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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ST’는 매주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에게 취향과 영감의 원천 5가지를 물어 소개하는 지면입니다. 이름하여 그들이 요즘 빠져 있는 것들의 목록.
김소미 기자
파반
비가 잦은 올여름을 통과하는 동안 파반은 몽상을 위한 좋은 동반자였다. 2박자의 완만하고 장중한 궁정 무곡들에 생각을 실으면 잠깐이나마 팬데믹이 아닌 르네상스 시대로 접속했다.
제주 ‘용기’
지난여름 이곳에서 글쓰는 동안 드물게 마음이 평탄했다. 곁에는 덤보라는 강아지가 함께였다. 파도치는 식물들과 바람, 화이트와인과 콩샐러드 한 접시에 힘입어 가뿐히 넘실댈 수 있었던 곳. (광고 아님, 내돈내산)
<나, 프랜 리보위츠>
안전한 여행으로서 수면을 애호한다고 밝힌 그는 도피하고픈 일상 세계를 ‘꼴사나움’이란 한 가지 형용으로 속시원하게 통폐합한다. 치열하고 장쾌한 냉소로 굳은 명치를 살살 주무르는 프랜에게 감사를!
테레민(theremin)
유튜버 지한 굴부다크가 연주하는 고주파 악기 테레
[LIST] ‘씨네21’ 기자들의 리스트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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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ST’는 매주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에게 취향과 영감의 원천 5가지를 물어 소개하는 지면입니다. 이름하여 그들이 요즘 빠져 있는 것들의 목록.
김혜리 편집위원
<테드 래소>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종영 후 좋은 인간들이 좋은 영향을 주고받는 광경을 더 보고 싶었던 갈증을 채워준 Apple TV+ 드라마. 프리미어리그 시트콤이래도 좋다.
<누기시골>
길 잃은 강아지가 농사짓는 청년의 발등에 지친 몸을 기댄 날부터 이 일상 채널은 속깊은 풍돗개 산돌이와 다정한 가족의 ‘도그후드’가 됐다.
Radio Garden
전세계 지역 라디오를 실시간으로 들을 수 있는 앱. 위성 뷰로 지구를 돌리며 세계 일주가 가능하다. 인류애가 파사삭 무너질 때 진정용으로 좋다.
글렌 굴드가 연주하는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이것은 해석을 넘어 거의 편곡이 아닐까? 굴드의 바흐와 브람스와는 다른 방식으로 중독을 부른다.
콩으로, 라구소스
채식주의자가
[LIST] ‘씨네21’ 기자들의 리스트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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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ST’는 매주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에게 취향과 영감의 원천 5가지를 물어 소개하는 지면입니다. 이름하여 그들이 요즘 빠져 있는 것들의 목록.
이주현 편집장
러키 데이(Lucky Daye)
러키 데이 혹은 러키 다예. 최근 앨범 《Candy Drip》도 훌륭하지만 역시 《Painted (Deluxe Edition)》이면 선곡 끝. 가을 냄새 맡고부턴 <Love You Too Much> 자주 듣는 중. 내가 아는 R&B는 이런 거였다.
해외 축구
영국과의 시차 -8시간. 여전히 내 주말 예능은 프리미어리그, 라리가, 세리에A, 챔피언스리그….
요가
요가 시작 3주째. 학원의 숨은 요가 고수들을 보며 진심으로 감탄하고 있다. 나도 요가를 잘할 수 있을까? ‘수영을 잘하고 싶다’에 이은 새로운 ‘잘하고 싶다’ 리스트에 요가 추가.
<종의 기원>
하루의 마무리 독서는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 잠들기 전 찬찬히 과학 서적을 읽으
[LIST] ‘씨네21’ 기자들의 리스트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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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6일 저녁 베를린 아르제날 극장에서는 특별한 상영회가 열렸다. 1988년 제38회 베를린국제영화제(이하 베를린영화제) 포럼부문에 선보였던 한국 단편영화들을 다시 보며 회고하는 자리였다. 베를린영화제에서 포럼부문은 실험적이고 혁신적인 영화를 소개하는 섹션이다. 당시 베를린영화제 포럼부문에 선보인 한국 단편영화들은 소규모 자본으로 대학생들이 직접 제작한 영화들이다. 이 작품들이 베를린 시네마테크 중 하나인 아르제날에서 재상영될 수 있었던 것은 코리아협의회 한정화 대표 덕분이다. 코리아협의회는 최근 베를린 평화의 소녀상 운동을 펼쳐 유명세를 타고 있는 시민운동단체다. 한 대표는 상영회 시작 전 재상영을 추진하게 된 경위를 짧게 소개했다. “학생이었던 20대 중반 생애 첫 베를린영화제에서 봤던 이 영화들을 잊을 수가 없었다. 당시 독일 영화관에서 한국영화를 본다는 것은 특별한 일이었다. 이 영화들이 계속 마음속에 남아 있던 터에 3년 전 아르제날 영화관측에 상영할 수 있는지를 문의
[베를린] 1988년 제38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 한국 단편영화 6편 상영회 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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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수 없는 두 사람>
웨이브
식품 회사 마케팅 부서에서 일하는 사쿠코는 좀처럼 이성에 끌리지 않는다. 한때 회사 동료를 남자 친구로 둔 적은 있지만 이건 그의 갑작스런 고백을 엉겁결에 받아들여 벌어진 일이라 상대방에게 의도치 않은 상처를 남기기도 했다. 연애무감증을 고민하다 에이섹슈얼·에이로맨틱을 다룬 블로그를 발견한 사쿠코는 블로그의 주인이 얼마 전 식품 매장에서 마주친 점원 다카하시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반가운 마음에 애정 없이 생활하는 동거를 제안한다. 작품은 무성애자들이 결국 이성애라는, 사회적으로 합의된 제자리로 돌아가는 전형적 구성을 따르지 않는다. 그보다 인물이 지닌 다양한 형태의 감정 방식을 세심히 살피며 위로를 전한다. 예의바른 질감의 바탕 위에서 섬세한 감정이 물결처럼 오가는 배우 다카하시 잇세이의 얼굴이 인상적이다.
<멘>
웨이브, 티빙, 시리즈온
여성을 향한 억압과 폭력을 형상화한, 최근에 접한 가장 그로테스크한 이미
[리뷰 스트리밍] '사랑할 수 없는 두 사람'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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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대를 풍미했던 연애 상담 예능 프로그램 <마녀사냥>이 돌아왔다. 무려 7년 만의 부활이다. ‘그린라이트를 켜줘’ 같은 각 코너의 성격은 과거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흘러간 시간 동안의 변화를 따라잡으려는 노력은 인적 구성에서 눈에 띈다. 전원 남성 MC에 여성은 고정 패널에 머물렀던 ‘원조’와 달리 티빙 오리지널 <마녀사냥 2022>의 MC 성비는 2:2, 신동엽, 김이나, 코드쿤스트, 비비는 50대부터 20대까지 각각의 연령대에 골고루 포진해 있다.
물론 숫자만으로 토크의 균형이 맞춰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19금 고인물’ 신동엽을 능가하는 기세와 입담으로 ‘음란시인’이라는 별명을 얻은 김이나는 여성의 솔직한 욕망에 관해 이야기하는 동시에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원칙을 제시한다. 침대 밑에 숨어 <마담 보바리>를 몰래 읽던 어린 시절부터 지역별 클럽 분위기에 통달한 지금까지의 경험, 원초적 감정과 이성 사이에서 고민해본 이야기를 털어놓는
[최지은의 논픽션 다이어리] ‘마녀사냥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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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 / 감독 캣 코이로, 아누 발리아 / 출연 타티아나 매슬래니, 마크 러펄로, 팀 로스, 베네딕트 웡, 진저 곤자가, 자밀라 자밀 / 플레이지수 ▶▶▶▷
무엇보다 익히 아는 남성 헐크가 아닌 여성판 헐크의 탄생 배경이 궁금할 터다. <변호사 쉬헐크>(이하 <쉬헐크>)의 주인공은 변호사 제니퍼 월터스로, 어벤져스 히어로 헐크 브루스 배너의 사촌이다. 둘은 자동차 여행 중 교통사고를 당하는데, 브루스의 피가 제니퍼의 상처로 스며들면서 헐크 변이 유전자를 이어받게 된다. 9개로 구성된 전체 에피소드는 제니퍼의 정체나 슈퍼히어로의 숙명으로 인한 고뇌 등의 주제로 이야기를 질질 끌 생각이 없다. 에피소드 시작부터 제니퍼의 실체를 바로 소개하고, 1편이 끝나기 전까지 치밀하지는 않더라도 무리 없는 수준의 템포로 제니퍼가 슈퍼히어로의 정체성을 수용하는 것과 함께 능력을 운용할 채비를 마치는 전사를 경쾌하게 밀고 나간다.
<쉬헐크>는 페이즈 변환과 더
[리뷰 스트리밍] '변호사 쉬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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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락도 살인사건> 이후 두 번째 작품을 실패하고 <최종병기 활>을 준비하던 때였다. 케이블TV에서는 계속 내 영화가 방영되고 있는데 권리는 누가 다 가져가나. 지금 많이 배고픈데 이럴 때 나 좀 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지난 8월31일 국회에서 열린 ‘천만 영화감독들 마침내 국회로: 정당한 보상을 논하다’ 정책토론회에 참석한, <명량> <한산: 용의 출현>을 연출한 김한민 감독의 말이다. 명절 때 TV에서 영화가 재방송되어도 감독에게 돌아오는 저작권료는 없다. 현행 저작권법에 따르면, 계약 시 별도의 특약이 없으면 창작자는 저작물의 공개 상영, 방송, 전송 등의 권리를 포함하여 양도한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이는 영화에만 해당되는 문제다. <신과 함께> 시리즈의 김용화 감독은 “<미녀는 괴로워>와 <국가대표>는 O.S.T도 사랑받았는데 당시 음악감독은 한국음악저작권협회를 통해 매월 높은 수익을 올렸다
‘천만 영화감독들 마침내 국회로: 정당한 보상을 논하다’ 정책토론회 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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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합본 특대호를 만들 때면 휘몰아치는 과량의 업무에 기진맥진 넋이 나간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험난한 마감의 고개를 넘으면 금세 마음이 보름달처럼 부풀어 오른다. 한주의 고생을 평소보다 통통해진 잡지의 무게로 고스란히 느낄 땐 연휴 기간 한껏 게을러지겠다고 결심 아닌 결심을 하기도 한다. 고정 지면 ‘리스트’의 특별판쯤 되는 ‘<씨네21> 기자들이 요즘 꽂혀 있는 것들의 목록’에도 썼듯 이번 추석 연휴에는 올해의 마지막 그랜드슬램인 US오픈 테니스대회나 실컷 챙겨 볼 생각이다. 라스트 댄스를 예고한 세리나 윌리엄스의 일거수일투족이 화제지만, 기본적으로 테니스는 본선에 오른 모든 선수가 우승 가능한, 방심할 수 없는 멘탈 경기라는 점에서 흥미롭지 않은 대진이 없다. 물론 최근 20년간은 ‘어차피 우승은 페더러/나달/조코비치’로 귀결되는 역사였지만 페더러와 조코비치가 없는 올해 US오픈 왕좌는 누구의 차지가 될지 톱시드의 활약과 언더도그의 서프라이즈를 기대하며 뉴욕과의
[이주현 편집장]추석엔 OO할 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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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살 때 고등학교를 자퇴하면서 <당대비평> 2000 봄호에 기고한 글을 봤다. “학교는 늙은 아버지 같다.” 정말 강렬한 글이던데.
=지금은 대한민국 공교육이 많이 바뀌었다고 진심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당시 내가 다니던 학교는 나 같은 종류의 인간이 즐겁고 행복하게 다닐 만한 공간이 아니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내가 학생회장이 되고 1등을 하고 대회에서 상을 받을수록 개미처럼 성실하게 일하는 서민일 뿐인 부모님이 계속 한턱을 내고 있었다. 내가 무언가를 열심히 하면 이런 대가가 돌아오는구나. 선생님들에 대한 불신이 트라우마처럼 강하게 새겨졌다. 그런 와중에 도피처가 돼준 게 영화였다. 그때 아버지가 비디오방을 하셨다. 주말이 되면 아침 일찍 비디오방에 가서 하루 종일 영화를 봤다. 영화 월간지의 시대였기에 매달 <스크린> <로드쇼> <프리미어> <키노> 중 무엇을 살까 고민하고 음악 듣는 낙으로 살았다. 그런데 학년이 올라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문지원 작가 인터뷰 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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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우는 “내 안은 나 자신으로 가득 차 있어서 가까이 있는 사람을 외롭게 만든다”며 준호(강태오)와 잠시 이별한다. 영우의 아버지 광호의 “자폐인과 사는 건 꽤 외롭습니다”라는 대사가 떠올랐다. 자폐인의 사랑은 어떻게 가능할까.
=애인과 부모는 조금 다른 것 같다. 영우는 자신이 가까운 사람을 외롭게 만들 수 있다는 한계를, 준호는 스스로가 그 한계를 견딜 수 있는 사람인지를 생각해볼 시간이 필요하다. 영우와 준호 모두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고 인정해야만 비로소 진짜 사랑을 시작할 수 있다. 반면 광호는 영우가 고래로 가득한 세계에 빠져 가만히 있을지라도 매우 이타적으로 영우의 세계로 들어가려고 한다. 결국 ‘너의 세계에 함께 있는 나’를 인식시키는 데 성공한 건 아버지다. 물론 영우쪽에서도 나이를 먹으면서 김초밥을 사오는 방식으로나마 달라져보려고 노력한다. 영우의 두 가지 사랑은 가능한 방식이 다르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줄 아는 정명석 변호사(강기영)를 두고 ‘유니콘’이라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문지원 작가 인터뷰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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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초에 나온 미국 텔레비전 시리즈 <V>는 외계인의 대규모 지구 방문을 다룬 이야기다. 나는 <V>에서 가장 긴장감 넘치고 아슬아슬한 장면이 초반의 외계인 등장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그 장면을 보여주기 위한 도입부터가 아주 멋졌기 때문이다. 어느 날 갑자기 전세계 각 지역에 외계인의 우주선들이 등장한다. 그들이 찾아온 이유는 무엇인지 지금부터 무엇을 할 것인지 다들 궁금해하는 가운데, 우주선은 그냥 가만히 멈춘 채로 기다리고 사람들은 저마다 TV 앞에 모여들어 세계 각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지켜본다. 말하자면 뜸을 들인 것이다.
이 뜸들이는 대목의 연출은 대단히 근사했다. 일단 외계인 우주선의 모습부터가 훌륭하다. 우주선이라고 하면 누구나 쉽게 떠올릴 수 있는 비행접시 형태의 모양이기에 구구한 설명 없이도 쉽게 외계인 우주선이라는 느낌을 준다. 그러면서도, 그냥 옛날 장난감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도록 독특한 특징을 갖고 있다. 하나만 예를
[곽재식의 오늘은 SF] 정치적인 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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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놉>에 관한 해석들이 미친 듯이 쏟아지고 있다. 영향받을까봐 쳐다도 안 보고 나의 영화 체험에서 출발해 글을 썼지만 어딘가에 있을 것만 같다.
두 번째 관람하기 전까지 <놉>의 마지막 장면을 OJ(대니얼 컬루야)가 살아 돌아온 것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나의 왜곡된 기억이 영화를 약간 다르게 접근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어 다행이었다. 영화에 OJ가 등장하는 숏(이하 ‘OJ 숏’) 다음으로 돈 되는 영상, 일명 ‘오프라 숏’이 등장한다. 그것은 폴라로이드 필름에 인화된 하늘에 떠 있는 외계 생명체의 모습(이하 ‘오프라 숏’)이다. ‘오프라 숏’이 마지막을 장식하면서 ‘OJ 숏’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영화가 ‘OJ 숏’을 다분히 사진처럼 구성하기 때문에 두숏은 비교될 수밖에 없다. ‘저 너머 먼 곳’이란 문구가 적힌 사각의 문 프레임 안에 말 ‘럭키’를 타고 서 있는 오빠 OJ의 모습은 동생 에메랄드(키키 파머)의 간절한 믿음
오진우 평론가의 <놉>, OJ는 살아 돌아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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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을 들여 우여곡절 끝에 첫 영화를 만들고 그 과정 속에 추억도 기억도 남았지만 정작 결과물이 남지 않았다.” 부지영 감독이 직접 데뷔작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의 복원에 나선 이유다. 영화는 감독의 것인 양 홍보되지만 실상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제작사를 운영하거나 계약서에 분명하게 저작 관계를 명시하지 않으면 저작권은 감독의 손을 떠나 제작사나 배급사에 넘겨지고 팔리고 대물림된다. 저마다의 사정으로 손쓸 수 없어진 저작권 탓에 많은 영화가 상영, 복원될 기회를 잃고 관객도 그 영화를 영영 잃는다. 제24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이하 여성영화제)에서 복원작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를 상영하는 부지영 감독, 개막식에서 상영될 강수연 추모 영상을 제작한 박지완 감독과 한국 최초의 여성감독 박남옥을 기리는 ‘박남옥상’을 수상한 신수원 감독이 한자리에 모여 자신의 복원 경험을 나누었다.
| 부지영 감독 |
<카트>(2014), &
영화 복원에 대한 부지영, 박지완, 신수원 감독의 대담: “복원은 역사를 소환해서 다시 쓰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