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롱테이크 숏이 인상적인 영화 두편이 올해와 지난해 초 우리 곁을 찾았다. 한편은 위기에 빠진 극장의 구원투수가 될 임무를 안고 달렸고, 다른 한편은 OTT 플랫폼의 품에 무난히 안겼다. 지켜지고, 지속되길 바라는 외침이 가득한 롱테이크 속에서 우리는 각자 무언가를 버틴다.
눈에 비친 희박한 공기
<그녀의 조각들>의 롱테이크에 주목하는 이유는 그것이 ‘조각들’이라 명시된 제목을 배반하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녀의 조각들>은 롱테이크를 주된 형식으로 가져가기보다는 특정 장면에 두드러지게 사용한다. ‘왜 롱테이크로 보여주는가’라는 질문이 제기되는 이유다. 가장 중요한 롱테이크 시퀀스는 마사(바네사 커비)의 출산이다. 출산 장면에는 이런 내용이 담긴다. 가정 출산을 결심한 마사가 느끼는 산통, 예정된 조산사 바바라와의 어그러진 약속, 그를 대신한 다른 조산사 에바(몰리 파커)의 등장, 병원에서의 분만을 권하는 남편 숀(샤이아 러버프), 침실에서 진행된 분만과
영화 '그녀의 조각들' 눈에 비친 희박한 공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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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트레이닝복을 입은 슈퍼히어로가 탄생했다.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 <경이로운 소문>은 초능력을 지닌 ‘카운터’들이 통쾌하게 악귀를 처단하는 히어로물이다. 카운터들은 악귀를 잡으면서도 직접 국숫집을 운영하고 김장을 하는 등 생활밀착형 모습을 보여주며 ‘한국형 히어로’라는 애칭을 얻었다. 기존 히어로물과 차별화된 매력을 가진 <경이로운 소문>은 지난 1월 10일, 시청률 10%를 돌파하며 OCN 역대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
<아라한 장풍대작전>의 각본을 쓰고 <미스터 주부퀴즈왕> <0.0MHz>, 드라마 <뱀파이어 검사> 시즌2 등을 연출한 유선동 감독은 “영상, 연극, 웹툰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한 것이 <경이로운 소문>을 작업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됐다”고 전한다. 종영까지 4회를 남겨두고 후반작업에 여념이 없는 유선동 감독을 만나 대화를 나눴다.
-<뱀파이어 검사> 시즌2 이후 8
'경이로운 소문' 유선동 감독 - 링에 오르듯 엘리베이터 액션 신 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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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에 리틀빅픽처스는 <미스터 주> <저 산 너머> <소리꾼> <이웃사촌> 등을 개봉하고 <사냥의 시간>을 넷플릭스로 보내는 역사적인 선례를 남겼다. 다양성영화, 중소 규모의 영화에 주력하는 투자배급사의 사정이 얼마나 열악했을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는 가운데 권지원 리틀빅픽처스 대표는 “CGV아트하우스가 사업을 접는 등 독립예술영화의 투자배급을 진행할 수 있는 회사 자체가 줄어든” 시장의 판세가 끼칠 악영향을 함께 우려했다. 이처럼 암담한 상황에도 지난해에 <애비규환>, 올해 개봉이 예정된 <세자매> 등 관객의 숨통을 트이게 하는 청량한 영화들을 꾸준히 선보이는 행보야말로 리틀빅픽처스의 저력이라 할 만하다.
-지난해 코로나19 상황에서도 <미스터 주> <저 산 너머> <소리꾼> <이웃사촌> <애비규환> 등 여러 작품을 극장 개봉했다. 실적은
권지원 리틀빅픽처스 대표 - 리틀빅만의 방향성은 지켜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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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이하 메가박스)의 영화들은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았다”. 올해는 <자산어보> <킹메이커> <교섭> <대외비> <유체이탈자> <범죄도시2>로 라인업을 잘 꾸렸지만, 이정세 메가박스 영화사업본부 본부장은 장기적으로 내다봤을 때 한국 영화산업이 해결해야 할 숙제가 산적해 있다고 말했다.
-2020년 메가박스의 상황이나 실적을 정리한다면.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았다. 2월에 개봉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은 개봉을 일주일 미뤘는데 개봉주에 신천지발 확산이 시작돼 결국 손익분기점을 못 넘겼다. 8월엔 <오케이 마담>을 개봉했는데 8·15 집회가 터졌다. <자산어보> <킹메이커> <유체이탈자> 같은 영화의 개봉을 미루면서 지난해엔 피해가 컸다. 최종 결과표를 받았을 땐 아무 생각도 안 나더라. 개봉일을 잘못 정했나? 열심히
이정세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영화사업본부 본부장 - 극장 정상화 기다리며 새로운 파트너십을 늘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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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가 지난해 극장 개봉시킨 영화는 모두 손익분기점을 넘었다. 우선 코로나19 소식이 전해지기 시작했던 2월 중순에 개봉한 장유정 감독의 <정직한 후보>는 150만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7월 공개된 연상호 감독의 <반도>는 380만명 관객을 불러모았고, 현재 일본에서도 흥행 중이다. 나름대로 위기를 잘 헤쳐나가는 것처럼 보이는 NEW 영화사업부의 수장 김재민 대표는 그럼에도 2020년을 “잃어버린 1년”이라고 칭했다. “2021년은 2020년과 2022년 사이 중요한 다리 역할을 하는 해”가 될 것이란 설명과 함께 김재민 대표로부터 NEW 영화사업부의 조직 개편 소식까지 속속들이 들었다.
-<반도>가 일본 박스오피스에서 <원더 우먼 1984>를 제치고 외화 1위로 선방 중이다. 해외 시장에서 4800만달러(약 526억원) 넘는 수익을 거둬들였는데, <반도>의 해외 흥행 요인은 무엇이라고 분석하나.
=자국 영화나 애니메이션
김재민 NEW 영화사업부·콘텐츠판다 대표 - 우리가 가진 작품들의 유통 영역을 더 넓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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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쇼박스는 첫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와 <남산의 부장들>로 좋은 스타트를 끊었지만, <싱크홀>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 <사흘> <휴가> <야차> 등이 개봉을 하지 못하면서 아쉬움을 달래야 했다.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았으나 쇼박스의 미래를 위한 사업의 확장 가능성을 확인한 것이다. 이상윤 쇼박스 투자제작본부장은 “지금의 혼란스런 상황이 가져온 위기는 기회의 또 다른 얼굴이 될 수 있다”라며 회사가 변모할 방향을 전해줬다.
-지난해 쇼박스의 성적을 자평한다면.
=작품 면에서는 희비가 엇갈렸다. <남산의 부장들>은 상당히 좋았고, <국제수사>는 좀 아쉽다. <이태원 클라쓰>는 쇼박스 첫 드라마로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뒀지만 이후 속도를 내지 못해 다른 후속작을 바로 내지 못했다.
-<남산의 부장들>과 <국제수사>가 넷플릭스에 서비스되고, 쿠
이상윤 쇼박스 투자제작본부 본부장 - “역량을 보여줄 틈새는 분명히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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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롯데엔터테인먼트는 <히트맨> <#살아있다> <강철비2: 정상회담>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을 개봉시켰고, 이중 세편의 영화가 손익분기점을 넘겼다. 올해는 <모가디슈> <한산: 용의 출현> <인생은 아름다워> <해적: 도깨비 깃발> 같은 대작부터 <자백> <기적> <싱글 인 서울> <아이> 같은 영화들이 대기하고 있다. 영화는 늘었고 시장 상황은 녹록지 않지만 정경재 롯데컬처웍스 콘텐츠사업 부문장의 말에선 자사 콘텐츠에 대한 믿음이 느껴졌다.
-지난해 개봉한 영화들이 선전했다.
=2020년에 개봉 준비했던 작품이 7편이었다. 그중 텐트폴 영화 세편인 <모가디슈> <보스턴 1947> <인생은 아름다워>는 개봉을 연기했고 나머지 네편은 계획대로 개봉했다. 야심차게 준비한 <강철비2: 정상회담>은 아쉽게 손익분
정경재 롯데컬처웍스 콘텐츠사업부문장 - 확장성 있는 IP를 우선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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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CJ ENM은 영리하게 선전했다. 애초 계획한 라인업 중에서 절반에 해당하는 네편(<클로젯>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담보> <도굴>)이 극장 개봉한 가운데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436만명을, <담보>는 172만명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지난해 초 <기생충>의 오스카 수상으로 CJ ENM 역사상 가장 화려했던 순간과 코로나19라는 위기 상황을 동시에 겪었던 임명균 CJ ENM 상무는 “우리가 가진 전력을 꾸준히 밀고 나가는 한편, 밝은 미래를 위한 준비를 하겠다”고 올해 각오를 드러냈다.
-지난해 라인업이 선전할 수 있었던 비결이 뭔가.
=배급 일정을 정할 때 코로나19 상황에 직면한 관객의 니즈를 우선적으로 고려했다. 과거 데이터를 바탕으로 현재 시장 사이즈와 우리 라인업의 사이즈를 비교했다. 더 많은 대작을 개봉시키지 못한 건 아쉽다.
-올해 라인업을 짜는 데 고민이 많았을 것
임명균 CJ ENM 영화사업본부 투자배급사업부 상무 - 최고의 IP를 만들어 다변화된 플랫폼에 유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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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은 국내 투자배급사들에 예정에 없던 숨고르기의 해였다. 코로나19의 장기화 탓에 극장이 위기를 맞으면서 투자배급사들은 라인업 공개를 일제히 미루고, 진열을 재정비했다. 극장 매출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한국 영화산업 특성상 극장의 위기가 계속되면 창작자가 OTT와 직접 거래하면 되니 결국 투자배급사의 역할도 무의미해지지 않겠느냐는 의문도 계속 나오던 차다. 지난해 개봉하지 못한 작품들 상당수가 올해 개봉을 노리는 상황에서 국내 투자배급사들은 어떤 길을 모색하고 있을까.
임명균 CJ ENM 영화사업본부 투자배급사업부 상무, 정경재 롯데컬처웍스 콘텐츠사업부문장, 이상윤 쇼박스 투자제작본부 본부장, 김재민 NEW 영화사업부·콘텐츠판다 대표, 이정세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영화사업본부 본부장, 권지원 리틀빅픽처스 대표 등 투자배급사 투자책임자 6명으로부터 올해 한국 영화산업에 대한 전망을 들었다. 유정훈 메리크리스마스 대표, 정현주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대표는 개인적 사정으로
투자배급사 투자책임자 6명이 말하는 2021년 한국 영화산업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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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알같은_한국어
맨홀에 빠진 조 앞에 새로운 공간이 펼쳐질 때, 한국어 대사도 깜짝 등장한다. 저세상으로 가는 영혼들 중 뜬금없이 “내 바지 어디 갔어!”라고 체면을 차리는 한국인 영혼의 한마디가 그것. 픽사의 김재형 애니메이터에 따르면 이는 픽사의 한국계 교포 직원이 직접 제안하고 녹음한 것이라고. 영화 속 뉴욕 거리에는 한글 간판도 있다. ‘호호만두’라는 상호 위에 ‘Hosuk’s’(호석이네)라는 문구가 붙어 있는데, BTS멤버 제이홉의 본명 정호석이 연상되는 것은 우연이 아닐지도. 과거에 비해 아시아 문화에 대한 인식, 특히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는 게 내부 직원들의 전언이다.
#연구_또_연구
<소울>의 애니메이터들은 고양이 미스터 미튼스 캐릭터 작업을 위해 전문가를 초빙해 고양이의 해부학적 구조에 관한 설명을 들은 것은 물론 광고판을 돌리며 무아지경에 빠지는 문윈드의 움직임을 표현하고자 관련 동영상 수십편을 보며 연구했다.
#22를_거쳐
'소울'의 사랑스러운 TMI - 재택근무여도 고퀄리티엔 문제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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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울>의 첫 무대인 뉴욕은 다분히 사실적이다. 스티브 필처 프로덕션 디자이너는 “단단하고 물리적인 뉴욕의 흙빛을 그대로 반영”했으며 “아름답게 낡고 마모한 모습 그대로를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조 가드너가 재즈 실력을 뽐내는 ‘하프 노트 클럽’은 실제 뉴욕 맨해튼에 위치했으나 지금은 사라진 전설의 재즈 클럽이다. 다수의 재즈 클럽을 방문했던 제작진은 “실제 재즈 클럽의 크기를 정확한 비율로 설계”(스티브 필처)해서 사실성을 높였다.
또 다른 주요 공간인 이발소는 뉴욕 흑인 문화를 보여주는 핵심적인 공간. 뉴욕 이발소들을 직접 방문하고 재현했던 폴 아바딜라 세트미술감독은 “뉴욕 이발소와 미용실 사이에는 차이가 있는데 이발소에서는 이발사가 머리를 손질할 때 손님들이 거울쪽이 아니라 대기 손님쪽을 보고 앉는다”라고 설명했다. 공간이 귀한 뉴욕만의 이발소 문화로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루어져서 공동체 의식이 굳어”지는 맥락까지 영화에 모두 담겼다.
사실적인 뉴욕과 달리 ‘
'소울'의 공간 - 영혼들의 세계, 추상적이면서도 부드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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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짝패랄까. 죽다가 만 영혼인 조 가드너와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영혼인 22는 디즈니·픽사가 아니면 상상조차 하기 힘든 조합이다. 제이미 폭스가 목소리 연기를 맡은 조 가드너는 중학교 밴드 지도 교사로 재즈 전문 피아니스트가 되는 게 꿈이다.
<레이>(2004)에서 전설적인 맹인 뮤지션 레이 찰스를 연기해 오스카와 골든글러브를 석권한 ‘솔의 대부’ 제이미 폭스가, 픽사 최초의 흑인 주인공이자 재즈 피아니스트를 맡은 건 운명처럼 보인다. 중절모와 안경을 쓴 채 긴 팔다리를 휘저으며 걸어가고, 긴 손가락으로 유려하게 피아노를 치는 모습은 레이와 어딘가 닮았다. 제이미 폭스는 “나도 조와 비슷한 열정을 가지고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노래와 코미디가 좋았다”라며 조가 느끼는 재즈 연주의 즐거움을 공감했다.
에이브러햄 링컨, 마하트마 간디, 아리스토텔레스, 마리 앙투아네트 등 22를 거쳐간 멘토들에 비하면 조는 지극히 평범하다. 티나 페이가 목소리 연기한 22는 조를
'소울' 제이미 폭스, 티나 페이가 연기한 조 가드너, 영혼 22의 탄생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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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사가 상상한 사후세계
‘저세상’으로 가게 된 조 가드너가 마주하는 영혼들은 “부드럽고 산소 같고 영적인 특징을 갖춘 초월적 존재”(프로덕션 디자이너 스티븐 필처)로서 반투명한 유선형의 형체를 갖췄다. 동시에 ‘내가 나로서 사는 것은 무엇인가’ 질문하는 작품의 주제와 맞닿도록 이승에서의 삶과의 시각적 연관성을 부각했다. 주인공 조의 경우 약간 길쭉한 얼굴과 이목구비의 비율, 트레이드 마크인 중절모와 안경, 그리고 배우인 제레미 폭스에게 영향을 받은 구체적인 표정이 담겼다.
오색빛깔 영혼들
반면 ‘태어나기 전 세상’의 영혼들은 아기 같은 얼굴, 전구 모양의 형상, 보랏빛 눈으로 표현해 이제 막 성격이 생성 중임을 보여준다. 몸 전체에 그러데이션이 들어갔고 외부 세계의 빛이 닿으면 굴절되어 다채로운 프리즘을 만들어낸다. 다만 “난 마더 테레사 수녀도 울게 만들었지!”라고 자부할 만큼 심술궂은 조의 파트너 22만큼은 조금 다르게 디자인했다. 거만하게 반쯤 뜬 눈, 뻐드렁니 두개를
'소울'을 이룬 작화, 그리고 화면구성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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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나 사업가가 될 수도 있었던 조 가드너가 재즈 피아니스트가 된 배경에는 한편의 동영상이 있었다. 주인공이 열성적으로 빠져들, 관객까지도 그 진심에 감화하게 만들 무언가를 찾던 피트 닥터 감독은 “거의 운명적으로 재즈계의 전설 허비 행콕의 온라인 마스터클래스 동영상을 보게 되었다”. 영상에서 행콕은 공연 중 자신이 저지른 실수를 되받아 독창적으로 연주를 풀어간 마일스 데이비스의 능숙한 호흡에 감탄하며 말했다고 한다. “마일스는 틀린 내 연주를 틀린 것이 아니라 그냥 새로운 것으로 받아들인 것이었다. 그리고 재즈 뮤지션들이 항상 해야만 하는 것을 했다. 모든 소리를 가치 있는 것으로 만드는 것.” 피트 닥터 감독은 두 사람의 일화로부터 영화를 풍성하게 할 재료이자 메시지를 지탱할 상징, 재즈를 건져 올렸다.
그래미에 세 차례 노미네이션된 피아노 연주자이자 작곡가 존 바티스트가 감독의 비전을 실현하는 데 일조했다. 1963년 발매된 커티스 메이필드의 원곡을 재해석한 선공개곡 &l
'소울'의 음악 - 모든 소리를 가치 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