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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현이란 이름만큼 예쁜 언니를 기대하고 들어선 분당의 자그마한 오피스텔에는 염색도 하지 않은 검은 머리를 어깨에 닿을 만큼 기른 ‘그’가 앉아 있었다. “뭘로 드실래요? 음료수랑 녹차랑 커피 있어요.” 예쁜 언니가 전혀 안 부럽다. 작업실을 둘러보니 금방 정리를 마친 듯하다. 7평 남짓한 룸 안에 빼곡이 들어선 컴퓨터와 비디오 세트, 35인치 텔레비전, 편집기기 등에 둘러싸인 그는 오히려 편안한 눈치다. 가만히 보니 서른을 두해나 넘긴 노총각답지 않게 동안의 얼굴을 지녔다. 취미가 MTV 보기과 음악감상이란다. 학창 시절 제일 싫어하는 과목이 음악이었음을 생각하면 이런 변화가 자신에게도 신기하다.자신있었던 과목은 과학. 그냥 논리적인 해결과정이 좋았다. 중학교 올라가 자신의 돈으로 마련한 컴퓨터에 빠진 탓도 컸다. 또래들이 오락실과 분식집을 전전하며 놀거리를 찾을 때, 그는 컴퓨터가 가져다주는 신기함을 남 몰래 즐기고 있었다. 그러다 평소에 즐겨보던 월트 디즈니의 애니메이션들이 컴퓨
아비드는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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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진출 원년’인 지난해 한국영화가 거둬들인 성과는 실로 놀라운 것이었다. 한국영화로는 최초로 칸영화제 본선에 오른 뒤 <춘향뎐>은 유럽 평단을 중심으로 좋은 반응을 얻었고, <인정사정 볼 것 없다> <거짓말> 등과 함께 미국에 나란히 배급되기도 했다. <쉬리>는 일본에서 100만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는 대성공을 거두는 성과를 올렸다.한국영화계의 올해 최고 화두 역시 해외진출일 것. 이제 해외진출은 ‘하면 좋은 것’에서 천정부지로 치솟는 제작비를 감당하기 위해서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됐다. 이같은 영화계의 바람이 이뤄지기 위해서라도 해외 현지에서 한국영화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귀 기울여볼 필요가 있다. 뉴욕, LA, 도쿄, 파리, 홍콩 등에서 보내온 한국영화의 잠재력, 시장성, 예술성 등에 관한 보고서를 찬찬히 살펴보자.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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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 특급, 질.풍.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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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세계가 바라본 한국영화의 얼굴국제무대에서 아시아영화의 전반적인 강세와 더불어 그간 중국, 홍콩, 일본 등에 집중되었던 미국영화계의 관심이 다른 아시아 국가들로 확대되고 있으며 그 변화의 중심에 한국영화가 놓여 있는 것이 사실이다. 뉴욕의 경우 2000년 하반기에만 <거짓말> <춘향뎐> <인정사정 볼 것 없다> 등 한국영화 3편이 연달아 개봉을 했고 이에 맞춰 뉴욕에서 발행되는 정평있는 영화잡지 <필름 코멘트>는 2001년 신년호에서 ‘왕국의 도래’라는 제목으로 무려 7페이지에 달하는 한국영화 특집을 게재하기도 했다. 이제 <빌리지 보이스>나 <뉴욕타임스> 같은 유력지의 지면에서 한국영화에 대한 기사를 발견하는 것은 더이상 특별한 사건이 아니다.“한국영화에 대한 미국 시장의 관심은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 비평가들은 현재 아시아가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이고 창의적인 영화들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믿고 있는데 이러한 성
[뉴욕]춘향, 뉴욕 품에 안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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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름 코멘트> 신년호 특집으로 한국영화를 비중있게 다루었다.=지금은 모두가 한국영화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한국영화는 최근 수년간의 대발견이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한국영화는 서부의 태평양 연안지역으로 좀더 성공적으로 진출한 것 같다. 뉴욕은 좀 다르다. 한국영화에 대해서 크게 흥미로워하지 않는 분위기이다. 김기영 감독을 예로 들 수 있는데 제2회 부산영화제에서 회고전이 있은 뒤로 다른 미국의 많은 도시에서 행사가 치러졌지만 뉴욕에서는 아직 기회가 없었다. 우리가 이런 경향을 바꿀 수 있지 않겠나. 사실은 좀더 긴 기사를 생각했다. 한국 특집은 앞으로 우리가 다룰 다른 나라들에 대한 기사의 모델 같은 것이다.-최근 한국영화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사실 지금까지의 한국영화는 참 보기 힘든 영화였다. 이제까지 본 작품도 임권택 감독의 몇몇 작품을 제외하면 대부분 최근 젊은 감독들의 작품들이다. 이것은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면 가급적 비디오보다는 필름으로 영화를 감상
[뉴욕]자국에서의 성공에 더 힘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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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름 코멘트> 신년호 특집으로 한국영화를 비중있게 다루었다.=지금은 모두가 한국영화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한국영화는 최근 수년간의 대발견이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한국영화는 서부의 태평양 연안지역으로 좀더 성공적으로 진출한 것 같다. 뉴욕은 좀 다르다. 한국영화에 대해서 크게 흥미로워하지 않는 분위기이다. 김기영 감독을 예로 들 수 있는데 제2회 부산영화제에서 회고전이 있은 뒤로 다른 미국의 많은 도시에서 행사가 치러졌지만 뉴욕에서는 아직 기회가 없었다. 우리가 이런 경향을 바꿀 수 있지 않겠나. 사실은 좀더 긴 기사를 생각했다. 한국 특집은 앞으로 우리가 다룰 다른 나라들에 대한 기사의 모델 같은 것이다.-최근 한국영화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사실 지금까지의 한국영화는 참 보기 힘든 영화였다. 이제까지 본 작품도 임권택 감독의 몇몇 작품을 제외하면 대부분 최근 젊은 감독들의 작품들이다. 이것은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면 가급적 비디오보다는 필름으로 영화를 감상
자국에서의 성공에 더 힘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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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세계가 바라본 한국영화의 얼굴지금까지 일본에서 수많은 한국영화가 개봉돼 왔지만 2000년 1월22일 개봉한 <쉬리>는 그때까지 나온 어느 영화도 준 적 없는 충격을 일본영화계에 던져줬다.관객동원 수도 100만명을 넘어섰고 당시까지 아시아영화의 한 분야 정도로 생각됐던 한국영화의 범위도 넓어진 것으로 보여, 일본관객은 할리우드 메이저와 어깨를 겨누는 작품이 이웃나라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문화정보지인 <피아>가 매년 실시하는 독자 인기투표 영화부문에서 <그린마일> <미션 임파서블2> <화이트 아웃> 다음으로 4위에 올랐던 것을 봐도 이 작품이 일본의 아시아 영화팬을 넘어서 폭넓은 관객의 지지를 모은 것은 분명하다. 한국영화를 한번도 본 적 없는 많은 관객이 극장으로 발길을 옮겼던 것이다.이같은 성공을 목격한 배급사들이 차례로 한국영화를 공개한 2000년 가을에는 ‘한국영화 붐’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수많은 한국영
[도쿄]스타를 향해 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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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세계가 바라본 한국영화의 얼굴한국영화에 대한 중국인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시장이 폐쇄적인 중국 본토에서는 최근 영화제나 토론회 등을 통해 소개된 한국영화들이 주목받고 있으며, 특히 아시아영화산업의 보루와 같은 홍콩에서 그 현상은 두드러진다. 만나는 사람마다 최근의 한국영화의 성장세를 언급하며 산업적 가능성에 높은 점수를 준다. 왜일까? 그 공은 우선 <쉬리>에 돌려야 할 것 같다. 99년 브로드웨이를 통해 배급된 <쉬리>는 600만 홍콩달러를 거두면서 한국영화의 존재를 알리는 데 기여를 했다. 비록 이러한 수치는 할리우드 대작의 흥행수입에는 미치지 못한다 할지라도, 아시아의 영화산업이 위축되고 있는 객관적인 상황과 그동안의 한국영화의 해외배급을 고려해본다면 대단한 약진임에 분명하다. 실제로 90년대 초반에 비해 전체 흥행수입이 3분의 1 이하로 줄어들며 9억 홍콩달러에 불과한 박스오피스를 기록(99년)함으로써 그 하강곡선이 급격하게 이어지던 당시 홍
[홍콩]전략적으로 두드려라, 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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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세계가 바라본 한국영화의 얼굴...파리신년호에서 지난해 베스트 10 영화를 평론가들별로 선정하는 영화전문지 <카이에 뒤 시네마>는 올해의 경우 프랑스에 개봉돼 호평을 받은 <춘향뎐> 외에도 예외적으로 프랑스에 개봉되지도 않은 <오! 수정>과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를 포함시켜 눈길을 끌었다. 지난 2∼3년 사이에 급등한 한국영화에 대한 관심은 곳곳에서 나타난다. <카이에 뒤 시네마>를 포함한 영화 전문잡지나 <르몽드>와 같은 주요일간지에서 한국영화에 대한 기사를 빈번히 접할 수 있고, 크고 작은 규모의 한국영화제가 열리는가 하면, 대학 영화과 수업시간에 <서편제>나 <강원도의 힘>이 분석 텍스트로 선정되기도 한다. 이처럼 프랑스에서 한국영화에 대한 ‘이례적’ 관심이 커지는 것에 관해서는 세 가지 방향에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먼저 프랑스에서 그 권위와 영향력이 더 실감되는 칸영화제에 한
[파리]오, 평론 밖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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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몇몇 한국영화를 볼 수 있었던 것은 영화제를 통해서였다. 또한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이 프랑스에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렇지만 본격적으로 내가 한국영화의 풍부함과 다양성을 발견한 계기는 지난 1993년 퐁피두센터가 주최한 한국영화회고전을 앞두고 자료 조사를 위해 서울을 방문하면서였다. 한국영화는 여러 가지 이유에서 상당한 흥미를 불러일으켰다. 첫 번째로 정치적인 대치상황까지 포함한, 한국 역사에 뿌리를 둔 풍요로운 영화를 발견할 수 있었다. 두 번째로는, 각 세대마다 시대를 같이 하는, 그러나 각기 독자성을 지닌 중요한 작가들이 존재해왔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나에게는 여전히 가장 중요한 인물인 임권택 감독뿐만 아니라 이두용, 김기영 감독, 그리고 박광수, 장선우 감독, 마지막으로 홍상수 감독이 핵심적인 인물로 자리잡은 새로운 젊은 세대와 만남을 통해 나는 한국영화가 세계영화의 미래에 핵심적인 요소인 창조적인 활력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세 번째로
베리만의 후예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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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레스트 검프>의 엄청난 상업적 성공을 예상한 적 있나.결코 없다. 통계치는 극히 적대적이었다. 우리 영화감독들은 모두 그저 투자한 제작비를 건지려고 한다. 우리가 정말 원하는 것은 1달러의 이익을 올려 영화로 인해 아무도 다치지 않고 영화를 존속시키는 것이다. 이것 외의 다른 어떤 것도 오만하고 비현실적인 생각이다. (후략)◆<왓 라이즈 비니스>에 보이는 히치콕적 요소는 의도된 것인가.심리스릴러라는 컨셉은 그 자체가 자동으로 히치콕에 대한 오마주가 된다. 우리는 그것을 따르느냐 아니면 아예 히치콕 영화와 털끝만큼도 닮지 않은 다른 방식을 만들어내느냐를 결정해야 했다. 후자는 제대로 될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해리슨 포드 캐릭터의 이름이 노만인 것은 <싸이코>와 무관하다. 샤워 신은 확실히 오마주다.◆<왓 라이즈 비니스>는 최근 스릴러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로-테크’ 영화인데.디지털 효과와 관련된 이 모든 법석은 순식간에 사라져버
[로버트 저메키스]“인생의 신비, 그냥 받아들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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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이 되기까지근미래를 배경으로 한 독특한 분위기의 SF액션스릴러 <베일>(가제)을 준비중인 정윤수(39) 감독이 영화와 인연을 맺게 된 데는 ‘집안’과 ‘집 안’의 내력을 모두 따져봐야 한다. 우선 ‘집안’의 배경을 살피자면, 초등학교도 가기 전부터 영화광이었던 어머니의 손을 붙잡고 극장을 수시로 들락거렸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그는 어머니 덕분에 극장을 은은하게 울리던 목소리의 주인공 숀 코너리가 나오는 007 시리즈나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세르지오 레오네의 서부극 등을 보며 영화의 매력에 빠지게 됐다. 또 현대음악가이자 서울대 음악대학 학장을 역임한 부친 정회갑씨는 <피아골> 등 한국영화의 음악을 작곡하기도 해 유명 배우들이 집안을 들락거리곤 했다. 하지만 그가 본격적으로 영화에 대해 꿈꾸게 된 것은 ‘집 안’에서 시작됐다. 그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집 안에 놓인 TV를 통해 거의 매일 의 심야영화를 ‘독파’했다. 당시 그는 줄이 벅벅 가
2001 신인감독 10인의 출사표 - 정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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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이 되기까지이시명 감독은 일명 ‘한양대 필름 르네상스’를 주도한 영화학도 중 하나였다. 정지우, 김용균, 김영준 등 88학번 동기들은 모두 70∼80편에 달하는 작품을 만들었고, 애니메이션, 액션, 코미디 등 장르도 전례없이 다양했다. 그중에는 ‘말이 씨가 된다’는 속담이 일상에 법칙처럼 적용되는 해프닝을 다룬 코미디 <말이 씨가 되면>도 있었다. 80년대 학생 작품으로는 드물게 대중성과 감각을 갖췄다고 평가받은 이 작품으로, 이시명 감독은 상도 타고 후배들 사이에 ‘스타’가 됐다. 중학교 때 비디오카메라로 도둑 잡는 액션영화를 찍은 이래, 이시명 감독은 재학 시절 거의 모든 장르 영화를 직접 만들었다. 하고 싶은 영화, 할 수 있는 영화를 찾고, 착실히 공부하는 과정이었던 셈이다. 장길수 감독의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의 연출부로 시작, 강우석 감독의 <마누라 죽이기> <투캅스2>의 조연출을 거쳤고, 98년 <여고괴담
2001 신인감독 10인의 출사표 - 이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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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이 되기까지김영(34) 감독의 영화에 대한 사랑은 무대예술에 대한 동경에서부터 시작했다. 오페라, 연극, 발레 등 무대 위의 퍼포먼스를, 그는 어린 시절부터 폭넓게 감상하며 무대 위에 서기를 바랐다. 그러나 ‘재주’가 모자란다는 생각에 무대 위에 오르는 대신 공연이 끝나면 무대 뒤로 가 여러 가지 장치며 의상을 만져보는 데 만족하곤 했다. “나는 항상 스탭이구나”, 돌이켜 생각해보면 처음부터 그는 스탭의 기질이 있었노라고 말한다. 무대를 사랑하던 소녀는 대학 3학년 때 1년을 휴학하고 떠난 장장 8개월의 유럽 배낭여행에서 영화의 매력을 ‘발견’한다. 케임브리지 ABC 시어터에서 본 빔 벤더스의 <베를린 천사의 시>와 카우프만의 <프라하의 봄>에 그는 그 어느 것보다 더 깊이 빠져들었던 것이다. 여행에서 돌아온 그는 ‘또 하나의 문화’의 어린이캠프에 교사로 참여해 변영주, 홍효숙 감독과 인연을 맺는다. 그리고 그들의 소개로 들어간 독립영화집단 ‘바리터’에서
2001 신인감독 10인의 출사표 - 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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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이 되기까지육상효(38) 감독은 첫 장편영화를 만들기까지 꽤 멀다면 먼길을 돌아온 셈이다. 몇개의 직장을 전전하다 스포츠 신문의 연예부 기자로 활동했고, 서른이 훌쩍 넘은 어느 날 직장 문을 걷어차고 나와 단편영화 <슬픈열대>를 만들어 자신의 ‘영청’기질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또 몇년의 세월이 흐르고 유학까지 감행한 끝에 <아이언 팜>이라는 첫 장편작품에 다다르게 된 것이다.그가 기억하기로 그에게 지울 수 없이 강렬한 인상을 준 첫 영화는 고등학교 때 TV에서 본 <새벽의 7인>(Operation Daybreak)이었다. 그는 이 영화를 봤을 때 갑자기 온몸에 힘이 빠지고 머리가 혼란스러워지는 등 예술적 감동의 최고치, 그러니까 그 스스로 ‘예술적 공포’라 부르는 세계를 느꼈다. 대학에 들어가 임권택, 이장호, 배창호의 영화와 안성기, 김명곤이 출연하는 작품들을 보면서 영화를 만든다는 것에 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됐고 시나리오를 써 영화진
2001 신인감독 10인의 출사표 - 육상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