임스 포드(브루스 윌리스)는 과거 작전 수행 중 행성 하나에 폭탄을 투하하여 파괴한 뒤 불명예 제대를 한 상태다. 평화롭던 어느 날, 인류를 지배하러 온 외계 함대가 무시무시한 기습 공격을 시작하고, 이에 인류 연합군은 은퇴한 제임스 포드를 불러 외계 함대와의 싸움에 가담하도록 한다. 제임스 포드를 포함한 정예 부대는 가능한 한 빠른 시간 내에 외계 함대를 물리쳐야 하는 막중한 책임을 지고 우주전쟁에 뛰어든다. 외계 함대와 접촉한 이들이 좀비처럼 돌변해 인류를 무참히 공격해오는 일촉즉발의 상황 속에서 정예 부대의 목숨을 건 사투가 시작된다.
에드워드 드레이크 감독의 <코스믹 씬>은 어딘지 익숙한 인상의 SF 액션 영화다. 인류가 외계 침략으로 위기에 빠진 순간,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던 은퇴한 장군이 정예 부대와 함께 인류를 구하기 위해 나선다는 줄거리만 놓고 본다면 그
영화 '코스믹 씬' 인류를 지배하러 온 외계 함대와 목숨을 건 사투를 벌이는 정예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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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밤에 뛰는 한 사나이가 있다. 그의 이름은 권무순. 무순은 사회가 이미 정해놓은 수많은 카테고리 안으로 편입되기를 거부한다. 그는 단지 자기 자신이길 원한다. 무엇으로도 규정되지 않는 삶. 다시 말해 그것은 무엇이든 가능한 삶일 것이다. 무순은 그러한 삶을 살아보려 한다. 그는 아침에 샌드위치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계를 이어간다. 나머지 시간엔 ‘바나나 우주선’이란 밴드에서 기타를 연주하고, 사각 링 위에선 프로 복싱 선수로 경기를 펼친다. 그의 다음 도전은 장거리달리기다.
<무순, 세상을 가로질러>는 부산에서 서울까지 470km의 달리기 여정에 나선 청년 권무순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영화다. 이 여정에 무순의 아르바이트 동료 태원도 참여한다. 달리고만 싶은 무순은 그렇지 않은 태원과 티격태격한다. 이들은 서로의 불만 사항을 이야기하며 타협점을 찾고 간격을 좁혀나간다.
이때 카메라는 반대편에서 옆모습을 담거나 주로 뒤에서 이들의 모습을 따라간다. 카메라
영화 '무순, 세상을 가로질러' 부산에서 서울까지 470km의 달리기 여정에 나선 청년 권무순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