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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아시안게임을 계기로 북한이 우리 앞에 성큼 다가왔지만 북한영화는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신상옥 감독이 북한에서 만든 <불가사리>가 2000년 처음으로 선보였으나 흥행에 실패했고 우키시마호 수장사건을 극화한 <살아있는 영혼들> 이나 동물들의 짝짓기를 담은 <동물의 쌍붙기>(생각의나무 간)는 지난해 수입된 뒤 개봉조차 못하고 있다. 「서정남의 북한영화탐사」는 북한영화의 내러티브와 인물, 미학적 특징 등을 분석한 책. 북한의 최근 대표작 87편을 사례로 들고 있어 스크린 대신 지면으로나마 북한영화의 실상을 만나볼 수 있다. 북한영화의 제작 원칙은 △당성 △계급성 △인민성 △현대성. 이를 명료하게 드러내기 위해 주인공은 대개 비범한 도덕성의 소유자이며 줄거리는 권선징악형 구조로 마감된다. 내레이션이나 노래가 자주 사용되는 것도 큰 특징이다.저자는 북한영화를 종교성과 신파성의 틀로 해석하고 있다. 거의 모든 영화에 당과 수령에 대한 찬사
<책> 지면으로 만나는 북한영화의 실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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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관광부는 1950-60년대 한국영화계를 이끌었던 연기파 배우 김승호(본명 김해수)씨를 11월의 문화인물로 선정했다.김씨는 한국영화계의 스타였지만 출생이나 성장 등 사생활이 명확하게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강원도 철원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시절 서울 청진동 부근에서 성장한 것으로 전해진다. 보성고보 1년을 중퇴한 그는 김두한이 동양극장의 극단에 소개함으로써 배우의 길에 들어섰다. 무명배우 시절을 거쳐 1945년 자유극장의 창립단원으로 참여했으며, 1957년 제4회 아시아영화제 특별상 수상작 <시집가는 날>에 출연하면서 인기스타로 떠올랐다. 이후 <로맨스 빠빠>(신상옥 감독)로 제7회 아시아영화제 남우주연상, <마부>(강대진 감독)로 제11회 베를린영화제 은곰상을 수상하는 등 한국영화계를 대표하는 배우로 자리잡았다. 말년에는 대양영화사를 차려 영화제작자로도 활동했으며 영화인협회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1968년 12월 1일 고혈압으로 세상을 떠났
11월의 문화인물에 배우 김승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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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인 1982년 대만에서는 아무도 모르게 조용한 혁명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 혁명이란 이후 세계영화계의 판도를 바꿔놓은 대만 뉴웨이브영화의 출현이었다. 82년작 <광음적고사>를 필두로, 83년 <샌드위치 맨> <해탄적일천> <펑쿠이에서 온 소년> <샤오피 이야기>가 잇따라 발표됐고, 서구의 영화평론가들은 이 새로운 영화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이와 동시에 허우샤오시엔, 에드워드 양, 차이밍량, 리안 등의 이름은 ‘아시아의 낯선 감독’에서 ‘새로운 영화미학의 창조자’라는 수식어 뒤에 놓이게 됐다.
20년 전부터 현재까지 세계영화제와 평단에서 그 위용을 과시하고 있는 대만 뉴웨이브영화 13편이 제7회 부산영화제를 찾는다. 특별기획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열리는 ‘대만 신전영(新電影) 탄생 20주년 특별전’이 그것. <광음적고사>와 <샌드위치 맨>을 비롯, 에드워드 양의 <청매죽마>, 리
대만 뉴웨이브 20년의 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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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상자료원(원장 정홍택)은 일본의 국립필름센터, 일본국제교류기금과 함께 11월 5일∼12월 25일 ‘한국영화 영광의 60년대’ 라는 주제로 한국영화 회고전을 개최한다.
도쿄의 국립필름센터에서 열리는 회고전에는 신상옥 감독의 <연산군>과 <천년호>를 비롯해 김기덕 감독의 <맨발의 청춘>, 유현목 감독의 <카인의 후예> 등 60년대 영화 28편이 상영된다.
이번 회고전은 한국영상자료원과 일본국립필름센터의 영화교류 차원에서 기획된 것으로 내년 3월 서울에서는 일본영화 회고전을 개최할 예정이다.
(서울=연합뉴스)
영상자료원 일본서 한국영화 회고전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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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1982년, 에드워드 양을 비롯한 4명의 감독이 참여한 옴니버스영화 <광음적고사>의 등장은 그야말로 사건이었다. 당시 동아시아 한 귀퉁이의 작은 섬나라에서 만들어진 이 저예산 ‘모듬영화’가 곧 세계영화계를 흔들어놓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은 거의 없었다. 대만의 ‘신랑차오’(新浪潮), 즉 대만 뉴웨이브영화의 출발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평가되는 그 영화는 그렇게 조용히 꼬리치며 하늘로 올라가고 있었다.
1982년 <광음적고사>가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영화라는, 실로 대만이라는 나라를 꿰어내는 것은 무망한 짓이었다. 대륙에서 권력을 잃은 장개석 장군이 49년 대만에 자신의 깃발을 꽂은 이후 대만의 영화는 체제를 홍보하거나 반공정신을 고양하는 나팔수 역할을 해왔다. 60년대 이후 대중작가인 경요(瓊瑤)의 애정소설을 영상화한 작품이나 홍콩 무협영화의 모사작 등 상업영화가 대거 생산돼 인기를 얻은 것은, 냉소적으로 말하자면 프로파간다영화
대만 뉴웨이브 20년의 힘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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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정책 또한 자국영화의 진흥과는 관계없이 변죽만 울리고 있었다. 이때 50여명의 대만 영화인들은 ‘대만 신영화 선언’을 발표했다. “우리는 영화가 의식적인 창작활동이고 예술활동이며 반성과 역사인식을 가진 민족의 문화활동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구절로 시작하는 이 선언은 정부의 영화정책, 언론의 무책임한 태도, 평론의 왜곡 등을 차례로 꼬집었다. 하지만 상황은 여전히 바뀌지 않았고 불행히도 초기 뉴웨이브 세대 중 허우샤오시엔과 에드워드 양을 제외한 대부분의 감독들은 영화시장에서 차례로 밀려나 TV와 CF, 학교 등으로 후퇴하게 됐다. 89년 허우샤오시엔 감독의 <비정성시>가 베니스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으며 흥행에 성공하는 듯 보였지만, 곧 대만영화의 상황은 다시 암울해졌다.
이른바 뉴웨이브 2세대라고 불리는 젊은 감독들이 대거 등장한 것은 이때였다. 90년에는 황밍추안 감독이 중앙전영 등 기존 영화사의 힘을 빌리지 않은 채 ‘첫 순수 대만 독립영화’ <서쪽
대만 뉴웨이브 20년의 힘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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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지검 형사7부(박태석 부장검사)는 1일 영화 <챔피언> 주연배우 유오성씨 초상권 침해 고소사건과 관련, 영화감독 곽경택씨를 지난달 30일 지명수배했다고 1일 밝혔다.
검찰 관계자는 “곽씨는 이 사건 피고소인중 1명으로 검찰 소환에 불응하고 소재도 파악되지 않아 지명수배 조치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곽씨가 소속된 진인사 필름측은 “곽씨가 신작 영화 ‘똥개’ 시나리오 작업에 바빠 잠시 집을 비우고 외부에서 작업을 진행했을 뿐이며 조사를 피하려는 의도는 없었다”며 “조만간 검찰에 출석, 조사를 받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편 유씨의 소속사인 JM라인은 지난 5월 “유씨의 동의없이 별도 편집된 영화<챔피언>의 영상물을 모 의류업체 CF에 제공, 초상권을 침해했다”며 지난 7월 투자사인 코리아픽처스를 상대로 저작권법 위반 혐의로 서울지검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서울=연합뉴스)
영화감독 곽경택씨 지명수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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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성시> <희몽인생> <호남호녀>는 기억과 대만 역사에 관한 영화들이다. 나는 이들 시대를 포착하려 했는데, 그것은 당시가 대만이란 나라를 형성하는 기초가 된 시기였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 시대에 관해 알려고 하지 않거나 왜곡된 이해를 하고 있다. 나와 비슷한 세대의 영화 제작자들은 항상 그런 점에 상당한 책임감을 갖고 있다. 우리는 이들 문제에 맞서는 것이 우리 세대의 임무라고 의식하고 있다."당신의 영화는 대만의 역사와 생활상을 다뤄왔다. 그것은 의도적인 것인가 아니면 우연인가.→ 나는 대만에서 오랫동안 살아왔다. 하지만 내가 비로소 대만의 역사에 관해 알게 된 것은 <비정성시>를 만들 때부터였다. 당시 나는 대만의 역사에 관한 수많은 책을 읽었다. 영화제작이란 역사, 사람, 인생 그 자체에 관해 알아나가는 과정이다. <희몽인생>은 내가 공부해온 과정의 성적표인 셈이다.처음 영화를 만들던 1980년대 초반부터 당신의 영
허우샤오시엔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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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뉴웨이브를 끈 동력은 무엇인가→ 내가 영화 만들 기회를 얻었을 무렵, 대만의 정치적 상황은 최악이었다. 1979년 카터 행정부는 중국 본토를 중국의 공식적인 정부로 인정했다. 중국은 자족과 자부심에 들떴지만, 대만은 정반대였다. 그런데 그것이 우리 세대에게 하나의 정점을 의미하게 됐다. 우리는 자부할 만한 무언가를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찾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미국에 있던 나는 대만으로 돌아가 친구가 찍는 영화에 참여하기로 결정했다. 운명적이었던 것 같다. 그때 우리 세대는 갑자기 성숙해졌다. 오래된 관습은 모두 무너지고 새로운 세상이 열렸기 때문에, 창조적인 에너지가 넘쳐흘렀다. 최고의 기회였다. 대만 뉴웨이브영화는 바로 그런 자각에서부터 시작됐다.뉴웨이브의 감독들이 출발부터 어떤 유대를 갖고 있었다는 얘긴가.→ 나는 대만 뉴웨이브의 리더였다. 허우샤오시엔 같은 감독들이 모두 우리 집에 모여 이야기하고 웃고 술을 마셨다. 우리는 모두 비슷한 것을, 하지만 허락되지 못한
에드워드 양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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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부산영화제의 ‘대만 신전영(新電影) 탄생 20주년 특별전’에선 모두 13편의 작품이 상영된다. 대만 뉴웨이브의 도래를 알렸던 <광음적고사>(1982)를 비롯해 뉴웨이브 1기를 대표하는 감독들의 작품인 <샌드위치 맨>(1983), <청매죽마>(1985) 등에서부터 2기 뉴웨이브 감독인 리안, 차이밍량, 린청셩 등의 영화가 포함돼 있다. 특히 대만 뉴웨이브 20주년을 기념하는 다큐멘터리 <우리의 시대, 우리의 이야기 - 신 대만 전영 20년>은 현재 대만영화계의 시선에서 지나온 20년을 바라보는 독특한 작품이 될 것이다.편집자<광음적고사> 光陰的故事1982년 ┃ 106분 ┃ 감독 에드워드 양, 커이쳉, 타오더쳉, 장이대만 뉴웨이브의 탄생을 알린 작품. 4개의 에피소드를 엮어놓은 옴니버스영화다. 이 4개의 에피소드는 각각 초등학생, 중학생, 대학생, 젊은 부부를 주인공을 내세우며 시대 또한 60년대, 70년대, 80년대로 바뀌어 나
대만 뉴웨이브 총결산. 부산영화제 상영작 13편 미리보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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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나타 靑少年 na咤 1992년 ┃ 106분 ┃ 감독 차이밍량비가 내리는 타이베이의 밤거리, 십대 소년 아체는 공중전화 동전을 털어 오락실로 향한다. 같은 밤 무기력한 소년 강은 방에서 바퀴벌레를 잡으려다 맨손으로 유리창을 깨뜨린다. 차이밍량의 장편데뷔작 <청소년 나타>는 우연히 거리에서 조우한 이 두 아이의 일상을 따라가는 영화다. 둘이 처음 만난 곳은 혼잡한 횡단보도 앞. 아체는 택시기사인 강의 아버지가 잔소리하는 데 화가 나 사이드미러를 박살내고, 옆자리에 있던 강은 오토바이를 탄 아체의 돌발적인 행동을 유심히 지켜본다. 그리고 강의 은밀한 동경과 복수가 시작된다. 차이밍량은 <하류> <구멍> 등을 함께한 배우 이강생이 강처럼 재수생이었던 시절, 거리에서 만난 이강생과 이 영화를 찍었다. 그만큼 <청소년 나타>는 배우와 감독이 느끼고 체험한 그대로의 타이베이를 반영하고 있다. 부모 세대에게 속했다는 든든한 의지도 없고, 몇년 뒤를
대만 뉴웨이브 총결산. 부산영화제 상영작 13편 미리보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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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 제주도 사람들의 베스트 원제주 민예총이 주관하는 영화행사였다. 일주일 동안 강의하면서 7편의 고전영화를 상영한 뒤 수강생들에게 어떤 영화가 제일 좋은가라는 설문을 돌렸다. 무협영화 같은 대중적인 장르영화도 끼어 있었지만, 최고의 영화로 꼽힌 것은 의외로 대만의 <동년왕사>였다. 전혀 영화 같지 않고, 일상을 담담히 기록한 것 같은데도 너무나 감동적이었다는 것이다. 대만영화 운운하면 골치아픈 예술영화 대접을 주로 받던 때이니만큼, 제주도 사람들의 반응은 너무나 신선했다. 하지만 난 그들이 핵심을 찔렀다고 생각한다. 그 점이 대만영화의 진짜 힘이니까.난 80년대에 영화공부를 시작했고, 지금도 다행히 영화를 직업으로 삼고 있는, 그런 세대에 속한다. 같은 세대라도 성장과정은 조금씩 다른데, 힘든 시간 속에서도 내게 영화를 계속하도록 힘을 준 에너지원이 있다면 바로 폴란드영화와 대만영화이다. 특히 대만영화를 보기 위해 타이베이를 오간 돈을 저금했다면 지금쯤 비행기를
어느 대만영화 마니아의 대만영화 14년 편력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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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4_1995년_<세계영화기행>, 방송다큐멘터리와 책얼마 뒤 다큐멘터리를 시작했다. 4·3항쟁을 소재로 <비정성시> 같은 영화를 만들려면 먼저 역사적 진실을 정리해야한다는 필요성 때문이었다. 그러던 1994년 말, 인디컴 프로덕션의 김태영 대표에게서 연락이 왔다. <세계영화기행>이라는 방송다큐멘터리를 기획 중인데, 대만영화를 잘 아니까 ‘대만·홍콩’편의 연출을 맡아달라는 것이었다. 가만… 대만영화 책을 쓰고 싶지만 여의치 않고, 4·3 다큐멘터리도 암초에 걸렸으니 이 기회에 두 마리 토끼를 잡을까 그래, 다큐멘터리로 대만영화를 쓰자!그때부터 구성을 맡은 이남진 작가와 몇달을 준비한 끝에 대만편 세계영화기행은 시작되었다. 촬영은 힘들었지만 <스크린> 인터뷰 때 사귄 분들의 도움으로 거의 모든 대만 영화인들을 만나서 취재하는 행운을 얻을 수 있었다. 이때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있었던 발견은 대만 뉴웨이브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국민당이 운
어느 대만영화 마니아의 대만영화 14년 편력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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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10월은 TV 드라마사에 있어 특별한 한달로 기억될 만하다. 지난 10월12일 <모래시계>의 콤비 송지나·김종학이 8년 만에 재회한 <대망>이 첫 전파를 탔고 이어지는 10월21일 <거짓말>의 콤비 표민수·노희경이 3년 만에 선보이는 <고독>이 그동안 기다려온 시청자들의 갈증을 달래주었다.보통 “감독예술”로 표현되는 영화와 달리, “공무원 같은 PD와 일하는 작가예술”로 인정받는 대한민국 TV드라마는 그동안 김수현 작가를 위시해 수많은 스타작가를 생산해냈다. 그러나 서로의 120%를 이끌어내는 손발맞는 작가와 PD 콤비의 탄생은 그에 비해 매우 희박한 것이었다. <베스트셀러극장>과 몇몇의 미니시리즈를 통해 감성적인 호흡과 세련된 영상을 보여주었던 황인뢰·주찬옥 콤비 이후 92년 정신대부터 제주도 4 ·3항쟁, 한국전쟁까지 한국근대사의 폐부를 찌르는 가운데 세 젊은이들의 사랑과 삶을 훌륭히 녹아냈던 <여명의
안방으로 컴백한 콤비들,<대망> VS <고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