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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재미있는 만화 없어요?” 술자리에서 만화 칼럼니스트에게 이런 질문을 하는 건, 가수에게 반주없이 노래하라고 하는 것과 비슷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선의를 가지고 대답을 해주려고 해도, 상대방과 안면도 별로 없고 그쪽의 취향도 잘 모를 땐 곤란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럴 땐 ‘평소 즐겨보는 만화’가 뭔지 물어본다. 그러면 다섯명 중 두명은 이렇게 대답한다. “글쎄요. 요새는 만화 본 적 없는데.” 더 난감하다. 그러나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TV는 보시죠? 즐겨보는 채널이 뭐예요?” 그래서 MBC-ESPN과 스타 스포츠를 즐겨보면 야구나 축구만화를, 캐치온과 OCN을 즐겨보면 영화 같은 탄탄한 스토리의 만화를, 바둑 TV와 온게임넷을 즐겨보면 <고스트 바둑왕>이나 <타짜> 같은 작품을 소개한다. 그런데 곤란한 것은 디스커버리와 내쇼널지오그래픽의 애청자들이다. 이런 고고한 다큐멘터리 팬들은 허무맹랑한 만화와는 분명한 거리를 두고 있는 게 사실.
자연다큐멘터리와 픽션의 결합,<디노디노>와 <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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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어릴 때 소원. 지내놓고 보면 유치하기 그지없는 것. 당시의 절실함과 오늘의 유치해보임이 맞물림. 맞물림으로 인해 유치함이 더 커짐. 소원 내용의 비객관적, 비맥락성. 오로지 상상 속에 구축됨. 판타지와 다르지 않음. 어릴 때 소원이 첩보원인 사람. 그게 생겨난 건, 머리털나고 처음 본 영화가 이었기 때문. 소원은 그랬으나 큰 다음에는 군대 빠질 궁리부터 하게 마련. 당해봐라. 어디 그게 쉬운 일인가.가끔 기특한 소원도 있음. 거듭거듭 기특해 보이는 소원. 빨리 어른이 되는 것, 빨리 늙는 것, 빨리 죽는 것.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음. 조숙해서가 아니라. 주변의 아이들이 유치해서가 아니라. 그냥. 이건 그저 지나가는 과정일 뿐이고. 결국 다 죽음의 문턱에서 보면 부질없는 사건들일 뿐이라는 자각이 들어서도 아니었음. 어리다는, 젊다는 이유만으로 겪게 되는 열병 따위를 두려워해서도 아니었음. 어른들의 느긋함이 부러웠을 뿐.제일 바쁜 사람 임청하. 담배 피운다. 끊임없이 피운다. 하
추억의 본질:<충킹 익스프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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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재니스 조플린의 화신이다. 1970년 10월4일 새벽, 약물과다로 인해 그녀의 영혼이 서서히 사그라들고 있던 바로 그 시각에, 나는 세상에 나올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차가운 주검이 되어 마룻바닥을 뒹굴던 시각에 나는 태어났다. 전생을 지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나 역시 한동안은 그녀의 존재조차 모른 채 지내야만 했다. 처음 그녀가 부르는 <서머 타임>(Summer Time)을 들었을 때, 전신을 휘감던 전율을 아직도 나는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너는 네가 아니야, 너는 나야… 울지 마, 울지 마. 영혼 속을 울리는 그녀의 목소리는 내게 치열한 삶에 대한 열망을 가르쳐주었다. 스무살이 막 되던 해였다. 나는 온종일 그녀의 목소리가 담긴 음반을 데크에 걸고 헤드폰을 낀 채 눈물을 흘려댔다. 그녀의 고통이, 그녀의 열정이 내 삶 안에 온전히 스며들 때까지 나는 죽을 힘을 다해 그녀의 노래를 따라 불렀다. 목구멍이 갈라져 피가 나올 것만 같았지만 어쨌든
나는 재니스 조플린의 화신이다, <서머 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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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적인 삶’이란, <도그빌>에서의 그레이스처럼 일생의 거의 모든 시간을 ‘하면 좋지만 내가 안 해도 그만인 일들’을 하면서 보내는 것이다. 청소를 하는 일이나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 또는 자동차를 만들거나 서류를 정리하고 주가를 체크하고, 선거에 출마하고 다시 빨래를 하거나 나라를 지키는 따위의 일일이 헤아리자면 수억 가지는 될 ‘사회활동과 직업’들이 꼭 필요한 일이지만 또 집요하게 따지고 보면 사실 안 해도 그만인 일들이다. 그 일들이 처음에는 사회의 일원으로서 적절한 역할찾기에서 시작되지만, 그렇게 엮이다보면 어느새 ‘일하기 싫으면 먹지도 말라’라는 빼도 박도 못하는 진리를 만나게 되고 마는 것이다. 이것은 참으로 무섭고, 교묘하며 완벽해서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죽기 전에는 이 굴레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그리하여 처음에는 우연한 방문으로 시작된 도그빌에서의 생활이 어느새 커다란 쇠수레바퀴가 달린 쇠사슬을 목에 걸고 고된 노동을 하고 또 마을 남자들에게 몸을
일하기 싫으면 태어나지 말라,<도그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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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우리 동네에 무당이 살고 있었다. 그 집에서는 종종 ‘덩덩 덩더쿵’ 신나는 굿판이 벌어지곤 했다. 아이들은 굿 구경을 하다 굿이 끝나면 그 음식들을 받아먹기도 했는데, 나는 왠지 꺼림칙해서 그걸 받아먹지 못했다. 그 무당에게는 딸이 하나 있었는데, 아직도 그 애의 황금처럼 싯누런 이빨과 고양이같이 날카로운 눈이 기억난다. 정말로 그 애의 눈동자가 타원형이었는지, 아니면 내 눈에만 그렇게 보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난 일단 그 애의 눈만 쳐다봐도 겁이 났었다. 편견 때문이었을까?그 무당집 바로 옆에 우리 교회가 있었다. 어느 날 이 무당이 그 교회 목사를 찾아왔다. 같은(?) 시장을 놓고 경쟁하는 이 두 사람의 대결은 어린 내게도 충분히 흥미를 끄는 일이었다. 무당이 찾아온 사연은 이랬다. 교회의 십자가 철탑을 자기 집 쪽으로 옮겨놓은 다음부터는 굿을 하는 데에 신이 내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철탑을 종전에 있던 자리로 옮겨놓을 수 없냐는 것이다. 물론 아버지는 이 제안을 단호
` 영매 ` 와 ` 선무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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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받은 영혼에게 스크린의 빛을 투사하노라케빈 스페이시 주연의 <케이-펙스>(9월19일 개봉)가 똑같이 정신병동을 배경으로 한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와 가장 다른 점은 환자들의 상태일 것이다. 자신이 ‘케이 펙스’에서 온 외계인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케빈 스페이시를 비롯해 맨해튼 정신병원의 환자들은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아주 흐릿하게 만들 정도로 ‘안전’하다. 그들은 누구나 조금씩은 안고 있을 정신적 외상들, 예컨대 가족의 붕괴, 애정결핍, 강박증, 소심증 등을 조금 과하게 앓고 있을 뿐이다. 이 기획은 여기서 출발했다. 누구나 앓고 있을 마음의 고통을 손쉽게 보고 즐길 수 있는 영화로 치유할 수 있다면, 그리고 그 길로 가는 실마리를 조금만이라도 보여줄 수 있다면, 하는 소망. 영화평론가이자 임상심리학자인 심영섭씨가 그 수고로움을 맡아주었다. 자신의 실제 경험과 각종 상담 사례로 ‘영화치료’가 무엇인지 알려주는 동시에 무작위로 선택한 감독, 프로듀
마음의 고통 영화로 치유하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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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자의 눈높이에 맞춰 영화 선택해야 효과적그러한 측면에서 영화치료를 위한 영화들은 개인적인 지능과 관심, 맥락에 따라 고려되어야 하고 오히려 상징과 은유로서의 영혼의 수준에서 의미를 찾게 하는 영화들일 것이다. 이렌느 골든버그 박사의 다음 회고담을 들어보자. “전 알코올중독이었던 내담자에게 <술과 장미의 나날>을 추천했죠. 도움이 될까 하고 말이에요. 그런데 치료 도중 내담자는 자신이 열렬하게 보았던 포르노영화로 주제를 바꾸면서, 제가 왜 이 영화를 추천했는지 의아해하더군요.” 일단은 영화치료를 받는 사람도 하는 사람도 영화를 즐기고 사랑하는 그 자체가 가장 중요하다. 내담자의 눈높이에 맞는 영화가, 내담자를 계몽하는 영화보다 더 중요하다.<타인의 취향>‘아니, 내가 저 사람처럼 비현실적이고 즉흥적인 면이 있단 말이야?’ ‘더하면 더 했지 덜하지 않아요.’ 자동차도 보충액이 필요하듯 사랑에도 서로를 쇄신하는 재충전 기간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스토리 오브
마음의 고통 영화로 치유하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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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파랑새는 뭔가요?영화인 4명, 임상심리학자 심영섭과 <케이-펙스>를 보고 집단상담하다심영섭 지금 이 자리는 집단상담치료의 한 섹션으로 마련된 거예요. 원래는 대인관계에 어려움이 많다거나 해서 치료를 받고 싶은 사람이 해야 하는데, 동기가 있는 분들과 없는 분들이 어떤 차이를 보일지 저도 잘 모르겠네요. 평소에 상담하고 싶었던 게 있다면 이 기회에 나누면 좋겠어요. 제가 영화평론가라는 건 생각하지 마시고 상담해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주세요. 중요한 건 서로가 서로를 도울 수 있다는 거고, 마음 가는 대로 얘기하면 된다는 겁니다. 이질집단이면 좀 힘든데 영화를 한다는 공통점이 상당히 크게 작용할 듯싶기도 하네요. 그럼, 하나 정하고 가죠. 이 프로그램은 항상 익명으로 해요. 자기를 잘 나타낼 수 있는 사물이나 자연물로 별칭을 정하자고요. 그러면 우리 안에 있는 권력관계를 없앨 수 있어요. 나이나 직책, 치료자, 환자 같은. 전 향기로 할게요.박경수 (가명·시나리오 작
마음의 고통 영화로 치유하기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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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라= 케이 펙스라는 존재가 있으면서 없는 것 같아. 케빈 스페이시도 프롯이었다가 아니기도 하고.향기= 실제로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는 사실 중요한 게 아니죠.콜라= 각자 선택의 문제죠. 제가 보기에 케이 펙스는 그 병동이에요. 가족은 없는데 관계는 있거든요. 전 자꾸 관계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게 되네요. 전 관계를 일부러 끊을 정도로 가족과 상처가 많아요. 같은 일을 하는 형제와도 관심을 끊고 지내요. 아주 가끔의 전화통화로 생사만 확인하는 정도? 가족이 없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도 있지만 한편으론 그들이 아주 잘됐으면 좋겠어요. 저에게 가족이란 살과 피로 나눈 게 아니라 관계를 나눈다는 의미에서 오히려 타인에게서 그 절실함을 느꼈고 지금도 그렇게 느끼고 있어요. 관계라는 것만 이뤄질 수 있다면 또 다른 케이 펙스가 내 안에 있을 수 있을 것 같아요.사람= 동감입니다. (나무를 가리키며) 우리 둘이 섹스를 했어요. 그러면 부부의 관계는 아니지만 가족이 되는 거죠. 혈연이 아
마음의 고통 영화로 치유하기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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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 이해가 가네요. 너무 화가 났을 것 같아요. 거꾸로 그렇게 작은 것에도 감수성을 발휘해서 자신의 삶을 통합시킬 수 있는 게 콜라님의 능력이죠.콜라= 전 여전히 아픈데, 다른 사람들은 그걸 잊어버려요.향기= 전 제가 쓴 20자평을 까먹는데, 감독들은 그거 안 까먹어요. 무섭고 미안해요.콜라= 그런 사람들 아주 밉죠. 그래서 여전히 가족이 힘드네요.향기= 아주 많은 사람들이 가족 때문에 힘들어해요. 나이 50이 넘어도 얽힌 가족문제 때문에 힘들어하는 걸 봤어요. 나이의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향기= 콜라님은 일종의 우주여행을 다녀온 듯해요. 케빈 스페이시가 외계인과 지구인으로 분열된 건데, 얼마든지 그럴 수 있고 그런 사람도 실제로 봤어요. 어떤 환자는 어린 시절을 하나도 기억 못해요. 본인은 기억력이 나쁜가보다 하는데 그런 거 아니거든요. 사람은 그렇게 상처에 취약해요.콜라= 전 고등학교 때 기억이 하나도 안 나요. 생각조차 하기 싫은 사람이면 그 다음날 일어나 이
마음의 고통 영화로 치유하기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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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시스템을 파괴하고 싶은 모럴리스트익숙한 이름, 낯선 감독, <도플갱어>의 구로사와 기요시아직까지 구로사와 기요시의 영화가 한번도 국내 극장에서 개봉된 적이 없다는 것은 신기한 일이다. 구로사와 기요시는 결코 낯선 이름이 아니다. 지난번 광주영화제에 초청된 일본의 영화평론가 하스미 시게히코는 가장 주목할 일본의 영화작가로 구로사와 기요시를 손꼽았다. 최근 몇년간 미이케 다카시와 함께 해외영화제가 가장 선호하는 구로사와 기요시는 이미 데뷔한 지 20년이 된 ‘중견’감독이다. 국내에도 다양한 경로로 소개된 적이 있다. 2001년 전주영화제에서 특별전을 한 적이 있었고, 부산영화제와 부천영화제에서도 몇 작품이 공개되었다. 그럼에도 이미 수입되어 있는 <큐어>와 <카이로> <강령>은 좀처럼 대중과 만날 기회를 잡지 못했다. 어째서일까.비주류 매체의 비주류 감독<큐어> <카이로> <강령>의 장르를 굳이 말하자면,
익숙한 이름, 낯선 감독, <도플갱어>의 구로사와 기요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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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타미 주조가 제작한 <스위트 홈>은 할리우드의 SFX팀을 불러들여 할리우드풍의 공포영화를 실험한 영화였지만, ‘상업성과 작가성의 이항대립을 무효화했다’는 평가를 받은 <지옥의 경비원>에서는 어느새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어내기 시작한다. 구로사와 기요시는 ‘자신의 작품을 통하여 영화를 발견하고 여태까지는 존재하지 않았던 작품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나아갔다. 그것은 <큐어>를 통하여 정점에 오른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큐어>를 발판으로 하여 <카리스마> <카이로> 등의 걸작들에서 ‘구로사와 기요시’적인 것들을 만들어낸다. 구로사와의 영화적 특징은 하나로 귀결되지 않는다. 그의 영화에는 작가주의와 B급영화의 요소들이 혼재되어 있다. 아니 그것들이 하나의 건축물로서 견고하게 결합되어, 과거에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영화를 만들어낸다.“B급영화를 좋아한다고 인정하지만, B급영화에야말로 굉장한 A급이 있다, 이쪽이야말로
익숙한 이름, 낯선 감독, <도플갱어>의 구로사와 기요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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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세계의 터무니없음을 드러내는 표현수단<도플갱어>의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 인터뷰2년 전 인터뷰를 한 뒤, <밝은 미래>와 <도플갱어> 두편을 보았다. 당신의 영화에는 자신의 사상을 다소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카리스마> <인간합격> <밝은 미래> 유형과, 장르의 틀을 허물고 부수면서 새로운 지형으로 나아가는 <큐어> <카이로> <도플갱어> 유형이 있는 것 같다. 당신이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당신을 창작으로 이끌어가는 것은 무엇인가. * * * 나에게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자기자신과 영화 자체의 갈등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나의 작품은 작가의 다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인생과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영화라는 틀이 서로 어우러져 탄생하는 것이 아닐까? <밝은 미래>는 영화의 역사성보다 자신이 현재 살고 있는 실감쪽에 좀더 강하게 뿌리를 두고 만들었다. 한
익숙한 이름, 낯선 감독, <도플갱어>의 구로사와 기요시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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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돌과 조화의 미학을 찍는다
한국영화의 대표적인 스타일리스트는 이명세 감독이다. 그러나 멋진 이미지에 버금갈 만큼 알맹이가 얼마나 알찬가 하는 점에서 그의 스타일은 갈증을 일으키곤 한다. ‘디자인됐다’는 인공미를 주저없이 뿜어내는 이현승, 민병천의 비주얼은 빼어나지만 독창적인 세계 구축이라는 점에서 어딘가 허전함이 남는다. <정사>와 <순애보>를 거쳐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에 이른 이재용 감독의 영화들은 스타일리스트의 자의식을 앞선 감독들만큼 드러내지 않지만 ‘이재용 스타일’이라 부를 만한 일관된 그 무엇을 보여준다. ‘이재용 스타일’에선 스타일이 형식이자 곧 내용이다. 따라서 이미지의 경계 안에 머물러서는 그 전모를 밝히기 어렵다. 드라마와 캐릭터가 전복적인 듯하면서 끝내 위험하지 않고, 섹스의 공간과 상황을 변태스런 지경으로 몰고 가도 퇴폐로 흐르지 않으며, 사랑의 진정성을 부정하는 듯하면서 사랑의 판타지로 끊임없이 회귀하는 기저에는 형식
<스캔들: 조선남녀상열지사> 감독 이재용의 스타일 분석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