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란의 카베 자마헤리 감독이 연출한 <보톡스>는 현대 이란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이 겪으며 살아가는 내재화된 억압과 폭력을 풍자하는 부조리극이다. 우연한 사고로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아크람이 오빠를 죽음에 이르게 하지만 동생 아자르는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오빠가 아니라 언니를 택한다. 사건을 은폐하고 시체를 유기하고 비밀을 감추려는 두 자매의 고군분투 속에는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가족 구성원을 돌봐야 하는 이들의 고단함과 여성들이 겪어야 하는 이란의 사회적 문제에 관한 고민이 함께 담겨 있다. <보톡스>로 연출 데뷔한 카베 자마헤리 감독은 자신이 주변에서 보고 듣고 경험한 관계에서 영감을 얻어 영화를 완성했다. 가족 간에 벌어지는 끔찍한 사고를 통해서 그가 관객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메시지는 무엇일까.
- <보톡스>는 평범한 블랙코미디가 아니다. 우연히 범죄가 발생하지만 그 안에 ‘이란’이 지닌 여러 사회적 문제를 읽어낼 수 있다. 어떤 문제의식에서
GIFF #8호 [인터뷰] '보톡스' 카베 마자헤리 감독
-
<월든>의 야나와 파울리어스는 누구나 한번 경험하는 첫사랑의 계절을 통과한다. 다만 그들이 있는 곳이 베를린 장벽과 소련이 무너지기 전 1989년 여름, 리투아니아의 빌뉴스였다는 점이 이 영화를 특별하게 만든다. 공산주의 국가에서 태어난 보예나 호락코바 감독 또한 야나와 같은 청춘을 보냈다. “당시 기억의 강렬함 때문에 젊은이들의 이야기에 주목하게 됐다. 당시엔 빨리 서구로 가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다. 실제 서구로 갔을 때는 고대했던 것과는 다른 삶이 시작되긴 했지만.” 한국을 찾은 보예나 호락코바 감독과 동유럽의 기억, 요나스 메카스 그리고 에릭 로메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 당신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바탕으로 했다고 들었다. 똑같이 자전적인 내용을 담은 <나의 동쪽에서>(2008)은 다큐멘터리로 찍었는데 이번에는 극영화로 접근한 이유가 무엇인가.
= <나의 동쪽에서>는 완벽하게 다큐멘터리였다고 말할 수 없다. 자전적인 다큐
GIFF #8호 [인터뷰] '월든' 보예나 호락코바 감독
-
이것은 실제 상황이다. 토마스 폴로 감독은 아르덴 지방의 소도시 레뱅 시장 선거에 배우 로랑 빠뽀를 출마시키는 과감한 계획을 세운다. 본격적으로 선거 캠프를 꾸리고 선거 운동에 뛰어들면서 배우가 정치인인 척하는 것인지, 혹은 그가 정말로 정치인이 되어버린 것인지 그 경계는 점점 모호해진다. 설정만 놓고 보면 극적 상황을 유도하기 위한 용감한 해프닝으로 보이지만 제작진의 연극은 민주주의를 겨냥한 거대한 정치 실험으로 변모해간다. 첫 장편영화를 만든 토마스 폴로 감독을 만나 보다 내밀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었다.
- 어떻게 이런 기획을 추진하게 됐나.
= 처음에는 아주 클래식한 다큐멘터리를 생각을 했었다. 준비 과정에서 다이렉트 시네마보다는 훨씬 더 많이 개입하는 영화를, 보다 의미 있는 작업을 해야겠다고 생각이 바뀌었다. 작은 규모의 소도시에서 열리는 지방 선거에 실제로 출마한다면 프랑스 민주주의 선거 체계를 분석해볼 수 있지 않을까 판단했다. 영화에도 등장하는 페르디난드 플라메
GIFF #8호 [인터뷰] '출마선언' 토마스 폴로 감독
-
<WR: 유기체의 신비> WR: Mysteries of the Organism
두산 마카베예프 / 유고슬라비아, 서독 / 1971년 / 85분 / 가치의 전복자들
만화경을 통해 금기시되었던 무언가를 몰래 보는 듯하다. 그것은 풀밭 위 남녀의 섹스. 이들의 모습 위로 섹스는 기쁨과 삶의 에너지라고 찬양하는 내레이션이 들려온다. 영화는 이를 단순한 성적인 욕망과 오르가슴이 아닌 ‘오 르곤 에너지’라 부른다. 이는 빌헬름 라이히 박사가 주창한 개념으로 영화는 그의 가르침을 추종하는 일종의 에세이다. 마르크스주의 심리학자이자 성과학자인 빌헬름 라이히의 저작 물은 1956년과 1960년 두 차례 미국의 한 소각장에서 태워졌다. 당연히 그의 저작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 <WR: 유기체의 신비> 역시 1971년 베를린국제영화제와 칸국제영화제 에서 상영된 후 논쟁의 대상이 되었고 수많은 국가에서 상영 금지되었다.
영화는 다수의 기록 필름, 프로파간다 필름,
GIFF #8호 [프리뷰] 두산 마카베예프 감독, 'WR: 유기체의 신비'
-
-
<세리 누와르> Se ′ rie Noire
알랭 코르노 / 프랑스 / 1978년 / 110분 / 조르주 페렉의 영화 사용법
권태로운 일상의 늪에서 허우적대던 어느 평범한 남자가 잔인한 범죄에 빠져들게 되는 이야기를 다룬 영화 <세리 누와르>는 프랑스 알랭 코르노 감독의 대표작 중 한편이다. 그는 프랑스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조르주 페렉과 함께 미국 작가 짐 톰슨의 <여자의 지옥>을 각색해 영화로 옮겼다.
방문 판매원 프랭크의 일상은 초라하기 짝이 없다. 영업 실적은 바닥을 치지만 사장은 횡령혐의가 의심된다며 그를 경찰에 신고하고, 남편의 손찌검을 견디지 못한 아내는 집을 나가버린다. 도시 외곽 변두리 마을을 찾아다니며 옷을 팔던 그는 우연히 성매매를 하는 10대 소녀 모나와 그의 숙모와 얽히게 된다. 프랭크의 솔직한 모습에 마음을 뺏긴 모나는 프랭크의 뒤를 밟다가 그가 돈 때문에 곤경에 처하자 프랭크 대신 사장에게 모자란 돈을 지불한다
GIFF #8호 [프리뷰] 알랭 코르노 감독, '세리 누와르'
-
“첫 수상자로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최초로 보도한 고 유영길 촬영감독님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문재인 대통령) <개그맨>(1989) <남부군>(1990)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1995) <꽃잎>(1996) <초록물고기>(1997) <8월의 크리스마스>(1998) 등을 촬영하며 1980, 90년대 불었던 ‘코리안 뉴웨이브’의 중심에 있던 고 유영길 촬영감독이 1980년 5월 광주를 세상에 처음 알린 기자라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1회 힌츠페터 국제보도상(주최 5·18기념재단, 한국영상기자협회)은 ‘5·18 광주민주항쟁’을 보도한 고 유영길 기자를 오월광주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미국 <CBS> 서울지부 영상기자 시절, 유영길 촬영감독은 1980년 5월19일 광주 금남로에서 계엄군이 무고한 시민들에게 무자비하게 폭력을 휘두르고, 계엄군의 곤봉에 맞은 시민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지고, 장갑차와 전
고 유영길 촬영감독, 5·18 최초 보도한 기자로 밝혀져... 힌츠페터국제보도상 오월광주상 수상
-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 페이즈4를 열어젖힐 <이터널스>의 이야기를 레고로 즐겨보자. 11월3일 국내 개봉하는 <이터널스>는 수천년 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살아온 불멸의 히어로 이터널스의 존재를 새롭게 소개하는 작품이다. <이터널스>는 어벤져스 멤버 일부가 떠난 뒤인 <어벤져스: 엔드게임> 이후 시점을 배경으로 삼는다. 오랫동안 존재를 드러내지 않았던 이터널스는 인류의 오랜 적 ‘데비안츠’에 맞서기 위해 다시 힘을 합치기 시작하는데, 스크린에서 펼쳐지는 새로운 히어로의 능력은 어벤져스 못지않게 다양하다. 세르시(제마 챈)는 물질의 성질을 조작할 수 있고, 하늘을 나는 이카리스(리처드 매든)는 눈에서 광선을 내뿜어 적을 무찌른다. 이터널스의 리더 아자크(살마 아예크)는 치유 능력을 지닌 중요한 캐릭터이며, 킹고(쿠마일 난지아니)는 손끝으로 에너지를 모아 총처럼 쏠 수 있다. 환각을 일으켜 남을 속이는 스프라이트(리아 맥휴)와 초음속
MCU의 새 역사를 내 손으로
-
마노 카릴 감독은 시리아 난민이었다. 시리아에 있는 쿠르디스탄에서 살았던 그의 어머니는 총에 맞아 죽었고, 그의 학교에는 쿠르드어를 금지하고 아랍어를 가르치는 교사가 부임했다. 시리아로 다시 돌아갔을 때 그는 감옥에 수감되어야 했다. 스위스로 망명한 이후 비로소 그의 과거를 영화로 펼쳐낼 수 있었던 그가 어린 시절 이야기를 기반으로 만든 작품이 바로 <이웃들>이다. 1980년대 초 시리아의 어느 국경 마을, 소년 세로는 처음으로 간 학교에서 언어를 규제하고 유대인을 증오하라고 가르치는 교사를 만난다. 그저 만화를 볼 수 있는 TV를 갖는 게 꿈이었던 소년은 흉포한 전체주의가 어떻게 마을을 변화시키는지 관찰한다. <이웃들>이 담은 80년대 시리아의 모습은 현재 시리아의 전쟁과 난민 문제를 이해하는 단서다. 마노 카릴 감독을 만나 그의 어린 시절과 영화에 대한 꿈, 시리아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 <이웃들>은 당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기반으로
GIFF #7호 [인터뷰] '이웃들' 마노 카릴 감독
-
유명 래퍼와 시골 농장 그리고 시네마 베리테 스타일의 극영화. 도무지 안 어울릴 것 같은 조합이지만 <왕과 함께>에서는 이 요소들이 한데 공존한다. 새로운 앨범을 성공시켜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는 래퍼 머니(프레디 깁스)는 앨범 작업에 집중하기 위해 매사추세츠의 한 시골 마을로 떠난다. 그러다 마을 사람들과 점점 가까워지고 동네의 정취에 매료된 그는 SNS를 통해 돌연 은퇴를 선언한다. 래퍼의 인생을 다뤘다는 점에서 에미넴이 출연한 <8마일>을 떠올리는 관객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왕과 함께>는 전혀 다른 길을 가는 영화다. 디에고 온가로 감독은 실제 래퍼를 주연으로 캐스팅하는 등 비 전문 배우들을 적극 기용하며 즉흥적인 호흡에 영화의 리듬을 맡겼다.
- 이 영화는 어떻게 구상하게 됐나.
= 전작인 <밥 앤 더 트리즈>(2015)에서 매사추세츠에 있는 벌목업자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내가 13년 동안 살고 있기 때문에 아주 잘 알고 있는
GIFF #7호 [인터뷰] '왕과 함께' 디에고 온가로 감독
-
창간 독자 송영훈씨가 1호부터 1160호까지 귀중히 모은 <씨네21>을 본사에 기증했다. 대형 박스로 13박스 되는 분량이다. 1995년 5월2일 발행된 <씨네21> 창간호의 상태는 26년의 세월이 무색하게 깨끗했다. 26년 전, 영화감독과 언론인을 꿈꾸던 대학생이던 송영훈씨는 <씨네21>의 창간 소식을 듣고 기쁜 마음으로 구독을 시작했고, “훗날 개인도서관을 만들면 <씨네21> 전권을 구비할 계획”으로 잡지를 모으기 시작했다. 개인적 사정으로 1160권의 잡지를 더이상 보관하기 힘든 상황이 되자 도서관 기증과 판매 및 처분 등을 고민하다 본사에 기증을 결정했다.
<씨네21>은 감사의 의미로, 지난 7월29일 대중문화지 최초로 NFT(Non-Fungible Token, 대체불가능한 토큰) 플랫폼 메타파이(METAPiE)에서 발행한 <씨네21> 창간호 디지털 복원판을 송영훈씨에게 전달했다. <씨네21> 한정택
<씨네21> 1160권 기증한 창간 독자
-
<개는 짖기를 멈추지 않는다> The Dog Who Wouldn’t be Quiet
아나 카츠 / 아르헨티나 / 2020년 / 74분 / 인: 사이트
코로나19가 전세계를 강타한 팬데믹 시대의 우리 일상과 인간다움을 돌아보게 만드는 영화다.
비정규직 일러스트레이터 세바스찬은 자신의 반려견 때문에 사방에서 고충을 겪는다. 이웃들이 몰려와 개가 너무 시끄럽다며 항의하자 직장에 데리고 다녀보지만 개를 데리고 출근하면 안된다며 경고를 받는다. 반려견과 한시도 떨어져 지낼 수 없었던 그는 어느 날 덜컥 혼자가 되고, 일용직을 전전하며 살다가 엄마가 재혼하던 날 한 여인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한 남자와 반려견의 이별 드라마처럼 진행되던 영화는 지구에 바이러스가 퍼지고 보호장구 없이는 허리를 펴고 살 수 없는 세상이 되면서 전혀 다른 장르로 탈바꿈한다.
안정적인 삶이란 무엇인지 질문하는 각박한 현실과 직립보행이 불가능한 극단적인 디스토피아 상황이 오버랩되면서 영화는 외
GIFF #7호 [프리뷰] 아나 카츠 감독, '개는 짖기를 멈추지 않는다'
-
<코르시카의 여름> Comete–A Corsican Summer
파스칼 태그나티 / 프랑스 / 2021년 / 128분 / 아시드 칸
프랑스 남동쪽 지중해에 자리한 코르시카섬.
이곳의 한 마을은 여름의 열기로 가득하다. 길가엔 사랑을 이야기하는 청년들과 노래를 부르는 어린이들이 있다. 한편에선 이들을 걱정 하는 어른들이 있고 노인들은 지나간 세월을 곱씹는다. <코르시카의 여름>은 코르시카의 한작은 마을의 여름을 담아낸다. 프랑스의 여름을 담고 픽션과 다큐멘터리가 뒤섞인 느낌을 준다는 점에서 기욤 브락의 <보물섬>을 연상 시킨다. 차이점은 다큐멘터리보다 픽션에 방점이 찍혀 있다는 것이다.
하나의 내러티브로 묶을 순 없지만 코르시카에 남고자 하는 사람 들과 떠나려는 이들의 충돌이 작게나마 포착 된다. 여기에 남녀노소 상관없이 사랑에 죽고 못사는 사람들의 생의 에너지가 마을에 넘실 댄다. 또한 지중해 햇살과 바람을 담아낸 섬의 자연경관은 볼거리
GIFF #7호 [프리뷰] 파스칼 태그나티 감독, '코르시카의 여름'
-
날씨가 하루 사이에 많이 추워졌다. 마지막으로 만나서 이야기한 것이 여름의 막바지쯤이었는데, 어느새 겨울이 코끝을 스치고 귀밑까지 와 있는 기분이야. 그러기까지 걸린 시간이 한달도 채 안된다니 시간이 참 빠르다. 그때 네가 챙겨준 커피를 아직도 마시고 있는데 말야.
우리는 올해로 마흔번째 해를 살아가고 있고 내 생각에 우리의 시간은 그사이에 각자 다른 방식으로 몇번 정도 그 속도를 높여왔지만 이번에는 그 정도가 유독 빠르게 느껴진다. 그만큼 주변을 미처 둘러보지 못하고 지나가는 기분이야. 놓치고 나서 돌아갈 수 없는 것들도 점점 늘어난다. 예전에는 그럴 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쩔쩔매기만 했었다. 지금이라고 다르겠냐마는.
하지만 올여름은 너에게 주고 싶었던 선물을 마무리할 수 있어서일까, 더위가 지나가고 난 뒤에도 그리고 이렇게 계절이 빨리 변했음에도 나는 상실감보다는 충만함이 크게 느껴진다. 아마도 두고두고 남을 만한 하나의 결실을 맺었기 때문이겠지. 바로 너에게 선물하려
[윤덕원의 노래가 끝났지만] 언제나 다정한 은이에게
-
당신은 ‘듀나DJUNA’라는 이름을 들으면 어떤 이미지를 가장 먼저 떠올리시는지? 아무래도 <씨네21>의 독자라면 영화평론가 듀나를 가장 먼저 떠올릴 가능성이 높겠다. 또 어떤 이들은 정체를 감춘 그의 익명성에 집중할지도 모르고. 또 어떤 이들은 그냥 트위터에서 재미있는 이야기나 풀어놓는 토끼 정도로 생각하고 계실는지도 모르겠다.나에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듀나의 이미지는 ‘SF 작가’다. 아니, SF의 전설이다. 아니, 아니, 그걸로도 부족하다. 듀나는 이 땅에 현현한 SF의 화신…. 음음, 팔불출 같은 팬심 표출은 이 정도로 하고, 아무튼 오늘은 SF 작가 듀나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듀나는 한국 SF 문학 계보에서 중요한 작가 중 하나다. 그는 90년대 PC통신 시절부터 지금까지 30년 가까운 기간 동안 100편이 넘는 작품을 꾸준히 발표했으며, 현재도 수많은 SF 창작자들을 자신의 중력에 가둬두고 영향력을 발산하는 적색거성 같은 존재다. 사실상 듀나는 한국 SF의
[이경희의 SF를 좋아해] 듀나 유니버스를 위한 안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