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산영화제가 처음 열렸을 때 나는 <씨네21>의 기자였다. <씨네 21>은 당시로선 생소했던 영화제 데일리를 낼 참이었다. 그게 얼마나 피곤한 일인지는 아무도 몰랐다. 영화제 개막을 몇 달 앞두고 김지석 프로그래머가 <씨네 21>을 찾아와 데일리 간행을 부탁했을 때 처음 든 생각은 칸이나 베를린에서 발간되는 소식지 비슷한 것을 만들면 되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영화제 측도, <씨네 21> 취재부도 만만하게 생각한 그 작업은 만만치 않았다. 부산은 대한민국에서 처음 치러지는 국제영화제라는 흥분에 취해 역동적인 분위기로 달아올랐고 많은 사람들이 남포동에 모인 젊은 관이 인파를 보고 축제의 최면에 빠졌다. 사방은 즐거운 활기로 넘쳐나는 것같은데 <씨네 21> 데일리 사무실은 녹초상태였다. 계획대로 되는 것은 하나도 없는 숱한 시행착오의 아수라장 속에서 일 욕심 많은 당시 편집장의 진두지휘 아래 속으로는 육두문자를 삼키며 작업하곤 했던
부산의 추억 - 막노동 뒤 소주 한 잔
-
동서양의 경구를 모조리 모은 개인적인 잠언집
관객과 비평가들의 가장 큰 불만은 “자막읽기에 급급해서 대체 스토리를 따라갈 여지가 없다”라는 사실이었다. <할리우드 리포터>가 “<이노센스>는 주인공들이 밀턴, 데카르트, 공자와 성경을 인용하며 이야기하는 매우 철학적인 영화다. 관객은 자막을 따라가기가 힘에 부칠 수도 있다. 드림웍스가 이 작품을 더빙한다면 영화를 이해하는 게 약간은 쉬워질 수 있을 것이다”라고 던졌던 조언은 일리가 있다. “우리의 신과 희망이 과학적 현상이라면 사랑 또한 과학현상이라고 인정해야만 할 것이다”라는 빌리에 드 릴라당의 1886년 SF소설 <미래의 이브>의 한 구절을 인용하며 시작된 영화는, 오시이 마모루가 끌어온 온갖 경구로 가득 차 있다. “시저를 이해하기 위해서 시저가 될 필요는 없다”는 독일 사회학자 막스 베버의 잠언, “자신의 얼굴이 비뚤어져 있는데 거울을 탓해서 뭐 하나”라는 고골리의 잠언이 일상적인 대화 속
애니메이션의 작가주의, 오시이 마모루의 <이노센스> 해부 [3]
-
시작부터 관객을 확 잡아끄는 것은 무시무시한 물량으로 완성된 영화의 비주얼이다. “뉴욕이야말로 고딕의 마을이었다. 솟아오른 마천루의 단호한 수직선의 거리. 어디를 걸어도 대면하는 것은 수직으로 뻗은 벽뿐으로, 원경없는 폐쇄된 거리. 고층건물의 틈으로부터 들이비치는 거대한 반사광이 근대적인 거리를 거대한 사원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공각기동대>의 로케이션 헌팅으로 방문했던 홍콩에서, 굉장한 소나기를 만나 대로가 일순간 운하처럼 변모했던 것을 보고 <공각기동대>의 미래도시를 창조했던 그 감각이 되살아났다”는 오시이 마모루의 말처럼, 현대 홍콩을 도쿄만에 옮겨놓은 듯했던 전편의 미래도시는 좀더 인공적인 고딕의 메트로폴리스 이미지로 <스왈로우 테일>과 <킬 빌>의 프로덕션디자인을 담당했던 다네다 요헤이의 손에 의해 완성되었다. 전편의 배경이 전형적인 사이버 펑크 모험담의 세계였다면, <이노센스>의 도시는 어둠침침한 누아르의 세계가 더 잘
애니메이션의 작가주의, 오시이 마모루의 <이노센스> 해부 [2]
-
“네트는 광대해.”
내무성 공안 9과(<공각기동대>)의 쿠사나기 소좌가 그렇게 읊조리며 네트 속으로 사라진 건 1995년이었다. “어쩌면 나는 훨씬 이전에 죽었고, 지금의 나는 전뇌와 의체로 구성된 가상인격인 게 아닐까. 아니, 처음부터 나란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이 아닐까”라며 데카르트적 질문을 서슴없이 던졌던 <공각기동대>는, 식상한 표현을 구태여 빌려보자면 당대의 ‘컬트영화’가 되었다. <매트릭스>의 워쇼스키 형제를 위시한 서구 감독들은 인터뷰에서, <공각기동대>에서 얼마나 큰 영향을 받았는지 토로하기도 했고 미국과 유럽에서는 기록적인 DVD 판매수익을 올렸다. 일본 내에서 겨우 12만 관객을 동원했던 <공각기동대>는 그렇게 부활했다. 부활이라고? 그랬다. 그것은 부활이었다. 일본 대중에게 <공각기동대>는- 오토모 가쓰히로의 <아키라>처럼- 외국에서의 컬트적 인기로 역수입된 문화적 상품의 사례 중 하
애니메이션의 작가주의, 오시이 마모루의 <이노센스> 해부 [1]
-
-
10대 여고생과 열몇살 나이가 많은 남자가 집안 사이의 약속에 의해 부득이 결혼을 올린다. 이들의 결혼생활은 섹스와 애정보다 유아적인 장난에 기반을 두며, 남자가 여자아이의 학교에 교사로 부임하면서 새로운 단계를 맞는다. 학교에서 여자아이는 또래 남자아이를 짝사랑하고 남자는 같은 학교 여교사의 애정공세에 시달린다. 어디서 많이 본 이야기라고?
2002년 홍콩에서 만들어진 <아저씨 우리 결혼할까요?>는 최근의 ‘<어린 신부> 표절 논란’에서 ‘원본’으로 지적되는 영화다. 과연 두 영화는 캐릭터 설정에서부터 기본 상황까지 상당한 유사성을 보인다. 함께 대형마트를 누비는 장면이야 현대 아시아 대도시의 부부생활이 비슷할 터이니 넘어갈 수 있다 해도, 남자를 짝사랑하는 여교사가 집으로 쳐들어오는 신에 이르면 ‘표절설’이 근거없지만은 않다는 느낌도 받게 된다. 그러나 가족, 학교라는 배경을 활용해 코믹한 상황을 만들어가는 <어린 신부>와 달리 <아저씨…&
<어린 신부>의 원본? <아저씨 우리 결혼할까요?>
-
택시를 하루 전세 내 밤새 도심을 돌겠다는 평범하지 않은 손님이 있다. 소금과 후추를 적당히 섞어 뿌린 듯한 회색빛 머리칼, 딱 달라붙는 고급 회색 슈트를 입은 이 정체불명의 사내는 빈센트(톰 크루즈)다. 이런 손님이라면 택시운전사 맥스(제이미 폭스)가 제격일 것이다. 노스스프링에서 유니온까지는 7분, 베니스까지는 3분. LA 시내 구간구간의 소요시간을 빠삭하게 외우고 있으니 말이다. 오후 6시부터 이튿날 새벽 4시까지 10시간 안에 도심 다섯 군데를 돌며 비즈니스를 해야 하는 강행군이라면 이런 프로페셔널 운전사를 골라야 한다.
택시가 LA 야경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간다. 심도 깊은 카메라로 잡아낸 이국적인 대도시의 밤풍경을 보라. 부감으로 잡아낸 풍경 속엔 밤하늘에 흩뿌린 듯한 빌딩의 노란 불빛과 바람에 고요히 흔들리는 야자수가 어울려 고즈넉함을 자아낸다. 여기에 웨스트 코스트 스타일 재즈로 편곡한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가 넘실댄다.
<G선상의 아리아>
삭막한 도시의 밤에 찾아온 악몽, <콜래트럴>
-
오래전 앙코르와트 사원 석벽에 사랑의 비밀을 봉인한 그 남자는 어떻게 됐을까. “먼지 낀 창을 들여다보듯” 희미하게 지나간 날들을 기억할 뿐이라던 그 남자는 지난 사랑의 실패를 딛고 또 다른 인연을 만났을까. 아름답고 안쓰럽고, 그래서 궁금했던 그 남자 차우가 돌아왔다. 그는 변했고, 변하지 않았다. 그건 왕가위도 마찬가지다. <2046>을 만나는 일은 <화양연화>를 거듭 돌아보는 데서 시작된다는 건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런 방식으로 만들어낼 거라고는 짐작하지 못했을 것이다. 상상한 것 이상, 예상한 것 이외의 것을 보게 될 거라는, 다소 호들갑스러운 예고가, 이럴 때 어울린다.
우선 그 남자의 근황. 신문사 일을 그만두고 포르노 소설을 쓰는 차우(양조위)는 밤마다 여자를 갈아치우는 바람둥이가 되어 있다. 만취해 쓰러진 여자(유가령)를 데려간 곳은 오리엔탈 호텔 2046호. 사랑했던 여인 수리첸(장만옥)과 남몰래 만나고, 함께 무협소설을 써내려가기도
왕가위의 화려하고 비장한 ‘오페라’, <2046>
-
소설가 장정일과의 대담에서 김기덕 감독은 “언젠가 ‘집’이라는 제목으로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 소망은 올해 베니스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한 <빈 집>을 통해 실현되었다. 하지만 제목의 그 ‘집’은 의미심장하게도 ‘빈집’이다. 굳이 제목에 연연하지 않더라도, 한강다리 아래의 천막(<악어>), 정박 중인 배(<야생동물 보호구역>), 새장여인숙(<파란 대문>), 형형색색의 좌대(<섬>), 빨간색 군용버스(<수취인불명>), 매춘이 이루어지는 트럭(<나쁜 남자>), 그리고 호수 한가운데 뜬 암자(<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등등 김기덕의 영화에서 불완전하고 정상적이지 않은 집의 형상을 발견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빈 집>에서 엿보이는 집에 대한 김기덕의 관념(의 변화)에는 어딘지 예사롭지 않은 데가 있다. 우리는 여기서의 그의 관심이 장소(집) 자체가 아닌
환상의 무대에서 펼쳐지는 ‘유령연습’, <빈 집>
-
인형들의 오럴섹스도 검열이 되나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대량살상무기를 거래하는 희대의 악당으로 묘사해 화제가 되었던 미국의 마리오네트(꼭두각시 인형)영화 <팀 아메리카: 세계경찰>이 또 한번 이슈에 올랐다. 비밀경찰 ‘팀 아메리카’의 일원으로 등장하는 개리 존스턴이라는 등장 ‘인형’이 같은 팀의 여성요원 인형과 질펀한 오럴섹스를 벌이는 장면 때문에 미영화협회(MPAA)와 마찰을 벌인 것이다.
애초에 이 영화는 MPAA로부터 NC-17등급을 받았는데, 18세 미만 미성년자의 경우 성인과 함께라면 관람이 가능한 R등급과는 달리 NC-17등급은 17세 미만의 미성년자 입장이 완전히 금지되므로 흥행에 커다란 타격을 입을 수도 있는 등급. 이에 <팀 아메리카…>의 프로듀서 스콧 러딘과 트레이 파커 감독(<사우스 파크>)은 등급 하향조정을 9차례나 MPAA에 건의했고, 외설규제 강화를 원칙으로 하는 MPAA는 끊임없이 이를 반려하다가 마침내 R등급으로 최
미성년자 입장 완전 금지 등급 받은 인형 애니메이션 <팀 아메리카: 세계경찰>
-
노래하고 춤추는 스크린의 시대가 다시 돌아오는가. 할리우드에 뮤지컬영화 제작 붐이 거세게 불고 있다. 현재 수면 위에 부상한 프로젝트만도 여러 편으로, 뉴라인 영화사는 <헤어스프레이> <제작자들>의 본격적인 프로덕션에 착수했으며, 레볼루션 스튜디오는 에이즈 시대의 젊은 동성애자들을 주인공으로 하는 뮤지컬 <렌트>를 영화화할 감독으로 크리스 콜럼버스(<해리 포터>)를 낙점했다. 한편 워너브러더스가 제작하고 조엘 슈마허가 감독한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오페라의 유령>은 12월 전세계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그외에도 브로드웨이의 성공작 <미스 사이공> <레미제라블> <아가씨와 건달들> 등의 판권이 이미 할리우드 제작사들에 팔린 상태다.
뉴라인 영화사의 회장 마이클 린은 새롭게 전개되고 있는 뮤지컬영화 제작 붐에 대해 “이전과는 달리 뮤지컬영화도 상업적인 가능성을 충분히 가지고 있다는 인식이 생겼기 때문
<제작자들><헤어스프레이> 등, 영화를 무대에 올렸던 작품들의 역영화화도 활발해
-
타이, 2003, 감독 아핏차퐁 위라세타쿤, 오후 2시, 메가5타이의 신성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의 세 번째 장편영화인 <열대병>은 무척이나 낯선 영화다. 영화의 절반은 병사와 소년의 수줍은 로맨스에 할애된다. 두 사람은 따사로운 햇살이 가득한 마을을 거닐다가 사람들을 만나고, 함께 영화를 보러가고, 가라오케에서 수줍게 노래를 부른다. 완벽하게 따사로운 퀴어 영화의 동화(童畵)속에서 펼쳐지는 행복한 이미지들을 뒤로 하고 밤이 찾아온다. 그러자 그 순간 갑자기 화면이 정지한다. 영사사고가 발생한 것은 아닌지 의아해질 무렵, 영화는 별안간 전반부와 전혀 다른 세계 속으로 관객을 데려간다.병사는 어두운 정글을 헤매이며 (아마도 사랑하는 소년을 잡아간)호랑이의 유령을 쫓아다니고, 위라세타쿤은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정글을 조명 하나 없이 무성영화처럼 찍어낸다. 전반부의 드라마와 후반부의 판타지를 연결하는 이상한 순환구조가 관객을 혼란스럽게 만들 테지만, 퀴어영화와 타이 민담이 뜬
<열대병> Tropical Malady
-
프랑스,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2004, 감독 에미르 쿠스투리차, 오후 5시, 부산보스니아에 살고 있는 세르비아인 루카는 보스니아와 세르비아를 이어주는 철도 건설을 꿈꾸는 유쾌한 남자다. 국경 근처의 아름다운 집에서 그는 아름다운 뮤지컬 배우 아내와 축구선수가 꿈인 아들과 함께 행복한 삶을 꾸려나간다. 그러나 보스니아 내전이 발발하자 모든 꿈은 허물어진다. 아들은 군대에 강제로 징집되고 아내는 다른 남자와 눈이 맞아 달아난다. 비탄의 나날이 계속되던 어느 날 루카의 집에 아름다운 이슬람 간호원 사바하가 보스니아군을 피해 숨어들어오고, 루카는 그녀와 아들을 포로로 교환할 계획에 모든 희망을 건다. 그러나 전화속의 사랑은 더욱 간절해 지는 법. 루카와 사하바는 마술처럼 서로에게 빠져들게 된다.<인생은 기적처럼>은 여전히 활기차고 전과 다름없이 시끌벅적한 '쿠스트리차 영화'다. 등장인물들의 끊임없는 수다와 (쿠스트리차 자신이 베이시스트로 참가하고 있는) 노스모킹 밴드의 정신없
<인생은 기적처럼> Life Is A Miracle
-
이란, 2004, 감독 바흐만 고바디, 오후 8시, 부산2쿠르드족 아이들은 일찍 어른이 된다. 동생을 안아 어르고 돈을 구하러 다니는 이 아이들은 이기적인 욕심이 없어 보이지만, 슬픈 노래와 눈동자에선 걸음마와 함께 생존을 배워야하는 거친 세월이 어쩔 수없이 드러난다. 온힘을 다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할 이 아이들에게 무슨 말을 건넬 수 있을까. <취한 말들의 시간> <고향의 노래>에 동족의 고난을 담았던 바흐만 고바디는 그 전쟁터를 떠나지 못하고 가만히 바라볼 뿐이다. 이것은 픽션이 아니고 현실이라고, 그게 전부다.이라크 피난민들이 몰려드는 국경지역, 위성 안테나를 사고 싶어해서 ‘위성’이라고 불리는 소년 칵은 마을 아이들을 이끌고 민첩하게 살아가고 있다. 위성은 팔을 잃은 오빠 헹고와 함께 피난민 속에 섞여온 소녀 아그린을 보고 반한다. 아그린은 부모를 살해한 군인들에게 강간당하고 아이까지 낳았다. 매몰차게 아기를 떠미는 아그린은 그 밤의 악몽을 잊지 못하고
<거북이도 난다> Turtles Can Fly
-
KBS 오락프로그램 녹화 도중 소품용 떡을 먹고 기도가 막혀 이대 목동병원 중환자실에 입원 중이던 성우 장정진(51)씨가 11일 오후 6시 23분께 사망했다. 장씨는 호흡과 맥박, 혈압 등 활력증상을 점검한 의료진이 상태가 위급하다고 판단해 가족을 불러모은 가운데 숨을 거두었다. 병명은 기도 폐색에 의한 저산소성 뇌경색. 주치의 김용재 신경외과 교수는 "고인께서 뇌사상태에 계시다 편안히 가셨다"고 밝혔다.장씨는 지난달 13일 오후 7시께 서울 강서구 화곡동 KBS 88체육관에서 진행된 KBS 2TV <일요일은 101%> 코너 '골목의 제왕' 녹화 도중 소품용 떡을 먹다 기도가 막혀 이대 목동병원 응급실로 이송됐고 같은 날 오후 9시께 중환자실로 다시 옮겨졌다. 호흡 곤란에 의한 산소 부족으로 뇌가 크게 손상된 장씨는 그동안 한달 가까이 의식불명 상태로 산소호흡기에 의존한 채 목숨을 유지해 왔다.장씨는 1977년 KBS 성우 15기 출신으로 만화 '삼국지'의 장비, '달려라
의식불명 장정진씨 끝내 사망